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에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의 성원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만일에 사람의 축원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할 것 같으면 저를 사랑해 주는 가족의 축원도 저희 여행 중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이요, 내 가족의 축원이 저희 여행에 어떠한 평안을 보내 주었다고 할 것 같으면 의장과 여러분의 성원도 막대한 덕을 저에게 입혀 주신 줄로 믿고 있읍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원래 형식적인 인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드릴 기회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저는 저희 심장에 있는 그대로를 말씀드릴 수밖에 없읍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본 것을 가지고 저는 무엇…… 큰 것을 보고 온 것같이 자랑하는 사람은 아니올시다. 원래 서울비행장을 출발할 때에 꽃다발을 주시는 것도, 무어 나라에 공을 이룬 사람도 아니고 정식 외교사절도 아닌데 꽃다발을 받는 것부터가 어색한 것이니까 나는 그런 꽃다발을 받지 않었고, 또 미국이나 간다고 하면 큰 하늘에 별이나 따러 가는 것같이 왼 나라의 모든 신사 숙녀들이 비행장에 나와서 소란을 치게 되면 우리가 미국에 가서 상당한 원조를 받고 협동할지언정 그 사람들에 대해서 외교적 체면도 안되었고, 그러니까 나오시지도 말라고 내가 사절한 사람이올시다마는 그러나 남의 나라를 보아 가지고 좋은 것은 좋다고 자기 본국에 와서 보고를 해야 한다 그 말씀입니다. 남의 나라가 우리보다도 앞서 있고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를 그대로 정직하게 보고를 해야 한다 그 말씀입니다. 돌연한 자존심을 가지고 자기도 잘난 체 이렇게 뭉게고 하다가는 자기는 잘난 대로 살 수 있을는지 몰라도 민족은 나중에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 말씀입니다. 때문에 제가 만일에 귀국해서 보고해야 할 자리가 있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자리보다도 더 앞서서 보고할 자리가 어디에 있겠읍니까, 제가 만일에 정직한 말을 보고드려야 한다고 할 것 같으면 이 자리보다도 더 솔직한 말씀을 드릴 자리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 점을 참작하셔서 관대하게 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말로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미국을 가서 보니 우리는 그동안 전진을 하고 있었는지 퇴보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동안에 미국 사람들은 일진월보해서 그 사람들은 지금 비약적인 모든 번영이라는 것이 저에게 주는 느낌은 무엇이냐 하면, 과거에 우리 이조 말에 나라가 망할려고 할 때에 자탄하고 자결하면서 그 말을 남겼다는 민영환 선생의 그 말 구절이 ‘이 인류의 생존경쟁에서 어떻게 살어 나갈려는가?’ 하는 그 말씀이 생각납니다. 미국을 거쳐 가지고 일본에 와서 보니 민주주의가 그 당시에 없어서 수구당의 저 암살로 쓰려진 김옥균 선생의 생각이 간절합니다. 아마 그 당시의 청국과 그 당시의 노서아 그보다도 더 강한 중공과 소련이 지금 우리를 노려보고 있을 것이고 그 당시의 일본보다도 약하지 않은 일본이 지금 우리의 뒤에 있는 줄로 여러분과 함께 저는 인식합니다. 어느 비행기회사에서 말을 들으니 미국은 뉴욕과 일본의 동경 사이를 3년 후에는 10시간으로 젯트기 비행기로 여객을 수송한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들의 사고방식이 비행기와 같이 급히 하늘로 오르고 나를 만큼 전환하지 않고는 우리 민족의 전도를 안전하게 인도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올시다. 그러나 우리뿐만 아니라 미국의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비행기의 발달에 따라서 같이 발달을 못 하고 있더군요.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어떠한 면에서 보자면 아직도 동해안부터서 서해안까지 마차로 달리는 마차 시대에 지금 머무르고 있어요. 동해안에서 제일 상쾌하던 것은 와싱톤 수도에서는 그 포란드 지사의 고수시코의 동상이 허무하게 묵묵하게 서 있었는데 또 와싱톤 케사델이라고 하는 교회당에서 고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의 백년제에 있어 가지고 그 사람의 그 묘를 갖다가 흠정하는 식에 있어서 민주당의 팔십 노인의 정객인 바루코가 그 와싱톤의 모든 신사 숙녀들 앞에 놔두고 아주 규탄의 말을 하기를 ‘우드로우 윌슨은 개화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개화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말을 할 때 상쾌합디다. 나는 이 보고 중에 그 말을 첨가할 필요가 한미의 관계와 미국의 정책에 비추어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다행히 여정이 허락해서 그 북쪽에 있는 포스마스에 가 가지고 백설이 덮인 그 천지를 내려보면서 다시 나는 우리의 전도에 우리 한민족의 희생하는 일본이나 노서아의 그런 상거래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그 중간에 앉은 미국이 그러한 것을 용인하는 조정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하늘을 향해서 백설을 향해서 그 천지에 향해서 심중에 외치며 저는 정신적 한민족의 복수를 하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보고드립니다. 뉴욕에 가 보니 뉴욕의 유엔 총회를 볼 때에는 우리가 그 자리에서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고 발언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억울합디다. 아마 속기록을 볼 것 같으면 장경근 의원이 돌아오셔서 그에 대한 보고가 있으니 여러분이 잘 아실 줄 압니다마는 유엔 가맹의 방식을 종전과 같이 그렇게 해서는 100년 가도 가맹하지 못할 것이요, 쏘련의 거부권을 다시 당하고 난 뒤에 양유찬 대사가 과연 한국의 가입문제는 총회에서 결정해 달라는 새로운 주장을 했읍니다마는 그 주장이 빨랐으면 빠를수록 이로웠을 것입니다. 그 중간에 켄사쓰에서 우리의 6․25 사변인 환난을 구제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던 트루만 씨에게 감사를 드리고, 서쪽으로 갔을 때에 그란드케논이라는 데에서 저는 엄숙한 교훈을 받았읍니다. 거기에는 몽고족의 후예인 아메리칸 인디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는데 지금 이 발전된 세상에서 문명을 자랑하고 있는 그 미국의 천지 속에서 그 몽고족의 후예들은 어떻게 살고 있느냐 하면 점점 졸아진 그 사람들이 이러한 것을 수공을 해 가지고…… 호구를 하더라 그 말씀이에요. 그 기계문명이 발전된 그 세상에서 이러한 수공을 가지고 호구를 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의 선조도 몽고족이요 우리의 선조도 몽고족이라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이야말로 엄숙한 교훈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을 저는 색이지 않을 수가 없었읍니다. 해외에 있어서 제 신문으로 들었읍니다마는 우리의 국가 예산이 아무런 계획성이 없이 정부에서 무책임하게 나오고 있다가 단 하루에 무지각하게 통과시켜 가지고…… 이렇게 나가다가는 과연 남의 나라는 일진월보하고 있는데 우리가 언제 진보해서 그 거리를 단축할 것이며 장래에 우리도 이러한 것이나 색여 가지고 팔며 호구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이 귀중한 시간에 저는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을 결코 무리한 일로 생각하지 않고 영광스러운 일로 생각합니다마는 어제 의사과장으로부터서 오늘 인사보고를 드릴 기회가 있으리라는 연락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미리 준비해서 이것을 가지고 온 것이니 의장과 선배 동지 여러분께서 관대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 이 인사와 보고는 이것으로써 끝막겠읍니다. 감사합니다.

박기운 의원 나와서 말씀하세요

3개월이라면 긴 것 같기도 하고 짧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동안에 우리들은 미 국무성의 초청으로 인해 가지고서 미국 각 지방을 골고루 돌아다니면서 시찰을 다 했읍니다. 여기에 가서 문화시설이든지 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도 많이 구경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박기운이라는 인간의 시찰 도중의 느낌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이 명승지든지 문화시설이든지 이런 데는 조금도 아무 감각이 없었읍니다. 단지 감각이 있었던 것은 무어냐! 말할 것 같으면 그 미국의 무진장한 넓은 벌판…… 옥토입니다. 현실에, 우리가 시찰 도중에도 목견하고 했읍니다마는 이 옥토는 어느 정도까지 국가에서 제한해 가지고서 묵밭을 만들어 놓고 경작 못 하게 만들어 논 곳이 있느냐 말이에요. 왜 그려냐! 그것을 전부 경작을 시킨다 그럴 것 같으면 농사에 과잉이 생겨 가지고서 농가가 경제적으로 이것을 이기지 못하는 관계로 국가에서는 여기에 제한을 두어 가지고서 제한된 그 농작에 대해서는 농가에서 들어오는 품값이라든지 다 계산하고 이익을 붙여 가지고서는 지정한 회사를 통해 가지고서는 사들여서 그 농가를 경제적으로 유지해 나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은 국토가 조고만합니다. 우리 민족은 많습니다. 저 산비탈의 잔디 하나라도 더 뽑아내고 돌자갈을 하나라도 더 추려 내 가지고서 콩 한 포기라도 더 심어서 우리 민족이 먹고살려고 발버둥 치는, 근근하고 경제적인 도탄에 빠진 우리 민족으로 볼 때에 그 넓고 넓은 옥토가 무엇보다도 박기운의 가슴에 맺히는 것입니다. 왜! 미국의 국민들은 지금부터 200년 300년 지나더라도 먹고살고 남을 그 양곡이 땅속에 파묻혀 있지만 우리의 조국은 이후에 100년 200년 후에는 인구는 늘어 가고 땅덩어리는 조고만한데 우리 민족이 무엇을 먹고살까 하는 것이 박기운의 미래와 현실을 연결시켜 볼 때에 마음속에 걱정이 아니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내 한 가지 미국에 가서 절실히 느낀 것은 무어냐? 우리가 마침 갔을 때에 대통령 부통령 또는 국회의원 지방의원 선거 때였읍니다. 이 선거를…… 투표하는 실지적인 그 시찰을…… 목격하고 보았을 때에 내 과거에 우리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보고 비판을 아니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선거 투표 날이었읍니다. 우리들이 와싱톤에는 선거를 아니 하는 관계로 한 삼사십 리 떨어진 곳에 선거 투표하는 장소에 자동차를 탈려고 갔읍니다. 길거리에는 어린아이들이 모자를 다 아이크를 지지하면 아이크의 이름을 모자에에다가 쓰고 스티븐슨을 지지하면 스티븐슨의 이름을 모자에 쓰고 혹은 완장에 혹은 등어리에다 쓰고 혹은 푸랑카트를 가지고서 쫓아다니면서 붙잡기 하면서 ‘아이크!’ ‘아이크!’ ‘스티븐슨!’ ‘스티븐슨!’ 하는 것이 그 선거운동의 환경이었더랬읍니다. 현장에 투표하는 곳에를 우리가 두서너 군데 들려 보았읍니다. 그때는 아무리 살펴보더라도 사복 입은 경관 혹은 정복 입은 경관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었읍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그 미국 사람의 안내를 받어 가지고서 ‘만일에 이런 곳에 주정뱅이라든지 정신이상 생긴 사람이 선거를 방해하는 것 같으면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 물어보았읍니다. 그런즉 그 미인이 하는 말이 ‘그때 가서는 경찰에 전화를 할 것 같으면 5분 이내에 달려와 가지고서 모든 것을 수습한다’ 이러는 거라구요. 그다음에 우리들이 ‘투표하는 데에 있어 가지고서는 개표는 어떻게 하는가’ 이것을 우리가…… 그를 시찰하려고 그랬었읍니다. 그 사람들 말에는 ‘개표는 그 투표하는 그 장소에서 참관인 선거위원 시간이 올 것 같으면 그 사람네들끼리 모여 앉아 가지고서는 참관인도 개표와 감표와 모두 합석 공동해서 거기서 개표해 가지고 숫자만 중앙에 보고하고 그 서류는 전부 거기서 증거물품으로 남겨 둔다’ 그랬읍니다. 그러며는 ‘이 출마할 수 있는 사람은 출마자는 어떠한 사람이 자격이 있느냐, 입후보자의 자격이 있느냐’ 이런 것도 우리가 물어보았었읍니다. 설명을 하는 사람들은 ‘출마의 자격에 있어서는 아무라도 다 출마를 할 수 있다. 전과자도 할 수 있다. 실의 자유 영위기 속에서 자유의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 출마할 수 있다’그러는 것입니다. 또 거기서 우리가 ‘거에 있어 가지고서는 출마하지 않는 사람에 있어서는 어떠한 그 투표든지 할 수 있는가’이런 것도 물어보았읍니다. ‘ 마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국민들이 애국자로 인정할 때에는 그 사람의 투표만 많이 나간다고 그럴 것 같으면 출마한 이외의 사람도 당선될 수가 있다’ 그런 이야기도 들었읍니다. 이번에 미국에 시찰을 갔다 와 가지고서는 그 이외에 많이 이야기가 있읍니다마는 더우기 시찰을 갔다 온 후에 내 고향에 돌아가 가지고서 미국에서 돌아온 귀국보고의 강연을 하려고 그랬었읍니다. 처음에 시장을 찾어가 가지고서 이야기를 했더니 시장이 대단히 환영을 하고 ‘날짜만 통지해 줄 것 같으면 언제든지 극장을 얻어 가지고서는 강연하도록 해 줄 것이니까 그렇게 알고 날만 통지해 주시요’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날짜를 통지한즉 그 시장은 그 자리에서 ‘우리 입장이 거북해서 못 하겠읍니다’ 하고 거절했읍니다. 할 수 없어서 내 자신이 청주의 현대극장 주인을 찾어 가지고서는 극장을 빌려 달라고 그랬었읍니다. 극장 주인이 말하기를 ‘야! 야당이면 좀 거북한데’ 그러나 내가 말하기를 ‘여보! 야당이든 여당이든 미국 갔다 온 귀국보고 강연하는 데 무슨 상관이 있소?’ ‘아! 그러면 그것 참 좋아. 그러면 돌아오는 공일 날 3월 3일 날 하시요’ 그러는 거라 말이에요. 그래서 경찰에는 수속을 다 밟고서 그 강연하려고 하는 그 직전 날 극장에 가서 극장 직원들을 만났는데 ‘내일 이것 못 빌려 드리겠읍니다’ 그러는 것이라 말이에요. 그래서 하도 이상해서 그 사람들하고 싸울 수도 없고 거절당하고, 각 학교에 또는 무슨 무심천광장 이런 데 교섭을 하더라도 다 수포로 돌아갔읍니다. 그 약속된 3월 3일 날이었읍니다. 극장에 우리가 부탁한 것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인데 12시까지 입장을 안 시키고 사용도 안 하면서 그 극장을 그대로 놓아두고서 약속했던 것을 말도 않고서 거절했던 것이라 말이에요. 현실에 우리 국민들의 분위기가 이렇게 돌고 있는 것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들이 미국 국무성의 초청을 받어서 갔을 때에 미국 국무성에서 초청한 의도는 어디에 있느냐, 한국정부에서 거액의 금액을 들여 가지고 보조의 금액을 들여 가지고서는 미국에 갔다 오너라, 과연 그 의도는 어디에 있느냐 말이에요. 여기에서 내 자신이 슬픈 감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읍니다. 현실 지방 실정을 볼 것 같으면 개표위원이 있고 투표위원이 있고 국회의원 민선의원이 있고 관선의원이 있다는데 이것이 이 분파가 없어지지 않는 한도에는 우리 민족이 앞날에 살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적에 한심 아니 할 수 없읍니다. 미국 갔다 와 가지고서는 여러 가지 민주주의를 배우고서 보고 듣고 했는 것을 볼 때에 한국은 고칠 점이 많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 앞에 간단히 보고의 말씀을 드리고서 이만 그치겠읍니다.

남송학 의원 외 열두 분으로부터 긴급동의가 들어와 있읍니다. 주문은 3월 11일부터 3월 27일까지 17일간 휴회하자는 것입니다. 송경섭 의원 제안설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