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복구에도 힘이 모자라서 여러 가지 각도로 매우 초심하고 계시는 가운데에 해외에 있는 저희들까지 종종 이렇게 와서 해외 10만 동포의 실정을 말씀드리는 것은 책임자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 끝 괴롭습니다마는 사람인지라 자기의 힘으로 해결 못 하게 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본국 정부에 의뢰할 수밖에 없다는 이런 의미하에서 국회의원 여러분들에게 거듭 거듭 호소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무슨 체계를 세운 말씀을 드리지 않고 단편적으로 최근에 발생된 문제, 일본에 있어서의 소위 남북통일준비협의회라는 문제가 있읍니다. 여기에 대한 보고, 그다음에 교육에 대한 실황, 그다음은 간단합니다마는 일본에 사는 교포들의 생활상태의 현실 이 세 가지만 들어서 말씀드리고저 하는 바입니다. 정월 30일에 일본 동경 일비곡 공회당에 있어서의 좌․우익 간의 일대 충돌이 있었고 거기에 있어서 우리 우익진영에서의 희생자가 10여 명이 났으며 좌익에 있어서는 20여 명의 희생자가 났읍니다. 그러나 이 희생자가 난 근본 원인은 여러분 다 신문지를 통해서 충분히 아실 줄 압니다마는 소위 남북통일준비위원회라는 이 준비대회를 방지하기 위한 우익의 청년들과 즉 민주진영의 청년들과 기어이 이것을 수행하고저 하는 좌익의 청년들과 충돌했었읍니다. 말은 좀 앞습니다마는 제가 작년 11월경에 본국 이 국회에서 여러분들에게 우리 동포들의 실정을 말씀드리고 11월 18일에 일본으로 돌아갔읍니다. 일본에 돌아가서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해 본즉 그때 마침 북한에 있어서의 남일의 압삐루가 있었고 최초에 그 압삐루를 받은 사람이 일본 국내에서 129명이였었어요. 그다음에 재추가가 되어서 160명이 되었읍니다. 그 160명 가운데에 특별히 일제시절부터 유명한 박춘금이라는 자에게는 세 번이나 사흘 밤이나 거듭해서 일본에 있어서 박춘금을 중심으로 해서 남북통일운동을 전개하라는 방송이 들어왔읍니다. 그래서 박춘금이라는 사람이 일본 경시청을 찾어가서 여러 가지 협의한 적도 있었고 또 동시에 일본 경시청에서는 물론 어떠한 정도의 정보를 얻기 위한 한 행동이라고 봅니다마는 일본정부로서는 피스포드를 내줄 터이니 북한 가서 남일과 혹 김일성과 회담을 하고 오는 것이 어떠냐 하는 이러한 제안까지 나왔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제가 들어가기 전에 일본 국내에 있어서 특별이 동경에 있어서는 과거의 친일파와 이 민중 소위 공산계열들과 또 좌도 아니요 우도 아닌 그날그날에 자기들의 이익만 취해서 움직이고저 하는 이러한 모리배들의 회합이 3차나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거류민단으로서 그냥 있을 수가 없어서 주일대표부에 가서 상의를 한 결과 본인이 거류민단 중앙총본부에 가서 소위 압삐루를 받은 사람이라든지 또 사회에서 어떠한 정도 지도계급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을 전부 동 총회에 뫃았읍니다. 그래서 이 남일 압삐루에 대한 경거망동을 하지 말라는 것과 또 남북통일준비위원회의 어떠한 움직임이라는 것에 대해서 제가 그 시에 본국 국회에서 보고 들은 그대로 또 우리 국회에서 결정한 그대로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취한 그대로 말씀을 드려서 이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한 대역죄이고 대한민국의 국체를 없이 하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대역죄니까 이것만은 중단해 주기를 바란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읍니다. 그러나 그가 특별히 권일이라는…… 여러분들 권일이라는 사람은 과거에 우리나라의 의정단상에서도 어떠한 보고를 드렸다고 저는 듣고 있읍니다. 그 사람 말은 ‘이것은 나의 신념이다. 하므로 어쩔 수 없으니 이대로 수행하겠노라’고 단언하고 그날 회합을 끝마쳤읍니다. 그러한 뒤에 거류민단으로서는 이 통일준비협의회라고 하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이라는 성명서를 내고 또 다음에 그네들의 회합이 있을 때마다 거류민단으로서 특별히 거기에 움직거리는 분자들에게 경고문을 내었고 그다음에는 특별히 거기에 주동되는 사람을 거류민단에서 축출하는 처치까지 했읍니다. 그러자 그냥 둘 수 없어서 정월 10일경에 본인이 일 비곡 에 있는 국제호탤에서 박춘금을 좀 불렀읍니다. 그래서 박춘금과 면담해서 여러 가지 각도로 이것은 좀 자중해 주기 바란다…… 왜 이런 말씀을 드렸느냐 하며는 이 박춘금이라고 하는 사람은 해방 이후 10년 동안에 민족반역자의 처단으로 말미암아 제1선에서 움직거리지 못했읍니다마는 이면에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도피해 오는 학생들이거나 청년들이거나 일본법령에 걸린 모든 사소한 문제는 양으로 음으로 많이 도와준 점이 있어요. 현실로도 우리 고학생들 20~30명의 어떠한 편의를 보고 있는 모양 같읍니다. 그러한 관계로 본인의 주장으로서는 당신이 과거 일본시절에는 무엇을 했던 간에 해방 이후에 있어서 동족을 위하여 부분적이나마 이렇게 조력해 주는 것이 과거의 당신의 누명을 씻는 한 사명인 것만큼 이대로 자중해 준다면 멀지 아니한 장래에 우리 조국에서는 박춘금의 존재를 알어주게 될 날이 멀지 아니할 터이니 너무나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중해 주기 바란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드니 그 박의 말씀이 좌우간 나로써는 과거에는 무슨 소리를 했던 간에 성심으로 대한민국을 위했고 대한민국의 동족을 위해서 노력을 해 왔는데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에서는 이렇다 하는 말 한마디 없고 연전에 주일대표부를 찾어가서 미력하나마 이 국가 민족을 위해서 좀 노력해 보고저 한다는 자기의 충심으로 호소하기 위해서 찾어갔더니 공사, 참사가 한 사람도 만나 주지를 아니하고 문전에서 그냥 돌이킴을 받었노라, 이렇게 사람을 멸시하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 이렇게 말을 한 다음에 주인 말이 ‘당장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북한에 있어서는 김일성이가 나를 불러 주는데 왜 대한민국 정부에 있어서는 나 같은 사람을 불러 주지 아니하는가? 지금도 늦지 않으니 선처해 주기 바란다’는 이런 말끝에서 갈렸읍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백만 동포의 권익을 위하고 모든 면에 편의를 도모하려고 한 본인으로서는 즉석에 차를 돌려서 대표부를 찾어가서 공사께 세밀한 보고를 드렸어요. 이런 실태이니 미안하지만 대통령 각하께 일본에 있어서의 동포들 가운데에 이러한 면들이 있으니까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물어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했더니 또 우리 공사의 답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 이렇게 거부를 받었었기 때문에 본인으로서 그러면 당신의 의견을 첨부해서 대통령께 보고만 드리기는 어려울망정 거류민단 단장이 이와 같은 정보를 갖고 왔다고 해서 정보 정도로서야 드릴 수 없겠느냐 이렇게 말했더니 그것도 도저히 할 수 없다 했어요. 그래서 류 참사를 찾어가서 또 말씀드리기를 당신은 경무대의 직계이니만큼 또 특별히 정보의 담당자이니만큼 이런 움직거림이 있다고 정보를 좀 전해 달라고 말씀했더니 류 참사의 대답이 ‘글쎄 나 역시 여기에 관심을 아니 가진 것은 아니로되 현실문제로 내가 이런 말을 잘못 내었다가는 본국에 돌아도 못 갈 입장이니 목이 위태롭다’는 말씀을 해요. 그리고 보니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해서 거부를 받었읍니다. 그래서 본인으로서는 이 이상 더 어떻게 추진할 능력이 없어서 그대로 방치했더니 방치라고 하는 것은 우리 민족진영에 물론 단속이야 했지요마는 그네들에게 대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움직거림을 가질 수 없게 되었읍니다. 그랬더니 1월 30일에 그와 같이 전국적인 준비대회를 열어서 좌․우익의 충돌이 나게 되었읍니다. 그 충돌에 있어서의 일본 경찰예비대가 열 추럭이 나왔고 장갑자동차가 두 체가 나왔고 사복, 정복의 경관이 150~160명이 나와서 좌우간 일견만 하더라도 600~700명이 그날 동원되었읍니다. 우리 청년은 불과 320명밖에 동원 안 되었고 저쪽에 있어서는 민전 을 이리저리 만일 우익이 어떠한 무엇이 있다면 습격하겠다고 해서 세전곡에 있는 스포츠샌따에다 민전을 예비부대로 수십 명을 대기시키게 해서 그날 그와 같은 중대한 충돌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은 잠깐 지나간 문제의 하나입니다마는 이 점에 있어서의 본인이 느낀 바는 속담에 우리 시골 말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이것은 본인 개인의 생각입니다마는 그 시에 만일 주일공사라든지 참사가 혹 박춘금 같은 사람을 불러서 너무 떠들지 말고 자중해 달라, 또 민족을 위해서 헌신해 달라 이렇게 위로의 말 한마디만 드렸드라도 이와 같은 소위 남북통일준비협의회라는 것은 아니 생겼을 것이요 또 좌․우익의 충돌도 없었으리라고 본인은 생각하는 바입니다. 이런 점에 혹 참고가 되실런지 모르지만 과거에 비행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어떠한 정도에 이용을 할 수 있으면 이용하는 것이 좋겠고 또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혹 법적으로 처단은 할망정 다소 포섭할 수 있는 아량을 가저 주시면 하는 생각을 본인은 가지고 있읍니다. 그래서 현실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현재에 와서 통일준비협의회라는 것은 지금 삼분사열되어 가지고 있읍니다. 우리 본국에서 우려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통일준비위원회가 그렇게 염려되는 문제는 아니에요. 왜냐? 이것은 그네들이 최초부터 동상이몽이였는데 통일준비위원회가 생기자 그의 구성분자를 보면 박춘금과 권일 그 외에 과거의 친일파의 두목들과 그다음에 민전 공산주의자들의 두목과 또 한 가지는 우리 대한민국 정부에 어떠한 정도의 불평을 가진 사람 또 주일대표부에 불평을 가진 사람, 우리 거류민단에 대해서 석연하지 못하다는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 이런 크럽들이 모인 만큼 그 크럽 자체가 전부 다 동상이몽…… 그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우려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또 동시에 제가 조국에 들어오기 전날 18일경에 거기 김삼규가 통일준비협의회에서 자기는 이런 일에 더 참가할 수 없다고 해서 사표를 제출하고 탈퇴했읍니다. 이 자체가 벌써 자기네들끼리에 분열을 초래했고 또 민전에 공산당들이 통일준비위원회를 이용해서 일본에 있어서 공산세력을 펼려고 했던 것이 박춘금이나 권일 그 자체들이 공산주의자에게 헤게모니를 주지 않는 개계 로 지난날 11일, 12일 양일에 민전의 중앙이사회가 있어서 그 이사회 결정으로 어디까지든지 북한에 있는 인민공화국을 토대로 한 남북통일 이렇게 선을 거어 놓았읍니다. 그러므로 벌써 거기에 있어서 통일준비위원회와 민전계열들과 벌써 결렬이 되었고 또 제가 일본에 있을 때에 대판 에 있어서 민전과 통일준비위원회 사이에 벌써 결렬이 생겼읍니다. 하므로 이 통일준비위원회에 대해서는 국내에 계시는 여러분들은 너무나 신경을 쓸 필요가 없고 저로서 말씀드리고 싶으며 또 통일준비위원회라든지 민전에 대해서 그렇게 우려할 필요도 없다고 저희들은 자신을 가지고 있읍니다마는 또 한 가지 부탁하고저 하는 것은 병력이나 육해공군, 그야말로 3군을 가지고 전쟁을 하는 것보다 공산주의를 치는 데는 민생문제의 안정이 제일 선결문제라고 저는 생각됩니다. 물론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공통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마는 지금 일본에 있어서…… 이렇게 말씀드리기는 죄송하되 우리나라 정부에서, 대한민국에서 3차나 4차 공적인 어떠한 공약을 했으나 먼저번에도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한 번도 실천에 옮긴 적이 없으므로 결국 대중들이 생각키는…… 공약뿐이지 입으로 말뿐이지 실천이 없으니 어떻게 하느냐 하는 이것 또 통솔에 대해서 생각하면 그네들의 스로간 가운데에 여기에 우리들이 일치단결해서 일본에 있는 모든 우리의 민주문제는 우리의 힘으로만 해결하자 이런 말이 있읍니다…… 스로간이 있읍니다. 하므로 과거에 박춘금이나 권일이가 일본 정부와 타협해서 어떠한 정도의 권력을 썼음으로 말미암아 지금 일본에 있는 동포들의 생활이 곤경에 빠젔음으로 혹 이네들과 손을 잡으면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보입니다. 이 점을 유의하셔서 어떠한 적절한 조치를 해 주시면 좋겠읍니다. 이 정도로 통준 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그다음에는 교육문제인데 지금 우리들이 경영하는 학교가 불과 5~6개소밖에 없읍니다. 동경에서만 하더라도 먼저번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조선인연맹학교가 14교, 소학교가 14교, 중학교가 2교, 고등학교가 1교 등 이 14교가 3월 말일로서 전부 폐쇄명령을 받았어요. 그러나 사전공작으로 공산당은 동경도에 들어가서 각종 학교의 허가를 신청했읍니다. 각종 학교의 허가를 신청했는데 사실 여러 가지 조리를 따저 볼 때에는 허가해 줄 자격이 없으되 공산당들의 추라불을 겁내는 관계로 여러 가지 관계로 해서 편법으로 허가해 주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때에 있어서 우리 민족진영에서는 좌익계열에 갔던 학생을 우리 우익학교에 얼마라도 포옹할 수 있으되 금년도에 생도 소집을 해본즉 부형들은 우리 한국인 학교에 아동을 보내기를 고려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이유를 물어본즉 한국인 학교 교직원들은 월급을 그달 그달 받지 못하므로 교직원의 생활유지가 안 되므로 이 교직원들이 어떠한 정도까지 헌신할 수 있는가? 또 거류민단이나 주일대표부가 이 학교를 어느 정도까지 육성해 볼 힘이 있는가? 장래를 내다 볼 때에 여러 가지 위험성이 있으므로 당분간 한국인이 경영하는 학교가 완전한 토대가 서게 될 때까지는 나의 자식을 일본 학교에 보내겠다 이와 같은 말을 들었읍니다. 이는 과거에 김법린 문교부장관이 계실 때에 말씀이 일본에 있는 학교일지라도 우리나라 학교와 비율을 같이 해서 교직원의 월급만큼은 우리 정부로서 보내주겠노라고 하셔 가지고 작년에 있어서는 3만 4500딸라라는 돈이 국가로서 나왔읍니다. 금년도에 와서는 그 돈 1전도 없고 최근에 외무부에 가서 알아본즉 대통령 각하께서 일본에 가는 모든 딸라 문제는 보낼 수 없다고 아주 거부하신 것 같은 결정이 난 것 같아요. 그러므로 모든 학교 경영하기에 곤란에 빠지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교육문제에 있어서는 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일본에 있는 한국인 대학생이 대체 숫자로 3400~3500명 정도인데 그 1할 정도가…… 매년 졸업생이 340~350명씩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취직장소도 없고 본국에 돌아올려야 돌아올 길도 없고 이렇게 해서 오늘날 배운 그것을 잊기 쉽고 또 동시에 생활난으로 말미암아 점점 타락해 간다는 것이 현실문제입니다. 이 청년학도들의 나갈 길은 조국에서 어떻게 타개해 주지 안나…… 이 매년 340~350명씩 나오는 학사님을 수습할 도리가 없다는 것을 보고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시 교육에 대한 난문제이오. 그다음에 생활 면에 있어서는 말씀드릴 수 없이 궁핍합니다. 왜냐? 최근 일본 신문지상의 통계를 보면 지금 우리 사람들이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히로뽕과 그리고 다소 합법성을 가졌읍니다마는 빠칭꼬라는 이 두 가지밖에는 빵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읍니다. 그런데 히로뽕문제를 본다면 일본 정부의 통계에 나왔읍니다마는 이의 제조자의 7할은 조선 사람이오 중독자의 8할은 일본 사람이다 이렇게 냈읍니다. 이 말을 뒤집어서 해석한다면 일본에 있는 조선 사람들이 일본인에게 이와 같이 8할 이상을 중대 해독을 준다는 이런 말씀입니다. 하므로써 한 사람이라도 일본에 있는 조선 사람을 많이 한국으로 돌려보냈으면 하는 의미로 거기에 따르는 정책을 착착 수립하고 있는 중입니다. 빠칭꼬라는 것은 금년 4월 전까지는 연발식이라고 해 가지고 우리 사람들의 거개가 그날그날의 빵을 해결했읍니다마는 너무나 이것은 도박성을 띤 까닭에 철저하게 취체해야 되겠다고 해서 지금은 너머나 취체가 엄하므로 그것도 단발식이 되어서 다소 혹 주머니 속에 돈푼이 든 사람도 전부 털고 지금은 그날그날의 영업을 전환하는 데에 비용을 다 써서 생활난에 빠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조국에 있어서는 해외동포에 대한 시책이 없고 보호도 없고 해외에 있는 동포 자체로서 타개책도 없고 하므로 금후에 남아 있는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작년 11월 8일 제가 대통령 각하를 뵐 때에 드린 말씀과 같은 말씀인데 우리나라 현 상태로 보든지 전 세계 태세로 보든지 우리 한국 사람을 금후에 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을 해외에 이민할 길이 도저히 없으리라고 봅니다. 백만의 해외교포 등이 자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될 때에 우리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 백만 동포가 해외에서 유지할 수 없어서 봇짐을 싸들고 조국으로 돌아오게 될 때에 거기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로서 받아들일 준비태세가 될 수 있을까, 이것이 제2 제3의 월남동포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을 이것을 우려해서 말씀드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국회의원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거듭 사뢰는 바이니 모처럼 대국적 견지에서 국가 백년의 대계를 세워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여러분들의 건투를 빌면서 보고는 이상으로써 마치고저 합니다.

다음은 의사진행에 대해서 발언요청이 있읍니다. 조영규 의원 나와서 말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