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화재 사건에 관한 중간보고를 말씀드리겠읍니다. 금번 이러난 부산 대화재 사건에 대하여 조사, 위문의 사명을 띠고 우리 조사단 일행은 28일 야간열차로 부산을 향하였읍니다. 화재로 부산역이 타버린 관계로 열차는 부산진까지밖에 가지 않었읍니다. 오전 9시경에 부산진에 도착하여 일행은 직시로 부산시청을 차저가 시장실에 일시본부를 두고 조사와 위문을 하고 의원 여러분께서 궁금해 하실 뿐만 아니라 현재 중앙에서 보도되고 있는 바에 보면 상당히 사실과 판위한 점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보도, 더러가 있기 때문에 좀 더 정확한 보고를 드리고저 직시 당일 날 본 의원만이 급거 상경해서 오늘 보고 드리게 되였든 것입니다. 이 희유의 대화재로 인하여 부산역을 중심으로 부산의 심장부 격인 이 지대는 완전히 황원처럼 되고 아즉도 뜸뜸이 엎어진 가옥 터에서 연기가 꺼지지 안코 있었읍니다. 터만 남은 장소에서 이재민들은 각기 자기 터에서 정리하노라고 거의 다 나와서 좌왕우왕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을 비롯하여 각 방면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첫째 화재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이러난 것입니다. 화원지는 부산경찰서에서 영주동을 향하여 5, 60메터 지나서 바로 보이는 영주동 뒤산 중복임니다. 이 지대는 산비탈을 중심으로 계단적으로 수백 호의 속칭 하꼬방 집이 있었는데 화재는 이 하꼬방 집단 제일 상층에 속하는 지대에서 이러났으며 1노동자의 집에서 , 27세) 저녁을 지은 풍로 불을 끄지 안코 허도인의 아내 되는 사람이 외출한 사이에 풍로 밑으로 숫불이 다다미로 흘러 떠러저서 발화한 것입니다. 발화한 것은 27일 오후 8시 30분경인데 그 당시 상황을 듣건대 불행히 상당한 강풍이 부렀읍니다. 우리 조사단 일행은 그 광풍이 그 당시에 어느 정도로 실지 불었는가 해서 측후소에까지 가서 조사했읍니다. 측후소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초속 18메타 내외로 이것은 폭풍에는 속하지 않으나 상당한 광풍이였든 것입니다. 바람 방향은 화재 당시에는 동북풍으로 영도 방면으로 불고 있었든 것입니다. 이런 관계로 발화되자 순식간에 인가에 연소되여 그 부근 일대는 가재도구를 운반할 여유조차 없이 일시에 불바다가 되였다 합니다. 그러나 풍세가 나종에는 수시로 변동이 되여서 서북, 동북 등으로 변화됨으로 피해지역이 더 광범하여진 것입니다. 이리하여 경찰서 뒷산 비탈 일대를 소진하고 그 불은 영주동, 대청동을 통한 산 중복도로를 끊어 방송국 일대를 소진하고 나가서는 대청동 1가를 비롯한 부산우체국을 태우고 부산경찰서를 경계로 중앙동 일대를 소실하고 부산역, 부산상공장려관, 공회당을 태우고 대교로 미창 건너까지 타버리고 대청동쪽으로는 우체국 뒤 청과시장을 태운 후 병사구사령부 직전에서 진화되었든 것입니다. 이리하여 무려 11시간에 걸처 맹화로 타다가 28일 오전 7시경에 진화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린다고 하면 대교로에서는 현재 남부산서를 경계로 해서 남부산서는 완전히 무사하며 그 길을 끊어서 저쪽 건너 미군후방기지사령부에서부터 시작해서 타고 저쪽 여자경찰서마는 완전히 건물이 그대로 남어 있고 거기서부터 저쪽은 아모 관계가 없었든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쪽 중앙동에는 역시 남부산서 그쪽을 갈레로 해 가지고 저쪽 우체국을 넘어서 그중에서 중요한 건물을 목표 삼어서 말하기는 곤란합니다만 대략 말씀드리면 부민관으로부터 약 60미터 이쪽 편까지는 완전한 것이였고 또 이쪽에서 대청동 도청으로 올라가는 그 길 편에 있어서는 병사구사령부 거기까지서 끊어지고 진화가 되었든 것입니다. 그래서 병사구사령부로부터 이쪽 식산은행 쪽에는 별관만 타 버리고 본관은 괜찮었고 저쪽 일대에는 하등 피해가 없었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화재가 난 지역 전체로 본다면 마치 여기서 보면 싹 쓸어버린 것과 같이 그 안에는 건물이라고는 우체국이나 또는 중요 건물 2, 3개만 남었고 그 외에는 뼈다귀조차 없는 완전한 소실터가 되고 말었읍니다. 이제 그 피해상황을 조사된 바에 의하여 보고하면 인명 피해는 노동자 1명이 혼란 중에 소방차에 역사 되고 여자 1명, 2세 된 여아 1명이 화재에 소사하였다고 합니다. 이래서 지금까지 판명된 것은 도합 3명이며 기타 부상자는 경상이나 상당수에 달할 것이라고 우리가 예상하고 있지만 현재 나타난 부상자의 수를 본다면 소방관이 6명이고 경찰이 3명, 따라서 현재까지 나타난 부상자는 약 10명에 지나지 못하고 있읍니다. 가옥 피해는 소실된 것이 2837동, 세대수로 5085세대로 그 가운데에 중국인 세대가 8세대가 끼여 있는 것입니다. 또 이재민 총수가 2만 8000명 그 가운데에 중국인이 56명에 달하고 있읍니다. 이 소실 가옥 중의 약 반수 이상이 55퍼센트는 하꼬방 집이며 중요한 피해 입고 소실된 건물을 대략 말씀드리며는 부산방송국, 부산일보사, 자유민보사, 민주신보사, 부산역, 부산공회당, 부산우체국, 미군후방기지사령부, 국제․제일․동양호텔 등등이고 해군본부시설감실, 자유당경남도당부, 조선운수부산지점 등이며 병사구사령부, 식산은행지점 일부가 피해를 당하였읍니다. 세째로 피해지역은 동광동이 제일 크고 다음 중앙동, 대청동, 대교로, 영주동, 영주2동 등으로 피해액은 아즉 정확한 것은 목하 시에서 조사 중으로 금명간 판명될 것이나 도 경찰국이 조사한 개요에 의하면 29억 환 내외라고 합니다. 이것은 주로 건물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동산 기타 상세한 것은 이다음 판명될 것입니다. 소실지대 면적은 약 76,500평 내외이며 폭 300메터, 장 1키로에 긍한 것입니다. 네째로 이재민과 그 구호 상황을 보건대 전술과 같이 2만 8000명에 달하는 이재민 당시에 급한 경우에 가재도 올케 찾어내지 못하고 피난하느라고 그날 부산 거리는 일대 수라장이 되어서 부산시청을 중심으로 운집하여 영도다리를 건너 영도 섬으로 주장 피신한 군중이 많고 화세가 위험할 때는 남포동 일대도 피난 준비를 하였다 하며 대청동 일대는 물론 부민동 방면도 파급될 염려가 있어 가위 일대 혼란을 이르켰다고 합니다. 피난민들은 우선 응급적으로 제2부두 미군창고에 약 2900명, 영도극장에 500명, 영선국민학교에 150명, 약 3600명을 수용하고 응급으로 주먹밥을 주고 모포를 배부하는 데 미군 민사처 당국의 절대적안 후원과 카토릭세계부흥위원회에서 구호물자를 기증하고 특히 미군 민사처에서는 약 1만 명을 응급 구호할 수 있는 물자를 기증하였는데 이것을 세목별로 말씀드린다고 하면 외미 1,212표, 모포 25,000매, 고의 50,000착, 솟 265개, 화로 235개를 기증하여 왔고 전기 카토릭교회에서 고의 44대를 기증하여 목하 배부 중에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또한 미군 민사처에서 장차 330매의 천막의 기증이 약속되었다고 합니다. 다섯째로 피난민 수용소에서 우리 조사위원단이 직접 가서 위문하고 대표자에게 조사위문단으로서의 온 뜻을 전달한 즉 심히 감격하여 사의를 표하고 또한 국사가 바뿌신데 이렇게 오셔서 미안하다는 것과 또한 속히 도라가셔서 국사에 전념하여 달나는 것이었읍니다. 아즉 화재 즉후이며 또한 응급적임으로 각 기관 간에 연락이 정연치 못하여 있는 점도 있으나 대체로 취사와 의료, 가마니 모포 등은 배부되고 있으며 제2부두 수용소에는 시, 경찰, 군, 미군 등 각 기관이 출동하여 큰 창고 1개소에 2900명 정도 수용하고 있는데 마이크를 통하여 각 반을 조직하여 단체행동을 하고 있었읍니다. 우리 일행이 갔을 때는 주식을 운반 중이였고 디디티를 옷에 뿌려주고 있었읍니다. 시에서는 28일 상오 10시에 시장을 중심으로 관계기관이 회동하여 재민구호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일방 시회를 개최하여 응급대책과 항구적인 시가지 계획도 수립하였다고 합니다. 이 구호관계에 대하여는 조사 일행이 아즉 부산에 잔류하여 상세한 대책 수립에 협력하고 또 조사하여 종차 상세한 보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조사단 일행의게 들여온 한 가지 불유쾌한 소문은 모 임산부가 1인 사망하였는데 그 원인은 화재로 혼란 중 만삭 임부로서 태아가 속담으로 나려안져 급을 요함으로 여관에 갔으나 수용하여 주지 안크 병원을 3개소나 역방하여 치료를 요청하였으나 치료 대금이 무하여 거절당하고 여관 현관에서 애를 분환 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남어 있는 조사단 일행은 이제 임부를 거절한 의사를 찾어가서 여기에 대한 상세한 추궁과 기타 여기에 대한 상세한 조사를 하기로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당국의 그 당시의 활동상황을 보건대 경찰국장은 의령사건 관계로 의령에 출장 중이였고 그 외의 경찰관도 의령에 출동한 자가 많어 잔류 경찰관과 소방관의 필사적 노력과 군, 미군의 응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확대된 것은 결론적으로 보아 가위 불가항력에 유사한 형편이었습니다. 그 당시 소방관은 물론 경찰청년단이 출동하고 이어 마산, 김해, 진주 소방대가 응원 출동하였고 미군 츄럭타가 출동하였읍니다. 문제는 강풍이 불어서 발화지점은 산 중복이므로 수리가 없고 또 교통이 불편한 데에 있었든 것이며 소방작업에 있어서 지장을 갖어왔다고 하는 것은 이 산 중턱에서 불이 붙기 때문에 소방서에서는 5분 이내로 이 발화사건을 발견한 즉시 출동해 가지고 소화 작업을 시작했든 것이며 때마침 부는 강풍으로 해 가지고 불이 틈틈 부터 가지고 내종에는 소방차가 그 불에 포위되어서 소방 작업도 못했을 뿐 아니라 차를 구출해 오는데도 시간이 촉박해 가지고 소방차 뒤까지 불이 붙어서 근근이 구출해 왔다고 하는 이런 말을 들었읍니다. 발화가 되자 소방대는 출동했으나 이러한 관계로 해서 도저이 참 사람의 힘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실지로 목격하고 여러 가지 발견했읍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씀드리고 고만 두고자 하는 것은 여기에 지금 현재에 의령 사건과 또한 지금 부산의 이러한 희유의 대화재로 말미아마서 경찰국장은 자기의 치안의 중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어저께 내무부장관과 치안국장이 이 현지를 시찰 갔을 때 자기의 도의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경찰국장은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우리가 보건데는 물론 치안의 책임자로서의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요번에 부산 화재 사건으로 본다면 도저히 이것은 불가항력으로 그러한 사건을 경찰국장 한 사람에게 다 전체적으로 책임을 추궁한다는 것은 퍽 유감스러운 일이다 하는 동정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자세한 보고는 다음에 남아 있는 조사위원단이 보고 드리기로 하고 저는 이 정도로서 이 중간보고를 마치기로 하겠읍니다.

지금 부산 화재에 대한 보고가 끝났읍니다. 그다음에 특별한 사항이 없으면 곧 일정대로 들어가겠읍니다. 그러면 참의원의원선거법 제2독회의 계속입니다. 안용대 의원 나와서 수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