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차 UN총회에서 정부 방침에 따라 대과 없이 그 책임을 완수하고 돌아와 보고드림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임. 대표단이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은 오로지 온 국민의 열성적인 후원과 혁명정부의 혁혁한 업적이 국내외에 반영된 결과이며 특히 박의장의 성공적인 방미의 결과 혁명정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국제적 위치를 상승한데 있다고 확신하면서 UN총회에서의 토의에 관한 대체적인 경과를 보고 드리겠음. 혁명정부로서 UN정책 수립은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로서 혁명의 진의를 인식하지 못한 우방이 많기 때문에 상당한 비관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서 가능하면 금차 총회에 상정되지 않도록 하든가 또는 지연시키든가 혹은 형식적인 토의에 그치게 하여 17차 총회에 이관하도록 연구하여 왔던 것임. 그러던 중 총회가 개막된 후 현지에서 접촉한 결과 특히 8.12의 정권이양 성명으로 사정이 많이 변동되었고 또 총회에 상정 안시킨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게 되어 본래의 대책을 수정하게 되었으나 소극적인 면을 탈피할 수 없어 상정되더라도 총회 말기에 상정되어 실질적인 토의는 차기로 넘게 하도록 노력을 했던 것이나 박의장의 방미로 인하여 상황이 호전되어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갔던 것임. 그리하여 우리 대표만을 초청하자는 안을 내놓으라고 미국 대표단보고 권고하였으나 지난 총회에서의 “스티븐슨 안”으로 해서 곤란하다. 우리도 물론 그것이 채택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나 대한민국이 합법적인 정부임을 인식시키고 혁명이 일어난 것도 오로지 공산분자의 간접 침략을 분쇄하기 위하여 취하여진 불가피한 처사라는 것을 기록에 남기고 자유 우방과의 유대에 하등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인식시키자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임. 그래서 미국을 설복시켜 북괴가 조건부 초청을 수락하지 않았다는 조건을 걸어서 제출하도록 미국의 승낙을 얻고 외몽고 안에 대한 수정안에 대해서 초안을 작성하여 참전 15개국과 상의, 약간의 수정을 가한 후 제1위원회 양해 하에 희랍과 태국으로 하여금 제출토록 되었던 것임. 그러는 동안 공산측은 12월7일 다시 두 결의안을 제출하였으니 이는 한국문제는 한국인에 맡기고 언커크를 해체하자는 소련안과 UN군을 철수하자는 외몽고 안으로서 우리는 이에 대한 대결로서 미국의 한국 대표만의 초청안을 한국문제 상정되는 날 아침에 돌연 제출하여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로 하였음. 12일 11시부터 한국문제는 제1위원회에 상정되어 이상의 여러 결의안을 놓고 맹렬한 동서논쟁이 전개되었으며 13일 미국의 요스트 대사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태도를 재천명하고 북한 괴뢰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자고 하여 외몽고 안에 태국과 희랍의 수정안에 지지의 뜻을 표명하고 표결에 붙인 결과 가 63, 반대 18, 기권 19로써 채택되었던 것임. 표결 현황은 작년의 59대 14, 기권 23과 비교할 때 11표의 찬성표가 증가한데 비해서 작년에 찬성한 나라로서 기권한 나라가 4개국, 찬성한 나라로서 결석한 나라가 3개국, 계 7개국을 제한 4표가 증가한 셈임. 이상의 표결 현황을 참작해서 우리는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며 반대표가 4표 증가한 것은 작년의 기권 3개국을 포함해서 외몽고인 바 이 3개국에 대해서도 교섭이 필요하다고 봄. 이상의 조건부 초청안이 채택된 후 우리 대표의 참석문제는 결의안 채택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참석한다는 것을 주장, 미국대표와 의장인 아마데오씨와의 협력으로 즉시 참석하게 되었던 것임. 그래서 우리 대표는 13일 밤에 수석대표가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군축 문제로 해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어 그날을 넘기게 되었음. 14일은 알제리아 문제를 상정하기로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회한이 도착하기 전에 연설을 하여야 하므로 우리는 필사적으로 14일 알제리아 문제 상정 전에 연설할 것을 시도하여 미 대표들의 눈부신 활동으로 공산측의 필사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14일 11시30분 약 30분간 연설을 할 영광을 가지게 되었던 것임. 이에 공산측은 가소롭게도 퇴장하는 추태를 보임으로써 회원국의 빈축을 산 것은 물론 다만 유고슬라비아가 그대로 남아서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임. 이로써 본인의 연설이 끝난 뒤 제1위원회는 알제리아 문제 토의에 들어갔고 한국 문제는 일단 중단되었던 것임. 12월19일 북괴의 회한이 도착하여 우리는 곧 반박 성명으로 그 내용은 UN의 권능과 권위를 수락한 것이 아니라 UN을 모독하였다고 성명서를 발표함과 동시 미국과 그 대책을 강구한 결과 미국도 의견을 같이 하여 동 회한은 12월19일 오후 후만 회의에서 소련의 1월15일 다시 한국 문제를 상정하자는 결의안을 부결시키고 12월20일까지 결론을 짓기로 하고 야간회의에서 요스트 대사는 “북괴가 UN의 권능과 권위를 명백히 수락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한국 문제 토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음을 결의한다”는 구두 제안을 하여 54 대 17, 기권 22, 결석 10으로 채택되어 참석 문제는 결말을 짓고 다음에는 실질적 토의에 들어갔던 것임. 실질적 토의에서는 참전 15개국과 상의하여 언커크 보고서에 주목하였으며 한국 문제에 관한 제 결의안을 재확인하고 파견된 UN군의 잔여 부분은 영구적 해결을 위한 조건이 성취되면 곧 철수할 준비가 완료되어 있고 UN은 한국에서 침략을 추방하고 평화 안전을 위한 집단적인 활동을 취할 권한을 갖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1. 한국에 있어서의 UN의 목적은 평화적 방법으로 대의정치, 정체하의 통일독립 민주한국을 수립함에 있음을 재확인하고 2.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노력을 권고하여 한국통일 부흥위원단은 총회의 관계결의안에 따라 그 사업을 계속할 것을 요청한다는 결의안을 둘러싸고 12월19일 야간회의를 거쳐 20일 오전 오후 회의에서 동서 양진의 맹렬한 논쟁이 전개되어 최종일인 20일 오후 회의에서 55대11, 기권 20, 결석 18로서 채택됨으로써 제1위원회에서 한국 문제 토의가 완결되고 야간회의 전체회의에서 제1위원회 의장의 보고로서 제출되었던 것임. 이 제1위원회의 보고서가 전체회의에 상정되자 소련의 언커크 해체, 외몽고의 UN군 철수결의안이 스스로 철회되고 이 보고서는 60 대 27, 결석 6표로서 채택되었던 것임. 끝으로 금차 총회를 중심으로 본국과 현지 대표단과의 물샐틈 없는 협조 상황으로서 현지 대표단은 매일 아침 8시에 회의를 개최하고, 각자의 활동을 유기적으로 조정하고, 오후 5시에 상황을 일보로 해서 본국에 보고하여 본국에서는 24시간 직원을 대기시켜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새로운 정책을 신속히 지시해 줌으로써 공보활동의 노선과 원칙을 수립하여 적시에 같은 보도로서 공보활동을 할 것은 크게 유익하였음. 다음 제17차 총회를 위한 건의와 계획 사항을 말씀드리면 ① 연중 계속행사로 계획을 수립 추진 ② 득표활동은 더욱 적극화 ③ 작전 전환이 필요한 것은 적극 추진 ④ 이상의 작전 하에서 강력한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제17차 회의에서 성과를 얻을 것임. 그러나 UN을 통한 조국통일은 요원한 것임. 우리는 통일을 위하여 실력을 배양함에 있어서 국위를 해외에 선양하는데 UN활동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임.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겠음. o 제16차 UN총회에 있어서의 한국문제에 관한 결의안집

① 제11회 산업부흥국채 가호중 종합제철투자액 1억 8,000만원을 나호로 변경, 시추기 도입을 위한 융자금으로 전용토록 명칭 및 발행조건을 변경하고 ② 가호의 부흥기금에 의한 출자 및 투자대상을 변경하여 정유공장에 투자키로 된 4억 6,000만원 중 대한석유회사에 4억 4,000만원을 투자하고 잔액 2,000만원은 계획대로 정유공장에 투자하게 하는 것임.
제2회 추가경정예산안 과 3개의 동의안을 일괄 표결하겠음. 표결결과 재석의원 24명 중 가 24표로서 만장일치로 가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