
전남 일대에 반란군의 동향에 의지해서 우리의 전 동포가 심심히 거기에 대한 우려를 하고 대내 대외적으로 우리에게 큰 영향이 미쳤다고 하는 것도 우리가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원회로서 우리 국회 본회의에 그 경과한 사실을 여러분에게 보고하겠읍니다. 20일, 21일경에 한정 없이 이 경성 시내에 소란하게 방방곡곡으로 여러 가지 유언비어 혹은 여러 가지 유포된 말이 항간에 많이 있게 되었읍니다. 거기에는 그 유언비어라든지 이와 같은 것은 사실을 잘 모르는 동시에 의원 역시 급격히 제기된 바로 위원장실에서 비공식적으로 모이게 되었읍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의원은 수십 명에 달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사태의 진상을 잘 모르니까 국가 위기한 이때에 우리 국회는 이미 휴회 중이라고 하드라도 속히 이 국회 소집할 것과 외무국방위원회, 내무치안위원회에 속한 의원 중 재경하시고 있는 몇 분이라도 항시 대기하고 있어서 사무를 계속해야 되겠다는 그러한 의장의 명령이 있었읍니다. 그러니만치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떠한 기관을 통해서 알겠느냐고 말한 결과에 내무부 혹은 국방부를 통해 가지고 거기에 대한 직면보고를 듣자고 하는 것이 그 회의석상의 결론이였읍니다. 그것은 22일에 이야기하고 23일 날 비로서 외무국방위원회실에서 내무차관 황희찬 씨와 국방부참모장 채병덕 씨를 초청하였읍니다. 금번 전남 일대의 사건이 어떠한 경황에 있는지 이런 것을 비로소 우리가 듣게 되었읍니다. 그러면 그 국방부나 내무부에서 우리에게 보고해 주는 그 사실은 역시 중간보고에 지나지 못하니 여러분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개 그 보고에 의지하면 19일 날 오후 9시에 …… 여수에 주둔하고 있는 제14연대의 일부분에서 동란이 일어났읍니다. 그것을 발견한 군 간부 한 사람이 병사를 순시하는 때에 그 병기창고를 부시는 10여 명의 폭도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그 당시에 폭도인지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몰라서 정지명령을 내렸답니다. 그러나 폭도는 그것을 보고 비로소 그 장관에게 대해서 발사명령을 했어요. 그래서 비로소 총을 놓게 되니까 그 장관은 그 자리를 도주했답니다. 그때에 인원수는 10여 명에 지나지 못했답니다. 그 때에 그 당시에 역시 자기가 미리 예비해 논 그 외의 정원을 동원하였는데 한 40명이 동원됨에 따라서 저편은 제2차로 400명이라는 인원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거기에 대한 장병이라든지 거기에 대한 소위 간부격은 그 자리에서 참사를 당하고 때를 마쳐 그 병사는 확실히 반란군에게 점령되고 그 반란은 그길로 나와서 경찰서를 습격하고 그다음에는 여수 전체를 습격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동시에 그때에 여수는 반란군의 천지가 되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튼날 즉 말하자면 20일, 21일 아침 차로 여수에서 순천으로 통학하는 기차가 9시 차가 있는데 그 차는 약 4, 5차의 객차를 분승해 가지고서 순천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순천에 들어가서 순천에서 비로소 먼저 경찰서를 습격하는 가운데에 경찰서 자체가 순조히 대항하는 관계로 전투상태가 일어나서 큰 피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다음 여수를 중심해서 순천을 향해서 순천으로부터서 비로소 선로가 잘라저서 벌교로 나가는 한 군이 있었고 광양으로 나가는 한 군이 있었고 보성으로 나가는 한 군이 있어서 다시 그것은 광주를 향하는 목표로 한 부분은 진격할 그런 영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 동시에 국방군은 이것을 알고 역시 마산부대와 부산부대와 목포부대를 동원해서 각 군사를 집결시킨 동시에 그때에 그중 중요한 지대는 남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원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시에 역시 군데군데에 여러 가지 폭란이 일어났고 투쟁상태에 있어서 그때 당시에는 완전한 정보라든지 완전한 통신도 못한 것도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별안간에 폭도가 들어와서 혼란을 일으킨 이때에 폭도가 들어온 이상에는 그 지방에 있는 학생이라든지 혹 청년단결도 거기에 소속되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그런 단체도 역시 거기 대항해 가지고서 반란해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기는 어떤 무기가 관련이 되었느냐 하면 제주도를 토벌하기 위해서 14연대가 주둔해 가지고 있을 때에 거기서 그 무기라든지 그 탄환이라고 하는 것은 제주도에 가서 정복하기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개 그 당시의 병기는 자세치는 못하나 탄환을 알기에는 27만 발 정도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없어진 것보담 반란군이 가지고 간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역시 항간에서부터 나온 말은 여수의 은행을 습격해서 돈을 50만 원을 가지고 갔다, 금융조합을 습격해서 얼마를 가지고 갔다니 하나 아직까지 자세한 숫자는 나오지 않었읍니다. 그때에 순천에 제일 극렬한 상태에 있어서 많은 우리 동포가 무참히 참해를 많이 당하고 여러 가지 우익진영에서 많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신 분이 많이 참패를 당한 것이 사실인 것 같읍니다. 그래서 대개 그만한 정도의 차관의 보고를 들었읍니다. 그 동시에 우리 국방위원회라든지 또는 내무치안위원회의 그만한 보고를 가지고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였읍니다. 그래서 오후에 23일 날 오후 3시에 국방장관과 내무장관을 초청해서 여기에 대해서 더욱 자세한 보고를 듣고저 한다고 해서 그분이 접수한 정보를 들었읍니다. 그리고 국방장관의 말씀이 이 사건의 원인이 어데 있느냐 하는 것을 규명할 때에 이 원인은 현재 국방군이라고 하는 이 조직체가 과거에 온순치 못하고 말하자면 무계통 무질서할 그런 경향에서 모인 단체였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서 또 국방장관이 자기가 임명된 이후에 이것을 차차 정리하는 도중에 이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였읍니다. 그러나 다만 그때에 역시 오늘 내에라고 하는 것이 23일인데 그 23일 내에 여수에 있는 것을 완전히 소탕하며 또 순천에도 또 그와 같이 소탕하여 2, 3일 내로 전부 숙청하겠다고 또 그뿐만 아니라 강원도라든지 충청도지방이라든지 그런 위험한 상태가 있을까바 미연에 방지를 하고 또 경기지방으로서는 가장 온순하고 충실한 결과로 여기에서는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안심하라고 우리한테 위안을 해주었읍니다. 그 외에 내무장관 역시 지금 각지에서 보고 오는 결과는 역시 어제 그 통신이 오지 못한 것은 무엇이냐 할 것 같으면 무선통신의 고장에 의지해서 못 왔지 그 외에는 관계없다고 해요. 그때 우리가 제일 우려된 점은 광주입니다. 광주가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제일 우려했었는데 광주는 그렇지 아니하고 순천이 제일 중심지대이며 앞으로 반란군이 지리산에 들어갈 염려가 있다, 지리산에 들어간다고 할 것 같으면 지리산은 산이 토산일 뿐만 아니라 식목이 울창하고 역시 산이 큰 산인 만큼 그 산에 집결한다고 하면 이다음에 공격하기가 대단히 곤란한 만큼 그 산에 될 수 있으면 들어가지 못하도록 자꾸 여러 부대가 가서 투쟁하고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이것은 23일 오후 3시부터 5시경까지 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역시 내무부의 보고와 국방부의 보고가 어느 점이 완전하게 통일된 보고가 못 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의장께서는 내무장관과 국방장관에게 심심히 부탁한 말이 있읍니다. 우리 국회에서는 이 사실을 명확하고 신속하게 잘 알어야 할 것이라고 그런 만큼 이것을 명확한 보고를 우리가 받기를 원한다고 하는 우리 의장의 요청한 말이 있었읍니다. 그 외에 일설에는 25일 날 여수는 완전히 점령하고 여수를 완전히 회복하겠다고 하는 것을 그런 통신을 받았다고 하는 정보를 받은 것도 사실이였읍니다. 그 후에 25일 오전 9시 현재, 이것도 내무부로부터서 나온 정보입니다. 남원방면에 적은 지리산 백운산에 타고 나갔다고 하는 이런 정보가 있었고 또 보성지구에서 반란군은 퇴각하고 국군은 동방면으로 진군해 나갔다고 하는 정보가 있읍니다. 보성군에서는 24일 오후 12시 반에 벌교라고 하는 지방을 점령하였다고 하는 정보가 있었읍니다. 25일 오전 7시 보성지구의 경찰서와 그날 10시30분에 벌교서를 완전히 접수하였다고 하는 이런 보고가 있었읍니다. 또 순천경찰서는 이미 반란군에 점령당한 그 순천에 북소학교 남소학교가 있는데 그 북쪽 소학교를 점령해 가지고서 거기서 비로소 경찰사무를 회복하고 또 치안을 유지해 나간다고 하는 그런 정보가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그 외에 국방부에서는 26일 발표된 것이 있는데 여수에서는 25일 11시30분에 적에게 포고문을 발포하였다고 하는데 비행기로 한 것 같읍니다. 그래서 30분간에 완전히 끄치지 아니한다고 하면 전멸시킨다고 하는 그런 선포문을 발해 가지고서 또 백운산에 집결한 반란군은 지금은 국군이 포위상태에 있는 것 같다고 하는 정보도 있읍니다. 그간에 반란군이 철퇴를 개시한 이후에 순천지방에서는 포로를 592를 잡고 총기는 450정을 뺏었다고 합니다. 화순지방에서는 400여 명의 포로를 잡고 총은 52자루를 뺐고 보성에서는 140여 명의 포로를 잡고 130정의 총을 거두고 벌교지방에서는 포로는 40명을 잡고 총은 52자루를 뺏고 광양지방에서는 포로 188명과 총은 250자루를 뺏고 이밖에 트럭 7대와 스리코타라는 것을 두 대를 뺏었다고 합니다. 또 해상에서는 연락하는 배가 2채를 역시 이쪽에서 잡으며 목선은 8개를 잡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은 그렇고 여수에는 결과를 아직까지 상세히 진상을 조사 중이라는 말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국방부로부터 나온 정보입니다. 그런데 이 보고는 역시 지금 현지에서 나온 정보지만 우리가 여기서 추찰할 때에 물론 아직까지 충실한 정확한 그러한 보도는 아닙니다마는 첫째 돈이 그만한 다액의 돈을 가지고 갔다, 또는 제주도로 가지고 갈 병기를 가지고 갔다는 그러한 역연한 사실에 다소간 포로를 잡고 병기를 빼았은 것은 일부분인데 그 수효로나 인원을 본다면 현재에 극소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고 또 이 이외의 통신기관으로서 오날 신문에서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전남에 1만 7000석이라는 미곡문제가 그 행방이 애매한 것도 역시 큰 염려꺼리입니다. 그런 만큼 거기에 대해서 충실한 보고를 정부로서 통일한 보고를 듣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다만 중간보고에 의해서 여러분이 너무 궁금해 하시고 답답하신 처지인 만큼 들은 대로 요만한 보고를 드리고 마칩니다.

대한민국이 건립된 후에 또는 과거의 우리 역사상에 보지 못한 잔인무도한 공산분자의 선동에 의하야 반란군이 선량한 우리의 동포와 또는 우리 민주주의 민주진영에 있는 애국열사와 이 반란군을 막으려는 국군과 경찰에의 다대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 들었읍니다. 여기에 있어서 그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무참히 쓰러진 애국영령에 대하야 우리가 일동 기립해서 묵상하기를 저는 특청하는 바이올시다.

의사 진행하는 가운데에 시방 발언하신 의원의 요청으로 이번에 우리 동포 가운데에 탄알에 희생이 났다는 데 대해서 우리는 동포애의 입장으로서 영령이라는 말을 아직 쓰지 못한다 하드라도 우리 동포 사이에 이만한 희생이 났다는 데에 우리는 심심한 애도를 표시하는 바이올시다. 잠깐 동안 다같이 일어나서 1분 동안만 묵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외무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중간보고가 있었읍니다. 하나 말씀 듣건대 국방부의 책임자와 내무부의 책임자는 일이 시작한 지점에 특별히 조사하러 나간 것 같이 이야기를 듣고 있읍니다. 그런데 시방 국방부차관 동지와 내무부차관 동지의 두 분이 여기에 나오게 되었읍니다. 이번 사실을 잠깐 우리는 보고듣기로 하겠읍니다. 제일 먼저 국방부차관 동지를 소개합니다.

본 의원은 금번 휴회를 이용해서 귀향한 사실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어제 돌아왔읍니다. 전남 출신으로서 전남에 갔기 때문에 이번 반란으로 말미아마서 여러 가지 위험을 당하고 왔읍니다. 금번 반란사건에 있어서 여러 가지 사항은 여기 외무국방위원장의 보고도 듣고 앞으로 있어서 국방부 국군책임자 또는 내무부책임자로서 상세히 보고가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그 보고가 통일한 보고가 될는지 안 될는지 그것도 본인으로서 의심하는 바이올시다. 또 그 보고가 현지의 사실 그대로를 역력히 보고되는지 안 되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여하간 보고는 되리라고 보겠읍니다. 우리 국회로서도 내무치안위원과 외무국방위원을 현지에 파견해서 실지를 조사를 하고 위문을 해야 될 줄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 의원 동지 제씨가 심심히 사고를 하셔서 곧 실지를 조사하고 또는 불행히도 쓰러진 애국영령에 대하야 위로하고 보고를 해야 될 줄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있어서 국군책임자 또는 내무책임자의 보고를 들은 때에는 이것을 비밀회의에 부치고 토의하는 석상에서 보고를 듣지 않기를 저는 요망하는 바이올시다.

시방 이항발 의원 의견 타당한 발언입니다. 그러므로 벌써 아까 외무국방위원장으로서 보고할 때 약간 말씀했읍니다마는 지나간 20일에 재경하는 양 상임위원회 내무치안위원회와 외무국방위원회의 의원이 모여서 이야기가 되었는데 이 두 위원 가운데 반드시 현지에 나가서 조사를 해야 되겠다는 말을 한 일이 있읍니다. 그래서 의장의 지시에 의지해서 사무처에서는 만반 준비를 다하고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므로 그때 그만한 이야기가 있었지마는 우선 각 방면의 보고를 들어보고 얼마동안을 고려하자는 몇 분들의 의사가 있는 까닭에 그대로 돼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내일 사이에 그 두 의원 중에서 인선을 해서 현지에 파견을 하도록 하겠읍니다. 그리고 지금 전황의 보고를 듣는 데 있어서는 이 회의를 공개하지 않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우리 많이 고려해야 할 점입니다. 시방 정부당국에서 일반에게 발표한 이외에도 혹은 새 재료가 있어서 보고를 하게 된다면 공개해서 발표하도록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다같이 동의한다면 외교 국방…… 외교 국방이 아니라 국방부차관의 보고와 내무부차관의 보고를 공개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의 없죠? 그러면 방청하시는 동지들 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절 참혹한 반군 반란군이 나타난 것은 그야말로 문자 혹은 언어 어느 세계 각국 어떠한 나라의 언어로서 표현은 할 수 없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오점이 아닐 수 없읍니다. 그러나 이것을 공개하지 않고 …… 이 회의를 공개하느냐 안 하느냐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저는 공개리에 이 문제를 이 보고를 받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지금 국방부 내무부의 정보에 의지해서 그 정보가 정확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이 문제에 있어서 확실히 신문지상에 벌써부터 발표되어 있고 또는 무전으로서 또는 통신으로서 다 발표한 것을 이제 새삼스러히 이 회의를 비공개리에 한다고 하면 사회적으로 비상한 의혹을 사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정기를 버리고 될 말이 없읍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있어서 문 닫치고 정보 듣자는 것은 저는 찬성하지 않읍니다.

이 문제 가지고 말씀 많이 마세요. 시방 이 문제는 가부를 물을 것도 없고 이 회의를 공개로 하느냐 비공개로 하느냐 하는 이 문제는 원의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의장 직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방 우리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기히 발표되어서 일반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새 재료가 있단다든지 혹은 정해준 의원과 말씀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정확하지 못한데 인심은 부동되고 있는 이때 특별히 우리는 주의할 점인데 …… 그런데 시방 말씀 듣건데 국방부차관으로서는 여기서 말씀할려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이 공개하지 아니할 그러한 재료가 적다고 말씀해요. 그러므로 이 회의는 공개하는 회의로 합니다.

지금 공개리에 하자는 말씀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 잠깐 말씀하겠읍니다.

조금 용서하십쇼. 이렇게 합니다. 지금 개회한 제1일에 이 민족적 불상사 이 일에 관해서 우선 정부 방면의 책임지는 두 분 차관 동지가 나왔으니 이야기를 들어야 되겠읍니다. 만일 국방장관이나 내부장관이 현지에 가서 아즉까지 일반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것을 국회에서 보고한다면 그때에 가서 공개하느냐 안 하느냐 이야기하기로 하고 시방은 우선 이야기를 듣고 어떠한 의원 말이 대개 연락이 있는 어느 방면에서 오는 정보표식이 있다고 해요. 그러므로 시방은 국방부차관의 보고를 듣고 이 회의 공개여부를 결정할 것입니다.

지금 공개하는 석상에서 보고를 듣느냐 그렇지 않고 비공개로 보고를 듣느냐 양론에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이 두 개 다 일리가 있는 줄 아나 다만 이 공개 비공개 문제는 그만두고 장차 앞으로 보고하실 국방부 또는 내무부 책임자에게 이런 한 말을 해 드릴려고 합니다. 일례를 들어 말하면 여수방면에 23일에 완전 탈환되었다는 내무부로부터 8관구 경찰청에 통지한 까닭에 여기에 의지해서 전남의 일반 사람은 다 그런 줄 압니다. 그랬으나 그것은 사실에 위반되는 것이고 그저께야 즉 25일에야 비로소 총공격을 시작한 것을 제가 알고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심을 수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전략상으로 혹 그러한 보도를 하셨는지 알 수 없읍니다마는 그 보도가 아닌 것은 국방부라든지 내무부에서 잘 알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8관구 경찰청에서는 여수에서 들어오는 직접 보도를 듣지 못했읍니다. 모두 전선이 절단된 까닭에 다만 내무부의 통신에 의지해서 그것이 사실인가 짐작했든 것입니다. 그것이 현지에 있는 군인이 내무부 통신으로서 그러한 사실이 그렇게 전해졌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 것을 제가 알고 왔읍니다. 그러면 지금 보고하신 내용이 별로히 공개하지 않는 석상에서 기 비공개리에서 할 사항이 없다고 그렇게 먼저 말씀하신 것을 본다고 하면 우리 국회에 와서 보고하는 데에도 또 인심만 수습하려면 그러한 방도의 보고라든지 또한 사실에 위반되는 보고를 하실려고 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도모지 자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실의 진상을 알으므로서 비로소 우리가 대책을 강구할 터인데 공개할 일이 없다고 공개하지 않는 석상에서 할 말이 없다고 전제하신 것을 본다고 할 것 같으면 적절한 진상을 보고해 주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지금 국방군의 동향이라든지 경찰의 동향이라든지 경찰이 어데까지 치안을 하였다든지 이런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보고해 주셔야 여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점에 대해서 진실한 보고를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을 공개하지 않어야 진실한 보고를 들을 줄 압니다.

지금 보고사항이 아니고 반란사건에 관한 건이라고 했으니까 여기에 대해서 먼저 보고를 듣고 혹 질의를 한다든지 그 건에 대해서 어떠한 대책을 강구할 것을 여기서 생각한다든지 아마 그런 의사 에 들어가지 않는가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보고사항에 끄치는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공개리에서 하느냐 비공개리에 하느냐 이 문제에 있어 가지고 역시 비공개리에 해야만 서로 흉금을 털어놓고 의논해서 좋은 대책을 안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문지상에 보도된 그 정도를 가지고 형식에 불과한 보고를 들을려면 무엇하러 시간을 허비합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급합니다. 그러므로 비공개리에 하기를 여기서 정식으로 동의합니다.

시방 이 의사를 공개하지 말자는 동의가 있는데 재청이에요.

재청합니다.

3청 없읍니까? 3청 없으면 이 동의는 성립 안 되었읍니다.

이제 공개 비공개 문제를 가지고 시간 보낼 필요 없읍니다. 왜 그러냐 하면 육군차관이라든지 혹은 내무차관이 비공개리에서 말할 필요가 있으면 반드시 의장에게 요청해서 의장이 그것을 듣고서 의원 여러분에게 비공개리에 할 말이 있으니까 비공개를 여러분에게 요청할 줄 생각합니다. 지금 책임자가 요청하지 않는 이 자리에서 우리가 공개니 비공개니 해 가지고 시간 보낼 필요 없이 말 들읍시다.

그러면 보고하세요. 지금은 국방차관 최용덕 동지를 소개합니다.
여러분께서 국가의 일을 위해서 이렇게 많이 노력해 주시며 더구나 이번 일에 대하야 걱정하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금 본인이 여러분에게 말씀하려고 하는 것은 역시 시간을 모든 것을 경제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신문에 낸 것과 금번 최윤동 선생께서 말씀하신 이외에 다른 보고가 없읍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저번에 이범석 장관께서 여러분에게 보고가 있었고 그 외에 24일 이후에 대한 일에 대해서는 최윤동 선생께서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면 너는 나와서 무슨 보고를 하느냐…… 여러분에게 말씀한 것은 그것입니다. 두 장관이 속히 돌아오시겠읍니다. 그때에는 두 장관께서 친히 가셔서 비행기로 여러 방면으로서 확실한 사정을 잘 알고 와서 여러분에게 보고해 드리고 그 외에 어떻게 하겠느냐 하는 그 문제도 여러 가지 여러분과 같이 토의해서 여러분의 의결에 따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본인은 이만큼 여러분에게 보고해 드리겠읍니다.

지금 국방부차관께서 나오셔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너무도 섭섭함을 금할 수 없읍니다. 물론 우리 국회에서 나와서 보고를 해 달라고 요청해서 나오셨는지 자진해서 나오셨는지 모르겠읍니다마는 적어도 이 자리에 나오셔서 우리 앞에서 말씀하실 때에는 신문지상에 발표된 그것과 또 국방위원장이 이 자리에 나와서 말씀하신 그 이외에도 우리가 궁금히 생각하는 일도 많이 있을 것이고 그 외에 마땅히 이 자리에서 말씀하실 바가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이 다 한 바이니까 나로서는 더 보고할 것이 없고 국방장관께서 내무장관께서 돌아오시면 보고를 해 올릴 터이니까 그쯤 알어 달라고 한다면 우리가 기대할 바 너무도 억으러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공개리에 보고하기가 어려우면 비밀리에 우리가 공개하겠다고 하는 것을 말씀하셔서 이때로 말하면 우리 국가로서는 너무도 중대한 때이니만큼 오늘날 우리 동포들이 너무도 불안한 가운데에 있는 때이니만큼 한 가지 한 가지를 우리는 진정한 태도로 모든 것을 토의하고 결정하고 나가야 될 때인 줄 압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벌써 여러 달이 지난 이때에 있어서 아직도 모든 인사가 결정이 나지 않고 남한에 있어서는 진공상태에 있는 이때에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 수 있겠읍니까.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 수 있겠느냐. 너무도 현실은 우리들에게 비애와 환멸을 주는 이때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러니까 이 자리에 나오신 국방차관과 내무차관께서는 참말로 책임 있는 보고를 하고 이 보고를 들어서 우리 국회의원들은 새로운 결의와 금후에 정부와 우리 국회와의 관계 우리 동포와의 관계를 참으로 진정한 정도로 조국을 새로히 광명스러운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우리 민족이 살 길이 없는 것이올시다.

내무차관 황희찬 동지를 소개합니다. 시방 여기에 대한 보고 있읍니다. 반란사건상황보고라고 해 가지고 내무부의 서류가 우리 국회에 내무치안위원회로 와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먼저 내무치안위원회 위원장이 여러분에 보고해 드리고 이 점에 관해서 보충할 것이라든지 설명할 바가 있으면 내무부차관이 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방은 내무치안위원회 위원장 신성균 동지를 소개해요.

이미 서류가 정부에서 보고가 온 이상 이것을 한번 보고를 들어 가지고 거기에 따라서 또 보충할 말씀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정부에서도 말씀을 합니다. 우리는 구두로 책임자의 말을 듣는 것보다는 서면으로 온 것을 낭독해서 듣는 것이 책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의장 말씀에 의지해서 보고한 것을 읽겠어요. 반란사건 상황보고 내 무 부 대한민국국회 내무치안위원장 귀하 10월 26일 현재 상 황 보 고 一. 기인 급 배후관계 1. 기인 한국의 국제승인 문제가 유엔에 상정되자 남한정부의 전도 파괴를 목적하고 공산좌익계열의 선동 음모 하에서 소련혁명기념일을 계기로 실지적 행동을 전개코저 음험한 몽상을 해 오든차 차계통의 관련자이며 직접 수모급 인 오동기는 제14 연대장의 직에 취임한 후 예하 장병에게 가장 교묘한 수단방법으로 반란을 사주 선동 중 전기 오가 최능진을 주모로 한 혁명의용군에 관련 체포되자 음모계획 탄로를 은폐하야 혁명 야기를 달성코저 오의 심복 동지로 흡수된 소위 대내 첨예 과격분자 약 40명이 주동이 되어 10월 19일 오후 9시를 기하여 제주도 파견명령을 수하고 대기 중인 대원의 기피심리를 이용하고 감언이설로 전세를 획득하야 반란을 야기하였음. 2. 진상 오동기의 후임으로 보임된 박승훈 중령이 투숙 중인 여수호텔에 거 10월 17일 하오 9시경 오 연대장과 동히 음모 계획하든 모 장교 1명이 출현하야 「연대장 죽인다, 이놈 나오너라」고 고함치는 대성에 박 신연대장은 주인실로 피신하야 군기대 에 전화연락하였든바 군기대원이 즉시 출동 제지하였으나 상대자가 상관인 장교이였으므로 차 를 강력조치 못 한 사실이 유하였으며 일방 반란을 기도하고 있든 차 국방부에서 여수항을 경유하야 제주도에 보급할 군용품 집적을 기화로 10월 19일 하오 9시경 약 40명의 반군분자가 주동이 되어 횡단적으로 반란을 야기하는 동시에 반도봉기를 저지 반대한 장교 수명을 학살하고 전기 군용물자 급 무기고를 점령한 후 대량의 무기 급 탄약을 완전 확보하고 차에 부화뇌동한 2500명의 반군은 동일 하오 11시 30분경에 여수읍내에 침공하야 경찰기관을 파괴하고 치안을 교란케 하는 동시 전 권세를 장악하기 위하야 선착으로 여수경찰서를 습격 무자비한 살육을 감행하야 동 지방을 혼란케 하였으며 은신 외피중인 공산좌익계열은 승기득세하야 약탈, 방화, 살인, 능욕의 만행을 자행하였음. 3. 배후관계 전후정보와 사실을 종합하여 차는 최능진 오동기 등이 수모로 된 혁명의용군과 좌익계열의 선동에 관련됨이 확실함. 二. 전투경과 일반 1. 10월 20일 오전 3시 여수경찰서를 습격 점령한 반란군은 중과부적의 상태에서 여세를 흡수하야 동일 오전 5시 2000명 정도가 순천행 통근열차를 징발코저 철도경찰지서를 습격 저항 방어하는 지서원 16명을 납치하야 동일 오전 6시경 열차를 강요 징발한 후 순천으로 진출함으로 제8관구 경찰청장은 부청장 수사과장으로 하여금 순천서 관내 주암지서에 작전본부를 설치코 반군의 진로를 좌절 섬멸케 하며 1방 232명과 경찰관을 동원하야 국군 200명과 순천읍내에서 공동 방비의 비상조치를 취한 후 급박하는 정세에 대처코저 경찰 급 상권을 발동시켜 철도선로를 파괴케 하며 증원부대 82명을 파견하여 사력을 다하였으나 형세는 불리하여 경찰서장 이하 전원이 최후 순간까지 분투하였으나 장비가 저약하고 중과부적으로 오전 9시 30분부터 교전 끝에 하오 5시경 순천서는 반도에게 완전 점령당하였음. 반도는 승천의 여세로 순천 우익요인 경찰관 가족을 살해 학살하고 순천서, 군청읍사무소, 전기회사, 은행 등 금융기관을 완전 접수한 후 인민공화국 국기 급 간판 등을 게양하고 자칭 계엄령을 발포하여 당지 재판소를 인민재판소로 개칭하여 순천검사국 국장 박창길 검사를 재판관으로 하야 학살 약탈 등의 만행을 감행하였음. 2. 우수한 장비와 다수의 반도는 2방면- 에 분로 진출하야 동월 21일 오전 2시경 순천서 관내 별량지서 별교서 관내 오성지서를 각각 점령하였으며 특히 오성지서에는 경찰관 30명을 나체로 총살하는 등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으며 일방 동일 오전 8시경 광양경찰서에서는 진출을 예기코 후방에 철수하였으므로 동 시간에 점령하였음. 동일 하오 4시 30분경 벌교서를 점령한 후 벌교방면에서는 고흥 우 는 외서방면으로 보성방면에서는 장흥 우는 화순방면으로 패퇴하였고 북상 반도는 순천읍에서 학구를 경유 구례․곡성 방면에 진출 동일 하오 10시 구례서에서는 후방으로 철수하였으므로 점령당하였음. 3. 구례지구를 점령한 반도는 곡성방면을 진격하였으나 경찰과 국군의 방비강력하야 여의치 못하고 10월 22일 오전 6시에 지하야 곡성서를 점령하고 남원에 달하는 진로를 개척할랴 기도중이였음. 三. 현재 상황 1. 여수에 잔류한 경찰과 국군은 합력하야 10월 21일 해상으로 일부 내원한 국군과 동히 동일 상오 3시 여수서를 탈환하였으나 현재 피아 교전 중이나 국군이 계속 상륙중임. 2. 광곡방면에서 내원케 된 제12연대 국군과 기계화부대 급 일부 경찰관 부대는 10월 22일 하오 6시 반 순천을 완전 탈환한 후 치안 사태수습에 노력하고 있으며 경찰대 233명은 순천국민학교를 근거로 사후 처리에 진력하고 있음. 3. 보성․벌교방면 10월 20일 당부에서 파견한 응원부대 500명 중 238명은 보성 방면에 주력진을 포진하고 국군과 합동작전하에 10월 24일 12시 반에 완전 탈환하였고 동일 13시 50분에는 벌교서를 완전 탈환하여 각각 경비전화 개통케 되였으며 경찰사무 개시 중임. 10월 23일 이래 통신 두절된 고흥서는 국군기계화부대 공격으로 완전히 10월 25일 상오 10시에 탈환하여 반도가 광주에 지할 유일의 진격로인 보성방면 일대는 완전 아방의 제권하에 있음. 4. 광양방면 반도가 지리산에 도피 잠입할 유일한 패퇴로인 광양․하동 방면은 전세 불리로 운집한 반도가 대거 공략전을 전개하였으나 하동에서 내원한 제15연대 병력과 제7관구청 경찰부대의 방어 저지로 섬진강을 중심으로 대진 교전한 결과 후방 공격대의 진공으로 10월 24일 17시 20분 광양서를 완전 탈환하자 반도 약 1000명은 진로를 반전코 백운산을 향하야 도피 중이며 지리산에 입거를 극력 노력 중이나 국군 급 경찰의 작전 기정방침에 의하야 차의 목적달성은 난관이며 반도는 부득이 서남에 퇴각할 공산이 허다하오나 차 방면에 대한 방어 급 섬별전에 극력 배려 중에 있음. 5. 구례․곡성방면. 반도는 북진의 일로인 보성방면로를 상실하고 더욱 지리산 입거의 요로인 동로 하동방면도 진출 불능인 관계상 유일한 퇴각 급 북진에 대한 진로인 구례․곡성방면에는 반도가 최후의 발악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백운산 방면으로부터 약 1000명의 반도는 구례를 정공하야 10월 26일 상오 9시에는 구례서를 점령하였으며 북진의 기세가 농후함. 우와 여히 여수를 위시로 각 지구가 탈환은 되었으나 그 후 해 지구 근교에서는 소탕전이 전개되고 있으며 국부적인 전투가 근절되지 않고 있음. 더욱 적은 각 지구에서 거액의 현금 과 물품을 약탈하야 지리산을 근거지로 제2 제주화하랴는 기도하에서 북부 구례에 최후적인 진공을 개시하고 있으며 패전된 일부 반도는 분산적으로 유격전을 감행하고 있으므로 북의 진압에 격단의 노력이 요함. 특히 당부께서는 제2선 치안수습과 탈환지 치안복구에 10월 20일에 500명, 10월 26일에 300명을 각각 현지에 파견하고 있음. 四. 전과 급 피해상황 A. 아 측 1. 순천방면 경찰관 전사 11명 피 살 175명 1. 보성방면 경찰관 전사 5명 행방불명 20명 피 살 39명 양민피살 15명 기타지구 미상 B. 적 측 1. 순천방면 포로 1000명 이상 카빙총 포획 48정 M1총 포획 09정 99식장총 포획 137정 2. 보성방면 포로 30명 기타 미상 내무부에서 국회내무치안위원회에 온 보고는 …… 문서보고는 이상 낭독한 것 같읍니다. 아까 내무부차관과 상의한 결과 그 후의 전과와 그 후의 자세한 것을 보고하겠다 하니까 저는 이 보고만 낭독합니다.

보충말씀 있으면 말씀해요. 내무부차관 황희찬 동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이제 신 의장께서 보고한 것이 오늘 아침 6시 30분에 들어온 보고에 대한 현지 상태입니다. 제가 거기에 보충할려고 하는 것은 내무부로서 그 보고를 받고 조치를 어떻게 한 것인가에 대해서 간단히 보고하겠읍니다. 이 사태가 발발한 후 2일 오전 6시 20분경 저에게 보고가 들어왔읍니다. 그 즉석으로 국방부에 연락하는 동시에 각 관구에 명령을 내려서 비상계엄을 시작하라는 그러한 명령을 각 관구에 전달했읍니다. 전달하는 동시에 본부에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여기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결과 본부에서 500명을 응원대로 파견하게 됐읍니다. 그것이 다 준비되어서 곧 500명은 경성역을 출발했읍니다. 그 후 본부에서는 일선에서 쌈하시는 여러분에게 물자공급을 시작하게 되었읍니다. 제일 많이 요구한 것이 경찰로 말할 것 같으면 무기가 대단히 적었든 관계로 무기 없으면 쌈할 수 없다는 관계로 여기에 무기공급을 적극적으로 실행했읍니다. 아시다싶이 한국에 무기공작이 없는 관계로 우리 경찰로 획득했든 무기가 충분치 못함으로 우리가 원하는 바의 무기를 완전히 공급 못 한 것이 지금까지의 현상입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물자는 우리가 구할 수 있는 한도까지 내려 보냈고 어제 저녁 다시 300명을 전라남도 광주로 파견했읍니다. 그와 동시에 본부에서는 여기에 대한 구제와 위문과 특별한 조사가 필요한 관계로 어제 저녁 300명 파견하는 데 위문대와 같이 보도반, 구호반 40명과 오늘 아침 보도반 8명이 현장에 출동하고 있읍니다. 앞으로에 있어서 위문대를 여기서 파견할 작정으로 현재 상무부로 연락을 해서 광목과 고무신과 특별히 반란군에게 여러 가지 약탈을 당한 양민과 관공리에 대해서 위문품을 내려 보내기로 준비 중에 있읍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내일 아침이나 모레 아침에 위문대가 내려갈 작정입니다.

앞서 외무국방 또는 내무치안위원장께서 말씀이 계셨으니까 저로서는 거기에 자료는 없읍니다마는 그간 소위 내무치안 간사로서 또는 주사로서 여기에 다녀왔든 몇 사람이 부탁이 있어서 정보를 듣고 또는 될 수 있으면 사정을 정확히 알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론 저이로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을 축소할려는 분들도 있겠지마는 우리 요구는 정확하게 사실 그대로 보고해 주기를 우리가 요망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여기 통신기관 또는 내무치안 관계에 있어서 그만큼 부합되느냐 하면 부합 못 되는 점도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자 제가 지난 일요일 잠깐 위원장이 안 계시기 때문에 내가 실지에 남한 등지 광주를 들러서 올랴는 그러한 의도하에서 내려갔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주를 들렸어요. 그랬드니 전북경찰청장이 지금 현지에 나가 있으니까 오늘 밤중까지 돌아올 것이니까 사실을 듣고서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그런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이튿날 전북경찰청장을 만나서 대강 지금 전라북도 경찰응원대가 순천 전면의 주안에 가 있다는 자세한 얘기를 하고 여기는 순천서 70리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광주로 돌아가는 것은…… 현지에 나가는 것이 대단히 위험하니까―교전상태 중에 있으니까―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서 보고만 듣고 왔읍니다. 전부 내가 보고를 가지고 와서 이것을 국회에 또는 의장에게 보고할려는 생각도 있었읍니다마는 대강 내무 또는 국방에서 말씀하는 거기에 무어 별로 차이가 없으니까 더 사족을 부칠 것은 없으나 지금 이런 것이 있어요. 구례가 벌써 저쪽서 접수된 것은 1일 전이올시다. 여기에 아까 말씀한 그것은 그 날자가 틀려요. 날자가 하로 틀린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또 백운산으로 들어갔다는 것이고, 백운산으로 들어갔다는 그 날자보담도 하로 전입니다. 그래서 그것도 틀립니다. 벌써 들었어요. 실지 탈환한 물자라든지 돈이라든지 식량 같은 것은 전부 60개의 트럭을 가지고서 벌써 백운산 산록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고 광양 일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광양서장이라는 그것을 듣고 왔읍니다마는 광양서장이 하동으로 도망갔다가 잡혓다는 것은 사실이여요. 그리고 광양서 지서장 최학년이라는 사람이 서울로 왔을는지도 모르겠읍니다마는 전부 가족이 살상된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고 전부 진공상태입니다. 하나 남어서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 외에 곡성지방에 여기서 내가 듣기에도 한 300여 명의 일반 민중을 학살했다는 것을 듣고서 내려갔는데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에요. 그러나 이것은 전라북도 경찰청장으로부터 들은 말씀입니다마는 곡성지방에 경관으로서의 경비상태가 없어요. 그래서 전라북도에 내려간 응원대가 각처에 있어서 수비를 하는데 이쪽에서 쌀을 전부 실고 갔어요. 그리고 그 지방에 있는 경찰관은 전부 사복을 하고 전부 자기 가족을 다 내보내고 혹은 총을 가지고 다닌대야 좌쪽으로 모였는지 우쪽으로 모였는지 모르게 된 현상이여요. 그리고 도저히 전라남도 경찰청하고 연락해야 연락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소위 서장 되는 사람이 사복 입고서 전부 피해버립니다. 나종에 붙잡어서 「정복 입으라」고 해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나 전부 실신상태에 있읍니다. 그래 가지고서는 역시 내무치안에 관계되는 한 사람으로서 안 되었읍니다마는 서로 연락이 되지 않어요. 그래서 전라북도 경찰응원대가 전부 후퇴를 하게 되었읍니다. 곡성․구례까지 나갔든 사람이 후퇴하게 되었읍니다. 섬진강 상류가 있는데 바로 적성강이 있어요. 그래서 금지에까지 후퇴하라는 명령을 하고 왔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리고 지금 전라북도 응원대로서 제일 가까히 들어간 사람이 백 경감이라고 있읍니다. 그래서 순천서 70리 되는 주안…… 여기서 광주로 들어가는 곳인데 거기에 보급부대가 없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고립상태에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이만큼 혼란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여러분이 실지로 알어 두셔야 돼요. 그래서 나는 전라북도에 있다고 해서 전라북도 경찰 운운이 아니라 실제를 여러분이 알어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저께 군산서 또는 현지에 응원부대가 들어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얼마든지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인데 막지 못한다는 것이 한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제가 말씀하는 것은 될 수 있으면 제일선에 나가서 수비하는 그분에게 물자라든지 그런 것을 얼마든지 보급을 해주셨으면 좋지 않을까, 나는 그것을 국회에 여러분에게 요청하는 것이고 또 정부에 요청하는 것입니다. 또는 전선에 가서 비참하기 짝이 없는 그분에게 응원을 해 주어야 되겠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특별히 부탁하는 바이올시다.

시방 정한 회의의 시간이 12시 되었읍니다. 그러니 우리가 다시 작정하지 않는 한에는 종전에 해 내려오든 대로에 12시까지 하고 새로 2시에 다시 개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회의를 중지를 하고 하오 2시에 다시 계속해서 개회하기로 합니다.

자리를 정돈하세요. 아직도 반수는 못 되었읍니다마는 시간이 지난 까닭에 우선 논의를 시작하기로 합니다. 당장 우리가 통과한 것이라든지 무슨 결의할 것이 없고 의견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니까 …… 그리고 오늘 하오시간은 본 의장의 생각으로는 우리 회의시간에 관한 결정을 먼저 의논해야겠어요. 본래 여태까지는 상오 하오 계속해서 해 내려왔는데 이 앞으로는 상당한 시간을 경과한 이후에 또 얼마 동안 한기휴회가 필요할 줄 생각하고 있읍니다마는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개회를 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다 아시다싶이 상임위원회의 활동이 활발해야 본회의에서 일이 그대로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니 본회의하고 상임위원회하고를 시간을 서로 나노아 가지고 일이 잘 되도록 회의시간을 잘 의논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시방은 99명 출석하였으므로 정식으로 개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