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이 이미 신문지상으로 들어서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제 선출구 되는 옥천에서는 17일 날 11시 30분경 약 500여 명의 공비의 침해를 받어서 군내에 있는 다수한 피해가 있었읍니다. 이 정보를 듣고 제가 18일 날 듣고 제 선출구인 만큼 쫓아가서 그 실지의 현장을 조사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보고를 말씀드리기 전에 이것은 대단히 복잡한 관계가 있고 또 여러분이 경로와 피해에 대해서 혼동해서 보고를 드리면 잘 기억하시기도 어려울 것 같고 그래서 저는 이것을 대략 분류해서 먼저 옥천군에서 피해된 재산의 상황, 인명의 손상 이것을 계수적으로 보고드리고, 그다음에 피해의 경로 적군이 피침 해 온 경로를 말씀드리고, 그다음에 옥천에 있는 경찰과 군청, 역과 군 경 행정처와 여기서 다 각각 취한 태도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상세히 말씀을 드리고, 그다음 끝으로는 본 의원이 현장에서 조사한 결과 그런 실감, 우리 정부라든지 각 기관에 대해서 이렇게 했으면 좋지 않겠는가, 또 혹은 금후로도 이렇게 하면 이런 사태가 비단 옥천뿐이 아니라 우리 남한 전체에서 근절될 수 있으리라는 점을 내무부에 대해서 질문 요망사항으로다가 말씀하겠읍니다. 먼저 맨 처음에 말씀드릴 것은 옥천에서 재물과 물질적으로 손해를 입은 점, 그다음에 인명이 손해된 것에 대해서 숫자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인명피해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죽은 자가 군청 직원이 2명, 의용경찰대원이 4명, 군인이 6명, 민간인이 2명 해서 합계 14명이 사망했읍니다. 그다음에 중상자를 들며는 경찰이 2명, 의용경찰대원이 5명, 군인이 4명, 민간인이 1명 해서 도합 12명이 중상했습니다. 그다음에 경상자는 경찰이 4명, 군인이 1명 도합 다섯 사람이 경상자입니다. 그다음에 납치되어간 인원입니다. 적들이 그 지구에서 자기가 약탈한 재물을 지어 가거나 혹은 자기 동료들, 즉 공비들이 죽은 시체를 운반해 나가는 데에 납치해 갔든 것입니다. 군청 직원이 2명, 경찰관이 2명, 의용경찰대원이 3명, 군인이 3명, 교원이 하나, 철도국원이 2명, 민간인이 55인, 합계 68인이 납치가 되었습니다. 개중에서 본 의원이 돌아오는 어저께까지 귀환한 사람은 민간인이 22명, 군청 직원 2명, 합해서 24명은 돌아오고 나머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었읍니다. 그러면 이 인명에 대한 납치자의 총계수는 99인이올시다. 그다음에 물질적 피해로는 가옥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청은 군청, 금융조합, 연초경작조합, 철도역 이것을 합해 가지고 관아가 7동 그 피해액이 4억 3000만 원에 달하고 있읍니다. 관유 창고 1동에 약 7000만 원, 관유 숙사가 7개에 약 8300만 원, 민간 가옥이 17채에 4420만 원이올시다. 그다음에 약탈된 의류 혹은 금품 혹은 상점에 있는 고무신, 기타 물자 등을 보고해 드리겠읍니다. 이 침입 지역은…… 이것을 말씀드리기 전에 말씀드릴 것은 적비 가 침입해 가지고 피해당한 구역은 옥천읍과 군서면의 2개소에 걸쳐 있는 까닭에 여기에 양곡과 백미에 대해서 2개 면 으로 분류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옥천읍에 있어서는 백미 194두 이 가격으로는 291만 원, 또 군서 에 있어서 백미 350두 가격은 525만 원, 그래서 합계가 백미로 544두에 816만 원이올시다. 또 정맥을 보리쌀을 가지고 간 것입니다. 옥천읍에서 11두 가격은 11만 원, 군서면에서 510두 가격은 510만 원, 정맥의 합계가 521만 원이올시다. 기타 잡곡으로는 옥천읍에서 5두 피해액은 5만 원, 군서면에 21두에 21만 원, 합계 26두에 26만 원입니다. 그다음에 축우를 농우를 저자들이 몰아간 것이 옥천읍에서 일곱 마리, 군서면에서 아홉 마리를 몰아갔읍니다. 그래서 옥천읍 일곱 마리가 560만 원, 군서면에 아홉 마리로 720만 원, 그래서 합계가 1280만 원이올시다. 기타 피해액이 3억 1688만 원입니다. 여기에서 물질적으로 총합계가 3억 4331만 원이올시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건물 피해액은 6억 2760만 원, 관유 비품 소모품 기타 피해액이 1억 3010만 원, 민간인 소실가구 집기 등등 5350만 원이올시다. 약탈로 인한 피해액 총계 즉 사소한 것을 모두 합한 것이올시다. 3억 4331만 원, 그러면 이 피해액 총계는 11억 5450만 원이올시다. 그다음에 피습 경로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은 옥천군이라고 하는 데에는 적의 소굴이 어데 있느냐 하면 금산군 추부면 안에 있는 서대산이라고 하는 데가 공비의 소굴이올시다. 그러면 이 공비는 대체로 어디를 근거로 했느냐?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라고 하는 데 있는 공비가 금산군에 있는 주력이올시다. 이것은 여러분이 많이 그동안에 들어서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라는 데는 우리나라의 국정이 행해지지 않고 경찰력이 미치지 않는 순 인민공화국이라고 자칭하는 이러한 적비의 소굴이올시다. 그러면 공비들은 대체로 여기에 집거해 있다가 자기가 활동해 가지고 인근 부락을 침해해 가지고 민간의 금품을 약탈하다가 자기의 세력이 불리할 때에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가서 근신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 자들이 건천리에서부터 서대산까지는 거리가 약 한 80여 리가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옥천에 피습해 온 공비들은 대부분이 건천리에 있든 공비가 들어온 것 같았어요. 그다음에 일부는 삼도봉에 있든 공비들이 일부 여기에 합류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체로 금산군 추부면 지서에서 보고한 것은 즉 무엇에 의거해서 보고했느냐 하면 16일 날 밤중 17일 날 새벽입니다. 이 동안에 경계 중에 건천리에 있든 공비가 이동하는 것을 잠복 경계했든 경찰관이 세어본 수효가 996까지 세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이것으로 추산해 보드라도 건천리에 있든 공비는 약 1000여 명의 적군이 혹은 대전 옥천을 습격하기 위해서 서대산으로 17일 날 새벽에 집결했든 것이 사실이올시다. 이래 가지고 이 자들은 옥천군 서대산이라고 하는 곳은 옥천읍에서 30리 거리 되는 산을 하나 넘어오면 되는 그러한 대단한 근거리올시다. 그래서 옥천서에서는 이 정황을 이렇게 알았든 것입니다. 역시 옥천서에서도 이 정황…… 공비의 이동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피습당하기 약 6시간 전에 안 것입니다. 즉 17일 날 오후 6시경에 이것을 안 것입니다. 그 안 경로는 어떻게 되었느냐? 이것부터를 여러분에게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15일 날 금산군 추부면에 있는 4개 지서에서 옥천군 군서면 지서, 서대산 밑에 있는 지서올시다, 여기에다가 요청을 하기를 공비가 약 50명이 서대산 중에 잠복해 있다, 이러니까 이것을 우리는 16일 날 미명 을 기해 가지고 그 서대산 밑에 잠복해 있다가 17일 날 오전 10시를 기해서 양 방면에서 산봉 을 습격해 가지고 54명의 공비를 전부 토벌하자는 약속을 했드랍니다. 그래서 군서면 지서에서는 이 금산군 추부면 4개 지서의 요청에 의거해 가지고 그날 16일 날 매복을 했다가 17일 날 정각 시간에 삼도봉을 올라가기 시작했든 것입니다. 그러나 요사히 안개가 많고 고산지대인 만큼 산 중턱에까지 안개가 있어서 그 산봉은 잘 안 보이는데 산봉에서 무슨 인기척 소리가 나기에 중턱까지 올라가다가 그 인기척 소리가 있어서, 이것은 아마 금산군의 약조했든 4개 지서의 병력이 산봉까지 이미 약조한 시간에 닿은 것이 아닌가 하고 자기네들은 자기 동료인 줄 생각하고 거기에 대해서 그 산봉에 있는 것은 누구냐 하는 신호를 했습니다. 그랬드니 의외로 자기 동료로 생각했든 산봉에서 대답이 오기 전에 총알이 비 퍼붓듯 해 가지고 그 밑으로 사격을 하는 까닭에 아마 이것은 금산 지서원이 옥천 서원을 잘못 오인하고 사격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또다시 생각을 해 가지고 피차에 약조했든 총포사격을 해 가지고 총포신호를 했드랍니다. 그러나 이 총포신호도 효과 없이 그 위서는 기관총으로 더욱 맹렬하게 더욱히 좌우에서 총탄이 비 퍼붓듯 하는 까닭에 이것은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공비라고 하면 공비는 54명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많은 병력이 있을가 하고…… 우군 은 이미 금산지서원은 이미 산봉에 도달할 시간이 되었는데 도모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일 적이 여기에 나타났으면 금산지서에서 우리에게 무슨 연락이 있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하등 연락이 없었는데 이것이 대단히 의아하게 생각했읍니다만서도 역시 총탄이 비 퍼붓듯 하기 때문에 군서서원들은 거기에서 부상을 당하면서 굴러 가지고 중경상자를 내며 그 밑에까지 도달한 그때에 다시 후방에서, 조용하든 후방에서 또다시 사격하여 오는 까닭에 사면에서 습격받게 되었읍니다. 이것이 도모지 웬 셈이냐? 알 수 없는 사태라고 해 가지고 우군이 한 군데는 있을 것이라고 하여 총포로다가 신호를 했드랍니다. 그랬드니 후방에서 사격하든 사격을 그치면서 거기서 총포신호가 오기에 그것이 우군인 줄 알고 쫓아갔습니다. 그래 가보니 역시 추지서원 들이 거기에 집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째 너의는 연합해 가지고 공비를 토벌하자고 하고 우리를 함정에다 집어넣고 더욱이 우리를 반대로 공격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 너의가 공산군보다 더 하다고 해 가지고 여기서 일대 격투가 일어났드랍니다. 그러나 그자들은 변명하기를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가 너의하고 토벌을 개시하자고 할 적에는 금산군 서대산 내에 54명의 공비밖에는 없었는데 어제저녁 잠복경계를 하고 우리가 보니까 건천리 방면에서 약 980여 명의 공비가 침입한 까닭에 이 병력과 우리가 도저이 교전할 수가 없어서 우리는 올라가지 않었다, 그러면 우리에게 연락을 안 해준 까닭은 무엇이냐, 이것을 추궁했드니 너의 있는 장소로 우리가 연락원을 보냈드니 연락원이 가보고 와서 그 장소에 사람이 없드라고 보고를 해서 연락이 취해지지 못했다, 이렇게 변명을 했읍니다만서도 이것은 본 의원이 아는 정도에도 전자에도 금산하고 연합 토벌을 두 번이나 했지만 한 번은 옥천서원을 속여 가지고 중상을 시키고 자기네들은 한 군데에 가만이 있다가 공비가 도망해 오면 이것을 잡어서 공훈을 세울려고 해 가지고 옥천서원이 피해를 입은 일이 있었고, 또한 대전 옥천 금산 3부 가 합동작전을 할 적에도 대전서원만 올려 보내고 안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종종 그러한 행동으로 보아 가지고 위험한 지대임으로 자기의 생명이 위험하니까 자기네가 안 올라간 사실이 역력하게 나타났다는 것이 옥천서장의 보고입니다. 17일 날은 마침 옥천 장날입니다. 옥천 군청에는 경찰서장, 군수, 국민회 간부, 유지들이 모여 가지고 의용경찰대에 대한 군내의 여러 가지 대책의 회의가 버러저 있었는데 오후 2시경 해 가지고 군서지서원들이 옥천경찰서장에게 보고하기를 금반 금산에 출전했든 군서지서원은 약 10여 명이 중경상을 당하고 희생자까지 내고 무참히 패퇴해 왔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옥천경찰서장은 오후 2시경 군서지서에 가서 그 진상을 조사해 본 결과는 지금 본 의원이 보고한 이 실정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래서 서장은 분개해 가지고 다시 추부면에 가서 불신행동 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추궁을 했답니다. 그러나 그자들의 답변은 역시 먼저 군서지서원에게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너의가 현지 장소에 없었든 까닭에 연락이 못된 것이다. 이런 즉 말하자면 차탈피탈하는 말만 했답니다. 이래서 여기서 싸우다가 옥천서장이 본서에 돌아온 것이 오후 6시경이라고 합니다. 본서에 귀환한 후 서장은 역시 적정 이 있는 것만은 확실하니 여기에 대해서 무슨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해서 군수, 국민회장, 유지들을 모아놓고 여기에 대한 대책을 강구했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석상 에서 대강 결정된 것은 군청이라든지 금융조합이라든지에 있는 중요 서류, 금품, 이것은 대체로 일단 소개를 시키자. 이것이 결정이 되어 가지고 금융조합 군청 또 읍사무소 등에 있는 중요 서류들은 그날 밤에 대피시켰든 것입니다. 그다음 제2단 조치로서는 만일 적이 내습할 적에는 우리는 어떤 태세를 취하겠느냐? 여기에 대해서는 군청에서는 군 대로 숙직원을 모아놓고 금융조합은 금융조합대로 숙직원을 모아놓고 있다가 총성이 날 때에는 전체가 다 대피를 해라 하는 결정을 내리고 군내의 태세는 완전히 갖추는 동시에 또 그날이 장날이니만큼 시가가 복잡하고 공비가 또 그 장꾼 중에 섞여 들어올 염려가 있는 까닭에 오후 6시 30분에 경찰서장은 직권으로 시장을 전부 철시를 시켜 버리고 비상조치로 계엄을 선포해서 통행까지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그래 놓고 그다음에 경찰서장은 자기의 병력을 전부 소집한 결과 총수가 190명밖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190명의 병력을 가지고 어떻게 이것을 배치해야 할 것인가? 그 사람이 여러 가지로 고심을 해 봤읍니다만서도 서대산이라는 것이 옥천읍에 면한 것이 약 10리에 긍해 있읍니다. 그러면 적이 어느 시기에 어디로 침범할는지 모르는 까닭에 이 요소요소에다 잠복시키고, 그것은 예전에도 항용 이렇게 해왔읍니다. 또 혹은 가장 중요한 데다가는 조곰 수효를 느려 가지고 배치시켜 놓으니까 본서 내에는 특경대까지 합해 가지고 약 58명밖에 안 남었답니다. 이것이 본서 부근에서 역시 최후의 중요점을 경계하고 있는 서원 의 수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니 만일 저자들이 1000여 명이니 그 반수가 습격해 온다 하드라도 약 500여 명, 만일 전부가 습격해 온다고 하면 1000여 명이니 이 불과 100여 명 남짓한 이 병력을 가지고는 도저이 대항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전경찰서를 먼저 생각하고…… 대전은 옥천서 약 40리, 자동차로 약 30분 걸리면 곧 도착하는 뎁니다. 그래 대전경찰서장한테다 오후 7시경 사정하기를 대전경찰서에서 2개 중대의 응원부대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했드랍니다. 그랬드니 서장 말이 대단히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도 이 적정을 알고 있는데 자체의 경비상 도저이 응원부대를 한 사람도 보낼 수가 없다고 완강히 거절을 당했든 것입니다. 그다음에 도에다가 이것을 보고를 하려고 하는데 옥천서에서는 직접 전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은서를 경유하면 통하기 때문에 보은경찰서에다 의뢰해 가지고 청주 도 경찰국에다 보고를 해달라고 의뢰를 했드랍니다. 그러나 보은-청주 간의 전화가 역시 불통이 된 까닭에 보은서에서는 그것을 보고하지 못하고 옥천서에 무전이 있어서 무전으로다 보고를 할려고 했읍니다만서도 그 시간에 정전이 된 까닭에 역시 보고를 하지 못했드랍니다. 그다음에는 제3차로 영동경찰서장에다가 전화를 해 가지고 약 2개 중대의 응원을 요구했으나 영동서에서도 대전과 마찬가지로 자체 경비상 부득이 응원부대를 보낼 수 없다고 해서 역시 여기서도 거절당하고 다음에 보은에다…… 보은은 서대산과는 거리가 100여 리야요. 그런 까닭에 보은경찰서에다 전화를 걸어서 너의 서에서는 곧 2개 중대를 우리에게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했드랍니다. 그러나 보은서에는 그때 마침 서장이 부재중이고 경무주임이 있어서 그 전화를 받고 하는 말이 ‘역시 우리도 자체 경비상 응원부대를 보낼 도리가 없다’…… 그래서 옥천서장은 너의는 적군의 직접 위협을 느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적군의 위험상태에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요청하는데 응원부대를 안 보낸다는 것은 이것은 공산당을 도웁는 행동이다. 이렇게까지 한 결과 경무주임은 드디어 1개 중대만을 보내준다는 승낙을 했다 합니다. 그때 옥천서장은 요구하기를 시간이 늦으면 효과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늦어도 17일 날 오후 12시 전으로 옥천에 도착하도록 요청을 했드니 자동차가 없다는 핑계를 해서 무슨 짓을 하든지 민간 자동차를 징발해서라도 곧 보내달라는 요청을 한 결과 드디어 승낙을 받었다고 합니다. 그다음 자체 경비에 있어서는 청성 안내 안남은 역시 동북부에 있는 면인 까닭에 거기에서는 1개 소대씩 배치해도 염려가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이 3개 지서에다 1개 소대씩의 병력을 옥천에 오후 10시까지 도착하도록 하라는 소집명령을 해놨든 것입니다. 이래서 자체에 대한 태세는 갖추어 놨읍니다만서도 그 후 좀처럼 적이 나타나지 않는 까닭에 군청은 군수 통솔, 금융조합은 이사 통솔, 역은 역장 통솔 하에, 경찰대는 경찰서장 통솔 하에서 그 밤을 1시간 내외간으로 서로 연락을 해가면서 기다렸으나 도모지 적정을 알 수가 없고 적이 침입할 만한 우려는 있고 자기의 마음속으로는 고민을 느끼지만서도 그 연락은 도모지 되지 않고…… 그러나 적이 침입할려면 대체로 적이 서대산에 있는 까닭에 남으로 공비가 침입할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에요. 이 때문에 그 당시 군수 자체도 아무래도 저놈들이 침입하려면 경찰서와 역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먼저 침범할 것이다. 침입하게 되고 경찰대가 적을 발견하게 되면 신호를 총소리로 하기로 하고, 그 신호를 듣고 우리가 대피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해서 군청직원 수십 명과 금융조합과 경찰서원이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야 적은 드디어 11시경 해 가지고 옥천을 침입해 가지고 옥천읍 전체를 포위했든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되도록 잠복경계로 보냇든 경찰관과 연락으로 보낸 5명의 의경과 청년단이 적정의 정보를 왜 본서로 연락을 하지 못했든가? 여기에 대해서 잠깐 보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잠복경계로 각지에 매복시켰든 경찰관들은 침입한 적의 수가 5명이나 15명씩 집단하야 왔다고 할 것 같으면 본서에 연락을 취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그날은 달이 백주와 같이 너무 밝은 까닭에 적의 행동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제1 보초지점에서 보니까 개미와 같이 많은 수백 명 공비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복 경관 3명이 한 발의 총도 놓지 않고 자신이 콩밭으로 먼저 숨어버렷든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각처의 잠복되었든 100여 명은 전부 침묵상태에 들어갔습니다. 또 서쪽에서 잠복경계하고 있는 대로 연락을 취하기 위하야 본서에서 의경 세 사람, 청년대원 두 사람을 보냇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오후 11시 조곰 못 되서 본서를 출발해 가지고 각 서원들의 매복 장소에 갈랴고 옥천서에서 나와 가지고 약 500메타를 걸어가는 동안에 한 국군통신대라고 해서 옥천 주둔한 중대가 그때 마침 술이 얼근이 취해 가지고 그 사람들 가는 것을 보고, 의경대원 중 몇 사람은 총을 메고 두 사람은 메지 않고 가는 것을 보고는 너 웬 놈이냐고 질문하니까 의경대원인데 경찰에 연락할 사명을 맡고 간다고 대답한즉 ‘이놈들, 통행금지 시간이 지난 이때에 어디를 가느냐’고 총을 세 자루를 뺏고 덮어놓고 때려서 죽도록 맞고 그 까닭에 연락을 못 하고 말엇다고 하는 사실을 나종에 알었다 합니다. 이상과 같이 본서에서 보낸 것은 무기만 뺏기고 다시 연락할 도리가 끊치는 동시에 옥천역을 습격하는 좋은 기회를 준 것이다. 서 에서는 이때나 저때나 대기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읍니다. 이와 동시에 공비들은 옥천역으로 먼저 침입했읍니다. 옥천역으로 먼저 침입해 가지고 역사에 불을 질렀는데 그 역사에 불을 지른 사람은 아까 말한 남방 , 즉 남쪽 서대산을 넘어 가지고 약 300여 명 공비가 혹은 100명 혹은 50명씩 분대로 와서 한 부분은 옥천역을 전면으로 침입하고 한 부분은 옥천경찰서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 옥천 동남부를 포위했든 것입니다. 그다음에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으로 군서지서원들의 후퇴하는 부대의 뒤를 따라 가지고 침입한 한 100여 명의 세력부대가 있읍니다. 이것은 군서를 침입해 가지고 군서면사무소에 불을 질르고 군서지서를 습격하는 동시에 대부분 부대는 옥천 서북면으로 해 가지고 군청 지대로부터 옥천 구읍 가는 길을 끊어서 완전히 동서군 을 포위했든 것입니다. 그래서 옥천은 완전히 적 500여 명에서 포위되고 말었든 것입니다. 이것이 도대체 피침 경로입니다. 그다음에 각 기관에서, 즉 옥천군경찰서 역 등 각 기관에서 활동한 사항을 말씀드릴가 합니다. 맨 처음에 역에서는 역장 하나와 역원 4명을 데리고 역을 사수했읍니다. 그때에 경찰서에서 공비가 내침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를 받고, 자기네들끼리 상의하기는 우리는 역의 역원이니만큼 이 철로를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야간 통행 열차도 남에서 올라올 열차가 있고 북에서 내려갈 열차가 있는데 그중에 어떠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지만 약 11시 반경에 옥천을 통과하는 미군 열차가 국제적으로 더 중요하니까 이것을 어느 정도 응급조치를 해야 되겠다고 작정을 하였다 합니다. 남에서 올라오는 열차도 피습을 당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위선 남으로 김천 황간 영동에 전화로 연락해서 남으로부터 올라오는 열차가 공비에서 침해당할 염려가 있으니 야간운행을 정지해 달라고 연락을 완전히 취했읍니다. 그리고 후에 안 일입니다마는 남쪽에서 올라오는 열차는 이 세 역에 정차한 모양입니다. 그다음에 대전 지방철도 본국에 보고해 가지고 본국에서는 대전 RTO에 이 사실을 보고해서 미군 열차라든지 일반 열차가 밤에 옥천을 통과하지 않도록 하라고 했읍니다마는 그때 미군 RTO는 ‘괜찮다, 전시 하 다니는 열차니 미리 피침 당할 우려가 있다고 해서 정지할 수 없다’고 미군 차를 출발시켰습니다. 옥천역장은 남쪽 김천 황간 영동에 열차가 정지되었다는 보고는 기간 받었지만 북에서 내려오는 열차의 보장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역장 1명하고 역원 4명은 그 정보를 받을 때까지 여기를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서 다섯 사람이 역을 완강히 사수했든 것입니다. 그 찰나에 공비들은 역을 습격해 와서 침입을 시작했읍니다. 이때는 11시 20분 좀 넘었습니다. 공비들이 맨 처음에 달어든 것이 역의 청사입니다. 역의 청사를 불을 질르니까 역원과 역장은 거기에 피해 가지고 좀 우로다가 옮겨 고 그때 유엔경찰대 3인이 정거장에 배치되었고 본 경찰대원도 한 사람이 배치되었었읍니다. 이 경찰대들을 역에서 모든 용무가 완료될 때까지는 옥천역을 후퇴할 수 없다고 결심하고 적을 대항하여 용감히 교전 중에서 유엔군 전용 열차가 옥천역을 향해 들어와서 최후에는 옥천역 부근의 철교를 하나 건느는 근거리까지 왔다고 합니다. 그때 옥천역장은 이 열차를 정지시키지 않으면 공비에게 침해를 당할 테니까 이것을 정지시켜야 되겠다고 해서 자기는 신발 벗어지는 것도 모르고 열차가 오는 쪽으로 미친 놈 소리 질르듯이 소리를 질러 옥천역에서 약 300메타 되는 지점에서 열차를 정지시켰든 것입니다. 여기 열차를 정지시킨 지점은 공비가 미리 30여 명이 매복되어 가지고 있었읍니다. 역장이 가니까 그것을 보고 사격할려고 했으나 열차가 오는데 총소리를 내면 안 되니까 열차를 습격할려고 작정해 가지고 총을 놓지 않고 역장을 보냈든 것을 사후에 들어 알었읍니다. 역장은 미군을 보고, 역장이 다소 쉬운 영어를 합니다. 지금 적이 침입한다는 그 상태를 보고하였읍니다. 그 시기에는 역사 에는 이미 불이 붙어 가지고 전부가 타는 중이었읍니다. 그래서 역에 공비가 침입해 가지고 불을 질렀으니까, 만일 열차가 들어가면 피해를 당할 테니 다시 대전으로 후퇴하라고 말했으나 미군은 완강히 거부하고 응종 하지 않었으며 뒤에 있든 국군 헌병조차 어떤 놈이 열차를 정지시켰느냐고 하며 권총을 놓기까지 하는 고로 역장은 당황하여 ‘저는 옥천역장이올시다, 이 열차가 가면 공비의 습격을 받을 우려가 있다’고 다시 헌병에게 말했다 합니다. 찰나에 그 열차에 타고 있든 차장이 내다보며 ‘옥천역장님, 웬일입니까’ 해서 비로소 옥천역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이 차장이 옥천역장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시간을 얻은 것은 전에 말한 유엔경찰하고 역을 경비하든 경찰관이 이 열차가 후퇴할 때까지 우리가 사수하지 앓으면 그 열차가 습격을 당할 테니까 사수해야 되겠다고 결의하고 맹렬히 발포하여 30여 명을 용감스럽게 대항해서 수십 분간 격전을 했든 혜택이라 합니다. 총소리를 듣고서 또 역장을 확인한 뒤에 이 열차는 비로소 후퇴하기 시작해 가지고 세천역 까지 갔읍니다. 그다음에 군청에서 대기하든 군청원은 어떻게 했느냐? 군청에서는 간부들이 대기하다가 총성을 듣고 비로소 도망할랴고 하였으나 아까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군청을 포위한 공비들은 맨 처음에 군청에 침입해서 군청 서무과에 불을 질렀읍니다. 군청은 목재이기 때문에 수십 분간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다음에 금융조합에 들어가 가지고 방화를 하고 연초경작조합 또 다시 방화하게까지도 되었읍니다. 군청 직원 중에는 대부분 탈출하지 못하고 군수도 도망가다가 공비들에게 붙잡혔었고 나중에 도망했다고 합니다. 군청의 중요한 문서는 사전에 대피시키고 나머지 문서를 정리해 가지고 산으로 넘어가다가 매복했든 공비에게 붙들려 두 사람은 희생되었습니다. 옥천역에서부터 군청 주변으로 이르기까지 전체 포위를 당할 때 공비 주력 300여 명은 주로 옥천경찰서를 포위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포위한 후 다시 사방으로 옥천경찰서를 침입할랴고 힘을 썼으나 옥천경찰서에서는 제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58명의 직원과 그다음에 소사 까지 전부 합해 가지고 63명이 다 각각 총을 들고 서 내 각처 망루에서 용감히 적과 싸웠다 합니다. 네 군데 망루에서 있든 경관들은 시민이 경동 해 가지고 대다수의 피해를 입을가 해서 자기들의 건재를 알려 안심시키려고 망루에서 달밤에 소리를 질르면서 ‘이놈들, 다 들어오너라’ 말살시킬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하며 기관총과 소총으로 쏘면서 소리를 질렀든 까닭에 옥천 시민들의 후에 감상담을 들으면 경찰서가 안재 해 있다, 안재해 있는 이상 우리가 경동하면 공비에게 죽을 것이라고 해서 대부분 가옥 내에 있기 때문에 옥천 유지 의 피해는 적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는 공비 3명을 사살하고, 다시 입초 경찰관 하나가 공비의 소위 상당한 위관 급 하나를 사살하고 현장에서 네 놈을 사살하고, 익일 18일 날 3시 30분까지 완전이 경찰서를 수호했습니다. 이 관계로 경찰 주변에 있는 주택에는 본 의원이 들은 바로는 조고마한 침해도 없었읍니다. 대부분의 국민회 간부라든지 옥천에서 공비가…… 즉 말하자면 대상 인물로 할 만한 중요한 옥천 간부급 인사들은 대개 경찰 주변에 사는 까닭에 피해가 없었읍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 군청을 소각하고 금융조합을 소각하고 연초조합을 소각하고 기 외 관청 대개는 아무 일이 없었는데 일부 공비는 시가 상점을 습격해 가지고 의복과 금품 등을 강취했든 것입니다. 금융조합 자체에서는 벌써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사전에 연락이 있었든 까닭에 중요한 서류와 중요한 금품은 대피시켜놓고 해서 이 점에 대해서는 하등 피해가 없고 그 가옥과 비품만을 전소시킨 것입니다. 제가 이제 이 대략 상황을 다 말씀드렸으니까 결론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 의원이 직감한 것은 이렇습니다. 공비가 서대산에 운집해 가지고 옥천을 습격할 시기를 노린 것을 약 6시간 전에 아렀다는 것, 만일 경찰이 즉 대전이나 영동이나 보은이나 이들 각 군에 있는 경찰들이 응원부대를 다소간이라도 옥천서장의 요구대로 주었드라면 침공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닌가? 또 침공을 하기 전에 응원대를 보내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자체 경비상 이것이 불가능하다, 이러드라도 옥천이 이미 습격을 당해 가지고 피습 중에 있는 정보를 옥천역장이 세천을 가 가지고 누누히 대전에 연락하고 보은에 연락하고 영동에 연락했다고 하니 응원부대를 속히 발송해 주었으면 참전 3시간 반이라는 시간은 짧어지고 따라서 피해도 적을 것이 분명하며 더 많은 공비를 격멸하였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전이나 각 군에서는 자체 경비를 빙자해 가지고 피습을 당하기 전에나 피습을 당한 후에도 결국 사정을 알면서 한 사람의 경비력도 주지 않었다는 것은 공비에게 이러한 기회를 주어서 비단 옥천뿐만 아니라 어떠한 군이라도 피습을 당하는 데 큰 위험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본 의원은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 것입니다. 보은의 1개 중대의 부대는 제가 알기에는 옥천에서 약 40리 거리 되는 곳인데 안내면에 와 가지고 옥천서가 피습을 당하여 교전 중이라는 것을 18일 오전 1시경에 옥천변전소의 전화를 통해서 정보를 받었다 하는데 거기서 오지 않고 소위 응원부대로 오는 놈들이 진탕 술을 먹다가는 그 이튿날 날이 밝은 다음에 옥천서의 피습이 끝난 뒤에 온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은 본 의원이 생각할 적에는 경찰의 연락의 기동성을 결여하고, 즉 공비를 토벌하며 한국을 수호한다는 정신이 결여된 까닭에 서로 합하지 않어서 옥천 자체를 매장하고 말었다는 점 이런 점 등에 대해서 내무부에 묻고저 합니다. 그다음에 내무 당국에서도 서대산이라고 하는 지역은 예전부터 문제가 많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금산 서대산은 산악지구이기 때문에 여기에 공비가 웅거해 가지고 북으로는 속리산과 남으로는 삼도봉으로, 또 때로는 여기에 웅거했다가 충남 대전 등지를 피습하는 근거지입니다. 산악은 험악하지만 삼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서대산 내에다가 경찰력 2개 중대나 3개 중대만 주둔시키면 이 공비의 근거점과 연락도로가 단절될 수 있는 까닭에 충남과 옥천과 전북 등지는 어느 정도 진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기에다가 2개 중대나 3개 중대를 설치하지 않으면 금산군만 하드라도 3개 면을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남이면, 추부면, 군북면이 공비의 수중에 있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에 필요의 경비 가 없다. 여러 가지로 애로가 있어서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순전히 당국의 구실일 뿐이요, 이 3개 면에 수입되는 재원만 하드라도 여기에다가 2개 중대 내지 3개 중대의 경찰력을 설치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것만 설치해 주면 적정은 꺼질 것이고 적이 활약하는 한도가 줄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기에다가 경찰을 주둔시킬지 내무부의 의도는 어떠한 것인가를 묻고 싶어 합니다. 그다음에 치안국에서 옥천 피습 상황에 대해서 보고한 것을 보면 대단히 그 현실 실정과는 부합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본 의원이 신문지상에 난 것을 보면 피해당한 액이 대단히 근소한 액입니다. 옥천에서 사건이 일어난 뒤에 치안국의 연락상황을 보드라도 대단히 한만 하고, 또 한 가지로서는 경찰서 자체가 충북과 충남 전북에 걸쳐 있는 까닭에 위급사태 시에도 경찰국에서 도지사에게 보고가 되어야 한다, 혹은 도 경찰 국장의 용허가 없다, 도지사에게 보고되지 않었다 등등을 구실로 빙자하여 응원을 천연하기 때문에 몇 번이나 위협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최후로…… 제가 시간을 많이 끈 까닭에 간단히 말씀하겠읍니다. 내무부에서 금반 옥천 사건에 있어서 용감하게 투쟁한 사람 또 혹은 응원부대를 보낼 수 있고 안 보낸 사람, 응원 오다가 자기의 생명이 아깝고 피해지에 들어가기 싫어 가지고 중간지대에서 이러한 저러한 구실을 가지고 싸우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명만을 보호하는 이러한 국법에서 도저이 용인할 수 없는 경찰관…… 여기에 대해서 잘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못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고 하여 상벌이 분명하고 보면 앞으로의 사기는 진작해 가고 따라서 우리의 소수 경찰력을 가지고서라도 기동적으로 공비는 말살되지 않을가 합니다. 이 점에서 내무부의 의도를 알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좀 더 상세이 보고를 드렸으면 좋겠읍니다마는 시간이 적어서 이상 끝이겠습니다.

시방 회의시간이 되었는데 이 긴급동의 옥천 사건의 보고와 질문, 또 외무부에 관한 질의 이것은 오늘 시간이 끌리드라도 처리하도록 시간을 연장합니다. 시방은 곽의영 의원이 추가로 말씀하겠다고 해요. 간단히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해요.

간단히 두 가지 질문하겠읍니다. 내무부장관은 옥천 사건 발생 전 10일 전에 충북지사가 와서 충북 부근에 약 1000명이라는 공비 숫자가 삼도봉에 집결하고 있다, 그러니 대단히 위험한 사태에 있으니까 농림부장관한테 토벌미를 달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면 와서 내무부장관에게도 의당히 충북지사로서 보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약 지사로서 없다고 하드라도 충북 또는 충남 경찰국장으로서 의당히 이 1000여 명의 공비가 집결하였다고 하는 보고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내무부장관은 여기에 있어서 이 정보를 듣고서 충남북도에 무슨 조치를 하고 있었는가? 또 둘째로는 내무부장관은 각 지방에서 연락적 으로다가 공비의 습격으로 인해서 무참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박탈당한 이 마당에 있어서 경찰력으로만 이 공비 습격에 대해서 대비를 할 것인가 아닌가? 우리로서는 도저이 경찰력으로서 할 수 없으리라고 단정하는데 국방부장관이나 참모총장과 연락해서 그 군대와 대치할 그 계획과 무슨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만약 그러한 용의가 없고 경찰력으로다가 현상을 유지한다고 하면 영단적 조치가 있어야 할 텐데 무슨 영단적 조치를 하고 있는가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 계획을 말씀하기를 바라고, 끝으로 한 가지 원하는 것은 오로지 각 지방에서 일반적 평론이 내무부의 치안을 담당한 치안관이라든지 내무부장관이 감독관으로서 일선 치안의 공비 토벌을 일선 경관에게 맡기고 자기네는 실지 지도감독하는 일은 별로 없고 보수가 적다는 이러한 관심이 있으며 또한 전부를 맡겼단 말이에요. 그러한 실정에 있어서 지방 경찰관서에서 정보를 들으면 우리 지방에는 치안이 좋다고 해서 내무부에서 안심하고 있다가 옥천 사건이 났다, 전주 사건이 났다고 해서 벌컥 두집는단 말이에요. 그리고 경찰국장의 정보를 들으면 다 괜찮단 말이에요. 그런고로 해서 내무부에서는 제일선을 갖다가 책임자로서 순시도 하고 보충도 하고 제일선의 최소한도의 경찰력을 최대한도 역량을 발휘하도록 제일선주의를 채택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그냥 방에서만 호령할 것이 아니라 제일선에 가서 솔선수범 지도감독을 할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여기에 대해서 답변해 주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내무부에서 답변이 있겠어요. 대단히 시간이 갔습니다. 내무부차관을 소개해요.

간단히 답변의 말씀을 여쭈겠습니다. 답변의 말씀을 여쭈기 전에 경부선 선로 연선 중에서도 가장 6․25 사변 때에도 피해가 없던 옥천읍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된 것을 퍽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 요번의 피해 경위에 대해서는 신 의원께서 직접 보고를 하시여서 여러분들 잘 아시다싶이 현지에 있어서의 경찰관들의 선투 한 데 대해서는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다만, 항상 여러분들에게 여쭈고 또 지금 곽 의원이 지적하시어서 잘 우리가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현재 저의들이 보유하고 있는 경찰력을 가지고서는 자체 경비에도 오히려 미급 한 바가 있어서 이러한 중요시기에 처해서 인접 군에서 구원을 못 나간 것은 퍽으나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지금 신 의원의 보고의 말씀과 마찬가지로 보은서 옥천에 모처럼 후원 을 나갔다가 도중에 멈추고서 들어가지 않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사실은 엄격히 조사해서 엄중한 처단을 내리고저 합니다. 실은 충북지사가 며칠 전에 와서 보고한 바도 있고 저의들 자체도 압니다마는 현재의 적은 과거 북쪽과 혹은 이 전라남북도 방면에서 멀고, 또 동쪽으로 즉 말하자면 경상남북도 쪽으로 또 넘어오는 기세가 있어서 입짝에 주력을 보내고 이런 관계로 해서 요즘 적 은 도로 북상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여쭐 것 같으면 지금 말씀하신 서대산을 거처서 충북 속리산으로 갈 이러한 태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저의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시다싶이 전국 각처에 선동하던 공비를 이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의 도경 소위 이 지리산지구에다가 압축 포위한 관계로 이 사람들이 추수기를 앞으로 하고서 소위 보급투쟁이라고 할가 최후적인 이러한 발악상은 도저이 이 지역을 방어하는 데에도 위급한 바가 많은 것입니다. 이래서 저의들도 여러 가지 조치를 강구하는 동안에 이런 일을 당한 데 대해서는 참으로 무어라고 사과의 말씀을 여쭈어야 될는지 알 수가 없는 바이올시다. 지금 나종에 곽 의원께서 말씀한 바와 마찬가지로 저의들 경찰병력만 해 가지고서는 적을 완전히 격멸시킬 이러한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고식적으로 현황을 유지하는 데에 미급한 이러한 실정에 있으니까 여러분들이 정치적으로 많이 협조를 하시여서 국방군으로 하여금 후방에 응원을 얻게 된다고 할 것 같으면 비단 국민의 생명 재산을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저의들 내무부 입장에서도 많이 환영하는 바입니다.

다음은 외무부장관에 대한 질의, 방만수 의원 말씀해요.

외무부 책임자에게 몇 마디 묻겠습니다. 이미 신문지상에 발표된 바와 같이 한일회담에서의 일본 측 대표로 일개 사무관이 출석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미 신문지상을 통해서 발표되었읍니다. 이것은 놀라지 않으면 아니 될 사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네들이 우리 정부를 어찌 보고 있는 것이며 우리 외교 진영을 얼마만치 눌러보고 하는 행동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야말로 치가 떨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대사로 지금 미국에 가 있는 양 대사가 참가해 가지고 있고, 장관을 잘했건 못했건 국방부장관을 지낸 신성모 씨가 이 회담에 참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우리 정부를 얼마만치 그네들이 멸시하고 있으며 우리 삼천만을 모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야말로 어떤 말로서 여기서 형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 이 이상 더 수치가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둘째로 과거 우리나라 주일대표부에서 일본에 가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게 이와 같은 행동으로서 우리 정부에 대해 주느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야말로 과거 우리 주일대표들이 모든 나뿐 점이 있다는 것을 저는 지적 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처사에 대해서 정부에서 앞으로 어떤 책임을 가지고 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금반 처사에 대해서도 우리가 앞으로 내가 볼 때에 일본 정부에서 더욱 더 멸시하고 경시하는 태도로 나올 것이라고 보는데 우리 정부로서는 여기에 대하여 어떤 대책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다음으로 이와 같은 모독을 당해 가면서 회담을 계속할 의도인가? 그리고 정부로서 일본 정부에 대해서 엄중 항의할 용의가 있는가 없는가, 어떤 길이 있는가 없는가? 한 가지 말씀드리자면 주일대표부에 있어서 일본 조야 가 총력으로 추진해 가는 사실을 우리들은 신문지상을 통해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에서도 한일회담에 있어서 총력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도 대단히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상의 질문에 대해서 과거와 같이 동문서답 격으로 답변을 하시지 말고 이번에는 책임 있고 확실한 답변을 해 주시기를 저는 바라는 바입니다.

외무부장관의 대답을 소개합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이 저쪽에서는 일개 사무관이 대표로 나왔는데 여기에서는 외교의 중진되는 사람을 먼 곳에서 불러서 거기 상대로 했으니 그것이 정부 체면이라든지 국가의 위신에 관계가 되는 것인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 아마 첫 질문이 그러하신 것 같습니다. 한데 본래 신문지상으로도 다소 다 아시는 바가 있겠지만 이번 회담에 대해서 도대체로 우리 귀에 들리고 신문보도에서 들리는 바에 의지하면 일본 정부에서는 이번 회담에 대해서 그다지 적극 열의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으로 관측하고 있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에서 이것은 대일강화조약을 인준하기 위해서 국회가 지금 열려 가지고 있는데 혹시 대표부에 와서 그 관리들이 하는 말이 일본 관리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지금 국회가 열려 가지고 있어서 여러 가지로 바쁘니까 이 한일회담에 대해서 그렇게 전력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을 몇 번 말을 해왔읍니다. 이번에 다 아시겠지만 첫날 토요일의 회담에는 그 차관 「정구 」라는 차관이 나왔드랍니다. 그런데 일본은 먼첨 점령 하에서는 그 수상이 외상을 겸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경 그 차관이면 구경, 실질적으로 외상 자리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수상이 나오지 않는 한 그다음에 외상이 따로 없기 때문에 구경은 차관이 나온 모양입니다. 첫날은 그렇게 해왔는데 그다음부터는 이 사무적으로 토의하는 것은 거의 어느 국장급에 있는 사람이 나오겠다는 사전통고는 있었읍니다. 그런데 물론 여기서 양 대사라든지 신 대사가 정부 대표로 되어 가지고 있는데 저쪽에서 차관급이 나온다고 하면 물론 같이 회담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무적 절충을 그 레벨에서 하지 않고 국장급에서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여기에서도 거기에 맞는 사람을 내보내기로 다 작정되어 가지고 한 것입니다. 하니까 그 사무 절충을 며칠 동안 하고 그다음에 또 원 대표들이 모일 적에는 아마 우리 정부 대표도 거기 참석을 할 줄 압니다. 그러니까 구경은 저기서 나오는 대로 우리도 나가는 것이니까 그다지 뭐 체면에 손상이 된다고 꼭 해석할 필요는 없는 줄로 압니다. 그러고 주일대표부의 평시에 그네들의 행동과 일본 사람 눈에 빛쳐지는 행동과 구경, 이번에 좀 홀대를 받는 것과 같은 그러한 것이 이번에 어떠한 연관성이 없는가 하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 이것은 아까도 말씀했지만 일본 정부에서 자기 이해타산으로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읍니다만 좌우간 이번 회담을 자기 나라 정부의 총력을 기우려 가지고 심각하게 말하자면 진지하게 대해 주는가 하는 것이 의문으로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본 사실은 본 사실대로 알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본래 아까 말씀한 것 모양으로 저기서 나오는 대로 우리도 나가기로 되니까 무슨 체면 문제라든지 모욕 문제라든지 그런 것은 나지 아니합니다. 또 그것이 나지 않는 이상 구태여 주일대표부에 이렇다 할 만한 것을 꼬집어서 얘기할 만한 것이 없는데 주일대표부 행동이 어떻기 때문에 아마 그것이 영향이 되어 가지고 나쁘다는 것은 이 사람으로서는 얘기를 할 수가 없읍니다. 그리고 앞으로 엄중한 항의를 할 생각이 없겠느냐 이런 말씀도 하시고, 또 앞으로 그렇게 나오면 거기에 대한 대책이 어떻겠느냐고 했는데 지금 이 사람의 답변을 그대로 들어 주신다면 이 문제는 아직 나지를 않게 됩니다. 하니까 그것을 간단하게 그렇게 말씀드립니다.

회담 기한은 얼마나 됩니까?
그 기한은 지금 우리 정부에서는 일방적으로 3주일이라든지 한 달이라든지 이것을 정해 가지고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고 하니 먼저 그 회담의 내용이 본래 윤곽이 분명치 않다면 않을 만큼 내용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 회담의 기한에 대해서는 일본 측에서도 아무 얘기가 없었지만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꼭 3주일이라든가 혹은 2주일 이렇게 정한 것은 없읍니다. 그것은 정할 성질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어떤 문제로서 몇 주일이 걸리든지 간에 그것이 원만하게 어떠한 기결 이 지어지기까지에는 고만 기한이 되었으니까 우리는 가겠노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해서 이것은 기일을 정한 것이 없읍니다.

오의관 의원 뭐 잠깐 말씀하실 것이 있답니다.

납득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질문할려고 합니다. 이제 외무부장관 말씀이 저편짝에서 사무관이 나오면 이쪽에서도 사무관이 나간다. 그러면 좋아요. 하지만 외교 문제를 토의하는 데 있어서 사무적으로 할 문제는 사무적으로 하기 위해서 사무관이 나가야 하지만 저쪽에서 사무관이 나온다고 이쪽에도 사무관이 나가고, 저쪽에서 대신 급이 나오면 이쪽에서도 대신 급이 나간다. 그러면 이것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밤낮 거기서 사무관 나오면 이쪽에서도 사무관 나가고, 어떻게 되는 것이에요? 절차가 먼저 외교적으로 무슨 적극적으로 할 일에 있어서 그것을 혹 사무적으로 할 때에 사무관이 나가지만 거기서 사무관이 나간다고 이쪽에서도 사무관이 나가고 그러면 이 한일외교회담이라는 것은 도무지 무슨 근거 없는 건지 알 수 없단 말씀에요. 차라리 그렇게 할 바에는 우리나라 위신을 위해서라도 단호 일본과 한일회담을 중지하고 대표를 소환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외무부장관 답변해 주시요. 말 안 되는 것이에요.

외무부장관의 대답을 소개해요.
뭐 지금 다른 질문을 하시는 것과 같이 되어서 나오기는 했읍니다만 구경 대답하는 내용은 아까 이 사람이 벌써 말씀한 내용을 또 뇌려 가지고 말씀하는 것이니 달지 않겠기에 실상을 여기서 또 그 얘기를 여기서 뇌려서 할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먼첨 그 외교에는 소위 영어로 레벨이라고 합니다만 등급을 봅니다. 저기서 누가 나오면 이쪽에서 누가 나가고, 서로 거기에 대해서 사전에 무슨 타협이 있어서 제1회 회의에는 이러이러한 급의 사람이 나가고 그다음부터는 이를테면 국장급이라든지 혹은 과장급에서 의논한다든지 그래서 거기서 가끔 분과위원회 모양으로 있어 가지고 심지어 레벨이 더 낮인 사람이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두 총집 해 가지고 나종에 결정할 적에는 좀 레벨이 높은 사람이 모여서는 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하필 한일회담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아마 그렇게 되어 나가는 줄 생각합니다. 하니까 그 문제를 가지고 물론 관심을 아니하실 수는 없어요. 나라의 체면에 관계된다고 생각하신다면 오늘 말씀하신 것이 지당한 줄로 압니다. 하나 나 해석하는 바에는 아직은 뭐 그렇게 나라 체면을 손상할 정도로 굴욕적으로 이것이 되어 간다고까지는 해석하고 십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표를 소환한다든지 그런 것은 이 사람이 여기서 즉답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저 대답하리만큼 말씀 여쭈고 내려갑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산회합니다. 다음 수요일 날은 휴회하고, 다음 금요일 날 다시 본회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