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날 곽상훈 의원 최국현 의원 윤재근 의원 그리고 저하고 네 사람이 인천과 소사 강화 등지, 즉 인천지구의 도서와 피난민 기타 상황을 시찰하고 돌아왔읍니다. 거기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인천을 탈환한 것은 지나간 11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701함의 승조원 33인이 인천을 탈환했읍니다. 그런데 10일 날 만조를 기해서 오후 7시에 함포의 엄호사격과 항공기대의 엄호를 받어 가지고 701함이 조선기계제작 옆에 함정을 대고 33인이 용감하게도 인천에 상륙했든 것입니다. 당시의 적으로 말하면 약 8000명인데 중공군이 그중에 1중대였읍니다. 괴뢰군 중공군 합해서 약 8000명이 인천에 있었읍니다. 이것을 33인이 분산해 가지고 그 이튿날 11일 오후 5시까지 격퇴시키고 11일 오후 5시에 인천시청에 태극기를 높이 날렸읍니다. 그리고 전차를 노획 해서 이것을 수리해서 사용하고 또 적의 사살이 22명 그중에 2명이 중공군이었읍니다. 그 외에 다수의 노획품도 얻고 인천을 완전히 수복했읍니다. 이것은 우리가 제가 떠날 때까지 이 사실을 듣지 못했고 이번에 인천에 상륙해서 701함에서 직접 보고를 듣고 또 해병대장 기타한테서 이러한 사실을 발견했든 것입니다. 인천의 상황으로 말씀하면 피난민으로 인천의 시민의 대부분은 4일 날, 1월 4일, 5일까지 대부분이 다 후퇴했읍니다. 그랬는데 그리고 소사 등지에서…… 제 고향입니다마는 전부 피난민으로서 4일, 5일까지 평택 근방으로다가 피난을 했읍니다. 그런데 그간 인천의 피해 상황을 볼 것 같으면 인천경찰서 수상경찰서 또는 인천시청 또 해군 경비부사령부 이런 등등의 저의가 본 그 건물로 말씀할 것 같으면 별로 파괴되지 않었고 그 이외에 함포사격이라든지 항공기의 폭격으로 해서 상당히 파괴는 되었으나 여기서 예측하였든 바와 같이 격심하지는 않었읍니다. 다만 각 주택이 전부 약탈을 당했어요. 그래서 19일 날 상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천경찰서가 전부 수복도 되었고 또 시민이 약 3할이 인천시에 돌아오고 있읍니다. 소사 지구로 말하드라도 대략 인천과 마찬가집니다. 부평이라든지 소사 근방이라든지 건물의 파괴는 그리 심하지 않었읍니다. 그러나 역시 피난민으로 거기의 주민의 대부분이 나갔고 그리고 괴뢰군이 상당히 다수 들어왔읍니다. 식량이라든지 괭장한 약탈을 당한 것은 인천과 같습니다. 그다음에 강화로 말하면 1월 19일에 적이 중무장한 적이 제47사단 23연대 2개 중대가 강화에 상륙했읍니다. 그런데 강화에 향토방위특공대를 청년들이 조직해 가지고 경찰이 후퇴할 적에 다소의 무기를 받아 가지고 향토를 수호하고 있었읍니다. 그래서 그 특공대들이 소수의 무기를 가지고 이 괴뢰군을 보고 용감히 싸웠에요. 그래서 아방 의 희생자가 17명 그리고 적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수의 적을 격멸하고 그리고 1월 30일에 완전히 적을 격퇴했읍니다. 그래서 강화로 말하면 강화읍의 시장에 있는 상품을 약탈당했을 뿐이고 그 외에는 인명의 사살이라든지 상해라든지 또는 약탈을 당하지 않었읍니다. 저의가 갔을 당시로 말씀하면 강화에 특공대원이 350명이 있에요. 그 350명이 경찰서를 중심하고 그리고 각 지서에 분치 되어 가지고 전화 가설까지 하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40 이상 되는 분들도 치안을 청년들에게 맡기고 행정을 실시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강화를 완전히 방위해 가지고 강화를 방위함으로써 인천 지역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여기에 강화도 외에 덕적 영흥 대부 연평 백령도 이 일대의 서해안 일대의 도서에는 현재 약 5000명의 특공대들이 용감히 싸우고 있읍니다. 우리 해군에게 다소의 보급을 받고 해군과 연락해 가지고 멀리 구월산 하 개성 등지 이쪽으로 정찰을 하고 그리고 싸우고 있읍니다. 이번에 인천과 도서 소사 지구를 시찰한 결과로서 대개 네 가지의 중요한 결론을 저는 얻었읍니다. 첫째로 말씀하면 강화도를 중심한 서해안 일대의 이 도서의 용감한 우리 특공대한테 다소의 최소한도의 무기를 공급할 것 같으면 서해안 일대를 완전히 수호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목도했읍니다. 이 사람들이 정규군, 우리 국군이 아니고…… 시방 수호하는 청년들이 용감하게 싸우고 있읍니다. 강화에서 17명이 총알을 맞고 운명할 적에 그 사람들이 부르짖는 소리가 어떻게든지 무기를 받어 가지고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달라는 것을 유언하고 그리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고 용감히 쓰러젔다고 해요. 이것을 전화로 우리가 강화경찰서에 연락을 해서 이 전화를 받을 때에 눈물 없이 들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면 금후에 있어서 역시 필요하리라고 보는 것은 이 특공대에게 최소한도의 무기를…… 도서이기 때문에 M1 총 몇 자루든지의 무기를 줄 것 같으면 배를 격침하고 적이 침공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강화에서 적의 배를 격침시킨 것은 10여 척이에요. 이번에 강화에서 경찰이 후퇴할 적에 거기에 있는 목선 선박은 대부분 파괴하고 나왔읍니다. 그러나 적이 해상으로 나온 것은 우리 특공대들이 전부 격침시켜 버렸읍니다. 다음에 또 한 가지 큰 문제를 말씀하면 인천이라든지 각 도서 소사 등지 여기에 식량이 전연 결핍되었읍니다. 도서로 말하드라도 강화에 약 8만, 기타 도서 합하면 20만의 주민이 있읍니다마는 여기에 지금까지 해군에서 식량을 최소한도 공급하고 있읍니다마는 금후에 있어서 식량이 큰 문제이고 인천 경인 도서 부근에는 식량이 없읍니다. 하루바삐 여기에 대한 식량 구호미를 보내는 이것이 현재 가장 긴급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그다음에 이 도서와 인천 등지에 전염병이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강화의 예를 들어 말씀하면 어린아이들이 전부 천연두에 많이 걸렸에요. 이것은 작년에 배급한 우두약 이 오래된 것이라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이 천연두가 발생되어서 유아들이 상당히 많이 지금 죽고 있읍니다. 또 발진지부스 기타 장질부사 등등이 전염병이 만연되고 있읍니다. 하로바삐 의료반을 보내서 이 도서에 있는 20만의 주민 또는 경인간에 있는 지금 피난하여 자꾸 돌아오는 주민들에게 의료반을 급속히 파송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다음에는 지금 경기도의 피난민들을 천안 수원 등지에서 막고는 있읍니다마는 실제에 있어서는 통로를 찾어서 자기 고향으로 육속 하고 귀향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경기도에 있는 40세까지는 전부 제2국민병으로서 1월 4일을 최후로 해 가지고 전부 남하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사 제 고향에 가본다 할찌라도 청년 장년이 전연 없애요. 대부분 부녀자 노약이 지금 육속해서 귀향하고 있읍니다. 그러면 금후에 있어서 우리가 농경을 하는 데 있어서 노력 의 부족이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 노력이 부족합니다. 또 농우 가 없읍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이 장기전에 대처하기 위하여 특히 경기도 일대의 금후에 농경을 하기 위해서는 30세 이상의 제2국민병을 귀환시켜서 그 지방에서 훈련을 하면서 한편에 있어서 농경을 하도록, 농사를 짓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는 것을 통절히 느꼈읍니다. 다음은 짧은 시간에 19일 날 인천에 상륙해 가지고 강화 소사 덕적 이런 등지를 주마가편 식으로 이틀 동안 시찰했기 때문에 정확하고 면밀하게 조사할 기간이 없었읍니다만 대체로 네 가지 문제를 금후에 정부와 연락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이 수복된 지구에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말씀하고 제 보고는 이것으로써 마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