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 오랫동안을 국회를 떠나서 국외로 돌아다녀 어제 그저께야 비로서 서울에 왔읍니다. 원래 예정계획은 두 달 가량을 예상했든 것이 여행상 사정으로 인연해서 거진 곱절 가량이나 시간이 허비된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으로 중대한 문제가 많이 발생이 되었고 또 처리가 된 처지입니다. 자기로서는 국회 안에 있어서 우리 의원 동지 여러분과 같이 빈 걱정이랄만정 같이 하고 지나지 못하게 되었든 일이 극히 미안하고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 동지들에게 보고해 드릴 말씀은 여행에 관한 경과 또는 여행 중의 관감이라 할까 그런 사실을 또 몇 가지 말씀드릴려고 생각합니다. 정돈된 자료를 가지고 체제와 계통을 세워서 말씀이 되지 못할 것을 미리 용서하시기를 요청합니다. 여러분께 떠나기 전에 보고해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지나간 6월 2일에 영국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된다는 데 관해서 영국 방면에서 청요 이 있다는 사실과 대통령을 모시고 거취의 여부를 의논한 토막만은 다 여러분이 기억하실 줄로 압니다. 그래서 영국을 방문하는 것을 기회로 해서 우리 국회에서 누차에 걸친 결의로 우리나라에 군대 보내고 의료 기구를 보내서 국군들과 같이 변전작전을 할 뿐만 아니라 직접으로 전투에 종사하는 우리 장병들의 부상이나 혹은 소수이랄망정 일반으로서 전화를 입어 상해 당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는 의료 기구를 파견하고 있는 나라들을 합해서 모두 20여 개 국가를 특별히 우리 국민의 대표 격으로 사람을 보내서 감사하다는 사의를 전달하자는 우리 국회의 결의였든 것은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시는 바일 줄로 압니다. 이 문제를 대통령과 말씀하고 영국 가는 것을 기회로 해서 이 사명까지를 완수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을 할 때에 극히 찬동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같이 작정했든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 일이지만 친선사절이라고 하는 것을 정식으로 외국에 보낼 때에는 그 나라 그 나라에 사전에 동의를 받아서 그래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무슨 외국에 대공사를 파견할 때에 동의를 구한다는 그 성질이 아니라 특별히 접대하고 또 환영해 온는 데에 시간과 그 지위에 상응한 설비를 준비하는 여부를 갖기 위함이라는 것이 보통 외교에 친선사절을 보내는데 사전에 동의를 얻으라는 것이 아마 그 본의로 압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는 이 대통령께서는 시간이 바쁘고 도 이 기회를 이용해서 나가느니 만큼 사전에 동의를 얻기 대단히 어렵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시간이 불급하고 하니 당신의 말씀대로 「오피시애스 트맆」으로 비공식의 방문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만일 사전에 알고 설비가 있어 영접해 주면 좋지만 만일 그러한 편의가 없는 나라일지라도 가서 우리의 일만 하고 보면 고만이라는 이러한 실용적 의미로 그런 말씀을 설명 겸해서 말씀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 그대로 실행하기로 하고 떠났습니다. 우선 미국에를 경유해서, 5월 18일에 본국을 떠난 나로서는 미국을 경유해서 워싱톤에 가서 미국의 당국자 몇몇 분들을 찾어 보고 우리의 전 국민이 특별히 우리 전쟁에 같이 변전작전 하고 있는 미국의 원조에 관한 사의를 완전히 표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의 한 분은 여러분의 기억에 새롭겠지만 그 얼마 후에 본국에 와서 이 대통령과 누차에 회의를 거듭하고 있던 휴전 문제 까닭으로 왔던 로버트슨 그분과 워싱톤에서 만나서 많이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5월 27일을 기약해서 뉴욕을 출발 가나타를 경유해서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영국의 코로네이숀에 참여하는 각국의 여러 대표들을 대접하는 스케둘이 5월 30일 날부터 개시한다는 의미에서 다른 나라에서 보내는 대표와 함께 그날부터 코로네이숀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6월 2일에는 영국의 유명한 역사적 사원인 웨스트민스터애비라고 하는 데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는데 참여한 것입니다. 그날 참여를 하고 3일, 4일, 5일, 6일, 7일까지에 쭉 영국정부에서 규정한 코로네이숀에 관한 대표들을 초대하고 응수하고 하는 모딈에 다 참여했읍니다. 한 가지 특별히 제기해서 보고해 드릴 말씀은 6월 5일 상오 11시쯤 해서 백킹함 파레이스라고 하는 궁전에서 영국여왕을 다시 만나보게 된 절차였었는데 그날은 각국에서 파견한 대표들이 여왕과 악수하고 무슨 애기가 있으면 간단한 얘기를 서로 교환하게 되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간 대표들이 국무총리 백두진 동지하고 주영공사 이묘묵 동지하고 합해서 정식의 대표가 세 사람이라고 하는데 여왕을 알현하는 그 당장에서 우리 대표들의 의견이 말하는 기회에는 신 의장이 말씀해야 된다는 것을 얘기들이 되었읍니다. 그래 여왕을 맞나서 악수하고 나는 명백히 얘기해 주었읍니다. 「내가 이번에 온 것은 당신의 대관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왔을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 국민을 대표해서 당신의 영용 한 부대가 한국에 파견되어서 우리 국군장병들과 같이 변전작전을 하고 있는 이 사실 특별히 당신에게 향해서 고맙다는 의사를 표시하려고 온 것입니다」 하는 얘기를 표시했습니다. 물론 외교역사에 있어서 외교사절로 그 외국말로 통하지 않는 처지에 있어서는 혹은 기회에 있어서는 자기 본국의 말을 사용하는 것이 특별히 이상스러운 전례는 아니겠지마는 근대 영국궁정 안에 있어서 아마 자기 본국의 이야기로 명랑한 성음으로 표시하게 된 것이 별로히 없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할 만큼 나는 한국말로 표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여왕의 표시로 말하면 퍽 감명 깊이 의당한 일로 특별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릴 정도의 무슨 성적은 없읍니다 하는 그런 의사를 표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8일에 시작해서 나는 코로네이숀에 갔던 이외의 임무를 수행하기를 개시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군대를 보내지는 안했지만은 정신적으로 동정을 하고 앞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학생 파견에 있어서도 많은 동정을 가지고 있는 애란에를 우선 먼저 발이 가까우니 만큼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시다싶이 남 애란은 36, 7년 전에 데발레라 씨…… 영국의 유명한 애란민족이 영국으로부터 분리하는 애란독립운동을 개시해 가지고 훌륭하게 성공한 그 나라입니다. 아직도 북쪽에 있는 6개의 주는 북 애란이라는 명칭으로 영 제국의 판도에 예속하고 있지만 그 이외에 23개 주인가는 뚜렷한 자유공화국으로 쭉 계속해서 잘 시설하고 나오는 중에 있습니다. 정무에 분망한데도 불구하고 이발레라 씨가 특별히 갔던 날로 만나서 한국의 정황이라든지 통일 불가분의 한국의 실정을 서로이 야야기하고 충분히 자기도 정려 하도록 우리가 회담을 한 것입니다. 통일 문제에 있어서 특별히 인상을 가지고 있는 데발레라 씨 같은 이는 한국의 통일이 없이 살 수 없다는 국민의 전체의 혈원이라는 것을 충분히 자기는 양해하고 과연 그럴 것이다 통일 문제는 우리 애란에만 절대 긴요하고 핍절 한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도 어떤 의미에 있어서 더한 한국의 통일 문제가 더하다는 것을 자기는 완전히 알고 듣겠노라는 의미로써 반갑게 이야기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런던을 거처서 열흘 날 우선 거리 관계로 해서 영국해협을 지나서 구라파 북쪽에 있는 스캔디나비아 맨 끄트머리에 있는 노루웨를 들려서 차례차례로 서전, 정말, 독일, 화란, 백이의, 룩센불뤀, 불란서, 서서, 로마, 이태리, 희랍, 토이기, 레바논, 애급, 에치오피아, 파키스탄, 인도, 태국 이렇게 거처서 오면서 신가폴 및 인도네시아를 들름들름 들려 가지고 오스트라리아로 다시 가게 된 것입니다. 오스트리아를 들려서 거기서 다시 태평양 동남단 끝에 있는 뉴질랜드까지를 가서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것이지만 오스트라리아든지 뉴질랜드에서는 실재로 군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싸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거기를 들려서 다시 동쪽으로 향해서 비율빈을 들려서 대북까지를 들려 일본으로 해서 본국에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잠깐 끼어서 말씀할 것은 어느 나라든지 가는 나라마다 고마은 대접을 도리혀 받게 되었고 심지어 많은 나라 당국자들과 모여서 이야기 할 때마다 「나는 한국의 국민의 대표로서 당신네는 오히려 나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하니 말씀 받기 대단히 미안하고 불가호라」는 말씀을 하니까 그분네들의 말이 그래요 「당신은 당신네 국민 동포들을 대표해서 우리에게 와서 고맙다는 말씀을 표시하는 것은 당신이 하는 일이고 우리는 또다시 당신이 이런 데를 와서 우리를 찾어주고 이렇게 하니 고맙다는 이 의견표시는 우리가 하는 것이니까 그것은 마찬가지다」라 고맙다는 점으로서도 호상부조 한다는 의미의 서로서로가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미로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라마다 외무책임자, 외무대신이나 외무총장 또 국무총리나 국회의장이나 이런 분들은 대략 가기 전에 시간을 작정해서 우리가 거기 도착되고 보면 몇 시에서 몇 시까지는 누구를 맞나고 몇 시에서 몇 시까지는 무엇을 한다는 스캐듀를 작정해 가지고 정부에서 사람이 나와서 초대하고 인도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략 외무의 책임자나 국회의장 단원이 있는 데에는 하나, 양원제가 있는 데에는 둘 그 이외에도 정당에 관계되는 이들을 또는 국회에 중요한 이들은 대개 다 맛나게 된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 특별히 제기해서 말씀드릴 것은 애란의 데발레라라든지 불란서의 애리오라든지 또 희랍의 파파코스라든지 기위 이 세상을 떠난 토이기의 위대한 영수였다는 캐말파샤하고 같이 일하던 동지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국회의장이니 여러 중요한 책임을 지고 있는 여러 분…… 내가 이 이름을 다 인억 하지 못합니다마는 그런 여러 분들도 다 만나고 또 여러분이 신문지를 통해서 다 잘 아시는 일이지만은 애급에서 시방 새로히 민주의 영수로서 일하고 있는 나기부 장군이라든지 이런 분들을, 또 로마에 있어서 법왕되는 분이나 이런 분을 차례로 다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북에 오다가 장개석 총통을 만난 것은 물론이고 비율빈 여러 나라의 대통령 되는 분을 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붙어서 말씀할 것은 외교의 편리한 점이 구미 어떤 부분이든지 어떻게 편리하고 발전이 되어 있는가 하면 비행기의 회사가 하로에도 한 지방에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비행기가 여러 개가 있어요. 그래서 자기 비행자의 소원대로 선택해서 이 비행기도 갈 수가 있고 저 비행기도 탈 수가 있었던 까닭에 구라파에 있어서는 대개 하로에 한 나라 댕겨온 것이 많아야 이틀이나 정 많아야 사흘이나 이러한 기간으로 한 나라식을 방문했고 특별한 고찰이라던지 시간을 필요치 않은 일이니까 미리 그 전날에 통지를 하고 보면 가는 길로 곧 비행기로 내려서 실지로 방문하게 되고 이렇게 되었었는데 점점 동쪽으로 돌아져 가지고 발칸 방면이나 아세아 방면으로 들어서게 될 때에 비행기가 그렇게 많지를 못하단 말이에요. 1주일에 한 번 있다는 데도 있고 2주일에 한 번 있다는 데도 있고 비행자가 반드시 비행기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는 이러한 불편이 있을 뿐더러 더군다나 아프리카 중동부에 있는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게 될 때에는 그 불편한 것 이루 얘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간접․직접으로 에티오피아를 방문하기 위해서 허비한 일자가 대략 20일 가량을 허비했던 것입니다. 가령 특수한 지방성이라든지 하는 것으로 얘기를 하여 전례로 말하면 교통불편은 말할 것도 없을 뿐더러 그 지방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열병의 주사를 마져야 되게 되었단 말이예요. 그것보담도 이 주사를 마지면 이 효력 발생 기간이 20일을 지나지 않으면 그 주사를 마진 실효를 인정하지 않는단 말이예요. 이럭저럭 해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행에 관한 경과라는 것은 간단하게 이만큼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 또 간담이라고 할까 몇 가지 말씀을 드리는 것은 나라 수효로 일본까지 치고 보면 26개의 나라라고 하겠지만은 잠시 동안 발로 그 나라 흙을 밟아본 나라까지를 아울러서 친다면 30여 개 국가가 될 것입니다. 아까 다른 동지하고도 얘기를 했읍니다만은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지난 나라까지를 치면 좀 더 아마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은 이 동안에 우리들이 한꺼번에 허비한 일자를 말하고 보면 석달 이상이 된다고 하지만은 그 나라 나라에 가서 정황을 고찰한다고 하는 의미로 본다면 아무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주마간과 격으로 보는데로는 봤다고 할망정 조직적으로 계통 있는 구경도 하지 못했읍니다. 그야말로 말을 타고 꽃구경 하는 식으로 틈만 있으면 시간만 있으면 먼 지방이면 100마일 지방 가까운 지방에 있는 5, 60 마일의 도시로부터의 교외는 가보았지만은 무엇하지 않은 고찰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내가 주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가는 곳마다 그곳 동지들의 그 나라 당국자들의 한국의 사정을 알으셔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그 성의만은 우리가 극히 고맙게 생각해서 시간 허락하는 데까지는 얘기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나로서 먼저 발표하고 있는 것은 나는 한국국회의 의장이니 만큼 실지 행정 부면에 있어서 나는 의견을 당신네에 얘기할 것도 없을 뿐더러 또 얘기할 필요도 없다, 나의 이번에 귀국을 방문한 목적은 순전히 한국을 원조해 준다는 고맙다는 의사를 표시를 하려 온 것이고 그 이외에는 나는 얘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했지만은 근본적 문제에 있어서 평화휴전, 포로석방 등등 문제가 그때에 때마침 제기가 되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주의가 경주되어 있을 때이니 만큼 근본적 문제에 있어서는 얘기를 아니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전통 쇄국주의를 탈각하지 못한 영국의 표시로서 한국에 대한 왜곡한 선전이나 호의 아닌 모든 가지 추상적 모략이 많이 구라파에 미쳤다는 것을 볼 때에 한심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올시다. 우리 국내에서 우리 국회 안에서도 여러분 동지들이 영국의 표시에 대한 우리들의 의견도 발로된 것을 우리가 여행 중에도 알고 있었지마는 자기네의 일을 자기가 담당치도 못하는 인도의 형편으로서 한국에 대한 모든 가지의 정당치 않은 표시가 있었다는 것을 대단히 분개하고 대단히 상심했었던 것입니다. 때마침 그런 문제에 대한 해설을 요구하는 설명을 요청하는 때에는 우리는 간명하게 표시한 것이 이것입니다. 「한국사람은 평화를 원한다. 전쟁을 염오하는 민족이다. 나로서 얘기하기에는 명예스럽지 않지마는 역사적으로 볼 때에 전 세계 지구표면에서 평화를 애호하고 전쟁을 염오하는 민족이 있다면 그 민족은 반드시 한민족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사람은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전쟁을 싫여한다. 그렇지마는 한국사람이 원하는 평화 그야말로 찬동하는 진정한 평화도 이거라야 반드시 영구의 평화다. 그러니 한국사람은 평화를 원하는 데에 찬동하는 영구한 평화는 어째서 나오느냐 하면 한국의 국토가 통일이 되어야 된다. 통일이 된 다음에 진정한 평화가 오는 것이고 영구한 평화가 우리에게 와 지는 것이다. 가짜 평화 잠시적 평화라는 것은 지나간 시간에 일본제국주의가 동양평화니 무슨 평화니 그렇게 떠든지 불과 몇 해 되던 때에 일본은 다 망해 버리고 이것은 누구도 기억이 새롭다. 뼈가 저리도록 한국 사람은 진정한 평화, 영구한 평화를 원하느니 만큼 반드시 통일을 원한다. 구미 사람들의 인상 깊이 들으라는 말을 인용해서 미국의 유명한 패트릭 헨리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자유를 주거나 혹은 그렇지 않으면 죽엄을 달라는 명구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통일을 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죽엄을 달라는 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국민적 표시다」 이것을 얘기한 것입니다. 또는 자유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자유를 향수하여야 되고 자유를 누려야 되요. 공산주의를 싫어하고 민주주의에 살겠다고 하는 무리들을 억지로 공산군대 속에다가 공산주의의 철의 장막 속에다가 억지로 끌어다 집어넣어 꽁문이에 발길질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인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한국국회의 의장으로 있을 때 자유포로라고 하는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는 붙들려 온 사람이 여러 수천 명, 여러 수백 명이 여러 10차에 통해서 자기의 손을 깨물어서 피로 글을 써서 하로바삐 놓아달라고 하는 탄원서를 나는 받고 있었든 사람이며 그러므로 자유를 원하고 민주주의를 원하는 청년들 소위 유엔 포로라고 하는 사람을 내놓았다고 하는 일이 당연한 일이다. 이것조차 우리 전 국민이 다 원하는 일이지 한 사람이라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이치라고 하는 것을 긍정하면 여기에 이론이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포로 석방한 일이나 휴전을 반대하는 진정한 의미가 우리 대통령의, 이 박사의 입을 빌리고 손을 빌려서 표시가 되였지만 그 실상에 있어서는 우리 전체의 3000만 남녀노유 국민 하나도 빼놓지 않는 우리의 공동 혈원인 이 점을 그분의 입과 그분의 손을 빌려서 시현할 뿐이라고 하는 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간단하게 표시할 때에 기언가미언가 하는 영국 방면의 악선전을 들어 보든지 하는 것을 듣드라도 이것은 무슨 정치적인 야망이라든지 개인의 소치라고 하는 것을 의심하고 있었든 소수의 사람도 그러면 그렇지 그것 그럴 거야, 우리도 그렇게 생각해서 그것이 과연 옳소 하는 수긍하고 찬동하는 의사를 우리는 곳곳마다 듣고 있었든 것입니다. 이것이 비록 간단한 말로 내가 만난 사람마다 다 이야기를 했다고 할 망정 때마침 우리나라를 원조하는 일에 대해서 고맙다고 하는 의사를 표시하려고 갔든 단순한 나이지만 공교롭게도 우리 국내에서 일어난 중대사건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설명하고 우리의 진의를 표시한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다소 도움이 아니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이 주로 여행 중의 관감이라고 할까 이것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여기에 붙여서 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남의 형편을 대강 주마간과 격으로 돌아다녀 보니깐 원래 사람의 본능으로서는 좀 낫게 살고 잘 살자는 것 이것이 있는데 그 방면에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보기 전에도 그러리라는 것을 믿고 있었든 나이지만 실지로 남의 나라를 가보니 살기 위해서보다 낫게 잘 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 짓고 사는 문제라든지 밥 먹고 사는 문제라든지 모든 가지 산업발전이나 경제발달에 있어서 여력을 남기지 않고 정부나 민간이나 협력해서 주로 유능한 인재들이 정부의 책임을 지고 자기의 있는 최상의 힘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을 나는 어떤 나라에서나 보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6․25 사변 후에 부산에서 소위 주택 문제, 가옥 문제에 있어서 자기도 몸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자의 하나이지만 우리 전 국민들의 곤란한 정황 그 고황을 시각분초로 보면서 초심하고 걱정을 하든 나로써는 국민주택 문제에 관해서 다른 나라의 시설을 볼 때에 나는 특히 인상 깊게 느꼈든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오스트렐리아, 뉴지랜드와 같은 데는 하우싱푸랜이라고 하는 정부의 연차계획을 세우고 제1년에는 몇백 몇십 호를 짓는다는 것을 계획을 정하고 다 일체의 규격을 두어서 그해 그해에 낙제 없이 실행해 가는 까닭에 여러분 다 아시다싶이 뉴지랜드에는 다대수가 물론 백인들의 집이지만 그 가운데 있어서 3, 40만 명이나 되는 마을이라고 하는 본토 토착민들 그 사람들까지 합해 가지고 주택 문제는 아무 곤란 없이 현대식으로 화려하게 잘 살어가드라 말이에요. 우리가 이 세상에 나서 일을 해 갈 때에 남이 하는 일이면 우리도 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다 믿고 있는 우리입니다. 남보다도 훨신 낫다고 하는 우월감을 가지지 못할망정 뒤떨어지지 않겠다고는 생각할 수 있단 말이에요. 여러 가지 남의 좋은 일 편하게 되여가는 일을 볼 쩍에 물론 부러워하고 대단히 기뻐하고 그래요. 그러나 자기의 나라를 도리켜서 생각할 때 상심도 되고 또 사람은 언지 않은 부분의 심리가 작용이 되는 것이란 말이에요. 그래 시기심도 생기고 화증도 나고 복잡한 정서로써 돌야다녔든 것입니다. 다만 몇 가지 그렇게 자기가 느낀 바가 있을 뿐더러 고맙다는 의사표시를 하러 간 나로써 더군다나 무슨 교섭이라고 한다든지 이런 것은 할 처지도 아니고 또 할 사명도 없고 그런 처지이지만 의정 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임으로 한국의 부흥․재건을 위해서는 그대네들은 얼마만큼 관심을 하여야 되겠고 또 어떤 부류의 자료를 한국에 도와야 된다고 하는 것을 가는 데마다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말하면 가령 지금 가옥 문제를 이야기 했읍니다만 목재에 관한 문제라든지 유명한 자료 많은 곳에서는 자기네도 즐겨서 한국정부와의 관계만이 발생된다고 하면 자기네들이 있는 자료를 가지고 한국 부흥과 재건에 있어서 많이 돕겠다고 하는 표시를 듣게 되었습니다. 인재양성에 있어서도 학생을 어떻게든지 파견하게 될 때에는 특별히 원조하고 잘 도와주어서 아무쪼록 한국민족이 잘 살어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여러분이 도와주면 고맙겠다고 하는 표시를 또한 말한 것입니다. 가령 농업에 관한 것, 수산에 관한 일 이런 것도 반드시 영국이나 미국이나 불란서이나 커다란 나라보다도 조그만한 특수한 발전을 보게 된 몇 개의 나라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는 농업이나 수산이나 이런 데 있어서 이론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려니와 경험을 터전하는 기술도 우리가 배워야 되겠고 기기에 대한 기구도 우리는 다 얻어야 되는 것이고 사 와야 되는 그런 형편이 아니겠읍니까? 그래서 그런 것도 이야기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나는 늘 의견을 붙여 말하는 것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에 그치고 다만 이것을 구체적인 표현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정부에서 정당한 수속으로 우리 정부에서 당신네 정부에게 이야기가 된 때에는 오늘 나와 같이 이야기한 일을 기억해서 참고하는 일도 대단히 좋겠다 그런 것을 붙여서 말씀했든 것입니다. 그리고 기후 좋고 여러 가지 조건이 풍부한 데 도처마다 보니 우리나라의 농부들이 가서 수전 을 개척한다고 하면 훨신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는 나라가 한두 나라가 아닌 것이 있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당국자들과 앉어서 얘기할려면 너이 나라에 쌀이 없다 쌀을 산출할려면 매년 연차계획을 세워서 농민을 계획적으로 이민시켜라, 매년 100호라든지 200호라든지 해서 정부에서 1년만 보조한다면 그다음 해부터는 너이 나라에서는 이태리나 그런 데에서 사오지 않드라도 너이 나라에서 생산될 것이고 또 외부로 수출하는 데에는 쌀이 많이 유용되겠다, 많이 나아지리라는 것을 얘기한 데가 많이 있었읍니다. 자기네들이 고려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몇 개 여행 중에 혹은 환감이라고 할까 부대한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털어서 이번의 여행으로 말하면 자기의 주관적이였읍니다마는 소정한 기간보다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어서 더군다나 국내에서 의원 동지들과 같이 지내지 못하게 된 것을 거듭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으로 두 가지 말씀을 덧붙여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내가 일본에 와서 시간을 한 20여 일 지냈읍니다. 이것은 내 정황을 아시는 분은 다 아시는 처지입니다마는 여러 차례 미국을 내왕, 대만을 내왕하는 길에 일본을 경유했었는데 일본에는 60여 만의 우리 교포들이 거주하고 있읍니다. 말은 60여 만이지만 현제 70 내지 80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 반수 이상이 일본 관서지방에 거류하고 있읍니다. 경도, 대판, 신호 등지에 약 40여 만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60만에 40만이면 과반수이라 그 말이예요. 여러 차례 경유하는 데마다 빈말이나마 어떻게 고생하고 지내느냐는 민족애로써 방문하고 위문의 말씀이라도 하면서 다니려고 했는데 여의치 못하였읍니다. 스캡의 관계라든지 모든 가지 시간 관계라든지 이번에는 아주 결심해서 반드시 거기를 찾어야 되겠다 해서 시간의 여유도 있을 뿐더러 미안한 말씀이지만 우리 국회에서 휴회되었다고 해서 기히 늦었기에 여러 동지들에게 꾸지람을 듣는 한이 있드라도 개회되는 때에 같이 모이도록 하고 나는 여기서 일을 보겠다고 해서 돌아봤읍니다. 공장의 설치라든지 모든 가지가 40여 년 전에 대판시라든지에서 엿목판을 미고 나니면서 엿 장사를 한 거류 동포의 정황이 내 눈에 아직 선하게 있는데 내가 이번에 몸소 가보니까 훌적 다르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게 됩니다. 기어 6, 70만 교포 가운데에 생활고로 헤매고 있는 것이 다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도시생활 하는 데에 있어서 조그만한 공장이라도 기계 몇 대라도 굴리고 있고 사장이니 무슨 취체역이니 하고 해서 직물 제사공장, 철기공장 각종 각양이 다 있어요. 심지어 정밀기계를 맨들어서 사진기계, 자동차부속품 등을 다 맨들고 있어요. 일본사람과의 경쟁에서 비틀비틀해 가면서 또한 제3국 국민에게는 무슨 융자를 해 주지 않는다든지 제3국민이라는 것은 우리 한국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일본사람이 그와 같이 가혹한 규정을 맨드는 데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버티면서 나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도처 이 여러 동포가 보였고 해서 의논하고 얘기를 하고 할 때에 눈물을 흘리면서 많이 감격한 동포들도 많이 있는 것을 봤읍니다. 어떻게든지 하루바삐 한일 국교가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 가지고 우리는 거류하는 동포들을 마음껏 도웁고 또한 거류동포의 대부분도 우리 조국재건과 민족부흥에 자기네 있는 힘, 기술의 힘, 금전의 힘 모든 가지를 공헌해 보겠다는 성의가 충만하고 있는데 이런 데에 많은 기회를 하루바삐 많이 주어서 나라 일을 나라 사람이 같이 한다는 원칙에 의지해서 재일동포들도 조국재건, 민족부흥에 많은 공헌이 있게 되기를 나는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씀드리고 맨 끝으로 이번에 단신으로 다니기 어렵고 해서 김동성 의원 동지와 사전에 서로 얘기하고 동의를 얻어서 같이 여행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아시다싶이 외국 언론에 정통하고 국제사정에 밝고 모든 가지가 노성하신 김 의원이 전 여정을 통해서 내가 시방 대답한 말씀 어느 한 가지나 김 의원이 2분지 2 이상 노력하지 않은 것이 없읍니다. 외국 당국자들과 모여서 애기한 때에 여러분 아시다싶이 나의 영어라는 것은 극히 빈약한 처지이고 김 의원의 모든 가지 도움과 협조로서 큰 실패가 없이 이번 길을 마쳤다는 데에 여러분에게 감히 김 의원의 많은 공로가 나 이번 여행에 첨가되었다는 것을 붙여서 여러분에게 보고해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시작하기 전에 얘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계통 있는 체제 있는 보고를 드리지 못하고 그저 부분적으로 나누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읍니다. 김동성 의원이 신 의장과 수고 많이 하시였고 해서 잠깐 나오셔서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 수개월간 국난을 당하셔서 현명하신 여러분께서 수완 역량이 풍부하신 조 부의장, 윤 부의장과 같이 국난을 극복하신 데에 대해서 이 자리를 빌러서 여러분에게 감사의 의사를 표명하고저 합니다. 이 미비한 사람이 우연히 영광을 입어서 대한민국국회의장을 따라서 참 드문 여행을 마처 보았읍니다. 미비하고 미급한 저를 관후하신 의장께서는 너그럽고 사랑해 주셔서 3개월 반 이상을 모시고 다니는데 하루같이 한 번도 눈쌀을 찌푸린 일이 없읍니다. 이와 같이 원만한 태변 으로 사랑해 주신 결과로 다행히 과실이 없이 잘 모시고 그림자같이 의장을 따라다녔읍니다. 따라다닌 결과 역시 저 자신도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는 인격을 잊지 않었읍니다. 예를 들면 제네바에 갔을 때에 신문기자들이 나와서 의장과 말씀을 하는데 나는 언제든지 의장을 앞에 내세우고 뒷자리에 섰는데 어떤 기자가 와서 말하기를 너는 명색이 무엇이냐 묻기든요. 그래서 나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다 그만하면 족하지 않느냐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면 고만이지 그 이상 더 무를 것이 무엇이 있느냐 하고 농담을 한 일이 있읍니다. 의장을 모시고 가는 길이 1개의 비서의 자격이지만 사실은 국회의원이라는 자격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자신도 있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위대하신 영도자 우리 대통령을 모시고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돌아다니는데 세계 어데를 가든지 떳떳이 우리 한인이라는 것을 자랑했읍니다. 첫째는 충혈이 극한 우리 국군의 용감스러운 태도로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자랑꺼리가 되는 동시에 이번의 우리 대한민국의 행사로 포로 석방한 것이야말로 레리생 포우 이것이 아주 걸작입니다. 대한민국의 이름이 세계 방방곡곡에 안 일어난 데가 없읍니다. 그리고 에덴이라는 항구에서 배를 타게 되 있는데 그 배가 큰 관계상 조곰한 조선을 타게 되었읍니다. 이 조선을 탈 때에 애란 노동자들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일본 사람인지 중국 사람인지 몰랐어요. 그래 대한민국에서 온 일행이라고 하니까 그 노동자들이 한인이 제일이라고 그래요. 우리 국군이 용감하게 싸운다는 것이며 또 그때 마침 포로 석방, 휴전 반대가 성해서 신문마다 주먹 같은 글자로 이 박사 이름이 났읍니다. 그것이 조곰한 일 같지만 우리 한인으로서는 자랑삼아 이야기 아니 할 수가 없는 처지입니다. 또 25, 6 국가를 지나는데 우리들의 모범이 되고 배울 만한 것이 있는 것이 우리가 본 중에 서전이 제일입니다. 문화가 발달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140년 동안 평화를 누린 나라로서 부력이 축적되었고 문화라든지 학술 방면에 있어서 어떤 나라보담도 나은 그런 처지에 있는데 심지어 우생학까지 실시합니다. 이는 이론에 지나지 않는데 우생학을 실시해서 천치나 바보는 생산을 못하게 합니다. 또 한 가지 눈에 띠우는 것은 놀웨이, 서전, 덴마크에 가니까 입에 붉은 칠을 하고 파마를 한 여자가 별로 없어요. 무엇보다도 여자들이 근실하고 또 자전거 같은 것을 잘 타고 있어요. 그만큼 살림을 잘 하면 그 나라가 왕성할 것은 묻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또 서독을 가니까 여기는 우리 형편과 같아서 요새도 매일 2000명 이상의 피난민이 동독에서 서독으로 월서하고 있읍니다. 독일만은 우리 모르는 생각에도 어느 나라보담도 먼저 복구될 것 같아요. 패전국이지만 근면하고 또 과학이 발달된 것이 세계 제1등 갈만한 처지에 있읍니다. 함불크 같은 도시에는 가 보지도 못했읍니다마는 전부가 완성이 되었다는데 어떤 미국 사람한테 물은 즉 미국사람의 대답이 10분지 1은 미국 사람의 원조로 10분지 9는 독일 사람의 노력으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 전화 입은 대한민국으로서 첫째 알아야 할 것이 독일 민족의 근면과 노력을 안 볼 수 없는 그런 처지에 있다고 생각하고 왔읍니다.

신 의장의 보충보고가 있겠읍니다.

인사의 말씁입니다마는 하도 소홀하게 말씀을 드려서 보충할 것이 있는데 내가 국외에 나간 이후로 우리 국가민족으로서 제일 중대한 문제가 제기되어서 처리가 된 처지인데 내가 여러분 모시고 같이 지내지 못했다고 죄송한 말씀 했읍니다마는 국회 안에 우리 조 부의장 평소에 경애하고 신임하고 있든 처지이지만 불초한 나보다 많은 노력과 많은 근성으로써 여러 동지들과 같이 지냈다는 것은 친우의 하나로 사인으로도 감사하지만 의장과 부의장 사이에 있어서도 특별한 사의를 표시합니다. 또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 규칙에 관해서 이야기입니다마는 모든 가지 이것저것 살림사리의 운영위원회 위원 되시는 분들이 많이 주야로 노력하셔서 임시일망정 서울에 다시 돌아와서 한 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이렇게 하게 된 것을 운영위원회 여러분들이 노력하신 데 있어서 의장으로서 특히 사의를 표합니다. 이것을 인사의 말씀으로 하되 하도 촉망한 가운데 누락이 되어서 다시 추보해 드립니다.

아까 말씀과 같이 의사일정에는 안 올랐읍니다마는 김봉재 의원 외 12인으로부터 긴급동의가 제출되고 있어요. 농촌 문제를 위시한 당면 정책에 대해서 질문하기 위해서 국무총리 이하 전 국무위원의 출석을 요청하자는 것입니다. 운영위원장과도 이야기했읍니다마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니 오늘 상정해서 의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유는 구두로 설명하겠다고 했어요. 김봉재 의원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