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로부터 제30차 회의를 개의합니다. 전차 회의록을 낭독하겠읍니다. 회의록에 착오나 누락이 없읍니까? 통과합니다. 보고사항……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5월 13일 자로 대법원장으로부터 선거소송에 대한 처리결과 통지가 있읍니다. 단기 4291년 선제71호 통지서 원고 홍춘식 피고 천안군갑선거구 선거위원회위원장 박남구 우 당사자 간 선거무효청구사건에 관하여 단기 4292년 5월 13일 본원이 선고한 좌기 판결주문을 자에 통지하나이다. 단기 4292년 5월 13일 대법원장 민의원의장 귀하 기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단기 4291년 선제22호 통지서 원고 이춘기 피고 이리시선거구 선거위원회위원장 이철호 우 당사자 간 당선무효청구사건에 관하여 단기 4292년 5월 13일 본원이 선고한 좌기 판결주문을 자에 통지하나이다. 단기 4292년 5월 13일 대법원장 민의원의장 귀하 기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단기 4291년 선제30호 통지서 원고 양병일 피고 강진군선거구 선거위원회위원장 박행태 피고 김향수 우 당사자 간 선거무효 및 당선무효청구사건에 관하여 단기 4292년 5월 13일 본원이 선고한 좌기 판결주문을 자에 통고하나이다.. 단기 4292년 5월 13일 대법원장 민의원의장 귀하 기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보고는 이상입니다.

다음에 의사일정 제3항을 상정합니다. 조재천 의원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24 경호권 발동경위 보고―

의사일정 제3항은 그간 중단상태에 있다가 오늘 다시 되돌아왔읍니다. 그것은 이 24사태에 대한 질문이 계속이 되었는데 그날 사회를 한 한희석 부의장은 모든 질문에 대해서 답변을 회피를 하고 자기는 의장의 대리로서 사회를 했음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세한 것, 더구나 문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의 불법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모른다 또 자기가 자유당의 간부로 있어서 알고 있는 바는 있지마는 그러나 자유당 간부의 자격으로 하는 것과 부의장으로 있어서 하는 것과 그것은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마는 자격이 다르기 때문에 말할 수가 없다 이러한 궤변을 농해서 답변을 회피했던 것이올시다. 그래서 질문을 하는 야당 측에 있어서는 그러면 그 구체적인 것에 관해서는 주무 위원장, 예를 들자며는 경위 300명 채용에 대해서는 운영위원장 또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날치기 문제에 있어서는 김의준 법제사법위원장 또 기타 관계 위원장이 대답을 해라 이렇게 말했으나 관계 위원장들은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회피해 왔던 것입니다. 또 그러면 한희석 부의장도 자세한 것은 모른다, 사회를 대리했을 뿐이다 또 주무 위원장들도 대답을 회피한다, 그러면 총책임자인 이기붕 의장이 나와서 답변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말하며는 의장은 건강이 좋지 못해서 나오지 못한다 이렇게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적어도 자유당이 소신을 가지고 이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했다고 할 것 같으면 의장 이하 당당히 나와서 답변을 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그렇기 때문에 야당에서는 잠시 그 각도를 달리해서 이 24사태의 계획, 진행 또 그 후에 있어서의 논공행상 이러한 의미에서 부산에 있어서의 범칙물자…… 이것은 주로 일본에서 들어온 밀수품으로 되어 가지고 있는 범칙물자를 가지고 추문이 벌어져 가지고 있고 거기에 대한 상당한 증거가 있다고 하는 이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즉 이 24 불법사태에 관련되는 사항으로 있어서 중간에 논의가 되었던 것이올시다. 그리고 또 그다음에는 여야 간에 회담을 통해서 호양의 정신으로 적당한 성과를 얻도록 타협선을 발견해 보자 하는 이러한 회담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에 이 의사일정 제3항은 중단상태에 있었던 것이올시다마는 오늘 다시 계속하게 된 것이올시다. 본 의원이 오늘 질문하는 데 있어서 그 질문의 기본이 되는 사실관계를 보고하고 이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그 사실관계라는 것은 24사태 당시 동원되었던 무술경찰관 300명 중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가지고 모든 것을 자백을 한 사실에 의해서 명백히 된 것을 보고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무술경위는 물론 그 주소 소속 계급 성명을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마는 본인을 위해서 당분간은 지금 말한 성명 등은 밝히는 것을 보류하고 이다음에 적당한 시기가 오고 또 그 필요가 있을 때에는 밝힐 것을 약속을 해 두는 것이올시다. 이 무술경위가 자백을 한 것은 3월 5일 본 의원과 만나고 싶다고 그래서 서울시내에서 만났던 것이고 그 자리에는 이 무술경위와 본 의원과 둘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 두 사람이 입회하고 있었던 것이올시다. 이 경위는 자기의 신분을 밝히고 또 24사태 당시 국회로부터 받은 신분증을 제시를 하고 또 경위로 있어서의 발령장을 제시를 해서 자기의 신분을 명백히 한 다음에 이 자백을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또 그 자백의 동기로 있어서는 자기는 그 당시 동원이 되어 가지고 갔지마는 그날 본 광경 또 그 뒤에 자기의 머리속에 주마등처럼 흘러가는 그날의 비참한 광경 이러한 것이 자기의 양심을 괴롭히게 하고 그 양심의 가책에 견디지 못해서 자백할 결의를 한 다음에 그 지방 출신의 지방의원의 소개로 왔다는 이야기를 했고, 더군다나 그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 중의 한 가지는 그 민족적인 비극이 벌어진 이 의사당에서 나이 많은 박순천 여사 또 김상돈 의원 이분들이 말하는 중에 ‘너희들이 공산당이 아닌 이상 나라를 망치는 이러한 일을 어찌 하느냐? 너희들이 밥이 없으면 우리도 어렵지마는 같이 밥을 먹자’ 하는 얘기를 했는데 그것이 자기의 고막에 아직도 쟁쟁하게 남아 있다는 이러한 얘기를 섞어 가면서 자기가 자백을 하게 된 동기를 설명을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경위는 체격이 대단히 크고 또 유도도 단을 가지고 있는 거한이었읍니다. 이 무술경위가 자백한 바에 의하면 이 무술경위의 출동에 관한 연락은 21일 받었다는 것입니다. 이 날짜를 가지고 계산을 해 보면 19일 날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날치기 표결이 강행이 되고 거기에 의해서 그 이튿날 본회의에서 야당 의원의 등원을 방해하는 그러한 간계가 있다 하는 정보 또 그렇게 해 놓고 20일 날 본회의에서 역시 날치기 표결을 할려고 하는 그러한 정보에 의해서 농성에 들어간 것이 19일 날 석양 5시경이올시다. 그것이 19일인데 20일 날 벌써 치밀한 이 사태를 일으킬 계획이 착착 준비가 되어 가지고 21일 날 벌써 지방에 있는 경찰에까지 전달이 되고 그 경찰서로부터 그 무술경위가 될 사람에게 연락이 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읍니다. 이 점에 관해서 한희석 부의장이 작년 12월 26일 기자단 회견 당시에 말하기를 ‘무술경위 300명에 대해서는 이 부의장이 20일 날 김 내무장관에게 경찰관 중에서 300명을 채용하겠다고 했다’는 것을 말한 것과 그 구절을 같이하는 것이올시다. 즉 이 무술경위의 말하는 첫날이, 즉 12월 21일 날 연락을 받았다는 이 사실은 앞으로도 나오는 여러 가지 구체적 사실에 의해서도 더욱 명백해지겠거니와 이 날짜로 보아서 스무하루 날 벌써 연락을 받았다는 이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자유당 간부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불법…… 즉 자유당은 농성을 하고 있는 야당들과 원만히 해 보기 위해서 갖은 성의를 다했지만 들어주지 아니하기 때문에 부득이 무술경위 300명을 동원하기로 되었다 하는 것이 얼마나 허위냐 하는 것을 이 스무하루 날짜에 연락을 받았다는 이 한 개의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입증할 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좌우간 12월 21일 파출소로부터 이 거인인 무술경위가 될 사람에게 연락이 와서 말하기를 내일, 즉 스무이틀이 됩니다. 내일 오전 8시 본서에 집합을 하라 이러한 명령을 받고 밤을 지낸 이튿날, 즉 12월 22일 일찌감치 경찰서에 출두를 했읍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그 서에서 나올 여러 사람들과 같이 집합이 되었고 그 집합이 완료되자 사찰계장이 나와서 말을 하기를 ‘여러분들은 사표를 내라. 그리고 경찰관신분증 기타 이에 관계된 일체의 소지품을 내놓아라’ 이런 제일성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모인 거한들이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도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은즉 사찰계장이 답해서 말하기를 ‘여러분은 서울에 가서 정치파동을 수습할 임무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우선 사표를 내고 또 경찰관신분증 같은 것을 전부 내놓고 새로이 발령을 받기 위해서 이력서 2통, 기류등본 2통, 사진 2장, 모자 하나, 단 그 모자는 모표는 떼고 모자만 가지고 오너라’ 이런 명령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은 다 들어 보며는 이해할 수가 있는 것이지만 모자 하나는 가져오되 모표는 떼고 오라 이 얘기가 무슨 얘기냐 하는 것을 물어보았더니 그것은 나중 판명된 일이지만 자기네들도 그 모자를 왜 가지고 오라고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 지내 놓고 본즉 이 무술경위 300명의 제복 제모를 짓는 데 거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이 제복 상하의 300벌을 짓는 시간은 있지만 모자 300개를 짓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시간적인 그 측정을 해 가지고 이 모자는 국회에서 다시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찰관으로서 가지고 있는 그 모자…… 그것을 모표만 떼고 가지고 오면 나중 국회경위의 모표만 붙여 가지고 가짜 국회경위로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이라는 것을 나중 본인들도 알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이것 역시 적게 생각하면 모자 하나를 가져오라 하는 그러한 적은 일에 지내지 아니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이러한 일에도 얼마나 이 계획이 미리부터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입안이 되고 실행이 되었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한 자료가 되는 것이올시다. 그래서 방금 명령받은 바와 마찬가지의 이력서 등의 서류를 준비를 하고 또 모자를 찾아 가지고 모표는 떼어 버리고 그것을 지니고 다시 경찰서에 집합을 해 가지고 그다음 집단적으로 뻐스를 타고 경찰서를 출발해서 그날 오후에 부평에 있는 경찰전문학교에 도착을 했읍니다. 그런데 다른 도에서도 속속 도착을 하는데…… 그날 중에 도착을 완료를 했는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는 통일호, 기차로 도착을 했고 그 이외의 도는 전부 뻐스를 타고 왔읍니다. 따라서 전라남도, 전라북도 같은 원거리에서도 뻐스를 타고 부평에 있는 경찰전문학교에 도착을 했읍니다. 제일 마지막으로 도착한 도가 어느 도냐 하면 전라남도에서 뻐스를 타고 온 그 구릅인데 이 구릅은 밤 12시가 될 무렵에 경찰전문학교에 도착을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전체의 인원수가 얼마인지 잘 몰랐지마는 각 도가 도착하고 본즉 결국은 300명 정도라는 것을 그 무술경위들 자신들이 알게 되었는데 같이 있는 동안에 그 인원수를 자연히 알게 된 바에 의하면 경기도가 80명, 경상남도가 40명, 강원도가 20명, 그리고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북도가 각 30명이라고 기억을 한다고 설명을 했읍니다. 여기에서 다만 서울시 경찰국은 제외가 되고 또 제주도 경찰국도 제외가 되었는데 서울시 경찰국이 제외된 이유는 서울시경에 있어서는 무술경관을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가죽잠바부대를 준비하기 때문에 이 무술경위는 서울시경에서는 도착을 하지를 아니했고 제주도는 섬인 관계로 비행기나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관계로 제외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인원 계산을 해 본즉 300명에서 열 사람이 부족이 되는데 그것은 아까 말한 그 숫자의 기억에 착오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10명이 다른 데서 더 온 것을 자기가 몰랐거나 하는 관계로 지금 이 자백한 숫자를 종합해 보면 열 사람의 부족이 생기는 것이지마는 전체로서 300명이라는 것을 자기네들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얘기를 했읍니다. 이와 같이 각 도로부터 300명을 데리고 와서 경찰전문학교에서 부대편성을 했는데 이것을 8개 중대로 편성을 했읍니다. 그 8개 중대에는 경위가 중대장이 되었고 일부에는 경사가 중대장이 된 것도 있는데 좌우간 8개 중대로 해 가지고 각각 앞으로 임무를 나누어 맡게 된다고 하는 명령을 받었읍니다. 이와 같이 각 도로부터 속속 집결이 되었는데 그날 밤 국회로부터 경위과장이 경찰전문학교에 내교하고 또 인사과장이 같이 왔읍니다. 이 자백하는 경위 말에 의하면, 이 무술경위 말에 의하면 인사과장이라고 그리 말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국회에는 인사과라는 과가 없어서 결국 ‘그것은 총무과장이 아니냐?’ 이렇게 물었더니 그것은 총무과장인지는 모르나 자기들은 좌우간 인사를 취급하는 과장이기 때문에 인사과장이라고 무술경위들 사이에서는 말이 돌았다는 것이에요. 이와 같이 국회로부터 경위과장과 인사과장이라는 과장, 정확히 말하면 총무과장이 밤에 경찰전문학교에 와서 거기에서 각자로부터 이력서 기류등본 사진 각 2매씩을 제출하라고 명령을 해서 그것을 전부 거두어 가지고 가서 인사발령을 해 오겠다고 하고 경찰전문학교를 떠났읍니다. 사회하시는 이 부의장께 한마디 말씀드리겠는데 좀 의장 내가 조용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각각 의석에 앉도록 사회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용히 하세요.

어디를 보고 조용히 하라고 하는 거요! 무슨 사회요!

그다음 12월 23일에는 국회로부터 사람이 와 가지고 이 경위로서의 사령장을 가지고 와서 주었는데 그때에는 인사과장 외에 또 한 사람이 더 왔는데 그것은 자기들의 추측으로는 인사계장이라고 짐작을 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23일 날 300명은 경위발령장을 받았는데 받은 것도 23일이지만 그 사령장에는 23일 자로 기재가 된 것을 받았다는 것을 말을 했읍니다. 이것을 받어들은 다음에 앞으로 서울에 가서 행해야 할 그 활동에 대한 예비훈련을 받었읍니다. 이 훈련을 맡은 사람은 국회 경위과장과 치안국 경비과장 동 경비계장 또 그다음에 작전계장을 하던 김 총경이라고 하는 사람 이 사람들이 경찰전문학교에 와서 여러 가지 각도로 앞으로 국회에 가서 할 활동에 대한 훈련을 해서 이 300명이 그 훈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훈련에 있어서 국회 경위과장은 이 국회 경위…… 경호에 대한 실무적인 설명 또 국회법상 제 몇 조 몇 조에 의해서 이러한 경호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것이라 하는 그 법적 근거라는 것에 대한 설명 이것을 자세히 훈련을 해 주었고 또 다음 치안국 경비과장은 실지 행동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데에 대한 훈련을 한 것이올시다. 이 훈련을 하는 데 있어서는 이 국회의사당의 도면을 그려서 놓고, 그 도면에는 의사당의 복도 또 문이…… 동쪽에는 문이 몇 개가 있고 북쪽에는 몇 개가 있고 남쪽에는 몇 개가 있다는 그 문…… 또 이 국회의원들이 앉어 가지고 있는 열을 꼭 이 모양으로 그려 가지고 여기서 몇 줄까지는 자유당 의원이 앉어 있고 그다음 줄은 민주당 의원이고 여기 가운데는 무소속 의원의 자리가 이렇게 되어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의원석의 도면 이런 것을 그려 놓고 이 앞으로 할 행동에 대한 훈련 및 설명을 다 했던 것입니다. 이 아까 8개 중대로 편성된 그 중대에 대해서는 제1중대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제2중대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3중대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이러한 부서 또 야당 의원들이 자유당 의원들에 대해서 덤벼들는지도 모르겠으니 그 경계선에는 어느 중대가 가서 서고 앞에 늘어설 중대는 어느 중대로 하고 이 의장단의 좌측에 설 중대는 어느 중대, 우측에 설 중대는 어느 중대 이와 같이 배치가 다 작정이 되었고 또 거기서 훈련 중에 설명하기를 ‘여러분 300명의 임무는 야당 의원들을 무조건 낭하로 끌어내는 것이 임무다’ 이와 같이 임무를 설명한 다음 ‘여러분이 무조건 낭하로 끄집어내면 거기에는 서울시 경찰국 경찰관이 약 300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조치를 할 것이다’ 이런 설명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 자백한 무술경관의 말에 의하면 복도에는 약 300명이 대기한다고 그랬는데 이것은 가죽잠바부대를 말하는 것입니다마는 본 의원이 그날 보기에는 가죽잠바부대가 300명까지는 안 되는 것 같으나 좌우간 이 자백한 무술경위가 부평에 있는 경찰전문학교에서 치안국 경비과장에게 들은 바에는 ‘너희들은 무조건 끌어내기만 하면 복도에 있는 시경 약 300명이 조치를 할 것이니 좌우간 끄집어내라’ 이러한 얘기를 받었다는 것을 얘기를 했읍니다. 또 그 의사당 내에서 끌어낼 때에 야당 의원들이 반항을 할 것이니 그때에는 여러분들 무술경관의 평소의 실력을 발휘해서 적당한 방법으로 대항하고 억제를 해라 이러한 지시를 발해서 무술경위의 평소에 양성한 실력이야말로 바로 오늘 그 예정된 시간에 국회의사당 내에서 충분히 발휘하라는 것을 격려를 받었다고 합니다. 또 무술경위 너희들과 야당 의원들과의 사이에 서로 때리고 치고 하는 일이 생기며는 이쪽에서는 그 야당 의원들을 상해죄 폭행죄로 고발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신분은 보장할 테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고 적당한 방법을 취해라 이런 지시를 받었읍니다. 그리고 300명 여러분이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면 국회의 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될 것이니 여러분은 끄집어내는 것만 무조건 강행을 하면 되고 그동안에 일어나는 사태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하는 일이 정당방위라고 법률적으로 그렇게 되니까 법률적으로 보장을 받을 것이고, 따라서 조금치도 걱정치 말고 과감히 행동을 하라, 이와 같이 야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끌어내는 동시에 자유당 의원들에 대해서는 그 신변보호에 중점을 두어라, 더구나 의사당 내에는 야당 의원들이 농성을 하면서 과실을 깎아 먹기 위한 과도가 의사당에 몇 개가 있어, 그러니 이 과도를 가지고 혹은 대항할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안에 과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그 과도를 빼앗어 가지고 뺏어 들기만 할 것 같으면 그때는 적당히 조처를 해라, 그것은 과도를 뺏은 이상에는 정당방위가 되는 것이니까 뺏은 다음에는 적당히 조처를 해라, 다만 주의할 것은 야당 의원들이 분격한 나머지 자살자나 혹은 자상자가 생길는지도 모르는데 의사당 내에서 만일 그러한 사태가 생겨나면 대단히 곤란하니 그것만은 아니 되도록 이것도 주의해라 또 사진반원이 와서 광경을 찍을려고 할 터인데 그것은 거기에 대한 고려도 있지만 여러분도…… 여러분들, 무술경관 여러분도 사진반원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 사진기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혼란한 가운데에 밀치락닥치락하는 기회를 이용해 가지고 그 사진기계를 때려서 떨어뜨려서 사진기계를 부셔도 좋다 하는 지시까지 주도면밀한 지시와 훈련을 가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받은 그 300명 무술경위들은 그 훈련을 한 결과로 있어서 어떤 것을 느꼈느냐 할 것 같으면 그중에도 치안국 경비과장은 언동이 가장 악질적이었다고 그래요. 이것은 무술경위 자기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고 또 거기에 대한 무술경위들이 다 같이 훈련을 받었지만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얘기를 했읍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당시 말하는 취지, 무술경관의 평소의 실력을 발휘하라는 둥 적당한 조치를 하라는 둥 하는 의미는 결국 적당한…… 때려 주라 하는 의미로 해석이 되었다는 것을 얘기를 했읍니다. 이 훈련이 끝날 무렵에 무술경위 300명 중에서 질문을 했다고 그래요. 그러면 우리가 이때까지 경찰관으로 있어서 10여 년 혹은 수년 이렇게 근무해 왔는데 지금 사표를 내라고 그래 가지고 경찰관은 일응 그만두게 되고 무술경위로 국회의 경위로 몇일 동안 다녔다가 다시 경찰관으로 채용을 해 줄 모양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근속연한이 중단이 되어서 여러 가지로 곤란한 일이 생기지 않겠소, 더군다나 그 당시 감원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감원을 한다 할 것 같으면 채용된 뒤에 연한이 짧은 사람부터 감원된다는 것이 종래의 예인데 이렇게 되면 자기네들은 국회경위로 몇일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신규채용되는 그런 형식이 되기 때문에 결국은 경찰에 들어온 날짜가 얼마 되지 않는 관계로 이 감원에 걸릴 염려가 있는데 이것이 걱정이 아닙니까 이런 질문을 했읍니다. 했더니 거기에 대한 대답은 그것은 서울에 가서 이 정치파동의 수습에 대한 활동을 하고 돌아오면 곧 복직발령을 한다, 그런데 국회에 가서 사고가 안 나면 복직이 빨리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임명수속상에 있어서는 경찰관의 근속연한이 중단이 되지만 그러나 걱정할 것이 없다, 그것은 계속해서 근무하는 양으로 그렇게 서류를 다 해 둘 것이고, 다만 그다음에 국정감사 갔을 때에 야당 의원들이 와서 이 경위들의 채용 사직과 복직 이런 것에 대한 서류의 보장이 아마 될 것이다, 그때에는 별도로 만들어 논 서류를 야당 의원들에게 내놓면 될 것이고 그런 점까지 고려하고 있으니 여러분이 근속연한이 끊어진다고 해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 이와 같은 안심을 하라는 말을 했읍니다. 따라서 야당 의원들이 국정감사 왔을 때에 내놀 서류까지 이렇게 별도로 작성해 놓지만 근속연한은 계속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감원 문제에 있어서도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런 얘기를 해서 모두들 안심을 했다는 것이올시다. 이 사실은…… 이런 말은 경찰전문학교에 있을 때에도 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에 24사태를 야기한 뒤에 남어 있을 때에도 앞으로 복직될 것에 관해서 또 아까 말한 근속연한이 계속이냐 아니냐, 감원의 대상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데에 대해서 24사태 발생 후에 국회에서도 동일한 말을 들어서 안심을 했다는 얘기를 했읍니다. 즉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국가경찰이 이런 사태를 야기시키는 데에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공문서를 이중으로 작성을 해 가지고 비치해 두고 국정감사 올 때에는 이 이중장부 중에서 하나를 제시를 해 가지고 국정감사의 권위와 그 목적을 말살하려는 이런 것까지 조금도 꺼리낌 없이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말해 주는 것이올시다. 따라서 이것이 무슨 형법상에 저촉이 된다, 국정감사법에 저촉이 된다는 것은 물론이겠지만 그날 300명 경위로 동원된 사람은 이를 형식적으로는 국회직원같이 형식을 갖추었지만 사실에 있어서는 근속연한이 계속되는 현직 경찰관 그대로를 다만 경위복을 입혀서 가장시키고 국회의 경위의 발령장을 주어 가지고 가장을 시켜 가지고 이 의사당에 침입하도록 해 가지고 그러한 일종의 구데타를 발생시켰다 하는 것이 여기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이올시다. 한 부의장은 이것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해서 말하기를 국회법 87조2항에 의하면 의사당 안에서는 국회의 경위가 경호하도록 되어 있고 밖에서는 경찰관이 경호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임시경위로 채용한 사람들이 의사당 내에서 야당 의원을 끌어내는 것은 합법적이다 이런 설명을 했지만 방금 설명드린 바에 의해서 무술경위의 자백한 바에 의해서 거기에 들어온 경찰관이라는 것은 경찰관의 신분을 그대로 지속하고 있는 현직 경찰관이라는 것이 명백히 입증이 된 것이올시다. 이 점에 관해서 이 경찰관들에 대해서 운영위원회에서 300명의 채용서류를 내놓라고 그래서 조순 운영위원장은 사무처 직원으로 하여금 그 명단을 운영위원회에 가져오도록 했고 운영위원들이 그것을 본 다음에 그 수가 많기 때문에 그 명단과 이력서 중에서 특이한 사항과 기타를 프린트를 해서 운영위원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요청을 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오늘까지 아무런 이유 없이 제출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 만일 정정당당하게 채용을 했고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고 할 것 같으며는 운영위원장은 당연히 이것을 내놓는 데에 있어서 주저할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 또 2월 하순경에 이 대통령께서 담화를 발표한 바에 의하면 그것은 뉴욕 헤랄드, 트리븐지 기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만약 다수당이 행동을 취하지 않었던들 한국 내에서 민주주의는 사멸하였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읍니다. 이 대통령 담화대로 말한다며는 24사태 당시 의사당에 나와서 난무한 300명의 무술경위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사멸을 할 뻔 한 것을 살려 낸 최대의 공로자랄 것 같으면, 더군다나 그렇다며는 운영위원장은 무슨 까닭에 국회의 예산으로 보수를 지불하고 국회의 직원으로 썼다고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내놓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또 이와 같이 대통령의 말씀에 의하며는 그렇지 않었더라면 민주주의가 사멸하였을 것을 구출해 논 이 위대한 영웅들에 대해서 어째서 신축 의사당 설계에는 그분들에 대한 동상을 세울 그런 계획을 아니 했든가 이런 것을 질문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피복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에 관해서는 치안국 보급계장이 경찰전문학교의 제복 300벌을 가지고 왔읍니다. 그 치안국 보급계장은 정복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마치 피복상을 가장하고 이 300벌을 가지고 경찰전문학교에 왔읍니다. 와서 300벌을 논아 주면서, 이 양복상 상인처럼 말하고 논아 주면서 ‘갑자기 만드느라고 여러분에게 일일이 다 맞지 아니하는 것도 아마 있을 것이오. 대단히 미안하지만 그대로 입어 주시오’ 이렇게 아주 상인인 척한 태도로 그 맞지 않는 것도 양해해 달라는 그런 양해를 구했는데 그 300명 중에서 다소간 안 맞아도 가만히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떠한 경위들은 항의를 제출했다고 그래요. ‘여보시오, 양복장사가 양복을 만드는 데 이따위로 만들어 가지고 맞지 않는 이것을 어떻게 입으라는 말이오?’ 이렇게 항의를 제출을 했고 그 항의하는 사람은 가져온 사람이 양복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항의를 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300명 중에서도 치안국 보급계장의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그 항의를 하는 것을 보고 수근수근 웃으면서 그 웃음을 감추느라고 대단히 노력을 했다고 그래요. 지금 저 사람이 사실은 자기의 상관인데, 지금 별을 안 붙이고 왔다 뿐이지, 무궁화를 안 붙이고 왔다 뿐이지 상관인데, 치안국 보급계장인데 지금 양복상인을 가장하는 것을 모르고 항의를 하고 있다고 그래서 웃는 그러한 진풍경까지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피복은 그 당시의 신문보도에 의하면 시내에 있는 모모 국회에 관계가 있는 양복상에서 만든 것처럼 일시 신문에 관측된 기사가 나온 바도 있었읍니다마는 이 자백한 무술경관의 밝힌 바에 의하며는 그것은 치안국 피복창에서 제작을 해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300명분의 제복, 거기에 모자는 미리 지령받은 대로 경찰관으로서 쓰던 모자 그것을 바로 가져와 이것이 다 준비가 되었고 다만 거기에다가 경위의 모표 또 국회경위의 가슴에 다는 표식 이것을 해야 되겠는데 300명분을 다 누가 달아 줄 수가 없기 때문에 바늘과 실을 사 가지고 와서 배급을 해 주면서 너희들 손으로 이 모표와 국회경위의 표식과 이것을 달아라 그래서 각각 자수 로 그것을 달았다는 것이올시다. 이와 같이 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춘 다음에 밤을 자고, 12월 24일 역사적인 날입니다. 평소의 무술경위의 실력을 발휘할 이날 새벽에 경찰전문학교에서 새벽밥을 해서 먹여서, 먹이고 오전 4시에 부평 경찰전문학교를 출발을 해서 대열을 추럭의 대열을 지어 가지고 서울로, 어둠의 경인가두를 달려서 목적지인 서울로 질주를 해 왔읍니다. 덕수궁 앞의 대한문, 거기에 이 추럭의 대열이 도착하자 그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나타나서 대한문의 큰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 사람을 본즉 치안국 경비과장이었다…… 어서 들어가라 그래서 대한문 속으로 추럭들이 속속 들어갔는데 아마 사람은 다르고 신원은 다르지마는 지난번 본 의원이 ‘고종황제와 안중근 의사’라는 영화를 보았는데 거기에 의하면 이등박문이 보호를 한다는 의미로, 한다는 구실로 일본 군대가 들어가는 그런 광경을 보았읍니다마는 아마 대한문을 열고 들어가는 광경이 거기와 비슷했을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때에는 한국의 주권을 말살하기 위한 목적으로 들어갔던 것이고 이번에 있어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말살하기 위해서 들어간 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대한문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추럭 위에 있는데 12월 24일 새벽 그 추운 때였기 때문에 모두들 벌벌 떨었다고 그래요. 얼마 있다가 새벽밥을 먹고 왔지마는 시장할 것이라고 그래서 빵을 논아 주어서 그 추운 곳에서 빵을 먹고 9시 반 출동명령이 내려서 그 대한문 안에 숨어서 있다가 나왔는데 대한문 밖에 나와 본즉 그 근방 일대는 교통차단이 되어 가지고 마치 계엄령하와 같은 그러한 상태에 있는 가운데에 이 300명의 경위는 구보로 뛰어서 국회에 9시 반에 도착해…… 했으니 출발은 아마 몇 분 전에 출발을 했겠지요. 9시 반에 도착을 해 가지고 미리 각 중대에 의해서 배치되었던 부서대로 제1중대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또 제2중대는 어느 문으로 들어가고 하라는 그 예정된 임무에 따라서 이 의사당에 쇄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날 지휘계통은 형식상으로는 국회 경위과장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마는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사항으로 보아서 실질적인 지휘권자가 따로 있다 하는 것을 자기들이 관측을 했다 하는 것입니다. 또 그날 활동한 사항은 이 무술경위의 말에 의해서는 여러분, 당한 여러분이 직접 체험을 하신 일이니까 자기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한편 끄집어낼 동안에 또 그 지휘는 이러한 국회의 경위과장에 의해서 지휘되고 있는 그때에 이익흥 의원은 감격의 나머지 국회 경위과장 넘버원이다 이렇게 찬사를 보냈다는 것이올시다. 또 그 당시 국회 경위과 중에 있는 김 모라 하는 경위과 직원이 자기네들 경위, 무술경위가 보기에도 대단히 악질적으로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했읍니다. 그래서 그때에 우리 야당 의원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해 가지고 끌어 맨 것처럼 아비규환의 상태가 여기에 나타난 그대로…… 또 자유당 의원 여러분이 구경한 그대로 상태가 □□□□이올시다. 그리고 그 경위의 경호하에 예정한 대로 진행이 일사천리로 진행을 했고 거기에는 4000억에 달하는 예산도 불과 10분간에 통과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의 지방자치법, 문제의 국가보안법, 기타 27개 중요 의안이 통과된 그 공을 이 경위들이 이룬 결과가 된 것이올시다. 이와 같이 해서 야당 의원 다 끌어내고 그날 의사진행이라는 것은 진행이 되어서 저 참극을 연출한 24일의 그 행사가 끝나고 그다음 이 300명 경위들에 대해서 지시가 내리기를 야당 의원들이 또다시 와서 농성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경비를 해야 된다, 그러나 300명이 다 여기에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에 교대교대로 해 가지고 일부씩이 여기에 남어서 이 의장 내를 경비를 해라, 그래서 그때에 그 경위들은 이 의원들의 책상을 모아 가지고 임시 침대를 만들고 거기에 경찰전문학교에서 모포를 가지고 와서 한 사람 앞에 두 장씩을 논아 주어서 그 모포를 감고 자는데 그것이 대단히 심심하기 때문에 화투를 사 가지고 와서 이곳저곳에서 화투를 쳤다는 것입니다. 화투를 쳐서 딴 사람도 있고 잃은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따라서 24사태 뒤에 자유당 성명서에 말하기를 야당 의원들이 무슨 화투를 치고 방가를 하고 했다고 하는데 그 화투의 출처는 여기라고 하는 것이 나타난 것이올시다. 그래서 화투를 치고 딴 사람도 있고 잃은 사람도 있고 또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은 일부는 교대교대로 여기에서 경비를 하고 일부는 여관에…… 여관을 지정해 주어서 그 여관에 가서 자고 시골에서 올라온 무술경위들은 서울 구경을 다니고 이와 같이 해서 여관에서 12월 30일까지 투숙을 했는데 12월 30일 밤에 각 지방으로 돌아가는 동안의 그 여관비는 자기들이 지불한 것이 아니고 다른 데에서 지불이 되었는데 그것은 국회에서 지불을 했는지 치안국에서 지불을 했는지 그것까지는 구분을 잘 못하지만 다만 두 가지 기관 중에서 한 기관에서 지불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설명을 그 무술경위는 하는 것이올시다. 그다음 이 무술경위들에 대한 비용 관계…… 비용 관계에 있어서는 이 각 도 경찰국으로부터 무술경위를 모아 가지고 왔는데 올 때에 경찰서에 따라서 또는 경찰국에 따라서 약간씩의 돈을 준 곳도 있고 또 안 준 곳도 있고 올 때에는 그렇게 했다는 것이고 그다음 12월 24일 이 야당 의원들을 끌어서 감금해 논 그 활동이 끝난 뒤에 국회 경위과장이 각 중대장들을 2층 복도로 불러 가지고 거기에서 전하기를 ‘김일환 내무부장관이 여러분 대단히 수고를 많이 했다고 그러고 30만 환의 보증수표를 이와 같이 보내왔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주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논아서 써라’ 그래서 2층 복도에서 30만 환의 보증수표를 받았고 그것을 가지고 그 이튿날은 쉬는 날이 되어서 보증수표를 가서 바꿀려고 그랬지마는 바꿀 수가 없는 관계로 그 누구가 쌀가게에 가서 보증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가지고 와서 300명이 1인당 1000환씩 이 김일환 내무부장관으로부터 위로금인지 표창금인지 모르지만 좌우간 1000환의 돈을 분배를 했읍니다. 그다음 날 12월 25일은 국회 경위과장이 8개 중대장을 전부 또 불러 가지고 말하기를 여러분들 담뱃값 용돈이 없을 것이니 한 사람 앞에 5000환씩 주겠다고 그래서 5000환의 돈을 담뱃값으로 논아 주었읍니다. 그다음 이십칠팔일경이라고 기억을 한다고 그러는데 그때에는 이 무술경위 300명에 대해서 1인당 월급 1만 1192환씩 논아 주었는데, 다만 여기에 그 먼저 담뱃값이라고 해서 5000환씩을 준 것을 공제해서 나머지를 주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 받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아, 당신이 먼저 말하기를 담뱃값 용돈으로 준다고 그랬는데 우리 월급 중에서 이것을 제한다는 말이 무슨 말이오?’ 이렇게 항의를 제출했다고 그럽니다. 항의를 제출했더니 말하기를 지금은 연도 말이 되어 가지고 예산조치도 없고 또 연도 초가 되며는 어떻게 이용도 할 수 있지마는 그것은 연도 초 일찌기는 그렇게 이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 처음에는 용돈으로써 5000환씩을 주고 월급은 월급대로 줄 생각을 했지마는 부득이 이 월급에서 5000환씩을 까서 주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이렇게 경위과장이 사정을 해서 무술경위들도 불만족이었지마는 양해를 했던 것이올시다. 그다음에는 치안국장이 위로회를 개최를 해 주었읍니다. 이것은 300명 전부는 할 수가 없고 그래서 중대장들만 했는데 내무부 근방에 있는 모 장소에서 치안국장이 위로회를 개최를 했는데 다만 그 자리에는 치안국 경비계장이 와서 말하기를 ‘치안국장이 여기에 와서 직접 여러분을 위로할려고 했지만 대단히 바쁜 관계로 오지 못하고 내가 여기에 왔는데 치안국장의 그 뜻을 전한다’ 이래서 치안국장 주최의 위로회가 개최가 되었읍니다. 그다음에는 국회 경비과장이 8개 중대에서 중대장 한 사람씩 여태까지는 오라고 했는데 그날은 중대장 한 사람과 또 한 사람과 두 사람씩이 오너라, 그 오는 장소는 국회경비대의 지하실로 오너라, 그런데 오라 하는 것은 모 국회의원이 돈을 줄 것이니 오라 그래서 이 사람들이 국회경비대 지하실에 집합을 했읍니다. 집합을 했더니 거기에는 이성주 의원이 나타나서 레이숀 궤짝을 가지고 와서 거기에서 은행에서 새로 나온 1000환권, 1000환권이 주고 500환권도 좀 들어 있는 것 같더라 그래요. 그런데 그것은 흰 봉투에다가 돈을 넣은 것인데 300 봉투를 그 레이숀 궤짝에다가 넣어 가지고 국회경비대 지하실에 와서 나누어 주기 직전에 설명을 하기를 ‘자유당 정책위원회에서 여러분이 대단히 수고한 것을 고맙게 생각을 하고 있읍니다. 그 수고한 데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으나 별로 도리가 없고 그래서 내 개인이 약간의 표시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 개인에게 무슨 돈이 있겠소? 그렇지만 내 개인이 주는 것으로 알고 받으시오’ 이것은 대단히 참 기술적인 말이올시다. 그러면서 이 은행에서 바로 나온 신권 1000환권, 일부는 500환권이 있었다고 합니다마는 이것이 든 백색 봉투지 하나씩을 300명에게다가 논아 주었는데 그 각 중대에서 나온 중대장과 또 한 사람들이 가지고 가서 자기 중대에 나누어 주었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받는 사람도 있고, 즉 이것은 1인당 5만 환씩이 되는 것이올시다. 합계로 쳐서는 1500만 환에 달하는 것이올시다. 그런데 이 1500만 환을 하나 앞에 5만 환씩 나누어서 주었더니 그것 받은 사람 중에서 시골에서 온 어떤 무술경위들은 말하기를 ‘아, 이것을 가지고 가면 지금 땅이 한 평에 얼마씩이니까 얼마를 살 수가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그런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에요. 이와 같은 보수와 또 위로연과 혹은 상여금과 이런 것을 받은 다음에 아까 말한 바와 같이 12월 30일 밤에 각각 자기의 도로 돌아갔는데 돌아가서 1월 4, 5일경에 이 경찰관들은 정식으로 본래 일하던 그 자리에서 다시 직무를 하기로 되었읍니다. 그 뒤에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 무술경위 중에서 승진이 빠른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 것이고 이런 것에 대해서는 야당 의원들도 개별적인 산발적인 그러한 정보와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자유당에 계시는 의원 여러분은 물론 자세히 알고 계실 줄 믿읍니다. 이상이 아까 말씀한 300명 경위 중에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본 의원에게 와서 자백한 사람의 말의, 고백의 골자를 말한 것이올시다. 이러한 사실, 즉 이것은 자유당에서 모른다 하는 것이고 한희석 부의장은 말하기를 자유당의 간부의 자격으로는 알고 있지만 부의장의 자격으로는 모른다고 해 온 그 감추어진 사실의 진상이 이러한 것이고 이것을 기초로 해서 생각해 볼 때에 결국은 먼저 의사일정 제3항이 논의될 때에나 혹은 다른 기회에 자유당 여러분이 말하기를 자유당은 이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기 위해서 갖은 성의를 다 했지마는 민주당이…… 아니, 야당이 야당 전체가 불법농성을 하고 불법행위를 하기 때문에 부득이 24일에 이르러서 그러한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얼마나 허위냐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벌써 19일 날 오후 5시에 농성이 시작이 되었는데 그 전부터 계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까지는 잘 모르지마는 그날 밤부터 즉각 이러한 국회에 변란을 일으키기 위한 음모가 시작이 되어 가지고 20일 날 모든 계획이 서 가지고 300명의 채용을 할 것을 내무부장관에게 위촉을 하고, 위촉을 했다기보담도 같이 상의를 해 가지고 계획을 해서 그 명령이 치안국으로부터 각 도 경찰국으로부터 각 경찰서에 도달한 것이 21일 날, 이래 가지고 착착 이 계획을 진행했던 것이고 그러한 도중에 있어서 19일 날 농성에 들어가면서 농성대표 다섯 사람을 뽑아서 반도호텔 칵텔파티를 하고 있는 이기붕 의장에게 보냈을 때에도 그때에는 국회의사당의 문전을 지나가면서 안 들린 이유를 자세히는 몰랐지만 지금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본즉 이것은 예정한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계획에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기붕 의장이 들리지 아니했다는 것도 더 확실하게 알 수가 있게 되었고 또 그다음에 이기붕 의장실에서 여야가 협상을 해 가지고 이 국회본회의에서 날치기 표결을 하지 아니하겠다는 보장을 해 주면 농성을 철수하겠다고 몇 번 말했지만 그 보장을 주지 않은 그 이유도 알 수가 있고 또 이 비극의 날인 24일의 전야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의 자격으로 조병옥 박사가 정중한 서한을 이기붕 씨에게 보내 가지고 만나서 이 사태를 어떻게든지 이 비극을 막자고 할 때에 사흘 뒤에 만나자고 한 것이 무엇에 기인해서 온 것이라는 것도 이 무술경위의 자백에 의해서 더욱 뚜렷이 나타났던 것이올시다. 즉 요는 이러한 24의 변란을 시행할 그러한 계획을 세워 놓고 그다음에 야당 측에서 날치기 표결을 아니하겠다는 보장을 해 주면 농성을 취소 철수하겠다는 말을 했지만 만일 그 보장을 주며는 야당 의원들이 농성을 철수할 것이고 철수를 하며는 무장경위 300명과 가죽잠바 이삼백 명을 가지고 해치우려는 이 계획의 예정이 틀려질 것으로 걱정하는 나머지 그와 같은 협상에 응하지 않었다는 것이 명백히 이러한 무술경위의 자백에 의해서 드러난 것이올시다. 결국 아까도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 의사당 내에서는 국회 임시직원인 국회 경위가 야당 의원들을 끌어내었다고 했지만 경찰관의 현직 신분을 가지고 있고 다만 국회 임시직원으로 가장한 현직 경찰관이 했다는 것은 그 죄상은 여기에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 역사가 길이 두고 그 치욕적인 사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올시다. 이와 같이 해서 자유당 고위층에 있어서는 예정한 계획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서 이 나라의 의회정치사상 씻을 수 없는 굴욕적인 기록…… 이 나라 민주정치를 말살하는 그런 죄악이 이루어졌던 것이고 심지어 스코필트 박사 같은 분, 우리나라 기미운동의 33인에 못지않은 분이기 때문에 34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스코필트 박사가 24사태 당일의 국회 주변에 있어서의 무장경관의 경비상황과 교통차단상황을 보고 신문사에 기고를 해 가지고 말하기를 ‘내가 여행을 많이 했지만 그와 같은 광경은 공산국가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는 표현을 하리만큼 이 나라 민주주의가 죽어 간다는 것을 외국 사람의 눈에까지도 뵈게 했던 것입니다. 또 24사태가 난 뒤에 우리들은 신문지상에 게재된 어느 시를 하나 읽을 기회가 있었읍니다. 이 시는 그 당시 야당 의원들이 지하도, 기타에 감금되어 가지고 있던 그 심경 또 그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가 감금당하고 도살되는 그 심경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어서 우리의 감개를 새롭게 한 바가 있는데 그 시 중에서 몇 구절을 읽어 보면 이렇습니다. ‘어디인지 사람들이 있고 자유와 그리고 빛이 있으련만 나는 짐승과 같이 우리 속에 갇혀서 갈 바를 모르고 있다 호수가에 접한 어두운 숲 여기에서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내왕마저 끊어져 있다 무엇이 일어난들 나에게 다를 바가 있으랴 허지만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내가 살인자란 말인가 악당이란 말인가 내 고국의 아름다움을 온 세상이 감탄하도록 만들려고 애쓰던 내가 내 무덤은 피할 길 없이 다가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선의의 얼이 사악과 치욕을 발아래 굽힐 날이 오리란 것을 믿는다’ 이런 것입니다. 이것은 ‘의사 지바고’란 책을 낸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그의 시의 구절의 일부입니다. 이런 심경은 야당 의원의 심경과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지금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 물론 권세와 금력의 향락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지금 이 국민이 어떤 심경에 있느냐 하는 것을 알지를 못할 것입니다만 나는 이런 시에 나타나 있는 심경 그것이 야당 의원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데 끊지는 것이 아니라 차차차차 이런 종류의 심각한 심경이 우리 국민의 일반에게 뻗쳐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소리를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르지만 야당 의원들이 농촌에 있는 농민들 혹은 도시라 하더라도 생활에 시달리고 권력에 짓밟히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더군다나 나날이 신문지상에 보도되어 가지고 있는 생활고에 인한 자살자가 속출하는 것을 우리가 보고 있고 그 자살자 속에서는 일선 군대에 가 있다가 휴가를 해서 돌아와서 자기의 부모형제의 비참한 생활을 보고 자살을 하는 그런 기사가 있읍니다만 이러한 농민들 혹은 도시의 세궁민들의 말을 들어 보며는 이와 같이 시달리고 짓밟히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호소할 그런 길이 없을 바에는 차라리 하늘과 땅이 부딛혀서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멸실하고 말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를 우리 야당 의원들은 가끔 듣는 것이올시다. 본인은 24사태에 있어서 이러한 것이 국회에서 일어난 그러한 것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근본이 결국 같은 것에서 나와 가지고 있는 것이고 그런 데에 대한 심경이 오늘에 우리 국민의 약하고 가난하고 시달리는 사람의 마음속에 확대되어 갈 것을 가장 암담하게 뼈저리게 이렇게 느끼지 아니할 수가 없읍니다. 이러한 24사태 이것을 또 눈을 돌이켜서 생각해 볼 때에 우리는 이웃나라 일본을 지어서 말할 때 외국이라고 말합니다. 또 그것을 섬나라의 근성을 가진 대단히 속이 좁은 협량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 섬나라, 좁은 소견밖에 없는 그 일본에 있어서의 국회에서 일어난 것과를 비교를 해 볼 때에 어떠하냐? 일본에 있어서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지난번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법률안이라는 것을 가지고 일본 국회에서도 소동이 일어난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법률안이라는 것은 그 내용이 한국에서 통과된 국가보안법, 기타 지방자치법 이런 것에 비할 것 같으면 몇백분지 1도 몇천분지 1도 되지 아니하는 그런 정도의 것입니다. 즉 그 내용은 일본에서 현행 중에 있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을 해 가지고 좀 강화를 하자, 불심검문 임검연행 이런 것을 조금 강화를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벌써 우리나라의 경찰관직무집행법에는 이미 들어 가지고 있는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일본의 여당에서는 통과를 시킬려고 그러고 야당에서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그래서 분과위원회에서 논의가 될 때에 일본 국회에서는 내무행정위원회에서 심의되는 것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 야당이 그 내무행정위원회실을 점령을 하고 있는 것을 여당 의원들이 뚫고 들어갈려고 그래서 난투가 벌어졌고 그다음 일본의 그 본회의에서는 회기를 연장을 해야 이 개정안을 상정을 해서 논의할 수가 있기 때문에 회기를 연장을 할려고 그랬는데 야당 의원이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의장의 등단을 못 하게들 하고 그랬더니 의장이 스윗치를 끄고 의장석 아닌 곳에서 ‘회기를 연장합니다’ 이러한 선포를 해서 거기서 난투가 벌어진 사실이올시다. 이런 것을 하는 동안에 일본의 일반 여론은 그러한 법을 서둘러서 통과시킬려고 하는 것을 비난을 하는, 항쟁을 하는 시위행렬이 바깥에서 벌어졌고 심지어 여러 직장에서 동맹파업까지 일으켜서 반대의사를 표시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 다음에 이것이 여야 간에 논쟁이 된 끝에 결국 자유당은, 일본의 자민당은, 여당인 자민당은 그 개정안을 철회를 하는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을 했고, 회기연장만은 하기로 하되 그 개정안을 철회를 하고 또 그만한 정도의 사실에 지나지 아니했지마는 의장과 부의장 두 사람이 다 여당에서 나온 사람들인데 두 사람이 책임을 지고 사퇴를 해! 의장과 부의장 한 사람을 다시 뽑되 과거에는 두 사람을 다 여당에서 선출이 되었던 것을 여당이 그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새로 뽑는 의장은 여당에서 나오고 새로이 뽑는 부의장 한 사람은 야당에서 나오도록 해 가지고 이 사태를 수습을 했던 것이올시다. 이와 같이 일본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 있어서에 비할 것 같으면 얼마 안 되는 가벼운 그러한 사항을 가지고도 이렇고 또 그 사태의 수습방법에 있어서도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법안을 철회하고 의장 부의장이 사퇴를 하고 새로 뽑는 데 있어서도 아량을 보이는 이러한 방법으로 이 사태를 수습함으로써 일본의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한 개의 전례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것과 비교해 볼 때에 우리나라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 내용에 포함하고 있는 독소의 점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아니하고 그날 이렇게 된 그 변란, 쿠데타의 그 악성에 있어서 비유가 되지 아니하고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근 6개월을 끌어오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고 그나마 이기붕 의장의 편지에 무슨 호양과 아량과 관용을 가지고 하라는 그러한 말이 없다면 또 모르지만 말만은 그런 말을 써 가면서 무슨 아량을 보이고 무슨 호양을 한다는 것입니까? 이와 같이 해서 우리가 왜놈들하고, 섬놈들하고, 일본인의 그 섬놈들 좁은 소견…… 그것을 비웃는 한국의 넓은 마음, 그중에서도 아량이 커야 할 자유당과를 대조해 볼 때에 과연 이 나라 국회의 다수당을 점령해 가지고 있고 이 나라의 운명을 지고 걸어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 자유당 여러분이 이기붕 의장의 편지에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아량을 보이라는 그 글자만으로서 여러분의 충실하다고 보는 바를 질문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 24사태만 하더라도 그 중요성이 국내외에 주목의 초점이 되었거니와 그 뒤에 또 이어서 나오기를 헌법을 간선제로 고치자 하는 그러한, 또한 장관 지사 경찰국장을 통해서 오는 선거에 있어서 무소불위의 일을 할 그러한 만용을 가진 사람들만을 채용하고 있는 인사조치 또 야당 신문에 대한 사형선고인 폐간, 행정리 입장과 대구시장이 야당 의원으로 선거된 데 대한 지방자치법에도 없는 소위 경호권 발동이라는 못된 버리장이를 본받어 가지고 재판을 연출하는 데 주저하지 아니하는 그러한 것…… 또 국회의사당의 기공식에 있어서의 야당 출신이라면 모조리 말살해 버리는, 더군다나 헌법상 참의원이 구성이 되도록 되어 있고, 되며는 참의원 의장으로 될 부통령은 당연히 그 자리에 와 있어야 할 것이고 있을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야당 출신이면 위로는 저 부대통령으로부터 저 밑으로는 읍장에 이르기까지 말살해 버리려는 이러한 야당 말살의 근본적인 틀린 사고방식, 거기에도 자유당의 중진인 장경근 의원이나 임철호 의원은 말하기를 한국은 후진국이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 출판의 자유가 제한이 되어야 한다는 이러한…… 이건 망언…… 또 영국대사관에 임직하고 있는 박동진 참사관 같은 사람, 기타 다른 외교관에게다 지령을 해 가지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나라 서구의 민주주의와 다르다 하는 이러한 망언…… 본인은 이것에 대해서 질문을 한 바가 있읍니다마는 물론 한국의 역사니 풍토니 사회니 그런 것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있고 그것은 나라마다 각각의 특징이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와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와 다르다는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인가? 민주주의의 요소는 여당의 일당독재가 천하를 공포정치 속에 휘모는 것이 아니라 야당의 활동을 자유로이 보장하는 데 기본원칙이 있는 것이고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는 데 기본원칙이 있는 것이고 진정한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공정한 선거를 실시하는 데 기본원칙이 있는 것인데, 한국의 민주주의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다르다는 것은 한국에서는 야당을 말살해도 좋고 언론의 자유를 없애 버려야 되고 선거는 부정선거를 해야 된다는 그러한 말밖에는 되지 않는 것인데 명색이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칭하고 그래서 공산주의와 대결을 하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말살하고 한국판 민주주의가 있다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인가 이런 것을 질문한 바가 있읍니다마는, 좌우간 이러한 근본적인 사상 이것은 전부가 불가부득 관계가 있는 것이고 동일한 근거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근거라고 하는 것은 국민이야 뭣이라고 하든 말든 국민이야 시달리든 비판을 하든 싫어하든 좌우간 현재 여당이 가지고 있는 이 총과 칼을 가지고 짓밟아 가지고 영구집권 독재의 수립 이것을 향해서 줄다름질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와 같이 해서 24사태를 일으키는 그것부터 시작해 가지고 방금 열거한 이런 것을 행함에 있어서 여당에 있어서는 총과 칼과 힘을 가지고 야당과 국민을 압박해 가지고 관권이 승리했다고 좋아할는지 모르겠읍니다마는 그러나 여러분이 생각하지 아니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국민의 내향적인 반발을 가지는 것이고 그런 것이 바로, 그 무소불위의 관권이 스스로 자기의 묘혈을 파는 것이 된다 하는 것을 인식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술경위가 자백한 것을 소개를 하고 그 자백한 사실의 □□□ 몇 가지 질문을 했읍니다마는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민주주의를 말살한 하수자에 대해서 질문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는 것이니까 이 질문에 대답할 자격도 없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 제가 한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앞으로 국민과 역사가 답해 줄 것이라고 기대를 하고 저의 말씀을 끝을 짓는 것이올시다.

의사진행으로 이태용 의원이 발언통지를 내셨읍니다. 이태용 의원 말씀하세요. 이태용 의원…… 내일 하시겠어요? 네, 이 저 류순식 의원 말씀하시겠어요?

오늘은 그만하고 시간도 12시가 되었으니 내일 합시다.

그러면 내일…… 내일 하실려면 내일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태용 의원의 의사진행은 내일 하시겠읍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산회합니다. 참조 :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는 □ 또는 원문 표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