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신상발언권을 드립니다. 먼저 무소속 서민호 의원 발언해 주십시오.

의장, 국회의원 동지 여러분들, 오늘 개회벽두에 있어서 귀중한 시간을 일신상 발언으로서 소비하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여기며 아울러 미안합니다마는 변변치 못한 말이지마는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서 일신상 해명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될 입장에 있음으로써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본 의원이 지난 18일 일본으로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일본에 떠나려고 계획한 것은 지난 정월 중순부터 가려고 했읍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2월 초에도 가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따라서 3월 초 계획했던 것이 겨우 3월 18일 여권이 나와서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떠나기 직전에 본인과 또는 신민당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과의 사이에 일어난 것을 참고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 의원들께서 다 아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공화당에서는 본회의의 소집을 5월로 고집을 하였고 신민당에서는 3월 중순으로 고집한 것을 이 사람은 알았던 것입니다. 원내총무 김영삼 의원이 3월 15일 총회를 소집할 것을 요청을 했읍니다마는 본 의원은 말을 하기를 설사 상대방인 공화당에서 응하지 아니한다 할지라도 도의상 김 총무가 공화당 총무하고 먼저 서로 타협을 하도록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3월에 소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할지라도 공화당에서 출석을 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공전하고 말 테니까는 4월 10일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렇게 말한 나머지에 4월 5일로서 서로 합의가 되어 가지고 4월 5일 소집하는 것을 결정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 그날을 결정한 다음에 며칠 지난 다음에 아무 소식이 없어요. 그러자 간접으로 전해 들리는 말에 의한다고 할 것 같으면 공화당하고 타협을 하고 있다고 해서 원내총무인 김영삼 의원의 사무실을 찾았읍니다. 불행하게도 그 당시에 없었는데 거기에 방문한 시간은 11시 45분에 방문을 했읍니다. 그분이 외출하고 부재중임으로써 거기에서 좀 기다리다가 그 비서한테 물어보니까 얼마 되지 아니하면 돌아올 것이라고 말을 해서 내가 1시 반까지 내 사무실에서 기다릴 테니 돌아오시면 전화를 걸게 해 달라고 그랬으나 종내 그 시간 전에 오지를 아니했읍니다. 그래서 나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사 보니까 공화당하고 이미 합의를 보아 가지고 4월 15일 했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부득이한 사정에 의해서 그랬을 테지만은 도의상 또한 예의상 당연히 내게 와서 공화당하고 이렇게 절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전에도 알려야 할 것이 나는 떳떳한 도리로 생각하며 또한 사후에 있었다 한다 할지라도 당연히 알려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태도가 보이지 아니한 나머지에 나는 불쾌하게 생각해서 그날 저녁에 돌아가서 여기에 계신 나의 외우인 정일형 의원에게 내가 그 사실을 얘기하고 예의상에 비추어서 본다고 할지라도 이럴 수가 있느냐 말이야, 그런 얘기를 하고 그이에게 불평을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튿날 그 사실을 비당 인 대중당의 당무위원회에 보고 겸 그 말을 했읍니다. 그러자 당무위원회에서는 다 불쾌하게 여겨 가지고 우리가 거기에 예속되어 있는 단체도 아닐 뿐 아니라 또 추종을 해야 할 아무 하등의 이유도 의미도 없음으로써 그럴 필요가 없다, 금후에는 우리 당무위원회의 결의에 의해서 승인을 받고 다른 제3당하고 서로 합의를 보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사전에 이해를 얻도록 하라는 그러한 결의를 보았읍니다. 그런 후에 이 사람은 일본으로 들어갔었는데 바로 도착되는 그 이튿날 대사관에 예방을 했읍니다. 예방을 한 후에 대사관을 방문한 일이 없읍니다. 그러자 어느 날 거기에 특파되어 있던 여러 신문사 기자들이 와 가지고 본국에 이러이러한 사건이 났다, 즉 말하자고 할 것 같으면 조윤형 의원이 법정구속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말하자면 의견을 묻기에 이 사람은 똑 이와 같이 얘기를 했읍니다. ‘국회의원이라고 치외법권을 갖지 아니한 이상 또는 누구보담도 입법기관에 있는 우리가 법을 잘 지켜야 할 것인데 들어 보매 여덟 번이나 호출을 했음에도 출두를 하지 아니했다고 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렇다고 해서 현역 국회의원을 법정구속한 사법부의 처사로 말하면 더욱 이해하기 곤란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런 얘기를 했읍니다. 그러자 거기에 대해서 ‘장차 신민당에서 교섭이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하겠느냐’ 이렇게 말을 하기에 ‘아직 교섭도 받지도 못했고 그 당시에 가서 얘기를 하겠다. 그러나 내 개인으로서야 하등의 이의가 있을 리가 있느냐’ 이런 얘기를 하고 갈렸읍니다. 그러자 그 다음다음 날 전화가 왔어요. 그 당시에 일본의 거류민단장을 지냈던 ‘김금석’ 씨를 비롯해 가지고 몇 사람이 그 방에 있었읍니다. 시간은 6시 35분쯤 되어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그이가 먼저 받았읍니다. 여기는 오다니 호텔이올시다. 분명히 얘기하는 것을 그 방중의 사람이 다 들었읍니다. 그러자 몇 마디 설왕설래하다가 서 의원을 대 달라 해서 제가 전화를 받았읍니다. 그래서 본 의원이 답변을 하기를 ‘내가 이미 말을 들었노라. 거기에 대해서 하등의 이의가 없지만은 본국에 있는 우리 본당의 당무위원회의 결의에 의해서 당무위원이 나한테 통지를 하게 되고 사전에 이해를 얻게 되었으니 당무위원으로서 시방 의장대행을 하고 있는 이가 ‘김재호’ 최고위원이라고 하는 분이니 그분에게 전화를 해서 상의를 해라. 동시에 나는 편지를 해서 ‘김재호’ 씨한테 편지를 해 가지고 되도록 하겠다’ 그 말을 끝마친 다음에 나는 말하기를 ‘김 의원! 정치도 도의인데 예의상으로 본다고 할지라도 지난번 나한테 그렇게 할 수가 있소?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오. 반성하시오’ 이 말을 하자 전화가 끊겼읍니다. 이러고 난 다음에 며칠 지나서 보니까 자기가 말했던 것과 생각했던 것과는 범위가 대단히 거리가 먼 그러한 기사가 신문에 났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여러 사람한테 얘기를 들었읍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말을 하지 아니했읍니다마는 귀국해서도 여러 가지 잡음이 많이 있었읍니다. 너무나 이것이 심각할 정도로 잡음이 많기 때문에 이 사람은 사적으로는 훌륭한 젊은이지마는 또한 연소한 친구를 상대해 가지고 시비를 한다는 것도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일절 발언을 하지 아니했읍니다. 그러나 지방에서 오는 여러 동지들의 말에 의한다든지 또 기타의 편지에 의한다고 할 것 같으면 너무나도 그 여파가 크다고 생각해서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사실 경과 그대로 여러분에게 보고를 드려 가지고 현명한 판단을 내려 줍소사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기사에 의한즉은 대사관에서 이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는 것인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만일 이것이 참고가 된다고 하면 그시에 그 스위치를 어디로 넣어 가지고 전화를 받았는가 또한 거기에 적어도 3, 4명의 동석자가 있었음으로써 추후에 알고자 하는 것은 여실히 입증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자리에 있는 정일형 의원도 내가 어떻게 말을 했으며 어떠한 뜻으로서 그에게 말했다는 것을 그분도 만약 필요하다고 할 것 같으면 기탄없이 얘기할 분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연유가 되어 가지고 정치자금문제도 나왔읍니다. 정치자금문제에 대해서는 정일형 박사도 또 역시 아는 것입니다마는 작년 9월에서야 내가 정일형 의원에게 말한 말이 있읍니다. 그전에는 일절 그 내용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이 사람은 그 당시에 교도소에 있었던 관계로서 알지도 못했고 또 구태여 내가 그 내용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집이 떠내려가게 되었다 말이에요. 돈 180만 원에…… 그래서 나중에 이것을 어떻게 해서 쓴 돈이냐고 물은즉은 ‘선거관계로서 했다. 그 돈을 신민당으로서 선거관계로 해서 도와준다고 해서 그렇게 했던 것인데 신민당에서 여태까지 그것을 행하지 않고 일부금액만 주고 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대단히 불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신민당에서 정치자금을 받게 되었느냐 그것을 물은즉은 용산에 여기 김원만 의원께서 가정의 불행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리를 사양을 해 달라고 이 사람에게도 간곡히 부탁을 했고 또 정일형 의원도 그런 말을 했었읍니다. 그래서 나는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선배의 입장으로서 그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어서 양보를 하고 그다음에 종로에서 출마를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도소 안에 있음으로써 이것을 몰랐는데 내 비서관 되는 하복철이라는 사람의 말에 의한즉은 그것을 제출하려고 하니까 오늘 오후 2시에 만나자, 이를테면 그 당시에 그런 이야기로서 2시에 가 보니까…… 아침에 갔는데 2시에 가 보니까 그동안에 벌써 제출을 해 버렸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럴 도리가 있느냐, 점잖은 처지에 이것이야말로 날치기가 아니냐 이런 소리를 해 가지고 시비를 했지마는 벌써 때는 늦었던 것입니다. 그때에 고향인 고흥에 가서 출마를 하려고 거기서 종용을 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나한테 교섭이 왔기에 아 그렇다면 고흥에 가서 해도 좋지마는 거기도 오래동안 비어 가지고 있고 정치자금도 시방 선거자금도 없는 이때에 새 천지를 개척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그런 곳을 할 수가 있느냐 그런 말을 했더니 같은 야당끼리 거기서 경쟁을 한다는 것도 도리가 아니고 하니까 결국은 고향에 그런 관계로서 고향인 고흥으로서 바꾸어서 그리로 출마지를 작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 때에 그때의 약속이 신민당의 당원으로서 거기서 출마하려는 분을 후퇴를 시키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속이 지켜져서 최후 이틀을 남겨 놓고 별 효과를 못 보았읍니다마는 후퇴를 한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읍니다. 이런 관계로서 약속한 그것도 이행을 하지를 못했고 그랬는데 이 기회를 연달아 가지고 사실을 말했겠지마는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마치 오비이락 격으로 나에게 어떠한 저의가 있어서 그런 의사표시를 하지 않았나 해서 대단히 마음에 불쾌하지마는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일신상 발언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끝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한마디 여야를 막론해 놓고 간절히 부탁하고자 하는 것은 권모술수나 중상모략으로서 상대방을 매장하는 것이 마치 정치의 본연의 자세인 것과 같은 이런 사고방식하에서 이런 태도를 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도 반성해야 할 것이지마는 이런 정치인 안에 있는 국민의 장래가 우려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뿐만 아니라 심히 유감스럽고 나아가서는 일종의 비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바라건대는 우리는 금후에 우리의 공사의 구분을 해 가지고 우리의 국회법에도 엄연히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인격을 모욕해서 중상모략하는 그런 일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하간에 정치나 행정을 감정적으로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은 정치의 ABC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을 줄 압니다. 여러분들, 이 사람의 부덕으로 말미암아서 여러 가지 잡음이 많이 나 가지고 세상을 소란케 한 것도 대단히 송구스럽게 압니다마는 이런 일이 금후에는 누구에게든지 다시 없도록 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하는 의미에 있어서 외람되나마 신상발언으로서 그 경과를 여러분한테 말씀을 드리고 제 말씀을 끝을 맺고자 합니다마는 이상에 말씀한 가운데에 한마디라도 내가 말을 보태서 했다든지 무고한 짓을 했다면 내가 우스운 말이올시다마는 본 의원은 천벌을 맞을 것을 각오하고 또한 여하한 저주라도 받을 것을 나는 사양치 않을 것을 여러분들한테 아울러서 말씀해 드리는 동시에 끝까지 들어 주신 데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끝을 맺겠읍니다.

다음 신상발언하실 분이 두 분이 계십니다. 먼저 신민당의 김영삼 의원 말씀해 주세요.

오늘 이러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을 대단히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서민호 의원이 여러 가지 한 이야기에 대해서 본 의원은 두 번 다시 놀라지 아니할 수 없읍니다. 분명히 지난번에 우리 신민당은 불행하게도 국회를 소집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딱 한 사람이 부족한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서 서민호 의원을 방문한 일이 있읍니다. 그 당시에 본 의원이 이야기하기를 ‘공화당에서 무제한으로 국회를 열지 않을 기미가 보이니까 서 의원이 찬성해 주면 우리는 조속히 국회를 소집해야 되겠소’ 하는 이야기를 했읍니다. 그랬을 때에 서민호 의원이 분명히 이야기하기를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수당인 공화당이 출석을 안 할 염려도 있고 하니 공화당과 일단 얘기를 해서 공화당이 끝내 안 들을 때에 다시 이야기를 하자’ 하는 이야기를 했읍니다. 거기에서 그러면 대충 언제쯤 하는 것이 좋겠느냐? 저는 3월 중순이나 말경에 하기를 제의했읍니다. 그러나 서민호 의원은 일신상의 사정에 의해서 4월 5일경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얘기를 했읍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공화당하고 이야기를 해 본 연후에 되지 아니할 때에 다시 20일께 가서 재론하자 이렇게 이야기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공화당과 총무회담을 열어 가지고 최후에 이야기할 날이었읍니다.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은 그날 총무회담을 해 봐야 알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때에 본 의원은 아침에 서민호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입니다. 오늘 공화당과 총무회담을 하는데 공화당과 이야기가 되어 가지고 국회를 열 수 있으면 합의해서 공동으로 열지마는 합의가 되지 않을 때에는 부득이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서민호 의원이 찬성을 해 줘야 하겠읍니다 하는 이야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서민호 의원에게 대한 통고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총무회담을 열어 가지고 공화당 쪽에서 15일로 합의해 주었읍니다. 그래 우리는 5일 내지 10일로 하자고 주장하다가 결국 15일로 낙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에 서민호 의원은 이제 총무실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읍니다마는 그 경과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읍니다. 다만 그 후에 조 의원이 불행하게 구속이 되어 가지고 제가 동경에 서 의원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서민호 의원 비서를 일부러 만났읍니다. 연락을 해서 서 의원이 부재중이니까 단 한 사람이 부족하니까 서민호 의원의 도장은 있을 테니 서명날인을 좀 해 주면 좋겠읍니다 하는 말씀을 했읍니다. 그랬더니 도장은 없읍니다 그러면 서 의원이 어느 숙소에 들어 있읍니까? 모릅니다 하는 얘기를 했읍니다. 집에서도 모르고 비서인 저도 모릅니다 하는 얘기를 했읍니다. 그래 저는 부득이 일본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해서 엄 대사에게 서 의원 주소를 확인했읍니다. 엄 대사가 말하기를 뉴오다니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읍니다. 세 차례에 걸쳐서 서민호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읍니다. 언제나 전화할 때마다 부재중이었읍니다. 마침내 저녁때 6시가 조금 지나서 그 호텔에서 대사관 쪽에 간 것 같습니다 하며 대사관으로 전화를 돌려 주었읍니다. 그 진부는 알 길이 없읍니다. 다만 국제전화이기 때문에 저쪽에서 얘기하는 것만 제가 들을 수밖에 없었읍니다. 그때 서민호 의원과의 대화하는 가운데 지난번에 섭섭하다 하는 그러한 얘기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저는 사전에 서민호 의원에게 분명히 통고도 했고 또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문제는 의원의 신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조윤형 의원이 이러한 불행한 일을 당했는데 긴급히 소집하는 국회소집에 응해 주는 것이 좋겠다 하는 얘기를 분명히 부탁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때 서민호 의원이 이제 이 단상에서 얘기한 것처럼 대중당의 당무위원회에서 이미 결의가 되었기 때문에 신민당에게 더 이용을 당하지 아니하기 위해서 소집에 응할 수 없다 하는 얘기를 분명히 했읍니다. 그래 제가 이것은 딴 사람도 아니요 특히 조윤형 의원이 아닙니까 하는 얘기를 전화로 강조를 했읍니다. 그러니 조속히 국회를 소집합시다. 끝내 같은 얘기였던 것입니다. 이 얘기에 대해서는 본 의원이 저희 안방에서 단 둘이서 얘기한 것도 아니고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 신민당에서 어떻게 국회를 소집하느냐 하는 데 대해서 국민이나 언론계의 관심거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민호 의원이 일본에 있든 어디에 있든 쾌히 우리 동료 의원 석방에 대해서 응낙해 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언론인들에게도 저는 자신 있게 언제든지 우리 신민당은 국회를 단독으로 공화당이 협조를 안 해 주더라도 소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언해 왔던 것입니다. 특히 그때 전화할 때에 저희 방에도 최소한 10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전화하는 내용을 다 듣고 있었읍니다. 제가 발표했다기보다는 그 내용을 그대로 속기해 가지고 신문에 보도한 것뿐입니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해서 두 번 다시 놀라지 아니할 수 없읍니다. 아무튼 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진실로 서민호 의원이 국회를 소집하고 조윤형 의원이 조속하게 석방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면 자진해서라도 조윤형 의원이 구속된 지 10일이 지나고 이런 판국에 전보 한 장이라도 좋고 또 비서를 통해서 연락을 해 주었다면 우리 국회가 지난번 소집에 그러한 고충을 겪지 않고 소집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긴 말씀을 드리지 아니하고 제가 이 단상을 통해서 제 이름이 지상에 많이 오르내렸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만은 여러분에게 신상발언을 통해서 해명해 드리는 것입니다. 대단히 불행한 일이었고 또 불행한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다음은 공화당에 김병순 의원 발언해 주십시오.

마치 오늘 이 의정단상에는 서민호 의원께서나 김영삼 의원께서 그래도 정치적인 문제나 가지고서 신상발언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으로서 떳떳하기도 합니다. 본 의원은 사기혐의이다라는 문제를 가지고 고발되었다는 신문지상을 보고 국회의원의 입장으로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이 귀중한 시간을 빌려서 이러한 신상에 대한 말씀을 하게 됨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참 민주전당을 우리가 그 존엄성을 우리가 잘 느끼고 또는 우리 국회의원이라는 가질 바 자세 이 두 가지 어느 점에 있어서나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입장으로 있어서 그 명예나 그야말로 그 자세에 누를 끼친다 할 때에는 그 당사자는 대오각성은 물론이요 나아가서는 응분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기 까닭에 지나간 4일 도하 각 신문에 1000만 원 내외의 무슨무슨 사기혐의로 김병순 의원 입건이라는 제목하에서 신문이 모두 기재가 되었읍니다. 그것을 귀향을 마치고 돌아오는 도중에 저는 4일 광주에서 이 신문을 보았읍니다. 그러나 제 자신이 국회의원 김병순이기 때문에 자신 자신 이 사람 이 사람인 줄은 분명할 것인데 본인으로서는 이거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일이어서 그야말로 답답한 가슴을 안은 채 서울로 왔읍니다. 그래서 내가 이것이 사실 그대로 우리 국민 앞에 밝혀지지 않는 한 내가 국회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는 것을 생각을 하고 있었읍니다마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건 고발자는 지난 13일 서울지검 18호 박준 검사에 의해서 조사 신문을 당하고 무고죄로 있어서 현재 지금 서대문교도소에 들어가 있읍니다. 이러고 그 여타 친구들도 권 도 하고 해서 그야말로 이 국회에 다시 나왔읍니다. 그 점에 대해서 간단히 그 경위만을 말씀을 올려서 여러 국회의원님들의 그야말로 그 오해를 그야말로 풀어 드릴까 하는 의미에서 이런 귀중한 시간을 빌렸읍니다. 그 신문지상에 4월 4일 자 김형규라는 것은 박형규의 오기로 알아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지금 그 신문내용을 볼 것 같으면 64년 3월부터서 67년 4월 간에 그 1000여만 원에 해당하는 김병순이가 무슨 뭐 무슨 조건으로 써서 무슨 돈을 참 사취한 것처럼 이렇게 기사내용이 되어 있읍니다. 나는 64년에서부터…… 예 66년에서부터 67년 4월까지는 그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만 안다고 하면 66년 4월인가 제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이 남창동의 3번지입니다. 내가 저 위에 있는데 그 아래층에 ‘란’다방이라는 다방이 있읍니다. 저의 선거구 사람들이 매일 아침이면 여기에 올라면…… 그저 다섯 사람 네 사람 세 사람 열 사람 항상 저를 그저 만나는 장소가 거기입니다. 66년 4월에 거기를 내려오자 ‘저와 같은 도의 선배시고 하니까 한 번이나 만나 뵈려도 기회가 없어 못 만났읍니다’ 하고 인사를 받은 기억밖에는 없고 그 뒤로는 만난 일도 없고 말을 한번 건네 본 일도 없읍니다. 그러면 어떻게끔 해서 이런 사람이 이렇게 고발이 되었느냐? 작년에, 다시 말하면 6대…… 6․8선거를 앞두고 이 공천을 받아 가지고 5월 13일인가 4일로 기억이 됩니다. 광주에 가서 내려가는…… 집에 내려가는 길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하려고서 광주에 가서 이틀 저녁 잔 일이 있읍니다. 잔 동안에 지금 생각에 아침에 우리 해남군 출신의 내 아는 지면 을 통해 가지고 재작년 4월인가 언제 그 다방에서 한 번 만났던 그 사람인데 그 사람은 말하면서 그저 당선을 축하한다는 인사라도 온다 합니다 해서 그 제 방에 들어왔읍니다. 그래 인사를 한 나머지에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는고 하니 아 이번 선거에 돈도 많이 들고 할 텐데 워낙 내 저는 몰라 그렇지만 저는 다 알고 있읍니다 김 의원께서는 항상 그 사람 말대로 빌린다면 너무 그저 정직하고 해서 돈도 없는 분이고 해서 할 테니 나는 그저 참 돈 100만 원이나 협조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을 해 왔읍니다. 그래 나는 남에게 무슨 근거로다가 협조를 받을 이유도 없고 참 그 뜻은 갸륵한데…… 그렇다 할 것 같으면 내가 선거도중에 돈 100만 원…… 나한테 정당한 채권 채무를 확립해 가지고 나를 빌려주면 그 이상 고마울 바가 없다고 해서 그렇게 성립이 되어 가지고 선거 전후해서 130만 원을 빌려 쓴 일이 있읍니다. 그래 갚기는 작년 12월 말 이내로 했기 때문에 자기가 도중에라도 돈이 옹색하다고 그래 가지고 10월 11월 두 달에 나누어서 완전히 반제를 했읍니다. 그 경위는 그 사이 일밖에 없읍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참 통곡할 노릇으로 이런 고발이 되었겠느냐? 이번에 그 경위를 이 신문에 난 후로 서울 와서 이것을 자세히 알았읍니다. 또 본인이 등기우편으로 만리장서로 사과장이 온 것도 여기에 있읍니다. 그 내용도 전부 이렇게 써 있읍니다. 본래 그 사람이 사기성도 있고 상당히 그 젊은 사람이 아마 머리가 좋은 모양인데 수년 전부터 이 사업 저 사업 실패하면서 여러 군데 빚을 아마 1000만 원…… 많이 빌려 빚을 져 가지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그런데 작년 8월에 제가 농업협동조합 소위원회를 그랜드호텔에서 하고 이틀이고 동지들과 하고서 저는 작년에 아주 몸이 쇠약했었읍니다. 그래 가지고 제가 계속해서 그 한 이틀 그 그랜드호텔에 제가 빌려 가지고 있었는 때가 있읍니다. 그때에 올라와서 우리 해남에는, 여러분 다 아시는 분은 다 알 것입니다마는 한 4000정보짜리 간척사업이 있읍니다. 그런데 그것은 66년 7월에 군수한테다가 타이틀 투로 넘겨주었기 때문에 군수가 시공자가 되어 가지고 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 당시 자기들은 누가 건전한 업자를 하나 채택하려는 그런 찰나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한테 와서 ‘죄송하지마는 군수한테 연락해서 이 사업 좀 저에게 맡아 주시면 어떻겠읍니까?’ 그래서 그것 내가 한번 군수한테 알아보지 그래서 밤에 전화를 걸어 보니 그 사람은 도저히 신임이 없고 자력이 없어서 적어도 한 2000만 원 이 보증금을 건 사람이라야지, 안 된다고 그래서 일언지하 알았다고 그래 가지고 그 사람 불러 가지고 당신들한테는 도저히 해당이 안 되니까 내가 그것은 도저히 군수하고 연락해 보아도 안 된다고 해서 제가 안 된 사실을 말해서 아 그럼 좋습니다 참고로 말씀해 본 것입니다 하고 갈린 그것만이 그 사람하고는 경위올시다. 그런데 이번에 이 사실을 이제 알고 앉아서 보니까 이 채권자들이 많이 찾아왔읍니다. 이 고발장은 그 사람이 3년 전부터 2년 전부터 돈 꾸어 준 사람이 있는데 이 채무를 갖다 독촉을 하니까…… 뭐라고 말하는고 하니 내가 해남에 거기 사업장을 앞으로 맡게 될 터이니깐은 내가 김병순 의원을 통해서 지금 운동을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서 이제 하게 되면 준다, 또 어느 혹자에 대해서는 거기에 대해서는 김병순 의원한테 교제비를 지금 할라니까 돈을 빌려주라 이렇게 해서 썼기 때문에 금년 1월에 가서 이제 군수가 다른 업자에게 계약을 떡 하니까 이것은 우리가 사기에 걸렸구나 하고 이 사람을 한 10여 명이 광주에서 만나 가지고서 너 그러면 고발해라 국회의원은커녕 국회의원 이상 된 사람이라도 그런 나쁜 사람이라면 고발해서 돈을 받아 내어야 되지 않느냐 이렇게 써 가지고 도장을 찍으려고 하니까 도장이 없다 그래 가지고 피해 나와 가지고 서울로 도망질한 놈을 서울까지 와서 붙잡아 가지고 서울 종로 모 무슨 여관이라고 써 있읍니다. 그 여관에서 강제로 저 사람들이 쓴 채권자들이 쓴 그 고발장에다가 도장을 강제로 억지로 눌러 가지고 자기들 채권자들로 하여금 광주지검에다가 우송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송된 것이 언제냐? 1월 중인데 광주에 와 가지고 그것을 보고 담당검사가 ‘조’ 씨라고 되어 있어요. 조 검사한테 아는 사람을 통해서 알아보니까 한 달 전에 이 서울지검으로 보냈는데 이것이 어떻게 되어서 신문에 난 근거를 모르겠다고 조 검사 담당검사는 자기도 참 우스운 일이라고 이런 말씀을 하더라는 것을 전해 들었읍니다. 그러나 답답한 가슴을 부여안고 서울에 와서 그동안 저는 4월 9일 자로다가 서울지검에다가 고발을 했읍니다. 무고죄로…… 고발했더니 이것을 보내오고 저는 이제 죽여 주라 살려 주라 하면서 아직 만난 일은 없읍니다마는 그 난데없이 지난 엊그저께 13일 오후 1시 반에 저한테 검찰에서 나와 달라고 그랬어요. 가 보니까 그 사람이 나타나 있었읍니다. 박형규라는 사람이…… 그래 그 심문을 받고 있고 대질심문해서 한 두어 시간 받았읍니다. 그래 사실 여기에 쓴 대로 저는 원체 그전부터 빚이 많아서 채권자의 독촉에 임시방편하느라고 다른 데로 도망을 하려고서 임시방편으로 그렇게 한 것이 너무나 김 의원한데 죄송스럽게 되었읍니다 하는 것을 거기에서 검사 앞에서 말을 하고 여러 번 검사가 물어도 그런 사실대로 사실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니까 그래 가지고 무고로 그대로 성립이 되었는지 저는 가라고 그러고 나중에 들으니 오후 4시를 기해서 서대문교도소에 지금 들어가 있는 사실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제가 그야말로 제 생각컨대는 제가 특징이 무엇이냐 하면 우리 선거구에서…… 그저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것 하나인데 내가 그야말로 10년 지난……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또 이것도 한 10년 지나니까 나중에는 사기혐의꾼까지 된다고 신문에 얻어맞은 것은 대단히 우리 국회의원 전체를 위해서 너무나 나로 해서 일불 이 살육통 이라더니 매우 불명예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신성한 국회의원에 대한 이런 누를 끼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느냐 하고 국회를 내가 이것이 밝혀질 때까지는 안 나오려는 결심을 했었읍니다마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13일을 기해서 이것은 무고죄가 성립이 되어서 감옥소에 들어가 있고 다른 친구들도 권하고 해서 어서 바삐 여러 선배․동지 의원 여러분의 의아도 풀어 드리고 또 한 품속에 넣어 주십사 하는 것을 간언하기 위해서 이 귀중한 시간을 빌려서 이런 말씀을 올리게 된 것을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