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27일 진주 사건에 대하야 내무치안위원회의 위원으로 본인과 박찬현 의원의 두 명이 시찰한 결과를 서면으로 여러분에게 올려서 자세히 보셨으려니와 구두로서 빠진 것에 대한 대강의 윤곽을 말씀드리고저 합니다. 우리가 처음에 정보를 들을 때에 반도가 경찰서의 발표로는 150명이 침입했다고 하고, 국군의 발표는 300명이 침입해서 전 시는 혼란상태에 빠저 오전 5시까지 격전해서 퇴각했다고 이런 보고를 들은 바 있었읍니다. 그러면 첫째에, 과연 150명이라고 하는 것이 진주를 습격했느냐 300명이 습격했느냐 하는 그 점을 조사를 했읍니다. 여기 대한 숫자를 말씀드리면 우리가 조사한 관계로서는 불과 한 70여명에 지나지 아니했다고 하는 그러한 숫자를 발견했읍니다. 그 숫자를 말씀드리면 이 서면에 게재했으니 그 시간과 상태를 여러분이 보신다면 그 숫자는 확연한 것을 여러분이 다 아실 바이겠읍니다. 또한 오전 5시까지 격전을 해서 격퇴했다고 하는 보고에 대해서는 진상이 아닌 것을 발견했읍니다. 오전 3시 20분경에 적은 다 철거한 것을 발견했읍니다. 그 시간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재했으니까 서면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또한 적의 사상한 수효가 얼마나 되느냐 하면 아홉입니다. 그러면 우리편에 대한 사상이라는 것은 총 수가 10명에요. 10명 가운데 양민이 여섯입니다. 또한 국군이 네 분입니다. 네 분 중에서 두 분은 격전하고 죽은 것이 사실이고, 두 분은 소사 해 죽은 것이 사실입니다. 적에 대한 9명이라는 것은 국군의 발표로는 3명이라 했읍니다. 그런데 그 중에 사체 한 분은 소연 하게 나타나 있읍니다만 사체 두 분은 불분명합니다. 감옥에 대해서는 한 분은 사망했다고 하고 한 분은 중상이라 했었는데 그 사체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적이 사체를 운반해서 가지고 간 것을 발견했읍니다. 그것은 인접한 인가에게 자세히 들어서 발견했든 것입니다. 기외의 2명이라는 것은 진주시 40리 밖에 있는 미천면지서에서 격퇴한 것으로 그때에 사살이 2명이 나왔고, 오전 6시에 진주경찰서와 국군이 연합해서 사살한 것이 3명 있읍니다. 그러면 적의 수는 9명이고, 우리에게 10명이 있었는데 그 중 양민이 6명 죽었읍니다. 그 6명 가운데의 한 분은 대한청년단 감찰장이라는 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은 그때 밤에 야경을 하고 있었든 중에 적이 와서 서로 충돌할 때에, 너는 누구냐 물으니까, 나는 대한청년단 아모개다 하니까, 너도 탄자 를 먹어야 되겠다 쏘아서 죽고, 그 후 양민 다섯은 우리 국군 유탄에 죽었읍니다. 적의 유탄에 죽은 것이 아니고 우리 국군의 유탄에 죽은 것이 확연히 나타났읍니다. 그 결과를 말씀드리면 손해가…… 사람 죽은 손해가 우리에게 피해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읍니다. 그러고 오전 5시까지 격전이라고 하는 것은 전연 허보였읍니다. 그러면 우리 조사위원으로 볼 때에 70명의 숫자로서 어떠한 배치를 했느냐 하면 감옥에 대해서 15명, 국군에 대해서 20명, 경찰서에 대하야 9명 이러한 등으로 배치를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면 그때 시기가 매우 전기불도 없고 절벽강산이 되어서 그 숫자로서 몇백 명이 들어왔는지는 모릅니다만, 첫째 경찰이 이에 대한 정찰이 매우 부족했든 것이 사실이고, 국군의 이에 대해서도 각 요소요소의 정찰이라는 것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침입에 대해서 경찰이 오인하기를, 국군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렇게 오인을 했드랍니다. 그것은 왜 그러냐 하면 그 사변 나기 전에 한 1주일…… 10일 전에 국군이 밤에 연습이라는 것을 몇 번 한 일이 있었에요. 그러니까 경찰서에서는 이것은 확연히 밤의 연습이 아닌가 오인을 했드란 말에요. 그러나 그 후의 정세를 보고 이것은 국군의 반란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경찰에서 경찰국에 전화로서, 아마 이것은 반군의…… 국군 가운데 반군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고를 해서 경찰국장은 경경하게, 그러면 만일에 반군이 났다고 하면 경찰서만 사수하라고 하는 경찰국장의 명령이 있어서 경찰서만 사수했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가령 국군의 반란이 일어났다고 할 것 같으면 경찰국장으로서는 서에 대해서 다 죽는 일이 있다 하드라도 나와 격전을 해서 합천시민을 보호하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다만…… 반군에 의해서 시민은 다 죽어도 좋은 것인가요? 경찰서만 사수하라고 하는 이런 명령을 한 것은…… 경찰국장은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뿐만 아니라 경찰국장은 산청군이라든지 진주군에 있는 경찰서에 통고하기를, 진주에 해군의 반란이 났으니까 너이들은 주의해라…… 양 사방에 통고를 했읍니다. 그러므로 적이 퇴각한 후…… 미천면은 진주에서 40리가 됩니다…… 오전 6시 미천지서에서 진주본서와 국군에 연락을 취해 가지고 후병 이 오게 되었읍니다. 그때에 산청군에 생비량면이라는 데가 있는데…… 이곳은 산청, 진주, 합천과의 경계되는 곳입니다. 여기를 국군이 지나다가. 이 생비량면지서에서 국군에 반란이 되었으니 우리를 죽일 국군을 격멸해야 하겠다고 해서 생비량면지서와 국군이 충돌을 해서 교전한 일이 있읍니다. 그래서 필경 할 도리가 없어서 국군이 손을 들고 두 분이 들어가서 화해한 일이 있었답니다. 이런 상태를 본다 할 것 같으면 소위 경상남도의 경찰 사령관으로 앉아 가지고 그 정찰을 긴밀하게 할 수 있겠고, 그때 사태로 말하면 오전 1시 30분에 시작이 되었읍니다. 그동안 여러 시간 가운데에 참으로 반란인지 아닌지 그것을 능히 알 수가 있었겠고, 경찰당국으로 말하면 경찰만 사수하면 되겠읍니까? 그러면 결론에 가서…… 한 70명을 요소요소에 배치해서…… 민간에는 피해는 없읍니다. 한 군데도 없읍니다. 다만 사쓰 옷…… 내복하고 양복 하나…… 그것을 당한 일이 있었고, 과자집에서 과자를 가지고 가면서 돈까지 준 일도 있었읍니다. 그 후에 민보단 사람들이 수십 명이 적에게 만난 일이 있는데…… 「너는 무엇이냐」…… 「나는 민보단이다」, 「민보단이라. 이 녀석 어서 가서 자거라.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죽는 것보다 인민공화국을 지지한다고 하면 내일부터라도 국태민안하다」고 하고 「속히 가서 자라. 너이들은 불상한 인물이라」고…… 이러한 일이 요소요소에 있었읍니다. 그러면 제일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뭐냐하면 그 전에는 그들이 사살을 한다든지 그랬지만 지금 와서는 융화정책을 쓰는 것이 대단히 두려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읍니다. 저는 적의 사상 에 있어서 수효는 70명이로되 한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진주의 군경들은 한 400명이 있지만 다 각기 400명의 마음을 가지고 있읍니다. 1000명이 있어도 안 되고 만 명이 있어도 안 될 것이라는 것을 간파합니다. 그런고로 진주 뿐 아니라 우리가 이후에 경성도 당하리라는 마음을 먹지 않으면 안 되리라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읍니다. 여러분, 냉정하게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이 국방장관, 내무장관으로 이 치안을 능히 담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금년도 예산을 통과할 때, 심지어 재정경제위원회에서 반년분만 주어서 이것이 성적이 좋다고 하면 그 추후분을 주자는 말까지 있었읍니다. 그것도 이유에 상당한 말이겠지요만 우리 국회에 여러분은 여하간 한 번 주어보자고 해서 그런 예산을 무수히 자기네들 요구대로 해 줘 어요. 그 요구할 적에는 사전에 방지하겠다는 것을 몇 번이나 부르짖은 일이 있었읍니다. 또는 우리가 7월 공세니 8월 공세니 9월 공세니 하는 것을 우리는 다 알고 있었에요. 그 양 부 책임자들이 이런 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하고 돌발적이라고 한다고 하면 모르겠지요만 미리 알고 있었든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방대한 예산을 주었으며, 그런 예산을 준 것은 사전에 방지하라고 주었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예산을 가지고 5, 6개월의 경험으로서 완전히 숙청했다고 여러분들이 다 인정하십니까? 본인의 생각으로서는 도저히 시인할 수 없읍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인으로서는 다만 진주의 이 사건만 가지고 표준해서 하는 말씀이 아니고 전반적인……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방방곡곡이 아니 일어나는 데가 없읍니다. 하지만 그것을 신문지상에다 다 발표하지 않고 보고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내무부라든지 국방부에서 한 번도 자진해서 우리 국회에 보고하는 일이 없었읍니다. 그러면 오늘날 자기네들이 암만 성의와 성심을 다해서 한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성심과 성의라는 것이 하부에 통하지 아니할 때에는 반드시 물어가는 것이 명재상이지, 속담에 보사 떡자루 걸머지고 있는 것은 도저히 명재상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 산 중의 호랑이가 나려와서 이 집에 가서 개를 잡어먹고 저 집에 가서 돼지를 잡어먹으러 다니는데 그저 담이나 튼튼하게 싸놓고 기다리는 게 완전하겠읍니까? 그 범을 잡지 않으면 안 돼요. 범을 꼭 잡어야 저이 집도 구하고 다 구할 수가 있읍니다. 지금 상태로 본다고 하면 국군이라든지 경찰서에서는 잔뜩 성만 쌓서놓고 피와 살로 보호하려고 하는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면 그 범을 잡자고 하면 어떠한 방식을 취해야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다 아시다싶이 모리꾼을 놔야 돼요. 양 사방에 모리꾼을 놓고 그 가운데 포수 하나가 총을 걸머지고 범을 잡어야 할텐데, 지금 본다고 하면 그 범이 인가에 나려와서 도야지나 개나 잡아먹는 그러한 전술을 쓰고 있는데 성 집만 지키면 되겠읍니까? 잡어서 죽여야 돼요. 그러므로 본인은 생각할 때에 두 장관은 선명하게 나가야 우리나라 건국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이 상태로 그대로 있으면 해결이 아니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걸 낭독해 드리겠에요. 이것은 반군이 들어와서…… 지금 진주는 완전히 점령을 했다, 점령을 하고…… 자기네들 계획을 본다고 하면 감옥을 파괴하고 국군 병사 에 가서 무기를 빼서다가 일반 죄수에게 배부해 가지고 완전히 진주를 점령한다는 그러한 포고문을 붙인 것입니다. 또 여러분이 혹 들으신 이가 계실는지 모르겠읍니다만 지가 30일날 나려가서 그날 저녁에 이북방송을 들었읍니다. 방송한 사람은 딴 사람이 아니고 진주 사람이야요. 진주 사람이 북선 괴뢰정부에 가서 모 고관으로 있는 사람인데, 나는 아무게요. 진주 시민 여러분이시여. 내일부터 인민공화국을 지지해 주시요. 지금 내막으로 말씀드리고저 하면 국군이 우리에게 협조했고 경찰에서 우리에게 협조했읍니다. 이러므로 진주를 제일 남한의 요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 점령한 이상에는 남한 전체라고 하는 것은 불과 며칠 동안 남지 않었으니 시민 여러분께 권고하노니 많이 협조하시요. 협조하시요. 우리는 진주에 대한 살상은 하지 말라고 하는 이런 의논까지 했다는 방송을 했읍니다. 그러니 이 사태라는 것은 진주 뿐이 아니야요. 그들의 계획을 말씀드리고저 하면 진주만 완전히 점령한다면 경성도 소용없고 부산도 소용없고 대구도 소용없다고 이런 계획까지 가지고 있읍니다. 시간이 없으므로 이만 말씀하고 이것을 낭독해 드리겠읍니다. 그러면 고만하고 나려갑니다.

너머 시간을 많이 써서 죄송합니다. 진주의 실정 조사를 갔다 온 한 사람으로 간단하게 보충보고를 하겠읍니다. 이 진주 사건이라는 것은 우리들은 대단히 중대하게 취급을 하고 있읍니다. 그 이유는 이 진주가 공격을 당했다고 하는 이것은 그야말로 도시를 공격하고 반도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성공은 또한 이 반도의 전술이 우리 국군이나 경찰보다도 훨신 우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일단 도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 진주가 공격을 당하고 보니 이 앞으로 마산이라든지 혹은 부산이라든지 또 심지어 서울까지도 이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다고 하는 이런 생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반도의 전술이 가장 유기적이고 또 조직적인 반면에 우리 군경의 방지태세라든지 혹은 공격태세라는 것은 대단히 졸렬했고 사기가 저하되었다는 것은 이것은 불과 70명밖에 되지 않는 이 폭도에 대해서 근 400명이나 있는 군경이 어떻게 할 도리없이 꼼작 못했다는 이러한 결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이 군경이 가장 비겁했고, 또 따라서 그 당시에 당황했고 정상적인 의식을 상실해 가지고 긴급하게 어떠한 조치를 하지 못한 데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진주의 해병대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의 해병대는 진주밖에 없읍니다. 이 해병대는 과거 육전대와 같은 것이고, 그 해병대사령관은 대령으로서 육군과 마찬가지의 현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 진주 해병대는 금년 9월 초하룻날 설치되었읍니다. 이러한 300명 이상이나 있는 이 해병대에 폭도 단 3명이 먼저 침입을 해 가지고 방화를 해서 그 병사 를 갖다가 소각을 했다고 하는 이런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들은 이 국군의 역사상에 일대 오점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과 세 사람밖에 안 되는 사람이 들어가 가지고 방화를 했는데 또 이 세 사람을 잡지 못했다 말이에요. 그러나 이 해병대에 관해서 처음 가서 대단히 기분을 좋게 느낀 바가 있는 것은 도무지 민폐가 없었든 것입니다. 국군이 300명이 주둔할 것 같으면 없는 쌀을 달라 밥을 해 달라 닭을 잡는다 소를 잡는다 이런 민폐는 많이 있는 것이 예상되는데 이 해병대는 조금도 그런 점이 없었다는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경의를 많이 표했읍니다만, 그러나 전쟁할 줄 모르는 이러한 해병대가 아모리 민폐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소용이 없는 것이올시다. 그 당시의 상황을 말씀드릴 것 같으면 1시 30분이라 할 것 같으면 마침 달이 아주 지고 캄캄한 이런 시간입니다. 이때에…… 우리가 조사한 바에 의할 것 같으면 불과 20명 되는 폭도가 해병대를 포위해 가지고 기관총이라든지 소총을 가지고 해병대를 갖다가 공격을 했읍니다. 이 해병대에서는 아주 당황하고 놀래서 일단 퇴각까지 해 가지고 캄캄한 정세이고 하니까 폭도가 어디 있으며 어떤 전술을 쓰고 있는지 몰라서 이것을 어떻게 격퇴를 시키고 어떻게 포위해 가지고 격멸한다고 하는 이러한 작전적인 조치를 한 흔적이 조금도 없었읍니다. 캄캄한데 그저 맹사 를 해서 무기를 총동원해 가지고 근 4시간이나 맹사했드란 말입니다. 이러한 결과에 그 부근에 있는 민간에 유탄이 가가지고 5명이나 사살을 당한 사실이 있읍니다. 이러한 점을 볼 때에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죽엄을 각오하지 않으면 전쟁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을 보드라도 이것은 전쟁이 아니고 피차 폭도측에서도 이것을 공격을 한다는 이런 것보다도 해병대를 움지기지 못하게 이것을 승리한다고 하는 이런 전술을 썼다고 우리는 보고 있는데 이 해병대에 있어서는 이것을 어떻게 공격한다고 하는 이러한 하등의 조치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냥 맹사를 해 가지고 폭도가 이미 퇴각을 한 이후에도 폭도가 있는 것을 가상하고 근 30분 이상이나 맹사를 했다고 하는 이런 사실을 우리가 발견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국방부에 있어서는 그 책임을 충분히 느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가 앞으로 없게시리 단단한 단속도 하고 또 작전상의 여러 가지 연구가 없어서는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해병대를 포위해 가지고 해병대의 활동을 중지시켜 놓고 일방 폭도는 한 15명 가량이 형무소를 포위를 해 가지고 일제 공격을 했읍니다. 형무소장이라는 분은 용감하게 싸워서 이 폭도를 격퇴할 뿐 아니라 많은 공헌을 냈다고 생각을 해서 우리 국회로서도 이 점은 충분히 칭찬을 아니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고 경찰에 대해서 우리들이 조사한 바에 의할 것 같으면 경찰서 앞에 폭도가 경찰을 향해서 공격한 것이 불과 10명 미만이라고 보고 있읍니다. 기관총 한 대를 든 것은 사실이고, 그 외 소총을 가지고 10명 미만으로서 경찰을 공격했읍니다. 이 경찰에서는 처음에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 할 것 같으면 최초에 총성이 해병대에서 났기 때문에 아마 이것은 야간 전투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그 뒤에 해병대에서 불이 올라가는 걸 보고, 아, 이것은 반란이라고 그런 짐작을 했드라 말이에요. 그래서 경찰국에도, 아마 이것은 반란이다 하고 보고를 하는 동시에, 해병이 반란할 것 같으면 우리들은 최후까지 직장을 사수하겠다는 이러한 생각으로 심지어 파출소까지 전부 집결해 가지고 직장만 사수한다는 이런 전술을 쓴 것 같읍니다. 그러므로 인연해서 총성이 나니까 그 진주시내는 개도 짓지 않고 아주 잠잠한 가운데 총격만이 은은하고 또 경찰이 충돌을 한 흔적이 없을 뿐 아니라 무슨 사전에 어떻게 하겠다는 방편도 전연이 없었고 또 이러한 도시에 있어서는 적어도 기동순찰이라는 것이 적어도 1시간이라든지 혹은 30분 간격을 두고 기동순찰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흔적이 도무지 없는 것은 경찰의 활동에 일체 과오라고 아니할 수 없읍니다. 경찰국장의 조치로 말할 것 같으면 국장은 반란이라는 이런 보고를 듣고 관내 각 서에다가, 반란이니까 단단히 조치할 뿐만 아니라 인접 서에 적극적인 급속한 응원을 해야 되겠다는 이런 통첩을 한 이 조치에 있어서는 그다지 그렇게 공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경찰서장이 이것은 반란이라고 하는 이런 주관적인 결의를 한 후에 이것이 과연 반란인지 아닌지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떠한 특수한 조치를 해서 신속히 이것을 판명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 못했다고 하는 이 점에 있어서 아주 중대한 책임을 안 지면 안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서 내무부에 있어서는 진주경찰서장과 사찰계장을 파면처분을 했다는 것을 들었읍니다. 적당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기회에 있어서 앞으로 도시 공격이 예상될 뿐 아니라 이것이 현실화해 가지고 공격의 여러 가지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차제에 있어서 군경에 있어서 일층 더 이러한 작전이라든지, 기타 부하 통솔, 사기 앙양 등등의 점에 있어서 많은 연구와 편달이 있어야 될 줄 생각하고 간단한 보충의 말씀을 끄칩니다. 진주시 반도 침입사건 조사보고서 국회의원 이강우 동 박찬현 1. 반도의 행동 진주시 침입 반도는 단기 4282년 10월 27일 오전 1시 30분경부터 행동을 개시하여 해군 병사, 경찰서, 형무소를 공격하며 해병 병사, 식당, 형무소 성곽 외 사무실, 진양군청, 재판소에 방화하고, 일면 시내에서 인민공화국 선전을 하고 동 오전 3시 20분경부터 진주시를 퇴각하였다. 본 위원회 파견 조사단이 조사한 진상을 군경이 발표한 바와 대조하면서 반도의 행동 순서에 따라서 설명하기로 한다. 가. 반도 인원 수 : 군경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혹은 300명이라고 혹은 150명이라고 하며 40명 내지 60명씩 5 부대로 편성하여, 1 부대는 전 시 요소를 포위하고, 1 부대는 병사를 포위하고, 1 부대는 형무소를 포위하고, 1 부대는 경찰서를 포위하고, 1 부대는 군청, 재판소를 포위 습격하였다고 하나 본 조사단의 조사한 바에 의하면, ① 병사 기습 반도 수 20명 가량 ② 형무소 기습 반도 수 15명 가량 ③ 경찰서 기습 반도 수 9명 ④ 방화대 6명 , 방화대 6명은 제1차에 형무소, 제2차에 군청, 제3차에 재판소의 순서로 행동하였다. 그 외에, ⑤ 지휘대 : 산상에서 총격을 신호로 지휘를 하고, ⑥ 연락대 : 10명 ⑦ 선전대 : 8명 이상 불과 70명 내외의 인원으로서 반도는 능히 기습, 방화의 목적을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전대는 그간 유유히 연설하고 삐라를 살포하여 대한민국을 비방하며 인민공화국을 찬양하고 인민공화국 만세를 고창 하면서 진주시를 물러간 것이다. 나. 반도 행동의 시간 군경은 1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4시간여 전투한 후 격퇴한 양으로 발표하였으나 본 조사단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시간적 순서로 반도는 행동하였다. ① 1시 40분경 해군 병사, 식당에 방화 ② 1시 50분경 형무소 성곽 외 사무실에 방화 ③ 2시 10분경 군청에 방화 ④ 2시 30분경 재판소에 방화하고, 반도는 3시 20분경부터 진주시 퇴각을 시작하여 시에서 약 1요거리 미만되는 합천행 도중에서 화물자동차 운전수 1명을 강인 하여 합천 지방으로 향하여 승차 도주한 것이다. 반도가 운전수 강인한 시각이 3시 40분이고 자동차가 출발한 것이 4시이였다. 군경이 반도가 마치 5시 30분까지 있어 전투한 양으로 착각을 일으키고 있음은, ① 해병대에서는 병사 내부에 전등을 켜서 불야성을 이루고 있어서 외곽에 적이 있는지 없는지 또 얼마나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당황 중에 장시간 난사하고, ② 경찰서에서는 해벙대 근처에서 총성이 들려오자 처음에는 해군의 야간연습으로 착각하고, 나종에는 정찰도 하지 않고 해군의 반란으로 오인하여 경겁 중에 경찰서 내에 농성하여 외부의 적을 보지도 않고 난사극을 연출한 것이다. 그런데 이 경찰 농성은 경남경찰국장이 경찰서만 사수하라고 명령한 것도 한 원인이였다고 한다. 2. 특기사항 전 항에 기술한 바와 같이 해병대와 경찰본서에서는 반도의 진상도 파악치 못하고 소수 반도에게 완전히 농락을 당하였으나, ① 진주우편국 전화교환원 진주시내에 반도의 발사, 해병대, 경찰서의 발사로 총성은 은은하여 시내 일반에 살기가 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화교환원들 소녀의 몸으로 철야 직장을 지키며 전화 연락의 중책을 완수하여 장한 공을 이루었다. ② 형무소에서는 용감히 응전하여 소내 를 완전히 지켰을 뿐만 아니라 폭도에 많은 손해를 입혀 고, ③ 집현면지서, 반도는 화물자동차를 이용하여 합천 방면으로 행하는 도중 집현면지서를 습격하였으나 동 지서 직원은 용감히 응전하여 과수 를 능히 다수를 물이첬고, ④ 미천지서, 집현지서 습격에 성공치 못한 반도는 동 지서를 단념하고 미천지서로 향하였다. 미천지서는 집현지서로부터 연락을 받고 미리 결사적 준비를 하고 있다가 반도가 동 지서를 포위습격하자 맹렬 반격하여 반도 2명을 사살하고 다수 물품을 압수하였다. 3. 전과 ① 해병 : 반도 사살이 3명 ② 형무소 전과 : 1명을 사살하고 1명은 중상운운하나 사체는 발견치 못할 연이나 사체를 운반한 형적 이 있고 도로변 인가에 조사하였음. ③ 미천면지서 전과 가. 적 사살 2명 나. 경상 1명 다. 카빙총 1정 라. 카빙총 실탄 18발 마. 한국제 수류탄 2개 바. 수건 1매 사. 양복 1의 1착 아. 피제 지갑 1개 자. 현금 50원 차. 백미 3승 카. 과자 2근 타. 건전지 1개 파. 소촌 4갑 하. 소초 6갑 ◯ 포제배대 2개 ◯ 등산모 1개 ◯ 피제장갑 1쌍 ◯ 소도 1개 ◯ 불온문서 다수 ④ 군경 연합 추격전에서 반도 사살 3명 4. 진주시의 민심동향 전술한 바와 같이 해병대와 경찰본서에서는 반도가 시내에 침입하였을 때에는 1인도 출동하지 안 하였으므로 일반 시민은 자기네의 생명, 재산의 보호기관인 군경을 믿지 안 할 뿐더러, 사건 진정 후 경찰에서 막대한 기부금을 징수하였으므로 반도에 대하여는 지극히 약한 군경이 양민에 대하여는 과중한 부담만 시킨다고 원성이 높다. 5. 조사원의 소감 이 사건을 조사하고 느낀 바를 몇 가지 말하고저 한다. ① 사찰 강화 : 진주시에 침입한 반도들의 행동은 가장 기민하였고 순서정연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지리에 정통하고 시내 각 관공서 내부의 실정을 상세히 알어야 할 것이며, 그러자면 적어도 수일 전부터 시내 정찰을 하였을 것이므로, 만약 경찰 사찰이 밝었다면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② 정찰 : 해병대의 총성을 야간연습으로 오인한 경찰이 해병대의 화광을 보고 정찰도 않고 해병대의 반란이라고 속단한 것은 중대한 과오라 아니할 수 없으며 책임자는 마땅히 책임을 저야 할 것이다. ③ 신상필벌 : 모든 정세를 파악치 못하고 직책을 다 못한 해병대, 경찰의 책임을 추궁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반면 용감히 직책을 다한 형무소 직원, 우편국 교환원, 집현․미천지서 직원에 대하여는 두텁께 시상하여 사기를 도더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오석주 동란 피해상황 조사보고 객년 10월 여순사건 돌발 이후 관내에 상당한 인적, 물적의 피해 총액은 실로 1,371,725,350원에 달하며, 사망자 995명, 중상자 1,514명, 주가 소실 829호, 소개민 1,402호, 총 피해 호수는 물경 4,740호, 23,138명의 다수한 이재동포를 산 하고 있는데, 기 중 소개민을 위시하야 대부분의 피해 이재민은 무가 무친 의지할 곳이 없이 노두 에서 방황 우 는 무인도에서 천막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오니 관하 이재민들의 실정을 고찰하시와 속급 구호대책을 강구 실시하여 주시옵기 앙망함. 기 1. 요 구호 대상자 4740호, 2만 3138명

그러면 이 두 가지 보고에 있어서 자세한 설명이 있었읍니다. 그러면 보고는 이것으로 끄치기로 합니다. 그리고 아까 보고한 거와 마찬가지로 박찬현 의원 외 열 분의 제안으로 경찰 만 명을 증원하자는 계획을 급속 실시하라고 하는 것을 건의하자는 것인데, 이 안은 의장의 생각으로서는 본래 정부 측에서 기억컨데 내무장관이 전에도 이와 같은 계획을 얘기한 바도 있었는데 이러한 것을 위 국회 본회의에서 그대로 건의한다는 것보다도 내무치안위원회에 이 안을 보내서 심사해서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줄 알어요. 그러므로 그렇게 취급합니다. 그리고 시방은 대한민국교육법안 제2독회를 계속합니다. 어제에 계속해서 제2독회를 진행하겠는데 시방 교육법 제2독회에 관한 의사진행이라고 해서 이재학 의원이 발언을 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