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읍니다. 보고사항이 있겠읍니다.

보고를 올리겠읍니다. ―휴회에 관한 건―

아까 보고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일 하룻동안 상임위원회의 활동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본회의를 휴회하기로 총무회담과 운영위원회에서 합의를 보았읍니다. 여기에 대해서 여러분께서 이의가 없으십니까? 이의 없으시면 내일 하루 7월 11일 1일간 본회의를 휴회할 것이 가결된 것을 선포합니다. ―시국대책에 관한 연설―

다음 의사일정 제2항 시국대책에 관한 연설을 상정합니다. 민주공화당의 정구영 의원께서 연설하시겠읍니다.

존경하는 국회의장 및 동료 의원 여러분! 본 의원은 지난 이틀 동안에 걸친 민정당과 삼민회 측의 시국수습에 관한 고견을 들을 기회를 가졌읍니다. 이제 70이 다 된 본인이 이 처녀연설을 통하여 민주공화당을 대표하여 우리의 의견을 말씀드릴 기회를 가진 것을 감개무량하게 생각합니다. 본 의원은 이 자리가 남의 잘못을 추궁한다든지 자기변명을 하는 곳이 아니요, 진실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의 안정된 생활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 여야가 서로 가슴을 털어 이야기함으로써 엇갈렸던 의사가 상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우리 스스로의 잘잘못을 먼저 돌이켜 생각하고 서로 폭넓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며 협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이라고 믿고 있읍니다. 옛말에도 ‘천시 가 불여지리 요 지리 가 불여인화 ’라는 말이 있읍니다마는 우리의 여야관계도 그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는 잠깐 눈을 감고 답답했던 지난 반년을 더듬어 봅시다. 국민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 정치인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우리는 다 같이 자성해 보겠읍니다. 그러면 우선 새로운 민족적 지도세력을 지향하는 집권당인 우리 공화당의 자세는 과연 바람직한 것이었던가 하고 본 의원은 우리들 스스로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의 눈초리를 돌려봅니다. 이미 이틀간에 걸쳐 야당 측의 영수급 의원들로부터 신랄한 비판이 있었읍니다만 우리는 그 책망 속에서 사리가 합당한 것이 있다면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모든 악과 부정의 권화 는 오직 여당뿐이요, 모든 선과 정의의 화신은 오직 야당뿐이라는 관념은 시정되어야 할 비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이 시점에서 이 사람은 뼈저리게 자책하는 바가 있읍니다. 그것은 첫째 우리가 집권에 대한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정권을 인수받은 데서 연유하는 정책수행의 차질과 지연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당이 새 민정의 여당으로 등장함에 있어 혁정과 민정과의 사이에 확연한 선을 긋는 혁정에 대한 청산작업과 민정에 임하는 구체적이며 단계적인 과정을 밟지 못했던 것을 못내 아쉬워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산과정이 두 번에 걸친 선거를 통해 끝난 것으로만 알았읍니다마는 야당의 대표된 일부 국민의 의사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상금도 정쟁의 초점은 현재와 미래에 있기보다 과거 속에 묻혀 있는 감이 없지 않은 것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본 의원은 필생을 의원정치에 바친 영국의 저명한 재상 처칠 경이 ‘현재가 과거의 비판을 일삼는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수 없다’는 그러한 말을 한 것을 한 번 더 상기하게 됩니다. 여기에 관련해서 둘째로 우리가 반성하는 바는 국민에게 희망적이며 실현성 있는 꿈을 안겨 주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자립경제의 건설이니 조국 근대화니 또는 민족중흥이니 하는 의욕적인 구호를 많이 내세웠읍니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를 뒷받침할 만큼 전진적인 것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하기야 우리의 역사적 침체성을 벗어날 수 있는 불타는 작업이 없었던 것은 또한 아닙니다. 20년을 넘은 전력기근으로부터의 해방, 기간건설재로서의 시멘트의 자급, 비료의 자급자족을 기하기 위한 비료공장의 건설, 석유의 자급과 많은 공업원료를 보급하는 정유공장의 완성, 농지확장을 위한 적극적인 시책 그리고 수출 1억불선 초과예견 등 일찌기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일들이 착착 이룩되고 또한 이룩될 단계에 있는 것은 누구나 인정해야 할 엄연한 사실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국민의 기대에 전적으로 부응하기에 아직도 거리가 먼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우리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가도 가도 머나먼 이 거리를 문제 삼고 있읍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것은 실현가능성이 희박하고 실현성이 있는 것은 희망적인 것은 못 된다는 한국적 비극을 되씹으며 우리 여당은 지금도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를 비판하는 분들 역시 이렇다 할 대안이나 비젼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공통된 고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국민에게 꿈을 불러일으키고 전진적 의욕을 북돋아주는 것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조속히 그리고 끈기 있게 추구되어야 할 값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우리 당이 이 방면에 있어서 너무 산만하고 단편적인 경향으로 흘렀던 흠결을 본인은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세째로 이렇다 할 성과 없이 국회가 공전을 되풀이하고 전 국민에게 좌절감을 준 데 대해서 여당으로서 보다 더 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여당만이 져야 할 책임은 아닐는지도 모르겠읍니다마는 어떻든 국회기능을 주도하는 사명을 지닌 여당으로서 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료 의원 여러분! 차제에 본 의원은 우리와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야당의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 여당의 눈에 비친 야당의 모습에 대해서도 몇 가지 우견을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야당의 본질은 우리는 ‘폐하의 명예로운 반대당’ 또는 ‘내일의 여당’이라는 대명사를 붙이고 있는 영국의 전통이나 정치도의에서 찾아볼 수 있읍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전통과 도의가 우리 정계에는 아직도 아득한 이정표로 남아있다는 서글픈 심경은 비단 이 사람만의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항상 ‘구태의연한 정쟁’ ‘대안 없는 비난과 생트집’ 등 날카로운 비판의 소리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야당이 말하듯이 정부와 그 권력주변의 모략과 중상에만 기인한 것이겠읍니까? 다수결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체제에서 어디까지나 야당의 활동은 건전한 소수의 의견을 반영 가미할 수 있도록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의 제시나 정책적 의견의 표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야당은 그러한 본연의 자세와는 담을 쌓은 채 오히려 정책외적 정권투쟁에만 집착된 감이 짙다고 한다면 이것이 너무 과한 말씀이겠읍니까? 그리고 당선축하의 꽃다발이 채 시들어지기도 전에 당선무효소송과 정권사퇴 강요투쟁이 전개되어야만 민주주의 충실한 야당이 되고 또한 자유민주국민이 되는 것이겠읍니까? 시종일관 선거의 결과를 부정하는 언동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정쟁만을 유발하는 태도가 과연 민주정치의 대도이겠읍니까? 의원 여러분! 여야당은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서 그 처지가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의 야당이 내일의 여당이요, 오늘의 여당이 내일의 야당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정치엔 보복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당인들 상대방의 과거를 모를 리 없고 또한 그들의 과거가 마냥 깨끗하고 칭송 받을 것만은 아닌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지난번의 선거를 통해서 국민의 심판을 받은 바이며 또한 그것이 전진적인 자세가 될 수 없음을 확신하기에 우리는 굳이 상대방의 쓰라린 전죄를 들추려 하지는 않습니다. 존경하는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 극소수의 야당 정치지도층은 ‘민주주의의 수호’를 자기들만의 전매특허처럼 과장선전합니다마는 그러한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사고방식 자체가 벌써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지 않겠읍니까? 민주주의란 상대방…… 상대적 선의 실현과정이며 결코 일방적인 독선만으로써 이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은 일상다반사에서부터 모든 의회의 운영 및 입법사항을 정권쟁취에 직결시키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극한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것을 곧 애국인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들은 극렬한 어투로 남의 인신공격과 비방을 예사로 하며 남의 충정과 노력을 왜곡하거나 외면하려 하면서도 자기들의 잘못은 한 번도 언급하는 바 없이 이를 애써 숨기고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도 부인하려고 합니다. 어떠한 사실이든 이미 우리가 겪어온 과정은 행불행 간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것만은 사실이 아니겠읍니까? 그 어느 때인가 어떤 정치지도자가 ‘올 것이 왔다’ 그러한 찬사를 보내고 ‘애국적 처사’라 그러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해 마지않던 성명도 그리고 5․16 군사혁명의 합헌성과 군정이 합법 정부임을 유엔을 통하여 전 자유세계의 승인을 받게 한 국제적 기록도 한 구절 한 구절 영원한 역사의 책갈피들 속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우리는 해방 후 18년의 헌정사를 통하여 두 차례에 걸친 비정상적 정권교체만을 거쳐 바야흐로 제3공화국 정부를 수립하였읍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정권의 평화교체에 대한 전통수립과 정국안정을 위한 공동노력이 갈구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정계 극소수의 지도층에서는 ‘후진국 정권교체는 정상적일 수 없다’는 계산아래 표면으로는 헌정수호를 주장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비정상적 정권교체의 바탕 조성에만 골몰하고 있음은 일부 학생들의 철없는 난동을 ‘우리 민족의 전진을 갈구하는 몸부림’이라고 규정짓는 것만으로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미상불 이것이 참다운 민주주의를 건설하겠다는 건전야당의 진정한 모습이 못 된다는 것은 상당수의 야당 인사들도 이를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젊으신 모 당 의원 한 분은 ‘정치인들이 학생데모에 기대를 건다는 것은 국회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통탄하였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지금 야당 내에는 확실히 두 개의 정치적 자세가 있다’는 말도 나는 들었읍니다. 헌정질서와 대의정치수호를 다짐하였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이에 본인은 정말로 눈물겨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읍니다. 이러한 건전한 상식에 바탕을 둔 야당 정치인이 어찌 이 한 분뿐이겠읍니까? 본 의원은 헌정의 룰 안에서의 여야협조에 의한 난국타개의 한 가닥 희망이 여기에서 싹을 틀 것으로 확신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동료 의원 여러분! 집권자의 정치권한의 행사에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정치의 요체라면 우리 정치인의 정치활동 내지 정치투쟁에도 스스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원칙일 것입니다. 일찍이 모 당의 영도자는 소위 유한정치를 주장한 일이 있읍니다. 그 뜻은 결코 집권자의 유한성만이 아니라 민주사회에서의 정치활동의 책임성과 정치투쟁의 유한성도 동시에 강조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 지금부터 본인은 눈을 돌려 우리의 당면한 현실 문제를 살피고 그 해결을 위한 우리 당의 의견을 밝히고자 합니다. 민정 수립 후 불과 6개월 만에 계엄이란 비상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민 여러분의 정치적 사회적 자유를 일부나마 제한한 데 대하여 그 직접적 원인이 어디에 있었던 간에 여당인 우리 민주공화당은 그 책임을 통감하여 의원 여러분과 국민 여러분에게 당을 대표하여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오늘 이 시점에서 어떤 분들은 계엄 선포의 타당성 여부를 말하는 이도 있읍니다. 그러나 6․3 사태를 보고 더구나 그 뒤에 오게 될 상상하기에 족한 가공할 사태를 계엄의 선포 없이 평온리에 수습할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믿을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부의 예방조치를 만부득이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어떤 주장도 ‘국가안전이 지상과제’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평화 아닌 휴전의 상태에서 호시탐탐 무력에 의한 재침과 사상적 교란에 의한 간첩침략의 마수를 뻗치고 있는 북괴와 대치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기할 때 나라의 기본질서를 뒤흔드는 난동화한 학생들의 실력행사를 수수방관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의 안녕과 공공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진 정부가 취할 태도가 아니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더구나 이번 6․3 학생데모 주동분자들 배후에는 확연히 불순세력의 배후접선이 있었다는 확고한 증거를 당국에서 이미 포착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이 전율 가공할 사태를 미연 방지한 정부의 처사를 공박하여 오히려 난동 학생들의 6․3 데모를 일제에 항거했던 민족정기의 발로인 저 3․1 운동이나 반민주독재에 궐기했던 4․19 학생혁명과 동렬에 위치시켜 이와 대등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정치지도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의 양심과 양식을 다시 한번 의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6․3 사태의 민족적 비극 중에서도 대통령의 하야와 과도내각의 구성과 선거의 재실시를 요구하는 등 나라의 전정 이 먹구름 속에 파묻혀도 오직 정권쟁취의 망집 만을 노출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6․3 사태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고 해서 하등 이상스러울 것도 없지마는 금후 법에 의하여 그 난동 배후의 불순성이 밝혀지는 날 이들을 비호하고 찬양했던 그분들은 그들의 경솔한 시세편승을 어떻게 국민 앞에 합리화시키려는지 자못 짐작하는 바가 있읍니다. 그러면 3․24에서 6․3에 이르기까지의 일부학생들의 데모 요인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그 직접적 동기의 일부가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한 일종의 민족감정의 폭발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일응 수긍이 갑니다. 사실 근 반세기 동안에 걸친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생각할 때에 양국 국교정상화의 구체적 방안이 어떠한 형태 또는 어떠한 내용이든 간에 우선 거기에는 민족적 울분이 폭발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어느 의미로는 민족정기의 당연한 발로라고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전 자유세계의 빈축을 무릅쓰고서 초기의 학생데모를 애국충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던 것도 그러한 순수한 판단에서였던 것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전에 그 학생들의 심적 좌표위에 자리 잡고 있던 또 하나의 영상을 간과할 수는 없읍니다. 그것은 민족주체의식을 소리 높이 외쳤던 우리들의 현실을 초극하지 못한 데 대한 자학적인 반발의식, 국민 생활 기반의 위축에서 오는 기대착오의 감득 , 민정이양을 기점으로 하는 혁정의 본질에서 유래된 위축감에서의 해방감 등 일련의 표현키 어려운 착잡한 심정의 누적이 심기 발랄한 청년학생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을 것이라는 점도 일응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단순한 젊은 기백의 발산을 위한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불행한 결과는 오지 않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존경하는 의장! 그리고 동료 의원 여러분! 지난 6월 26일의 대통령 특별교서에서도 지적했듯이 소수 정치인의 무책임한 언동과 이를 반영하는 일부언론의 무절제한 과장 왜곡 선동 등이 학생들의 충동적 감정의 격앙에 가세하여 군중심리를 자극하고 급기야는 우리가 경계하여야 할 불순세력의 음성적인 작용의 촉수를 뻗쳐 오늘의 사태로 번졌다고 하는 것은 양식 있는 이의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은 결코 6․3 사태의 책임을 남에게만 돌리려는 말은 아닙니다. 여당과 정부는 그에 대한 주요책임을 지고 과감하게 또한 소신껏 그 시정책을 추진시키겠다는 각오 아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의 비상사태에 즈음하여 의장의 정성어린 주선으로 여야협조에 의한 초당적 공동의 광장에서만 헌정질서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의견의 합치를 보고 진지한 협상을 모색하게 되었음은 진실로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고 하겠읍니다. 일주일에 걸친 우리들의 노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거리감이 없는 연대의식에서 호양과 이해와 타협의 정신으로 제기된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서로의 마음속에서 합의점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계엄의 조속 해제를 위한 노력 원칙, 항구적 국정안정책의 수립, 학원의 자유보장을 위한 6개 입법원칙과 각급 학교의 조속한 개교를 위한 건의, 반국가적 행위의 주동자들 제외한 구속자의 석방 등 건의, 정치자금 양성화의 입법화, 정권의 평화적 교체를 저해하는 비민주적 독소의 제거를 위한 공동노력 등 이제까지 설왕설래하였던 기본 과제에 대한 처리원칙이 일단 이심전심으로 합의된 것으로 나는 듣고 있읍니다. 그런데 해엄 의 시기와 비상사태 재발의 방지를 위한 사전 보장책의 강구 즉 선 보장 후 해엄의 주장과 선 해엄 후 보장의 의견대립이 조정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몌별 을 고하고 말았던 것은 심히 유감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동료 의원 여러분! 그토록 많은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고 경화되었던 서로의 자세를 풀어 양보와 협조가 오가는 여야의 참다운 모습을 되찾은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그간의 꾸준한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 데 대한 책임은 굳이 논할 필요는 없을는지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구멍 뚫린 외양간을 그대로 두고 다시 소를 매어 들이는 그러한 우거 를 어느 누가 감히 옳은 일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까? 따라서 우리로서는 어떠한 보장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일의 순서로 보아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사전 보장책이란 첫째 헌정수호의 대본 을 세워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 확립을 다짐하고, 둘째 국민적 불신 및 불안요인을 제거하고, 세째 서정일반 을 쇄신하며, 네째 정국안정과 여야협조를 실현시키고, 다섯째 학원 및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여섯째 국가안전과 기본질서 유지를 위한 파괴활동을 규제하는 등 대통령교서에서 밝힌 대원칙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노력은 결국 민생안정과 국가발전이란 근본목표 달성을 위하여 총집결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주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헌정을 수호하는 대전제에서 출발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대전제가 무시되는 날 어떠한 노력도 그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적 불신 및 불안요인의 제거라 함은 부정부패의 과감한 숙정, 시정방향의 뚜렷한 제시 그리고 사회의 안정과 서정일반의 쇄신으로 정부시책의 미온적인 침체성에서의 과감한 탈피와 정책적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정국의 안정은 결국 정치의 본거를 민의의 광장인 국회로 끌어들이고 국회의 정상적 기능을 되찾음으로써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이니 만큼 일단 와해된 것이기는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이성과 인내로써 여야협상을 재개하여 더욱 진지하고 겸허하게 타협점을 발견하기 위한 공동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국회 내부에서 몇 가지 합의를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여야협조에 대해 아예 외면하려는 분도 있읍니다마는 본인은 이 길만이 오로지 국민의 수임자로서의 우리가 난국을 타개하는 가장 온당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국민적 대전환이 물론 절실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그와 같은 노력에 의한 국민적 여망의 부응 없이 어찌 국민적 대전환을 바랄 수 있겠읍니까? 협상의 길이 또는 호양 및 관용의 길이 진정 복 받지 못한 이 나라와 이 겨레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 민주공화당은 모든 압력과 비난과 굴욕을 참고서라도 그 험난의 길을 걸어갈 것을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학원의 자유보장을 위한 조치는 일전의 협상에서 합의된 내용이 설령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합의선을 바탕으로 하여 입법화할 것을 노력할 생각입니다. 또한 공안보장 문제에 있어서도 협상 진행과정에서 논의되던 원칙이 그대로 반영되어야 할 것으로 믿습니다. 여기서 다시 이 두 가지 법의 입법취지에 대해서 잠깐 여러분께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정권의 안전유지를 위하여 또는 재집권을 위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고 하는 것 같은 오해를 하고 계시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이번 비상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학생들의 도에 넘친 현실 참여나 파괴적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기에는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 같겠으나 보다 다수국민의 복지와 안녕을 위하여 국가기본법인 헌법에 유보되어 있는 한계 내에서 몇 가지 규제를 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헌법 제27조4항에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읍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입법을 하자는 것입니다. 학원 본연의 자주성을 확립하며 학생들의 무제한한 현실 참여를 방임하는 데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폐단 특히 학생의 정치집단화 내지는 정치적 압력단체화하는 폐풍을 일소하는 동시에 근간 말이 많았던 소위 학원사찰의 금지를 법률로써 못을 박고 학구활동 및 자치활동의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함과 더불어 음성적인 정치조직의 제거와 학원을 이용하기 위한 외부로부터의 작용을 배제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명실 공히 진리탐구의 전당으로서의 학원 본연의 자세를 확립시키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4․19 후에 팽배해진 일부 학생들의 정치세력화와 5․16 후에 우리들의 뇌리에 비친 일부 군인들의 정치세력화의 인상은 뜻 있는 우리 국민으로 하여금 걱정하는 바가 되어 있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정부이든 그들을 본연의 자세로 바로 잡아주는 일대 전환의 단 을 내리지 않고서는 이것이 앞으로 두고두고 광정 할 수 없는 정치적인 일대 암이 되리라는 것을 심려하는 데는 여야의 구별이 없을 줄로 나는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파괴활동 방지를 위한 대책 중 핵심이 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언론관계의 규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의견을 달리할 수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역시 헌법 제18조5항에서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는 규정에 근거를 두고 언론의 무절제한 권리남용 이른바 ‘언론의 횡포’ 이것으로부터 선량한 개개인의 권리와 국가이익을 보호하려는 데 그 근본취지를 두고 있읍니다. 언론이 일제의 탄압하에서 오직 우리 민족의 등불로서의 구실을 다 해 왔고 다시 독재치하에서의 그 반항정신은 국민들의 답답한 울분을 대신해서 분출시켜 준 것이 사실이요, 또 민족항쟁의 횃불로서 국민들의 가슴에 깊은 선도적 감명을 주었던 것을 인정하는 데 우리도 인색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오늘날의 모든 언론이 언제나 반드시 올바른 길을 걷고만 있는가 하는 데 대해서는 의문이 많은 것도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6․3 사태를 정점으로 전개되어 온 일련의 학생데모 사태에서 날마다 날마다 신문 1면과 3면 등을 메우는 사진화보나 자극적인 제호하에 실려진 과장보도와 왜곡보도 등에 접하는 시민들의 가슴에 귀거래하는 감정이 과연 무엇이었으며 녹음 채취된 함성 섞인 충격적 해설방송을 들은 우리들의 귀에 무엇을 메아리쳐 불러일으켰던가 이제 냉정히 회상해 볼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과연 그것은 사회질서의 안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암운에 싸인 시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등불이 되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성 잃은 학생들의 흥분을 돋구어주기 위한 흥분제였던가에 대해서 각자가 서로 판단을 달리할는지 모르지만 누구의 입에서나 ‘이것은 너무 심하다’ 이런 말이 튀어나올 정도의 것이었다면 설혹 그것이 사실 보도라는 구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편집의 기교와 공평의 도의 중 어느 것에 치중되었을 것인가는 관계언론인 자신들이 더 잘 알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동료 의원 여러분! 언론은 민주국가의 이른바 제4부로서 원칙적인 자유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그 자유가 남의 권리를 침해할 만큼 월권적일 수도 없거니와 국가의 기본질서를 문란시킬 만큼 절대적일 수도 없읍니다. 권리나 자유에는 엄격한 책임과 자제가 있어야 하고 그 자제력이 제 구실을 못 할 때 국가는 마땅히 어떤 한계를 그어 국가의 이익과 선의의 제3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헌정의 모국이라 불리우는 영국에 있어서도 신문윤리위원회의 자율적 규제제도는 오히려 영국의 법률보다도 더욱 강력한 것으로서 언론의 책임성과 자제의 전통이 확립되어 있다고 듣고 있읍니다. 영국의 경우 언론은 독자에게 패하는 수가 비일비재라고 들었읍니다마는 우리의 경우에는 ‘신문과 싸워서 이기는 수가 없다’는 체념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지배적인 것으로 나는 알고 있읍니다. 한편 쿠바사태 그 이후 고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국가이익의 수호를 내세우고 언론규제조치를 시도한 바가 있다고 들은 일이 있읍니다. 또한 최근 서독에서도 연방헌법에 언론규제조항을 삽입하려고 토의 중이라는 말도 듣고 있읍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우리보다 앞서 수백 년의 장구한 민주주의의 연륜을 쌓은 국가에서도 어떠한 형태이든 그 규제가 가하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후진국일수록 언론은 거의 치외법권적 절대권을 행사하고 있지 않으면 그 반대로 완전히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있으며 언론이 미치는 영향은 가위 예측키 어려운 바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여야정치인 및 언론인의 지혜로운 ‘대화’가 시급히 요청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원 여러분! 이상 말씀드린 보장책에 대한 입법취지가 그러한 것이라면 여러분 다대수가 이에 반대하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것은 여하한 난관이 있어도 기필코 성취되어야 할 최소한의 안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도 여야가 의견을 달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야당의 일부가 우리하고 의견이 반드시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의견을 달리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지겠읍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 어느 한 쪽도 자기와 의견을 달리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사상을 갖지 않는’ 역적일 수는 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몇 번이고 강조하였읍니다마는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다시 여야협상을 재개해서 원만한 합의하에 이러한 보장책을 같이 협의하고 같이 마련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만일 불행히도 끝내 협상이 이룩되지 못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부득이 다음 총선거를 통하여 국민들의 최고심판을 받을 것을 전제로 우리의 소신을 관철시킬 각오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야협조가 보다 더 기본적이고 보다 더 중요한 보장책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거듭거듭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 밖에 우리 당의 시책으로서의 시국수습 방안으로서는 첫째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대소 부정부패를 과감히 적발하여 의법조치할 것이며, 둘째 국정전반에 대한 과감한 쇄신으로 더욱 전진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며, 셋째 외교 국방 및 경제재건을 위하여는 대통령께서 약속한 바와 같이 명실 공히 초당적인 자세를 갖추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획기적 심기일전은 앞으로 국회에 제출될 추가경정예산 심의와 그에 앞서는 국정감사에서 그 촉진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제3공화국 수립 이후 6대 국회가 처음 당하는 중대한 과업이기에 모름지기 우리는 최대의 성의와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믿는 바입니다. 본 의원은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인 감사권과 예산심의권의 행사가 만유루 없이 수행되기 위하여는 이에 앞서 최소한의 안전책이 강구됨과 더불어 현재의 비상사태가 하루바삐 본연의 사태로 회복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우리는 상호 협력하여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하고 조속히 국회의 기능을 회복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완수에 충실하자는 것이 우리들이 취할 태도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의장 그리고 의원 여러분! 우리는 지금 모든 것을 잃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미지수의 미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결코 또 하나의 난국이요 또 하나의 만성적인 악순환일 수는 없다고 확신합니다. ‘한 나라 한 헌법 한 운명’ 아래에서 다 같은 길을 가는 우리 여야정치인은 내일의 광명을 위하여 가슴을 열고 서로 손을 잡고 참된 용기를 가질 때가 왔다고 확신하여 마지않습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신 것을 깊이 감사드립니다.

처음에 가결한 바와 같이 내일 하루는 본회의를 휴회하겠읍니다. 월요일 날 다시 회의가 있겠읍니다. 이로써 산회를 선포합니다. ◯출석 의원 수 ◯청원 △청원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