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석을 정돈해 주세요. 지금으로부터 회의를 개의합니다. 보고사항입니다.
8월 23일 자로 박영종 의원이 8월 12일 자로 민주당을 탈당했다는 계출을 내 왔읍니다. 의석 이동 통고 박영종 지난 단기 4290년 8월 12일에 민주당을 탈당함에 의거하여 의석 이동을 통고하나이다. 단기 4290년 8월 23일 전남담양군선출민의원 박영종 의장 귀하 정부에서 8월 29일 자로 발전 및 배전회사 귀속주 처리에 관해서 인선요청이 나와 있읍니다. 즉 정부에서 발전및배전회사귀속주처리사무협의회를 구성하기로 되었는데 그 위원 중에 국회재정경제위원회에서 한 분 또 상공분과위원회에서 한 분 이래서 두 분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단기 4290년 8월 29일 재무부장관 국회의장 귀하 발전 및 배전회사 귀속주 처리에 관한 건 발전 및 배전회사 귀속주 처리에 관하여는 항상 논의된 바이오나 현하의 국내 민간자본 구성의 실정으로 보아 귀속주의 일괄인수능력자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와 사무 추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에 조감하여 당 부에서는 좌기와 여히 본 업체 등의 귀속주처리사무협의회를 구성하여 각계의 고견을 교환 종합하여 실현성 있는 정책을 수립코저 하오니 국회재정경제분과위원회 및 상공분과위원회 위원 중 적당한 위원 각 1명을 선정하시와 기 명단을 조속 회시하여 주시압기 경망하나이다. 추신, 본 협의회 소집은 위원명단 확정 후 별도 통보하겠압기 첨신하나이다. 기 1. 발전및배전회사귀속주처리사무협의회 위원의 범위 상공부 전기국장 교통부 육운국장 법제실 제2국장 국회재정경제분과위원 1인 국회상공분과위원 1인 조선전업주식회사사장 및 회사 한인주주 1인 경성전기주식회사사장 및 회사 한인주주 1인 남선전기주식회사사장 및 회사 한인주주 1인 재무부 관재국장 이상. 정부에서 제안했던 특수선거범처벌법안을 국회법 제33조에 의해서 8월 31일 자로 폐기되였음을 정부에 통고했읍니다. 단기 4290년 9월 2일 민의원의장 이기붕 대통령 이승만 귀하 특수선거범처벌법안 폐기의 건 6월 17일 자 로 제출한 수제의 법안이 국회법 제33조제5항 및 제6항의 규정에 의하여 8월 31일 자로 폐기되었음을 자에 통고하나이다. 정부에서는 8월 17일 자로 단기 4288년도 예비비지변총조서를 제출하면서 동의요청을 해 왔읍니다. 단기 4290년 8월 17일 대통령 리승만 재무부장관 김현철 국회민의원의장 귀하 단기 4288년도 예비비지변총조서 국회 제출에 관한 건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단기 4288년도 예비비지변총조서를 별책과 여히 헌법 제93조제2항 및 재정법 제29조제4항의 규정에 의하여 제출하나이다. 단기 4288년도 예비비 지변에 대한 예비심사 일람표 1. 법제사법위원회 1. 대법원 소관 2. 사정위원회 소관 2. 내무위원회 1. 내무부 소관 3. 재정경제위원회 1. 부통령실 소관 2. 국무원 소관 3. 재무부 소관 4. 전매사업특별회계 5. 구황실재산관리특별회계 6. 경제부흥특별회계 4. 국방위원회 1. 국방비특별회계 5. 문교위원회 1. 문교부 소관 2. 공보실 소관 6. 부흥위원회 1. 외자특별회계 2. 대충자금특별회계 3. 경제부흥특별회계 7. 농림위원회 1. 농림부 소관 2. 경제부흥특별회계 8. 상공위원회 1. 상공부 소관 2. 경제부흥특별회계 9. 사회보건위원회 1. 보건사회부 소관 2. 경제부흥특별회계 10. 교통체신위원회 1. 국민생명보험급우편연금특별회계 2. 경제부흥특별회계 11. 국회운영위원회 1. 민의원 소관 지난 8월 5일 제51차 본회의에서 보수 노임 요임 등 지불상황에 관한 결의를 해서 정부에 통고했었읍니다. 거기에 대해서 8월 30일 자로 내무부 소관과 교통부 소관에 대한 회보가 왔읍니다. 유인해서 배부하겠읍니다. 단기 4290년 8월 30일 교통부장관 민의원의장 귀하 보수 노임 요임 등 지불독려에 관한 건 단기 4290년 8월 6일 자 민의 제159호로 요구하신 수제 건에 관하여 좌기와 여히 회보하나이다. 추기, 본건 당 부 소관 분은 7월 말일 현재 전액 청산 지불필이옵기 위념 첨언하나이다. 단기 4290년 8월 30일 내무부장관 민의원의장 귀하 보수 노임 요임 등 지불상황에 관한 건 수제의 건에 관하여 별지와 여히 보고하나이다. 지난 8월 3일 본회의에서 보고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홍창섭 의원 외 스무 분이 서면질의를 제출했읍니다. 그것을 정부에 이송했던바 8월 19일 자로 보건사회부 소관에 대한 서면회답이 왔읍니다. 이것도 유인해서 배부하겠읍니다. 단기 4290년 8월 19일 보건사회부장관 민의원의장 귀하 질문요지서 이송의 건 수제지건 당 부 소관사항에 관한 답신서를 별첨과 같이 제출하나이다. ―의사일정 배정 및 휴회에 관한 건―

사무처 보고사항은 이상으로 끝났읍니다. 국회운영에 대한 보고말씀을 운영위원회가 아직 구성이 되어 있지 않었기 때문에 부득이 이 사람이 운영에 대한 보고말씀을 보고드릴가 생각합니다. 어제 산회 직후에 각파 각 교섭단체대표자 회의를 열고 의장의 이름으로 회의를 열고 의사진행에 관한 몇 가지를 협의한 바 있읍니다. 그 협의에서 합의된 몇 가지를 여러분께 말씀을 드려서 오늘 그 결정을 볼려고 하는 것입니다. 좀 조용해 주세요.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은 각 분과위원회 분과위원을 배정하기 위해서 소속 분과를 배정하기 위해서 오늘은 다른 의안을 상정하지 않도록 했읍니다. 그리고 내일은 본회의를 쉬고 그러니깐 오늘은 다른 의안을 상정하지 않고 보고사항으로 그치고 내일은 본회의를 쉽니다 4일은…… 그리고 5일…… 5일에는 도진희 의원의 자격에 관한 의안을 상정하도록 어제 합의를 보았읍니다. 그리고 6일 그다음 날 6일은 금요일입니다. 금요일에는 각 상임위원장 선거를 하는 날로 이렇게 합의를 보았읍니다. 그리고 7, 8, 9 사흘 동안은 본회의를 휴회하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읍니다. 이상 보고를 드리고 여기에 대한 결정을 오늘 지어야 되겠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 내일은 본회의를 쉬고 오늘은 보고사항만 끝마치고 본회의를 일찌기 산회합니다. 그리고 5일에는 도진희 의원의 자격에 관한 의안을 상정하고 6일에는 각 상임위원장 선거 또 7, 8, 9 사흘 동안은 본회를 휴회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석 배정은 현재 있는 그대로 하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읍니다. 이상 각 대표자 회의에서 합의 본 점에 대해서 이의 없으십니까? 이의 없으시면 그렇게 결정됩니다. ―발전및배전회사귀속주처리사무협의위원회 위원선정의 건―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발전 및 배전회사 귀속주 처리에 관한 안건에 있어서 위원회를 조직하는데 국회에서…… 국회재정경제위원회에서 한 분 또 상공위원회에서 한 분 위원을 선정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 분과에 지정해서 지명해서 왔기 때문에 양 분과위원회에 맡길는지 혹은 본회의에서 결정하실는지 의견을 좀 알어야겠읍니다. 양 분과위원회에 지명해서 왔으니까 그 분과에 맡기는 것이 좋을가 싶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러면 양 분과위원회, 재정경제위원회와 상공위원회에서 두 위원을 선거해서…… 잘 안 들려요? 그러면 다시 한 번 설명드리겠읍니다. 발전 및 배전회사 귀속주 불하에 있어서 그 불하에 관계되는 모든 것을 의논하기 위해서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그럽니다. 행정부에서 위원회를 조직하는데 국회에서 상공위원회와 재정경제위원회에서 한 분씩 위원으로 좀 참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분 위원을 파견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그 두 위원을 선거하는데 본회의에서 선거하든지 혹은 그 분과위원회에 맡기든지 하는 문제인데 말씀드리고저 하는 것은 행정부에서 재정경제위원회와 상공위원회 위원으로 한 분씩 보내 달라 그러니깐 그 위원회에 맡기는 것이 아마 타당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지요. 이의 없으시지요? 그러면 이 문제는 재정경제위원회와 상공위원회에 일임되었읍니다. 이제는 보고사항으로…… 보고사항이 좀 많습니다. 먼저 보고사항으로 발언통지 내신 분 순서로 발언권 드리겠읍니다. 먼저 수해대책위원회의 중간보고로 황경수 의원의 보고가 있겠읍니다. 여기에 황경수 의원이 발언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말씀드릴 것은 먼저번 회의 맨 마지막 날 수해대책위원을 선거하는 데 있어서 속기록과 그 동의자의 주문과 좀 상위되는 점이 있읍니다. 그래서 수해대책위원회를 구성할 적에 그 속기록에 의해 가지고 구성했다고 해서 혹 말씀하는 분이 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의, 그 동의 주문이 있읍니다. 동의 주문을 정정하기 전에는 그 동의 주문에 따라서 하여야 할 것입니다. 속기록을 동의 주문에 따라서 정정하도록 하겠읍니다. 혹 말씀하실 분은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황경수 의원 말씀해 주세요. ―수해대책위원회 중간보고―

휴회기간 중에 있어 본 수해대책위원회가 그동안 활동한 사항의 개요를 대략 말씀드리고저 합니다. 지난 8월 10일 국회 본회의가 휴회로 들어간 후 본 수해대책위원회는 본회의로부터 수임받은 업무를 계속 시행하기 위해서 본 위원회는 제3차 회의를 개최하고 좌기 사항을 의결하여 휴회기간 중에 실천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첫째, 본 위원회는 제25회 국회 제54차 본회의에서 승인해 주신 피해지구 출장에 관한 본 위원회를 위원회 3반으로 나누어 전국적으로 피해상황의 조사와 이재민에 대한 위문을 하기로 했으며…… 둘째 번은 이재민에 대한 긴급구호와 긴급복구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7명으로 구성된 소위원을 선정하고 휴회기간 중에도 계속 정부 측과 협의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구호 및 복구자금이 방출되도록 노력한 것이며 셋째 번은 피해상황조사의 정확과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 대책위원 전원의 출장과 병행해서 이원적으로 조사하기로 하되 소위원으로 하여금 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상의 사항을 실천하기 위해서 8월 11일부터 소위원회를 제외한 위원 전원을 전국 각 피해지구에 출장하게 하여 조사 위문케 하도록 했으며 또 11․12일에는 소위원회를 개최하고 정부 측 수해대책위원회 각부 장관 혹은 차관을 출석케 하여 연석회의를 한 결과 긴급을 요하는 구호와 복구대책비로서 국고채무부담행위한도액 중에서 17억 환을 조속한 시일 내로 방출키로 합의 결정하고 즉각 실시할 것을 서면으로 건의했읍니다. 동 15일 소위원회 전원이 전국 수해지구의 피해상황을 조사키 위해서 현지에 출장하고 16일에는 경상남도, 17일에는 경상북도, 18일에는 전라남도, 19일에는 전라북도, 20일에는 충청남도 순으로 이상 각 지방을 조사 위문하고 8월 20일 귀경하였던 것입니다. 다음 구호대책 및 복구자금의 방출상황을 보면 보건사회부 소관으로 3억 환, 농림부 소관으로 1억 7000만 환, 합계 4억 7000만 환이 방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피해액과 피해복구액을 보면 이렇습니다. 보건사회부가 6억 6000만 환, 내무부가 90억, 농림부가 150억, 교통부가 2억 4000, 계 피해총액이 250억인 것입니다. 응급복구대책비로는 약 150억이 되는 이러한 중대한 피해인 것입니다. 이번으로 말미암아서 요구호대상자가 28만 명에 달합니다. 그중에는 인명의 손상이 270명이요, 중경상자가 820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특히 경남북 같은 데에는 설상가상으로 지난 21일 날 소위 태풍 7호로 인해서 피해가 더욱더 확대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현지를 가 보니 과연 우리 국민은 인보상조의 정신을 발휘해서 복구에 노력하는데 거기에 미담․가담도 상당히 있읍니다. 그러한 반면에는 특히 양산 같은 데에는 한 부락에 30여 명의 피상자가 난 이러한 참상은 참으로 목불인견인 것입니다. 본 위원회는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서 당초에 결정한 17억 환의 금액을 조속한 시일 내에 방출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며, 특히 항구대책에 관한 사항도 명년 예산에 반드시 반영시키도록 최선을 다할 각오로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그동안 수해대책위원회의 활동상황의 개요를 말씀드립니다.

다음은 태풍피해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최병권 의원의 발언이 있읍니다. 최병권 의원 나와서 말씀하세요. ―태풍피해에 관한 보고―

항상 제가 여기에서 발언하는 것은 대개 저의 선거구가 섬이기 때문에 피해를 입는 그때마다 자주 나와서 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을 특히 미안하게 생각합니다마는 출신 의원으로써 내 지방의 피해가 많이 생길 때에 이것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에게 많은 양해를 구하면서 간단히 금반 7호 태풍에 대한 울릉도 피해상황을 여러분 앞에 보고드리기로 하겠읍니다. 금반 8월 21일 날 내습한 7호 태풍은 여러 선배 동지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울릉도를 중심해서 북상하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이 피해로 말미암아서 우리 울릉도에는 유사 이래 보기 드문 큰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 피해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말씀드리자면 현재 이재세대 수가 387호요, 이재인 수가 3666명, 주택유실과 및 괴도된 것이 387동, 선박피해가 46척, 농작물은 전연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게끔 피해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 항만시설 도로 또는 교량 등은 거개가 다 피해를 입고 있는 처지이므로서 현재 그 피해액의 내용을 말씀드리자면 농작물에 대해서 약 1억 2000만 환 정도이며 총피해액은 일억기천만 환에 달하고 있는 비참한 처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선배 의원 동지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88년에 8호 태풍이 울릉도에 내습을 해서 보기 드문 피해를 입었고 그 이후에 89년에 12호 태풍으로 또 울릉도는 많은 피해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년 역시 8월 7호 태풍으로서 3년간 계속적으로 우리 울릉도는 눈물겨운 피해를 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부에서는 여기에 대한 대책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다만 과거 수해로 말미암아서 경남 중심으로 많은 구호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도에는 아직 정부로서의 아무런 혜택을 보여 주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고 있는 것은 우리 울릉도는 인구가 불과 2만밖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마는 그래도 이것이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요, 뿐만 아니라 우리 정부에서 이러한 고도를 특별히 돌봐주지 않으면 2만 도민은 살 수 없는 형편입니다. 이 점을 정부 당국은 물론 여러 선배 동지에게 호소하여 앞으로 많은 협조를 바라며 우리 울릉도의 참담한 피해에 대한 많은 원호 있기를 거듭 바라면서 간단한 몇 마디로 보고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다음은 강승구 의원의 보고사항이 있읍니다. 강승구 의원 나와서 말씀하세요. ―간첩피의자 김정제의 연설과 양주군민 동태에 관한 보고―

여러분이 지상을 통해서 잘 보셔서 아실 줄을 믿습니다마는 지난 8월 18일 날…… 요전에 신문에는 19일이라고 났는데 18일 날 간첩피의자로 체포된 김정제가 양주군 와부면에서 자유당 월례회…… 이 월례회는 달마다 자유당 간부들이 각 면에 모여서 강연회도 하고 또 자유당에 대한 추진 논의도 하고 또 기타에 술과 밥으로서 하루 동안 지내는 이런 회의를 월례회라고 하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우리 지방에서는 이 자유당 월례회를 자유당노리라 이렇게들 지급 부르고 있는데 우리 양주군민들이 부르는 그대로 8월 18일 자유당노리에는 본래 예정수효가 300명이였는데 남녀노소 합해서 약 700명이 모였던 것이올시다. 이 석상에 여러분이 지상을 통해 보는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 대한민국의 국방시설 또는 기타 재건시설 모든 방면에 긍해서 일일이 무전으로서 이북에 첩보를 자행한 그뿐만 아니라 지상에 발표된 바와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공작비 1만 딸라에 가까운 돈을 가지고 들어와서 국내에서 갖은 간첩행위를 감행한 간첩피의자가 적어도 천하 공당인 자유당 월례회에 와서 일장 연설을 했다고 하는 것은 전 국민의 분노와 흥분을 가저오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인 것이올시다. 이 강연회가 있은 뒤에 나 자신은 군민의 여론을 수집해 보았던 것이올시다. 내가 이것을 이 자리에서 심각하게 폭로하고 싶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군민의 민심 동태가 이렇다 하는 것을 이 자리에 보고드려서 양주군뿐만 아니라 전국에 미치는 파동이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소홀히 듣고 지날 수 없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보고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올시다. 첫째로 김정제에 대한 과거는 내가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지 않겠읍니다. 과거 일정 때에 그 사람이 어떤 친일파에 속하느냐는 것을 나는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양주군수로서 해방을 맞은 사람이기 때문에 공출이 심각한 그때에 이 사람의 행위는 내가 이 자리에서 개인 문제이기 때문에 예거할 필요가 없지만 8․15 해방 이후 우리 양주군에 사는 사람들은 이번 보도에서 발표된 바와 내용이 좀 다르게 알었던 것이올시다. 근로인민당에 적을 분명히 두었던 사람이라는 이런 이야기가 돌았던 것이올시다. 경무과장 당시에도…… 그러나 이번 신문을 보니 근로인민당 선전책은 아니고 남로당에 가입되었던 사실이 발표되었던 것이올시다. 어쨌든 근로인민당이거나 남로당이거나 이것을 알 바가 아니요, 이북에 넘어갔다 넘어왔다 한 사실이 엄연히 있는 김정제는 과거에 근로인민당과 접선했던 관계와 또는 이북에 월북을 자행했다는 사실로 보아서 이 사람은 간첩이 아니라도 간첩혐의가 없다고 해도 나의 상식으로는 우리 민주당 월례회가 있다면 나는 이런 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찬조강연을 해 달라고 하고 싶지 않었다 그런 말씀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나와서 찬조강연…… 여러분 들으시면 이상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마는 자유당 양주을구 당위원장…… 순전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그런 말씀이에요. 여기에서 일장 연설한 내용은 내가 밝히자면 시간이 상당히 걸리기 때문에 그 내용을 생략하고 이 사람이 연설하고 돌아간 연후에 우리 군민들은 멸공정신이 말살되었다 그런 말씀이에요. 자유당은 천하 공당인데 저런 좌익 저런 간첩을 데리고 와서 남녀노소 700명을 모아 놓고 행정부를 뚜드리고 민주당도 나쁘다 이렇게 지적한 것을 볼 때에 대한민국에 멸공투쟁할 필요 없지 않느냐 이런 인식을 일반 주민에게 주었다 그런 말씀이에요. 그다음 일반 군민들은 수사기관의 무능력을 폭로했다고 지적하는 것이올시다. 내가 처음에 이야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8․15 이후에 그 사람의 걸어온 길이 이렇게 좌익혐의가 확연한데도 불구하고 또는 단시일에 간첩행위를 한 것도 아니요, 장시간을 두고 북쪽에 넘어갔다 넘어왔다 이러면서 간첩행위로 지속한 이 사람, 지상에 발표된 바와 마찬가지의 어마어마한 사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체포 2, 3일 전까지 엄연히 백주 700명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는 것은 수사기관의 무능력이 아니고 무엇이냐 하는 것을 군민들은 지적하는 것이올시다. 나 역시 수사기관의 무능을 완전히 김정제 연설로서 폭로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바이올시다. 그다음에 일반 군민은 자유당은 간첩소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왜냐하며는 자유당 조직부 차장인지 조 모가 간첩사건으로 피체된 불과 기일에 이 사람은 자유당 세상에서는 자유당중앙위원이라고 하고 혹은 보령인가 어디 자기 출신구에 입후보하기 위해서 자유당 공천을 받고 나올 태세를 다 갖추고 있다 이런 얘기가 돌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 자신은 자유당원이거나 중앙위원이거나 이것을 불구하고 자유당 월례회에 나와서 일장 연설을 했으니 이 사람도 자유당 사람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올시다. 그렇다면 조영환 사건을 위시해서 이런 큰 간첩이 또 자유당에 있으니 얼마나 이런 큰 간첩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새끼 간첩도 얼마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의미에서 자유당은 간첩소굴로 일반은 인식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그다음에 이 추태는 어데서 발단되었느냐 하면 여러분이 다 아시다싶이 선거운동은 내년 입후보자가 등록을 완료한 날로부터 선거운동을 해야 원칙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벌써 반년 전 혹은 1년 전 오늘 현재에 불법을 범해 가면서 추잡한 선거운동이 다른 데는 모르지마는 양주을구에 전개되고 있다 그런 말씀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 선거운동의 전초전으로 이런 간첩을 데려다 강연회를 열었던 것이올시다. 김정제와 자기 자신은 이런 얘기를 했읍니다. 내 이것만은 여기서 해명하는데 나는 양수리 방면에 볼일이 있어서 가다가 사람이 많이 모였기 때문에 어떤 영문을 모르고 들어왔더니 자유당 월례회의 또는 여기에 자유당 위원 강성태는 자기와 가장 친분이 있고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마디 얘기를 한다고 서두에서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지나가던 사람이 들어오기로 말하면 부산바닥에 가서…… 시장바닥도 들여다봐야 할 것이요, 중앙시장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강연할 수 있습니까? 이런 궤변과 기만으로서 자기 자신이 일부러 왔고, 일부러 매수되어 왔는지 찬조로 왔는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왔던 것을 군민은 다 얘기하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그러므로서 이 폐해는 불법을 범하는 자유당 전체가 아니라 양주을구 자유당 간부들은 앞으로 선거기간이 8개월이 남은 오늘날 현재 6개월 전 1년 전부터 자유당을 추진하는 선거운동이 전개되니 나는 불법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사건은 추잡한 사태를 가져왔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올시다. 그다음 한 개의 간첩은 대군을 궤멸시킬 수 있는 것이올시다. 그렇다고 하면 김정제 이 간첩은 커다란 간첩인 것이 틀림이 없읍니다. 그렇다고 하며는 여기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겠느냐, 양주에 와서…… 한 개의 간첩이, 대군을 궤멸할 수 있는 간첩 자신이 양주을구에 와서 일장 강연을 하고 가게 된 책임을 누가 져야 하겠느냐 이것은 내가 이 자리에서 책임추궁을 하지 않겠읍니다. 여러분 비판과 수사 당국에 맡기고 말 것이올시다. 그다음 내 여기서 제시한 조건에는 ‘손도심 의원의 연설내용과 청중’이라는 내용을 내 말씀드릴려고 했는데 이것은 본 의원과 당시에 미국 갔던 국회의원 야당의원과 내가 일일이 만나서 강연내용을 검토한 연후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사전에 오늘 일즉 나와서 그 내용을 알어볼까 했더니 오시지 않었기 때문에 이 내용을 검토 못 했기 때문에 이것은 제외합니다. 그다음에 이것은 겸하여 이런 자유당노리에 700여 명을 모아 놓고 그런 부당한 불법적인 회합을 해 가지고 이러한 파동을 일으키던 최후에는 이 사람 자신에 대한 공격이 나왔더라 그런 말씀이에요. 여러분, 이 자리에서 이 사람 자신에 대한 공격이 있다는 자기 사적 문제니 얘기 안 해도 좋지 않느냐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처음부터 이런 결론으로 맺어 오다가 끝으머리에는 강승구 자신을 뚜들겼더라 그런 말이에요. 어떻게 뚜들겼느냐? 여러분 앞에 간단히 해명하겠읍니다. ‘강승구는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들어간 사람이니 이런 사람은 국회에 보내지 말어라’ 이런 얘기의 예를 들어 가지고 강승구에 대한 얘기를 여러 가지를 했는데 내 이 자리에서 그것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읍니다. 자유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들어갔으니 그 사람은 변절자 아니냐, ‘변절’이라는 문자가 언제부텀 났지요? 군주주의시대에 ‘충신은 불사이군 이요, 열녀는 불경이부 ’란 여기서 변절 문자가 났던 것이올시다. 그러면 우리 더듬어 보자 그런 말이에요. 군주주의시대에 임금을 바꾼 사람은 변절이라고 한 그때를 더듬어 보자 그런 말이에요. 탕이 방걸하고, 탕이 걸을 내어 쫓았어요. 무왕이 벌주, 무왕이 주를 비었어요. 있을 수 있는 문제냐 그런 말이에요. 군주주의시대에…… 그러나 요순 우탕 문무 주공, 여덟 성군 중에 임금을 내쫓은, 방걸 한 탕 임금이 들었고, 벌주 한, 주를 빈 무왕이 들었다 그런 말이에요. 이것이 과거부터 문제가 있던 문제인데 탕이 방걸하고 무왕이 벌주했으니 신하로 임금을 쫓고 임금을 비었으니 할 수 있는 문제냐 했을 때에 답변을 어떻게 했느냐 하며는 ‘나는 일부 의 걸과 한 지아비의 주를 비었다고는 들었지만 임금님 걸과 주를 비었다고는 듣지 못했다, 임금은 임금이지마는 한 지아비와 마찬가지다’ 그런 얘기야, 비어도 좋다, 여러분, ‘탕보고 변절이란 말을 들었느냐? 무왕보고 변절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그런 얘기이에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자유당이 오늘 여기서 얘기하는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당을 나왔던 것이라 그런 말이에요. 나와서 내가 의도하는, 내가 이념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동지가 뭉치기 위해서 민주당에 들어간 것이 내가 잘못이냐 그런 말이에요. 이것을 여러분 앞에 해명하고 내 선거구에 선거전이 전개될 때는 내가 그때는 내 개인의 문제에 맡기는 문제올시다. 그다음에 또 내 한 가지 여기서 밝혀 둘 것은 우리가 이 국회 내에도 이런 얘기가 가끔 있읍니다. 전라도, 뭐 저 전라도 동지들이 들으시면 좀 곤란하실는지…… 노엽게 들으실는지 모르겠읍니다마는 하와이 또 어떤 사람은 전라도 뭐 또 인제 이북 놈 또 이북에는 관북 관서 호남 영남 이것을 얘기하는 이가 있더라 그런 말이에요. 우리 선거구에서 요즘 그런 얘기 있어요. ‘이북사람을 추방하자’ 그거 양주 자유당 스로강이올시다. 날보고 이북사람이라고 지적하는 것이올시다. 그래서 이것 이 자리에서 이것을 밝힐 장소도 아니고 시간도 아닙니다마는 전 국민에 미치는, 전 민족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내 이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이올시다. 나는 연산사화 때에 내 조상 삼형제가 사화를 당했어요. 그러기 때문에 그때부터 강 씨는 고집이 많다는 전설이 있는 것이올시다. 그때에 함경도에 내 선조께서 셋째 분이 귀양을 갔었던 것이에요. 그래서 거기서 유언을 하고 ‘이백참견지지 라’, 두 백씨 가 죽은 땅이라, ‘오불인견이라’, ‘내가 참아 볼 수가 없으니 나는 적소에서 죽을 테니 적소에 장사를 지내라’ 해서 산소가 거기에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 동족도 거기에 많이 살거니와 내 증조 때에 거기에 낙향하셔서 우리 일가들이 많으니까 거기서 내 조부와 내 어르신네까지 거기에 계셨던 것이에요. 그러면 이북사람이라 하자 그런 말이에요. 이런 것은 다 그만두고 말하라 말이에요. 율곡선생이 말하기를 ‘손바닥만 한 땅에 네 도 내 도 무삼일까’ 하는 율곡 구곡시에도 있었읍니다. 그때에 전라도 함경도 경상도 이 구별해 가지고 민족적 지역차별이 많었기 때문에 인재도 등용 못 하던 그때를 되푸리해 가지고 ‘양주에서 이북사람을 추방하자’, 왜 미국사람은 못 추방해요? 왜 쏘련 놈은 이북에 와 있는 것을 추방 못 하고 적어도 양주에 33년 동안 적을 두고 있는 강승구, 서울 종로구에 본적을 두고 있는 강승구를 이북이라고 제거한다고 하면 다시 되돌아가 율곡선생 구곡시에 나타난 바와 마찬가지로 국가 민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말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삼가야 할 것이고 될 수 있으면 우리는 지역적 이런 차별을 없애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국회도 소용없는 것이요, 대한민국의 12부처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혹 여러분 중에도, 특히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전에 임하여 추잡한 이런 행위를 하지 말어 달라는 것을 보고로써 말씀드리고 간단히 그치겠읍니다.

다음은 정갑주 의원의 보고사항이 있읍니다. 정갑주 의원…… 저 정갑주 의원하고 좀 의논해 주세요. 지금 강승구 의원의 보고사항에 있어서 손도심 의원에 대한 반박이 있으니 손도심 의원이 거기에 대한 해명을 하시겠다고 합니다.

제가 강승구 의원이 말씀하신 데 대해서 반박하는 말씀은 한마디도 드리지 않겠읍니다. 사실은 강승구 의원께서 보고하시는 중에 저희 자유당으로 생각할 때 좀 본의가 아닌 그런 일에 대해서 언급이 계셔서 그 문제에 대해서 제 사실의 경위만 설명을 드리고 그리고 내려갈려고 그럽니다. 강승구 의원께서 말씀하신 대로 자유당의 양주군 월례회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자유당 양주군 을구당의 위원장이 우리 자유당중앙당부 총무위원장인 강성태 씨이십니다. 그래 그분이 선전위원회에 있는 저에게 부탁을 하시기를 가서 월례회에 격려의 말을 좀 하고 사기를 앙양을 해 다오 이렇게 말씀이 계셔서 저의 직책도 직책이고 그래서 당에 충실하는 마음과 직책을 수행하는 그런 생각으로 그 요청에 응해서 제가 갔읍니다. 제가 거기 가서 말씀한 중에 강승구 의원이 손해가 난 점이 더러 있었겠는데 이제 강승구 의원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아주 격렬한 말씀을 하셔 가면서도 저희 말한 바에 내용에 대해서 언급 안 하신 것을 보니까 강승구 의원이 비록 당의 소속은 현재 다를지언정 사분 으로 보아서 그렇지 못할 처지니까 아마 널리 보아주셔서 제 공격을 안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 사적인 얘기 같습니다마는 이 자리를 통해서 강 의원에게 ‘그 점은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김정제라는 사람이 지금 간첩피의를 받고 여러 가지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어서 거진 간첩임에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판결을 보아야 알겠읍니다마는…… 그런데 이분이 양주군 을구당 월례회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에서 발언하게 된 경위만은 제가 그 자리에 임석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당의 입장으로도 공적으로 이 문제가 나오면 한마디 그 경위는 밝혀 드려야 할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드립니다. 그때 군 당월례회가 있어서 군 당위원장님이신 강성태 씨와 저와 또 그 수행원과 같이 자동차를 타고 갔읍니다. 가서 여러 분이 모여서 계신데 제가 자유당에 이로운 말, 자유당을 여러분이 많이 찬성해 달라 이런 말을 긴 얘기로 여러모로 설명을 했읍니다. 그리고 끝나는 무렵인데 강성태 씨께서 웬 분을 한 분을 소개를 해요. 그래 누구나 그랬듯이 이분은 김정제 씨인데 학교로 보아서 일제 때에 같은 학교에 선후배 관계에 있었던 분이고 또 특히 이분이 일제 때에 양주군수를 지냈는데 공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놈들이 가혹하게 공출을 맡기는 것을, 김정제 이 사람은 일제 때에 뭐 창씨 명을 무엇이라고 했던지 지금 기억이 안 납니다. 아무 군수라고 해서 유명하게 아주 왜놈들이 많이 뺏어 들이라고 그러며는 그자들과 항거해 가면서라도 될 수 있는 대로 적게 뺏어 들이기 위해서 애써싸서 지금도 양주군민들에게 다소 인기가 있다 그래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아, 그러시느냐?’ 그러고 인저 거기서 인사를 했는데 김정제 씨 얘기가 ‘내가 여기에서 여러분 뵌 지도 오래고 그러니 인사의 말씀을 드리면 좋겠는데 허락해 주겠느냐?’ 강성태 군 당위원장에게 얘기를 하니까 아 인사를 해 달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디다. 그래 강성태 위원장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제가 알기에는 과거에 인기가 있던 분이고 지면이 있는 분이 와서 인사를 하겠다고 하니까 조금이라도 자기 조직에 도움이 되고 또 좋은 인상을 줄가 해서 허락을 했을 것입니다. 강성태 씨라고 무슨 정신병자여서 또 무슨 공산당하고 내통을 한 사람이여서 하필 공산당 간첩을 거기까지 불러다가 여러 사람 모아 놓고 연설을 시킨 것은 아니다 이렇게 상식적으로 생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인저 그 연설이 끝났는데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오게 된 연유는 제가 그날 알었는데 김정제라는 사람이 자기가 아마 그전에 오래 있었고 또 그랬고 또 양주군 그쪽이 경치가 좋아서 그랬는지 양수리 쪽을 아이들하고 놀러 나왔다가 강성태 씨께서 나온다는 말씀을 듣고 여러분이 뫼신다는 말씀을 듣고 인사하러 나왔다 이런 얘기를 들었고, 과연 그분이 찦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길로 오게 되었는데 그 딸이라는 아이하고 아들이라는 아이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같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리고 나서 ‘아, 김정제라는 분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며칠 있더니 신문에 김정제 대남공작대원, 간첩 김정제가 체포가 되었다 이런 소리를 듣고 아 깜짝 놀랬읍니다. 제가 해방 후에 겪은 예가 이런 예가 많이 있읍니다. 부산 같은 데를 갈 때도 번연히 기차간에서 아주 그 점심밥도 같이 사 먹고 담소자약하고 그러던 친구인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멀쩡한 빨갱이어서 잡혀가고 그런 예가 있는데 결국 간첩을 우리 신변에 가까이 하지 않는 그런 주의는 우리가 절대 필요합니다. 자유당으로서도 그래 김정제하고 연설을 같이 했으니 어쩌란 말이냐, 뭐가 우리가 잘못했다는 말이냐, 잘못한 것이 없다 이렇게 역격습으로 나갈 마음은 없읍니다. 알고 그랬건 모르고 그랬건 자유당의 회합에, 지금 공산당하고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 자유당…… 대한민국의 여당으로서 그 공적인 회합에 몰랐다고 하더라도 간첩이 끼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전 국민 앞에 ‘대단히 미안하다’ 그런 말씀은 드려 두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것 어느 귀신이라고 이것을 미리 알 도리는 없지 않느냐? 그러면 이것이 인제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으로 공격의 자료가 된다면 왜 연설하기 전에 경찰은 못 잡았다는 말이냐, 연설하기 전에 아 이 경찰이 못 잡은 것은 새로 하고 통행금지시간 후에 두 사람이 나가서 없어졌는데 아 이것 어떻게 된 것이냐고 국회에서 막 공격이 나고 신문에 나고 이러는 지금 여․야당 싸움에 왜 민주당 측에서는 또 진보당 측에서는 아 김정제가 간첩이니 잡아라 한 말씀이 없었더냐 얘기가 이렇게 자꾸 변하면 이것이 괜히 싸움만 되고, 그래서 그저 그쯤 얘기를 하고 제가 이 자리에 올라온 길에 간첩 관계의 얘기를 한마디 하겠읍니다. 이북에서 이남에 자꾸 넘어오는 간첩은 그전에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의미의 간첩이 아니라 돈 잔뜩 가지고 와서 그자들은 유일한 사명으로…… 유일한 사명으로 이웃사람과 친하고 인심 얻고 그 동리에서 인기 끌어 가면서 잘살거라, 단지 선거 때에는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을 치고 될 수 있는 대로 사회주의적인 경향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을 지지하게 하고 또 이웃 중에 사회주의 경향이 있는 사람은 사적으로라도 슬슬 도와주어서 그 사람의 호감을 사고 그 사람이 자진해서 사회주의적인 방향으로 말을 하고 글을 쓰고 또 그런 사람을 도와주고 이런 방향으로 나가도록 조장을 해라…… 국가보안법이 아무리 무섭고 대한민국의 사찰진이 대공사찰을 아무리 지독히 한다고 하더라도 그 합법적인 투쟁을 이렇게 전개해 나오는 데는 우리가 어떻게 손을 댈 수도 없고 지금 감히 외람한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대한민국의 전 대학이 지금 어느 지경에 이르렀고 어떤 진영에 의해서 독점되어 가느냐? 이런 것은 여러분이 그 지배하는 세력의 전신이라든지 전력이라든지 이런 것을 체계적으로 과학적으로 검토하면 능히 알 수 있는 문제가 되겠읍니다마는, 이렇게 자꾸 이런 방향으로 잠식해 나가는 것을 저희 여당 집권정당에서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민주당 여러분이나 또 다른 국가를 걱정하고 민족을 우려하는 이런 정당에서 다 같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겠느냐. 이런 방향으로 나가며는 결국 겉깝대기로는 북진통일이요, 뭐 반공이요 떠들어도 속에는 엉웅하니 벌러지가 먹은 헛깝대기 대한민국으로 되어서 그냥 위험한 지경에 이르지 않느냐…… 이 간첩들은 될 수 있는 대로 현재 집권정당인 자유당 고위층이나 자유당의 중요한 핵심에 가까이 접근할려고 노력하고 있을 것만은 사실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공산당과 죽느냐 사느냐의 투쟁에 있어서는 자유당과 민주당의 싸움이라…… 서로 이 정권을 누구가 담당하느냐 이 문제보다는 좀 심각한 문제이니 서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비밀을 지켜 가면서 얼마든지 스며들어 오는 대남공작대, 우리 국가 민족을 파괴하는 이 분자를 색출해서 우리 국가의 안전함을 반석 위에 세울 수 있는 그런 자리에 놓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 문제는 정쟁 이상의 것이고 정권 이상의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제가 이만 물러가겠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정갑주 의원 보고해 주세요. ―부락민과 나병환자와의 충돌사건에 관한 보고―

국회가 시작하는 첫 마당에 아름답지 못한 보고를 드리게 되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경상남도 사천군 서포면이라고 하는 데에서 일어난 나환자들과 부락민의 충돌사건을 대강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나환자라는 것은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문둥병 환자인데 그 문둥병 환자에 관한 이야기라서 기분이 좋지 못한 것입니다마는 경상도 말에 이런 말이 있읍니다. 꿈에 문둥이를 보면 집에 대단히 재수가 있다 그런 얘기가 있읍니다. 이 얘기는 특히 재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마는 나환자라든지 혹은 부락민이라든지 충돌하지 아니하면 안 될 정도에 이르른 사정을 정당하게 의식하기 위해서 잠깐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나환자들과 부락민의 충돌이 난 것은 지난 8월 28일 하오 6시 반부터서 7시 반경에 이르르는 약 1시간 동안이올시다. 이 장소는 사천군 서포면 비토리, 토끼가 날라다니는 유명한 섬이올이다. 나를 비 자에 토끼 토 자 비토리올시다. 이 비토리라고 하는 데서 충돌이 났읍니다. 거기에 충돌에 가담한 인원수를 보면 나환자 측이 총 98명 그중에 여자 나환자가 열네 분이 들어있읍니다. 그래서 이 나환자 측에서 환자가 98명이고 서포면 그 비토부락에…… 비토부락의 부락민이 참가한 수가 약 100명 이렇게 인원수가 배열이 되었던 것이올시다. 그래서 이 1시간 동안 충돌을 한 다음에 결과를 보면 나환자 측에게 스물네 사람이 사상자가 났읍니다. 그다음에 대단히 중상을 입은 분이 설흔두 사람이고 경상을 입은 분이 스물세 사람이올시다. 그리고 부락민 측에는 큰 중상은 안 났는데 머리대기가 터졌다든지 팔이 터졌다든지 하는 사람이 열일곱 사람이 났읍니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충돌이 났느냐? 이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해방 직후에 이 비토리에 나환자가 역시 이주를 한 일이 있읍니다. 그때에 나환자들은 자기들이 불우하기 때문에 일반 사회에서 잘 환영을 하지 아니한다, 어디로 가든지 자기네들이 거주하는 데 적당하다고 하는 장소가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서 사는 이런 경향이 있읍니다. 7년간에 이들이 역시 비토에 들어가서 일시 산 일이 있었는데 이 비토라고 하는 섬은 조그만한 섬인데 자급자족할 만한 섬이고 또 이 바다에서 굴이라든지 조개가 많이 납니다. 이 나환자들이 그때에 굴이나 조개를 따 가지고 사천이라든지 혹은 삼천포시장이라든지 대부분이 부산시장에다가 팔어먹는 것이올시다. 그래서 그때 이 서포면에서 오는…… 서포면이 경상도에서도 유수하게 굴이나 조개가 많이 나는 지방이올시다. 그리고 부산에서나 객지에서 이 서포면에서 오는 개반은 전부 나환자들이다, 이런 물건은 위험하다 해서 이것을 시장에서 경원시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부락민과 충돌이 있어서 일시 후퇴를 했읍니다. 그랬는데 지난 8월 2일경에 그 삼천포 침암리라고 하는 데 있는 이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간부끼리 의논을 했다고 그럽니다. 이번 참에 우리가 서포면에 들어가서 여기에다가 의료나환자요양소를 설치하도록 하자 그것을 결의해 가지고 그 수속절차를 도에다 제출하는 동시에 우선 현지로 들어왔던 것이올시다. 그래서 부락민과 여러 가지 충돌이 있기 때문에 지서에서 대표 2명을 불러 가지고 ‘지금 당신네들이 일반 민간인이 사는 비토리에 들어올랴고 하면 정당한 법적 수속을 취해 가지고 지서나 보건사회부장관의 허가를 맡어 가지고 들어오라, 그렇지 않고 불법적으로 이렇게 들어오면 문제가 곤란하다’ 그래서 일단 이들이 부락민의 지시에 의하여 후퇴를 해야 되겠다 그럽니다. 그랬는데 그것이 16일이고…… 16일 날 그렇게 되었는데 물러갔는데 23일 날 다시 약 70명가량 되는 환자들이 천막을 가지고 비토리에 들어와서 천막을 치고 이주하기 시작해서 사고가 난 28일까지는 98명이라는 남녀 환자가 다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에 부락민이 또 지서에다 요청을 해 가지고 이이들을 정당히 조사해 달라고 요망이 있어서 이 나환자대표 2명을 다시 지서에 불러 가지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속히 퇴거하라는 말을 했는데 그때에 나환자 측에서는 ‘그러면 부득이 우리는 물러가겠소’ ‘언제 물러가겠느냐?’ ‘27일까지 완전히 물러가겠소’ 이와 같은 서약서를 서포면지서에다 내 왔읍니다. 그래서 서포면 비토리 사람들이나 지서에 있어서는 27일까지는 이 사람들이 물러가려니 하고 기다리다가 27일 날 서포면 지서 차석이 순경 5명 데리고 이 사람들이 철퇴하나 안 하나 또 민간 사람들과 철거하는 데 충돌이 나지 않겠는가 이런 염려를 가지고 이 사람을 데리고 현장에 나갔다고 합니다. 이 지서직원이 나가니까 부락민 남녀 70여 명이 과연 이 사람들이 순순히 물러가나 안 가나 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거기를 나갔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이 순경하고 부락민 70여 명이 가니까 나환자 측에서 아마 오해를 해 가지고 ‘저 사람들이 우리들을 강제추출할려고 하지 않느냐?’ 그래서 조그만한 돌멩이를 던져서 가까히 오지 못하도록 경계를 했다고 합니다. 그때에 지서차석이 공포총을 한 방 쏘고 그와 같이 충돌해서는 안 된다고 양쪽을 갈러서 부락민도 돌려보내고 나환자들도 곧 돌아갔읍니다. 그리고 부락민도 다 돌려보내고 그리고 했는데 27일 날 역시 나환자들이 물러가지 않고 그대로 깔렸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 발단인데 27일 날 그 부락민을 보고 나환자들이 ‘우리들은 문둥병이 들어서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데 너희들은 사지 대지가 성한 놈들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 왜 우리들을 이와 같이 죽일려고 하느냐?’ 그래 가지고 욕설도 좀 하고 그렇게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부락민들이 상당히 분격을 해 가지고 28일 날 아침결에 남녀노소 약 150명가량이 이 나환자 있는 곳으로 또 습격을 해서 갔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차석은 곧 경계를 내서 양쪽을 갈러 모으고…… 한참 28일 오전 중에도 돌멩이를 던지고 죽창을 내여 보이고 모두 야단이 났다고 그래요. 그래서 차석이 곧 양쪽으로 갈라 모으고…… 28일 오전 중에는 돌멩이도 던지고 모두 죽창을 내보이며 야단이 났다 그래요. 그래서 차석이 격리를 해 가지고 쌍방에 있는 죽창을 전부 다 거두고 ‘부락민대표 다섯 사람 나환자대표 다섯 사람이 지서로 가자, 그래 가지고 이 문제를 우리가 의논을 해서 결정하자’ 그랬는데 환자 측에서는 거기에 응하지 않었다고 그럽니다. ‘당신네 지서 사람들이 우리를 쫓아낼랴고 부락민하고 짜 가지고 그러는데 우리는 여기에 응하지 못하겠다’ 이렇게 항의가 있어서 지서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부락민을 잘 조정을 하고 당면문제를 선처하려 가자고 해도 결국 그이들이 오지를 않어서 할 수 없어서 지서에서 그 양쪽 무기, 무슨 죽창이니 곤봉이니 다 거두어 가지고 부락민만을 데리고 물러가고 나환자들이 속히 물러가라고 설유를 하고 갔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이 부락민이 돌아가는 중에 비토에서 젊은 청년 몇 사람이 여기에 숨었다가 경찰이 현장을 물러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재습격을 했다고 그랬읍니다. 재습격을 해 가지고 결국 나환자하고 전쟁이 벌어졌에요. 처음에는 쌍방이 돌멩이를 던지고 나중에는 가까히 가 가지고 곤봉을 가지고, 죽창하고 있는 대로 가지고 야단을 쳤고 또 이 나환자들이 천막을 쳐 가지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석유, ‘호롱불’을 쓰고, 석유…… 조그만한 미국제 한 말 드는 통을 거기에 두었는데 천막이 자빠지고 그때 환자들이 무엇 때문에 부엌에 불을 넣었다고 그래요. 그것은 환자들은 자인을 합니다. 천막이 엎어지고 불이 모두 붙고 그놈이 석유에 불이 붙고 해서 천막이 다 타서, 그래서 상당한 전쟁이 벌어졌는데 사후에 그 이튿날 밤에 얘기를 듣고 새벽에 가 보니까 천막이 다 탔고 남자환자 한 분이 한 손에 화상을 많이 입고 부인 한 분이 뒷발이 좀 타졌고 혹은 화상을 좀 입은 사람이 다섯 사람가량 있고 그 외에 열일곱 사람은 여기저기 바닷가에 도망을 가다가 좀 뚜들어 맞은 상도 싶으고 싸움을 하다가 죽은 상도 싶으고 해 가지고, 그래서 결국 시체가 스물네 사람이 났고 부상자가 아까 몇이 생겨났고 이렇게 됐어요. 그래서 지서주임이 전 직원을 동원을 해 가지고 나와서 공포를 다섯 발을 쏘고 양쪽을 다 제치고 나환자 중에서 병이 들고 또 부상을 한 사람은…… 그 사람의 수효가 스물여덟 사람인데 지서 직원이 두 분이 말려서 가까스로 전부 배로 운반해 가지고 수용소로 돌려보냈는데 그 현장에서는 민간 측 폭도 67명을 전부 검거를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충돌의 대강 경위올시다. 그래서 이 사건이 나고 난 다음의 대강 조처는 이상인데,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에 우리가 경찰서에 물었습니다, ‘어떻게 됐느냐?’, 이 지서의 경비전화가 불통이고 또 이 현장이 서포면지서로부터 약 4키로 반 떨어진 조그마한 섬이올시다. 경비전화로 연락이 안 되고 사건이 급하고 그래서 지서에서 본서에 전연히 연락이 없었에요. 지서가 본서에 연락한 것은 그날 밤 9시 반경, 9시 반경에 경비전화가 마침 수리가 되어서 겨우 지서에서 본서로 연락이 왔고 또 수용소에서 원장이 경찰서와 우리 집에 찾어와서 그 얘기를 해서 알었읍니다. 그래서 서장은 지급히 본국에 보고하고 경비주임이나 사찰주임을 동원을 해 가지고 비상소집을 해 가지고 경관 30명을 현장에 보내서 조치를 했다고 그럽니다. 그리고 경상남도에서는 그 이튿날 일찌감치 경찰국장이 문교사회국장과 같이 왔고 곧 이어서 지사가 오시고 감찰계장 등 관계 주무 국․과장이 와서 이 사건을 밝혔고 또 그 이튿날 미명에 진주검찰청에 있는 이순박 검사가 와서 시체와 이 전쟁상황을 일일이 임검을 해 가지고 시체에 대해서는 시급히 장의조치를 하라는 말이 있었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에서 군수와…… 사천군수와 삼천포시장 삼천포경찰서장과 도지사와 협의를 해 가지고 하여튼 이 시비는 나중에 사법 당국에서 밝히겠지만 이 환자가, 이와 같이 다수 사람이 죽은 데 대해서는 국민으로서 조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서 또는 거군적으로 사천군이 중심으로 해 가지고 장의를 무사히 마치고 전부 관을 해서 입관을 하고 또 화장을 해서 유골함을 만들어서 성대히 장의를 마치고 유골은 이 수용소에 돌려보내서 유가족이 원하는 분에게는 유가족에 돌려보내고 수용소에는 큰 예배당이 있기 때문에 예배당에서 장사를 지낼 사람은 지내도록 이와 같이 조처를 한 것이올시다. 현재로 말하면 이 나환자수용소에 있는 나환자에 대해서는 경상남도 보건과에서 또는 보건사회부에서 긴급한 약을 보내고 해서 치료에 만전을 기하고…… 삼천포시 공의가 주동이 되어서 삼천포시 내에 있는 의사들이 치료를 해서 매일 50여 명의 환자의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올시다. 이상이 대개 이 사건에 관련된 일이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릴 것은 이 사건에 대해서 사천군 일대 혹은 삼천포 가까운 데 하동이라든지 남해라든지 이런 가까운 지방에 있는 일반 여론을 소개해 드리겠읍니다. 첫째, 민간이 이 나환자를 이와 같은 사상을 낸 것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하는 여론이 있읍니다. 그다음에 이것이 아직 완전히 조사가 안 되었지만 현재까지…… 그저께까지 조사한 상황에 의하면 나환자는 어디로 가도 자리를 비어 놓고 ‘들어오시요’ 하지를 않고 불법으로 우선 점령을 해 가지고 일을 해야 된다 이와 같은 관계가 있어서 무턱대고 서포면에 들어갔다는 것이 나환자들이 잘못되었고 또 자기네들이 물러간다 서약을 해 놓고도 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항거를 해 가지고 사건이 일어났으니 환자들이 잘못되었다 이런 의견이 있읍니다. 또 동시에 환자가 좀 잘했다고 하더라도 부락민이 그와 같이 해서 환자들이 사람이 많이 상했다고 하는 것은 부락민이 잘못되었다 이런 정도의 의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방에서, 이 사건은 사실은 내가 금년 봄까지 이 요양소의 원장을 했읍니다. 이 사람들이 선거 후에 ‘표를 써 주었으니 원장을 하라’는 요청이 있어서 원장을 했는데 아! 이것 보건부에 날마다 이런 서류를 내 놓니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대부한 것은 연락을 해 주지만 이와 같은 사무적 절차까지 일일이 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니 당신들 중에 일해 볼 사람을 하나 내라, 내면 나는 원장이 아니라도 이것을 해 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원장을 하는 사람이 경상남도 합천 출신인데 ‘정 장로’라고 하는 기독교 장로올시다. 그런데 현재는 내가 관계하고 있지 않지만 이 관계를 내가 잘 압니다. 또 요양소에 있어서도 이번 참에 이 사건이 났을 때에 정갑주 의원이 여기에 대해서 조처를 해 주면 다소 자기들도 그대로 순응을 하겠다는 그런 얘기가 있는데 요양소문제에 대해서는 그 충돌 여부라든지 모든 것은 이것을 엄격하게 경찰과 시방 검찰이 관계자를 전부 구속해 놓고 조처를 하고 있고 나환자 측에서도 만일 공정하게 심판이 내리며는 자기들도 이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올라올 때에 얘기했어요. ‘만일 환자 측에서 요망할 사항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얘기를 해라 또 당신들 중에 그 관계자가 산 사람이 있으니 언제라도 재판소나 검찰청에 가서 증언을 네가 해라, 그래 가지고 시비를 완전히 가리자’, 이래서 이 사실은 아무 권력도 할 도리가 없는 것이고 검찰청이나 경찰서에서 엄중하게 공정한 심판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만일 부정이 있다고 하며는 환자 측에서 살어 온 사람이 열셋이나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입증을 해서 최후에 공정히 해결할 사정에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일부 여론이 경찰에 대해서 상당히 불만이 있읍니다. 어떻게 해서 경찰이 이와 같은 사건을……

좀 간단히 하세요, 정 의원!

내 자신도 여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평이 있읍니다. 그런데 이 서포면이라고 하는 것이 삼천포경찰서로부터 약 80리 떨어진…… 또 거기에서 10리가 더 떨어진 조그마한 섬에서 일어나고 하필 경비전화인지 고장이 나 가지고 지서주임 혼자 허덕거리고 본서에 연락을 못 해서 본서가 사건이 다 나고 난 후에, 그것이 7시 반경에 사건이 났는데 겨우 9시 반경에 본서가 이것을 손을 댔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럽니다. 이것은 나환자들에게 물어보아도 그러고 부락민에게 물어보아도 그러고 경찰도 그러고…… 이래서 이 경찰의 조처는 지서주임이 선처 못 한 것은 유감이지마는 경찰로서도 최선을 다해서 한 모양 같은데 하여간 이와 같이 일대 불상사가 난 데에 대해서는 우리가 부락민이고를 놔두고 인도적으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마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본건에 대해서는 환자 측과 부락민과 검찰 측이 딱 대립을 해 가지고 엄정하게 사태를 사실 그대로 규명하도록 되어 가지고 있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간단히 보고를 대하겠읍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요? 이 보고사항에 대해서? 보충보고? 네, 말씀하세요.

나는 나환자를 위해서 한 30년 동안 일했읍니다. 지금 나병원 원장이올시다. 비록 나병이 들었다 할지라도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이 틀림없읍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 땅에서 살 수 없다고 할 것 같으면 어디 가 살 것이에요? 지금 사천의 문제는 대한민국은 자기의 조국이고 경남 사천은 자기의 고향입니다. 고향에서 어디로 가라 말이에요? 갈 데를 지정해 주어요. 생명을 가진 인간을 20명이나 살해했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세계가 용납할 수 없는, 정의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은 비가 나릴지라도 돈을 보내고 몸소 의사가 되어서 치료해 주고 기관을 설치하는데 제 나라 민족을 패 죽인다…… 이런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나환자들의 동향을 얘기하는 것은 지금 경남에 계엄령을…… 비상사태가 발포되었다고 하는데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고 싶은 것은 만일 이 문제가 정당한 문제로 해결되지 못한다고 할 것 같으면 전국에 있는 나환자들은 지금 동요되어 가지고 있읍니다. 내 병원에서도 100여 명이 지금 퇴원할란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대로 된다고 할 것 같으면 내가 언제 또한 학살당할는지 알 수 없으니깐 이번에 해결할란다는 것입니다. 만일 정부가 이 환자를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용소를 탈출해서 자유로 갔다고 할 것 같으면 이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는지 모르지마는 정부가 수용하지 못하는 자유스러운 사람이요. 왜 자기 고향에서 못 산다 그 말이에요? 지금 이 문제에 있어서 지금 전남에 있는 전 환자라든지 경남에 있는 자유 환자들이 보복하겠다고 하는 무서운 심정에 불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적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됩니다. 만일…… 전 세계로 본다고 할지라도 외국인도 이 가장 불쌍한 이 환자를 위해서 동정하고 보호하는데 제 나라 민족이 학살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것은 보건사회분과위원회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서 일단 조사해서 위무도 하고 사실을 규명하도록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은 과반 도미하셨던 한희석 안동준 송방용, 세 의원이 작 26일에 무사히 귀국하셨읍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께 귀국한 인사를 드리겠읍니다. 한희석 의원 나와서 인사해 주시지요. ―의원 환국인사―

지난 5월 10일에 미 국무성 초청에 의해서 일곱 의원이 도미하게 된 한 사람으로서 미국시찰을 끝내고 구라파로 돌아서 제 깐에는 많이 배우고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읍니다. 제가 배우고 돌아온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책자라든지 기타의 형식으로서 여러분에게 보고말씀을 올리기로 하고 그동안 염서 에 많이 애쓰시는 여러분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장기간 국회를 빠지게 된 것을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사과의 말씀만 드리고 귀국한 보고말씀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안동준 의원 나와서 인사해 주세요.

출발할 때도 인사를 못 드리고 갔었는데 오늘도 바쁘신 시간에 이렇게 인사를 드릴 시간을 허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종전의 예에 의하면 외국에 갔다 오신 분이 이 자리에 나오셔서 인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 대개 간단한 한두 말씀으로서 그치는데 저는 조곰 몇 마디 좀 길다고 할까 좀 달리 말씀을 드려 봤으면…… 생각을 합니다. 초조하게 생각을 하시는 분에 대해서는 대단히 죄송합니다마는…… 대체로 영국의 국회를…… 물론 세계일주 하신 분도 많이 계시고 또 잘 아시는 분도 많이 계시지마는 가 볼 때에 도대체 이 의사당 자체가 우리 의사당과는 규모가 틀려서, 우리 의사당은 미국의 의사당과는 합치하는 점이 공통되는 점이 많이 있지마는 영국은 보면 양쪽에서 이렇게 계단에 앉어 가지고서 서로 마주 바라다보고서 여야가 앉어서 발언을 하고 또 그 자리에서 바로 앉어서 혹은 일어서서 질문을 하면 그 상대방에서 답변을 하고 이렇게 능률적인 것을 봤읍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저렇게 먼 자리에서 여기까지 나와서 발언을 하고 또 그 발언이 대개 연설 식의 발언이 되고 그리고 나가고 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나 이런 것도 봤읍니다만 그렇게 귀중한…… 이렇게 멀리 나와서 말씀을 드리는 이런 식의 귀중한 시간을 주셔서 말씀을 드리겠는데 지금 한희석 위원장과 송방용 의원 그리고 저와 셋이서 미 국무성 초청에 의한 7명 일행 중에서 셋만이 구라파를 돌았읍니다. 그래서 저 없는 시간에 제가 관계하고 있는 국방위원회의 병역법 이것을 또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주시고 해서 그런 점 모두 감사를 드리며 또 너무 늦게 와서 여러 가지로 죄송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지금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 것은 다른 분이 쭉 다녀오신 데 대해서는 말씀을 드리지 않고 주로 국방관계인 마큼 우리나라에 출병을 해 주신 여러 나라를 보기 위해서 베르기라든지 혹은 기타의 노르웨라든지 혹은 이 현재도 다 철병을 했는데…… 16개국에서 출병 혹은 병원선이 와 있다가 대개 다 갔는데 지금 미국하고 토이기 이 두 나라만이 우리나라에 아직 남어 있읍니다. 그래서 올 때에 토이기를 들렸에요. 그래 제가 오늘 말씀드릴려고 하는 것은 토이기의 감상을 여러분에게 드려서 타산지석이라도 된다고 하면 다행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토이기에 내렸더니…… 잘 아시다싶이 토이기는 우리나라 남북한을 통한 면적보다 1배 반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구는 2100만인데 잘 아시다싶이 거기는 위도는 우리와 큰 차이가 없지만 기후상으로 봐서 아열대에 속하는 나라이고 자원이 우리나라보담도 더 풍부하지 못해서 퍽 가난한 나라인데도 불구하고서, 제가 이번 약 20개국을 돈 가운데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그러한 가난한 형편에서 참 욱일승천 격이라고 할까 발전하는 기상이 토이기처럼 저에게 깊은 감명을 준 나라가 없기 까닭에 그 말씀을 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는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하던 정일권 대장을 기용을 해서 그 나라의 지금 대사로 보내서 대사관이 설치되었는데 이 나라는 역사가 상당히 오래인 나라이고 또 싸움을 싸워서 진 예가 없다는 그런 전통을 가지고 있는 나라올시다. 수도인 앙카라는 기후가 100도 이상이 되어서 여름 3개월 동안은 정부라든지 혹은 외국 공관이 다 이스탐불이라는 데에 피서를 와 있는데 이스탐불에서 정 대사를 만났읍니다. 정 대사가 일부러 저희 출영을 위해서 거기에까지 와 주었읍니다. 그래서 그분이 제가 뭐 말씀을 드리지 않았지만 사전에 벌써 토이기의 국회의장을 만나도록 이렇게 시간을 짜 놓았어요. 그래서 국회의장을 만난 말씀을 몇 말씀 드릴려고 하는 것은 제가 가기 전에도 토이기의 군대가 세계적으로 용감하게 잘 싸운다는 것도 알고 또 우리나라에서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싶이 평양을 공략할 때에 평양 남방에 있는 군우리라고 하는 데가 있읍니다. 군우리작전에서 토이기군이 용감하게 싸우다가 1개 여단 병력이 약 5600이 되는데 그 5600에 달하는 토이기 1개 여단이 거의 반이나 사상을 당하도록 그렇게 격전을 한 그런 기억도 새롭고, 뿐만 아니라 가서 들은 얘기인데 우리가 6․25 날 이북의 부당한 침략을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 또 유엔총회에서 출병을 한다고 하는 그런 결의를 한 다음에 얼마 안 되어서 토이기국회에서는 지금 그 현재의 국회의장이신…… 그분의 이름이 레핀이라고 하는데 그분이 당시에도 국회의장이에요. 그분이 세 번째 국회의장에 당선되신 분이라고 하는데 그분 사회하에서…… 토이기는 단원 입니다. 국회의원이 전원 나와서 한국이 이렇게 공산주의로부터 부당한 침략을 받았는데 여기에 우리가 출병을 해서 응원을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 이 의제를 내놓고서 표결에 부쳤을 때에 그 좌석에 나온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손을 안 든 사람이 없고 전원이 들어서 만장일치로 가결했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 거와 아울러서 현재도 다 나갔는데 미국군대와 당신네 두 나라가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서 계속해서 참 우리를 도와주고 있다는 데 대해서 이 감사한 뜻은 비록 제가 한 사람이 와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마는 우리 국회에서 또 국민이 다 같이 생각하고 있는 점이라는 것을 말씀을 드리면서 기회가 있으면 이런 말씀을 당신네 국민에게도 전달해 달라고 하는 얘기를 했읍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나 역시 내가 한 사람이 당신과 지금 말을 하는 것이지마는 우리 국민 전체가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하느냐 할 것 같으면 이 세계에 많은 민족이 있고 많은 나라가 있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처럼 피로 있어서 자기네 나라를 막아 가는 그런 민족을 가장 존경하고 있다, 나는 대한민국의 지금 국적을 가진 분은 대사관원 이외에는 한 분이 딱 우리나라에 있을 뿐인데, 이 말씀은 전후 가 됩니다마는 우리나라 분으로서 딱 한 사람만이 토이기에 가 있읍니다. 2100만 중에 그 사람이 딱 가 있는데 그 사람은 여기에서 토이기의 군대에 5년간 복무하다가 토이기 말을 능통하게 마스타를 해 가지고 거기에 가서 앙카라의 대학의 법과에…… 국립대학에 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토이기에 가 사는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한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한국사람이라고 불리워지는 3만 명이 있는데 이 3만 명이 당신네 교포라고 이렇게 인정을 해 달라 그런 얘기를 해요. 그것은 무슨 소리인고 하니 2개 여단이 와 있는 중에서 교대 교대로 해서 3만 명이 여기에 와서 싸우고 간 사람이랍니다. 그 사람들을 우리는 말하기를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니까 저보고서 하는 소리가 친근이 생각을 할 뿐만 아니라 그분들이 와서 하는 얘기가 한국사람은 용감하고 국가를 지키는 데 있어서 우리 토이기보다 나으면 낫지 못하지 않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에 우리 토이기사람은 세계 많은 국가에서 대한민국을 가장 존경하고 언제든지 계속해서 도와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감격의 말씀을 했읍니다. 여러 가지 1시간 반에 긍한 긴 말씀을 다 소개는 못 드리지만 그분은 말하기를 ‘우리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한정이 있는 것이지만 국가라고 하는 것은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토이기사람들은 주검을 신성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주검으로써 우리나라가 우리 민족이 잘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믿고 있기 까닭에 우리는 신성한 주검을 국가를 위해서 언제든지 감행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와 마찬가지로 피로써 나라를 지키는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감히 침략도 못 할 것이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태극기는 영원무궁히 이 지구상에서 휘날릴 것이라고 이런 말씀을 해 주면서 이런 뜻을 한국에 가서 전달해 달라고 하는 이런 감명 깊은 말씀도 했고 또 그 외에 가령 항가리문제라든지 기타 국제정세문제라든지 혹은 지금 자유진영이 어떻게 우리가 반공투쟁을 할 것이냐 이런 데 대한 좋은 말씀도 했읍니다. 정 대사 소감도 ‘내가 근래의 한 수년간에 그처럼 가슴이 통쾌한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라’고 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것이 토이기에 갔던 저의 소감의 일단을 말씀드린 것입니다마는 또 저 이외에도 세계를 돌아오신 분도 많히 계시고 해서 오히려 제가 잠깐 가 보고서 주제넘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오히려 외람합니다마는 저는 우리나라를 싸고돌고 있는 가령 일본이 얼마만치나 그 경제적으로 발전을 해서 일본의 물품이 미국을 위시해서 세계 각국에 가 있지 않은 나라가 없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미국이 아니라 서독이 저처럼 발전했지마는 서독이 과연 딸라를 많히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더 많히 가지고 있느냐 이것을 측정하기 곤란하다는 정도로 일본이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또 자기네의 생명을 위해서 살기 위해서 그 사람들이 이북이나 중공과도 통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인데 그보다도 좀 더 두려웁게 생각하는 것은 6억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으며 제가 듣기에는 벌써 이 재봉틀이라고 하는 것을 중공에서 생산해서 다른 중동 아세아지방에 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재봉침이, 미국의 싱가미씽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지마는 중공의 그 무한정의 구리…… 또 소위 그 노동력이라는 것은 임금이 일본사람보다도 헐하고 세계 어느 사람보다도 헐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앞으로 계속적으로 생산을 하기 시작한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일본도 견데지 못할 것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것이 노임을 기준으로 해 볼 때에 사실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이 될 때에 우리나라의 가까운 데는 일본이 경제적으로 발전을 해서 다시 참 여러 가지 면으로 우리의 적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지마는 그보다도 더 앞으로 1년 혹은 이태 지나며는 중공의 세력이 지금보다도 몇 갑절 더 커져서 아마 제가 미국에서 본 중공에 대한 미국의 그 학자들의 태도라든지 말로 보나 또는 이 중동을 지나면서 중공이 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외교적인 활동 이런 것을 볼 때에,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제가 이것 들은 이야기인데 중공에서는 인도네시아를…… 여러분 잘 아실 것입니다. 인도네시아에 인구를 제가 잘 모르지만 아마 칠팔천만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면적도 우리나라의 약 배 되는 이런 인도네시아에, 우리는 지금 인도네시아를 알기를 퍽 정도가 얕은 나라라고 알겠지마는 미국에 필라델피아라고 하는 데에 여러분이 아시다싶이 독립기념관이 있읍니다. 미국 독립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서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날 필라델피아에서, 미 국무성 초청에 의해서 미국을 순회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국회의장과 아울러서 근 10명의 국회의원을 필라델피아 시에서 7월 4일 독립기념일 행사에 우리 식에 참석해 달라고 하는 초청을 해서 다 그 사람들이 거기에 왔어요. 그래서 저희도 그 당시에 다섯 분이었읍니다. 그 사람들을 만났읍니다. 거기 국회도 있고 또 독립…… 파란으로부터 독립도 한 나라인데 중공에서 그 나라에 500명이라고 하는 외교관을 보내 가지고서 어떻게 삶었든지 간에 인도네시아의 가가호호에는 우리가 구득치 못할 사람의 사진을 걸어 놓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그러면 일본이 그래 중공이 저처럼 세력을 중동 혹은 이쪽 한국 전부 우리 주위에 뻐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다시금 눈을 국내에서도 물론 중요하지만 국외에서도 필요할 것이고 외국에 설치되는 공관을 더욱더 강화하고, 그래서 외교적으로 뒤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느꼈고 또 일편 그렇지 않으면 대단한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읍니다. 이것이 저희가 쭉 돌아본 결과에 있어서 여러분께 말씀을 드려서 지금 세계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는 이만큼 활발히 또 발전해 가고 있고 토이기 국회의장도 말하기를 소련은 뒤에 앉아서 중공을 앞으로 내세워서 중공을 키우고 있다 중공으로 하여금 세계평화를 교란케 하고 앞으로 자기네들은 불로소득을 취할 그런 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토이기의 국회의장으로부터도 들었읍니다마는 얼마만치 지금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우리 국내에서는 잠정적인 평화가 지속되고 있지마는 사실상에 있어서는 우리나라를 우리 남한 혹은 이 서울이라든지 대구라든지 부산이라든지 이런 곳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할려고 하는 계획이나 혹은 또 사상적이나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어떻게 할려고 하는 이런 계획이 상대방에서는 주야로 계속해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미국에서 뉴육에서 만난 분인데 80이 되신 분입니다. 여든 살이 되신 분인데 사시기는 나성에 사시는 노인인데 그분은 80이 되셨지만 학생을 좋아해서 거기에 와서도 교회에 나오셨는데 교회의 연세가 많으신 분하고 이야기 않고 학생을 붙잡고서 이야기하면서 ‘나는 나성에서 출발해서 지방 지방마다 학생들만 찾어다닌다, 여기에 뉴육에 학생이 많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생을 찾어왔다’고 하면서 이야기가 물론 평생에 대한 고생한 이야기랑 쭉 하셨지만 요새 우리가 미국에서 볼 때에 국내 신문을 보면 애국가를 누가 지었느니 안 지었느니 또 그렇지 않으면 이준 열사가 할복자살을 했느니 안 했느니 이런 것을 가지고서 신문에 자꾸 떠드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역사적으로 기정사실이고 우리가 그대로 믿고 추종을 할지언정 거기에 왈가왈부 시비를 논할 때는 아닌데 국내에서는 이런 데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다른 나라에서 얼마만치나 지금 발전하고 또 한국을 다시 침략을 한다든지 하는 데에 대해서 참 호시탐탐한다는 데에 대해서는 그렇게 심각히 느끼시지 않지 않는가 그렇게 볼 수가 있다는 말씀을 들었에요. 이것이 우리가 다시 국외에 눈을 떠서 국제경쟁에서 뒤떨어지지 말어야 되겠다는 것을 제 감상을 말씀드리면서 저는 끝으로 다른 분도 두 분이 갔었읍니다마는 오란다의 덴하그 해아에 가서 마침 다른 두 분이 오란다이 가신 분이 시간관계로 이준 열사 묘를 참배를 못 하셨다고 하기 까닭에 저는 그분들과 스케쥴을 달리해서 거기에 가서 하루밤 자면서 상세히 이준 열사의 묘를 보았읍니다. 그래서 거기에 관한 말씀을 한마디 참고로 말씀드리고 저의 외람한 보고를 그치겠읍니다마는 갔더니 원래 먼저부터 방문하시는 분들이 다 친절하셨으니까 그렇겠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더 친절히 맞어 주는 것 같었읍니다. 이준 열사의 묘는 덴하그 해아의 교외에 좀 떨어진 공원같이 된 안인데 그 안의 공동묘지 안에 있었읍니다. 그 공원과 아울러 공동묘지를 관리하는 사무실이 큰 사무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무소장이 계시고 그 밑에 차석이 계셨읍니다. 처음에 아침에 일찌기 갔기 까닭에 소장을 못 뵈옵고 차석을 만났는데 차석의 친절한 안내로 이준 열사 묘에 갔읍니다. 그 묘가 저의 생각컨데는 그래도 상당히 크고 잘된 묘가 아닌가 이렇게 평소에 생각을 했는데 다른…… 물론 화란사람이겠지요. 다른 유골이 묻힌 묘 옆에 그대로 계속되어 있는 묘의 한 묘로서 불과 넓이가 두 자 가옷이나 이렇게 될까요, 두 자…… 기러기가 한 서너덧 자, 거기에 비석이 불과 높이 3척, 1메타가 채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조곰한 묘 앞에, 우리나라 같으면…… 쑥 같은 풀이 다부록하게 나 있는 조곰한 묘였읍니다. 저는 미국에 출발할 때에 먼저 한번 군에 있을 때에 가 본 일이 있어서 그대로 가는 것보다도 그래도 뭐 좀 사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그림엽서…… 미국이나 서서 의 경치가 좋은 데가 많다지만 우리나라도 거기에 지지 않게 좋은 그림엽서가 되어 있어서 출발하기 전 2주일 전인가 한 달도 안 되어서 나왔다고 하는데 여기에 우리 여의도공항에 가면 붙여 있읍니다. 그것을 상당히 많이 많이 사 가지고 또 조금한 국기를 많이 사 가지고, 잡지 혹은 우리나라의 우표 이런 것을 사 가지고 갔었는데 미국에서 거의 다 쓰고서 하나 있던 국기를 가지고 갔읍니다. 이준 열사께서 생존 시에 우리 국기를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묘에 국기를 꽂은 일이 없지 않은가 해서 국기를 가지고 가서 거기에 꽂아 가지고 그리고 기념으로 사진도 찍었읍니다마는 그다음에, 제가 지금 이 말씀은…… 사무실에 돌아와서 소장을 만났읍니다. 소장 이야기가 ‘이준 열사라는 분은 당신네 나라에서 굉장히 위대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 묘가 빈약하다, 그런데 좀 크게 할 수 없는가? 돈을 조곰씩만 내서 하면 될 것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 저는 사실은 아까 국기 갖다 꽂을 때에는 차석보고서 1년에 세 번씩, 정월 초하룻날 설날과 8월 15일 우리 해방한 날과 또 내가 날짜를 기억 못 합니다마는 앞으로 알게 될 터이니 이준 열사가 돌아가신 날 이 3일 동안은 이 국기를 여기에 꽂아 달라 이렇게 부탁하면서 제가 돈을 그 사람한테 약간 주었읍니다. 하지만 그 직후이지만 소장이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호주머니를 들추었더니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네 나라 국민이 잘 모르겠읍니다마는 1전씩만 내도 이 묘지를 크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저는 그 말에는 묵묵히 부답이고 오히려 얼굴이 붉었었읍니다. 조금 있다가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계획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드니 그이가 자기 사무실에 가서 빼닫이를 열고 설계서를 가지고 왔어요. 그래 제가 확실히 이쪽의 누구의 싸인이었는지 기억은 확실히 보지 아니했읍니다마는 설계서 두 통을 가지고 와서 ‘이런 것이 당신네 나라로부터 왔소……’, 그래 보았더니 청사진까지 붙여 있어요. 우리 남한 북한을 통한 지도 위에다가 이렇게 비석까지 세우도록 되어 있는 설계서인데…… 이런 설계서를 받았는데 여기에 추진이 되어 있지 않다 이런 말을 들었읍니다. 두 부인데 한 부를 저보고 가지고 가라고 그러드군요. 그런데 한 부를 보내 주지는 못할지언정 가지고 올 수는 없어서 그냥 왔읍니다마는 이런 것이 시간이 급해서 긴 말씀을 안 드립니다마는 미국이라든지 외국을 다녀올 때에 상당히 자기 나라의 유명한 분들을 석상이라든지 동상으로써 선전하고 추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준 열사의 묘가 그처럼 빈약했다, 그러나 그 비석도 1948년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 정부에서 세운 것 같았읍니다. 그 글씨도 베껴 왔읍니다마는 그런 것을 볼 때에 어떻게든지 우리는 단결해서 국내외적으로 좀 더 능률적인 그런 발전을 할 때에는 우리의 앞날이 피고 반드시, 지금 한 위원장께서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육십 난 어느 노인이 말하기를 ‘대한민국도 우리처럼 잘살 수 있다는 자신을 가져라, 왜냐하면 내가 50년 전 여기에 왔을 때에…… 현재는 굉장히 큰 비행장도 있고 한 도시인데 아주 허허벌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일하고 건설해서 오늘 이런 것을 만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잘 하면 우리나라도 세계 어느 나라에 지지 않는 그런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또한 저의 좁은 소견 혹은 어린 눈이지만 느꼈읍니다. 이상 두서없는 말씀이지마는 여러분께서 혹은 타산지석이라도 된다면 다행일까 생각을 하고 그 외에도 드릴 말씀이 많지만 다른 기회로 밀우고서 이상으로 말씀을 그칩니다.

다음은 송방용 의원 나오세요.

그동안 더운 여름에 여러분들 국사를 위하셔서 땀을 빼시고 노력하신데 저! 다른 나라를 보고 왔다고 여기서 보고드리기조차 염치가 없읍니다. 아까 한 의원이든지 안동준 의원께서 그동안 다녀온 길에 대해서 말씀이 계셨으므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읍니다. 외국여행을 한다는 사람에게 필수조건이 몇 개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아마 서너 가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외국어가 능통해서 그 나라 사람의 외면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사람의 감정을 파고들어 가서 볼 수 있어야지 할 것이고, 둘째로는 시간이 넉넉해서 여러모로 그 나라를 보아야지 할 것이고, 셋째로는 예비지식이 풍부해서 그 나라의 일면을 보고도 전체를 알 수 있는 그런 조건 위에서 외국여행을 해야만 비로소 외국여행을 하는 것으로의 보고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와 같이 세 가지가 부족한 사람이 외국여행을 하고 와서 보고한다는 말조차가 퍽 부끄러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보고서로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기로 하겠읍니다마는 제 딴에는 이러이러한 것은 오히려 보고서를 통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같이 한번 이야기함으로 해서 우리나라에 기여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충심에서 몇 마디 말씀을 먼저 드릴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번영을 극하고 있다는든지 하는 것 같은 것 여기서 말씀드릴 필요가 없읍니다마는 미국에는 경제적으로 완전고용 이상의 고용인 것입니다. 이 완전고용 이상의 고용이란 이유는 무엇이냐 할 것 같으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일자리가 얼마든지 주어저 있읍니다. 물론 거기에 실업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 실업자는 자의에 의한 실업자이지 불가피한 실업자가 아니라는 우리나라의 엉뚱한 단계에 있는 미국의 번영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 주에서 실업자에게 사회보장금으로서 주는 돈이 일주일에 42불, 매일에 6불이라는 돈을 지급한다고 하는 이런 사실은 아마 국회의원의 세비보다도 미국의 실업자에게 주는 돈이 더 많지 않는가 하는 감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과 미국을 보는 사람의 눈에 띄는 또 하나의 그 부럼직한 사실은 극도의 자유입니다. 국무성의 요직에 있는 관리가 나는 민주당을 지지했다, 나는 민주당을 이래서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조곰도 기탄없이 할 수 있는 그 자유가 미국에는 있읍니다. 또 정부에서 만들어진 회합에서도 거기 나와서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는 교수라든지 이런 분들이 지금 하는 아이젠하워 정책은 이래서 틀렸다 이러한 이야기를 아무 꺼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자유가 거기는 있읍니다. 이 자유가 퍽 부러운 것이라고 저는 느꼈읍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보아서는 중동문제라든지 또는 중공을 유엔에 가입하는 문제 같은 거…… 다소 미국의 외교정책은 신경질적인 방향을 띠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감을 가졌읍니다. 우선 하나 중공문제만 본다고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대내적으로 이것은 가입시켜야지 한다고 하는 소리가 미국 내에서도 높아 가고 있는 것을 듣고 있고 위정 당로자로서는 가입시키기는 싫지만 역시 대의명분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러한 양상을 보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 미국에서 제가 느낀 것은 우리의 통일문제입니다. 한국의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저희는 여론 했고 미국국민도 이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는 것같이 보여졌읍니다마는 이 통일문제는 요원의 장래의 사인 것 같은 감을 저는 가졌읍니다. 물론 전쟁으로서 통일이라는 것은 꿈속에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고 평화로의 통일도 요원한 장래의 것이라고 하는 것을 저는 인상을 받었던 것입니다. 영국이라든지 불란서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이미 각국을 돌아오신 분들이 이야기 계셨음으로 나는 여기서 그 말씀을 드리지 않겠읍니다. 다만 우리보다 훨씬 적은 나라, 다시 말씀드리자면 화란이라든지 정말이라든지 스웨덴이라든지 스위스 같은 나라, 즉 화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1000만 명의 인구밖에는 가지지 않었다, 정말은 437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 또 스웨덴으로 말할 것 같으면 713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 스위스로 말하자면 472만의 인구를 가진 나라 이렇게 적은 인구를 가진 나라에도 진실로 잘살더라는 것입니다. 영국보담도 불란서보담도 어느 나라보담도 이 적은 나라에서도 잘살고 있다는 이러한 사실인 것입니다. 화란 같은 나라는 꽃을 아침이면 시장에 팔어 가지고 그 꽃에서 들어오는 수입으로 화란의 경제를 유지한다고 들었고 정말 같은 나라는 농업에 축산이라든지 또는 협동조합을 통해 가지고 근면해 가지고 정말이 세계적으로 잘사는 그러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읍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정말에서 우리가 눈에 띄우는 것은 소학교의 아동이 있으면 공책이라든지 연필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정부에서 다 보조해 주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그 어린애에게다가 학비를 조달할 아무 염려를 갖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보장제가 완전히 되어 있는 나라라는 것을 보았읍니다. 서서로 볼 것 같으면 관광사업과 시계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으로서 세계의 부강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도 보았읍니다. 또 독일을…… 서독을 가 보았읍니다. 서부독일의 경제부흥이 얼마나 되었느냐 이런 얘기를…… 왔을 때에 여러분들에게서 들었읍니다마는 서부독일의 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소개할 것 같으면 서부독일의 부흥이 얼마나 되었다고 하는 것을 알으시고 다 남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서부독일이 전쟁으로 인해서 모든 시설이 다 파괴되었다, 그리고 전후에는 각국에서 배상이다 무어다로 모든 물자를 다 가지고 갔다, 그때에 독일사람들은 이제는 살길이 없다고 해서 앙천해서 울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서부독일에서 그러한 사태를 생각해 볼 때에는 하나의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어째서 다행이냐고 물을 때에는 만일에 그러한 구시설과 그러한 구태의연한 제도가 그대로 남어 있었다고 할 것 같으면 오늘의 서부독일에 있어서 이와 같이 새로운 공장에서 새로운 건물을 가지고 새로운 독일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고 서부독일의 역사는 몇십 년은 뒤지는 사태에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얘기인 것입니다. 이것을 서부독일이니 얘기할 수 있는 자긍을 가질 수 있도록 서부독일은 부흥했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여기서 이런 생각을 했읍니다. 불행에 우는 국민은 자지러지고 말지만 불행을 짓밟고 넘고 이겨 가는 국민에게는 번영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이 공산주의와 자유진영에 그 제일 각축이 심한 백림을 가 보았읍니다. 여기에는 외국에서 서적 들어오는 데 불온서적이 있다고 해서 검열이 심했고 못 들어오게 한다는 보도를 본 일도 있읍니다마는 백림에 가서 보고 제가 느낀 것은 ‘주의가 좋네 무엇이 좋네’ 하고 얘기로 하는 것보다는 실지로 어느 쪽이 살기 좋냐에 의해서 백성은 그쪽으로 머리를 들고 가더라는 사실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백림을 갈 것 같으면 동백림이 있고 서백림이 있고 서백림에는 연합국, 즉 다시 말하면 영․미․불이 관리하고 있고 동쪽은 소련이 관리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그 백림 쎅트원에 있는 사람들은 자유로 들어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진영도 공산주의자가 와서 보고 공산주의진영도 자유진영 사람들이 가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동부독일에서 그동안은 매일 2000명씩이 서부백림으로 넘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요새에 있어서는 하루에 350명씩이 동부백림에서 서부백림으로 넘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볼 때에는 공산주의가 좋다고 선전한다든지 무엇이 나쁘다고 막는다든지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터놓고라도 이것이 살 수가 낫지 않느냐고 보여 주는 것이 정치가 아니냐, 주머니에다가 집어넣고서 숨도 못 쉬게 하는 질곡 속에서 헤매게 하는 것보다는 터놓은 자유 속에서 이쪽에서 경쟁해서 나은 것을 만들어서 내 편을 만드는 그러한 정치적인 힘이 우리나라에서 요망되지 않느냐, 나는 이것을 느꼈던 것입니다. 일본…… 아까 얘기를 안동준 의원이 말씀하셨읍니다. 그래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읍니다마는 일본에는 무엇 기차가 인저는 무엇 석탄을 때서 다닌다든지 디젤기관차로 다니는 시대는 지났읍니다. 전기로서 기차가 전부 다니고 있읍니다. 또 제가 오다하라라는 역에 자동차를 타고 오면서 동경 가는 차가 몇 시에 있느냐고 4시쯤 되어서 물었더니 운전수가 몇 분 차를 탈려느냐고 해서 아마 거기는 기차가 시간으로 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분으로 물어진다고 하는 사실을 보았읍니다. 나와 보니까 4시부터 5시 사이에는 동경 차가 5개 있읍니다. 그러나 일본에서 놓쳐서는 안 될 사실은 일본은 지금 경제적으로는 데푸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15억 불이나 있던 그 돈이 오늘에 있어 가지고는 5억 불로 줄어들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5억 불 속에는 한국이라든지 이런 데에 받지 못할 돈 2억 불이 있기 때문에 불과 3억 불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데푸레에 대한 방지책을 지금 쓰고 있읍니다. 그러면 이 데푸레가 어디서 일어나고 있었느냐? 이것은 과거에 한국동란으로 인해서 경제가 마음대로 팽창해 갈 때에 외화를 획득하는 돈을 가지고 재생산할려는 시설에 많이 투입했다, 그래서 현재 그 재생산할랴는 그 시설이 생산과정으로 들어간 것도 있고 또 생산과정으로 들어갈 부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본에 있어서 필사적으로 요다음에 이 데푸레를 극복하는 방향이라는 것은 동남아세아에 있어서의 시장의 획득이요, 중공에 있어서의 시장의 획득이 없이는 일본이 살 수 없다는 난관에 부딪쳐 있어 가지고 일본의 외교적인 방향이 그리 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보고 있읍니다. 또 하나 일본에 있어 가지고 우리가 특히 눈에 띠는 것은 급여제도인 것입니다. 그 급여제도는 한 사람에게다가 충족한 급여를 주어 가지고 그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보다는 어느 사람에게 최소한도의 급여를 주고 그 가족 전체가 내직을 한다든지 또는 의무교육을 마칠 것 같으면, 나아가서 에레베타라든지 상점에 가서 일을 함으로 해서 조금씩이라도 그것으로서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국민 전체를 개로 시키는 방향으로 가 가지고 거기서 기계력에 대항하는 그러한 제도를 쓰고 있는 마냥 저는 해석하고 있읍니다. 이런 것 같은 것은 오히려 적국이라고 해서 우리가 모든 사태를 눈 감어 버린다는 것보다도 한국으로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하고 느꼈읍니다. 하나 여기서 더 말씀드려 두고 싶은 것이 있읍니다. 제가 아마 좋은 나라를 다녀서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여러 나라를 다 다녀도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그 백성을 잘살게 하고 위안하도록 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의 일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령 영국을 간다든지 미국을 간다든지 불란서를 간다든지 또는 적은 덴마크를 간다든지 어디를 간다든지 그 공원의 아름다움 그리고 모든 사람이 나와서 자유로 놀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 주는 그러한 시설이 어디든지 있는 것을 보고 한국에 있는 비원도 덕수궁도 남산도 철망가시요, 문 닫어 있는 이런 사태와 비교해 볼 적에 이런 것은 고칠 수 있지 않은가? 국민을 위한다고 하고 민주주의라고 떠드는 것보다는 국민에다가 편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더냐 하는 것을 느꼈읍니다. 결과에 있어서 제가 이 각국을 돌아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고 하면 결국 잘사는 국민…… 잘사는 국민은 부지런한 국민이더라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국민은 잘살고 게으른 국민은 못사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국회의원이 아닌 사람으로서 세계일주를 하고 왔다고 하면 나는 여기서 국민의 자각 위에서 우리가 부지런해서 이 나라를 잘살게 해야지 하겠다 하는 말씀을 해야겠읍니다마는 내가 국회의원으로서 여러 나라를 보고 왔기 때문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 잘살게…… 국민이 부지런하게 만드는 정열이 정치적인 방향에서 이끌어져야만 할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정열이 있어야지 부지런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읍니다. 정열이 없다면 부지런해질 소지가 없는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지런을 사는 방법 그것은 정치력으로서 국민께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그러한 정치가 아니고는 아니 되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집권하시는 여러분들과 또 집권하시는 정부 여러분들에게 되도록이면 우리도 남과 같이 살기 위해서 정열을 불러일으키는 정치를 해 주셨으면 고맙겠다는 말씀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하나 또 더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 관세행정에 대한 문제입니다. 제가 각국을 돌아댕겼읍니다마는 스페셜의 패스포트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가방을 열라고 하는 소리를 어느 나라에 가서도 들어 본 일이 없읍니다. ‘여기 너 개인물건 이외의 것이 들었느냐?’ ‘없다’…… 그냥 싸인해 줍니다. 네, 공산주의국가는 못 가 보았으니까 나중에 갔다 오면 보고드리겠읍니다. 그냥 싸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국에 다니면서 듣는 바에 의할 것 같으면 한국의 통관은 참말로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국을 갈려 하더라도 그 통관이야 뭐야로 몇 시간씩 비행장에다 붙들어 매는데 무엇 때문에 돈 쓰고 거기를 가느냐는 얘기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잘살려고 할 때에는 우리나라에 외래객을 많이 끌어들여서 외국사람 돈을 떨어뜨리는 방법도 그 하나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객을 들어오는 것을 관세행정에서부터 막어 버린다고 할 때에 이 나라의 외래 돈은 어디에서 받어들여야 할는지 그런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인 하나를 만났더니 이런 얘기를 했읍니다. 그 얘기는 한 가정의 장이 돈 벌 줄을 모를 것 같으면 그 가족이 불쌍하게 일을 많이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위정자가 외국에서 돈 걷어들일 줄을 모를 것 같으면 그 나라는 빈약하고 그 국민은 어려운 사태에 놓여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중국인이 저한테 해 주는 것을 들었읍니다. 한국의 앞으로 이 관세행정 문제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한번 심심한 사고 위에서 이런 문제가 풀어졌었으면 하는 충정에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보세요, 여기서 여의도비행장이 있읍니다. 세계에서 여의도비행장 같은 비행장이 또 있다고 하는 분이 계시거든 손 들고 한번 얘기해 주셨으면 고맙겠읍니다. 여의도비행장같이 이렇게 설비 안 된 비행장이 없는데다가 여기다가 통관을 한다고 해서 그 뜨거운 데에서 3시간 4시간씩 외국 손님을 붙잡어 놀 때에 그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그 사람들이 돌아가서 한국의 인상을 물을 적에 한국은 좋은 나라더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차라리 이러한 소소한 한두 개의 밀수품을 방지하는 것보다는 행정협정이라도 체결해서 배로 무데기로 들어오는, 배로 들어오는 그 밀수품과 비행기를 통털어 떠 놓고도 한 번도 뒤저 보지 못하고 들어오는 밀수품을 취체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바른 정치력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연설이 길어져서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느낀 바 충정을 말씀드리는 것이니까 그저 듣기 싫더라도 들어 주셨으면 고맙겠읍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서 보아도 한국같이 아름다운 곳이 없읍니다. 맑은 하늘이라든지 맑은 물이라든지 또는 기복 있는 산이라든지…… 그러나 스이스는 가서 많은 돈을 떨어뜨리고 외래객이 가고 스웨덴도 가고 덴마크도 가고 다 가지만 한국에 외래객이 안 오는 것은 웬일이고, 한국의 이 이름다운 자연조건이 외국에 알려지지 못한 것은 어디가 있느냐, 그것은 제가 생각하기에는 주인을 잘못 만나서 산천이 푸대접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산천이 다시 대접을 받기 위해서도 우리 일선에 선 정치인들부터 다시 한번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좋지 않을가 하는 생각에서 너저분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읍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다음은 국회운영에 관한 긴급발언이 있읍니다. 이인 의원 나와서 말씀하세요. ―민법 및 민사소송법안 심사에 관한 건―

너무 지루할까 싶어서 말 수효를 될 수 있는 대로 추려서 간단히 몇 말씀을 드릴가 싶읍니다. 해방이 된 지 만 12년이 벌써 지났고 우리가 독립이 된 지 만 9년 5개월이나 되었읍니다.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왜놈 때 쓰던 잔재 법률을 그대로 우리가 쓰고 있읍니다. 법전편찬위원회에서 민법과 민사소송법안을 기초해서 정부로 이송한 지가 벌써 부산 있을 때의 얘기입니다. 그러니 벌써 정부로 이송해서 법제실로 넘어서 우리 국회로 돌아온 지가 상당한 시간을 경과했읍니다. 시간이라기보다도 연조를 경과했에요.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때까지 우리 본회의에 내놓지 않습니다. 이 민법이라는 것은 여러분이 다 아실 테니 더 말씀을 드리지 않습니다만 삼천만 국민의 일상생활…… 그리고 기본법률입니다. 이 기본법률에 대해서 적용을 하고 운영하는 또 법률…… 절차법인 민사소송법이 역시 왜놈 때 법률을 그대로 쓰고 있읍니다. 일종 굴욕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외국사람에 대해서도 면목이 없고 또 우리가 3대 국회에서 여러 가지 법안을 많이 제정해서 벌써 공포된 것도 있읍니다만서도 그래도 뚜렷한 이렇다 할 만한 법률안을 오늘날까지 하나 우리가 제정하지 못한 것이 대단히 유감스럽고 통감스러운 일이니까 이 자리에 다행히 법사위원장도 계시고 운영위원장도 계시니 만일 이게 그렇게 어렵고 애로와 난관이 많어서 못 하신다면 그 이유라든지 조건을 이 자리에서 명시해 주십시요. 그러면 우리 본회의에서 다시 심의를 하든지 어떻게 규정을 지을 테니 거기에 대한 말씀을 좀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어서 말합니다.

지금 이 문제는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으로 하여금 답변을 하라고 그랬는데 법제사법위원장이나 운영위원장은 아직 선거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민법에 관계되는 문제는 계속해서 심의할 테니까 요다음 6일에 위원장이 선거 되고 본회의 열릴 때에 답변하도록 하지요. 오늘 경과보고를 하라는 것입니까? 그러면 경과보고를 해 달라고 하니까 잠깐 법제사법위원장 말씀해 주십시요.

법제사법위원장이 아닙니다. 그동안 민법에 대한 것은 저희 분과위원회에서 이 민법 친족 상속에 대한 요강을 통과를 하고 이번 휴회 동안에 소위원들 세 분과 우리 법제사법위원회에 있던 전문위원들이 수고를 하셔서 조문정리가 다 되었읍니다. 그래서 이번 개회가…… 본격적으로 심의할 적에는 그 전에 본회의에 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민법은…… 민사소송법은 이것은 소위원회에서 지금도 심의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이번 이 정기국회에는 민법은 상정이 될 것이고 상정이 되며는 통과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단계까지 전부 가 있으니까 그쯤 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다음 회의는 5일 오전 10시에 재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상으로 산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