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미주 하와이에서 왔읍니다. 본국을 떠나서요 이민으로 들어갔던 사람입니다. 학교에 가서 공부하러도 안이 가고요 노동하러 들어갔었읍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본국을 떠날 때는요 이렇게 의회 하는 것을 내가 구경 못 하고 갔어요. 우리나라 안에서 사관도 모이고 또 그 아래에…… 그때에 딱타 이 가 거기 한 분으로 있었는데 그 이름을 내가 잊었읍니다. 그때에 우리나라에서 하는 것을 보면…… 또 모든 백성이 이렇게 와서 국회를 한다든지 뭣을 한다든지 이렇게 상감마마가 이렇게 앉아서 계시면 그 좌우에 우의정․좌의정이 앉어 가지고 하는 데 대해서 백성이 거기에 들어가서 보지 못했읍니다. 그런데 엊저녁에 내가 보니깐 각부 각 대신들이 모두 오시는데 예전 같으면 사린가마 를 타고 오시는 이도 있겠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원마상을 하고 백성을 ‘모두 물러가라’, ‘옛키 이놈’ 어쩌고 이렇게 하겠는데 아무 소리 없이 그냥 들어왔더라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누가 누군지 몰랐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깐 이이는 아무 국장이고 이이는 아무 무엇이라고 하고 그러고 왔어요. 그것만 봐도 내가 마음에…… 감상에 생각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오늘…… 이제는 우리나라가 바로 되어 가는가보다 내 그렇게 생각했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에 오게 된 것은 알래해서 여기에 오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와이 이민 들어갔던 사람들이 일본사람에게 압제를 받고…… 내지 안에서 그렇게 한다고 하고 또 우리 단족으로서…… 역사적 민족을 일본놈이 잡아다 마음대로 죽였더란 말이요. 그렇게 되니깐두루 이 사람도 붙들려 가서 죽을까 봐서 겁이 나서 못 온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루하게 일본놈의 영사관에 가서 내가 대한에 들어가게 되니까 여기에 여행권 하나 해 내라 하고 말하기 싫어서 안 왔어요. 했다가서 이번에 마침 우리의 해방이 되고 해방이 되자 여러분들이 있다가서 우리 동포 신사 숙녀 여러분들이 나라를 위해서 총선거에 투표를 해 주신 그 결과 우리가 따라서 여기 들어왔읍니다. 얼마나 여러분들은 우리 독립에 대해서 근념하시고 애 많이 쓰셨읍니까. 우리가 하와이에 들어가서 독립운동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벌어먹고 남는 걸 가지고 딱터 이 외교하시는데 우리나라의 독립을 어떻게 하는 것을 가서 좀 할 수 있는 대로 해 주십소사 하고 도움만 좀 드린 것밖에 없읍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넘치는 환영을 받게 되니까 어떻다고 내가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뭔고 하니 이번 공산도배가 남침을 해서 서울서 수원으로, 수원서 대전으로, 대구로, 부산까지 내려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우리 와항 에 있던 사람들은 앉어서 운 것밖에 없었읍니다, 그 소식을 듣고. 그때 총영사 김용식 씨가 들어왔을 때 그 사람에게 ‘그게 정말이요?’ 했더니 ‘그렇다’고 그래요. 그래서 어떻게 된 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 인천상륙이 되었다고 하고 서울을 두 번, 세 번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는 그런 소리를 듣고 우리가 마음으로 참 거시키했는데 우리나라 국군이 용맹스럽게시리 그 공산도배를 내 물리치므로 말미암아서 다시 경성을 들어왔다고 하는 소리를 듣고 반가이 생각했읍니다. 그러나 오늘 또한 이렇게 국회가 열려 가지고서 여러분들이 이렇게 입법부에서 모든…… 나라의 법률을 마련하시는 이 자리인데 이렇게 거룩한 자리에 와서 촌 농군으로서 여기 와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여쭈게 된 것은 너무도 황송스럽습니다. 오늘날에 나라가 이제 독립이 이만치 되었으니까 이것이 잘되고 안되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여기 앉은 국회의원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거야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좀 불편함이 있다 하더라도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나라를 위해서 일해 주시면 우리는 그 외에 바랄 것이 없는 줄 내가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통령으로 말하면 우리하고 하와이에서 38년 동안을 계시다가 하와이를 떠나 오셨읍니다. 난텐오트리에 오셔 가지고 그 양반이 가실 때는 난텐오화이에 오셔 가지고 우리와 같이 이민 배를 타고 가셨읍니다. 가실 때에 딱터 이가 오시는지 누가 오시는지 몰랐에요. 했지만 막상 와항에 떡 들어와 가지고 배에서 하륙할 때에 말을 들으니까 이승만이가 왔다고 그래요. 아니 이승만이가 누구란 말이냐, 그는 누구인고 하니 말이에요. 독립운동할 때에 서재필, 유길중, 서광범이 모두 따라서 악닥골이라고 하는데…… 와간 가면 골짜구니가 있지요. 거기서 회합하고 나라를 바로잡겠다고 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다 생각하기를 역적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우리는 몰랐지요. 역적이 무엇인지 대적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읍니다. 다른 사람이 역적이라고 하니까 나도 역적이라고 그랬지요. 그런데 독립협회에 이승만 씨가 나오셔서 일하고 그러다가 고만 우리나라 정부의 그 암종을 받아서 해산이 되지 않었읍니까. 그 후에 만민공동회라고 해 가지고 종로 네거리에서 연설을 하고 대한문 앞에서 딱터 이가 연설을 하고 할 때에 누구한테 붙들려 갔는고 하니 우리나라 순검이라고 하는 사람이 딱터 이를 잡아가지 않었읍니까. 7년 징역하지 않었읍니까. 여러분이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 양반이 징역할 때에 내 구경했지요. 맹꽁이 자물쇠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별명을 지었읍니다. 발에다 쇠몽둥이 큼직한 것을 달고 자물쇠로 채웠에요. 그리고 삼테기를 쓰고 종로 네거리를 가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때에 거기에 왔다고 그래요. 그 양반이 미국으로 와서 와싱톤 대학을 마치시고 또 나중에는 다른 대학으로 가서 공부하시고 한 다음에 철학박사가 된 것을 여러분이 다 아시다싶이 위드로윌슨한테 교육을 받지 않었읍니까. 그리고 1910년에 여기에 나오셔서 11년에 우리나라 대표로서 워싱톤으로 왔을 때에 일본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고 청국 상해로 해서 홍콩 가서 배를 타고 와싱톤으로 가서 교회의 일을 보시고 계시다고 해서 우리 7000명 사람이 있다가 딱터 이를 보고서 좀 나와 주십소사 하고 요청해서 그 양반이 나왔읍니다. 그래서 하와이에 와서 고생 많이 했읍니다, 나라 찾는다고…… 그래서 딱터 이가 거기에 와서 하실 때에 무엇을 먼저 하셨는고 하니 독립이 항상 염원이셔서 독립운동했지요. 또 독립으로 하와이에다가 학교를 만들어 가지고 어린아이들을 교육시켰읍니다. 그 학교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여기에도 몇이 온 사람이 있읍니다. 그때 교육받은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어를 잘합니다. 그 양반이 거기에 계시지 못하게 되고 그 학교가 나중에 흐지부지하게 되니까 그 학교 기지 판 것 여러분이 아마 소식은 들었겠지요. 한 30에이카가…… 미국 땅으로 30에이카 산 것이 있지요. 그런데 그 학교를 팔어 가지고 지금 15만 불을 인천 인하대학으로 보냈다고 하는 말씀을 여러분 들으셨겠지요…… 그것이 우리가 보내 준 돈입니다. 하와이에서 우리가 한 것은 딱터 이가 독립을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시겠다고 하고 각국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데 가시겠다고 그러면 우리가 갔다 오십소사 하고 돈만 들여서 우리가 그 양반을 도와준 것뿐이지 특별히 우리가 독립운동한 것은 없읍니다. 독립운동은 그가 했지요. 우리는 그이 독립운동하라고 권한 것밖에 없읍니다. 딱터 이가 독립운동하시겠다고 해서 우리가 돈 벌어서 그때에 냈다고 하는 것을 갖다가 이만한 큰 환영을 받고 또한 국회에 와서 이렇게 말할 기회까지야 있을 수가 어디에 있읍니까. 여기 40여 명 들어온 사람들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환영해 주시니 여기에 대해서 어떻다고 말할 수가 없고 또한 50년 만에 본국에 오니까 지금 성이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삼각산, 북한산, 남산만 그냥 있다 말이에요. 또한 사람들은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에요. 그래서 고국산천은 낯은 익은데 사람은 처음으로 보는 사람들이 되어서 내가 본국에 온 것이 아니라 외국에 온 것 같습니다. 또한 하와이에서 백인들은 우리 동양 사람들을 보고 반흑인종이라고 그래요. 그러나 여기에 와서 여러분이 앉은 기상과 모든 것을 보니까 낯이 허여니 백인종 같은 감상이에요. 그런데 지금 우리 살결이 노랗지만 백인 하는 대로 꼭 해야 되겠에요. 그러면 하려고 할 것 같으면 여기서부터 해 가지고 일반 백성에게 다 전파해서 우리 백성을 깨우치고…… 깨우치지 않으면 여기에 앉은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여기서 잘들 해 가지고 여러 국회의원들께서 남북통일이 긴급하니까 이것부터 먼저 해 놓아 주십시요. 그러면 우리 외향 에 있는 사람들도 여기에 대해서는 전력을 하겠읍니다. 더 길게 말할 것 없이 이만큼만 얘기하고 맙니다.

말씀하세요.

송구스럽습니다. 잠깐 지금 민 단장으로 하여금 하와이에 대한 실정을 듣고 느낀 바 소신의 일단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읍니다. 방금 민 단장으로 하여금 하와이에 계시는 우리 교포 여러분의 고충 여러 가지를 들어서 알았읍니다. 국민 된 한 사람으로서 동족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수륙만리 먼 원정을 하셔서 바쁘신 때에 일정을 짜 가지고 이처럼 우리 국회를 방문해 주신 이 점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하와이는 우리 국부이신 이 대통령 각하가 40여 년간에 긍해서 지하에 묻혀서 우리 광복운동을 전개한 의의 깊은 곳입니다. 여러분이 다 같이 우리 국부를 많이 도와주신 이 점에 대해서 심심한 사의를 또 한 번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보다 선각자요 지각자요 연배이십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우리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여러분은 다만 하와이에 사신다는 이 기분만 가지시지 말고 하와이에 계시면서 우리 대한민국을 도웁는 외교관의 자격으로서 어떻게든지 물심양면 외교관에 대신해서 일해 주십소사 하는 것을 오늘 이 기회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쌍수를 들어서 비러 마지않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세히 내용은 모릅니다만 평화신문사사장 홍찬 선생이 우리 대한민국에 있어서 또 경제계의 거성입니다만 이 홍찬 선생의 격별한 안내로서 여러분이 이 조국에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읍니다. 그런 만치 여러 가지 할 말이 많이 있읍니다만 시간관계로서 생략하고 한 번 더 거듭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대한민국의 존립은 미국의 원조 없이 나갈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여러분이 한 번 더 인식하시고 끝까지 여러분은 우리 대한민국의 대사관의 일원으로서 외교관의 일원으로서 음으로 양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서 우리나라의 발전․육성에 만전을 기해 주십소사 하는 것을 이 기회를 통해서 빌어 마지않는 바입니다. 대단히 감사사합니다.

오늘 아침에 귀한 손님을 맞어서 좀 환영사도 있으면 좋겠고 오신 경위도 여러 동지에게 설명을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간단히 제가 둬 마디 말씀으로 소개의 말을 드렸고 또 신문보도와…… 말씀을 드리지 않더라도 잘 아실 터이고 그랬으나 말씀을 좀 했으면 하던 차에 도 의원께서 다 대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오늘 아침 법무부차관으로 임명되신 임석무 씨께서 여기에 나오셨는데 잠깐 여러 의원께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임 차관 나와서 인사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