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년 1월 25일 날 군산 근해에서 발생된 행운호 침몰사건에 대해서 간단히 보고 드리겠읍니다. 이 본회의 결의에 의지해서 교통체신위원회에 이 조사를 할 것을 명령 받었읍니다. 그래서 교통체신위원회에서 특별조사단을 조직해서 2월 9일부터 2월 11일까지 3일간에 걸처서 조사했읍니다. 그러나 그때 마츰 국정감사가 개시되었고 그 후에 계속해서 통화조치 또는 여러 가지 예산 심의 등의 복잡한 사건이 많이 있어서 조사보고가 이와 같이 늦었다는 것을 대단히 미안히 생각하고 있는 바입니다. 그래서 어제 여기에 대한 상세한 유인물을 의원 동지 여러분에게 돌려드렸습니다. 그러므로써 이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이 유인물을 자세히 보아 주시기를 바라는 동시에 오늘 이 많은 의사일정을 심의하기 위하여 시간관계로 말미암아서는 간단히 중요한 몇 가지만을 여러분에게 보고드리고저 합니다. 이 행운호는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군산지점에 소유되고 있는 선박이올시다. 그래서 이 선박은 군산과 강경 간을 왕복하는 정기 여객선입니다. 그 총 톤수는 36톤 71이라는 그런 기선입니다. 거기에다 승객이 그날은 218명이라고 하는 숫자가 탔었읍니다. 그런데 그 정원수는 단 75명입니다. 정원 수의 3배가 되는 승객을 태워 가지고 군산으로 향해서 내려오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가 너무나 정원이 초과했기 때문에 군산 근해에서 침몰되어서 사망자가 64명이 났읍니다. 여러분 아시다싶이 군산 근해, 즉 군산에서 강경 간이라고 하는 데는 조류 따라서 다소 완급은 있지만 파도라는 것은 그렇게 있는 항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항로에는 과거에 있어서는 원시적인 극히 적은 선박이 화물이라든지 이런 것을 수송했지만 그와 같은 사고는 전례가 없는 사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64명이라는 희생자가 났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고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볼 때에 저이는 그 여러 가지 점으로 보아서 이것은 결단코 불가항력이 아니라 이것은 그 영업자의 불철저한 그 비정상적인 영업행위로서 이와 같이 나타난 것으로 판정되였읍니다. 그 원인으로 볼 때에는 첫째 그 사고 당일인 1월 25일 15시 전후의 천기로 보아서는 평상시와 조곰도 이상이 없이 극히 온화한 일기였읍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선체나 기관에는 하등의 이상이 없었읍니다. 그리고 승객이 너무 많어서 승무원 가운데에 너무 위험해서 항해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을 미리 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항해를 계속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중대한 사고를 이르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고원인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불가항력이 아니라 이것은 인위적인 과실에 기인되는 것이라고 저이는 판단을 내렸든 것입니다. 그래서 저이는 그 사고를 조사할 때에 먼저 구호본부를 찾아가서 우리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조위금 1봉을 증정을 하고 그 유가족을 위문에 착수했읍니다만 그 유가족은 군산 강원 충청남도 전라북도 연안 6, 7개소의 지방에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일일히 조문을 못 하고 그 부근에 있는 유가족 일부에 대해서 조의를 표했읍니다. 그리고 그때 수사당국에서 사건을 관계하고 있는 충청경찰국 서천 군산경찰서 등등 여러 관청을 찾아서 구호자금이라든가 사후처리에 대한 조사를 했읍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점에 대해서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 보고서에 의지해서 보아 주시기를 바라고 제가 여기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는 농림부 관할하에 있는 기업체입니다. 그래서 그 영업종목 가운데에는 항해업이나 특히 여객업을 경영한다는 그런 영업종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정기여객선을 경영케 해서 역사상 희유의 희생자를 냈다는 점에 있어서는 감독책임자인 농림부의 책임도 우리가 간과할 수 없거니와 또 미곡창고회사에서는 사후처리로서 유가족에 대한 조위금 장례비로서 구화로 1억 5000여만 원을 지출했읍니다. 그래서 그 성의에 대해서는 우리가 충분히 인정할 수가 있지만 그 영업담임자의 비합법적인 영업으로 말미아마 회사 자체에 이와 같은 커다란 손실을 끼첬다는 점도 금후 그들의 맹성 을 촉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건을 다시 되푸리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감독관청인 농림부나 또는 운영당국인 여러분에게 대해서 앞으로의 심심한 대책이 있기를 요구해서 마지않습니다. 여기에 자세한 것은 썼으나까 이걸 보아 주시기 바라고 시간관계로 간단히 이만큼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지금은 북진통일 총궐기대회에 대해서 보충 보고할 께 있다고 그래서 서범석 의원을 소개합니다.

간단히 여러분께 특히 북진통일 총궐기대회에 대한 보고내용의 수정을 바라는 의미에서 서울에 대한 보고를 간단히 보충 보고하겠읍니다. 요번에 5만의 시민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아마 무슨 숫자의 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거기에 참석했는데 그날 전시의 시민은 한 집에서 한 사람 이상 다 나왔읍니다. 그래서 중앙청 전면으로부터 광화문통 네거리까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동원되었다는 것이올시다. 그 수효가 군 관계보고에 의할 것 같으면 약 20만이라고 그러는데 저이들의 정확한 조사에 의할 것 같으면 적어도 40만이 동원되었다고 저는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이 많이 동원되었다는 것뿐 아니라 그 동원된 사람 중에서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북진통일을 기원하는 혈서를 현장에서 쓴 사람만 해도 10여명이 됩니다. 그래서 진실로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국민이 무엇을 요구하며 무엇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충실히 표시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 보고에 있어서 수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개 이러한 나중에 보시면 알겠읍니다만 사진이 있는 거와 같이 우리나라의 이러한 행사에 있어서 동원된 중에 있어서는 요번 동원이 제일 큰 동원이라고 믿는 바입니다.

이진수 의원을 소개합니다.

아까 보고에 한 가지 또 수정해주셔야 할 것이 있읍니다. 경기도의 5만이라고 했읍니다. 인천만 동원된 것이 12만 8000올시다. 수원만 하드라도 6만이 동원되었든 것입니다. 한강 이남의 경기도 전체에 25만 8000이라는 숫자가 동원되었읍니다. 여기에 한 가지 말씀드릴 것은 27일 날 타스카경제사절단이 서울에 입성할 때에 비행장에서부터 중앙청까지 타스카사절단을 환영하는 군중만 할지라도 약 15만에 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26일 날 총궐기대회에 출석하고도 그 이튿날 계속해서 우리는 이 나라 부흥을 위해서 타스카 사절단을 환영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막대한 숫자를 냈다는 것입니다. 또 그날 오후도 영등포와 경인지구 공장지대를 타스카사절단이 시찰하는 그 시간에도 경인지구…… 영등포에서부터 인천까지 약 20여만 명이 동원되었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것을 첨언해 드리면서 아까 보고 중 특히 경기지구에 대한 것을 수정해 주시기를 요망합니다.

이병홍 의원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