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제1차 회의를 개의하겠읍니다. 보고사항이 있겠읍니다.

보고를 올리겠읍니다. ―비상계엄선포에 대한 보고―

보고사항이 끝나고 제2항에 들어가기 전에 김재광 의원으로부터 이 계엄선포에 관해 가지고 발언신청이 있읍니다. 김재광 의원 계십니까? 안 계세요? 안 계시면 그 발언은 다음으로 미루고 제2항 비상계엄선포에 관해서 정부로부터 보고가 있겠는데 제일 먼저 국무총리의 말씀이 있겠읍니다. 국무총리 나오세요.
존경하옵는 의장 각하! 그리고 의원 여러분! 이 사람이 오늘 이 자리에 나와서 정부가 지난 6월 3일 20시를 기하여 수도 서울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불행한 사태에 대하여 의원 여러분에게 보고드리게 된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하는 동시에 아울러 국민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읍니다. 이제 이 사람은 정부가 수도 서울에 만부득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몇 가지 이유를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의원 여러분의 양해를 얻고자 하는 바입니다. 의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3․24 데모 이후 가열적으로 지속되어 오던 학생데모는 그 횟수를 거듭함에 따라서 그 성격과 방법이 점차로 변질되어서 6․3 데모에 이르러서는 평화적 시위라는 범주를 벗어나서 완전히 파괴적이고 무법적 또는 반국가적이어서 이적 인 면모를 그대로 나타내게 된…… 또 폭동으로 화하였던 것은 여러 의원께서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즉 지난 3․24 학생데모 이래 수차 산발적인 데모는 대일외교의 자세 시정, 부정부패의 근절 등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정부는 그 동기를 선의로 이해하고 순수한 것으로 믿어 왔고 또 그 방법도 비교적 평온적인 것으로 볼 수 있었읍니다마는 그 후 데모의 횟수를 거듭함에 따라서는 그들의 주장은 반정부의 경향으로 전환되고 그 행동과 방법은 파괴화하고 나아가서는 폭력화함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6․3 데모까지는 정부는 그들이 학생이라는 신분을 존중하여 그 동기를 어디까지나 순수한 것으로 보아 왔고 또 국민으로부터는 정부가 학생에게 대하여 지나치게 유화적이고 타협적이고 더 나아가서는 무력정부라는 일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참기 어려운 여러 고비에서도 인내와 자중 그리고 관용으로써 이에 대하여 왔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정부의 선의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아니 이와 같은 관용태도를 오히려 정부의 무력으로 멸시한 나머지 지난 6월 3일에는 일부 불순학생과 시정의 부랑배들이 합세를 하여 폭력으로써 정부를 교란하려는 폭거에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다중의 폭력을 이용하여 경찰 및 군의 장비를 강취 사용하고 전 시민의 호응을 호소하였을 뿐만이 아니고 정부 청사를 비롯한 공공건물과 공공시설과 기물을 무차별 파괴 또는 방화하는 한편 경찰관서를 포위 또는 강점하는 등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수도 경찰의 기능은 마침내 폭력화한 데모대로 말미암아 거의 마비상태에 빠지고 완전히 교란된 수도 서울의 안녕질서는 군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수습 유지할 수 없는 극도의 무법 교란상태를 자아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현재 우리나라가 놓여져 있는 위치를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우리는 휴전으로써 북한괴뢰군과 무력에 의한 교전만은 잠시 소강상태에 놓여 있읍니다마는 이 휴전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이고 북괴군과의 전쟁상태는 상금 지속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고 휴전 후에 있어서 적군의 도전행위가 그침 없이 지속되어 왔고 또 수도 서울 북방 불과 수십 킬로에 점거하고 있는 괴뢰의 수십만의 중무장군은 대한민국의 재침을 노려 군비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북괴는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에 의하지 않고 간접침략 즉 간첩의 대량 남파, 전파 및 전단 등에 의한 극악한 선전․선동 등으로 대한민국의 사회질서에 대하여 치열한 교란작전을 전개를 하고 그들의 최종 목표인 비무력에 의한 대한민국의 전복을 향하여 총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더우기 3․24 데모 이래 북한괴뢰는 우리의 학생과 청년 대중에 대해서 파괴적 방법에 의한 대정부 극한투쟁을 더욱 맹렬히 충동 고취하고 있었으며 또한 우리나라는 현재 외관상으로는 전쟁상태에서 벗어나서 평온한 평화적인 환경에 놓여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마는 실질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무력공격보다 더 심각하고 위협적인 준전시상태에 처하고 있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대북괴 정치환경에 입각하여 일부 불량학도들이 정체를 적나라하게 또한 집약적으로 그 면모를 드러낸 6․3 데모의 가치를 평가한다면 6․3 데모에 가담하여 난동을 자행한 일부 불순학생과 시정 불량배들의 참뜻이 어디에 있었든 또한 그들의 난동이 가져올 가공할 결과에 대해서는 의식하였든 못 하였든 6․3 데모에 그들의 파괴적인 난동행위와 그 투쟁방법은 대한민국에 대한 북한괴뢰의 비무력에 의한 침략정책의 의도와 그 방법에 완전히 합치되는 양상과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발을 맞추어 북한괴뢰로부터 수시로 내려보내는 암호전파와 지령과 일반방송에 의한 선동․선전 등이 있었을 뿐만이 아니고 특히 이와 사태를 같이하여 가지고 북한괴뢰군이 심상치 않은 도전적인 동태를 종합적으로 판단을 해 볼 때 이러한 긴박한 초비상사태에서 극도로 교란된 수도 서울의 안녕질서를 조속히 회복하여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최소한도의 지역에 국한하여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심상치 않았던 북한괴뢰군의 동태에 관해서는 너무도 극비에 속하는 사항이기 때문에 국방부장관께서 국방위원회 위원 여러분에게 비공개로 상세한 보고를 드릴 것입니다. 합헌적인 절차에 의해서 수립된 정부의 통치기능과 민주질서의 유지와 아울러 극도의 교란상태에 빠진 수도 서울의 사회질서를 회복 유지하기 위하여 만부득이 취해진 금반의 정부의 조치에 대하여 의원 여러분께서는 정부의 고충을 깊이 양찰하시고 하루빨리 계엄이 해제되어 정상적인 형편에 돌아갈 수 있도록 최대의 협조와 아낌없는 편달을 하여 주실 것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그리고 금번의 계엄이 일부 불량층의 불법시위의 발본색원에 있는 만큼 정부는 일반시민생활에 대하여서는 추호도 위축 또는 국민의 기본권의 보장에도 만전을 기하기에 최대의 노력을 다하고 있읍니다. 국민이나 정부는 이번의 불행한 사태를 결코 민족의 하나의 비극으로서만 개탄하지 않을 것이며 이를 계기로 하여 새로운 민족중흥의 도약대로 삼을 것이고 정부도 깊이 다 반성을 하여 민의의 소재를 파악하여 심기일전하고 과감한 개혁과 시정 의 혁신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코자 새로운 각오와 용기로써 부하된 책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매진할 것을 국민 여러분 앞에 엄숙히 맹서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부로부터 보고할 장관의 순서가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국방부장관, 문교부장관 이러한 순서올시다. 순서에 따라서 보고해 주세요.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방금 국무총리께서 지난 3월 24일 이후부터 지속되던 일부 학생에 의해서 시작된 학생데모가 급기야 6월 3일의 난동의 결과를 가져온 데 대해서 그 결과로 말미암아 부득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게 된 데에 대한 경위와 그 결과에 대한 보고를 드렸기 때문에 본인이 이 자리에서 새삼 다시 자세한 보고를 드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마는 그러나 그동안의 자세한 경과를 여러분께 보고를 올림으로써 기억을 다시 하는 데 참고가 될 줄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3월 24일부터 5월 20일까지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번에 여러분에게 이미 보고드린 바 있읍니다마는 그러나 3월 24일에 시발한 그 데모가 6월 3일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여러분의 기억을 새롭게 하여 드리는 의미에서 그동안 6월 3일까지에 대한 것을 개괄적으로 보고를 올리겠읍니다. 3월 24일 당시의 학생데모는 평화적이면서도 학생들의 충정을 표시한 시위로 시작되었읍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의 현실참여의식의 가열과 일부 민간인의 선동이 이에 개입함으로써 이 데모양상은 차츰 변질하기 시작하여 학생들은 차차 그 이성을 잃기 시작하였고 친진보 반보수라는 이해 못 할 구호를 부각시키면서 단식이라는 극한투쟁과 극렬한 반정부데모로 발전되었고 마침내는 파괴와 선동 그리고 일부 불량배의 개재로 혼란은 극에 달하여 경찰의 힘으로는 이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도달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3월 24일 전후의 상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3월 21일 서울중․고등학교에서 열린 야당 강연회와 이에 뒤따른 군중의 시위에 영향을 입은 3일 후 3월 24일 하오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일부 학교에서는 일본 제국주의를 타도하고 평화선을 사후하자는 구호 아래 한일회담을 굴욕외교로 단정하고 데모를 감행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학생데모는 평화적이었으며 정부로서도 질서를 문란케 하지 않는 한 관용으로 이에 대하였으며 한편 연행된 학생들까지도 모두 훈계방면하게 하였으며 또한 한일회담의 당분간 중단과 대통령의 학생 접견, 학생시위를 애국적인 행동으로 하는 등 정부로서는 최대의 성의로써 이에 대하였던 것입니다. 4월 17일 전후로 해서 일어났던 사태를 간단히 말씀드리면 4․19 4주년 기념일을 전후하여 3․24 데모 당시의 일부 주동학생이 석방되지 않고 또 한일회담이 연내 타결의 기운이 보이자 4월 17일, 4월 18일 서울문리대생 일부는 한일회담 조속 중지와 삼분폭리사건 규탄이라는 구호 아래 산발적인 데모를 감행하여 제2차적인 학생데모의 돌출구를 마련하였고 4․19 행사 주최권을 위요한 한학련 측이 별도 기념식을 거행 후 거리로 다시 진출함에 따라서 4월 21일까지 각 대학이 산발적인 데모를 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데모의 성격은 다소 3․24 때와는 변질되어서 5․16은 4․19의 연장일 수 없다라고 외치며 5․16 이후 처음으로 학생들의 투쟁방향을 노정시켰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학생들의 지성의 회복과 학원으로의 복귀를 수차에 걸쳐서 종용 또는 경고하였으며 학생의 행동이 정치성을 띠게 됨으로써 정부로서는 적당한 저지책을 세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정부는 새로운 조각 으로 학생들의 요구조건을 충분히 시정에 반영할 것도 약속하였으며 구속학생을 전원 석방시키는 조치를 취했던 것입니다. 5월 20일 전후에 일어났던 사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5․16 3주년 기념일을 전후하여 급자기 대두하기 시작한 5․16혁명 재평가 조류에 편승된 서울문리대 일부 학생들은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을 준비하기에 이르렀으며 일부 대학생회장단의 불참통고와 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은 강행되고 검은 관을 앞에 세우면서 반정부적인 데모를 감행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5․16혁명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소위 피의 투쟁을 선언한 후 일부 야당 정치인과 혁신계 성원, 조종을 받으면서 일부 시민과 부랑배 등의 합세로 경찰 기물과 민간 차량을 탈취하는 등 완전 폭도로 화하여 190여 명의 인원에게 부상을 입혔던 것입니다. 이에 정부로서는 이와 같은 학생행위를 본분에 어긋나는 불순한 것으로 규정하였으며 특히 일부 인사의 배후 개재를 중대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학생을 제외한 일반학생에 대해서는 계속하여 관용으로 대하여 대부분을 석방조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상은 전번에 보고드린 바 있으므로 그 개황을 설명드리는 데 그치고 다음 6월 3일을 전후한 사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기로 하겠읍니다. 한학련 데모학생들과 개별행동을 취하여 오던 민족주의비교연구회 계열의 일부 서울문리대 학생들은 5월 30일부터 자유투쟁궐기에 이어서 단식농성에 돌입하고 제4차 행동화의 분위기를 마련하였읍니다. 서울문리대생의 단식투쟁 제4일째인 6월 2일에는 서울대학교 11개 단과대학 학생 일부가 단식에 가세하여 학생 수는 300여 명으로 증가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시내 32개 대학 학생대표들은 5월 31일 서울법대에 모여서 그동안 정부 측과의 타협에서 밝힌 그들의 태도를 돌변하여 오히려 정부의 무성의를 비난하는 한편 극한투쟁을 선언하였고 6월 1일 청와대 입구에서 단식투쟁이 실패하자 6월 2일에는 각 학교별로 데모대를 이끌고 교외로 진출하게 되었읍니다. 특히 고려대학의 일부 학생들은 현 정권 타도라는 자극적인 구호를 외치면서 데모를 감행하여 6월 3일의 비상사태 발전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한학련 대표들의 대정부 건의안을 성의 있게 검토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약속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배신한 학생대표들은 그들의 체면유지와 학교 및 학생 간의 세력권 유지를 위해서 대정부 극한투쟁을 벌렸고 정부 전복의 난동을 야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최악의 사태의 발전하에서도 정부는 학생들의 이성 회복을 호소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인내를 거듭하였던 것입니다. 현 정부 타도라는 반정부적인 고대 데모의 계속적인 연쇄반응을 받은 6월 3일에는 이른 아침 등교와 함께 종전 학생의 데모에서 보지 못하던 험악한 양상을 나타내면서 정부의 전복을 획책하는 양 데모대를 거리로 진출시키고 최종 투쟁목표가 중앙청과 청와대인 양 이곳으로 총집결하여 투석과 난동으로 일대 혼란을 야기시키고 하오에 접어들자 이들 데모대는 완전히 폭도화하였던 것입니다. 이날 데모에는 서울대학교 11개 단과대학을 비롯하여 사립대학 7개 대학의 학생 1만 2000여 명이 하오 3시경 중앙청 앞에서 합류하고 경찰 저지선과 충돌, 데모학생들은 투석과 난동으로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날이 어두워지자 일부 불순 민간인과 부랑배, 양아치 등의 호응 동조를 얻어서 완전히 폭동화하였던바 그 난동상황을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이 난동으로 말미암아 경찰관 600여 명의 중․경상자를 발생케 하였고 군경 차량 20여 대를 탈취하여 그중 2대는 완전파괴를 시켰으며 나머지 차량을 시내로 무질서하게 연행 운행 질주함으로써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하였읍니다. 또한 태평로 및 세종로 등 5개 파출소를 점거하여 시설을 파괴하였으며 2개 파출소에 방화를 자행하였고 5개 경찰서의 시설을 무차별 파손하는 등 또한 중부소방서의 점령을 기도하는 한편 수개소에서 경찰관을 납치하고 그중 5명을 경기도 도청 서무과에 오랫동안 감금 구타하였으며 경찰무기고를 학생이 관리하는 등 위험한 사태를 초래하였읍니다. 또한 저녁 8시부터 10시 사이에는 중앙청 현관에 난입했고 시설을 파괴하는 등으로 수도 서울의 치안은 그야말로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는 막다른 사태에까지 발전하기에 이르러 경찰기능을 완전히 상실케 하는 동시에 모든 행정력이 마비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아까 국무총리께서 계엄선포의 불가피성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합헌적인 절차에 의하여 국민의 손으로 세워진 정부가 일부 불순세력에 의하여 무너지는 악순환을 사전에 예방하고 의회민주정치를 무시하고 말살하려는 난동으로 그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동시에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자유의 보루인 155마일의 반공전선을 위태롭게 하는 동시에 북괴의 궁극목표인 남하적화 를 위한 선전공세의 좋은 계기를 마련하였고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켜 국제적인 고립을 면하지 못하게 할 것이며 대내적으로는 민생문제와 치안유지에 전념하여야 할 치안력과 행정력이 데모의 난동 방지에 소모됨으로써 재건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중도에서 좌절될 것이며 이를 틈타서 각종 사회악이 발호하기 시작하여 선량한 시민생활이 위협당하고 있었으며 더우기 6월 4일에는 일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포함한 전국적인 규모의 데모를 감행한다는 정보를 입수함에 이르러 전국적으로 파급될 이 가공스러운 사태는 지난날 여러 차례에 걸친 그 어느 비상계엄에 못지않은 국가비상사태로 단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량한 시민의 안녕질서와 만성적인 사회불안 그리고 데모 만능의 악폐를 차제에 뿌리 뽑아 헌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전환점을 이룩하고자 부득이 계엄령이 선포된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3월 24일부터 6월 3일까지의 경과를 말씀드리고 요번 비상계엄이 경찰의 치안능력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최후의 사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이 상황보고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이해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상으로써 보고를 끝마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이번 비상계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 또 그 사태에 대해서는 대강 국무총리와 내무부장관께서 자세한 보고를 드렸읍니다. 물론 이 문제에 있어서 그러면 과연 이번 사태가 법률이 정한 비상계엄을 선포하여야 할 사태냐 아니냐 여기에 대해서는 본인도 법률가들 사이에서 약간 논의가 있고 또 여러분께서도 여기에 대해서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계신 분이 계실 줄 압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해서 본인의 소신을 말씀드리겠읍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지금 내무부장관께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읍니다마는 그 당시의 사태야말로 참 부득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태였읍니다. 다시 말하자면 6월 3일의 그 사태는 데모학생의 일부가 폭도화하고 거기에 일부 민간이 가담을 해서 그래서 경찰관, 파출소를 갖다가 5개소나 점령을 해 경찰서를 포위를 해서 심지어는 파출소에 방화를 해 또 무기고에 침입을 하려고 하고 또 군이나 경찰관의 자동차를 뺏어서 타고 댕겨 이거야말로 혼란의 극도에 달했고 경찰력은 완전히 마비되었던 상태입니다. 아마 이번 사태를 바로 보신다면 이와 같은 상태를 갖다가 충분히 인식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갖다가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면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것은 이 사람의 말을 빌리지 않으시더라도 그 결과가 어떤 사태에 이르겠다는 것은 충분히 아마 상상하실 수 있을 줄 생각합니다. 원래 비상계엄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민간에 의한 모든 사무가 군의 관할하에 속하게 되고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은 부득이 제한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행한 사태입니다. 그러니까 누구나 이와 같은 사태를 갖다가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 이와 같은 지금 말씀한 사태가 그러면 과연 비상계엄법에 규정한 거기의 계엄선포의 요건에 해당하느냐 하는 문제가 될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계엄법 제4조 그것이 소위 비상계엄을 갖다가 규정한 이 조문입니다만 그것을 다시 한번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 여러분께 한번 여기서 읽겠읍니다. ‘비상계엄은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한 사변에 있어서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극도로 혼란한 지역에 선포한다’ 이와 같이 되어 있읍니다. 지금 설명으로써 아마 사회질서가 극도로 혼란되고 있었다는 사태는 아마 누구나 다 수긍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태가 그전에 규정한 전시 또는 이에 준한 사변에 있어서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한 사태냐 하는 것이 아마 법률가들로서는 역시 조문을 다루는 관계로서 이것을 갖다가 반드시 문제를 삼을 줄 압니다. 그러나 이번 지금 우리나라 상태가 전시라고 하는 것은 지금 대법원에서도 그와 같은 판결에서 그와 같은 견해를 표시하였고 따라서 여기 이 사태가 적의 포위공격에 해당하느냐 않느냐 이것이 그다음 축소해 가면 문제가 될 줄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지금 현 휴전선 상태를 볼 때에 아까 총리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북에서는 지금도 전 휴전선에 걸쳐서 기회만 있으면 남침하려고 호시탐탐하고 있는 이 사태에 있어서 이와 같은 상태는 바로 여기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종전에 비상계엄을 실시한 선례를 지금 이 자리에서 회고를 하겠읍니다. 그럴 것 같으면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비상계엄이 실시된 것이 열여섯 번 있읍니다. 그 당시에 물론 그동안에 6․25 사변도 있었읍니다만, 6․25 사변이 있었고 1953년 7월에 휴전이 성립이 되어 가지고서 있읍니다마는 그 전의 사태는 빼놓더라도 왜냐하면 그 사태는 국내에 상당히 게리라가 있었고 또 그런 관계로서 역시 적과 완전히 참 교전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 상태를 뺀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비상계엄이 실시된 사태가 6건에 도달하고 있읍니다. 그 상태나 지금 상태나 이 이북하고의 관계 다시 말하자면 좁은 의미의 적의 포위공격은 안 당하고 있었지만 지금에 있어서의 휴전선이 있는 관계라든지 극도로 국내질서가 혼란에 빠져 있었던 상태는 하등 차이가 없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이 자구로 따질 것 같으면 자구에는 충실치 못했다 하더라도 여기에 대해서 이 실제는 이번 사태가 비상계엄을 실시 안 하면 도저히 수습할 수 없었다는 상태 다시 말하자면 군의 힘을 빌려서 질서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는 상태와 또 이 비상계엄이 선포된 선례를 생각할 때 이번 사태는 구태여 자구에는 충실치 않았다 하더라도 이 비상계엄을 실시한 기본정신에는 그다지 어긋나지는 않았지 않았는가, 그 정도서로 이 사람은 이 비상계엄이 문제가 되었을 때 그 정도로서는 국민을 대표하신 여러분께서는 그 점은 그다지 꾸지람 안 하시지 않을까 그와 같은 생각으로서 이번 비상계엄을 갖다가 상신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상태에 있어서 공법학자들은 이 사태를 갖다가 무슨 이와 같은 사태를 갖다가 긴급권이니 뭐니 여러 가지 어려운 공법상 술어를 씁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공법상 문제를 가지고서 지금 따질 때는 아니고 지금 현 사태가, 이 6월 3일의 사태가 비상계엄을 실시 안 하면 안 될 사실상의 상태에 있었고 또 과거의 선례도 있었고 해서 그 점은 그다지 꾸지람 안 해 주실 줄 믿고 또 이와 같은 사태는 매우 우리나라에서는 참 불행한 사태입니다. 하루속히 이와 같은 사태가 수습될 것을 기대하면서 이 사람의 보고를 대신하겠읍니다.

순서에는 국방부장관 보고가 있게 되었읍니다마는 국방부장관 보고에 대해서는 원의에 물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순서를 바꾸어서 문교부장관 보고를 먼저 듣겠읍니다.

학생들을 잘 교육해서 장래에 이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좋은 교육과 훌륭한 학생을 혹은 졸업학생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 문교부장관의 임무로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요번 사태가 일부 학생들에 의해서 빚어내졌고 그 점에 대해서 대단히 그 직책에 있는 사람으로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거기에 이어서 공부를 잘 시키라는 문교부장관이 전국에 있는 대학생 그리고 일부 고등학교 학생들에 대해서 공부를 못 하게 휴교조치를 취한 데 대해서도 제 자신 대단히 고충이 큽니다. 이 자리에 있어서는 왜 그와 같은 고충을 가지면서 휴교조치를 취하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서울시내에 있어서는 6월 3일 계엄령이 선포됨에 따라서 발표되었던 계엄사령관 포고 제1호 제6항에 의해서 각급 학교가 전면적으로 휴교가 되었읍니다. 지방에 있어서는 6월 4일에 뜻하지 않게 서울에서 마지막에 6월 3일에 일어났던 데모의 양상과 비슷한 똑같은 데모가 각 지방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특히 6월 2일까지의 데모의 발생학교 수를 볼 것 같으면 전체 합해서 24교인데 6월 3일, 4일, 5일 해서 각 지방에서 일어났던 데모의 학교 수는 25개교, 1개교가 더 많은 이런 숫자를 빚어냈었읍니다. 그뿐이냐 할 것 같으면 6월 4일 하루에 있어서 지방에 있어서의 고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데모한 학생은 서울에 5월 30일 이후 해서 2교에 지나지 않는 데 대해서 지방에 있어서는 13교, 4일에 13개교, 5일에 3개교 해서 16개교, 그 외에 합해서 19개교가 6월 4일, 5일에 데모가 일어났읍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서울에 있어서의 데모가 계엄에 의해서 종식되었지만도 그 여파가 시골에 파급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은 더욱 악질화되어 가고 있는 험악한 공기를 자아내고 있었던 곳은 전남에 있어서의 광주와 기타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계엄이 없었던 시대와 다르게 이미 서울에 계엄이 퍼져 있으니만큼 시골에 계엄을 더욱 선포하게 만드는 촉진제였다고 볼 수 있겠읍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서울에 있어서의 계엄령은 내렸지만도 지방에까지 계엄을 내리기보담 휴교조치로서 그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상책이 아닌가 이렇게 보았더랬읍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6월 4일에 있어서 교육감과 학교의 장에 휴교의 권한이 있으므로 해서 학교장의 재량에 의해서 관계기관과 협의해서 학교장은 휴교조치를 취하라 이런 조치를 내렸으며 6월 5일에 각 대학에 대해서는 이것은 문교부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것이므로 해서 일제히 휴교를 지시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6월 5일에 몇 개 학교 나왔읍니다만도 거의 종식되다시피 되었고 그 이후로는 잠잠한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읍니다. 이러한 상태는 결코…… 또 다른 각도에서 말씀드리면 서울에 있어서의 대학생과 고등학교 학생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지방에 있어서의 대학 그다음에 고등학교 학생들이 그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크다고 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해서 아까 말씀드렸던 파급의 양상과 질과 그다음에 영향력과 이런 각도에서 보아서 휴교가 오히려 상책이었다고 이렇게 저는 생각하고 있읍니다. 현재 그러면 어떠한 휴교상태에 놓여 있느냐 하는 문제에 관해서 다음에 말씀 올리겠읍니다. 현재 지방대학은 일제히 휴교가 되어 있읍니다. 그 대신에 실습을 요하는 학교 가령 초급대학에 있어서의…… 교육대학에 있어서의 교생생활을 위한 이러한 과정에 있는 학생들, 해양대학이라든지 수산대학이라든지 이런 실습훈련이 필요한 학교 이러한 학교에 대해서는 이미 휴교가 해제되어 있읍니다. 지난 9일로 해제되어 있읍니다. 그 외의 대학은 일제히 휴교 중에 있읍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에 관해서는 인천이 6월 4일에 가장 심했읍니다만도 이 인천에 있어서의 인천지역에 대해서만 일제히 휴교가 되어 있읍니다. 교육감의 지시에 의해서 휴교가 되어 있읍니다. 그 외의 지역은 현재 휴교 중에 있지 아니합니다. 개교 중에 있으면서 농번기이고 또 사태가 파급되는 것을 우려해 가지고 각 학교에 교장들은 가정실습을 해서 지금 농번기를 도우고 있는 사태에 놓여 있읍니다. 그것이 오늘로서 끝나고 내일부터 정상적인 수업에 들어가리라고 보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말씀 올릴 것은 휴교일자 문제에 관해서 말씀 올리겠읍니다. 자자부레한 얘기올시다만도 현재 보아서는 법정 수업일자가 고등학교의 경우는 230일, 대학에는 210일입니다. 그러나 휴교를 30일 이내 할 수 있으므로 해서 대학의 경우는 180일까지 수업일자로 되어 있읍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현재 문교부에서 취하고 있는 것은 7월 4일까지 휴교, 7월 5일부터 방학이 휴가가 있음으로 해서 법정 수업일자는 어기지 않는 방향으로 현재 조치가 되어 있읍니다. 다음에 들어가서는 언제 지방에 대해서는 휴교를 해제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말씀을 올리겠읍니다. 이 문제는 지난 8일에 월요일에 삼척에서 중학교 학생이 서울에서 일어났던 똑같은 구호와 어떠한 호소문으로 같은 형식의 데모를 했읍니다. 지난 6월 8일이올시다. 이것은…… 휴교를 해제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고려하에서 휴교를 해야 되겠느냐 하는 데에 좋은 시사가 된다고 볼 수 있읍니다. 결코 현재로서는 일부 학생에 의해서 이와 같은 사태가 빚어져 나왔으니까 해제할 바에야 이와 같은 사태가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 조치를 취하고 나서 선량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되겠다는 것이 근본적인 기준이올시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학원의 안전과 일부 학생에 의해서 선량한 학생이 희생되지 않는 분위기, 학원사회의 분위기 이것이 결정될 때 개교할 이러한 예정으로 있읍니다. 그런 까닭으로 해서 서울지방은 계엄사령관의 지금 포고령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읍니다마는 지방에 대해서는 그러한 관점에서 조치할 예정으로 있읍니다. 이상 간단히 말씀드렸읍니다. ―본회의 비공개에 관한 건―

다음에는 국방부장관의 보고가 있겠는데 그 보고가 있기 전에 의원 여러분의 원의에 묻고자 하는 것은 여야 총무단과 정부와 서로 합의가 된 점은 이 국방부장관의 보고만큼은 국가의 기밀에 속하는 사항이 많은 만큼 비공개회의로 하는 것이 좋다 하는 말씀이 있읍니다. 어떻습니까? 이의 없으세요? 그러면 그대로 하기로 하겠읍니다. 동시에 방청석 여러분과 기자석 여러분만은 퇴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장내가 정돈될 때까지 잠시 정회를 하겠읍니다.

좌석 정돈해 주세요. 비공개회의를 개의합니다. 국방부장관 보고해 주세요.

국방부장관의 보고가 끝난 만큼 비공개회의는 이것으로써 끝을 마치고 다시 공개회의로 들어가겠읍니다. ―제43회 국회 회기에 관한 결의안―

그런데 다른 안건이 없는 만큼 산회를 하겠는데 산회하기 전에 제43회 국회 회기에 관해서 운영위원회에서 회기를 6월 10일로부터 6월 27일까지로 작정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의 있읍니까? 그러면 이의 없으시면 그대로 결의된 것을 선포합니다. ―비공개회의분 불게재의 건―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산회를 하겠는데 한 가지 여러분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이 비공개회의에서 국방부장관의 보고를 회의록에 게재하지 않도록 하겠는데 거기에 이의 있읍니까? 그대로 하겠읍니다. 그러면 산회합니다. ◯출석 의원 수 ◯출석 국무위원 국무총리 정일권 내무부장관 양찬우 법무부장관 민복기 국방부장관 김성은 문교부장관 윤천주 ◯청가 이종근 의원 6월 1일6월 2일 이동영 의원 6월 10일6월 13일 김성진 의원 6월 10일6월 13일 김성곤 의원 6월 10일6월 16일 김종필 의원 6월 11일 박삼준 의원 6월 11일6월 13일 ◯청원 △청원 제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