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오랫 동안 뵈옵지 못하고 있든 처지에 오늘 아침에 다시 이렇게 만나뵈이니 특별히 반갑읍니다. 우리의 일행은 3월 18일 토요일에 본국을 떠나서 4월 15일 토요일 날에 본국에 돌아왔읍니다. 계산하여 보니 하루도 틀림없는 4개 주일이라는 시간이올시다. 내가 기억하건데 본국을 떠날 때에 말로 약속한 바 4주일 동안은 허비할 듯하다는 말을 그대로 틀림없이 실행했다고 하는 것을 보고하여 드립니다. 보고에 있어서는 나로서는 대략의 보고를 구두로 우선 오늘 말씀하여 드리고, 그중 약간 점을을 수습해 가지고 서면으로 다시 정리한 뒤에 인쇄해서 여러분에게 드릴려고 합니다. 오늘 내가 말씀할 범위는 극히 대체에 관한 말씀에 끄치기로 하고 또 약간 부분에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이훈구 의원과 나용균 의원 두 분이 보충하기로 하고 또 여행일정에 관해서는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했다고 하는 자세한 보고는 사무총장으로서 보고를 드리기로 하겠읍니다. 우선 내가 보고를 드릴 말씀은 이번에 우리들이 대한민국 국회의 방미위원단이 우리들의 목적의 대략은 세 가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우리 국회에 결의에 의지해서 우선 제1회 목적이 미국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방문을 대상으로서 과거에 우리나라에 원조해 준 일에 관해서 또한 국민의 대표인 자격으로서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일, 과거의 원조에 관한 사의를 표하는 데에만 끄칠 것이 아니라 장래에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원조를 해 달라는 요청 약속의 등등이 제일 우리의 이번 미국을 갔든 목적일 것입니다. 이것은 성문으로 기록에 남어 있거나 말거나를 물론하고 우리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할 때에 우리 의원 동지들이 꾀하지 아니하고 같이 갔었고 일치한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비단 상․하 의원인 국회만을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미국의 당국을, 행정당국을 또한 방문해서 우리에 관한 감사와 장래도 계속해서 원조를 해 달라고 하는 것을 청할려고 하는 것도 거기에 달려있는 것은 또한 당연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우리 위원단의 목적인 것이고, 둘째의 목적은 미국을 방문한 좋은 기회로써 뉴욕 혹은 레이크썩세스에 있는 유엔총회를 방문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건립된 이래로 제1차 우리 독립을 승인해 주고 계속해서 우리 대한민국의 일체를 지지해 주는 이 유엔총회 이 크럽에 대해서 우리는 또한 과거에 대한 감사도 표시하려니와 장래에 대한 부탁도 하는 것이 우리의 둘째로 가졌든 목적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국회에서 제기되지 않었다고 할지라도 또한 우리 의원 동지 4인들이 한 분도 빠지지 않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째로 부탁된 목적은 미국 각지에 거류하고 있는 우리 동포 동지들에게 오래 동안 조국을 떠나서 고생하고 있는 그분들을 대한민국이 건립된 이후로 국민의 대표격인 우리들이 우선 방문하고 또한 오래 동안 조국을 그립게 지나는 모든 가지 괴로운 것을 위로도 하고 또한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서 모든 가지 충성과 모든 가지의 힘을 다 바쳐서 우리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육성하고 발전시킬 것을 같이 약속하는 일이 또한 부탁된 세째의 목적일 것입니다. 이 일에 관해서는 우리 국회에서 작정한 바는 없었지만 또한 의례히 그자들이 미국에 가면 시간과 기회가 있는 대로 의례히 노력하리라고 하는 것을 허락해 주신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의 임무를 가지고 우리는 지나간 3월 18일에 본국을 떠나서 그대로 계속해서 혹 어떤 때에는 비행기를 바꾸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기름을 좀 넣어 가지고 계속해서 그 비행기로 날기를 계속해 가지고 3월 20일 밤중에 화성돈 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을 계산해보니 55, 6시간을 허비했는데 잠시 내려서 식사를 한다든지 혹은 휴식을 한다든지 하는 시간을 한 세 시간 남짓한 시간을 제한 외에는 계속해서 비행기 우의 몸이 되었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보통 사람의 경험으로 말하면 자주 받지 않는 경험인 까닭에 퍽 피곤하고 퍽 괴로웠었지만 그래도 본국을 떠날 때에 한 시간 바삐 미국 화성돈에 도착해야 되겠다는 이 초조한 심리인 까닭에 일체를 다 잊어버리고 그대로 화성돈까지 갔든 것입니다. 다른 이의 의견이나 또는 서북항공회사의 의견은 너무 이렇게 계속해서 여행하는 것이 불편할 것이니 혹은 하루든지 하루밤이든지 좀 쉬여서 가는 것이 좋지 않으냐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 일행을 괴로움이 있다고 하드라도 한 시간 바삐 화성돈에 도착해야 되겠기 때문에 그대로 가게 해서 그대로 갔든 것입니다. 시방 우리가 본국에 돌아온 뒤로 의원 동지들이 면대해서 볼 때에 얼골이 더 나졌으니 대단히 기쁘다는 고마운 인사의 말씀을 듣고 있지마는 그 여행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아마 우리 일행 네 사람은 다 자기가 평소에 가지고 있든 면모를 그대로 지지하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든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 특별히 제기해서 말씀드릴 것은 우리의 경애하는 나용균 의원이 하마트면 아라스카 한복판의 사람도 없는 기가 맥힌 군데에서 영구히 우리가 작별하지 않을가 하는 위험까지 있었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화성돈에 도착된 것이 20일인데 실제로 우리들이 일을 시작한 것은 22일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미국의 상원, 하원의 의장을 방문하기로 하고 또 따라서 국무성에도 연락도 취해 가지고 이것을 개시하게 되었읍니다. 여기에 말씀 하나 드릴 바는 우리들이 화성돈에 도착하기 전 3, 4일 전에 미국 대통령 트르맨 씨가 휴가를 얻어 가지고 후로리다라는 먼거리의 시골로 떠나게 되었든 것입니다. 아모리 긴급하다고 하드라도 미국 사람의 습관으로 휴가기간 내에는 사람을 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휴가기간은 기간대로 쓰는 까닭에 긴급한 일은 대략 통지로 전달하게 하고 사람은 만나지 않는 그러한 형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트르맨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드라도 그 자리를 가야 될 것이며 또 간다고 하드라도 만나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었고, 그래서 휴가가 끝난 뒤에 화성돈으로 돌아오는 것을 기대리자면 20여일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르맨 씨는 만나지 못하기로 작정하고 각 방면으로 활동을 개시하였읍니다. 그래서 23일, 24일 이틀 동안에…… 여러분이 신문이나 혹은 방송으로 대략 아시고 계신 처지이지만 상원의장인 빠크래이 씨는 미국의 부통령입니다. 이분을 만나서 첫째로 상원의 융성한 환영을 우리 일행은 받게 된 것입니다. 정식으로 이와 같은 의사당에 소개가 되어서 우리들이 들어갔을 뿐만 아니라 의원석에 같이 앉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 나라 전례라고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각국의 영수가 오거나…… 혹은 영국의 처칠 같은 이, 인도의 네루 같은 이가 왔을 때에 상원, 하원이 한테 합해서 한 자리에 모여서 특별히 내빈석을 작정해놓고 얘기한 일은 있다고 그래요. 그러나 자기네들 정식 의사당에 외국 손님을 이렇게 맞이는 것을 자기네들 국회 역사 있은 후에 처음이라고 하는 자랑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원석에 소개되어서 앉었을 뿐만 아니라 로버튼이라는 상원의원이 동의를 특별히 하기를, 이런 먼데서 고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우리는 전체 만장이 기립해서 환영하는 표시를 하기를 동의합니다, 이렇게 동의가 제출되었에요. 그래 미국의 국회에서 하는 일도 우리 대한민국 국회에서 하는 일과 별로 틀림없는 것과 같이 보아서 의장이 재청 있는 것을 기대려서 이의 없느냐 묻고 표결에 부치고 그런 결과 아무 이의 없이 그 제의가 통과되었읍니다. 통과된 결과 전체의 상원의원들이 다 일어나서 그 의사당이 무너질만한 우렁찬 박수소리에 우리들도 또한 따라서 일어나서 그 환영을 받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상원의원의 여섯 사람이 다 각각 일어나서 환영의 의사를 표시하고……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그 발언이 끝난 다음에는 부통령이며 상원의장인 뻐크레이 씨가 정중하게 이 귀중한 손님을 맞이한 것은 영광이라는 말과 또 앞으로 우리는 한국에 대한 원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이러한 뜻의 얘기를 다 말씀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러면 상원의원의 그만한 환영을 받었는데 하원의 형편은 여러분 다 짐작하고 계신 바와 마찬가지로 그 의장 레의버이라는 분은 다년 동안 국회 생활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연세도 상당하지만 면모도 잘난 분인데 친히 말하기를, 우리도 하원에서 환영을 할 처지인데 우리는 좀 미묘한 관계가 있어서 상원과 좀 달라…… 만일 이때에 한국의 국회의장 국회의원이 얼굴을 내놓고 우리들이 전체의 의사로 무슨 얘기를 하자고 하면 혹 무슨 그 미묘한 표시가 있을는지 모르니 우리 그것은 고만두도록 합시다, 하는 청을 듣게 되었읍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유리하도록 각 당에 소속한 의원들이 많은 의견을 제출하고 있는 그때입니다. 원조안…… 지나간 연도의 반년도 6000만 딸라의 사건도 한 번 표수가 부족해서 통과가 아니 되었다가 다시 통과가 되었으며, 내년도의 외국 원조안이라고 하는 데에 우리나라 원조안 1억만 딸라까지 포함이 되어 가지고 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곧 본회의에 내놓려고 하든 그 순간이라 말이에요. 그러하니 우리 이것은 고만두고 당신네들이 여기에 온 것을 환영할 뿐만 아니라 또한 예비했든 모든 가지 문건은 제출이 되어서 국회의사록에 등재가 될 것이니 당신네들 노력하실 바는 각 상임위원회를 대상으로 해 가지고 많이 방문하고 토론하고 얘기하시면 대단히 지혜로울 것이라는 의견이였읍니다. 그게 그야말로 우리는 국회 생활이 일천해서 모든 가지의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은 처지이지만 가만이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듯해요.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합니다 그랬읍니다. 그래서 그 즉시로 외교위원회, 극동위원회 또는 우리 원조에 직접 간접으로 관계있는 위원회를 한 서너 군데를 방문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여기는 역시 우리 분과위원회라는 데에는 혹은 30명, 40명이 한테 모여서 회의하는 한 장소밖에 지나지 못하는 우리 형편이였지만 그 사람들의 국회의 건물의 설비라든지 사무하는 처소, 회의실 모든 가지 설비는 우리에 비교가 되지 못할 만한 완전한 처지이니 만큼 각 위원회를 들어가보니 각 위원회가 우리 본회의하는 의사당만 해요. 설비가 완전하고 처소가 다 모도 완비하게 되어 있는데, 어떤 위원회에서는 회의를 하다가 한국 국회의원단이 왔다고 하니까 회의를 중지하고 그대로 그 자리에서 환영을 해서 위원장 자리에 같이 나라니 본 의장을 앉치고 각 위원들이 앉는 자리에 우리 의원들이 똑같이 앉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환영을 한다는 등 기념촬영을 한다는 등 그렇게 얘기가 되고 또 관계있는 몇 분들은 휴게실과 같은 옆의 방에서 당장 회의하다 말고 임시 휴회를 하고 같이 모여 가지고 실제 문제를 서로 얘기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한 가지 특별히 제기해서 말씀드릴 것은 지난 번 6000만 딸라 사건에 반대의사를 표시했다고 하는 의원들 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을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되어 그들의 심개 와 생각을 어떻게든지 우리를 돕도록, 반대의견을 갖지 않도록 우리가 설복해야 되겠다고 하는 그러한 신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 이 의장이라는 사람은 좀 교제에는 결함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의장의 우세를 썼읍니다. 내가 이 자리에 들어오니 손님이 어떠한 서투른 자리에 들어갈 감지 도 없고 당신네나 내나 다 같은 국회의원이다. 이러한 감지로 봐서 나는 내 국회에 들어온 것 같다. 그나 그뿐만 아니라 여러분 아시다싶이 나는 의장이라, 그래 나는 당신네 의장과 같은 감지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했읍니다. 그거야 괜히 엉터리지 나는 의장도 아니고 의원도 아닌데 의장을 한다고…… 그나 그뿐만 아니라 그 반대하는 이유가 어데 있느냐 하는 것을 솔직하게 들어서 이야기하는데, 중국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었읍니다. 동방에서 원조의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고찰해 보면 중국일 텐데 중국에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한국만 도와준다고 하는 것은 그렇게 타당치 못하다고 하는 의견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데 그 가운데에 한 사람이 이름이 쩨드 데이 유. 디. 디. 이분은 중국에 가서 30년 동안 선전을 한 사람이라고 그래요. 중국말을 중국사람 이상가게 굉장하게 잘 한다고 자기가 자랑해요. 그래 그 이야기를 들은 것을 잡어 가지고 나도 중국에 있었는데 우리 중국말로 좀 하자고…… 그런데 그분은 찬성하지 않는 사람으로 비상히 유력했든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앉었다 말고 일어서서 중국말로 강연을 시작했읍니다. 그러니까 옆에 앉었든 5, 6명의 의원은 눈이 둥그래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를 수밖에…… 그런데 쩨드라고 하는 사람은 비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또박또박한 이야기를 자기가 통역해서 자기네 의원들에게 들여주고, 나중에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내가 중국말을 잘하는 줄 알었드니 당신 앞에는 명함도 못드리게 되었다고 그래요. 그래 가지고 결론이 무엇인고 하니, 사정을 잘 알었다고, 우리가 중국에 오래 있었지만 한국 사정은 잘 몰랐어서 관련성이라든지 모든 것으로 봐서 당신네 말을 잘 듣고 알었노라고…… 어지간히 몇몇 사람을 설복시켜노니깐 우리의 의사는 완전히 발표되었든 것입니다. 이러한 등등 몇 위원회의 위원들을 방문하고 비교적 우리가 바라는 바 또 우리가 주장하는 바, 미국이 원하는 바 모든 것을 완전하게 이틀 동안 이야기가 다 되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다음날은 또한 우리 위원단을 환영한다고 하는 의미로 우리 대사관의 주최로서 무엇이라고 합니까. 다회, 칵텔 파티를 이것이 열리게 되었는데 모든 중요한 관계에 있는 이들이 많이 참석하게 되어서 청첩을 발한 수효와 거이 틀리지 않게 다수의 사람을 뫼시고 또한 한 자리에서 한담하고 그렇게 지냈든 것입니다. 그래서 화성에 가서 상․하원 국회를 대상으로 우리들의 생각했든 일은 극히 짜른 시간에 그만 끄치고 국방성 책임자인 애치손 씨를 만나서 비교적 오랜 시간을 이야기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무슨 우리 원조에 대한 감사, 장래에 반드시 계속해서 우리를 원조해 줄 일이라고 또 우리 국회에서 미국 국회의원들이 왔을 때에도 여러분을 대표해서 나로서 여러 차례 의사를 발표한 내용과 같이 사람이 남의 도움을 받을 쩍에는 고맙다고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천조자조 의 원칙에 의해서 우리가 할 일을 우리가 하는데서 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또 따라서 우리 사람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돕는 것이다. 우리는 불면적 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고 우리가 고맙다, 당신네 도움만을 우리가 받는다고 하는 염치없는 표시가 아니라 특별히 애치손 씨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데에, 우리의 인류생활은 호상부조라고 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한국으로서 미국의 경제원조를 받어 대단히 힘차지만 우리로서는 정신적으로 미국을 돕고 미국을 위해서 일한다 하는 것을 이야기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튼 잘못 알아듣고 한국이 미국을 돕는다고 하는 것을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 뜻의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설명하게 된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시방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두 가지의 같지 안한 주장이 서로 대립하고 싸우고 있는 세계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로 대립되고 있는 이 세상…… 한국은 비록 지역이 적다고 하드라도, 인구가 적다고 하드라도 본방에 있는 제일선에서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유일한 힘 있는 보루다, 뿌럭이다. 미국의 원조를 받어 우리는 우리 본신도 유리하려니와 한국 사람은 있는 힘과 있는 피를 다 내서 비민주주의적 악세력하고 악전고투를 할 수 있는 이 사실은 물론 한국이 스스로 자존하자고 하니까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틀림없지마는 이 사실이 우리 민주주의의 대본영인 미국을 돕는 것이며, 이것이 한걸음 나가서 전 세계 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돕는 일이다 하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힘 적은 사람이 자기 힘이 많이 있다고 주장하는 감지도 없지 않어 있지만 우리들의 신념과 우리들의 각오도 틀림없는 까닭에 힘차게 이야기하게 된 것입니다. 그 애치슨 씨도 대단히 좋다고, 우리가 과연 당신네 의견에 동의한다 이런 의견을 서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언제나, 내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해야 옳은지 그른는지 몰라도 잠간 말씀드릴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방위하는 선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선 안에 들어야 된다는 말씀을 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니까 그분은 내가 이 책임 있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책임이 있으니까 그러겠다 안 그러겠다 표시는 없었지만 극히 기뻐하는 표정과 동정하는 이러한 표시로서 웃으면서 그대로 내 말을 듣는 것을 나는 보았읍니다. 그러면 이것이 와신튼에서 우리가 지내내려온 간명한 보고입니다. 다음은 원래 우리가 예상하였든 비행기표가 왕복의 표인 만큼 그대로 와신튼 갔다가, 와신튼을 떠나서 뉴욕을 쑥 돌아오게 된 것이지만 다만 그 짜른 기간에 와신튼과 뉴욕 사이에는 원래 작정하기를 기차로 이용해서 가기로 마련되었든 것이올시다. 그래서 기차 타고 뉴욕에 가게 되니까, 뉴욕에 가서는 뉴욕시장의 정식으로 초대하고 보호하는 그러한 절차도 우리가 받었지만 기외의 뉴욕시의회는 역사적으로 보아서 와신튼이 제일인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든 때 뉴욕시의회라는 그 건물이 비상한 관계를 가진 역사적 건물입니다. 여기에 유명한 함밀튼, 제프손 모든 가지의 미국의 독립운동의 숭로 를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이 쓰든 책상이 그 건물안에 보존되고 있는 그것을 보고 그것도 그것이려니와 둘째 목적인 레이크썩세스에서 유엔총회 의장인 로무로 씨를 만나서 반갑게 인사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얘기를 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미국의 중견 대표로 가서 우리 독립을 승인할 때 비상한 분투 노력을 하든 떨레쓰 씨, 지금 현재의 중견 대표로 있는 오스듼 씨, 그 외 유엔 사무부총장 고대이쓰 이분 외 몇 분을 만나서 우리의 말하는 한국 독립을 승인해 주는데 감사하다는 말씀과 계속해서 한국을 많이 원조하고 지지해 달라는 부탁은 더 말할 것 없거니와 레이크썩세쓰에서 말한 중요한 골자는 한국을 하루 빨리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시켜라, 가입이 되도록 여러분이 노력해야 될 것이다 이 점이였든 것입니다. 우리들이 얘기한 말을 유엔총회가 만일 지나간 시간의 용두사미로 그것을 마친 국제연맹으로 변하지 않을려고 하면 반드시 우리 대한민국을 회원국으로 가입시켜야 된다 이렇게 주장했든 것입니다. 소련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비토 권리를 쓰고 있는 것을 우리들이 잘 알고 있지만 정의는 반드시 최후의 승리를 갖게 되는 것이고, 불합리하고 폭악한 정치는 언제든지 찌그러지는 것이다 이러한 이 얘기를 우리는 할 때 일례를 들어서 겨울에 눈이 와서 많이 쌓여진 눈이 얼어붙으면 대단히 차고 거북하지만 태양이 나와 비치면 더운 바람을 씨울 때는 다 녹아진다 이러한 의미를 이야기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다 자미있는 표시로 이야기를 하니 자기들도 최후의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는 말을 하게 되고, 심지어는 눈이 녹기는 녹지만 높은 산에 눈은 조곰 늦게 녹는다, 하니까 좀 시간이 걸여야겠오. 또 그나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 이야기가 되는 말이에요. 내가 이 자리에서 공개해서 말을 해도 별 무슨 관계가 없을 줄 압니다. 유엔 헌장 반드시 좀 마련해서 고쳐야 되겠다는 의견까지를 말하고, 그들도 대단히 찬성했에요. 비토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것을 서로 그만큼 이야기된 것입니다. 로무로 의장으로 말하면 여러분이 여기서도 대강 아시고 계십니다마는 이 분은 비율빈에 혁명운동자의 하나로써 나이는 많지 않어 한 40여세 된 이인데, 많이 노력을 하고 내려왔든 분인데 앞으로 유엔총회에서 뿐만 아니라 자기네 본국에 유망한 정치적 장래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하는 것을 거기에서도 다 알게 되고 그랬읍니다. 오다가 비율빈에서 오래 동안 지난 맥아더 장군께서도 로무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러면 레이크썩세스에서는 이만큼 이야기가 되었는데 여기 한 가지 삽화 로 말씀드릴 것은 여기 저기 가볼 때에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보다 몇 갑 이상 가게 빠르고 또 정비하게 되어 있었다고 하는 데에 언제나 부럽다고 하는 것보다도 찬막 한다고 하는 것보다도 자기를 표준잡고 늘 생각하는 만큼 어떤 때에는 불쾌를 느끼고, 불쾌를 지나가서 증오를 느끼고 이런 때가 많읍니다. 미국 전체에도 그렇지만 유엔에 갈 것 같으면 그런 일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일행이 유엔총회에 들어서자마자 한 3, 4분이 지났는데 소식이 막 전해지는데 한국위원단이 미국을 찾어왔다가 레이크썩세스를 찾어왔다고, 멤버는 누구누구라고 하는 것이 인쇄를 해 가지고 쫙 돌렸다 말이에요. 한 3분이나 5분 안이리다 이것을 알아가지고 소위 푸레스 콤프렉스라고 하는 각국에 신문기자에 포위를 당하게 되었는데 결국 유엔총회에는 70여개 국가에서 기자가 언제나 한테 모여서 웅성거리고 돌아가는 그 군데입니다. 한국위원단이 왔고 하니까 종을 가서 뚜드려 가지고 임시로 모이는데 한 30여명이 들어붙어 모였다 말이에요. 그러고 여러분이 아시다싶이 그런데 기자단들은 국제적 참 기자들인 만큼 또 유엔총회에 출입하는 각국에 인물들은 그 기자들에게 어떤 값을 다 작정하는 것을 받고 지나는 처지일 것입니다. 그만한 좀 꺼림직한 거북한 그런 크릅들인데 한테 모여 가지고 우리들을 부뜰어다가 한태 놓고 얘기하자, 그래 얘기하자, 그래 우리의 목적을 그대로 쭉 얘기하고 유엔총회 감상을 이야기하고 그대로 쭉 얘기했읍니다. 그러니까 뒤에서 수군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한국 국회의장은 대학교수다 그럽디다. 얘기하는 것을 듣고 나도 학교에 좀 선생 노릇을 해 보기는 해 봤지만 유엔총회에 가서 기자들에게 대학교수라고 하는 별명을 듣게 된 것이 도리혀 영광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묻기를, 한국 현상이 어떻냐…… 불행하지만 우리가 와신톤을 떠나서 뉴욕으로 온 뒤에 어떤 신문에 미국에 관방보도라고 할까 오피시연 리포트라고 하는 동방에 각국의 정황을 간단하게 두어 마디씩 등재가 되었는데 한국에 대한 보도가 두어 마디 말로 등재가 되었든 것이 사실입니다. 비로서 우리가 뉴욕에 와서 그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무엇이라고 했는고 하니 한국정부는 독재적 경향이 있고 무능력하다 글자 두 자입니다. 딕태이토싶 엔드 잉콤페탠트 이 말을 들은 것은 대단히 분개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어데서 나온 소견이냐, 오피시야 리포트라고 하는 미국대사관에서 나간 소견이냐, 제섶 방면으로 나간 소견이냐 알어본 결과 어데서 나왔는지 몰라요. 아마 기자들이 그런 재료를 가지고, 더욱히 어떤 모 기자가 미국 어떤 모 신문에 본국으로부터 나가는 통신에 우리들 동정하고 우리에 있는 현상 그대로 전해지지 못하는 경향이 약간 있었다고 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관계되는 신문사장을 만나서 이야기할 때에 나는 한국 사람으로 한국을 위하느니 만큼 그런 말이 없도록 노력을 좀 해 줬으면 어떻냐 하는 부탁을 한 정도입니다. 그래 그런 것을 가지고 기자들이 물은 것 같에요. 그래 내 이야기 간명하게 했읍니다. 대한민국은 글자 그대로의 민국이다. 우리 일체는 민주주의 지향에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새로운 어린 민주국가인 만큼 조직과 훈련이 그렇게 완비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민주국이고 우리 생활은 민주생활이다. 끝으막에 내가 붙쳐 말하기를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네들이 한국의 정황을 내 말로 믿엄이 안 생기거든 한국을 가서 보아라 그렇게 막었읍니다. 그러니까 자기네들 더 다시 이야기할 바가 없겠지요. 중국에 관한 이야기를 또한 하게 되었는데 중국의 국면은 또한 변할 것이요. 국면이 변할 때에는, 장개석 씨가 비교적 많은 노력을 하게 되리라 하는 말을 나는 했읍니다. 그러니까 이야기 여기서는 더러 못들었는데 그런다 말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아시요 하기에 내가 중국에 있기를 30여년을 있어 중국에 사정을 알기를 중국 사람만 못지않게 아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봐서 중국에 공산사회가 건립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중국에 있어서의 절대 다수의 인기가 장개석 씨에게 신탁 여하라고 하는 것은 그대들이 여기서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 이런 이야기를 했읍니다. 이런 등등에 이야기가 레이크썩세스에서의 간명한 경위일 것입니다. 시방 이야기한 몇 가지를 들어서 미국에 뉴욕타임스라든지 각 신문을 통해서 대략 간명하게 소개가 되었고 등재가 되었든 것입니다. 그래서 시방까지 말한 것이 와신튼에서 뉴욕에 우리 위원단의 첫째 의무와 둘째 의무는 대개 그와 같이 완수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읍니다. 끝으로는 부대 말하려고 하지만 우리로서는 경시할 수 없는 우리 거류동포 방면 문제, 여러분 짐작하실 바이지만 와신튼에는 우리 거류민이 불과 몇 분밖에 안 되었었읍니다. 뉴욕에는 학생이 다수로 거류하고 있는 동포들이…… 또한 그렇게 많지를 못해요. 대략 다 모아야 7, 80명…… 100명 좌우밖에 아니 되는 것입니다. 또 로스안젤스는 우리 동포들이 미주 본토에 있는 데서는 비교적 많이 있는 데인데 그것도 로스안젤스라는 도시뿐만 아니라 거기서 200리 이상 또는 170, 80리 떨어진 롱아일렌드란다든지 또 그 외에 또 무슨 군데라는 데에 산재해서 살고 있는 처지입니다. 우리 일행들이 뉴욕을 떠나서 로스안젤스에 도착하게 되자 여러 사람들이 다 소식을 알고 밤을 세워서 다 한 군데로 모이게 되었든 것입니다. 반갑게 만나보고 많이 위로해 주고,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우리는 의당 충성을 다하고 있는 역량을 다 받아야 된다는 것을 얘기했어요. 지나간 시간에 나라를 무조건하고 위해라, 나라에 충성해라 하는 것도 미덕이였지만 오늘날 우리 현대의 생활에 있어서는 각 개인 각 개인이 살어가는 터전이 나라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어 과거에 나라 없이 지날 때에 남만 못지않었는데 사람답지 못하게 살어온 것은 뼈에 뭉친 우리의 서름이였드니 만큼 우리는 우리의 이번 뜻대로 세워논 이 나라는 우리 각 개인 개인이 살어가는 생활의 기초다, 우리가 살지 않으려고 하면 이여니와 살어갈려고 하면 우리의 사는 터전 이 나라를 우리는 옹호하고 육성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 아니냐 하는 얘기를 「지성칩달」하게 얘기하게 된 것입니다. 뭉처야 살지 뭉치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는 얘기와 서로 부비고 서로 음틀고 하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얘기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로스안젤스를 떠나서 싼프란시스코에…… 싼프란시스코는 우리 거주하는 동포들이 로스안젤스보다 적읍니다. 역시 다 모여야 한 100명 좌우, 7, 80명밖에는 안 되요. 거기에 면면이 다 모이게 해서 같이 얘기를 하고 음식도 나누고 친절히 서로 얘기했읍니다. 그다음 하와이, 싼프란시스코에서 비행기를 타서 비행기로 오게 되면 아홉 시간 걸리는 처지입니다. 하와이는 여러분이 아시다싶이 7000 동포가 거주하고 있는 미국의 거류민의 거진 전수가 그 자리에 살고 있는 처지입니다. 역사로 말하면 50여년, 40여년의 역사를 가진 그 사회지만…… 그래서 역시 각 섬에 노나서 살고 있는 여러분들도 한데 모이게 되어서 8, 900명의 수효, 근 1000명의 수효가 호노루루를 본섬에 모이게 되었든 것입니다. 거기서도 로스안젤스에서 얘기한 것보다 좀 더 힘차게 얘기하게 되었어요. 여러분 아시다싶이 동지회다 국민회다 또 무엇이다 해 가지고 서로히 부비고 서로 보지도 않고 서로 모이지도 않고 지내든 그 모양인데 우리들이 갔을 때에는 다 모였어요. 한테 다 모여 가지고 우리의 얘기를 듣고 난 다음에는 과연 본국의 사정이나 이번에 국회의장, 국회의원 여러 분들이 와서 하는 말이 과연 옳다. 우리들이 한테 뭉처야 될 것이다 하는 것을 국민회에 관계되었든 이들이 자기로서 그런 얘기를 남녀를 물론하고 하는 얘기를 반갑게 듣고 하와이를 떠나게 되었읍니다. 그러면 시방 간단하게 말씀드린 이 세 가지의 우리들의 임무는 우리의 있는 때로의 정성과 힘을 다해서 큰 허물이 없이 수행했다고 이 자리에 우리 의원 동지 여러분께 유쾌하게 보고를 해 드리는 바입니다. 그런데 와신톤이나 어데서나 뉴욕이나 로스안젤스에서나 우리 동포들에게 열렬한 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은 물론이지만 미국 당국 방면에도 우리들이 생각하건데 이것은 너무 과하지 않은가 하는 대접을 받게 된 이유는 전 이번 여정을 통해서 우리 일행들끼리 서로 말하고 지낸 일입니다만 이것이 이유가 어데 있느냐…… 국회의장이라고 제가 잘났다고 하는, 신익희가 잘나서 그러냐, 10만의 대표이고 우리 국회에서 많이 일하고 있는 이훈구 의원, 나용균 의원 이분들이 잘나서 그러냐,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무총장이 잘나서 그러냐? 아니다 그랬읍니다. 이것은 다만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대한민국이 독립국가라고 하는 우리 뒤에 방패가 있고 터전이 있는 까닭에 우리들이 이와 같은 환영을 받는 것이다 하는 것을 어느 군데에서나 어느 때에나 절실하게 느끼고 한 번 다시 우리 사는 터전인 나라가 독립국가라는 것이 고맙고 안심되고 미듬직하게 신념을 주게 된 이 우리의 각오 우리의 깨다름은 과연 어데 비교할 것 없이 심절 했다고 하는 것을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 가 보니까 와신튼에 있는 우리의 대사관, 그 이외에도 뉴욕, 로스안젤스, 쌘프란시스코, 하와이 전부 우리의 영사관이 다 있어요. 내가 미안하지만 일하고 있는 이들이 다 일을 잘하고 있드라, 능률있게 잘하고 있드란 말씀은 드리기가 좀 어렵읍니다마는 하지만 일을 괜찮게 하고 있어요. 괜찮게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전체에 관한 대접이 전과 다르드라 그말이에요. 왜놈 밑에 신음하고 있든 그때에 하와이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성명이 어떻드냐, 미주 본토에도 이곳저곳에서 유랑하고 있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우 그 정황이 어떻드냐, 오늘날은 달러요. 오늘은 달르드라, 이것조차 나는 그 각해 각해 지방의 대사, 영사 동지들에게도 말했지만 과연 우리는 이 독립한 나라에 우리의 사는 터전인 대한민국이 우리 개인 개인 살어나가는데 이만큼 고맙게 이만큼 힘진 뒤의 힘이 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한 번 다시 깨달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이 나라의 힘을 다 바쳐서 이 나라를 위해서 우리는 일해야 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을 서로히 면려하고 서로히 노력하자는 등을 얘기하고 그랬읍니다. 그러나 내가 말씀 시작할 때에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나의 보고는 여기에 끄치고 또 유감된 바가 있다든지 하면 두 분 의원이 보충하실 것이고, 자세한 여행일정 경과에 있어서는 사무총장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한 마디 말씀 하나 더 붙쳐둘 것은 내가 국회에서 떠나 있는 동안에 김동원 부의장이 의장대리의 번거로운 수고를 하시고 또 여러분 의원들이 많은 의안에 관하야 많은 노력을 하신 결과 많은 성과를 가지셨다는 것을 특별히 동지의 하나로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이로부터는 남은 임기가 불과 얼마 안 남었지만 여러분의 뒤를 따러서 과히 틀림없이 같이 노력하십시다 하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면서, 다만 한 가지 특별히 제기하려고 하는 바는 우리 선거법에 정부에서 의견 나왔을 때 여러분들이 정확하게 많이 노력하신 것은 틀림없지만 그 가운데에 소위 반민자에 관한 규정이라는 것은 내 개인의 의사로 말씀하면, 전번에도 이 자리에서 말씀을 여쭈었읍니다마는 그렇게 타당하고 되지 않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 생각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정된 바에 의지해서 할 것이니까, 다만 문제가 중요하고 또는 관계가 있는 것이니 만큼 잠간 들어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후로 우리들은 우리 본신이 다시 입후보해 가지고 선거에 노력할 터인데 여러분들 다 성공하시기를 특별히 축도하면서 이 남어지 시간에 이 국회로서 우리 임기 안에 우선 해 놀 것이 아마 예산안 밤을 세워서라도 통과해놓고 우리는 그 이후에 다시 우리들 일을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간단히 말씀한다고 오래 동안 말씀해 미안합니다.

그러면 이훈구 의원이나 나용균 의원 보충 말씀 하시면 좋겠읍니다.

본 의원은 간단하게 몇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의장께서 전체적으로 총괄적으로 말씀하셨지만 가장 상세하고 된 줄 압니다. 그러므로 긴 말씀을 드리지 않고 간단하게 몇 마디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아까 의장이 말씀하실 적에 잠간 그 경과에 있어서의 보고가 빠지지 않었는가 이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 점은 우리가 와신톤에 도착은 밤에 했는데 도착하니까 우리 대사가 나왔읍니다. 대사관원들도 나왔고 미국 국무성에서 우리들을 환영하려고 두 사람이 대표로 나왔읍니다. 그 밤중이니까 우리 일행은 즉시 대사관에서 지정해 논 호텔로 들어 갔었읍니다. 들어가서 원래 밤이 깊었으니까 어찌 하지 못하고 그 이튼날 일직 장면 대사가 우리 숙소로 와서 말씀을 서로 얘기가 되는데, 우리 온 목적을 장면 대사 말씀이, 국무성에 미리 통해 놨다. 또 관례에 의해서, 외교 관례에 의해서 어느 나라 사절이 오든지 국무성을 먼저 통해 놔야 모든 기관을 접할 수 있는데 그런 까닭으로 국무성에 가서 우리 온 목적을 이야기해 보니까 국무성의 말은 어쩐고 하니, 지금 원조안이 국회에 상정이 되었는데 만일 우리가 국회의 대표로 와서 원조안을 통과시킬려고 하는 운동처럼 보일 것 같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것 같다는 의향이라 이런 말씀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신 의장께서는 이것 우리가 멀리 태평양을 건너와서 국회 방문도 못하고 간대서는 문제가 안 되니까 다시 가서 교섭을 해라 한 후에 교섭을 다시 시켜봤읍니다. 그러나 역시 절충을 해 본 결과에 그런 위험성이 있으니까 공식적으로 국회에 가서 발언을 한다든지 또 국회에 의사진행하는 가운데 얼굴이나 몸을 나타내는 것을 재미없게 생각하는 그런 취지의 회보가 왔읍니다. 그래서 참 신 의장이든지 우리 일행이라든지 가장 걱정되는 것이 우리 국회로서 국민을 대표해서 결의했고 결의한 사명을 가지고 멀리 와신톤까지 와 가지고 국회에 방문도 못한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이런 심심한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신 의장은 애국지성의 우리 사명 달성의 구현에서 나온 줄 압니다마는 우리가 댕길 때에 데푸트부리치라는 높은 다리가 있에요. 이 데푸트부리치에서 떨어저 죽는 경우가 있드라도 이것은 될 수가 있는 말이냐고 밤에 잠도 못 잤읍니다. 그래서 우리가 난상회의한 결과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이 직접 절충을 해 보자, 동시에 만일 안 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를 방문하였든 상원의원, 하원의원들이 있으니까 그이들을 직접 만나서 우리 사명을 달성하도록 하자는 방침까지 정해 보았읍니다. 그래서 그 이튼날 장면 대사와 사무총장과 의장이 직접 가서 말씀하면 안 될 터이니 본인을 보내서 그와 같이 한 번 국무성 당국과 절충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가보았읍니다. 가니까 그 국무성의 대변인인 푸팍스톤이라고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와서 죽 30여분 동안 설명을 해요. 그 전 원조안이 마샬푸랜에서 나온 것이라든지 또는 대한 원조안이 어떠어떠한 관계에 있다든지, 전번에 부결된 관계라든지 여러 가지를 죽 설명을 길게 하고 결론으로 말하기를, 역시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장면 대사가 말씀한 바와 같이 당신들이…… 라빙이라고 방청석, 이런 데라도 나타날 것 같으면 이 안을 통과하는데 역효과가 나서 대한민국에 대하야는 재미스럽지 못한 결과를 초래할까 보다고 대단히 그러한 이야기의 취지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네들 의견이 그렇다는데 우리로서 그렇게 긴 말씀을 하고 급하게 하겠다고 하는 말을 하기 어려우나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로 동아 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방패를 방해하는 큰 보루의 하나로 있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는 전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회의 총의로 우리가 여기 국회에 차져온 것이며…… 그런데 만일이라도 국회에 우리가 가지 못한다는 경우가 갈 것 같으면 이것은 우리 민주주의 국가 상호의 친선관계에 지대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이러한 취지로 이야기했읍니다. 동시에 모스코 근방에서 38 이북 사람들이 나가지고 선전하는 것은 당신들도 잘 아리라 이러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한 번 가서 우리가 공식으로 방문을 해야 하겠다는 이러한 이야기를 했읍니다. 했드니 그 말하는 사람이 참 깊이 깨닫는 표정과 말을 하면서 다시 한번 우리가 상의해 가지고 해 볼 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그렇게 해 가지고 23일 날 장면 대사를 통해 가지고 상원을 방문하게 되었읍니다. 공식으로 방문해 와도 좋다. 또 동시에 국무성에서 국무차관보 마크휠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이는 이 행정부와 및 국회의 연락사무를 전적으로 보는 그분인데 그분이 우리를 인도해 가지고 그 상원에 공식적으로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결과로 해서 즉 아까 말씀한 결과라는 것보다도 그러한 교섭의 경과내용에 있어 가지고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상원에서 이러한 경과가 있었읍니다. 그리고 또 아까 신 의장 말씀할 때에 한 가지 우리가 참고적으로 들어둘 필요가 있는 점을 말씀을 안 하신 점이 있는 그런 일이 있어요. 한데 그것은 우리가 대사관에서 카크텔 파티를 했는데 각국의 대․공사를 다 청할 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국무성 또는 육․해군성, 기타 우리 한국에 호의를 가지고 중요한 지위에 있는 분들을 모두 청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초청에 온 데에는 제1 중국대사 고유균 씨가 왔었읍니다. 또 인도의 네루 매씨 도 계시고 미국에 대사로 있는 분과 너무 유명한 외교관인데 와있었읍니다. 또 샴이라든지 기타 이외의 다른 나라 여러 분들도 모두 와 있었고 또 그 외에 국무성이든지 중요한 관리들, 상원의원, 하원의원들 우리 관계하는 분들이 모두 와있었에요. 그런데 특히 중국대사 고유균 씨는 우리 일행을 자기의 대사관으로 만찬을 초대했읍니다. 초대해 가지고 동양의 사정이라든지 또는 민주주의 국가로 장래 어떻게 해 간다든지 여러 가지 사정을 충분하게 또 아주 원만하게 환담을 다 해 가면서 말씀했읍니다. 특히 신 의장은 그 중국 말씀이 중국사람보다 더 잘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데 볼 것 같으면 유명한 고유균 씨라도 우리 신 의장한테 정복당해 버렸에요. 신 의장이 이야기를 할 것 같으면 시시 시시, 옳다는 말이에요. 그냥 전부가 아주 어떻게 유쾌했는지 이래서 경과를 지냈읍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유엔위원회를 방문하였을 때에 중국 전권대사로 가있든 장중경 씨를 뉴욕에서 만났는데 역시 뉴욕영사관 주최 카크텔 파티에 왔었든 장경근 씨가 우리 일행의 환영회를 특별히 초대했읍니다. 그때에는 전 중국 주미대사로 있는 호적 이라는 그이도 와서 우리와 같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였읍니다. 역시 그 자리에 가서 신 의장의 웅변은 또한 그 잘하는 중국말로 장경근 씨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하는 것을 봤읍니다. 그래서 아주 역시 우리 한국이 유엔의 한 멤버국으로 참가하는 데 대해서 전적으로 힘을 쓰겠다는 이러한 취지의 이야기가 교환되지 않는가 해서, 말하자면 이번 회합은 이것이 우리의 사명 이외의 수확물로 상당한 큰 수확을 얻었고, 특히 신 의장과 같이 갔기 때문에 중국 관계자들과 더욱히 친선관계를 잘 맺지 않었는가 이렇게 생각이 되었읍니다. 이 경과 중에 그것이 아까 보고하지 않은 것 같읍니다. 나는 끝으로 몇 가지 감사의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다 아시다싶이 이 사람은 그 전에 미국에 가 있었읍니다. 공부를 하였는데 그때에 갈 때에는 일개 학생이였읍니다마는 파스포트를 얻을 때에는 무한한 고통을 당하고 쌘푸란시스코에 상륙할 때에도 여하간 고통이 있었고, 뿐만 아니라 항구의 수속이라든지 여러 가지 곤란을 많이 당했읍니다. 그 유학은 4년 동안 있는 중에도 대사관이나 공범관의 보호가 없을뿐만 아니라 모든 곤란한 것을 누구한태 가서 참 공적으로 상의할 수 없는 이러한 어려운 경우를 당했든 처지이고, 이번에 쑥 가니 안크리지라는 아라스카에 상륙해서 모두 검사를 하고 입국수속을 하는데 대한민국의 외국 사절단이라고 하니까 수속 없이 하물을 검사도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그 이름하에서 그냥 전부 상륙 통과를 봤읍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독립한 관계는 장면 대사의 외교수완도 있겠지만…… 대사관에서 카크텔 파티가 있었는데 각국 대사관 또는 미국 고관들이 나왔다는 것은 외국에서 우리가 참 비상한 느낌을 느꼈읍니다. 또 뿐만 아니라 가령 아까도 신 의장도 말씀했는데 상원위원회에 가서 그 위원석에 착 않앉고 또 위원석에 앉일 때에 이것은 여담입니다마는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 상원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둘로 나누워서 앉어있는데 우리 네 사람이 들어갔는데 놀랜드라는 상원의원이 따러와서 두 사람씩 짝 갈러 앉이라는…… 이렇게 하는 것을 봤읍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이 먼저 이야기했으니까 뒤에 앉어 있는 공화당원이, 너 환영변을 하여라 자꾸 양당에서 환영을 서로 하라고 하는 것을 봤어요. 아주 대단히 그쪽에는 당의 관련이 매우 강합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수속을 받을 때에 너는 무슨 당이냐 하는 것을 먼저 묻는 것을 봤읍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우리와 같이 융숭한 존대와 호의를 받고 만장일치로 일어나서 참 상원 의원 전체가 떠날 것 같이 이와 같이 환영을 받는 것을 감상한 것은 한 가지 무엇이냐 하면 우리의 대한민국의 독립으로 말미아마 이 자리에 들어와 있다, 또는 독립이 되었다고 하드라도 우리는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와서 이 환영을 받는다는 그러한 감상을 느꼈읍니다. 그리고 그다음 한 가지는 지금 말씀한 바와 같이 대사관에 가서 여러 가지의 편리일 뿐만 아니라 카크텔 파티를 뉴욕영사관에서 할 때에 중요한 사람들을 청해 가지고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이냐 하면, 대사관이나 공사관에서 본국 사정에 정통해서 못한다는 이러한 느낌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우리 본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이 즉시 여기에 통지가 아주 오지 않어요. 본국의 국회에서 무슨 일이 있다, 큰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모르고 있는 것을 봤읍니다. 가령 예를 들면 우리가 여행 중에 국회에서 무슨 일이 있는가, 우리 동인들이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을 알고 싶었읍니다. 대사관에서 몇 번 국회에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아무 것도 응하는 것이 어렵읍니다. 알 수 없다는 말이에요. 그리고 상항 에 왔을 때에 본국의 소식을 알려고 애를 썻고 행정부의 소식을 알려고 하니까 역시 아무 것도 몰른다고 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오늘 국무총리가 사임했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해요. 그래 어떤 신문에 났느냐 하니까 미국 신문에 간단하게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그래서 신문을 사려고 해도 발견할 수 없어서 참으로 궁금하였어요. 또 한 가지는 대사관과 영사관 이런 데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선전사업이 좀 적지 않는가 하는 이러한 것을 느꼈읍니다. 본래 미국 같은 데는 지역이 광범하고 참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사정을 잘 선전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우리나라의 인식이 부족하고 또는 인식이 박약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데가 많읍니다. 해서 우리 대사관이나 영사관을 통해서 우리의 실정을 잘 선전 보고하는 이런 일을 많이 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가 하는 이런 감상을 느꼈읍니다. 그다음 한 가지는 긴 말을 안 한다고 하고 자꾸 길어집니다만, 그 여행을 하는 중에 여행목적 이외이지만 우리가 가장 관심이 되기 때문에 나는 특별히 그것을 관심을 가지고 보았읍니다. 여기 미․소관계가 어떠한가 하는 미국의 여론을 보아볼려고 했읍니다. 그랬는데 앙코레지에 상륙해 가지고 신문을 보니까 아라스카의 어떤 신문기사에 큰 헤드라인으로 나온 것이, 아라스카는 소련에 제일 가차운 지방이다. 이것을 한 테리토리로 그냥 두어둔다 할 것 같으면 소련에게 침범을 당해서 미국 뉴욕이라든지 와신톤, 기타 시카고 같은 중요한 도시에 일대 위험성이 있게 된다. 그러니 이 아라스카를 조홀히 해서는 안 되겠다. 아라스카를 주로 승격을 해 가지고 여기다가 무기를 공급하고 모든 것의 무장을 견고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을 주장한 신문을 보았읍니다. 그리고 비행기 우에서 하루밤을 지내고 아침에 씨아틀에 착륙해서 신문을 사보았읍니다. 보니까 리파부릭칸 상원의원 마커스리가 대서특서한 것이 신문에 났는데 이 상원의원의 말은 현 애치손 장관은 이 국가의 일을 모두 그르치고 있다. 지금 국무성 내에 83명의 공산주의자와 혹은 공산주의를 동경하는 자가 있는데 이것을 청산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으니 이럴 수가 있느냐, 그뿐만 아니라 상무성에도 얼마가 있다, 이것은 역력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것을 신문에 대서특서해 가지고 쓴 것을 보았읍니다. 와신튼에 체재하는 동안에 그 신문을 보고 세넥터, 상원의원이 발언을 해서 논쟁까지 되었는데 그 발언내용은 에프 피 아이…… 연방조사국이라는 것을 설치했는데 이 연방조사국이라는 데서 하는 사업은 공산주의에 대한 조사인데, 그래서 그 조사국에서 특히 모다 쭉 각 개인의 공산주의자의 경향 또는 공산주의 동경자에 대한 조사를 비밀히 해둔 것이 있에요. 그 조사서류를 내노라고 상원에서 야단을 하고 애치손 장관을 나가라는 여러 가지 문제가 났에요. 그것을 신문에 전면적으로 매일 떠드는 것을 보았읍니다. 보았는데 나종에는 어떤 당사자가 냈느냐 해 가지고 라테무아라는 동양에 대한 전문가인데 그이가 백서를 권고해 가지고 중국문제가 저렇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한민국이 미국의 연장이 될 쩍에는 유익한 것이 없으니까 포기하는 것이 좋다. 이런 모든 여러 가지가 이것이 모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런 것을 신문에다 쭉 떠드는 것을 보았에요. 그런데 로스안젤스의 어떤 신문에 큰 헤드라인으로 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국적불명의 잠항정이 미국 서해안을 지금 유예하고 있는데, 그래서 해군성과 또한 육군성 당국이 전부 조사를 나갔다. 그것이 이틀이 되는데 지금 로스안젤스에 그 방향을 두고 들어오고 있다, 이것이 아조 국가적 위험성이 있다고 큰 대서특서를 해서 낸 것을 보았읍니다. 또 뿐만 아니라 상항에 보니까 그전 출정 군인으로 대좌이었든 사람이 소련과 미국은 전쟁 중에 있다. 냉전은 벌서 가고 지금 전쟁 중에 들어갔다는 것을 큰 헤드라인을 해 가지고 센세숀을 일으키고 대단히 일반 여론이 긴장해 가는 것을 대략 추측할 수 있었에요. 그리고 한 가지 여기서 말씀드릴 것은 하와이 호노루루에 왔는데 스타프레트라는 신문에 대서특서가 되었는데 애치슨 장관의 대한 통첩이 났다 그것을 호노루루에서 알았읍니다. 그것이 아마 8일쯤 되겠읍니다. 그래서 여기서 그런 사실을 알았는데, 요컨대 미․소관계에 대하야 미국의 여론이 이만큼 지금 긴장해 있고, 더욱이 참 일촉즉발이라고 하면 너무 형용사가 과할지 모르겠읍니다만 대단히 긴장히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라트피아에서 미국 비행기를 떨어티렸다는 사실을 요새 신문에 대단히 많이 떠들고 있으며 퍽 긴장해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대강 보충으로 저의 소감을 이 정도로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행이 여행하는 중에 여러분께서 많이 걱정해 주시고 후원해 주셔서 그 사명을 달성한 데 대해서 여러분께 고마운 말씀을 들었읍니다. 고맙읍니다.

나용균 의원 말씀하세요.

두 분께서 많은 말씀을 하고, 저로서도 적어도 4주일에 걸쳐서 여러 가지로 경과한 경과를 말씀하자면 한 시간에도 할 수가 없고 두 시간에도 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봐하니 의안이 산적하고 시간이 다 가고 해서 여러 가지 말을 안 하고 간단히 할 말이, 우리가 떠날 때에 간단히 인사를 마친 후 여러 가지로 부족할 뿐만 아니라, 더구나 외교는 거리가 천리나 만리나 먼 이 사람이 과연 그 사명의 일부분이라도 다 하고 올 수가 있을지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평소에 제가 경애했든 신 의장, 이훈구 의원, 이종선 사무총장이 정치적으로든지 여러 가지로 훌륭한 분인줄 알었지만 화성돈에 도착한 이래로 우리가 일본을 거쳐서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그분들의 수완 역량들이 외교적으로 얼마나 유능한 분인가 하는 것을 깨달었든 동시에, 더구나 세 분, 특히 신 의장, 이훈구 의원 두 분을 보좌해 가지고 세 사람 중 1인분 사명을 무사히 다 했다는 것을 다행히 여기는 동시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신 의장께서 많이 말씀했지만 한 가지 빼논 것이 있어요. 우리가 미국내의 인사라든지 재류동포에게서 여러 가지 환영을 많이 받었지만 특히 나로서는 감격하고 기뻐하는 것은 일본에 와서 맥아더 사령관을 만난 것입니다. 그 부하들의 말로 그렇고 우리가 대개 예상한 바와 같이 맥아더 사령관을 만나기 전에는 5분이나 10분의 회담에 지나지 않을 줄 알었는데 그분들이 말을 끄내 가지고 한 시간 이상에 걸쳐서 했읍니다. 미국 대통령이 아까 의장께서의 말씀과 같이 휴가 중에 있어 가지고 만나지 못했지만 미국에 있는 정계의 거물을 대개 다 만났어요. 그러나 내가 받은 인상으로서는 우리가 평소에 듣고 본 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그분을 직접 한 시간에 걸쳐서 만나본 결과 혹 다른 분에게는 미안할지 모르지만 말하자면 맥아더 사령관 그분이 군인뿐만 아니라 적어도 내가 한 달 동안에 받은 인상으로서는 미국에서 누구에게도 손색이 없는 위대한 정치가라는 것을 발견하였읍니다. 그와 동시에 그 한 개인 문제로 우리 일행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말씀을 하는 것은 맥아더 사령부에서 우리에게 대해서 이틀 동안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하셨읍니다. 거이 국빈으로서의 대우를 받은 인상이 나로서는 미국 전국을 통해 가지고 상․하원이라든지 국무성이라든가 다 가는 곳마다 시장이라든지 거류민이라든지에서 받은 그것보다도 더욱 인상이 깊고, 더욱히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에 얼골이 좋와졌다 하는데 얼골이 좋와진 것이 아니라 일본에 있어 가지고 이틀 동안을 맞은 것으로 더욱 나는 얼골이 좋게 된 줄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이 보고가 있으니까 사무총장으로서 말씀이 있겠읍니다.
사무적으로 다녀온 여정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읍니다. 3월 18일 출발해서 그날밤 동경을 거쳐서 쎄미아 도 를 지나는 동안부터 하로가 바뀌는, 태평양선의 날자 바뀌는 선이 있기 때문에 사실은 그 이튼날 19일 날 밤에 와신톤 도착이라는 것인데 토요일 날이 두 번 겹치기 때문에 19일 날 밤, 즉 20일 날 아침 오전 1시 30분에 밤중에 와신톤에 도착을 하였읍니다. 도착해서 여기에 와서 방문한 상원의원인 포랜드 씨가 투숙하고 있는 왜드맨 맥 호텔에 그날 밤으로 여장을 풀게 되었읍니다. 그 이튼날 아까 이훈구 의원이 말씀한 것으로 자세하게 말씀드렸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국무성의 여러 가지 규정인 외빈접대를 하는 절차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며, 절대로 우리 국회의원을 대하는데 그러한 규정 있다고 단정을 내린 것이 아니였읍니다. 너무 갑자기 생긴 일이기 때문에 다소 정신적 고통도 느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그 이튼날 오전 10시에 국무차관보 멕크핼스 씨를 방문해서 만나고 연락관 랙크스톤 씨를 만났읍니다. 각 미국의 상․하원이 되어 나가는 일과 국무성, 국회의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약 한 시간 동안 청취하였읍니다. 오후에 하원의장 데이보 씨를 방문해서 국회에서 가져간 멧세지를 다시 하원의장에게 들이는 형식으로 바꾸어 꾸며서 그분들에게 전달하였읍니다. 오후에 2시 반에 국무장관 애치손 씨를 방문하고, 그 후에 오후 5시에는 대사관저에서 칵텔 파티를 열어 특히 여기 군정장관으로 있든 러취 부인인 미망인도 같이 그날 참석하셨읍니다. 3월 23일 오후 9시 30분경 우리에 원조를 위해서 전심 노력하고 있는 짼손 박사를 방문해서 그분도 마중을 와서 같이 가서 한국 원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숫자와 서류를 만드는 정황을 봤읍니다. 오전 10시 30분 바쁜 가운데에 있는 이씨에이 총사령과 같은 호푸맨 씨를 방문해서 인사를 드리고, 11시 여기에 왔든 번사이드 하원의원의 우리가 안내를 얻어서 토지…… 랜드 쎄미카미데에 대해서 하원 분과위원회에 참석하니까 여기에 위원의 한 사람에 루스벨트 대통령의 장자이신 루스벨트 주니어 위원이 거기의 위원이 되어서 참석하고 있었읍니다. 특히 이채를 내는 것은 거기의 분과위원장이 흑인, 얼골이 까만 흑인이 하원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읍니다. 11시 30분경에 상원의장 박크래이 씨를 공식으로 방문해서 기자가 둘러싸고 우리들이 면담하는 것을 사진을 백히고 무조건으로 우리 손을 끌고 의사당으로 들어가서 먼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상당한 대우를 받었읍니다. 오후 3시 15분에 10여 명의 일반 신문기자의 요청에 의해서 호텔에서 의장이 묵으시는 방에서 푸레스 컴푸레스, 기자회견을 했읍니다. 그 후 오후 6시에 대사관 1등서기관으로 있는 김세선 씨의 초대에 의해서 그 개인이 살고 있는 가정에 손님이 된 일이 있읍니다. 3월 24일 오전 9시 30분에는 방송국에 가서 한국에 보내는 방송을 했읍니다. 10시에는 하원 외교위원회에 가서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중국에 오래 있든 떡터 쩨드 씨를 만나서 중국말로 교환한 일이 있읍니다. 12시 30분 하원 전체회의에 가서 반드시 드려다만 봤읍니다. 왜 그러냐 하면 외교관들이 앉는 자리는 스페스 캬라리가 있는데 그 자리에 가 앉어 있으면 올라다 보고서 한국에서 왔구나 하고 여러 가지 정신에 자극을 줄까봐서 보이지 않는데 잠간 드려다 보니까 마침 미국도 국회의원 재선이 있는 관계로 자기 고향에 가서 인기 좋게 당선될 목적으로 여러 가지 원조안에 대해서 반대하는 연설이 한창 속출되고 있었읍니다. 그것을 듣고서 마음으로 대단히 염려되는 바가 있었으나 로스안젤스에 와서 신문에 보도된 것을 보면 한국 원조는 조곰도 깎기지 않고 1억이 그대로 통과된 것을 봤읍니다. 3월 25일 날 토요일 날 화성돈을 떠나서 뉴욕에 도착했읍니다. 그날밤 도착한 10시에 미국의 예술의 전당인 파키흘랜 센터라는 훌륭한 미술도 있고 없는 것 없는 장소에 안내해서 거기에 가서 여러 가지 화려한 극과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아주 곤 하신 분이라 세 분은 코를 골면서 주무시기 때문에 깨워서 여관으로 돌아오게 되었읍니다. 26일 날 오후 3시에 한인교회에 참석해서 예배가 끝나는 것을 기다려서 의장 이외 여러 분이 한인교인들에게 간단한 얘기를 하셨읍니다. 오후 6시에 거류민 여러분의 초대로서 만찬이 있었읍니다. 3월 27일 토요일 날 오후 3시에는 상원의원이요 전에 유엔 미국 대사로 있든 딸레스 씨를 방문하고, 오후 4시 상공회의소를 방문했고, 오후 5시에는 뉴욕타임스 본사에 들려서 사장 써스버레쓰 씨를 직접 방문하고 같이 사진까지 박었읍니다. 그리고 반가운 것은 한국에 와서 일하든 잰스톤 통신기자가 귀국해서 있어서 우리를 참 반갑게 마져주고 안내했는데 한 가지 놀란 것은 일요일 날 배기는 신문 한 가지를 배겨 대는데 잉크가 30톤이라는 잉크를 써서 배겨내니 신문의 수량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일요일 신문 한 가지 배기는데 잉크가 35톤이 필요하다 합니다. 상당히 우리 신문보다 조곰 큰 것 같읍니다. 오후 6시 30분 남궁 총영사의 초대로서 처음으로서 김치와 밥을 먹어봤읍니다. 화요일 날 오후 9시 30분 유엔 의장이신 로무로, 지금은 장군이라고 해서 째내라루 로무로 씨입니다. 그 양반이 계신 사무실에 갔드니 으리으리하고 수많은 직원들이 의장을 둘러싸고 있는데 대부분은 비율빈 사람들로서 구성되어 있었읍니다. 10시 30분 유엔총회에서 보내준 자동차를 타고 레이크쎅스를 방문해서 아까 의장 선생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놀랠만한 각 시설을 봤고, 사무차장 안내로서 여러 가지 본 결과 우리는 별로 일하는 것이 없는 줄 알었는데 유엔 가운데에 있는 출판부가 세계의 몇째 안 가는 수량을 출판하는 가장 큰 출판업의 하나라고 합니다. 왜 그런고 하니 각 나라 말로 출판하는 서류가 1 개인이 어느 출판사보다도 큰 출판사를 가졌으며 제본시설이라든지 인쇄시설 전체를 자기가 가지고 있읍니다. 오후 6시에 카마도호텔이라고 하는 뉴욕에서 제일 큰 호텔에서 칵텔 파티에 초청해서 시장 이하 명사들이 전부 한국을 위해서 호의를 가지고 많이 참석했읍니다. 29일 날 수요일 날 오전 11시 시청에서 보낸 큰 훌륭한 차로서 거기에 싸이렝 단 순경 자동차 온 것이 몇 대 따라와 가지고, 나도 과거 1개 고학생으로 오래 있었지만 전부 바쁜 도시를 갖다가 길을 전부 치우고 싸이렝을 울리면서 시청까지 안내를 받었읍니다. 그 외에 시청의 역사적 장소를 전부 구경하고 그 시의 설명을 들었는데, 특히 70여 나라의 말로 신문이 출판되는 데가 뉴욕입니다. 30일 날 뉴욕을 출발해서 오후 6시 반에 로스안젤스에 도착했읍니다. 토요일 날 오전 11시에 룸하이랜드 해변가에 나가서 한국 해군이 사논 군함 세 척을 구경하고 그 함상에 올라가서 수선하고 있는 것을 친히 보고 왔읍니다. 그 후에 이튼날 오후 3시에 일요일이기 때문에 한인 장로교회에 자리를 빌려서 거기에 있는 거류민을 모아놓고 일행이 강연회를 개최했읍니다. 하오 6시에는 총영사 댁에서 한국식의 음식으로 대접을 받게 되었읍니다. 월요일 날 4월 3일 날은 하오 4시에 로스안제르쓰를 떠나서 비행기로 삼푸란씨쓰코에 도착했읍니다. 거이 화이몬트 호텔에서 투숙하게 되었읍니다. 4월 4일 오전 11시에 칼포니야 지사를 공식으로 방문하고 한인에 대한 것을 부탁도 하고, 그네들의 말은 한국 사람의 거류민은 대단히 여러 가지로 봐서 모범적 시민이라고 칭찬하는 말을 들었읍니다. 4월 5일 오전 9시 반에 칼포니야대학을 방문했읍니다. 마침 총장이 없어서 부총장의 안내로 오찬회에 참석해서 학교의 교육방침을 설명을 들었읍니다. 하오 7시에 거류민단들이 우리들을 초대해서 좌담회를 했읍니다. 6일 목요일에는 오전에는 그 근방을 시찰을 했읍니다. 시찰할 때에도 거이 차를 가지고 시찰했읍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11시 30분에 비행장을 떠나는데 200마일 밖에 있는 정치고문으로 있든 노불 부인이 허둥거리면서 비행장에 차져와서 저이 일행을 이태까지 얼굴도 못 보아서 모르니까 사방 차져서 우리를 만났는데 그날은 부활제일이기 때문에 이스다 에그를 가지고 와서 방문해 주었읍니다. 7일 날 아침에 상오 7시 30분에 호노루루에 무사히 도착했읍니다. 도착하자마자 세계에 제일 간다는 파이나플 공장을 시찰했는데 하루에 200만 개의 깡통으로 된 물건이 나온다고 합니다. 하오 7시에는 하와이에서 성공한 산부인과로 이름을 날리는 의학박사 양 씨 내외분의 초대를 받어서 하와이식의 연회를 받게 되었읍니다. 8일 토요일 날은 11시에서 하오 5시까지 하와이시 전체를 시찰했읍니다. 9일 12시 30분에 동지회 급 부녀구제회의 초대로 오찬 좌담회가 있었고, 오후에는 제2세로서 조직된 대학구락부에서 의장이 연설을 하시였읍니다. 하오 7시에 한인교회에서 환영회가 있었고, 그 이튼날 10일 오전 11시에 공식으로 총독을 방문했읍니다. 11시 30분에는 하와이 헌법위원회에 특별히 참석해서 의장께서 강연을 하시였읍니다. 하오 2시 반에 진주만을 방문하고 거기에 사령관인 멜피드 해군대장을 방문하고, 하오 4시 반에 방송을 하시고, 5시 반에는 영사관에서 총독 이하 여러 분이 초대하는 칵텔 파티에 참석했읍니다. 7시 반에는 중앙중학교 강당을 빌려서 800명 내지 900명의 거류민을 모아놓고 성대한 강연회를 열었읍니다. 11일 오전 8시에 하와이를 떠나니까 12일에 오전 11시 반에 중간에서 날자가 바뀌어서 사실은 그날 아침에 떠난 것이 그날 저녁 해진 11시 30분에 동경에 도착했읍니다. 동경에 와서는 그 이튼날 씨볼트 한 번 다녀간 국장을 만났고 한국을 위해서 일하는 원하 씨를 만나서, 그 이튼날 맥아더 장군을 만날 순서를 잡었읍니다. 14일에 오전 10시에 거류민단 총본부에 가서 모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12시 반에 맥아더 사령관을 만나서 한 시간 동안 연담 을 했읍니다. 하오 3시 반에 기자단과 회견하는데 기자단 가운데에는 서양기자들도 참석했는데 전부 일어를 알어듣기 때문에 영어 통변 을 안 했읍니다. 그리고 또한 한인 유지들의 초대연이 있었고 그 이튼날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읍니다. 반가운 것은 국가가, 우리나라가 독립되기 전에 제가 미주와 구라파를 여행하는 저로서는 이번에 겪은 감상을 토해 보면 우리나라가 있는 우리의 기쁨을 국위를 가지고 해외에 선양하는 이 기쁨이 무엇보다도 기쁘고, 여러분께서 주신 기회로서 다소 세 분을 보조하는 데 많이 부족된 것이 있으나 널리 용서하시고 이 이상 더 기쁜 것이 없읍니다.

여러분이 의석의 몸을 담어서 앉었지만 그 실은 피차가 초조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앞으로 불원한 장래에 선거 기일을 앞두고 지방소식을 들어보면 가장 격렬한 백열전이 일어났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로 바삐 부하 의 임무를 다하고 귀향하지 않으면 안 될 사정을 자타가 공인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의사규정에 있어서 시간을 오후 1시에 끄치는 것을 오늘날까지 잘해 왔읍니다만 대개 시간을 개회를 11시에 개회하면 2시간밖에 의사를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부터는 의사시간을 변경해서 이 부하된 임무를 다하기까지 오후 2시까지 시간을 연장해서 일을 했으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오후 5시 하자는 분도 많이 계시지만 분과 관계로 해서 오후 5시까지는 어렵다고 말이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오후 2시까지 시간을 연장해서 예산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연장합니다.

지금 사절단의 가장 만족한 보고를 듣고 그 기쁨을 무엇이라 표현할지 모르겠읍니다. 그러므로 해서 간단하게 이러한 동의를 제출하고 싶읍니다. 「우리 대한민국으로서 민간외교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시고 돌아오신 우리 국회의장 이하 의원 두 분, 사무총장을 위해서 우선 오늘 국회 안에 있는 여러 의원들이 일히 박수로서 환영하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이것을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삼청합니다.

우리 국회에서 보낸 사절단 일행을 김포비행장에서 그 장도를 빌면서 무사히 다녀오시길 기달리든 우리들로서 이제 이 중대한 보고를 듣고 또 보고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보고를 듣는 가운데에 기억되는 것이 많으나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미국 상원에서 국회사절단 일행을 유과 없는 환영을 해 줬다는 데 대해서 대단히 기쁨을 마지 않읍니다. 또한 대통령은 휴양을 가고 없었읍니다만 부통령이 이 사절단 일행을 유과 없는 소개와 환영해 준 데 대해서 더욱히 기쁨을 마지 않읍니다. 그래서 저는 금번 사절단 일행이 전보와 편지를 다 하시겠지만 우리 국회에서 보낸 만큼 국회에서 결의를 해 가지고 미국 상․하원 의원과 정부에 우리 사절단 일행을 환영해 줬다는 데 대해서 감사한다는 회한 을 해 주길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삼청합니다.

이의 없읍니까? 그러면 그대로 가결되었읍니다.

김우식 의원께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2, 3일 내에 국회 할 바를 다 마치고 지방에 가지 않으면 안 될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의사일정에 상정된 제3항 직물세법안으로 말하면 오늘 중에 가부간 끝을 마쳐야만 예산을 심의하는 데에 많은 편리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을 의원 여러분께서 다 같이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에는 지금 당장 1시 정각인데 이 직물세법안은 가부간 마치기까지 오늘만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 좋을가 생각해서 이 시간연장을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삼청합니다.

지금 시간연장 동의는 성립이 되었읍니다. 이의 없읍니까? 그러면 표결에 부칩니다. 재석원수 120, 가 79, 부 없이 가결되었읍니다. 그러면 지금은 직물세법안 제1독회를 계속하겠읍니다. 홍성하 위원장 나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