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의사일정에 올라 있는 남북협상 뉴데리 회담설 진상규명의 건을 제출하신 그 의원이나 이 의제를 둘러싸고 질의 논란하시는 여러 의원들의 애국의 지성 , 애국의 열정을 본 의원은 높이 평가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우국의 열정 혹은 애국의 지성이 자칫 잘못하면 남용되기가 쉽고 또한 이것이 선용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 있어 이 남북협상 뉴데리 회담설 진상규명의 건이 우리 대한민국국회의 의사일정으로 올라 가지고 연 닷새를 두고 이것을 토의․논란할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 의문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이올시다. 이런 의미에 있어서 오늘 의사진행에 있어서 그 증인의 심문을 증인․증언 사항에 있어서나 또는 그 증언 심문상에 있어서 답변을 하실 분이나 반드시 뉴데리 회담설 진상규명이라고 하는 의제에 국한해야 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본 의원은 주장하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국회법 제44조에 의할 것 같으면 「의원은 의제 외에 토의할 수 없으며 의원의 질의는 토론에 미쳐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의미의 규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원이 토론할 때에 있어서는 의사일정에 오른 의제를 가지고 토론해야 된다는 것이며 또는 의제에 대한 질의는 질의에 그칠 것이고 토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규정인데 이 입법의 취지는 1개의 의제를 올려 가지고 진행할 때에 있어서는 그 의제를 중심으로 해 가지고서 그 의제의 조속한 처결을 위하고 의사일정을 종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한 규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해서 오늘 이 의사일정에 올라온 뉴데리 회담설 진상규명의 증언청취에 있어서는 과연 뉴데리 회담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그 의제에 국한해서 증언을 요구할 것이고 또 이 단상에 올라와서 증언하시는 분도 뉴데리 회담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이 의제에 국한된 발언을 해 주시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어느 당의 내분을 여기에서 이야기한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가 엄계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본 의원은 주장하고 의사진행의 참고로 제공하고저 하는 것입니다.

증인이 곧 나올 터이니 여러분 잠간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잠간만 계세요. 조용하세요. 시방 증인이 출석하여 있읍니다. 따라서 증인출석의 동의안에 대해서 조순 의원이 나와서 그 취지를 말씀해 주십시요.

먼저 남북협상 뉴데리 회담설에 대해서 그 사실내용을 성명서로 발표하신 함상훈 씨의 여기 증언을 청취하려고 국회의 출석을 요구한 제안자로서 그 경위와 본 의원의 의도를 그분에게 몇 마디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아까 윤형남 의원께서는 오늘 이 증언에 있어서 뉴데리에서 만났느냐 안 만났느냐 하는 데 한해서만 국한해야 되겠다고 하는 의견말씀이 있었읍니다만 우리는 함상훈 씨가 민주국민당 전체 의원에게 자기의 간부요직 일체를 사임했다고 성명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요, 또 불행한 일이지만 민주국민당 내부분쟁이나 또 분열이 있다고 하는 그 사건이 국회의사당으로 진전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또는 신익희 씨가 뉴데리에서 조소앙을 만났느냐 또는 그 밀사를…… 오경운이를 만났다고손 치드라도 그것이 이렇게 심각하게 국회의 논의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까지는 나는 안 생각합니다. 문제는 함상훈 씨의 성명서 속에 우리의 민주국민당 내부에 제3세력이 침투되어 있고 또 위원장 신익희 씨가 그 중요 인물로서 암중모색에 있었다는 것을 이 점을 지적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의 상식은 민국당의 걸어온 업적의 첫 페지가 반공투쟁이라고 하는 찬연한 금자탑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연상하는 것이고 또 이 사실을 자타가 공인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백발이 소소한 신익희 선생이 육십 평생을 조국광복의 거룩한 투쟁으로 엮여저 있고 국내에 있어서 뚜렷한 반공노선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의 건국과 민주주의의 육성을 위해서 심혈을 경주해 온 이 사실은 우리는 세인이 다 공지 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함상훈 씨 일개인의 성명서 따위가 문제가 될 것이 아니고 우리가 개의 할 필요도 없는 것이며 일소에 붙여야 옳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성명서에 기재된 내용을 살펴볼 때에는 우리가 걱정하고 우리가 염려하는 중대한 문제가 여기에 기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함상훈 씨는 내가 아는 바로는 일개의 시정배가 아닌 것입니다. 해방 직후 좌우 중간파 등등의 국론이 극도로 혼란한 그러한 때에 있어서 뚜렸한 반공이념과 일사불란한 이념을 가지고 이 나라의 건국에 공헌을 세웠고 또…… 가만이 있에요. 또 지금까지에 있어서 우수한 정당의 지도인물의 한 사람으로 나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한 술자리에 있어서 친면이 없는 처음 보는 사람의 지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로서라도 이러한 풍설을 들었다고 할 것 같으면 우리의 정치적 신념과 민족적 염려는 이것을 그대로 흘려듣고 또 묵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소위 세계를 무력 침공할려는 소련의 정책이 지금에 와서 평화공세라는 미명 밑에서 중립국이라고 하는 공산당의 괴뢰정권을 기도하는 세계 침략정책이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고 최근에 있어서는 이북방송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이에 대한 준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 미묘하고 중대한 시기이기 때므로 해서 이 성명서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함상훈 씨하고 가장 개인적으로 친밀하다고 말씀을 하셨든 김상돈 의원의 국회에서의 발언을 빌린다고 할 것 같으면 함상훈 씨는 선거전이라고 하는 연병보다 무서운 병을 치른 직후에 정신을 채 차리지 못한 사이에서의 맨들어 낸 연극과 각본이라고 말씀을 하셨읍니다. 또 민국당의 성명서에 있어서 함 씨는 이것이 신 위원장에 대한 악의적 모략이요, 당에 대한 모략이라고 이렇게 지적을 했읍니다. 우리는 함 씨 일개인의 성명보다는 민국당의 성명을 더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에 정국은이나 신형식이와 같은 적색분자가 자유당 내에 일시에 침입했든 사실을 우리가 상기할 때에 자유당에는 공산분자가 일시적이나마 침투할 수 있지만 민국당에는 침범할 수 없다는 이론은 서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함상훈 씨는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 할 것 같으면 그 근본을 구명을 해서 국가를 좀 먹는 이 사실에 대해서 발본색원하는 확실한 증언을 여기에서 해 주서야 할 것입니다. 또는 만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할 것 같으면 국가를 위해서 이 자리에서 단순한 풍설에 지나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최소한도로 함상훈 씨에게 이것은 단순히 나는 풍설로서만 들은 사실이라 한다든지……. 가만이 있에요. 들어 보아요. 또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제반 사정으로 보아서 이러한 심정을…… 확실한 판단을 가젔다든지 또는 부인 못 할 정확한 과학적 증거를 나는 가지고 있다 한다든지 하는 그것을 명확하니 증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성명서에 있어서의 함상훈 씨의 판단을 결정지어 주었든 성명서 내의 모씨, 모모씨에 대한 그 성명에 대해서 이것이 수사 진행상에 그 협조에 지장이 없는 한도 내에서 이것을 밝혀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지금 동일한 증인출석의 동의자인 조영규 의원이 나와서 말씀해 주십시요.

간단히 하라고 해싸시니까 간단히 하겠읍니다. 과거의 업적이나 여기에 대한 본인의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한이 없읍니다. 그러나 그거 다 생략하겠어요. 그리고 아까 조순 의원께서 끝으로 하신 말씀이 계신데 수사상 무어 조사에 어떤 것은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증언으로서 대단히 시원치 않은 증언을 하라고 하시는 말씀밖에 안 됩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말씀하기를 수사상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 이 단상에 올라서셔서 말씀한 것으로 하여금 해서 의원 전체나 국민 전체가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해 주십사 하고 저는 부탁합니다. 저는 전 의원 김동성 선생께 여기서 나와서 증언해 주십소사 하는 동의를 했읍니다. 그래서 몇 가지 증언에 대한 요점을 말씀드릴 테니까 잘 기억하셨다가 여기에 단상에 올라오셔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세인이 모다 의아심을 갖고 있는 뉴데리에서 과연 신익희 의원과…… 당시의 국회의장과 조소앙이가 만났는가 안 만났는가 하는 대답을 해 주시기 바라는 것이 제1문입니다. 제2문 뉴데리에서 30분 동안 비행기가 개소링 공급을 받기 위해서 머물렀다는 것인데 30분간의 경과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30분간의 경과보고를 해 주십소사 하는 것이 제2문입니다. 제3문 오늘날 신익희 의원으로 하여금 해서 남북협상의 주동자인 것처럼 혹자는 말하고, 신익희 의원의 정치사상 동향이 변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김동성 씨로 말씀하면 세계 각국을 신익희 의원과 같이 동행을 했음으로 하여금 해서 소위 세칭 왈 말하는 제3세력이라 호칭을 받는 그러한 국가들을 들렸을 때에 과연 신익희 의원의 그 언어행동이 어땠든가 하는 그 소감을 여기서 말씀해 주시라는 것이 제3문입니다. 제4문 민국당 모 간부에게 이런 말씀을 했다는 말씀을 전해서 들었읍니다. ‘뉴데리에서 신익희 의원과 조소앙과 만났다는 그런 소리는 미친 소리다’ 이렇게 답변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러신 일이 있는가 없는가 이 네 가지 점에 대해서 명확한 답변을 바라고 내려갑니다.

지금 증인으로 나오게 된 함상훈 씨 여기에 나와 주십시요. 언권 안 드립니다. 좀 조용해 주세요.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에 의지해서 증인의 선서가 있어야 한답니다. 그래서 특별히 증인에게 제가 법률 제8조․제9조를 읽겠읍니다. 제8조 「① 본법에 의하여 선서한 증인 또는 감정인이 허위의 진술이나 감정을 할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전항의 죄를 범한 자가 당해 각 원 위원회 또는 양원 합동회의나 국정감사반이 심사 또는 조사를 종료하기 전이며 범죄가 발각되기 전에 자백한 때에는 그 형은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제9조 「정당한 이유 없이 증인이 출석하지 아니하거나 요구된 서류를 제출하지 아니할 때 출석한 증인이나 감정인이 선서 또는 증언이나 감정을 거절한 때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금고에 처한다.」 이상입니다.
선언서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에 의해서 동법 제8조 및 제9조 처벌규정이 있음을 듣고 증언은 양심에 따라 사실 그대로 말하고 무슨 일이든지 감추거나 보태지 아니하기를 맹서합니다. 단기 4287년 11월 5일 증인 함상훈

선서를 한 결과 증언을 허락하겠읍니다. 말씀하십시요.
제가 국회의 출두를 요청받은 함상훈이올시다. 제가 이 출두하라는 공한을 받고서 생각을 했읍니다. 마침 몸도 시원하지 않었지만 도대체 국회에서 증인이 되어 증언을 하는 데 있어서 본회의에 나와 하는 일이 있는가 없는가? 내가 알기에는 미국이라든지 영국이라든지 각 의회에서 증언을 할 때에는 분과위원회라든지 소위원회 같은 데에서 하지 본회의에서 나와서 하는 예가 없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병도 있고 이에 대한 생각도 하기 위해서 이틀을 쉬었읍니다. 그러나 두 번씩이나 국회에 출석하라는 요청이 있어서 나는 국회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여기에 나온 것이올시다. 내가 증언을 하려는 문제는 지난 10월 26일 발표한 ‘전 민주국민당 당원 동지들에게 소함’이라는 성명문제에 있어서 이것이 한 당 내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적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국회에까지 논의가 되고 거기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자는 의미에서 저를 부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 성명서를 중심으로 하고 과연 민주국민당에 제3세력이 침투되어 있는가 없는가 이것을 주로 내가 증언하고저 하는 바이올시다. 제3세력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현재에 있어서 공산주의 사회와 민주주의 사회가 있다고 하고 이 사이에 중간적 노선을 걸어가는 것이 제3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대표적 국가로 말하면 인도라든지 인도네시아, 버마 같은 이러한 나라들이 이러한 대표적 국가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3세력이 무엇이냐? 어떤 사람들은 현재 자유당과 국민당이 있으니 세 번째 생기는 당이 제3세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읍니다. 그것은 제3당은 될 수 있지만 제3세력이라고는 규정할 수 없읍니다. 얘기를 들으세요. 나는 수사상에 대한 증인이 아니라 정치상의 증인이기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증언을 하려고 합니다. 민주국민당은 종래에 공산주의를 반대했고 공산주의와 타협하려고 하는 중간세력하고 싸우는 것을 이때까지 당의 당시 로 해 왔든 것이올시다. 과거의 예로서 우리는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타도하기 위해서 싸웠고 또 미소공동위원회에 있어서라든지 또 혹은 우리가 남북 총선거를 함에 있어서 우선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하느냐 북한까지 합해서 하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위 남북을 한꺼번에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남북협상파와 중간파의 의견을 무찌르고 우리는 남한만이라도 정부를 세워서 이것으로 하여금 남북통일을 할 수 있는 이러한 민주주의적 정부를 세워야 되겠다는 이러한 노선을 취해 왔든 것입니다. 이러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민주국민당이 만일 공산주의와 친하고 공산주의와 타협할 수 있는 제3세력이 침투해 가지고 제3세력에 끌려서 그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든지 그의 앞잡이가 된다든지 하는 것은 민주국민당의 전통적인 정신으로 보아서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정당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 당연히 반대하였든 것입니다. 그러면 제3세력이 민주국민당으로 침투한 사실이 있느냐? 나는 있다고 단정합니다. 무엇이냐?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 안에 제3세력이 결성되어 가고 있다…… 무슨 얘기냐? 과거에 탄압되어 가지고 지하에 들어간 한독당 남북협상파 공산당이 들어가서 운동하고 있는 민족청년단 계열 그밖에 전향파 이런 등등은 표면으로는 제3세력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내용으로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또 북한에 있는 공산당, 노동당이라는 것 이외에 남한에서 부뜰려 간 인사를 이용해 가지고 북경에서 전아세아약소민족해방동맹의 보호 밑에서 그 사람들이 공산당도 반대한다 혹은 자본주의도 반대를 한다 또는 순수한 민족단결에 의해 가지고 이 나라를 세운다는 기치를 들고 있는 그 사람들도 또 제3세력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 남북한에 있는 제3세력의 인원이 혹은 비밀리에 연결해 가지고 우리나라에 통일정부를 세울 때에 또 그들을 중심으로 세력을 만들겠다는 것이 엄연히 사실입니다. 이것은 남북한에 한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김삼규 등등을 중심으로 한 소위 중립파위원회라고 하는 것이 제3세력입니다. 그들은 일본에 있는 좌익 사회민주당 사회당 좌파하고 연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미국의 김용중 일파가 중립화를 만들어 가지고 이러한 중간적 입장을 만들어 가지고 제3세력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한의 제3세력, 북한의 제3세력, 일본에 있는 것, 미국에 있는 것, 혹은 홍콩이라든지 이런 등등의 루트를 통해 가지고 밀접히 연결하고 있는 세력이 민주국민당에 침투했다는 것을 나는 알었기 때문에 이것은 당 내적으로 해결을 하고 될 수 있으면 사직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전 민족적․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당내에서 해결을 할려고 애를 썼읍니다마는 내 의견이 통하지 못하고 나는 여러 동지들과 선배들이 이 문제를 될 수 있으면 온건하게 취급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문제는 수사당국에서 해결할 것이고 내 개인으로서는 참고 기다리고 있으면 해명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이것을 가지고 당 대회를 앞두고 문제를 일으킬 것이 무엇이냐, 이래서 나는 여러 동지 선배들의 간곡한 그 마음에 움직여서 이때까지 10년 동안 싸워 온 민국당에 가지고 있든 직책을 다 사직하고 평당원으로서 나는 나 자신 그대로 있겠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신문에…… 나를 징계위원회에 부친다 또는 권고사직하게 되었다 이러한 말이 정치적으로 내 생명을 유지할려고 할 것 같으면 나는 나에 대한 진실한 사정만이라도 나는 민주국민당 당원 동지에게 알려 주어야 되겠다 그러한 나의 충정을 피력한 것이 내 성명입니다. 이것이 불행인지 행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사회문제가 되고 국회까지 문제가 되어서 오늘 여기에 나온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민주국민당은 여기에 제3세력이라고 하는 것이 생겼다는 증거를 듣기 위해서 나는 신익희 위원장이 제3세력하고 늘 접촉을 하고 연결하고 있다는 경위를 얘기하겠읍니다. 재작년 정치파동기 이후에 소위 당에 소위원회가 있었읍니다. 당의 최고 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입니다. 이와 같이 정치파동을 지나 가지고 당의 활동이 극히 곤란한 때에 있어 가지고 당을 어떻게 운영하느냐 이 문제에 있어서 신 위원장은 당분간 당의 활동을 정지하고 야당 각파를 모아 가지고 민주연맹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래서 이것을 정치적 민주주의 토대로 해 가지고 해 나가자는 주장을 했읍니다. 그러나 그때에 여러 사람들은 당의 운동을 정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민주연맹을 조직한다는 대상 가운데에 우리가 확실히 믿고 있는 조봉암 씨 등등의 제3세력하고 연결할 수 없다고 해서 반대했든 것입니다. 그 후에 이 민주협회를 맨들기 위하여 장면 씨에게도 운동을 해 보았고, 유림 씨에게도 여러 방면으로 운동을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장면 씨는 조봉암과 같은 인물을 넣는 것은 절대로 제3세력으로 끌려가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해서 성공을 못 했든 것이올시다. 그 후에 신 위원장이 국내에 돌아와서 그때 당의 조병옥 씨, 김준연 씨 또 당 사옥 이런 것이 파괴당하고 혹은 잽혀 가고…… 그전의 정치파동기에 있어서 백남훈 씨, 서상일 씨 이런 분들이 잡혀가고 최고위원인 김성수 씨는 병으로 누어서 대단히 어지러운 때올시다. 그때에 당을 깨트려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런 지경까지 있었고 그래서 이것을 어데까지든지 끝까지 끌어 나가자 또는 해체를 하자 이러한 두 가지 의견이 있었읍니다. 나는 해당론 을 주장한 사람이올시다. 그 후에 이것을 해 나가야 되겠다는 것이 여러 사람의 의견이어서 즉 다수의 의사에 따라서 나는 당을 유지해 가는 데 찬성했고 이것은 활동하는 데 찬성했든 것이올시다. 여기 와서 직제가 개정이 되고 신익희 씨가 위원장이 되고 특히 당 직제가 대동추진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서 그야말로 야당을 연결하는 직제였든 것입니다. 그런데 위원장으로 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위원장의 권한으로 넘어가 가지고 여기에 있어서 위원장이 대동추진위원이라든지 모든 위원장을 선임하는 것을 위원장이 임명하는 것과 같은 그런 사례로서 해 가지고 왔읍니다. 그때 정책위원회의 위원장은 직접으로 신 위원장이 취임하고 그 이하에 박명환 씨를…… 원세훈이하고 남북협상에 갔다가 온 몇몇 사람을 입당시키고 그이를 부위원장으로 시키고 그 밖의 몇몇 인사를 망라해 가지고 대동추진위원회를 맨들었읍니다. 대동추진위원회는 어떠어떠한 사람으로 구성하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조봉암, 유림 등 우리는 이들을 알고 있는 제3세력의 사람을 넣자고 주장을 했든 것입니다. 또 그 후로 이 대동추진을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활동한 것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 성과가 없고 이러한 대동추진위원회 멤버 자체가 사회의 의혹을 사는 사람들이니 이 기능을 정지하고 따로 특별위원회를 맨드러 가지고 순수한 우익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 가지고 특별위원회를 임명해서 이것을 가결했든 것입니다. 그 명단과 몇몇 등등은 발표치 않기로 했지만 그때에는 조병옥 고문이 거기에 대해 가지고 경과를 보고하고 난 다음에 신익희 위원장은 이 우리가 대상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할 때에 만일 조봉암 씨가 공산당이 아니면 하고 첫째 손을 꼽아 가지고 지적한 것을 알고 있읍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 있어서 나는 조봉암 씨가 제3세력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이러한 등등 3세력과 몇 해를 두고 계속적으로 손을 잡을려고 노력하는 데 있어서 나는 신 위원장이 제3세력하고 손잡을려고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표면적으로 보았든 것입니다. 다음으로 금년 3월경이올시다. 여기에 성명서 가운데 모씨라는 말이 있읍니다마는 나는 그이를 여러 가지 신변, 그 사람에 대한 신분관계, 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수사관계 등등으로 해서 발표하기를 금지합니다마는 여기에 대한 그분의 내력과 내가 그이를 믿게 된 기 를 말씀해서 장차 소위원회라든지 조곰한 회합석상에서 그 이름을 발표해 가지고 여러분의 말씀에 응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과거에 중국에 있어서 물론 태생은 한국입니다마는 한독당에 들어간 일이 있고 이러한 소위 무엇입니까 특무기관에 관계하기 때문에 수사에 대한 공산당 동향에 대한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따라서 중경이라든지 상해, 북지, 만주 등지의 한국인의 동향과 특히 한독당이라든지 그밖에 공산당들의 운동을 잘 알고 있는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이로 하여금 중공이 활동하든 경과 혹은 독립당 국민정부가 어떻게 공산당한테 넘어간 이면과 또 따라서 그 세력이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어떠어떠한 일 등등을 들어서 내가 배운 바가 많이 있읍니다. 특히 그이는 해방 후에 돌아와 가지고 여기에 가장 공산당의 침투가 많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사회가 혼란한 때에 있어서 세 가지 일을 한 일이 있읍니다. 그것은 강 소령과 표 소령이 공산당이니 미구에 넘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채병덕 소장에게 이야기하고 이것을 주의시키고 경고했지만 듣지 아니했읍니다. 그 후에 실현이 되어 가지고 책임자이든 이응준 육군참모총장이 사직을 했읍니다. 또 한 가지는 서울시 경찰국 경찰협회이사이었든 김용택이라는 사람, 그 사람은 누구나 공산당이라고 믿지 않는 데 있어서 그때에 이 사람이 서울시 경찰국장 김태선 씨한테 이야기해서 저 사람이 공산당이니 주의해야 된다 그랬는데 나중에는 공산당으로 확실히 잡혀 갔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이가 6․25 사변 때에 탈옥해 가지고 이북에 가 가지고 휴전회담 때에는 판문점에 신문기자의 자격으로 나온 사람입니다. 또 그 후에 성시백이라는 사람, 이 사람은 무역상을 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성시백 이가 만주에서 공산당 활동을 하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리고 민주국민당, 한국민주당 때부터 내려온 김성원이란 사람이 내 밑에 있었읍니다. 4년간이나 공산당 계통이라는 것을 전연 모르고 있었읍니다. 그런데 5․30 선거 때 김성원이가 주의할 인물이라는 것을 김준연 씨와 홍성하 씨에게 주의를 했읍니다. 그 외에 확실한 방면에 이야기를 했는데 두 달 후 5․30 선거 때에 연안 내려가 있을 때에 신문에 발표된 것을 보니까 성시백 사건에 관계해서 잡혀 들어간 것입니다. 성시백 사건을 폭로하는데 공로가 있고 이것을 나에게 말했읍니다. 그러한 등등의 업적으로 보나 그다음 여러 가지 말씀한 지식으로 보거나 나는 배운 바가 있고 이 사람을 믿고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믿기 시작했읍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무슨 말을 들었느냐 하면 3월경 이북에 있는 오경심이라는 여자, 나는 오경심이라고 들었읍니다만 내무부장관은 오경운이라고 발표했읍니다. 이가 조소앙의 비명 을 띠고 남한에 내려와서 누구누구 등을 만났다 그 가운데에 신익희 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읍니다. 그리고 서울경찰국 사찰과에 부뜰려서 몸이 종로서에 잡혔다가 유치장에서 죽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대단히 의아한 귀를 가지고 들었읍니다. 또 여러 가지 지적하여 말하는데 지금 아세아에 대한 공산당의 정책으로서 휴전이 될 것이고 휴전이 되면 미군과 중공군이 철수된다 그렇게 될 것 같으면 이 나라에 어떤 방식으로든지 선거가 나을 것이다, 제네바회의에서 한 것과 같이 남북 국회에서 동수의 사람이 모여서 전원위원회를 모여 가지고 거기서 총선거하는 것을 작정하든지 혹은 중공이 양보를 해 가지고 유엔 감시 하에 선거를 해 가지고 통일을 한다든지 선거가 있을 것이다, 이 선거에 대비하기 위해서 북한이 조소앙 등등, 소위 5인위원회라는 것은 잡혀간 인사들을 포섭해 가지고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5인위원회가 있어 가지고 남북총선거추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가지고 이에 호응해 가지고 나와 있는 제3세력과 규합해 가지고 이것을 합해 가지고 선거를 할 때에는 남북에서 호응하면 김일성 정권과 남한의 이승만 정권이 다 없어저 버리고 순수한 그야말로 민족적…… 중간에 외국의 제재라든지 간섭을 안 받는 중립국가를 맨드는 그러한 계획이 진행된다는 것을 들었읍니다. 그리고 이러한 계획들을 하기 위해 가지고 모든 사람이 일본으로 루트를 통해서 저 석도라든지 그런 루트를 통해서 휴전선을 통해서 왔다 갔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그리고 작년 12월에 자기에게 가장 친한 친우인 한 사람이 왔는 것입니다. 그이가 김일환이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과거 한독당에 있든 사람이에요. 그리고 중국 국민정부 군대를 따라서 봉천까지 갔다가 중공군에게 부뜰려서 서로 죽게 되었을 때에는 서로 손을 잡고서 내가 말한 그 사람은 남경으로 내려와 가지고 국민정부하에서 일을 하고, 김일환이라는 사람은 동북 방면으로 타고 김구 씨, 김문춘이라는 사람에게 후원을 받아서 그다음에 첫번에는 공산당과 합석을 해 가지고 있었고 6․25 사변이 일어나 가지고 9․28 수복 이후에 중공군이 다시 북한에서 지배세력을 가지게 되자 한독당이라든지 이러한 등등에 대한 포섭공작이 시작되어서 대단히 완만하게 우리는 평안하게 지낸다 이리해서 우리는 어디 가든지 다 환대를 받고 있으며 중국 천지 약소민족해방동맹원이라고 할 것 같으면 언제든지 자유로 다닐 수 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번에 조소앙 씨가 중공의 후원을 받어서 인도에서 해공하고 만난 것도 다 이 때문이요. 또 자기는 금후에 이 신 의원을 만나 가지고 여러 가지로 북한 사정도 얘기하려니와 일본에 가서는 제3세력의 장세량이라는 사람을 만나겠다…… 장세량이라는 사람은 누구냐? 장세량이라는 사람은 길전 수상의 비서로 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공작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합니다. 이 사람한테 가면 이 장세량 씨가 또 해공하고 대단히 가까운 사람이고 이 사람이 한국에 정치자금을 보내 가지고 신익희 씨를 도웁겠다, 이제 장세량 씨를 만나고 가겠다 이런 얘기를 하드라는 얘기를 들었읍니다. 그때에 또 무슨 얘기를 들었느냐 할 것 같으면 작년 섯달 즉 크리스마스 전전날인가 전인가…… 그 전부터 시작되었읍니다마는 조봉암 씨의 소위 조직책, 이병희 조직책에 대해서는 근거가 있는 얘기올시다. 이 이병희라는 사람은 과거에 민주한독당…… 홍명희가 관계하는 당에 소속한 사람이였으며 남북협상에 따라갔든 사람이예요. 그 후에 중대한 사건에 걸려서 수사기관에 갔다 온 사람입니다. 조봉암 씨가 재작년에 사회민주당을 조직하기 위해서 발기해 가지고 운동하다가 성공하지 못한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마는 여기에 조직책으로 있어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조봉암 씨가 이 지청천 씨를 역시 결합하기 위하여 이병희 씨를 보내 가지고 지청천 씨와 조봉암 씨를 연결시킬 공작을 하드라는 것을 알고…… 이 내가 말하는 그 사람은 지청천 씨의 옛날 부하입니다. 그 사람이 지청천 씨를 찾어가서 ‘조봉암 씨를 몰라요? 당신이 민주국민당을 탈당해서 정치적 생명이 떨어젔소. 조봉암 등등과 공작한다는 것은 당신의 정치적 생명을 대단히 불리하게 해요……’ 이와 같이 얘기하니 그이가 ‘그러니 내가 좋게 생각하고 그랬지. 네가 그러면 고만 두지……’ 못하게 해서 안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랬드니 그 후에 얼마 안 되여서 내가 신문에 발표한 소위 노모라는 사람…… 이 사람은 세칭 노 주교 노 주교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은 견지동에 있는 사무실에서 늘 왔다 갔다 하는 그러한 조봉암 씨 계의 사람입니다. 그 사람하고 이름은 잊어 버렸읍니다마는 또 한 사람이 가서 술을 먹으러 가자 해서 광화문 어떤 술집에 가서 밤새도록 술을 먹었다는 말이에요. 저 사람들이 반드시 내일에 대해서 무슨 일을 하겠지 그래서 술이 취하지 않고 끝끝내 정신이 똑똑히 있었는데 한 사람은 골아 떨어저 버리고 노라는 사람이…… ‘너 민족적 결합을 분쇄하느냐? 지금에 있어서 민족들이 다 같이 결합하고 있다. 남한에서 말하면 신익희 씨라든지 조봉암 씨라든지 혹은 이범석 씨라든지 다 결합이 되어 있고 북한에 있는 조소앙 씨하고 연락이 다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해공이 올 때에 인도에 올 때에 해공하고 조소앙하고 만난 것도 그런 사실이다. 네가 대체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도 모든 아세아는 장차 중공의 영향하에 그 아세아정책에 의해 가지고 다 될 것이니……’ 이런 등등의 위협과 혹은 조롱 비슷한 회유를 하였다는 얘기를 하드라는 얘기를 들었읍니다. 이런 등등이 내가 얘기하는 뉴데리에서 조소앙 씨하고 또 이 신익희 씨하고 만났다는 것을 들은 내 지식이올시다. 또 그리고 또 한 가지 말씀할 것은 여기에 유진식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조윤구 씨의 얘기가 나오고 합니다마는 이것은 뉴데리에서 무엇을 만났다는 얘기와 별개 문제이기 때문에 따로 말씀하기로 하고 뉴데리에서 만났다는 이러한 들은 말 이외에 내 마음으로서 믿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한두 가지 하겠읍니다. 신익희 씨가 세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기행문을 썼읍니다. 영국 런던에서 며칠날 대관식에 참여하고 며칠날 어느 때에…… 쭉 해 가지고 파키스탄에 와 카랏치에서 네루를 만났다는 것이 있읍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인도를 들리지 아니하고 타이랜드 인도지나 사이공까지 찾아갔다는 그것밖에 없고 그 이후에 중요한 대만이라든지 비율빈이라든지 오스추라리아 일본이라든지 이러한 중요한 우리나라에 원조를 하고 우리나라에 긴밀한 관계가 있는 이 나라를 찾어가고 어떠한 정치적 일을 했고 어떠한 사명을 다하였다는 이런 것이 없고 날짜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나는 인도에서 조소앙을 만났다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올시다. 또 한 가지는 모든 우리나라를 원조하는 그러한 여러 나라를 방문하는 데 있어서 파키스탄 카랏치에서 인도수상 네루를 만나 가지고 나는 인도에 너를 찾어보러 가는 터인데 너를 여기에서 만났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해서 안 갔다고 하는 그 얘기올시다. 혹은 길전 일본 수상은 자기의 사명을 가지고 미국과 불란서와 영국과 독일 등등을 방문해 가는 도중에 있읍니다. 그러면 미국 워싱톤에서 우연히 망데스 프랑스 수상을 만났다고 가정을 합시다. 나는 너희 나라에 갈려 했는데 너를 여기에서 만났으니 안 가고 나는 너희 나라에 안 가겠다, 파리 비행장에서 30분 동안 내려서 그대로 타고 간 비행기에 타고 본이라든지 백림이라든지 로마로 갈 수 있에요? 이것은 나는 적어도 국회의 대표로서 정부에서 지출하는 돈을 가지고서 국민을 대표해 간다 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에 병원을 보내고 현재에 있어서는 중립국감시단의 하나로서 이 나라를 우리가 포섭하느냐, 우리가 유리하게 하느냐 하는 중대한 외교적 문제로 보아야 됩니다. 조병옥 씨는 과거에 대통령특사로서 그때에 파리에 가 있을 때에 네루라는 사람이 아무래도 우리나라 독립하는 데 머리를 흔들어서 이것을 설복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데 일부러 여러 시간 걸렸다 합니다. ‘너희 반동갱이가 무슨 독립이 있느냐……’ 그러면 ‘반동갱이는…… 우리나라는 반동갱이지만 너희는 파키스탄 세 이론 세 나라로 갈리지 않었느냐? 우리는 반동갱이지만 통일하기 위하여 이것은 독립하자는 것이다. 너희가 세 나라로 갈린 것은 장차 통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 이와 같이 외교적 활동을 해 가지고 네루로 하여금 수긍하게 한 그런 일이 있다고 하면 우리 능숙한 외교가…… 국민의 참 성원을 받고 있는 신익희 선생께서 이러한 정치적․외교적 생각이 없다고는 생각이 안 됩니다. 반드시 인도 국민을 찾어가고 인도 국회의장과 혹은 상원, 하원의장을 만나서 우리 국민의 의사를 전달하고 ‘네가 아세아에 있는 약소민족 우리 한국의 이 나라의 행복을 위하여 통일을 위하여 노력해 주시기 바란다’는 것을 나는 일부러라도 찾어가서 해야 될 줄 압니다. 나는 이것이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밖에 아까 신익희 씨가 민주세력…… 소위 민주협회라는 그 이름 말고라도 따로 제3세력에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예를 들겠읍니다. 유진식이라는 사람…… 해공 선생께서는 유진식이라는 사람을 전연 모른다고 했읍니다. 물론 오경심이라는 사람도 모르고 다 내가 예를 든 사람 모른다고 했읍니다. 유진식이라는 사람은 과거에 공산당을 하다가 한독당에 들어와 그래 가지고 조선의용군이라고 해 가지고 해방 후에 만주에서 그것을 조직했든 사람입니다. 한국에 들어와 가지고 한독당에 관계했읍니다. 임정 추진하자는 벽보를 붙였든…… 1947년 독립기념일예 붙이고 다닌 사람 그것이 유진식입니다. 광주경찰서 습격, 원주경찰서 방화사건 그 외에 중요한 테로 등등을 한 그런 사람이 소위 CCC 단장 유진식이올시다. 이 유진식으로 말하면 한독당뿐만 아니라 임정 추진을 갖다가 일하든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신익희 선생을 잘 압니다. 나는 신익희 선생이 유진식이라는 사람을 아는 증거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전에 인정전에서 어떤 연회가 있을 쩍에 경무부장으로 계시든 조병옥 씨가 김구 씨에게 불경한 언사를 하였다고 달려들어 가지고 때리려고 하든 사람이 유진식입니다. 그 후에 1949년 10월입니다. 조성삼이라는 한독당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작고를 했읍니다. 초상날입니다. 장례식을 지낼 적에 여기에 조중서…… 해공 선생이 다 참석을 했고 돌아올 적에 자동차 문을 열고 ‘안녕히 가십시요’ 하고 인사한 사람이 바로 유진식입니다. 그 유진식을 모르겠읍니까. 그다음에 조윤구 씨라는 사람은 지금 일본에서 큰 실업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정치적으로는 중립화위원회에 관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이번에 전라도인가 어데서 입후보하려고 하다가 말았읍니다마는 그 사람이 부산에 와서 민주국민당의 노동국장 이청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민주국민당의 지부를 갖다가 일본에 설치하자는 말도 했고 다음에 정치적 자금도 대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이는 여수를 지나서 서울까지 왔었고 해공 선생을 만났고 해공 선생의 소개로 모 여관에 투숙하였든 사람입니다. 그 얘기를 다 하는 사람은 누구냐? 그것은 김경이라고 얘기하고 조중서 씨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조중서 씨로 말하면 여러분 다 아시다싶이 한독당원이요, 한국에 돌아와 가지고 정치공작대로 해공 선생과 같이 있든 사람입니다. 그리고 해공 선생이 의장을 할 때에 총무국장으로서 6년 동안을 지낸 사람으로서 안으로나 밖으로나 가장 가까운 심복인으로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비록 민주국민당원은 아니지만……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 가지고 바깥에 제3세력과의 연결에는 전부 조중서 씨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읍니다. 김경이라는 사람 이 사람은 조중서 씨한테에 모든 얘기를 듣고 있고 해공 선생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해공 선생의 사랑을 받아서 헌 옷 헌 구두를 신고 다니다가 지금은 새 옷 새 구두를 해공 선생이 주었다는 얘기를 들었읍니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얘기하는 이러한 오경심이니 김일환이니 장세량이니 유진식이니 조윤구니 등등에 대해서 하나도 사람을 모른다는 것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고 절대로 이 사실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공 선생이 민주국민당에서 탈당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작년에 장면 씨가 조병옥 씨를 찾아와 가지고 얘기하기를 영국으로 떠나면서 해공이 말하기를 ‘내가 돌아오면 같이 신당을 하자’ 이런 얘기를 해서 당을 탈당한다는 것을 듣고 있읍니다. 작년에 조병옥, 김준연 씨가 피습을 당하고 사옥이 다 깨지고 그래 가지고 당을 해체를 하느냐 운운할 때에 연락부장으로 있는 최규설 씨가 마산에 가서 마산 송서구 씨한테에 얘기했읍니다. ‘해공 선생이 돌아올 것 같으면 당을 탈당한다고 했소. 그러니 우리가 다 그만두고 해체합시다’ 그런 얘기를 해서 해체론을 갖다가 상무위원회에 제출하였든 것입니다. 거기서는 부결이 되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한성수 씨가 성명서를 발표해 가지고 해체를 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이것은 위법이 되어 가지고 결의로 제명을 당했읍니다. 이런 것으로 봐서 나는 해공 선생은 탈당하지 안는 것을 알고 있었든 것입니다. 그 후에 돌아와서…… 돌아오기 전에 임흥순 의원과 또 서범석 씨와 그리고 류진산 의원과 최규설 씨가 탈당한 데에 있어 가지고 나는 이 말을 들은 일이 있읍니다. 서범석 씨가 조병옥 씨 댁에 가 가지고 말하기를 ‘나는 이것이 나무에 올라가라고 해 놓고 나무를 흔드니 어떻게 하란 말이냐? 같이 다 탈당하자고 하고 그 양반은 그대로 위원장으로 남아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해공 선생이 탈당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적어도 서범석 씨에 관한 그러한 내약이 있었고 최규설 씨와도 그러한 말이 있었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나는 임흥순 씨도 그랬다고 하는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범석 씨와 임흥순 씨가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데 만일에 임흥순 씨와는 그런 말이 없고 만약 민주협회에다가 붙여 가지고 말한 것이 잘못이라고 할 것 같으면 임흥순 의원의 그 점에 대해 가지고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사과합니다. 또 그리고 류진산 씨는 해공 선생이 돌아온 다음에 탈당했읍니다마는 그 점에 대해서 류진산 의원이 대단히 불쾌한 모양이나 내가 알기에는 탈당한 이후에 민주협회의 가입신청서를 가지고 다닌 것을 나는 알고 있읍니다. 그럼으로써 나는 이것을 해공 선생에게 상무위원회를 정식으로 열기 전에 그 점에 대해서 물어봤읍니다. ‘민주협회의 가입신청서를 가지고 다니니 어떻습니까’ 이것은 최규설 동지, 유진산 동지에게 내가. 그래서 그런 서로 약속이 있어서 했는가 했고…… 반드시 해공 선생하고 탈당하자는 목적이요, 민주협회는 그대로 하자고 했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점에 대해서도 내 문 줄로 내래 가는 점에 있어 가지고 잘못되었다는 것은 유진산 의원에게 솔직히 말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등등의 얘기를 하고 나종에 나는 이 문제가 생김으로 인해 가지고 당내에 여러 가지 파동을 일으켰읍니다. 나는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여러분들의 심정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일시 다 사직을 하고 들어앉겠다는 것을 얘기를 하고 다만 내 입장을 석명하기 위해서 당원 여러분에게 알리는 그런 의미에서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당의 규약을 위반했다는 것으로 제명을 당했읍니다. 그리고 그 후에 가혹한 나에 관한 성명을 냈었읍니다. 일일이 거기에 대한 변명 같은 것은 말 안 합니다마는 내가 적색 루트를 잘 아니 공산주의에 가까운 사람이 아니냐 하는 조재천 씨가 그러한 발언을 했읍니다. 당신이 사상검사를 지냈고 경찰국장을 지냈고 사상 방면을 잘 안다고 하지마는 만일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잘못 알은 것입니다. 조재천 씨가 법률에 대한 그만한 지식을 안다고 하면 나는 적어도 국시 문제에 있어서 공산주의의 세계정책에 있어서 그만한 지식을 가졌다는 자부를 가지고 있읍니다. 또 김상돈 의원은 무엇이요? 선거를 통해 가지고 돈을 먹었다, 돈 먹은 증거가 어데 있느냐? 이러한 변명을…… 얘기를 할려며는 개인적 문제 개인적으로 공격을 하는 것은 도저이 이것은…… 만일 이 문제가 해명이 되어 가지고 내 증언에 말한 것이 사실이라고 할 것 같으면 나를 이와 같이 공격하신 그분들은 나와 같이 얼굴을 대할 때에 대단히 거북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을 변명하는 것보다도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그동안에 자중하겠다는 것을 얘기했읍니다. 해명이 될 때에 나는 현재에도 민주국민당을 떠났지마는 당원 동지는 내 심정을 생각하고 나의 진의를 생각하고 그분이 야당이라든지 자유당이라든지 과거의 동지는 다 같이 동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나를 개인적으로…… 그와 같은 것이 해명되는 날에는 다 오해했다는 것을…… 풀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을 얘기했읍니다. 여러 가지 할 말씀이 많습니다마는 대략 이런 것을 말씀드려서 내가 성명서를 발표한 민주국민당에 제3세력 침투했다는 요지를 말씀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이것으로써 증언을 마칩니다.

지금은 김동성 씨에 대한 증언을 듣겠읍니다. 선서를 해 주십시요.

선서서 국회에서의증언․감정등에관한법률에 의하여 동법 제8조 및 제9조 의 처벌규정이 있음을 듣고 증언은 양심에 따라 사실 그대로 말하고 무슨 일이든지 감추거나 보태여 아니하기를 맹서합니다. 단기 4287년 11월 5일 증인 김동성

그러면 증언을 허락합니다.

명색 없는 일개 국민으로서 감히 이 자리에 올라오는 것을 주저해서 저 아래에서 말씀하는 것을 청했으나 따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말씀에 의지해서 부득이 불감한 짓을 합니다. 우연히 생각컨대 집안어른한테 공대를 받는 그런 감이 있읍니다. 이 자리는 존엄한 자리라 이렇게 명색 없는 한 사람이 올라올 수 없는 줄 생각합니다. 증인법이 통과되었으나 법이라는 것은 해석 여하에 있는데 본인은 과거 4개년 동안에 국회의원이라는 경험에 비추어서 증인법은 의장 자신이나 분과위원회에서 증인을 문의해 가지고 그것을 본회의에 보고하는 줄만이 생각이 됩니다. 하여간 이왕 여러분 앞에 나선 이상에는 아까 조영규 의원께서 질문하신 네 가지 일을 축조해서 증언하였읍니다. 뉴데리에서 조소앙을 만났느냐? 안 만났읍니다. 이 30분 정지 비행기가 정거했느냐? 30분인지 29분인지 31분인지는 모르겠읍니다. 약 30분간을 정거한 기억이 납니다. 그날은 작년 7월 26일 낮에 가랏치를 떠나서 저녁에 뉴데리에 들려서 여러분이 물론 선배 동지 여러분께서 그동안 많이 비행기 여행을 하신 줄 압니다. 비행기가 내리지 않을 때에는 어떤 도시에 들리든지 그동안에 승객 전부를 하차를 시킵니다. 그리고 소제를 하고 기름을 친 후에 또 계속을 합니다. 그동안에 약 30분 된 줄로 생각됩니다. 그러면 밤새도록 가 가지고 그 이튿날 태국의 방콕이라는 데 들렸읍니다. 그 방콕에 들린 날자가 7월 27일입니다. 그 거리로 보아서 만일 뉴데리에 들렸다고 하면 26일에 떠나서 27일의 아침에는 방콕에 들릴 수 없는 것이요, 또 이 본인의 증언을 좀 더 추궁하신다고 하면 지금 방콕시에 지백성이라고 하는 미곡구매관이 있읍니다. 그 언제 그 일행이 방콕에 도착했느냐 하는 것을 물어보시면 알 줄 압니다. 또 세째 이 신익희 선생의 행동이 어떻트냐? 거기에 대해서 잠깐 증인의 변명을 하겠읍니다. 증인은 본래 우익입니다. 절대로 좌익의 사상을 가지지 않었읍니다. 대한민국에 대해서 제 딴에는 충성을 다했고 현 정부를 절대 지지합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고 장래에도 그렇습니다. 나는 우익이요, 좌익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해서 같이 동행하는 분도 역시 우익으로 나는 인정을 했고 약 3개월 반 동거 길을 했는데 나와 의사가 같을 줄로 알었읍니다. 또 네째 누구를 만나서 미친 소리라고 했느냐? 하는 이 말씀인데 그것 대단히 조홀 하게 생각합니다. 동내에 사는 친구가 하나 와서 ‘함상훈 선생께서 이런 성명서를 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기에 뉴데리에서 조소앙을 만났느냐 하는 데에 대해서 부인했읍니다. 그랬드니 그것이 굴러들어서 이 국회에까지 나온 것은 대단히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만일 어느 정당에서 와서 물었으면 공공한 좌석에 말할 말이 따로 있었을 것인데 친하다고 하는 무관한 이웃사람이 들은 소리가 말씀한 것이 그대로 온 것이 평소의 이 소망의 표현입니다.

지금 강승구 의원이 의사진행에 대한 발언이 있겠읍니다.

의사진행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잠간 서론이 있겠읍니다. 용서해 주십시요. 지금으로부터 한 35년쯤 된 기억이 있읍니다. 일인들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했에요. 그때에는 한국이라고 그러지 않고 조선 사람은 일본말로 아꾸 가 발달하였다, 다시 말하면 턱주가리가 발달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육체가 잘 발달되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들으면 칭찬하는 말과 같이 들리는데 이것을 우리를 대단히 모욕하는 말이올시다. 동물이, 머리가 발달되지 못한 동물이 대개 주둥이가 발달되었다고 하는 의미로 욕했기 때문에 우리는 조야에 발언을 못 했지만 묵묵히 분한 생각을 가지고 물의가 되었던 것이올시다. 똑 마찬가지로 8․15 해방 후에 어떤 외국 사람이 우리를 지적해서 말하기를 ‘한국 사람은 분열의 천재가 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의원 동지 여러분께서도 잘 들으신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천재의 기능을 가젔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하는 것인데 분열의 천재를 가젔다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의혹된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우리는 8․15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의 스로강이 ‘뭉치면 살고 헤터지면 죽는다’고 오늘날까지 웨처 왔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은 우리를 지적해서 패배한다고 이런 욕인 줄 생각합니다. 나는 이것을 듣고 아닌 게 아니라 8․15 해방 후 73개 정당․사회단체가 나와서 단체가 서로 싸움을 거듭하고 뭉치지 않는 것을 봤을 때에 잠깐 나는 이것을 기억했읍니다. 우리 이조 500년 역사를 통해서 볼 때에 많은 사화가 있었읍니다. 첫째로 연산 10사화 중에는 저의 선조께서도 6형제 3형제분이 이 사화를 당한 일이 있읍니다마는 이 사화가 한 번 일어날 때마다 중상모략으로 값없는 피를 흘린 일이 많이 있었든 것을 우리가 역력히 기억합니다. 또 한 가지 임진왜란 때에 율곡 선생께서 우리 국가의 국방을 위해서 양병십만론을 제기했든 분이올시다. 이때에 동서남북인의 투쟁으로 말미암아 결국 이 양병십만론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조야 물의가 분분할 때에 저의 기억으로서는 동서인 대표를 일본에 파견해 가지고 황윤길과 김성일이라는 사람을 파견했읍니다. 돌아와서 보고한 내용이 풍신수길이가 정한론을 주장한 것을 엄연히 알면서 율곡 선생께서 제기하신 양병십만론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당파심으로 양병십만론이 좌절된 불과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는 왜놈에게 무지한 정복을 당했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는 이 증언으로 귀결 짖기는 대단히 곤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처음 문제가 나왔을 때에 이 문제를 사직에게 일임하자는 동의를 했다가 그 동의가 부결되고 말었읍니다. 그러므로 나는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이 문제를 명백히 귀결짖지 않으면 비린내 나는 피를 흘릴 염려가 있는 것을 염려하여 우리는 어마어마한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공작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면 이것을 만약 은폐한다고 할 것 같으면 서론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임진왜란과 같은 이런 문제가 우리 조국에 닥처올 위험을 생각할 때에 저 자신 몸이 떨린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문제는 국회에서 이 이상 더 논의하는 것보다도 먼저 제가 동의했든 법무부장관, 내무부장관 두 분에게 맡겨서 이 사실을 명명백백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아까 말씀드린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이든지에 치우칠까 염려되어서 이 중대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두 장관이 조금도 사심이 없는 명명백백한 처단을 해야 될 것입니다. 거듭 부탁하거니와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은 이 문제에 대해서 독소가 있는 나무를 찍어 제끼는 도끼자루를 잡은 두 장관이 될 것을 부탁합니다. 끝으로 종결을 맺거니와 양 장관에게 이 문제를 일임하고 국회에서는 다시 여기에 대한 토론을 종결하자는 것을 동의하고 내려갑니다.

의장!

지금 동의가 성립되었읍니다. 그런데 지금 동의는 토론 종결동의로 들었는데 그러니까 여기에는 아무 의견이 없을 줄 압니다. 의결에 부쳐서 부결되면 다시 토론할 것입니다.

말을 다해요. 토론종결이 무슨 말이야? .

나 여기서 말하리다. 토론 종결동의가 표결되기 전에는 얘기할 수 있다 말이에요. 문제가 보통사건 같으면 토론종결하는 데에 의견이 없다고 할 수 있읍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증언을 하는 이 중대한 문제이니 또한 우리 의원 동지 여러분이 기억하시지만 이 문제의 중심으로 되어 있는 사람이 신익희라는 사람이라 그 말이에요.

그러면 신익희 의원은 문제의 당사자이니까 발언을 드립니다.

의장, 의원 동지 여러분! 내가 이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가 되기 시작하기에 나는 내 심사가 어떻다는 것을 나 혼자 스스로만이 알 것이지 나의 가족까지도 이때까지 이 심정을 모르고 있는 처지이니만큼 이 말씀은 내가 언제나 남보담 출중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자기의 생각하는 바는 충분히 설명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자의 하나입니다. 오직 나는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국회에서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문제라고 생각했든 까닭에 구체적인 내가 자세한 말씀이나 이 귀중한 시간, 우리의 민주주의 전당 중요한 국사를 토의․결정한다는 우리 국회에서 나로서 시간을 허비하기를 죄송한 생각으로 오늘날까지 있었든 것입니다. 불과시 처음으로 말씀할 때 간단한 몇 마디 말씀으로 ‘뉴데리에서 조소앙이라는 사람을 만난 일이 없읍니다. 내 생각은 이러저러한 것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는 제 따는 생각으로 있읍니다’ 하는 정도로 간단한 두 마디 말씀을 드렸어요. 그런데 요 전차 회의에 정 의원, 정규상 의원의 발언을 비롯해 가지고 소위 함 씨의 성명이라고 했는 데 있어서 몇 가지 말을 들어서 본인인 신익희의 얘기를 들어 보자는 말씀을 할 때에는 여러분 아시다싶이 여러분이 발언한다는 것도 질서가 있게 진행해야 된다는 것이 우리 국회에 명문으로 규정이 있으나 그야말로 여러 나라가 다 같이 관용하고 있는 회의규칙에 의해서 사회하는 본회의의 취지에 의해서 얘기한다는 것을 나는 잘 아는 까닭에 그때에도 아무 의원이 묻는 말에 아무 의원은 발언하라는 처리가 있을 때에는 내가 말씀할 용의를 가지고 있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처럼 지휘가 없었고 오늘은 다시 이 시간에 있어서 증언이다 이 증언 이것도 불필요한 말씀입니다마는 반드시 본회의에서 들어야 되겠느냐 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의 의견도 있지만 그때에도 말씀 아니하고 내려왔든 것입니다. 나는 바라기를 이다음에도 이런 사건이 다시는 또 없겠지만 만일에 있어서 증언을 청취할 필요가 있다면 우리 대한민국국회에서는 소위원회라든지 상임위원회라든지 특별위원회라든지 이런 곳에서 충분히 증인의 증언을 다 들어 가지고 본회의에 보고할 필요가 있다고 하면 그 위원 내지 그 위원회의 입을 빌려서 본회의에 보고하도록 하는 보통 전례에 의해서 하기를 나는 바라고 있는 바입니다. 그리고 기히 증언이 있었든 바에는 그 사실이 어떻다는 것을 축조해서 내가 말씀드려야 당연한 나의 의무이고 또한 여러분께서도 의당 들으셔야 이 문제를 낙착 짓는데 참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감히 발언권을 얻어서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엿새 동안을 소위 말하기를 남북협상과 뉴데리 회담설에 관한 진상규명 건이라는 의사일정에 뚜렷한 안건의 용어로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씀하기를 뉴데리 회담 이것을 말씀하고 보면 거듭 말씀을 드리지만 뉴데리에서 회담한 일이 없읍니다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지어 남북협상이다 또한 무슨 제3세력이다 운운하는 문제 이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가 일직이 기억하건대 불행히도 우리나라에 좌우합작이라는 말을 비롯해 가지고 남북협상이다 또한 근간에 와서 이 말이 다시 대두가 되면서 제3세력이니 중립설이니 하는 얘기가 나게 된 것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나 대한민국이 건립되기 전에 좌우합작이다 남북협상이다 하는 문제는 한 개의 정견의 차이이라든지 정책의 주장이라든지 해 가지고 공공연하게 얘기를 하게 되었든 것도 우리가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을 건립하고 요망스러운 말이지만 이 대한민국이 지속하는 시간까지는 대한민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법이 있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법이 없든 시대에는 아무렇게도 얘기를 할 수 있다, 된 얘기도 할 수 없고 안 된 얘기도 할 수 있었어요. 왜 법적 문제가 아니니까 정견이 다르다, 정책이 주장이 같지 않다는 정도로서는 누구나 다 얘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와서는 적어도 최초에 5․10 선거 이후 우리 대한민국국회가 조직이 되어서 헌법이 통과가 되고 정부가 조직한 이래로 물론 오늘날까지도 우리나라의 만반 법률이 한 개의 결함도 없이 다 잘 되었다고는 못 하겠지만 국가조직법을 비롯해 가지고 우리나라 국가의 생활을 해 나갈 만한 제반의 법률은 대개 쓰고 있는 오늘날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남북협상이다 무슨 좌우협상이니 좌우합작이니 제3세력이니 또 무슨 등등의 얘기니 우리 정부 우리 국가가 건립되기 전에 얘기된 것과는 전연 다른 성질로 취급되어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남북협상이다 무슨 제3세력이다 운운하는 문제는 정당 안에서 얘기가 된 문제거나 혹은 정당과 정당 사이에 서로 이 찬부를 갈라 가지고 반대를 하거나 찬성을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이 문제는 반드시 국법으로 처리할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읍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나는 기억하건데 어저께인가, 내 어저께로 기억합니다마는 우리 의원 동지의 한 분인 박영종 의원이 어저께 만장일치로 우리가 통과된 결의안을 자기 보는 각도로 얘기하는 말을 나는 듣고 비상히 나는 찬동했든 것입니다. 왜? 물론 이 문제가 상정이 되어 가지고 표결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백성으로서 어떤 사람이나 부 라고 하리요마는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에서 배격한다는 정도로 우리가 결의를 할 처지이냐 이런 생각이 절대 박영종 의원의 동의와 동감인 까닭에 표시는 안 했지만 같은 찬의를 가졌다는 말씀으로서 이 문제는 만일 신익희 말고 누구나 남북협상을 한다는 것을 진행하는 실증이 있다면 이것은 과오가 아니라 범죄다 그 말이예요. 국가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법률은 조금이라도 용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대한민국을 부인하는 사호 의 행동이 이 신익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 그 즉시로 대한민국 국법에 의지해서 처리를 받을 것입니다. 아무 문제없어요. 그러므로 내가 남북협상이니 운운 하는 것을 이 자리에서 우리 의원 동지들에게 했소 안 했소 하는 말씀을 내가 드릴 여지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지어 증언에 관해서 여러 가지 말을 들었지만 그 가운데에 골자가 몇 가지 있는 줄로 압니다. 첫째, 뉴데리 운운 문제도 함의 증언에 의하고 보면 들었다 자기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었다, 자기는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었으니 자기는 믿어 두라고 그럽시다…… 나도 다시 할 말 없다 말이예요. 뿐만 아니라 자기가 듣건데 민주국민당이라는 정당 안에는 제3세력이 침투되었다고 믿는다…… 그것 본인더러는 믿으라고 그럽시다…… 내가 이 자리에 대단히 당돌한 말이지만 일전에도 나의 당 동지인 몇 분들이 말씀할 때에 우리 민주국민당에서는 그런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 나는 한 거름 더 나가서 만일 민주국민당에 그와 같은 일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당으로 즉각으로 준엄하게 처리를 하는 동시에 국법에 비추어 처리하도록 할 것입니다. 책임지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내가 말씀을 드리면서 그 민주협회니 무슨 누구누구하고 만나서 어떻게 하자고 하는 이야기를 했다든가 또 이러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내가 이 자리에서 말씀하려고 하지 않어요. 다만 소위 민주협회 운운하는 것은 어디서 생긴 문제냐 하는 것을 잠깐 말씀드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정당이 건전하게 발전이 되어야 민주정치는 발달된다는 상식만은 우리가 다 같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가지 조건이 구비하지 못하고 훈련이나 조직이나 일천한 우리나라의 형편으로 정당이 건전하게 발전이 아직도 못 되고 있읍니다. 앞으로는 우리도 남이 지내 내려온 과정과 마찬가지로 민주국가가 아니라고 하면 모르려니와 만일 진실한 민주국가라고 할 것 같으면 정당의 건전한 발전도 날을 따라서 달을 따라서 정당한 궤도에 올라가면서 발전이 되리라는 것을 100퍼센트로 믿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렇게 못 되고 있는 것을 나도 퍽 통심 하는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러니만큼 나는 생각이 잘 들어갔든지 못 들어갔는지 정당이 발전되는 기초적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는 사람의 하나이올시다. 그것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에 대한 계몽 이것이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급선무이고 또 절대 긴요하고…… 절박한 문제가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아까 함의 증언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에서 여러 차례를 내가 그런 의사를 표시한 일이 있었읍니다. 우리는 민주협회라는 명의거나 민주학회라는 명의로 당의 동지는 물론이려니와 다른 당에 있는 동지들이라도 이 목적에 같이 동의하고 찬성하는 분이 있거든 광범하게 모여서 나 그때 한 말 그대로 기억이 나요. 정당의 한 개의 풀이 되도록…… 이것은 무슨 정당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말이예요. 그러나 이것을 잘해서 민주계몽사업이 잘 된 다음에 우리가 정당의 정견의 이동에 따라 가지고 1개나 2개의 정당으로 갈려서 다시 일한다고 할지라도 무방한 일이라 말이예요. 하지만 정당의 풀 격으로 민중이 원하는 광범한 국민적 조직을 우리들이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시방 당장 당으로서 당무를 확장한다는 데에 급급하지 말고 당으로서는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정도로 두어 두고 이 문제를 우리가 연구하며 진행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는 제의를 수차 했든 것이 사실이예요. 또 대통령 이 박사께도 내가 기억하건데 한 차렌가 두 차례 이와 같은 문제를 나는 같이 논의했든 기억도 있읍니다. 그래 그 어른도 원칙으로는 찬성한다 그러나 이 일이 잘 될른지 모르지만 기본적 생각은 좋은 것이라 하는 찬사를 내가 받은 기억이 있읍니다. 그러니 정당의 구별 없이 한꺼번에 들어붙어서 민주계몽에 종사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 이것이 민주협회니 민주학회니 하는 이야기의 내력이라 말이예요. 이것을 민주연맹이니 민주동맹이니…… 여러분! 이 세상에는 하도 이상스러운 놈의 세상이 되어서 사람이 여럿이 모이면 단체의 이름까지라도 우리 다 기억하는 줄 압니다. 협회니 학회니 하는 것은 민주주의 색채가 농후하게 표시되는 것이지만 소위 동맹이나 연맹이니 이 ‘맹’ 자가 들은 것은 좀 떨떨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것을 잘 아는 사람인 까닭에 그래서 협회다 학회다 이야기했지 연맹을 동맹을 이야기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동지들하고 이야기하다가…… 혼자서 독불장군이지…… 손바닥 하나만으로는 소리가 안 나는 일이예요. 더군다나 여러 방면의 동지들이 같이 모여서 이 일이 좋으니 같이 합시다 해야 일이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민주주의시대에 있어서 혼자서 아무리 좋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하드라도 시간이 지나면 모르거니와 당장에야 못 하는 것이란 말이예요. 그래서 시방도 나는 나의 국내에 대한 민주계몽에 관한 이 신념만은 시방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 이 문제의 이야기는 여러분하고 많이 이야기했든 것이예요. 그러나 그것을 하나 말씀해 두고 또 개인적으로 말할 때에 조봉암하고 왜 그렇게 가까우냐, 조봉암이하고 가까울 수밖에 없읍니다. 과거 6년 동안을 나는 의장이라고 하고 그는 부의장이라고 해서 날마다 같이 만나고 같이 이야기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하고 가까웠으면 가까웠지 그렇게 멀 수는 없지요. 그러나 정치적 주장에 있어서는 그 사람하고 나하고는 거리가 있읍니다. 이 민주계몽하자 하는 이야기도 이것을 그 사람하고도 이야기했다 말이예요…… 한데 ‘원칙으로는 좋은 의견이십니다. 하지만 저는 거기에 같이 할 수 없읍니다’ 하는 것을 여러 차례 이야기했든 것입니다. 그러니 민주계몽이라는 것은 그렇게 달갑게 같이 안 하겠다는 이 친구…… 그보다 한 거름 더 나가서 한 당을 한다든지 커다란 전체 계획을 그 사람하고 같이 할 만한 조건을 내가 못 가졌든 것을 내가 도리혀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이 사람하고의 관계는 언제나 과거에 6년 동안 의장, 부의장으로 지냈으니 그와 그렇게 과히 소홀하지 않는 관계입니다 하는 정도로 말씀을 드릴 것뿐이구요. 더군다나 이범석…… 이런 이야기를 또 여기에 한다면 여러분도 다 허락해 주실 바와 마찬가지로 이범석…… 이 분은 20 전 더군다나 열 살 전이라고 기억해요. 내가 본국을 떠나기 전에 그 집 부친 되시는 이하고 잘 아는 관계로 안어도 보고 그랬든 사람입니다. 시방은 같이 늙어 가서 내 머리도 허여치만 그 사람 머리도 희뜩희뜩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지내는 사람이지만 또 중국에서 소위 유랑해서 독립운동인지 무엇인지는 그만둔다고 할지라도 왜놈들이 잡어 죽일려고 해서 도망해서 망명생활을 할 때에 또 같이 지냈다 말이예요. 그러니 그 사람하고도 알 만큼 알고 지나오지요. 그렇지마는 그 사람들이 민족청년단이니 무엇이니 해 가지고 이야기할 때에는 기회 있는 대로 날더러 와서 국내정세라든지 정치에 관한 이야기든지 혹은 민족정신이라고 하는 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해서 민족청년단 조직해 가지고 일할 때에 여섯 기인가 여덟 기인 줄 기억합니다마는 적어도 5, 6차 내가 가서 이야기해 준 기억은 있읍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 민족청년단이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라든지 또 그 사람이 그 이후에 국무총리가 되고 내무부장관이 되어 가지고 한참 기환 등달 하든 때 나하고 거리가 가깝지 못했읍니다. 개인의 관계는 그만한 형편이지만 소위 정치적 관계로서나 그분하고 그렇게 가깝게 앉아서 무릎을 맞대고 오근조근 이야기해 본 기억이 없읍니다. 이만큼 말씀해 드리고 지어 증인의 이야기라 말씀드리기 미안하지만 본회의에 증인으로 나오게 된 것도 예외이지만 본회의에 출석해서 증언하는 사람으로 의석에 앉은 의원을 가르치고 소리소리 치는 것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나는 이 자리에서 문제가 관련되니만큼 잠간 이야기를 아니 할 수 없는 문제는 민주국가의 국회 본회의가 진행하는 때에 정부의 장관이나 정부위원이 출석해서 질의응답이거나 의원 서로 사이에 이야기가 되는 때에는 의원이 발언을 청하고 정부장관이나 정부위원이 발언을 청할 때에는 언제나 의원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것이 민주국가의 전례입니다. 증인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의원으로서 의사진행이나 의견을 이야기할 때에 사회하는 최 부의장은 언권을 주지 아니하고 증인으로 먼저 발언하게 하였다는 것도 이후에는 특히 주의해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요. 지어 증인의 말 가운데 누구누구 그것을 몰라, 유 무엇인가 하는 사람은 무슨 조성삼인가가 죽었을 때에도 만났고 한독당의 김경하고도 친하게 하고 무엇을 어째고 했다는 것이 내가 반다시 꼭 기억하고 알아야 되겠다는 이유…… 나 잘 발견 못해요. 또 그뿐만 아니라 이 못 생긴 사람은 본국에 들어온 이래로 더군다나 국회의 의장이라는 책임을 진 이래로서는 6, 7년 동안을 하로에도 수십 명 손님들을 만나게 되요, 중앙에서나 지방에서나. 그러니 아무리 정력이 비상한 사람이라도 일일히 다 기억하기 어렵거든 평범하고 그렇게 출중치도 못한 신익희 기억력 별로 없읍니다. 날마다 맞나서 중요하게 이야기하는 관계에 있는 분들이야 그것이야 건망증이 없는 한에는 기억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한 번이나 두 번 맞난 분 잘 기억 못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만일 또 남북협상이 어떻다는 등 어떤 놈의 밀사로 왔다는 등 정치자금을 이야기한다는 등은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기억에 남지 않을 이치가 만무하지요. 하지만 내가 그 유씨를 미안한 말이지만 얼골을 대했는지 안 대했는지도 모른단 말이예요. 그러나 그 사람은 잘 안다고 이야기할는지 모르지요. 하지만 미안하지만 나는 도모지 기억을 못 하는 사람입니다 하는 것을 말씀드려요. 그리고 끝으로 정치자금이다…… 정치자금 필요한 줄로 압니다. 되나 안 되나 독립운동이라는 데에도, 남의 뒤에 40여 년 딸아 댕긴 경험상 큰 일이나 적은 일이나 할려면 돈이 제일이라는 것 잘 알고 있읍니다. 그렇지만 돈, 돈만이 다 하지는 못한다는 것까지 나는 알고 있에요. 그러니 정치자금 필요한 줄은 알지만 주변 없고 못 생긴지라 이 당의 책임이라 지고 몇 해 동안 내려오는데 돈 마련 못한다고 저것은 돈에는 도모지 동전 한 푼도 자격이 없는 자가 무슨 당의 책임지는 형편이 되겠느냐 하는 것을 면박하는 것을 내가 한두 차례 당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나는 말하기를 ‘여보, 그 돈 많고 돈에 능력 있는 사람이 일하겠다고 그러거든 나는 돈에는 아모 능력도 없는 사람이니 이 자리에서부터 즉각 이 책임을 고만두면 좋지 않겠오’ 하는 말을 오늘날까지도 내가 계속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정치자금 그것 어떻게 운동해 봐야 되겠다고 해서 누구는 아마 정치자금 이야기를 하면 대개 기가 맥히게 귀를 기우릴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리 귀도 기우리지 못하고 지내는 못생긴 놈이라는 것도 나는 이 자리에서 고백해 드립니다. 그럼으로 일본에 가서 정치자금을 하느니 또 어디 가서 정치자금 하느니 하는 이것도 그 돈 구석만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같이 못 생긴 놈은 그러한 구석도 못 찾습니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니 이 몇 가지의 말씀으로 증인이 이야기했다는 데에 내가 내 심기와 경과를 잠간 말씀드리면서 끝으로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나는 반공이니 반탁이니 민주주의 원칙에 의지한 총선거가 적어도 상대지간의 정당한 주장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데 있어서 이 자리에 이 사람이 생명을 잃는다 할지라도 아마 이 일에 참여했다는 것만은 피생 에 가 있어도 남에게 자랑할 만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한민국, 우리의 사는 터전인 대한민국 국토가 아직 통일이 못 되고 반쪽 되고 국제연합이니 무엇이니 하는 데에서 모든 가지의 설음을 우리가 어느 면으로는 받고는 지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이 세워졌다는 이 일만은 시방 내 눈에 흙이 들어간다 할지라도 한이 없다는 어리석고도 충성스러운 생각을 갖는 자의 하나입니다. 일찌기 6․25 사변이 나고 민족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 극히 어리석은 자의 생각이었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 일척사이 하는 사람도 한두 사람 있을 법한 일이 아니냐고 생각해 본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나는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 제3세력이니 무슨 남북협상이니 또 무슨 중립설이니 등등 문제는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분들하고 이야기가 될 것이지 나같이 어리석게 곧은 몫으로 생각하는 놈하고는 아마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 말씀을 드리면서 끝으로 만일 이 문제가 조곰이라도 사호 라도 무슨 실증이 있다고 하는 때에는 아모리 제 신념이 강하고 아모리 저 스스로의 충성이 관일 하다 하드라도 역사적 모든 사실을 본다면 천하에 억울한 한도 없지 않어 있으니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모르지만 나는 국법에 의지해서 정당한 처리를 받는 데에 사호의 주저를 아니합니다 하는 것을 나는 끝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동시에 내가 이 시간까지 대표하고 있는 민주국민당 1개의 정당으로 대한민국에 배반하는 행동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내 일식 이 상존하는 한, 내 목숨이 붙어 있는 시간까지 내가 숙청할 것입니다. 책임지고 숙청할 것입니다. 만일 이 신익희 불민하고 무사 해서 그것을 못 하게 되는 때에는 반드시 우리 정부에서 우리나라에서 다 처리하고 다 숙청할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오늘 이 말씀이 장황하게 되었읍니다만 기히 증언이니 뭐니 얘기를 하고 오늘날까지 내려온 처지에 내가 한마듸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리지 아니하는 것도 퍽 죄스러운 생각으로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장황해저서 미안합니다. 끝으로 한마디 더 붙일 것은 이 문제로 해 가지고 우리 국회에서는 5, 6일 동안은 허비하면서 여러분의 근심과 여러분에 염려를 끼쳤다는 이 일만은 거듭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간이 정시가 넘었읍니다. 그러므로 아까 강승구 의원의 토론종결 급 모든 것을 사직 에 넘기자는 거기에 대히서 표결에 붙이겠읍니다. 재석 174인, 가에 110표, 부에 무표로 가결, 통과되었읍니다. 따라서 이것으로써 산회하고 내일 아침에 모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