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2월 5일 본회의에서 백천경찰서 피습사건에 의지해서 우리 의회에서 이제 말씀하신 이 네 의원을 지방으로 파견하게 되었읍니다. 그 동시에 이 본회의를 마치고 오후 1시 30분경에 비로소 이 중앙청 문 앞에서 떠나게 되었읍니다. 그때에 우리 네 사람이 파주까지 이를 때에 파주경찰서에서 다소간 환호하는 기세를 받았읍니다. 그래서 경찰서장을 찾아서 그 정황을 묻고저 하였으나, 경찰서장은 제1선에 가고 없어 그 외에 공안 책임을 진 사람이 정황을 말씀하였는데, 말하기를 지금 앞에서 격렬한 전투가 일어나서 서장이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에 전투 사황 이라든지 지침이라든지 그 경찰서 자체도 대단히 모호하게 된 관계로서 우리가 간 지점이 파주가 아닌 만큼 대개 올 때에 그것을 자세히 듣기 위해서 그대로 가게 되었읍니다. 그 후에 오후 4시경에 비로소 개성에 도달하였읍니다. 개성을 도달해서 개성서장과 개성에 파견되어 가지고 있는 한 대대가 있읍니다. 그 대대장과 그 경찰서에서 만나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개성은 역시 여러분이 다 아시다싶이 38선의 경계라고 하는 것이 개성 뒷산인 송악산 그 능산 이 곧 경계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개성부와도 거리가 약 1키로 반밖에 되지 않읍니다. 그러므로 이쪽에서 충분한 경계를 하고 전쟁의 대비 상태로서 군경이 수비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만큼 지금 개성에서 백천으로 갔읍니다. 가 보니까 백천의 경찰서라고 하는 것은 아마 건축이라든지 그 시설에 있어서 남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제일 화려한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실지의 상황을 조사한바 우리가 여기서 신문으로 보고 소식을 들을 때에 전연 다른 일이 많었읍니다. 반란군이 혹은 인민군이 침범하기를 약 500명 혹은 400명이 와서 경찰서장을 납치했느니 누구를 납치했느니 신문에 났는데 누구나 현지에 가 보면 신문보도가 잘못된 것인 줄로 알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사한 결과는 그 당시에 즉 2월 3일 오후 11시 40분경입니다. 그때에 인민군이 침입하기를 한 소대 정도밖에 되지 않었다 합니다. 그래서 그 침입하는 즉시로 그 경찰서의 입초하든 순사는 타살되었읍니다. 그래서 그 순사는 그 자리에서 순직하고 그 가운데 그들은 경찰서를 습격했는데 아마 시간적으로 해도 한두 시간을 공작해서 그 경찰서를 전부 폭파가 되었읍니다. 그때 순사가 네 명, 국군이 두 명 희생이 있었고, 경찰서에서 일하든 여자 하나, 같이 있었든 죄수 중 두 사람 계 9인이 죽었읍니다. 그래서 이 사실의 원인과 이 사실의 경로를 묻게 될 때에 대단히 우리는 의혹을 가졌읍니다. 왜 그러냐 하면 첫째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경찰서가 너무 이 전시 상태에 있어서 전시지구에 있어서 너무 부주의하며 너무 대비를 갖추지 못한 데 있읍니다. 왜 그러냐 하면 밤 11시 40분경에 인민군들이 침범할 때에 그 당시 경찰서 수비대에는 순사 33명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서울에서 혹은 개성에서 순경에 대한 경험이 1, 2주일밖에 되지 않는다 하니 이것은 대단한 잘못이고 적어도 거기에 대한 모든 정세라든지 경험이라든지 사정을 충분히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에요. 없는 결과, 저쪽에 대한 중과부적 이라기보다도 이쪽 경비가 부족했다는 것을 판단할 수가 있읍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기에 책임자 된 사람이 저쪽에 인민군 500명이니 600명이니 하는 것은 자기의 책임을 막기 위해서 한 창작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도가 충분한 조사라든지 면밀한 계통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고 이런 사람들의 말만 듣고 우리 민심에 소란을 일으키고 이 의회석상에서도 많이 놀랄 만하게 되게 했으니 보도기관에서는 상당히 주의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인민군 부대는 50명인지 60명인지는 알 수가 없읍니다마는 하여간 그 사람들이 그만한 설비와 건축물을 소실시킨다든지 폭파시키는데 있어서는 단시일에 안 됩니다. 거기에 폭탄이라든지 지뢰라든지 이것은 아주 완전무결 된 지뢰가 아닙니다. 또 일부에서 만든 것이 이와 같은 위력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데 이것은 처처에 휘발유를 뿌려서 연소 케 한 것이며 그 지방에 들어와서 한 시간 이상 공작하여야만 된다는 사태를 생각해 볼 때에 너무나 간부의 책임이 등한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읍니다. 그러고 거기에 대한 서류 일체를 구할 수가 없고 전소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경찰서는 이전 면소 에 정해서 경찰사무를 보고 있고, 그 후에 인민군은 월북해서 가 버렸읍니다. 그 후에 우리는 연안 을 가 보았는데 이 연안이라고 하는 곳은 역시 38선 가운데에 가장 제일 중요한 기지인 만큼 말하자면 인구 수효라든지 곡물 생산이라든지 교통이라든지 여러 가지 각도로 봐서 정치적 경제적 입장으로 봐서 38선 일대에 제일 중요한 지대입니다. 그런 만큼 거기에는 지서가 있기를 약 11개소가 있는데, 거기에 많이 있는 순경이 한 지서에 15인이 있고, 적은 데에는 8, 9인이 있다는 것을 듣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 작전계획은 낮에는 싸움이 없고 밤이면 싸움이 있다 합니다. 그런 만큼 아직까지 이 지방에는 여기보다 기후가 좀 찰 뿐 아니라 지금 풍찬노숙하면서 밤잠을 못 자고 밤을 새우는 열렬한 애국청년 국군과 경찰이 수비하고 분투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감격했읍니다. 그런 가운데에 연안서장이라고 하는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과거에 김포지구에서 상당히 경험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아마 특선이 되어서 그곳으로 간 모양입니다. 그런 이분이 여러 가지로 많이 노력한 결과 반군의 거괴 를 하나 잡어 가지고 미연에 파주 일대를 방비했다 합니다. 그러고 우리 보는 가운데 「신관서」 지서는 38선으로 봐서 제일 거리가 가까우며 약 1키로밖에 안 되는데, 거기에는 매일 20인 30인은 무난히 출입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고 여기 「신관서」 지서에 있는 경관이라든지 군인이 한정 없는 애국심으로서 제일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가장 믿음직하다고 직관적으로 볼 수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다만 유감된 것은 반드시 중앙이라든지 중심지에서 이와 같이 애국청년의 모든 활동에 대해서 너무 보충이 불완전한 관계가 있읍니다. 그런 만큼 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합니다. 만약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기구와 충분한 보충만 있다면 단념 히 인민군은 격퇴시킬 수가 있다고 그 용기를 우리 국회의원이 왔다는 그 자리에서 보여 준 것을 우리는 목도했읍니다. 오는 길에 파주사건에 관련해서 파주경찰서장을 만나게 되었읍니다. 이 서장은 역시 전곡이라는 지방으로 파견된 것입니다. 자기가 출동한 생각은 임무는 무엇이나 하면 그쪽 지방에서 이쪽으로 편의대 라는 명칭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매일 많은 수효에 달하는데 한 70명도 잡고 혹은 40명도 잡고 했는데 어저께는 열여섯 사람을 잡았다 하며 그 총수가 한 100여 명을 잡었다고 합니다. 지금 격전이 있는 지점은 여현 입니다. 그 여현이라는 지점은 개성서 거리가 30리입니다. 2월 3일 오후부터 거기서 서로 격전하는 가운데에 우리가 우포라는 지점에서 그 교전하는 대포소리가 들렸읍니다. 그러고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음향이 계속하고 있는데 지금 듣는 정보에 의하면 아군이 우세하다는 것을 듣고 있읍니다. 그리하야 우리 네 의원은 제일선에 있는 여러분을 위문도 하고 좋은 정성 있은 데까지 좋은 말도 하고 많은 위문도 했읍니다. 결국 이와 같은 사실을 조사하고 저는 백천과 연안과 여현에 대한 사실을 말하게 되었는데 청단 방면은 장병만 씨가 갔으므로 장병만 씨가 말하겠읍니다.

청단지구는 장병만 의원이 보고하겠읍니다. 그런데 백천지구 여기에 대해서 김경배 의원 무슨 말하실 것 있읍니까?

없읍니다.

그러면 청단 방면에 파견되었든 장병만 의원 나와서 말씀하십시요.

연안까지 넷이 같이 갔었읍니다. 두 분은 연안 각 방면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글로 가고 나와 김경배 의원은 청단에까지 가서 돌장성이라는 데까지 갔는데 그 실정을 봐서 여러분도 요전에 신문과 각 방면의 보도를 보면 청단지구의 사건은 상당하게 여러 가지로 전개되었읍니다. 청단지구에 인민군이 넘어온 것은 1월 27일 오후 4시경이었었읍니다. 그 장소는 내성면 전 미군 주둔한 곳에서 약 400m 지점에 50명부터 70명의 숫자로 월경해서 침입했읍니다. 거기서 인민군은 발포하기 시작하였다 하며 이쪽에서도 응전을 했다 합니다. 그래 가지고 격전이 전개되니까 인민군은 해주 방면으로부터서 추럭으로서 응원군을 실고 와 가지고 무한한 고전이 되었어요. 그래서 쌍방이 격전 끝에 이쪽에서 순경이 좌편 견부 로부터 우편 견부를 뚫고 나갔읍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그러고 전쟁이 연속해서 계속해 가지고 28일에는 사태가 확대되어 가지고 격전이 일어나서 이 경찰청에서 국군의 응원을 청했었어요. 28일 국군이 도착한 즉시로 그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장시간 전투 끝에 이쪽에서 로켓트포로 2발을 발사한 것이 그 진지에 명중이 되어서 적군은 도망갔읍니다. 그래서 이쪽 경찰들이 그 진지에 가 보니까 그 명중된 자리에 적군의 시체가 있었다 합니다. 그러고 이쪽 손해는 순경이 한 명 전사하고 국군은 그 이튼날 후방으로 퇴진하고 경찰관이 수비하게 되었읍니다. 지금 이북의 인민군의 병력은 얼마냐 하면 제반 조사에 의해서 보면 약 1000명이라고 합니다. 29일에 있어 가지고 황해도 남천 방면으로부터 인민군을 수송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해주내무서에 있었든 백씨 가 월남해서 청단경찰서에 자수해 왔는데 그 말에 의하면 해주 방면과 다른 방면에 병력을 집결해 가지고 이리저리로 이동 중이라 합니다. 그런데 사리원에 인민군의 주력부대가 있고 거기에 2개 사단이 있어 가지고 병참지점이 분포되어 가지고 각지로 이동 상태를 취하고 있다 합니다. 그런데 2월 2일에 북쪽에서 월남한 15살가량으로 보이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우리 국군의 비행기가 적지 상공에 정찰비행을 할 때에는 적군의 대포라든지 기관총이라든지 소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향해서 난사하나 하나도 맞는 것이 없다 합니다. 그러고 적군의 장비는 정찰에 의하면 황토동에 중기관총이 2정, 천결 에 기관총 둘, 다른 방면에도 한 개 두 개가 있으며, 또 38선 부근에 참호 토치카를 파 가지고 그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읍니다. 38선 저쪽에도 역시 한정 없이 강화되고 있어요. 각 방면의 조사에 의하면 자기들도 수세를 취하고 어떠한 신경전 정도로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 사실로 한 가지 반대되는 방면으로 볼 것 같으면 인민군이 청단지구를 표준해서 포위 상태로 있는 것은 틀림없읍니다. 청단경찰서가 뒤에 있고 앞에 지서가 있는데 그 지서를 향해 가지고 12키로 전선 전부가 포위 상태로 있어 가지고 시위 정도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또 31일에 들어 가지고 최고 격전이 일어났어요. 그 격전에도 국군이 참가하였는데 전쟁한 끝에 이쪽에 국군이 1명 죽고 경찰관이 2명이 죽었는데, 저쪽에는 인민군 피해를 볼 때에 화물차 2대가 폭파되고 그 후에 월남한 사람의 목격담에 의하면 이쪽에서 박격포 또는 로켓트탄에 의해서 죽은 시체가 55개나 된다 합니다. 그런데 추럭 2대가 그 시체를 실고 해주 방면으로 갔다는 그러한 보고가 있읍니다. 그런데 그 전선은 아까 말한 바와 같이 12키로나 되는데 8, 9일 날 이틀을 두고 교전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쪽은 기술재 청단지구를 향해 가지고 병력이 약 2000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정보로 봐서 틀림이 없다고 합니다. 뒤지곳 내무서 있는 데에 다소 있고, 담바우에 3, 400명이 있고 해서 이리저리 허터저 있는 것을 합하면 대략 2000명 내지 3000명이 집결되고 있다 합니다. 우리가 돌장성 제일선을 가 보니까 이쪽 경찰서에서는 응전태세를 취하고 한쪽에는 참호를 파고 있는데 우리 갔을 때에는 인민군의 총소리가 많이 들렸읍니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총을 발사하지 않고 수세만 취하고 저쪽에서는 못 넘어오게 하는 태세만 취하라고 하는데, 그것은 상부의 명령이며 군부의 명령이기 때문이라고 말했읍니다. 그러고 제일선의 전투 상황을 볼 때에 제일 우리로서는 정부에 주의시킬 일이 있는데 그것은 경비지출 문제인데 그 비용이 대단히 부족하다 하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낸 비용은 소모품 비용밖에 되지 않으므로 수비 또는 전투에 대해서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현재로 4, 500명 경관이 있어서 수비를 부담하고 있는데 여기에 예를 들면 오늘 11시 전에 경관을 이쪽저쪽으로 옮긴다든지 배치한다든지 그 주둔 상태는 비밀이라고 해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 대한 비용이라든지 밤에 추운 겨울에 음식 한 그릇 먹는 비용이라든지 그 비용의 출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못하는 일을 민간에서 국군이라든지 경찰에 협조를 하는 데 있어서 눈물겹다고 합니다. 농민은 있는 돈 없는 돈을 호주머니를 털어 가지고 민간에서 많이 협조한다 합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농민들이 무슨 돈이 많이 있겠읍니까. 농민들도 돈이 없는 것이 한 가지 유감입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정부에서는 국군이라든지 또는 경관에게 그러한 장해를 없새게 해 주기를 주의합니다. 그런데 경찰관의 전투 의지는 아주 강고하고 그 경찰관의 말에 의하면 자기네 다섯 사람이면 저쪽의 4, 50명쯤은 꺾을 기세를 가지고 있다 합니다. 다만 문제는 경비문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여러분께 보고해 드릴 것은 저쪽의 스파이를 직접 우리가 거기에 가서 목도한 일이 있는데, 청단경찰서에 가니까 총무과장의 말이 이북에서 넘어온 스파이를 잡었는데 한번 보시겠읍니까 그러기에 보니까 그 스파이가 몇 살 먹었느냐 하면 15살 먹었다고 합니다. 그 경로를 그 아이에게 자세히 물어보고 너는 어데 있느냐고 물으니까 대동군 신간면 무슨 동네라고 합니다. 「원적은?」 하고 물으니까 순천군이라고 말을 합니다. 너는 어느 학교에 다니느냐고 물으니까 지금 순안국민하교에 다닌다고 그래요. 그러면 네가 여기 넘어온 경로를 말해라 하니까 나는 이북에 있을 때에 아동웅변대회에서 두 번이나 1등을 했다고 하며 상품을 많이 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까 과연 청산유수같이 흐르는데 구변 없는 웬만한 어른도 당할 수가 없을 만치 말을 잘 해요. 그래서 너는 여기에 왜 넘어 왔느냐고 물으니까 교장이 자기를 불러 가지고 말하기를 내일 아침에 나하고 갈 데가 있으니까 정거장에 나오라고 그렇게 말해요. 그 아이 이름은 현국환입니다. 그래 정거장에 나가니까 교장이 같이 차를 타고 평양까지 데리고 갔드랍니다. 평양에 가서 교장은 인민위원회의 본부로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웬일인지도 모르고 가니까 교장의 하는 말이 너는 여기서 할 일이 있으니 여기에 있거라 나는 학교로 간다고 그랬읍니다. 그래서 거기 있으니까 인민위원회 당국에서 어대로 가자고 하드래요. 「나는 학교로 공부를 하러 가야 할 텐데 어데로 가요?」 그러니까 다른 말 없이 강제적으로 데려오기를 해주내무서까지 왔읍니다. 해주의 인민공화국 내무서까지 왔는데 평양서 데리고 온 사람은 되돌아가고 해주내무서의 서장이 말을 하기를 너는 큰 임무를 띠고 38선을 월남을 해라…… 38선을 월남을 하라니까 겁심 이 없을 수가 없읍니다. 그래 못 가겠다고 하니까 네가 거기에 가서 우리의 임무를 수행할 것 같으면 너는 국비로 대학까지 보내 주마고 하였읍니다. 임무가 무엇이냐 하면 대한민국 경찰 진영 내부가 어떻고, 국군은 어떤 상태로 모집하는가, 인민의 동태가 어떻다는 것을 각 방면으로 수상한 것을 조사를 해 가지고 오라, 그래서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 떠나 가지고 38선을 넘을 적에는 어떤 여자 하나와 같이 넘어와서 큰 동리에 와서 밥을 얻어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이 경찰에 기별을 했는지 연락이 되어서 경찰서에 잡혀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읍니다. 너의 감상이 어떠냐고 물으니까 이쪽은 저쪽과 다른 점이 있읍니다. 어떤 것이냐? 이쪽에는 사람 사람이 말끔 말을 제 마음대로 떠들어도 잡아가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쪽에서는 둘이서 이야기를 못합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딴 학생과 말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말을 마음대로 하니까 그것이 좋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를 보고 그 즉석에서 나을 본다든지 경찰관을 본다든지 제가 잡아 가친 것을 알고 아해라도 어떻게 모면하려는 그런 태도를 볼 때에 참으로 눈물겨운 것입니다. 그러면 하필 어린애를 보내서 이런 고경 에 빠지게 하는 그 심경을 나는 알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그 애가 비참한 심경을 견딜 수가 없어서 나도 서울에 가서 방송을 할 테니 나를 서울로 보내 달라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거기서 더 시간이 없어서 이야기를 못 했읍니다. 백천에서는 17, 18세 먹은 학생을 보내서 백천경찰서를 두드려부신 거기에 인민의 마음을 동요된 것을 조사하기 위해서 아해를 둘을 보냈다는데 백천경찰서장의 말이 여기도 그런 아해들을 보냈는데 신출귀몰하게 해서 이쪽 정세에 대비하려고 하지만 이쪽에서도 대비를 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였읍니다. 대략 보고는 이로서 그칩니다.

지금 현지 보고는 그와 같읍니다. 거기에 대해서 물으실 것 없읍니까? 그러면 지금부터는 지방자치법 제1독회를 계속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