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12월 30일 여러분에게 중간보고를 올린 이후 그 이튿날 12월 31일로부터 계속해서 어저께까지에 증인 무려 20명을 조사했읍니다. 그동안에 조사하는 동안 조사하는 내용이 일부 언론기관에 보도는 되었읍니다만은 그동안 휴회 중에 있던 의원 동지 여러분은 이 사건의 귀추에 관해서 대단 궁금하실 줄 생각하고 저희 위원회로서는 어제까지의 조사 경과를 요약해서 중간보고를 올리기로 했읍니다. 우선 어제까지에 조사를 계속했고 우선 여러분의 궁금하신 심정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중간보고를 하기로는 했읍니다마는 저희 조사한 내용에 관해서 결론을 아직 낼 단계도 되지 못했고 저희 위원회로서의 심정을 여기에다가 첨가할 수도 없는 말하자면 조사의 미비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더우기 여러분에게 이와 같이 중간보고를 올린 이후 오늘 오후부터도 역시 조사를 계속하는 이런 상태에 있음으로써 여러분에게는 정리된 보고를 올리지 못하고 오직 저희 위원회에서 조사한 각 관계자 증인 등의 진술을 그대로 요약해서 여러분에게 말씀 여쭈어서 여러분의 참고에 공하고저 하는 바이올시다. 우선 12월 30일 현재로 중간보고를 올렸읍니다마는 그 이후에 관련자 조사한 내막을 올리자면 12월 30일 이전에 조사한 김상붕 최훈 이덕신의 진술내용을 중복될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또 한 번 여러분에게 말씀 여쭙고 거기에 의지해서 12월 31일 이후에 조사한 관련자의 진술내용을 말씀 여쭙기로 하겠읍니다. 이 사건은 김상붕이가 11월 17일 서울지방법원 제2회 공판정에서 자기네의 배후에 경찰이 개재해 있다는 진술을 하게 된 후 아연 문제가 되어 가지고 조사가 시작되었음으로 저희 조사위원회로서는 우선 제일착으로 김상붕이를 조사했던 것입니다. 김상붕이를 조사했던 것을 12월 28일 서울 형무소에서 조사했는데 그 조사내용은 김상붕의 진술내용은 이러합니다. 자기가 최훈이를 알게 된 것은 작년 2월경인데 동년 7월 중순경 제대된 즉후에 최훈이와 친분이 있는 자기 형 김상붕의 소개로써 취직 부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최훈은 자기가 경기화물주식회사를 인계받어 그것을 경영하게 될 것이고 그와 같이 되면 군의 취직문제는 하등 염려할 것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현재 바쁜 일이 만약 없다고 하면 자기하고 행동을 같이하게 되면 경기화물주식회사를 완전히 인수하면 과장으로 취직을 시키겠다 이러한 말을 했으므로 자기는 최훈이에게 이력서를 제출하고 그 이후에는 최훈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일체 행동을 같이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 동년 8월 하순 이후에 최훈이는 성동구 신당동에 있는 유성다방 혹은 금수장 호텔 혹은 청운장 호텔 등에서 성명을 알지 못하는 4, 5명에 인사와 매일같이 접촉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 요담을 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는 그 자리를 피하게 하기 때문에 그 요담의 내용은 몰랐지마는 자기로서는 그것이 경기화물주식회사 인수에 관한 요담인 줄로만 알고 있었으나 한 가지 의심은 자기를 그 회사의 과장을 시킨다면서 무슨 이유로 자리를 피하게 하는가에 관해서는 의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밝히지 않었고 그 당시에 최훈의 소개로 이덕신 주임을 알게 되었고 또다시 성동경찰서의 사찰계 형사 박 형사는 인사소개는 없었지만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그 전기 장소를 전전하면서 최훈이가 출입하는 곳이 내무부 혹은 서울시경찰국 혹은 성동경찰서 등이었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최훈이가 접촉하는 인물이 대부분 경찰 관계 인사였던 것을 짐작했던 것입니다. 그 후에 9월 십칠팔 일경에 최훈은 숙소를 동아 호텔로 옮기었는데 그곳에는 박 형사 한 사람만이 다니고 그 외에는 자기가 있다가 다른 사람이 오면 자기는 자리를 피하게 했기 때문에 그것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 당시부터는 최훈이가 자기에게 민주당 내에 내분이 있다는 사실을 불평 삼아 말하고 그 내분관계를 조작하는 것이 장 부통령이며 또한 장 부통령은 근일에 있어서 신문기자회견 석상에서 발표한 담화도 나쁘다, 또한 해공 선생을 돌아가시게 한 원인은 장 부통령의 조작이라는 말도 최훈이가 했던 것입니다. 그런 등에 말을 수없이 만나는 쪽쪽 한 일이 있는데 자기로서는 거기에 대해서 가타부타를 말한 일이 없고 다만 듣고만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최훈이가 찦차를 타고 나가자고 하더니 명륜동에 있는 커다란 집 근처를 한 번 돌아보고 온 일이 있는데 나중에 최훈이에게 그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곳은 장 부통령 댁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그날인지 그다음 날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최훈이가 한 말이 민족을 좀 먹고 국가를 위하여 제거해야 할 인물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기에 자기는 ‘그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의당 제거시켜야 할 것이다’ 라고 했더니 최훈은 ‘과연 그것은 영웅심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영웅적인 심리에서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없는가’ 하기에 자기는 ‘국가 민족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백번 죽는 일이 있을지라도 이를 감행할 용기가 있노라’ 라고 대답하였다. 최훈은 그 말을 듣고 ‘좋다’ 하면서 노골적으로 그 당시에 ‘장 부통령을 제거시키면 이것은 과연 국가적으로 보아서 민족적으로 보아서 커다란 영웅적 행동이니까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하기에 자기는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있다’고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그다음 9월 20일경 최훈은 자기에게 시공관 구경을 가라고 하며 시공관에 가거든 2층에서 무대까지의 거리가 얼마이고 아래층 제1석에서 무대까지의 거리가 얼마가 되는가를 알어 오라고 하기 때문에 이것을 알어 왔던 것입니다. 그 후 9월 20일경으로 기억하는데 최훈이가 권총을 하나 구하라고 하기에 전날 최훈이가 한 말도 있고 하여 그 용도를 대개 짐작은 하였지만 이것을 거절하지 못하고 구할 것을 응낙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차일피일 미루어 가던 중에 9월 27일 오후 3시경에 최훈을 을지로6가에 있는 계림다방에서 만났는데 그때에 최훈은 권총은 자기가 구하였으니 권총 염려는 말라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동일 그 장소에서 최훈이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하기에 따라갔더니 최훈이 집에서 술 한 잔 대접을 받으면서 그다음 날 시공관에 가서 장 부통령을 권총으로 저격할 것을 말하며 여기에는 경찰이 가담해 있으니까 조금도 염려 말라고 하였다. 또한 그 장소에는 사복경찰관이 배치되어 있고 또한 시공관 근방에는 약간의 군대도 동원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단거리를 택해서 권총 4발을 발사하되 조병옥 박사 만세를 불르라고 일러주었던 것이다, 김상붕 자기는 이것을 쾌락하고 최훈이와 둘이 그날 밤 굳게 맹서하는 동시에 금후는 피차간 비밀히 표시할 성명을 짓기로 하고 최훈을 한호, 김상붕 자기를 한공이라고 정한 후 작별하여 그날 밤은 한창여관에 가서 자고 그다음 날 28일 새벽에 최훈이를 찾어갔던 것이다, 그날 아침 최훈은 동아일보 기자증과 아세아민보 신분증을 주고 다음에 권총을 꺼내어 김상붕 자기 왼쪽 허벅다리에 준비했던 붕대로 감어 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준비를 한 후에 최훈과 같이 자동차에 타고 시공관에 도착하여 신문기자증을 제시하고 무난히 시공관에 들어갔던 것이다, 시공관에 들어간 후에 2층 변소에 들어가서 왼쪽 다리의 붕대를 풀어서 권총을 풀어 가지고 허리춤에 넣고서 2층 기자석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처음에는 장 부통령이 병환으로 출석하지 못한다 하기로 다방 가서 있다가 정오경이 지나서 기자석으로 돌아가니 그때는 장 부통령이 나와 계셨던 것이다, 그때 어떤 신사 같은 사람이 ‘실례합니다’ 하고서 지나가기에 보니까 쪽지가 떨어저 있었다, 그것을 주어서 보니 한공이라고 전날 저녁에 최훈이와 단둘만이 알기로 한 이름이 씨워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니 ‘자신이 없으면 다방으로 올라오라. 그렇지 않으면 아래층에 내려가서 대기하라’는 문구가 씨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간즉 성동서 이 주임과 박 형사가 복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보고 복도 뒤에는 틀림없이 사복경찰관이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아래층 우측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장 부통령이 퇴장할 시에 장 부통령을 향하여 권총 1발을 발사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은 범행을 한 후 그곳에서 군중에게 무수 구타를 당하고 체포되어 경찰병원에 입원 되었는데 처음에 치안국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내가 누군지 알겠는가’ 하기에 ‘모른다’고 하였더니 ‘내가 치안국장 김완원이다. 너는 오늘 죽는 것을 내가 너를 살려준 것이다. 그런데 탄환은 몇 발 있었나’ 하기에 ‘4발 있었다’고 하였더니 ‘왜 4발 있었는데 1발만 발사했는가’ 하기에 ‘1발에 명중되어서 장 부통령은 사망했을 것임으로써 4발 다 발사할 필요가 없어서 1발밖에 안 쏘았다’고 말하였다. ‘이놈아 장 부통령은 왼손에 부상 정도에 지나지 않고 죽지 않었다’고 말을 하였다, 그 후에 조서를 작성하는데 동시에 녹음기를 갖다 놓고 녹음까지 하는데 사전에 최훈이가 일러주던 말과 틀리는 말을 하면 녹음을 멈추고 이것을 정정시켜 가지고 녹음까지 한 일이 있다. 이와 같은 요지의 진술을 김상붕이는 하는 동시에 자기가 12월 17일 제2회 공판에서 본건 범행의 배후에는 경찰이 개재해 있다는 진술을 한 근거는 첫째 최훈이가 주로 경찰관서에 출입하는 동시에 그 접촉한 인물이 경찰 관계 인물이라는 점, 둘째 사건 즉후 경찰병원에서의 치안국장의 태도와 또한 동 병원에서의 취조하던 모양 등으로 보아 경찰이 개재하지 않었다면 그와 같지는 않었을 것이라는 점, 세째 일국의 부통령을 저격한 범인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고문을 당한 일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혀 경찰에서 우유 계란 등의 제공을 받어 후대를 받은 점, 네째 최훈이가 본건 범행 전에 경찰이 배후에 있다고 누누히 말한 점 등으로 미루어 보아 자기는 반드시 자기 배후에 경찰이 개재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2월 17일 제2회 공판정에서 그같 와이 진술했노라는 말을 했읍니다. 그다음에 12월 29일 그다음 날 저희 조사위원회에서는 최훈이를 조사했읍니다. 최훈이를 조사할 때 최훈이가 하는 말이 ‘자기는 형무소에 들어온 후에 양심적 가책을 받고 많이 반성하고 있는 이때인 만큼 모든 사실을 조사위원들에게 솔직히 말할 터이니 두뇌를 정리하기 위해서 잠시간의 시간의 여유를 다고’ 하는 요구를 했읍니다. 저희 조사위원회는 그에게 약 10분간의 여유 시간을 주었던 것입니다. 약 10분간 최훈은 쉬고 난 후에 말하기를 ‘제1회 공판이나 제2회 공판에 자기가 관련이 없다고 진술한 점은 전연 허위이다. 뿐만이 아니라 종전에 경찰이나 검찰 혹은 국회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해서 진술한 모든 진술도 또한 허위이다. 그러므로서 오늘날 여러분에게 솔직히 말하겠는데 자기는 다음 공판정에 가서는 모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려고 예정했던바 마침 국회 조사단이 왔으므로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여러분에게 솔직히 말하겠노라’ 하는 말을 전제로 하고 그리고서 진술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진술내용은 자기는 원래 과거에 있어서는 전과도 여러 번 있고 진실하지 못한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가족을 갖게 되고 한 만큼 금후에는 진실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성동구 신당동에 조고마한 집을 마련해 가지고 거기로 이사을 해서 단란한 생활을 할려고 하였던 것이다, 마침 성동구에 이사 온 후에 성동갑구 당부 옆댕이에 아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소개로서 민주당에 입당을 했는데 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그 소개뿐만 아니라 자기가 종전부터 해공 신익희 선생님을 숭배해 왔으며 또한 민주당을 위해서 노력하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가지고 입당을 했던 것이다, 그 후에 입당한 후에 자기로서는 민주당에 충성을 다했고 심지어는 신익희 선생이 작고했을 때에는 자기는 자살을 기도한 사실도 있고 또한 5․15 정․부통령 선거 당시에는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장 부통령의 선거운동을 했고 뿐만이 아니라 성동구 12투표소의 자기가 참관인으로 참석해서 그 당시 투표에 있어서 여러 가지 항의도 제출한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동갑구 당부에서 자기를 조직에 있어서 천재적인 존재라는 칭찬까지 있었다. 이와 같이 자기는 민주당을 위해서 충성을 다했고 민주당을 위해서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후에 민주당에서는 시의원 공천 문제로 성동갑구 당부의 내부적인 분쟁이 생겨서 최훈이 자기가 추천하는 사람이 공천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공천이 되었다, 여기에 감정적인 알력이 도발이 되고 뿐만 아니라 성동갑구 당부에서 어찌된 일인지 자기를 부역자다 혹은 가 의사다 하는 등의 모략적인 언동이 유포됨으로써 점점 감정적인 알력이 치열해져서 그 관계로서 할 수 없이 만부득이 민주당을 탈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에 민주당 재정부장 겸 총무부장으로 노력했던 그 당시부터 알고 있던 성동경찰서 조사계 형사주임 이덕신이가 기왕지사 민주당을 탈당할 바에는 ‘너 한 사람만으로서 탈당할 것이 아니고 좀 당원을 대거 포섭해서 대량 탈당의 공적을 올리는 것이 어떠나’ 하는 말을 하고 또한 이덕신이의 협조를 얻어서 그 당시 성동갑구 당부에서 당원 89명의 연서를 받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덕신의 말에 의하며는 기왕지사 대량 탈당하려면 89명에 그치지 않고 100명을 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거기에 유령 인원을 가담시켜 가지고 도합 103명의 연판장을 만들어서 탈당성명을 내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탈당성명을 하고 신문에 보도된 후에 이덕신이는 말하기를 이와 같이 우리가 노력해서 민주당의 내분을 조장해서 민주당에서 대량 탈당하는 이러한 큰 공적을 올렸으니 이 사실을 치안국장에게 가서 보고를 좀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합니다. 동시에 그와 같은 보고를 할 때에는 최훈이의 대거 탈당의 주동적인 역할을 한 이면에는 성동서 사찰계 형사주임 이덕신의 공적이 크다는 얘기도 치안국장에게 얘기해 달라는 부탁까지도 있어서 거기에 의지해서 최훈은 치안국장을 처음으로 찾어갔다고 합니다. 최훈이 치안국장을 찾어갔던 사실에 관해서는 제1회 심문 당시에는 그 시일이 밝혀지지 않었읍니다마는 최훈을 심문한 제2회 심문에서 그것은 마침 자기가 찾어간 날이 김선태 의원이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그날이다, 날짜는 기억 못 하나 확실히 그날이다고 해서 저희 조사위원회에서 알어보니 그것이 8월 2일이었던 것입니다. 우선 민주당 탈당 관계를 그 정도로 말씀 여쭙고 그와 같은 접촉을 이덕신과 긴밀히 하는 도중에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최근에 있어서 을지로6가에 있는 경기화물주식회사의 사장 김석규라는 사람은 부정 사실이 있어서 그 회사에서 추방을 하게 되어 있으니 네가 이런 기회에 그 회사를 인수해 가지고 그 회사의 사장 노릇을 하도록끔 운동을 한번 해보자 그러는 데 있어서는 자기도 여기에 협조를 해 주겠다는 말을 했음으로써 이덕신이 소개로서 경기화물주식회사 상무로 있는 현상극을 상봉하고 현상극을 통해서 운동을 개시했다’ 합니다. 그러는 중에 이덕신의 권고에 의해서 최훈이는 운동자금으로서 자기 매 씨한테 맡겼던 돈 10만 환과 자기 처가 여기저기에서 선한 3만 환 도합 13만 환을 경기화물주식회사 사장운동비로 사용했다 합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어디에다가 소비를 했느냐 하고 추궁을 했더니 그것은 주로 현상극과 돌아다니면서 주식을 같이 하고 그 외에 몇몇 현상극과 친한 형사들에게도 1만 환, 2만 환 정도의 금액을 주었음으로써 그것은 다 소비되었던 것이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 후에 최훈이로서는 큰돈을 썼으나 경기화물주식회사의 사장에 취임하는 것은 전연 가망이 없고 돈만 소비가 되고 하게 되자 최훈이는 일응 이것을 단념했다 합니다. 그런데 그 후에 8월 하순경…… 이것은 제1회 심문 당시에는 최훈이는 8월 하순경이라고 진술했으며 제2회 심문에 가서 그것은 8월 하순이 아니고 8월 중순경이라는 진술의 정정을 했읍니다마는 하여간 중순경으로부터 하순경까지 사이에 유성다방 등지에서 이덕신이를 자주 만나는 중에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기위 민주당 대량 탈당의 큰 공적을 올렸으니 거기에 그치지 않고 좀 더 국가적으로 큰일을 할 생각이 없느냐, 만약 국가적으로 큰일을 하는 날에는 너는 장래에 사장 자리보다도 더 좋은 직책이 나타날 것이며 자기도 역시 거기에 따라서 좋은 위치에 슬 것이다 이러한 말을 자주 했다 합니다. 그러는 중에 성동갑구 일대에서는 어찌 된 영문인지 최훈 자기에 대한 부역자 혹은 가 의사 등등의 모략적인 선동 언사가 유포되기 시작하고 하자 이덕신의 그와 같은 요청을 거부하기 곤란한 가장 난처한 입장에 섰음으로써 될 수 있으면 이덕신의 요청에 응할 생각이 났다 합니다. 그러자 역시 제1회 진술에 의지하면 9월 초순경이라고 되어 있읍니다마는 하루는 이덕신이가 지조가 있고 담력이 있는 청년을 세 사람쯤 구해 달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그것을 무엇에 쓰느냐 했더니 그것은 민주당 내분을 위해서 일을 해 보겠다고 말하면서 그 외에 하루인가 이틀 후에 노골적인 얘기로서 장 부통령을 저격 살해할 것을 말을 시작했다 합니다. 이것이 날자에 있어서 제1회 심문과 제2회 심문 당시에 날짜가 다소 착오가 납니다마는 대략 최훈의 진술 취지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최훈의…… 이덕신의 그와 같은 요청에 대해서 자기는 아까 말씀한 바와 같이 자기가 부역 행위를 했다 혹은 가 의사를 했다 하는……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압력을 느끼는 동시에 또한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만약 이 일을 감행하는 날에는 너는 경기화물주식회사의 사장 자리보담도 더 좋은 자리에 앉게 될 뿐만이 아니라 너에게는 돈뭉치가 생길 것이다, 또한 자기는 서울시경 사찰과장이 될 것이다 하는 말을 함으로써 자기는 일종 압력도 느꼈고 한편으로는 공명심도 났고 한편으로는 욕심도 났으므로서 여기에 응했다는 이런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와 같은 음모를 하기 시작한 후 최훈은 9월 20일경에 김상붕이를 매수해 가지고 본건 범행에 이르렀다는 결론에 있는데 그동안에 최훈이를 이덕신이와 같이 금수장 호텔 혹은 청운장 호텔 혹은 동아 호텔 등등으로 전전 돌아 댕기면서 본건 범행의 음모를 하는 동시에 금수장 호텔에 묵을 당시에는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우리가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자금이 필요한데 서울시경 사찰과장 오 과장한테 자금 문제를 자기가 얘기하기는 곤란하니 최훈이 네가 들어가서 오 과장을 만나 가지고 자금 얘기를 해라’ 해서 최훈이가 그 말을 듣고 오충환 사찰과장을 찾었다 합니다. 오충환 사찰과장을 찾은 것이 역시 9월 상순경인데 오충환 사찰과장을 찾어가서 이덕신이와 하는 일에 있어서 재정이 곤란하니 좀 과장님이 도와주어야겠다는 말을 했더니 과장이 하는 말이 ‘무슨 일이냐’ 하기에 ‘아, 왜 이덕신이한테 듣지 못했느냐’ 하면서 ‘사실은 장 부통령을 저격할 계획을 하고 있다’ 하는 얘기를 했더니 오충환 과장이 한참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다가 나가라고 하면서 ‘이덕신이에게 추후에 연락을 하겠다’ 그런 말을 했읍니다. 그와 같은 오 과장과의 상봉 후에 그다음 날 금수장 호텔에서 오 과장을 방문한 내력을 이덕신이에게 말했더니 이덕신이가 금수장 호텔에서 오충환 과장에게 전화를 걸고 자기가 들어가겠노라고 그러더니 사찰과로 들어간다고 하고 금수장 호텔을 떠났다 합니다. 떠난 후 약 2시간 후에 다시 금수장 호텔로 와서 그 자리에서 이덕신이가 돈 10만 환 뭉치 중에서 8만 환을 최훈이 자기에게 주고 2만 환은 이덕신이 자기가 가지고 갔다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동시에 그 후 며칠 후에 다시 이덕신이가 재정문제로써 오 과장을 또 한 번 찾어가라고 그래서 오충환 과장을 며칠 후에 다시 찾어가서 동일한 얘기를 했더니 역시 오충환 과장은 ‘나가 있으라. 그러면 이덕신이에게 연락할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돌아온 그 이튿날 최훈은 회현동에 있는 미림다방에서 이덕신이를 만났는데 이덕신이가 돈을 가지고 나왔다고 하면서 그것은 20만 환짜리 수표인데 그날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바꿀 도리가 없다, 그러니 동화백화점에 가서 바꾸어올 테니 좀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는 동안에 약 2시간 후에 이덕신이가 돈뭉치를 가지고 와서 10만 환 뭉치는 최훈 자기를 주고 10만 환 뭉치는 이덕신이가 가지고 갔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동시에 김상붕이에게는 최훈이가 20일경부터 장 부통령 저격할 것을 조종하고 그것을 음모하고 있는 도중 9월 26일 오후 9시경에 성동경찰서 앞에 있는 소방서…… 그 소방서 앞에 있는 버드나무 밑창에서 최훈이를 만나자고 해서 최훈이가 이덕신이를 만났더니 그 장소에서 이덕신이가 신문지에 싼 것을 주더라, 그것을 받어 보니 그것이 권총이었다, 자기는 그 권총을 받어 가지고 그날 저녁으로 자기 집에 돌아가서 자기 집 뒷산에 일응 묻었다가 28일 새벽에 그것을 파내다가 일응 소제를 해 가지고 아침에 김상붕이가 왔기에 김상붕이 허벅다리에 그것을 댕겨 매주면서 그 권총으로써 장 부통령을 저격하라는 것을 일러주었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우선 최훈이는 이와 같은 진술을 하는 동시에 그 배후 관계에 있어서 추궁을 하니 최훈은 배후 관계에 대한 진술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선 그 전제 사실로 ‘구체적으로 아는 바는 없읍니다마는 오충환 과장이 배후에 약간 다소간 조종해 준 것 같습니다’ 하는 말은 우선 했읍니다. 그 말을 한 후에 우선 자기가 8월 2일에 김 치안국장을 방문했던 사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당에서 대량 탈당한 연판장을 가지고 치안국장을 찾어가서 그 연판장을 제시하고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는 동시에 이덕신의 공적을 김 치안국장한테 보고한 정도에 그쳤다는 것입니다. 제2차로 2~3일 후에 다시 치안국장을 찾어갔더니 그때는 치안국장이 만나주지를 않고 ‘자기 만날 일에 관해서는 장 특정과장과 만나라’ 하면서 장 특정과장한테 전화로 연락해 놓았으니 특정과장실로 가는 것이 좋다 하는 것을 부속실장을 통해서 말을 했다 합니다. 최훈은 그 말을 듣고 그날 특정과장 장영복을 만났는데 특정과장을 만난 후 역시 그때는 민주당에 있어서의 대량 탈당한 공적을 자기가 자랑했고 또한 그 이면에는 이덕신이가 배후 공적이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제일 첫 번에 만난 것이 치안국장을 만난 것은 8월 2일 그 2~3일 후에 제2차로 치안국장을 찾어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그 지시에 의지해서 장영복 특정과장을 만난 것이 8월 2일로부터 2~3일 후 또다시 그 2~3일 후에 제2차로 찾어갔던 것입니다. 그것도 역시 날짜로 보아서 8월 상순경으로 생각합니다. 요 점에 있어서는 최훈의 진술에 있어서 다소 일자 관계로 모호한 점이 있기 때문에 우리 조사위원회로서는 다시 요 점을 최훈에게 확인할려고 합니다마는 일자 관계에 있어서 제 자신이 다소 애매하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점은 제2차에 가서 장 과장을 만났더니 장 과장이 하는 말에 ‘어떻게 하는 거냐’ 그렇게 묻기에 최훈 자기는 ‘민주당 분열 공작에 그치지 않고 장 부통령에 대한 거사가 있다’ 하는 말을 했다 그랬더니 장 과장은 하는 말이 ‘누구가 하나 거기에 대해서’ 최훈이는 ‘이 주임의 말에 의하면 잘 아시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했더니 장 과장은 ‘실수 없이 될가?’ 그런 말을 했다 합니다. 동시에 장영복 과장은 최훈이가 이런 말을 하게 되자 그 눈치가 좀 당황한 눈치로 될 수 있으면 그 자리를 모피할려고 일어서서 종이를 만지고 어디 외출할 일이 있다고 하면서 바쁜 일이 있다고 하는 태도가 될 수 있으면 그런 장면을 모피할려고 하는 태도였다 그런 눈치였다 이런 말까지도 합니다. 하여간 이 사실이 제1회 심문 당시에는 ‘이것은 제3차 방문했을 때 진술한 것이다’고 하는 말을 했는데 제3회 공판정에서, 서울지방법원 제3회 공판정에서 우리가 방청한 바에 의하면 최훈이는 장 특정과장을 찾어가서 제2차로 찾어가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길래 우리 조사위원회에서 최훈이를 제2차 심문하는 당시에 이것을 추궁했더니 역시 최훈이는 ‘제2차 두 번째로 찾어갔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렇다고 하면 1차에 있어서 이것이 착오가 나지 않느냐 이런 의문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장영복 과장을 제3차로 찾어간 것은 그날부터 1주일 후 그러나 1주일 후라고 최훈이는 일응 말했다가 다시 말하기를 1주일 후 같은데 상세한 것은 기억하지 못하겠읍니다 하는 그런 전제를 두었읍니다. 그 후에 장 과장을 다시 찾어갔더래니…… 찾어가서 장 과장에게 재정문제에 대해서 협조해 주기를 요청했더니 장 과장 하는 말이‘ 이것 내가 어떻게 하느냐? 국장님께 상의해 보겠다’고 하는 정도의 대답을 하더라. 그래서 그 후 9월 중순경에 제4차 네째 번에 다시 찾어갔더래니 자기는 바쁘고 하니 사찰과 중앙분실장 박사일 총경을 만나라고 해서 장 특정과장의 소개로서 박사일 총경을 그날 처음 만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최훈이가 말하는 치안국장을 만났다는 이야기 장 특정과장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석명이 되었읍니다. 그다음에 박 실장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지금 말한 바와 같이 장 과장을 찾어갔더래니 ‘장 특정과장이 금후에는 박 실장을 만나도록 하라’ 하면서 박 실장을 소개해 주기에 그날 오후 3시경에 박사일 총경을 찾어갔더래니 박사일 중앙분실장은 말하기를 ‘내 분주한 일이 있으니 오후 5시경에 오라’ 해서 동일 오후 5시 반경에 박사일 분실장을 찾어갔더래니 마침 외출 부재중이었다, 그래서 약 10분간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박사일 분실장이 어디서인지 와서 첫 번에는 다른 손님과 여러 가지 잡담을 하더니 조금 있다가 자기를 데리고 박 분실장실 옆에 있는 기밀실에 데리고 가서 들어가더니 ‘어떻게들 하는 것이냐?’ 하기에 ‘이덕신과 음모하고 있는 장 부통령 저격 음모 얘기를 했다’ 그랬더래니 박사일 분실장이 말하기를 이덕신은 과거 자기가 데리고 있던 동료이다, 동시에 가장 박력이 있고 용감한 사람이니 그 사람과 손을 잡고 일을 잘해라 하는 말을 했다, 그래서 박사일 실장을 만난 것은 두 차례이지만 하루에 두 차례이지만 얘기한 것은 오후 5시 반 후에 한 번 만나서 얘기한 것뿐이라는 진술이 되어 있읍니다. 그 외에 서울시경 사찰과장 오충환 총경을 만났다는 점에 관해서는 아까 최훈 진술 내용 중에서 여러분에게 말씀 여쭈었읍니다. 그와 같은 경위로써 최훈은 김상붕을 시켜서 본건 범행을 감행시킨 후 사건 발생하던 28일 날 저녁에 최훈은 회현동에 있는 회현다방에서 이덕신과 상봉한 사실이 있다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이덕신과 상봉해 가지고 또 설왕설래는 대개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어떻게들 해서 그와 같이 실패를 했느냐 하는 불쾌한 언사로써 피차간 얘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 동일 헤어질 때에 그다음 날 29일 낮에 남산…… 남산공원 근방에서 서로 상봉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이튿날 낮에 자기가 남산공원에 가서 기다렸었더니, 지정한 장소에서 기다렸었더니 이덕신이가 박 형사를 대동하고 그 장소에서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최훈! 자네는 관련 없이 할 것이고 혹시 사건이 나게 되면 해외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여비 같은 것도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얘기를 하면서 위로를 해 주더라, 그런 위로를 받고 헤어진 후 그 이튿날 30일 날 또 만나기로 해서 그날 저녁 30일 날 저녁에 오후 7시경에 무학고녀 뒷뜰에서 또다시 이덕신과 밀회한 사실이 있는데 그때에도 역시 이덕신은 박 형사를 대동하고 와서 자기에게 하는 말이 ‘오늘 저녁은 집에 들어가지 말고 어데 몸을 피해서 다른 데 가서 자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다른 데에 가서 자는 데에 있어서는 박 형사를 대동해도 좋다’ 하는 말을 하면서 또한 권하기를 인천 같은 데 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어서 오면 조지 않느냐 하는 말을 하면서 여비조로…… 여비라는 명목으로 돈 1만 환을 주기에 이것을 받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기는 이덕신의 권고를 듣지 않고 그날 저녁에 그대로 자기 집에 들어갔다가 자기 집에 잠복하고 있던 중부서 사찰계 형사들에게 체포된 것이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30일 날 저녁이라고 하나 우리 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최훈이가 체포된 것은 10월 1일 오전 2시, 새벽 2시에 체포되었던 것입니다. 체포된 그날, 10월 1일 그날 저녁에 이덕신이가 중부경찰서에 찾어와서 최훈 자기를 면회하고 하는 말이 ‘왜 전날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데 집에 들어가서 이렇게 체포되었느냐’ 하고 나무래면서 하는 말이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사찰계장이 전부 다 알어서 할 테니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1회 심문 당시에 밝혀진 얘기이고, 따라서 나아가서 제2회 심문 당시에 밝혀진 사실이 또 하나 있읍니다. 최훈이가 10월 1일 오전 2시에 중부경찰서에 체포된 후 자기로서는 배후에 있어서 이덕신 등의 경찰관이 조종을 해서 이와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또한 자기를 이와 같이 체포하는 법이 있느냐 하는 불평을 가졌었다 합니다. 그러므로서 그 당시 취조를 담당하고 있던 중부서 사찰계 계장 김호영 경감에게 ‘만약에 나를 이렇게 취조하지만 만약에 내 뒤에 또한 당신과 같은 인물들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랬더니 김호영 경감이 ‘그것이 무슨 소리냐’ 해서 대략 이덕신의 조종을 받아 가지고 본건 범죄를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를 했더라니 취조하려던 김호영 경감은 취조하던 붓을 놓고 곧 어디로 가더라 자기 생각에는 그것이 서장실로 가는 것으로 알었다…… 갔다가 한참 있다가 오더니 서장실로 자기를 데리고 가더라, 서장이 어떻게 된 내막이냐 해서 역시 이덕신이가 조종한 사실과 기타 사실을 이야기했더라니 중부서장은 국장님에게 다녀온다 하면서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다, 돌아와서 자기 보고 하는 말이 ‘만약에 네가 배후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날에는 우리나라 경찰은 망하는 날이니 너 이 사실을 폭로치 말고 네 자신이 경찰을 대표해서 전 책임을 지도록 해 달라’ 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부탁을 받은 후 10월 2일인지 3일 날 날자는 기억치 못하나 2일인가 3일인가로 기억했는데 또다시 서장실로 오라고 그래서 사찰계장이 동반해서 서장실로 올라갔더니 그 자리에는 중부서장뿐만 아니라 성동경찰서장 김용학 총경이 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또다시 ‘일절 네가 배후 관계를 언급하지 말고 일절을 네가 전 책임을 지고서 진술하라’는 말을 하면서 ‘생활비…… 네 가족의 생활비는 걱정 말어라’ 하는 말을 하였다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최훈이는 자기로서는 많은 돈도 필요 없다 자기 처 김수정이가 약품에 소양이 있는 사람이니 약종상 허가나 하나 내주고 돈 50만 환 정도나 주면 생활을 할 것이다 김상붕의 가족은 단 두 식구니깐 돈 30만 환 정도이면 생활할 것이니 그렇게 도와 달라 하는 이야기를 하고서 헤어졌다 합니다. 이와 같은 전후곡절을 최훈이는 진술하는 동시 본건 사건 후에도 자기는 자기 가족의 생활비 문제로써 중부서장 전장한 총경에게 밀서로써 연락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자기 가족을 생활비를 보조해 달라는 쪽지 편지를 써서 당시 서울형무소 계호과에 근무하는 형무관 김건유에게 이것을 부탁해 가지고 중부서장에게 전달한 사실이 있다는 진술까지를 했던 것입니다. 대략 조사 당시에 5~6시간, 7~8시간을 두고 조사한 만큼 그 조사 내용이 대단히 복잡합니다. 그러므로서 제가 지금 설명 말씀 올린 중에도 많이 누락된 점이 있을는지는 모르겠읍니다마는 대략 요약해서 제가 기억하는 바는 이 정도로 말씀 여쭙고 그다음에 12월 30일에 이덕신을 조사했읍니다. 이덕신을 조사한 결과 12월 30일 현재로는 이덕신은 최훈이와 그와 같이 접촉한 사실도 없고 최훈이에게 재정을 보조해 준 사실도 없고 최훈이에게 권총을 준 사실도 없다, 더우기 장 부통령 저격이라는 그러한 음모를 한 사실은 전연 없다는 사실을 진술을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말씀 여쭌 것은 12월 30일 현재 그 당시에 중간보고를 한 그 범위 내에서의 우리가 조사한 내용을 상세히 여쭈었읍니다. 그다음 날 12월 31일 저희 조사위원들은 우선 최훈의 진술 중에 경찰 간부가 개재했다는 사실 이것은 가장 중대한 사실이요, 신중히 검토하고 세밀히 조사할 사항이므로 또한 최훈이나 김상붕이는 어디까지나 지금 피해인의 입장이고 될 수 있으면 자기 죄를 면할려고 노력하는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될 수 있으면 자기 죄를 다른 사람에게 덮어 씨우고 또한 유력한 사람을 끌고 들어갈려고 하는 범죄자의 심리가 움직인 것이 아니냐 하여 여러 가지 조건을 상기하면서 우리 조사위원회는 세밀히 조사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우선 12월 31일 제일착으로 조사한 것이 서울시경찰국 사찰과장 오충환 총경입니다. 오충환 총경을 불러서 조사한 결과는 자기로서는 최훈이라는 사람을 전연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본 일조차 없다, 더우기 9월 중에 그 사람이 와서 장 부통령 저격 음모 사실을 자기에게 얘기한 사실은 전연 꿈에도 기억하지 못하는 얘기요. 또한 이덕신에게 돈을 주었다는 사실은 얼토당토 않는 사실이다 이덕신은 오충환 과장이 사찰과장으로 부임한 이후에 각 경찰서 사찰계 간부들이 인사를 왔으니 그 인사를 왔을 때에 혹 왔을는지는 모르지만 그 외에는 최훈이라는 사람을 만난 일도 없다는 사실을 진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는 제2회 심문 당시에…… 제2회 심문 당시에도 역시 최훈이를 아는 바가 없고 최훈이가 그와 같이 얘기를 한 일이 없고 전연 본건 음모 사실을 안 일도 없다, 자금도 준 일이 없다는 사실을 제1회 심문 당시에 말한 것과 같습니다. 다만 2회 심문과 틀리는 점은 제1회 심문에 진술하지 않었던 본건 사건 후에 이덕신이를 두 차례 만났다, 두 차례 만난 것은 이덕신이가 자기의 복직운동을 하느라고 와서 복직시켜 달라는 얘기를 하더라, 그래서 복직 관계로 두 번 찾어온 것을 만났지만 무슨 장 부통령 저격사건이라든지 혹은 민주당 내분의 공작 관계라든지 하는 이런 얘기를 들어 본 일도 없고 본인에게 돈 준 사실도 없다는 얘기를 진술하고 있읍니다. 제2착으로 장영복 특정과장을 조사했읍니다. 역시 장영복 특정과장도 최훈이라는 사람을 전연 만난 사실도 없고 얼굴도 모른다, 얼굴도 모르고 만나 본 사실도 없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상의를 할리조차가 없고 전연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더우기 자기로서는 같은 계통의 상관․하관의 관계는 있을지언정 계급의 차가 있는 만큼 이덕신이라는 사람조차 자기는 만난 일이 없다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중앙분실장 박사일 총경을 조사한즉슨 박사일 총경 말은 역시 최훈이라는 사람은 전연 만난 사실이 없고 그런 상의를 받은 사실은 물론 없다, 다만 이덕신이는 과거에 자기가 각 경찰서를 전전하면서 전근하는 동안에 어데서인가 한 경찰서에서 몇 달 동안 근무한 사실이 있고 그래서 알기는 안다, 그러나 최근에 있어서는 그 사람을 만난 사실조차 없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그다음에 치안국장 김종원을 조사한 결과 역시 치안국장도 최훈이가 만나러 왔다고 그랬는데 자기 방에는 매일같이 100여 명의 인사가 출입하는 만큼 특별한 기억이 없는 한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 탈당 관계라 해서 연판장을 가지고 와서 자기에게 제시하고 설명한 정도면 자기를 기억할 수 있을 텐데 자기는 전연 기억이 없다, 더우기 그다음에 찾어왔을 때에 장영복 특정과장을 만나라고 한 사실은 전연 없다 이런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동시에 김상붕의 진술 중에 경찰병원에서의 김종원 치안국장과의 문답 내용에 관해서 조사를 했읍니다. 그 점에 관해서 김상붕이는 마치 김종원 치안국장이 말하는 이야기에 ‘왜 한 방만 쏘았느냐’ 하는 말을 왜 다 쏘아서 살해하지 못하고 한 방만 쏘았느냐 하는 불평 비슷한 말로 들은 것으로 김상붕이는 말하고 있읍니다마는 김종원 치안국장은 그것은 아니다, 어째 그와 같은 말을 하랴 하고 그 진술 내용을…… 순서 있는 내용을 말하고 있읍니다. 그 점에 관해서는 논리적으로 보아서도 우리 조사위원회에서도 조사할 때에 김상붕에 대해서 ‘왜 한 방만 쏘았느냐’ 하는 질문도 한 일이 있읍니다. 이것은 왜 한 방만 쏘았느냐 하는 질문은 가령 저 자신이 질문했다 해서 저 자신이 거기에 대한 불평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너무나 논리적인 계획이 아닌가! 해서 고려가 되는 점입니다. 그 외에 경찰병원에 있어서의 심문 당시에 녹음기를 썼다는 진술을 김상붕이가 하며 녹음기로 취조를 할 당시에 최훈이가 일러주던 말과 다른 말을 할 때에 녹음을 멈추고 그를 시정시켜 가면서 진술시키더라는 김상붕의 진술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또한 김종원 치안국장에게 조사했읍니다. 김종원 치안국장은 그런 사실은 전연 없다는 말을 하고 있읍니다. 동시에 그 당시에 그 현장에 있던 중부경찰서 서장 또 중부경찰서 사찰계장도 녹음한 사실은 없다고 합니다. 또한 그 당시에 그 현장에 입회했던 강서룡 검사도 녹음은 한 것 같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나서 그다음에 1월 4일, 1월 4일에 우리 조사위원회에서는 형무소에 가서 이덕신이를 조사했읍니다. 이덕신이를 조사하기 전에 형무소에 자기 남편 최훈이를 면회 왔던 김수정이가 우리 조사위원회에 면회를 요청해 왔음으로써 그 기회를 타서 우리 조사위원회에서는 김수정이를 조사했던 것입니다. 김수정이를 조사한 결과 김수정이는 본건 사건이 발생한 9월 28일 이전에는 전연 아는 바가 없다, 다만 날자를 확실히 기억치는 못하나 어떤 날인가 그가 자기 남편이 걸래를 가져오라고 해서 갖다 주었더니 문을 잠그고서 방 안에서 무어 달가닥거리는 소리가 나더라, 그래서 문구멍으로 들여다보니 자기 남편 최훈이가 권총을 걸래로 소제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는 정도 이외에는 9월 28일 이전에 일에 관해서는 전연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하고 있읍니다. 다만 10월 1일, 자기 남편 최훈이가 경찰에 체포되어 가던 10월 1일에 중부경찰서로 자기 남편을 면회를 갔더래니 최훈이가 하는 말이 ‘이 주임을 만나라’고 말을 했으나 자기는 ‘이 주임이 누구인지 면식조차 없으므로서 찾어가지를 않었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10월 2일에 이덕신이가 찾어와서 하는 말이 ‘최훈이 일도 염려할 것 없을 뿐만이 아니라 가족에 생활문제도 조금도 염려 말라’는 소리를 하면서 ‘이 사건에 있어서 자기마저 끌려 들어가는 날이면 최훈 본인이나 혹은 최훈의 가족은 대단히 곤경에 빠질 것이다. 그러니 자기만은 감추어 달라’ 하는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 날 오후 경에 중앙시장 앞 노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는데 그 약속한 날 오후 2시경에 중앙시장 앞 도로에 나갔더니 거기에 이덕신이가 와서 있다가 만났는데 그 현장에서 이덕신으로부터 돈 5000환을 받었다, 그 당시에 5000환을 받으면서 최훈의 처 김수정은 이덕신에게 하는 말이 ‘이럭저럭 집도 정해야겠고 생활비를 쓰려면 약 50만 환이 필요한데 그것을 좀 구변할 수가 없느냐?’ 말을 했더니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최소한도 여러 가지 청산하자면 100만 환은 있어야 할 텐데 그까짓 50만 환이 문제냐’ 하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약 3~4일 만큼씩 약속에 의하여 만났지마는 그동안에는 생활비의 보조는 별로 받지 못했고 10월 14일 중앙시장 앞 노변에서 또한 마나 가지고서 이덕신으로부터 돈 8만 환을 받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다음에 11월 10일 날 역시 중앙시장 앞 노변에서 만나서 돈 9만 환을 받았고 그 후에 십오육 차에 긍해서 이덕신으로부터 생활비 보조를 받은 것은 24만 7400환, 도합 합계 24만 7400환이라 합니다. 그 24만 7400환 중에는 자기가 10여 차에 긍해서 이덕신의 집에 찾아가서 생활비 문제를 걱정하고 생활비 보조를 요구할 때에 심지어 이덕신은 자기 처의 치맛감을 팔아 가면서 1000환, 2000환 혹은 사오천 환 정도의 돈을 주어서 그것이 십오육 차에 긍해서 그와 같은 돈이 되었다 하는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십오육 차 이덕신을 방문해서 이덕신이와 담화를 교환하는 도중에는 때에 따라서는 이덕신은 시경 사찰과장 오충환 과장을 욕하면서 ‘그 새끼 돈을 안 준다. 복직도 시켜 준다면서 안 해준다’는 불평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자기가 들었고 또한 이덕신이가 중부서 사찰계장을 만나더라니 중부서 사찰계장 말이 ‘최훈이는 중부서에서 최초에 이덕신이와 같이 이 본건 범행을 했다고 말을 한 사실이 있는데 이것으로 볼 때에 최훈이라는 인간은 믿을 수 없다’ 하는 이야기를 중부서 사찰계장이 말하더라 하면서 이덕신이가 그 말을 하면서 김수정이 자기에게 불평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후에 10월 초순경에 자기 남편 최훈으로부터 형무소 안에서 형무관을 통해서 밀서가 왔는데 그 밀서 편지 중에 중부서 사찰계장을 가서 찾아보고서 생활비 문제를 좀 이야기해 보라는 편지가 오는 동시에 또한 중부서 사찰계장 상대의 쪽지가 왔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12월 초순경 오전 8시경에 중부서에 가서 9시경에 계장을 만났는데 만나서 상붕이의 처가 현재 만삭이 되어서 해산을 해야 될 터인데 해산할 만한 준비도 없고 생활비도 없어 곤란하니 돈을 보태 달라고 말을 했더니 ‘내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해 달라느냐’ 하면서 화를 내기에 최훈이로부터 나온 그 밀봉한 쪽지를 사찰계장한테 전했더니 사찰계장은 그것을 받어 보고서 즉시 서장실로 갔다가 잠시 후에 나오더니 서장에게 말을 하는 동시에 그 쪽지를 서장에게 전했더니 서장이 서울특별시 사찰과장 오 과장한테 갔다고 지금 사찰과장 오 과장한테 갔으니 기다리라고 그래서 약 2시간 동안 그곳에서 기다렸더라니 잠시 후에 초인종이 눌리고 그것이 서장이 부르는 소리로 자기는 생각합니다마는, 초인종에 의지해서 어디인가 나갔다가 오더니 서장이 나갔다가 왔으나 돈을 구변 못 했다 하면서 여기저기 다른 계에 주선까지 하더니 돈 1만 환을 구해서 주기에 자기는 그것을 가지고 나왔노라 또한 12월 초순에 역시 최훈이의 밀서에 의지해서 자기는 최훈이가 밀서에 기재한 대로 중부서장을 만나러 갔었다. 중부서장을 만나서 생활비 관계를 호소한즉슨 중부서장 하는 말이 ‘아주머니는 동정을 해 죽겠는데 얼마나 들겠느냐’ 하는 말을 묻기에 ‘방을 얻재도 10만 환 정도는 있어야 하며 변호사에게 착수금을 주재도 10만 환 정도는 있어야 하고 그 외에 사식대를 합하면 적어도 이삼십만 환은 필요하다’는 말을 했더라니 그다음 날 오후 2시경 다시 한 번 와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약속에 의지해서 그다음 날 오후 2시에 그 서에 갔더라니 서장은 없고 잠시 후에 외부에서 사찰계장한테 전화가 왔는데 그 전화는 서장으로부터 온 것으로 자기는 생각한다, 그런 전화를 받고 사찰계장 하는 말이 돈이 아직 안 됐으니 그리 알라고 하면서 그다음 날 오후 4시에 다시 오라고 하는 것을 자기는 가지 않었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제1회 공판 후 제2회 공판 전…… 제1회 공판과 제2회 공판 그 중간으로 생각합니다마는 또한 김수정이는 이와 같은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이덕신이를 찾어간즉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치안국장은 사재가 많은 사람이니까 편지를 한번 치안국장한테 해 봐야겠다고 그러면서 치안국장한테 대한 편지를 써 놓은 것을 자기에게 보여 주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그 당시에 몇 번 이덕신이가 자기가 치안국장을 만날려고 했으나 치안국장이 만나주지를 않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말하기를 자기는 국가 민족을 위해서 충성을 다 했는데 불구하고 오 과장이 도와주지 않으니 그렇다면 치안국장이 돈을 좀 달라 하는 취지의 편지를 써 놓은 것을 봤다, 그러나 그 편지를 이덕신이가 써 놓은 것만 봤지 그것을 부쳤는지 안 부쳤는지는 자기는 모른다고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이와 같이 이덕신이와 접촉하는 중에 이덕신 언동 중에는 어느 날 이덕신이가 하는 말이 오 과장이 돈을 주며 이 사건을 거사케 해 놓고 지금 와서는 모르는 체하니 오 과장은 돈을…… 지금 와서는 오 과장은 돈을 준 것은 이 일을 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고 이렇게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오충환 과장을 지극히 욕을 하는 것을 들었노라고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예정에 의지해서 우리 조사위원회에서는 이덕신이를 조사를 했읍니다. 이덕신이는 우리 조사단에게 진술하기 전에 자기로서는 제1회 심문 당시에 전적으로 부인을 했지만 이 점에 관해서 모든 것을 이실직고하겠노라 하는 전제를 두고서 진술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진술한 내용 중에 최훈이와 서로 긴밀한 접촉을 하고 유성다방, 정원다방 혹은 금수장 호텔 혹은 청운장 호텔 등지로 돌아다녔다는 사실 이런…… 이것을 인정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최훈이와 그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상의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사실에 있어서는 성동갑구 당부에서는 민주당 대량 탈당의 공적을 자기가 올렸다, 그러나 자기로서는 가진바 신념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 상태로서는 정당 무용론을 자기는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서 자기로서는 야당인 민주당을 완전히 분열공작 하도록끔 노력을 할 것을 자기는 굳게 결심하고 그것을 최훈이와 모의했던 것이다. 그 모의한 내용은 9월 28일 시공관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민주당의 대의원 약 30명을 최훈이로 하여금 포섭케 해서 그 30명으로 하여금 그 전당대회에서 여러 가지 문란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전당대회는 유회로 그칠 것이다, 만약 유회로 그치는 날이면 전국적으로 민주당은 완전히 분열이 되었다는 것이 선전이 될 것이요, 이것이 선전이 되는 날 점차적으로 내부적인 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동안에 최훈이와 비밀히 약속한 것은 민주당 분열공작을 하기 위해서 대의원 30명을 포섭하고 30명을 포섭하기 위해서 자금이 필요하다면 이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 면에서 자기는 무려 10여 차에 긍해서 20여만 환이라는 돈을 최훈에게 제공한 사실은 있다, 그러나 그 제공한 것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전당대회를…… 전기한 민주당의 대의원 약 30명을 포섭하는 자금으로서 방출한 것이지 장 부통령 저격 음모하는 자금은 절대 아니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그에 있어서 최훈이는 금수장 호텔에서 8만 환, 미림다방에서 10만 환을 받았다는 말을 하고 있지마는 이덕신이는 주었다는 금액도 25만 환이고 또한 서로 만나서 주고받은 장소가 전부 다른 장소입니다. 요 점이 역시 최훈이의 진술과 이덕신이 진술이 맞지 않는 점이고 또 한 가지는 12월 26일 오후 9경에 성동경찰서 앞 소방서, 그 소방서 앞 버드나무 밑창에서 최훈이가 만났다는 사실은 이덕신이도 인정하고 있읍니다. 또한 신문지에 싼 것을 주었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덕신이는 그 신문지에 싼 것은 종전부터 민주당 대의원 포섭자금으로서 최훈이가 막대한 돈을 요청해 왔었는데 그날도 여기저기서 구해서 돈 5만 환을 신문지에 싸서 갖다 준 것이다, 그것이 돈이지 그것은 권총은 아니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본건 사건 28일까지의 사건 내용에 있어서는 부인하는 점이 있읍니다마는 사건 후에 최훈의 가족 김수정에게 생활비를 보조해 주었다 하는 사실은 이덕신이도 인정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본건 사건 후에 이덕신이가 최훈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대어 준 이유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을 우리 조사위원회에서 추궁했읍니다. 그 점에 관해서 이덕신이는 ‘자기는 장 부통령 저격사건에는 전연 관련한 바 없지마는 민주당 분열공작을 위해서 그 음모를 하느라고 자주 최훈이와 접촉을 했고 자기로서는 민주당 분열공작비로서 20여만 환의 돈을 주었으나 사실에 있어서 최훈이가 이와 같은 어마어마한 장 부통령 저격 음모를 해 놓았으니 만약 최훈이에게 자금을 제공했다는 사실, 최훈이와 밀접한 접촉을 했다는 사실이 들어난다면 사실이 그것이 아니지마는 일응 자기는 장 부통령 저격사건 음모자의 한 사람으로 지목을 받을 염려가 있음으로써 그것을 모면히기 위해서 최훈의 환심을 사고 김수정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 생활비를 자기 어려운 살림을 털어서 보조해 준 것이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다음 날 1월 5일 날은 중부경찰서 사찰계장 김호영 경감을 조사했읍니다. 지금 각 관련자의 진술 내용을 상세히 말씀드린 만큼 그 내용 중에서 김호영 경감의 관련된 사실을 조사했읍니다. 우선 김상붕이가 경찰병원에서 취조당했을 때에 녹음을 한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진술로 되어 있고 또한 10월 1일경에, 말하자면 최훈이를 체포해 온 그 날 최훈의 처 김수정이를 면회시켜 준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역시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진술로 되어 있읍니다. 그 외에 최훈의 진술에 의지해서 10월 1일 최초 취조 당시에 최훈의 입으로부터 그 배후에 경찰관이 개재해 있다는 사실을 진술했다 하는데 사찰계장은 취조 당시에 그런 사실을 들은 일이 있느냐 없느냐 또한 그 말을 듣고 서장에게 연락을 하고 그다음에 지난 10월 2일, 3일경에 중부경찰서장과 성동경찰서장과 합석해서 또한 최훈이와 상의하기를 일체를 최훈이 자신이 책임지고 경찰에 책임을 미루지 말아 달라는 그런 언약을 한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를 조사했읍니다. 역시 김호영 경감은 그와 같은 사실이 없다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또한 12월 초순경에 최훈의 처 김수정이가 최훈의 비밀 쪽지를 가지고 가서 생활비의 보조를 요청하고 거기에 의지해서 서장에게 전달한 사실 또한 서장이 여러 군데로 주선했으나 돈이 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사찰계장이 주선해서 돈 1만 환을 준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김호영 경감은 전연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진술입니다. 그다음에 중부경찰서장 전장한 총경을 조사했읍니다. 전장한 총경에 대해서도 지금 김호영 사찰계장을 조사한 바와 같은 똑같은 심문사항으로써 이것을 조사했읍니다만 전장한 총경 역시 김수정이가 진술하는 바와 최훈이가 진술하는 바는 전연 낭설이며 전연 얘기도 안 된다 그런 사실이 전연 없다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1월 9일 날 우리는 최훈의 밀서를 중부서장에게 전달했다는 김건유라는 증인을 조사했읍니다. 김건유라는 사람은 본건으로 최훈과 그 가족 기타 외부와의 연락을 취해 주었다는 혐의로 증거 인멸의 혐의로 구속당해서 취조당하다가 12월 31일 경미한 죄라고 해서 일응 석방을 당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서울형무소의 계호과에 근무하던 전직 형무관입니다. 이 사람을 조사한 결과 자기가 최훈의 밀서를 전달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최초에 최훈이가 자기 집에 무슨 연락을 해 달라는 것을 일응 거절을 했었다, 그랬더니 그다음 날 다시 최훈이가 하는 말이 성동경찰서 사찰계 형사 박 형사에게 뭐 좀 연락을 해 달라고 그러기에 김건유 간수는 생각하기에 보통사람 같으면 이것이 발각되는 날 저는 거기에 대한 벌을 받겠지만 경찰관한테 전달하는 것쯤은 나중에 발각될 염려도 없고 괜찮지 않을까 해서 박 형사한테 전하는 비밀 쪽지를 전달한 것이 자기가 최훈의 외부와의 연락 전달한 시초라고 합니다. 그 후에 박 형사한테 비밀 쪽지를 전달하고 박 형사의 안내로써 최훈의 집을 알게 되고 알게 된 후에 2, 3차 최훈의 처 김수정과의 연락을 취해 주었는데 하루는 자기가 최훈이와 담화하는 중에 자기가 생활이 대단히 곤란하다는 얘기를 하고 또한 자기의 아우가 제대군인인데 최근에 있어서는 취직을 못 해서 대단히 곤란하니 큰 걱정이라는 얘기를…… 신세타령 비슷하게 했더니 최훈이가 하는 말이 그러면 자기가 중부경찰서장을, 아니 중부경찰서장한테 쪽지를 써 줄 테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중부경찰서장을 만나면 네 아우 취직문제는 해결이 될 것이다, 동시에 너도 생활이 곤란하니 중부경찰서장한테 너한테 5000환을 주라고 써 줄 테니 돈을 주거든 받아라 하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날자로는 12월 17일 제2회 공판 당일입니다. 그날이 마침 김건유 형무관은 비번 날이기 때문에 아침 9시경에 최훈 밀서를 가지고 중부경찰서장을 방문해서 중부서의 서장실에서 만나서 그 쪽지를 전달했다 합니다. 그 편지를 전달한 즉은 중부서장 하는 말이 ‘나이는 몇 살이며 제대될 당시의 계급은 무엇이냐? 또한 어데를 희망하느냐?’ 하는 말을 묻기에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하고 ‘희망은 경찰관이라도 하나 취직시켜 달라’ 부탁을 했다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중부서장 하는 말이 ‘현재 경찰관은 모집하지 않고 있으니 당분간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최훈은 당 중부서에서 취조를 담당했으며 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러니 네 아우의 취직문제는 금후에 고려해 주마’ 하는 대답을 하는 동시에 자기 주머니에서 돈 2600환을 꺼내서 증인 김건유에게 주더라 주면서 이것으로써 점심이나 사 먹으라고 해서 가지고 왔노라 나올 때에 서장실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니까 저리로 나가라고 해서 그 뒷문으로 나온즉슨 서장실 뒷문이었고 그 뒷문으로 나온즉슨 경찰서 뒷뜰로 나오는 길이었다 하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1월 9일 날 다시 중부경찰서장 전장한 총경을 불러서 물어봤읍니다만 전연 그와 같은 사실은 없다고 진술하고 있읍니다. 또할 김호영 사찰계장을 조사해 본 결과 김호영 사찰계장은 여기에 대해서 전연 기억도 없고 본건에 관해서 아는 바 없다고 진술하고 있읍니다. 또한 성동서 서장 김용학 총경을 불러서 중부서장실에서 중부서장과 중부서 사찰계장과 성동서장이 동석한 석상에서 그 당시 피의자 최훈을 상대로 일체의 책임을 최훈이 져 달라는 요청을 한 사실이 있는가 없는가를 김용학 총경에게 질문을 했읍니다만 김용학 총경은 중부서에 간 일이 없다는 진술을 하고 있읍니다. 대략 본 조사위원회에서 조사한 경위는 이와 같은 정도이고 여러분에게 이 조사에 관해서 좀 정리된 정돈된 보고를 올리지 못하는 것을 사과 올리는 바입니다. 다만 이것이 어제 저녁까지도 우리가 계속 조사를 했던 만큼 우리가 조사한 것을 정리해서 우리가 여기에 판단을 가하고 우리의 심증을 가해서 어떤 결론을 내서 올리지 못하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만 더우기 우리 조사위원회에서는 이 문제에 있어서 여야를 초월해서 진상을 규명하고 이 진상을 전 국민에게 그대로 알리겠다는 성의하에서 전원 일치단결해서 조사에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어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또한 지금 여러 가지로 우리 조사위원회에서 애로를 느끼는 것은 일개 김상붕의 진술을…… 일개 최훈의 진술을 전적으로 믿느냐, 혹은 믿을 수 없느냐, 또한 경찰이 개재했다는데 경찰 간부의 증언을 전적으로 믿을 것이냐 믿을 수 없느냐 하는 점을 저희 조사위원회에서는 여러모로 방침을 세워 가지고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중이올시다. 이 점을 양해해 주시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두서없는 말로써 간단히 이것으로 중간보고로 삼겠읍니다.

의사진행에 대한 발언통지가 나왔읍니다. 곽상훈 의원 나와서 말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