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일정 제1항 의원해외활동 보고를 상정하겠읍니다. 먼저 김세련 의원 나오셔서 국제의원연맹 제62차 총회에 관하여 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김세련입니다. IPU 총회 참가․아일랜드공화국의회 초청방문 결과에 관해서 한국대표단을 대표해서 보고를 여러 의원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IPU 제62차 총회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 바와 같이 1975년 9월 2일부터 9월 13일까지 12일간 영국 런던에서 회원국 75개국 중에서 68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읍니다. 한국대표단은 박준규 의원을 고문으로 하고 민병기 의원, 오세응 의원 두 분을 이사로 모시고 대표로 김형일 의원, 박한상 의원, 강문봉 의원, 정래혁 의원, 김윤하 의원, 이범준 의원, 서영희 의원, 이상 11명으로 구성을 해서 62차 총회에 참가하였던 것입니다. 9월 3일 이사회에 이어서 9월 4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의 총회 개회식에는 영국 국가원수인 에리자베드 여왕의 장엄한 입장의식에 이어서 여왕의 개회사와 윌슨 수상의 환영연설이 있었읍니다. IPU 회의 주관국의 입장에서 영국의회와 영국정부, 특히 IPU 영국의원협회 측에서 우리 한국대표단을 위해서 따뜻한 환대가 있었음을 이 자리를 빌려서 여러분께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또한 금차 런던총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영국하원의 윌리암스 의원은 그의 공정하고도 능숙한 사회로 우리 대표단을 시종 도와준 분으로서 이 자리를 빌려 그분의 호의에 대한 사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미 지상보도에서 아시는 바와 같이 근래에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사태가 런던에서도 있었읍니다. 회의기간 중 런던 힐턴호텔 로비에서 폭탄사건이 발생하여 2명이 사망하고 63명의 중․경상자를 내는 불행한 사건이 있었고 우리 대표단과 북괴대표들이 투숙하고 있던 사보이호텔에서도 폭탄이 장치되어 있다는 제보가 있어서 한때 로비에서 경찰관들이 투숙객을 대피시키는 소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호텔과 회의장 중간에 위치한 워터루다리 위에서도 폭발물로 보이는 흰 상자를 영국군이 폭파 제거시키는 등의 긴장된 사례가 있었읍니다마는 IPU 각국 대표들은 아무 피해 없이 금차 총회를 예정대로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되었음을 실로 다행한 일로 생각합니다마는 회의기간 중 IPU 회의장 주변의 경계는 실로 삼엄한 것이었다는 것을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회의는 62차 총회와 117차 이사회 및 정치국제안보 의회사법인권 비자치령 경제사회 교육과학문화의 5개 분과위원회로 나누어 진행되었던 것이며 주요한 토론의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기조연설과 중동문제, 둘째로 국제경제협력 문제, 세째로 여성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의회의 역할, 네째로 핵무기 등의 비확산 및 제한, 다섯째로 비자치령의 독립촉구, 여섯째로 유권자의 입법과정에의 참여형식 이상이 주요 토론의제였던 것입니다. 상세한 회의경과와 내용은 유인물로 추후 여러분께 배부해 드리기로 하겠읍니다. 제가 IPU 총회를 마친 후 아일란드국회의 초청으로 아일란드의 수도 더블린을 방문하고 또 귀로에 워싱턴에서 미 의회의 몇 분과 비공식접촉을 가지고 있던 중 국회 본회의 일정 통보를 받고 어제 밤에 급히 귀국하였기 때문에 유인물을 오늘 아침 본회의까지 준비하지 못하였음을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오며 각별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차 IPU 회의의 특징을 말씀드린다면 역시 중동문제가 제일 두드러진 쟁점이 되었다는 사실과 남북한의 교착대립상태가 이번 회의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유감된 사실이라고 하겠읍니다. 중동문제는 4월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렸던 IPU 제116차 이사회에서 PLO 즉 팔레스티나 민족평의회를 옵서버 자격으로 IPU 총회에 참석케 한다는 결정이 있었고 또 최근에 이스라엘과 이집트 아랍공화국 간의 잠정협정의 성립과 때를 같이한 만큼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랍제국의 관심은 역시 팔레스티나 민족의 주권과 독립의 회복에 있었으며 여기에 소련과 동구제국 그리고 비동맹국세력의 대다수가 동조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생존권과 영토를 보장하려는 서구 및 미국의 입장은 표의 분포 면에서 열세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의 입장은 중동문제를 위요한 동서 양 진영의 대결이나 충돌을 회피해야 한다는 견지에서 이 문제에 관한 표 대결에는 불참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에 있어서 양측으로부터 우리 입장에 대한 이해를 표시해 왔고 표결에 임한 우리의 처사는 현시점에 있어서 어찌할 수 없는 최선책이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다음으로 IPU에서의 남북한 대결상황을 간추려서 보고드리겠읍니다. 이미 지상에 보도된 사실이기는 합니다마는 지난봄 스리랑카 콜롬보 이사회에서 북괴대표라는 자가 국제의전관례는 물론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언과 행동을 우리 우방의 대표 국회의원에게 가한 일이 있어서 각국 대표의 빈축을 산 사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이번에도 문제가 되어서 이번 런던총회를 하루 앞두고 열린 집행위원회에서는 이와 같은 북괴의 비행에 대해서는 어떠한 조치를 하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강경한 의견과 동의가 있었고 집행위원회 의장은 북괴대표단장을 불러서 벨기대표에게 정식으로 사과하도록 요구를 했던 것입니다. 사태가 이쯤 진전되자 북괴대표단장은 벨기대표를 찾아서 사과를 하면서 그 사실을 총회석상에서만은 공표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고 듣고 있읍니다. 북괴는 금차 총회에도 대표 5명, 사무국원 8명, 도합 13명의 다수 인원을 런던에 파견하였으며 대표로는 단장에 홍기문과 대표로 정준기, 주소대사 권희경, 이창선, 조총련 부의장 이계백 등이 참가했던 것입니다. 금차 런던회의에서는 한반도문제는 IPU 의안으로서 정식으로 상정된 것은 없었읍니다. 그러나 총회에 제출된 IPU 사무총장의 국제정세보고서에는 한반도의 문제에 언급하여 남북대화나 평화통일의 진전이 전연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긴장이 조성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읍니다. 여러 의원께서 기억하시다시피 북괴는 작년 동경 IPU 총회와 금년 봄 4월 콜롬보 IPU 이사회에서 소위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라는 추가의제를 IPU 총회의 의제에 올려서 그들의 일방적인 위장평화선전을 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실이 있고 특히 금차 런던총회 개최 직전에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국 외상회의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북괴를 가입시키면서 한국의 가입요구는 거부하는 극히 불공평한 결정을 내린 바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이러한 전후정세 및 배경을 충분히 검토하고 회의기간 중 항시 북괴의 기습적인 책동에 대비, 시종 런던총회에 임하였고 북괴의 정치선전의 허위를 폭로하여 한반도의 문제해결은 박 대통령의 6․23 평화통일정책에 따라서 남북이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괴의 악의에 찬 정치선전은 7․4 공동성명의 기본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임을 지적했던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한반도문제를 IPU에 독립의제로 하여 IPU를 자기들의 정치선전장으로 만들려는 북괴의 시도가 좌절되자 그들은 다른 의제에 관한 발언 중에 한국에 대한 비방을 하다가 우리 대표단의 직각적이고 강력한 의사진행 반박발언 때문에 그 발언을 의사록에서 삭제당하는 일이 이번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로 북괴대표 이계백은 비자치령 문제에 관한 발언 중에서 한국을 미국의 지배하에 있는 예속지역 운운하다가 총회규칙 24조에 위배된다는 우리 대표의 의사진행발언에 의해서 총회 의장은 북괴대표를 조용히 불러 한국대표에게 사과할 것을 종용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불응하므로 할 수 없이 의장의 직권으로 이 문제의 발언을 속기록에서 삭제할 것을 명하고 이 사실을 총회석상에서 정식으로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발언이 삭제되지 않도록 또 삭제되더라도 그 사실이 공개석상에서 총회 의장의 선포에 의해서 각국 대표 전원에게 알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이 한 예를 보더라도 IPU에 참석한 모든 나라의 대표들은 북괴의 태도가 얼마나 비현실적이며 반평화적이며 동서 긴장완화에 역행하는 것이며 남북대화를 불가능케 만든 자가 누구인가를 인식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 전원은 시종 일치단결 합심해서 이번 런던총회에서 시종일관 우리나라와 대한민국국회의 명예를 위해서 총회 이사회 그리고 각 분과위 회의에서 발언을 했고 각종 행사에도 적극 참여해서 IPU의 설립목적과 기본정신의 신장을 위해서 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께 보고드리면서 이번 회의에 참가하신 각 대표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하고 감사를 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끝으로 제가 IPU에 참가한 것은 금년에 들어 두 번째입니다. 극히 짧은 경험입니다만 제 나름대로 소감을 말씀드려서 결론에 대하고자 합니다. 원래 IPU가 발족할 당시의 이념과 설립목적은 의회제도의 신장과 의원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서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었다고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의 IPU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 아래서 국가 간 불럭별 반목과 대립의 양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정치토론장으로 변모하고 있읍니다. 특히 북괴가 이 회의에 참가하게 된 다음부터는 세계의 데탕트 조류에 역행하면서 대남비방을 자행하는 사례가 빈번해져 가지고서 IPU를 친선 아닌 불쾌한 대결의 마당으로 그 분위기를 흐려 놓고 있는 것입니다. IPU 그 자체도 불럭의 단결이라는 명분과 대다수 표의 횡포라는 집단적인 표결에 향배가 결정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끈질기게 또 정정당당히 우리의 합리적이고 올바른 주장을 계속해서 펴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앞으로 IPU에 참가하실 의원 여러분께 참고가 되실까 해서 이 말씀을 드리고 IPU 참가보고를 간략하나마 마치고자 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서 아일란드공화국의회 초청방문에 관해서 간단히 보고를 이 기회를 빌려서 드리겠읍니다. 여러분께서 아시는 바와 같이 작년 가을 IPU 동경총회 때 우리 국회에서는 다른 나라 대표와 함께 동경에 온 아일란드의 국회의원을 서울로 초청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 답례로 아일란드의 국회에서는 한국의원들을 초청했고 국회의장께서도 그 답례에 의해서 방문을 해서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이 계셔서 런던 IPU 한국대표단 중 이 사람과 오세응 의원, 정래혁 의원, 김윤하 의원의 네 사람이 런던총회 종료 후에 9월 14일, 15일의 양일간에 걸쳐서 아일란드의 수도 더블린을 방문하게 되었읍니다. 마침 트리시 하원의장은 와병 중이어서 우리를 영접해 준 분은 의장을 대리해서 죤스 하원부의장이었읍니다. 특히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오말리 의원과 패티슨 양 의원은 시종 우리 일행을 안내해 주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동료 의원들에게 소개해 주었읍니다. 저희 일행은 14일 하원부의장의 만찬에 참석했고 15일 아일란드공화국 대통령관저를 찾아 오달리 대통령을 예방 한 시간 이상에 걸쳐서 환담을 할 기회를 가졌고 또한 코스그레이브 수상, 두그 상원의장을 각각 예방하고 한국과 아일란드공화국 양국 의회 상호 간의 친선증진과 상호 관심사에 관해서 환담할 기회를 가졌던 것을 실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시간관계로 생략하겠읍니다마는아일란드와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직 대한민국과 국교관계가 없는 만큼 이번 저희 일행의 방문은 큰 의의가 있는 것이었음을 첨언해서 보고드리는 바입니다. 이날도 우리는 아일란드의 상하 양원 의원들과 비공식 만찬을 갖고 다음 날 아침 죤스 하원부의장 등의 따뜻한 공항환송을 받으며 석별의 정을 나누고 더블린을 떠났읍니다. 이상으로 대단히 간단하나마 저의 보고를 끝맺고자 합니다. 저희 대표단 전원이 사고 없이 IPU 회의를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대표단 각 의원 여러분의 절대적인 협력과 국회의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의원 각위의 절대적 후원과 격려의 덕분으로 생각하면서 이 자리를 빌려서 재삼 감사를 드립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최영철 의원 나오셔서 한일의원연맹총회에 관한 보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상임간사인 최영철입니다. 한일의원간친회 제5차 총회 그리고 한일의원연맹 설립총회에 관한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보고말씀을 드리기 전에 한 가지 의원 여러분들께 부탁 양해를 구할 사항이 몇 가지 있읍니다. 첫째는 오늘 제가 여러 의원님들께 보고 올릴 내용이 한일 두 나라의 특수한 외교관계 그리고 한일의원간친회 및 한일의원연맹이 그동안 벌여 온 여러 가지 활동이 다분히 공작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또 한일 두 나라가 너무 지리적으로 가깝고 양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양국 간에 투영되는 그러한 복잡한 정세에 비추어서 극히 표면적이고 평면적일 뿐 입체적인 보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여러분들께 말씀드리면서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과거 및 앞으로 해야 할 여러 가지 한일의원연맹의 활동내용도 공작적인 측면은 전부 제외하고 평면적인 극히 제한 있는 보고밖에 드리지 못하는 것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여러분들께서 양해를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 여러 의원님들께 지금 현재 한일의원간친회 제5차 총회 및 한일의원연맹 설립총회 결과보고 및 동 참고자료라는 두 가지 유인물을 배포해 올렸읍니다. 이 두 가지 유인물은 한일의원간친회가 3년 전에 발족해서 3년 유여 의 긴 역사를 가졌읍니다만 아직 국회 본회의에서 한 번도 정식으로 보고를 드린 바 없고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비록 의원연맹 설립총회에 국한한 보고이기는 합니다마는 이것을 여러 의원님들에게 참고가 되게 하기 위해서 유인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방대한 유인물을 제가 일일이 설명드릴 수 없고 존경하는 의장님께서 만일 허용해 주신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배포해 드린 이 두 가지 유인물을 그대로 회의록에 게재해 주실 것을 요청하면서 제가 오늘 보고할 것은 본 보고서 및 참고서류에 참고가 될 만한 내용으로서 줄일까 합니다. 의장님께서 용허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의원님들께서 이미 아시는 바와 같이 제5차 총회 및 한일의원연맹 설립총회는 올해 7월 10일 서울에서 개최되었읍니다. 사실상 우리 의원님들 상당수가 동 설립총회에는 직접 참석을 하셨고 또 당시에 지상을 통해서 상세한 내용들이 보도되었기 때문에 구차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겠읍니다만 다만 이번에 정식 설립을 보게 된 한일의원연맹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는 3년 전에 설립을 보게 된 한일의원간친회에 관해서 약간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일의원간친회가 발족한 것은 1972년 5월에 정식으로 발족을 보았읍니다. 당시에 일본의 정치 및 사회적인 여러 가지 여건이 상당히 복잡했고 우리 국회의원들이 주동이 되어서 한일 두 나라 의원들 간에 뭔가 대화의 루트를 만들어야겠다는 그러한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때였읍니다. 바로 당시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전 일본 총리대신인 사또 에이사꾸 씨가 거의 8년에 걸친 장기집권을 끝내고 물러가던 때였읍니다. 따라서 포스트 사또 를 놓고 자민당 내의 각파 보스들이 치열한 사전 총리대신 선거운동을 벌이던 그런 때였읍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은 우호국가인 일본의 이른바 주류세력이 변화하는 그러한 정치정세에 적응할 수 있는 어떠한 루트가 필요할 때였읍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 사또 정권 후계자를 놓고 특정인물의 명칭을 들먹여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그 뒤에 총리대신이 되었던 다나까 가꾸에이 씨 또 현재 부총리로 계시는 후꾸다 다께오 양 씨가 피나는 경합을 벌이던 때였읍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일 두 나라의 정치적인 루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오버올하지 못하고 편파적인 내지는 어떤 파에 기울어졌던 그러한 일시적인 현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읍니다. 그래서 어떠한 특정한 후보는 우리 한국정치인 혹은 외교관이 찾아갔을 때에 만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왜 당신은 나한테 오느냐? 차라리 상대방 후보인 그분한테 가서 얘기하면 되지 않느냐’ 하는 그러한 얘기를 할 정도로 어떻게 생각하면 위기에 처해 있던 때였읍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로 차츰 일본의회가 옛날에 비해서는 젊어지는 경향이 있었읍니다만 일본 한국 두 나라의 의회인 정치인들이 젊은 사람들 간의 교류가 빈번하지 못한 그러한 시기이기도 했었읍니다. 또한 전반적인 분위기로는 한일협정이 1965년 체결된 이후에 사실은 우리 한일 두 나라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밀월의 시대가 한 6년 계속되었었읍니다. 그러나 국제공산주의자들의 악랄한 모략과 또 한일협정 체결 이후에 조총련계의 부단하고 끈질긴 기만에 찬 선전 혹은 모략으로 인해서 일본의 전체적인 사회가 당시에 한일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해치려 하는, 그것을 부수려는 그러한 움직임이 세차게 일어나던 그러한 때였읍니다. 지금도 그러한 경향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만 벌써 1972년도에 일본의 언론계 혹은 정계 일각에서는 친한파면 무조건 수구적이요 혹은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있을지도 모를 정치적인 흥정 내지는 흑막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몰아붙이던 그러한 아주 좋지 않은 분위기에 싸여 있었읍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개선하고 한일 두 나라의 의회정치인들이 흉금을 털어놓고 얘기를 나누어서 우호를 증진시켜 나가겠느냐 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한일의원간친회를 설립해야겠다는 목표 아래 활동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직접 일본에 건너가셔서 여러 가지로 활동해 주신 여러 선배․동료 의원들께서 지금 회고해 보시면 잘 아시겠읍니다만 일본의원들이 친한파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당시에 우리들하고 접촉하는 것을 극히 꺼려했고 접촉을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극력 기피했었읍니다. 따라서 한일의원간친회가 1972년 5월에 설립을 봤읍니다만 당시에 명칭을 한일의원연맹이라고 붙이지를 못하고 한일의원간친회라는 한국사람에게는 극히 생소한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사실은 일본의원들의 그러한 기피증 때문이었읍니다. 여러 가지 사전협의를 거친 뒤에 우리 현재 당시에 참석했던 의원님들 계십니다만 처음에 72년 3월 16일 한국 측에서 열세 사람의 여야 의원이 일본 동경에 건너가서 일본 측 61명의 중․참의원 의원들과 최초의 준비회의를 가졌었읍니다. 그 준비회의 그리고 1972년 5월에 서울 도뀨호텔에서 열렸던 간친회 창립총회 모두 다 불행하게도 공개적으로 열 수가 없었읍니다. 그래서 모두 다 비공개로 했고 일체 신문 혹은 매스컴에도 보도를 하지 않았던 그러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한일의원간친회 창립총회 이후에 부단한 한일 두 나라 의원들의 교류와 또 그 의원들이 소개하는 여러 정치인들의 교류로 해서 많은 이해가 증진이 됐읍니다. 그리하여 1973년 6월 12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동경에서 열렸던 간친회 제2차 총회에서는 우리 측 대표가 28명이 참석했고 일본 측이 73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루었고 사실 조금 흐트러져 가던 한일 두 나라의 관계가 상당히 정상화돼서 새로이 총리대신이 된 다나까 가꾸에이 총리가 직접 한일의원간친회에 나와서 축사를 하게 되고 당시에 외국여행에서 귀국길에 동경에 들렀던 우리나라 국무총리 김종필 의원님께서도 직접 우리 간친회 총회에 참석해서 축사를 하는 말하자면 한일관계에 있어서 상당한 황금기라고 할지 피크를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실은 그 73년도에 있어서는 민사당, 사회당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의 접촉이 확대돼서 73년 6월 2차 총회 직후에는 일본 중․참의원 초당파 방한단이 구성이 돼서 민사당․사회당 의원까지 포함된 방한단이 한국을 방문한 그러한 일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러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이후에 1973년 후반기에 들어서 한일 두 나라 간에는 불행한 사태들이 몇 가지 발생했었읍니다. 이러한 사태들로 인해서 사실은 한일의원간친회가 근본적으로부터 밑뿌리로부터 흔들리기 시작해서 전부 새로 다시 고쳐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러한 쓰라린 경험을 가졌읍니다.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 그러니까 1974년 5월 4일 서울에서 제3차 한일의원간친회 총회를 개최했고 그다음에 금년 1월 22일 동경에서 제4차 총회를 가졌읍니다마는 다행스럽게도 해가 거듭할수록 또 총회의 횟수가 거듭할수록 일본의원들이 다수 참석하게 되고 또 열의를 더 갖게 되어서 극히 고무적으로 발전되어 왔었읍니다. 그랬던 것이 금년 정월에 열렸던 동경총회에서 지금까지는 한일의원간친회로 이름을 붙여 왔었는데 사실 의원간친회가 처음 출발할 때에 남한테 내놓고 얘기를 할 수가 없어서 그저 친목만 하자는 의미에서 간친회라고 이름을 붙였으니 이만큼 기구가 의원들이 열의를 가지고 한일 두 나라 관계가 정상화를 향해서 달리고 있는데 우리가 떳떳하게 해야지 너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 하는 그러한 얘기가 일본 측 의원으로부터 먼저 나오기 시작해서 저희들도 그것을 전폭적으로 찬성을 하게 됐읍니다. 따라서 간친회 제4차 총회에서 명칭도 새로이 개정을 하기로 했고 또 그동안 한일의원간친회를 토대로 한 대일접촉이 활발하게 진행되어서 민사당 소속 의원 30명 전원이 상당한 유대관계를 갖게 됐기 때문에 민사당도 한일의원간친회에 가입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해 와서 그때에 한일의원간친회를 발전적으로 확대 해산하고 새로운 한일 두 나라의 의원협의기구를 만들자는 데 합의를 봤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금년 아무때고 한일의원간친회 제5차 총회를 열어서 새로운 기구를 발족시켰으면 그것으로서 끝났읍니다마는 여러 의원님께서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불행하게도 금년 초에 인도차이나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인도차이나 전역이 적화되고 인도차이나 사태로 인해서 동남아 동북아 특히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자유우방국가에 심한 정신적인 파동이 일기 시작했읍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그 동남아사태를 계기로 해서 지금까지 그렇게도 한국에 대해서 몹쓰게 굴었던 일본의 일부 언론 혹은 일부 정치인들이 한국이 지금까지 취했던 자세가 결코 허황된 것이 아니요, 그런 대로 일리 있다 하는 데에 의견을 모은 것 같은 그러한 인상이었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도 자유진영에 대해서 친하게 나서면은 수구파라 몰아붙이던 그러한 전반적인 분위기가 반성기에 접어든 듯한 그러한 인상을 갖게 되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미끼다께오 새 총리가 들어서 가지고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서 포드 대통령하고 회담할 그러한 시기적인 요청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 쪽에서는 한일의원간친회 제5차 총회 그리고 의원연맹 발기총회를 서둘러서 하기로 방침을 세워서 밀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상당수의 우리 의원들이 참석하셨읍니다만 7월 10일 서울에서 의원연맹 발기대회가 열렸었읍니다. 당시에 일본에서는 중․참의원 67명 그리고 대리참석인 고문 수행원 한일의원연맹사무국 직원들 수행원 33명, 도합 100명이라는 대거의 맘모스 대표단이 한국에 오게 되었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이 대표단에는 야당인 민사당의 대표마저도 함께 와서 금상첨화가 되었었읍니다. 동 설립총회에 관한 구체적인 보고서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미 유인물로 올렸읍니다만 간단하게 이 설립총회에서 직접적으로 우리가 얻어 낸 효과가 어떤 것이냐를 여러분께 간단히 말씀드리겠읍니다. 당시에 발표되었던 공동성명도 여러 의원님들께 배포해 드렸읍니다만 그 공동성명에서 지금까지 일본의 자민당과 외교노선이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해 온 민사당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된 공동성명이 이번 일본국 의원단들이 직접 한국에 와 가지고 제2터널 제1터널을 비롯한 최전선을 직접 보고 난 다음에 북괴의 한국에 대한 침략위협이 엄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한일 두 나라가 이에 공동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그러한 명제에 합의를 보았다는 것은 하나의 커다란 수확이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야 의원이 한국이 지금까지 펴 오고 있고 또 앞으로 펼 6․23 외교선언을 기반으로 한 우리 외교정책에 대해서 전폭적인 지지와 찬의를 표했고 자기들이 앞서서 세계 각국에 우리 외교정책이 그대로 먹혀들어 갈 수 있도록 앞서서 행동을 하겠다 하는 약속을 한 것은 역시 커다란 수확이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미끼 총리가 미국을 가기 직전이었고 또 일본이 동북아시아 특히 한국에 관한 방위공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앞으로 지켜 주느냐 하는 데 관심이 쏠려 있던 당시의 한일 두 나라 의원들이 미국에 대해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방위공약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 것뿐만 아니라 한일 두 나라의 의원들만의 이러한 우호협력증진기구뿐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미국을 포함한 한미일 3개국 의회정치인들 간의 어떤 협의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두 나라의 의원들이 합의했다는 것은 커다란 수확 중의 하나였읍니다. 또한 이 총회에서 한국 그리고 미국 일본 3개국 수뇌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이상 우리들의 결의한 사실에 대해서 알리기로 한 것 또한 커다란 수확이었읍니다. 뿐만 아니라 조금 전에도 말씀 올린 것처럼 민사당이 비록 숫자는 중․참의원 합해서 30명입니다만 전원이 우리들의 이러한 뜻을 전폭적으로 찬성하고 또 그것을 계기로 해서 일본의회 내 혹은 일본사회에서 열렬하게 친한적인 행동을 벌일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커다란 수확이었읍니다. 지금 현재 참고로 일본 측 한일의원연맹 회원의 동정을 잠깐 소개해 올리면은 일주일 전쯤 해서 일본 측 의원연맹 일본 측 간사회의가 있었읍니다. 그 간사회에서 정식으로 전 중의원의장 후나다 나까 씨를 회장으로 추대했고 후나다 나까 씨가 회장을 수락하는 연설이 있었읍니다. 그 외에 지금 현재 회원 수는, 지난 7월 10일 현재입니다. 7월 이후에 사실상 여름 버케이숀 씨즌이었기 때문에 의원들이 전부 나가 있어서 제2차 가입신청을 내지 못했읍니다만 제1차 가입신청에 응해 와서 정식으로 가입한 의원이 중․참의원 합해서 205명입니다. 그중에 자민당이 175명, 민사당이 30명 전원 가입을 했읍니다. 어제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사무국에서 연락이 온 바에 의하면 지금 임시국회가 열렸기 때문에 그것을 계기로 해서 가입신청서를…… 가입하지 않은 친한의원들에게 다시 배포를 했다 합니다. 그래서 그 결과가 이달 말경에는 들어오겠는데 약 20여 명이 더 불어날 예상이라 하는 통보가 있었읍니다. 참고로 일본 측 의원연맹 회원들의 역원 들, 간부들의 명단을 전부는 생략하고 몇 사람만 말씀드리겠읍니다. 부회장에는 사꾸라우찌 요시오 라고 전에 문부대신 했던 사람, 다나까 다쓰오 , 다나까 에이찌 , 노다 우이찌 , 야마나까 사다노리 전에 방위청장관, 우노소스께 전 방위청장관 이런 분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민사당에서 무까이 나가도시 라는 분이 부회장이 되었읍니다. 그다음에 고문에는 민사당 위원장인 가스까 잇고 가 자기가 직접 고문에 추대해 달라고 요청이 있어서 되었고 기시 노브스께 라든지 나까소네 야스히로 라든지 니시무라 에이찌 , 나다오 히로기찌 , 하시모도 도미사브로 같은 분이 고문으로 들어와 있읍니다. 현재 일본 측 간사장은 전에 환경청장관…… 국무대신 환경청장관을 했고 파벌로는 미끼 총리하고 같은 파벌인 모오리 마쓰헤이 씨가 간사장을 담당하고 있읍니다. 그 이외에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 의원연맹의 일본 측 회원들이 자민당은 자민당의 이른바 8개 사단이라고 하는 파벌을 총망라해서 그 대표들이 전부 다 간사에 들어와 있는 사실입니다. 다음에는 그동안에 한일의원간친회가 발족되어 가지고 그러면 실질적으로 교류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잠깐 설명드리겠읍니다. 한일의원간친회가 정식으로 발족된 1972년 5월부터 1975년 9월 10일까지 사이에 약 3년 사이에 그동안에 한일의원간친회 및 한일의원연맹을 통해서 초청을 했거나 혹은 일본쪽 회원이 소개를 해서 우리 측이 영접을 하거나 혹은 우리 측이 데려다가 여러 가지로 같이 대화를 나눈 총인원수가 4474명에 이르고 있읍니다. 그중에서 물론 제일 많은 수는 정치인들이 1846명, 그 이외에 학계가 264명, 공무원이 54명, 언론인들이 190명, 기타 합해서 4474명으로 1년 평균 약 천오륙백 명의 교류가 있었읍니다. 이러한 교류를…… 표면적인 교류입니다만 교류를 통해서 그동안에 한일의원간친회와 한일의원연맹이 활동한 결과로 얻어진 성과라는 것을 몇 가지 들 수 있겠읍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민당이 전 파벌을 망라해서 초파벌적으로 의원연맹에 가입했다는 것은 극히 큰 성과로 들 수 있겠읍니다. 다음에 친한파 의원들이 일본의회 내에 예나 지금이나 다수를 점령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한파 의원들이 전부 싸이랜트 메죠리티입니다. 말없는 다수표이기 때문에 항상 소수인 친북괴 인사들이 떠들어 대고 또 그것이 신문에 실리고 매스컴을 타고 해서 친한파가 없는 것처럼 되어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3년 동안 또 그전에도 여러 기구가 있어서 참 그동안에 노력한 결과로 지금 현재 친한파들은 말하지 않는 친한파에서 행동하고 말하는 친한파로 변모했다는 것을 여러 의원님들께 말할 수 있읍니다. 제가 그제 일본에서 돌아왔읍니다만 돌아오기 직전에 있었던 일본 중의원에서 일본 사회당 혹은 자민당들이 대표질문을 통해서 정부에 대해서 한일관계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을 직접 텔레비젼 중계에서 들었읍니다만 그 현장중계를 통해서 이제는 한일 친한파 의원들도 떳떳하게 의회 내에서 큰소리를 치고 필요하면 야유도 넣고 하는구나 하는 그러한 안도감을 가지고 왔읍니다. 제가 보는 가운데 퍽 다행스러웠던 것은 우리 일본 측 민사당 의원들이 자민당보다도 더 열심히 대표질문을 통해서 한국을 옹호하고 있었고 미끼 총리대신이 한반도정책에 있어서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었읍니다. 민사당 의원이 ‘미끼 총리는 왜 한일각료회담을 통해서라든가 미일 수뇌회담의 공동성명을 통해서 분명히 밝혔듯이 한국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야 할 텐데 실지로 당신이 하는 것은 그렇지 못하지 않소’ 하는 질문을 하고 있었읍니다. 민사당이 그렇게 질문해 준 그것도 좋았지만 의석에 앉았던 자민당 소속 우리 의원연맹의 멤버가 ‘이 소리는 사회당이나 민사당이 들어야 할 소리가 아니라 자민당 안의 우쯔노미야 도꾸마 네가 들어야 한다’고 큰소리로 악을 쓰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러자 모두 박수소리가 나오고 요란한 함성이 터지고 하는 것을 저는 들었읍니다마는 이런 거라든지 또 사회당 의원이 질문하는 가운데 ‘왜 미끼 총리대신은 한국은 한국이라고 부르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늘 북조선 북조선 그러느냐? 왜 북조선을 정식명칭으로 불러 주지 않느냐’ 하는 것을 질문을 했읍니다. 그러자 의석에서, 그것은 우리 의원님도 잘 아는 나까무라 고까이 라는 자민당 의원입니다마는 그 사람이 큰소리로 ‘그렇게 질문하고 있는 너 자신이 그럼 정식으로 대한민국이라고 왜 부르지 않느냐? 왜 대한민국이라고 너 자신은 부르지 않으면서 이북에 대해서만 공식명칭을 불러 달라고 하느냐’고 악을 쓰자 역시 박수가 쏟아져 나오고 야유들이 쏟아져 나온 소리를 들었으며 미끼 총리대신이 공식답변을 하는 가운데에도 의석에서도 그런 얘기가 있었읍니다마는 당신 자신부터가 그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십시오. 편의상 한국이라고 우리도 부르고 있지 않느냐 그러한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그전에는 저도 일본의회를 방청을 여러 차례 했읍니다마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 이제는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해서 저는 퍽 마음 흐뭇하게 생각했읍니다. 다음에는 조금 전에 교류는 열심히 하고 있다는 얘기를 말씀드렸읍니다마는 3년 동안에 약 4500명의 인사들이 한국을 특히 우리 사무국을 거쳐 갔읍니다만 이 사람들하고 한 번 만나고 그대로 관계가 절연되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돌아간 뒤에 적어도 1년에 서너 번씩은 반드시 편지를 보냈읍니다. 뿐만 아니라 저쪽에서도 열심히 이쪽에서 편지를 하면 답장이 옵니다. 서신교류가 상당히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고 또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혹은 우리가 꼭 일본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가 있는 선전책자 등은 반드시 그쪽에 우송해 주고 있읍니다. 다행하게 저는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일본의 각 현을 많이 돌아다녔읍니다마는 이제는 우리 한국의원들이 일본 어느 현을 가더라도 적어도 나는 한국을 다녀왔오, 나는 한국에 가서 한국의 발전상을 보고 왔읍니다 하고 와서 인사를 붙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방에까지 우리의 힘이 확대됐다는 것을 여러 의원들께 보고드립니다. 다음에 금후의 활동에 대해서 극히 제한된 부분만 몇 가지 말씀드리겠읍니다. 저희들이 일본의회에 대한 접촉에 있어서 제일 유의해야 할 점은 집안단속입니다. 집안단속이라는 것은 우리 집안단속이 아니고 친한파 의원들을 먼저 단속해야겠다는 것입니다. 항용 보면은 한국에 대해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인사들에 대해서만 너무 정신을 쓰고 실지로는 진짜로 친한파들에 대해서는 우리 편이니까 하고 방심하는 그러한 경향이 있읍니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멧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놓친다는 우리 속담도 있읍니다마는 우리 친한파 의원들이 잘못하면 토라져서 돌아설 그러한 우려가 있다, 따라서 제일 의원연맹이 힘주어야 할 것은 먼저 친한파 의원들을 어떻게 하면 절대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느냐, 그 사람들이 섭섭하지 않게 하느냐, 특히 민사당 의원들이 지금의 그 결심을 그대로 가지고 나가게 하느냐 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다음에 힘이 남아나면은 자민당 가운데에 한국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또 와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중도파 사람들을 설득하고 끌어들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자민당 안에 사실상 공산당이나 마찬가지로 행동이 완전히 공산당인 사람, 그곳에 힘을 아무리 들여 봐야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저는 과거 3년 동안의 경험에서 절실히 느꼈읍니다. 따라서 먼저 친한파 다스리고 그다음에 중도계 인사에 접촉을 시작한다, 그다음에 그게 가능해지면 이미 민사당을 통해서 다리는 놓아졌으니까 공명당에 대해서도 접촉을 확대해 간다, 공명당에 대해서는 여기서 자세한 얘기를 안 하겠읍니다마는 신민당 의원들께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해 주시고 지금 현재도 하고 계시는 줄 알고 있읍니다. 다음에 사회당에 대해서도 접촉을 확대해 나갈 생각을 하고 있읍니다. 사실은 의원님들께서 잘 아시는 것처럼 일본 사회당도 지금 현재 에다파와 나리다파로 연파 강경파 둘로 나누어져 있읍니다. 강경파하고 온건파하고 둘로 나누어져 있읍니다만 에다파는 이미 1973년 전반기에는 우리 한일의원간친회의 일본 측 방한단에 공식으로 가입까지 해 가지고 한국에 온 적이 있읍니다. 따라서 그 온건파에 대해서는 전혀 우리가 입김이 통하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 없읍니다. 그것은 가능성이 있읍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에다를 중심으로 한 일본 사회당 의원들이 전후 상당기간 미국을 방문하지 않다가 사회당 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했읍니다. 이러한 사회당 내의 우파하고는 다분히 얘기가 가능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파에 대해서도 활동을 넓혀 갈 계획입니다. 그다음에 아까 의원연맹 설립총회의 공식성명에서 발표한 한미일 3개국 의원협의기구에 대해서는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난 다음에 우리 한국의원들보다는 일본 측 의원들이 더 솔선하고 적극적으로 미국 쪽에 대해서 여러 가지 타진을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미국의회는 맥시코하고의 공식 협의기구를 가진 것 이외에는 아무런 기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어제 김창규 의원님께서 이 자리에서 보고를 하시는 것을 경청했읍니다마는 우리 국회 내의 참전동지회 의원님들께서 지난번 방미하셔서 참 빛나는 활동을 하고 오셨고 또 앞으로도 그러한 활동을 간단없이 계속한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그 참전동지회의 활동에 크게 기대를 하고 횡적으로는 한일의원연맹과 이 참전동지회가 긴밀한 협력을 하고 또 일본과도 협력을 해서…… 가까운 시일 안에 이게 이루어지리라고는 저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빠른 시일 안에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해서 목적을 달성할 그런 계획입니다. 끝으로 한마디만 의원 여러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친 한일의원간친회, 의원연맹의 총회 때마다 우리 의원님들의 그 대표단 구성에 있어서 여러 가지로 많은 곡해를 자아내고 실례를 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다만 한 가지 여러 의원님들께 꼭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제가 여러 의원님들과 같이 한 3년 동안 대일접촉을 해 본 경험에 의하면 아무래도 친해져야만 속말이 나오고 여러 차례 만난 사람이라야만 사실상 부탁도 하기 쉽고 얼굴이 익혀져서 활동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해먹는 사람만 해먹느냐 하는 그러한 농담도 나오기도 했읍니다만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의원외교는 참 외람되게 말씀드립니다만 의원들 간에 역시 전문화되어야지 이것이 전문화되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접촉을 해 가지고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외람되게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대일접촉을 해 보시면 물론 다 아시겠지만 가령 일본 자민당 안에 8개 파벌이 있고 8개 파벌뿐만이 아니라 또 선거구가 중선거구제여서 같은 자민당이지만 그 사람들은 동지끼리 피나는 전쟁을 해 가지고 국회의원에 당선이 됩니다. 따라서 같은 자민당 안에 같은 친한파이면서도 완전히 선거구가 같기 때문에 원수처럼 자리에 앉으면 뒤돌아서는 사람이 있읍니다. 얼굴을 맞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령 A B가 있는 두 사람 가운데 A한테 가서 같은 친한파라고 B에 대해서 칭찬을 하다가는 당장에 뒤돌아 앉습니다. 또 아시는 바와 같이 청람회 라는 일본에 조직체가 있읍니다마는 청람회에 대해서는 그 사람들 얘기만 하면은 돌아앉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 앞에 가 가지고 청람회가 친한적인 행동을 한다고 해서 칭찬을 아무리 해 보아야 역효과만 나지 실제로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전문화되어야 할 그런 필요가 있겠더라, 그 점에 대해서는 외람되나마 의원 여러분들의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그다음에 의원연맹의 전반적인 활동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더 이상 보고말씀 드릴 만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말씀 못 드립니다마는 한일 두 나라의 협력관계를 더욱 증진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의원연맹을 통해서 열심히 활동할 생각입니다. 여러 의원들께서 전에도 그러셨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단한 협력과 지도편달이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일의원간친회 제5차 총회 및 한일의원연맹 설립총회 결과보고 한일의원간친회 제5차 총회 및 한일의원연맹 설립총회 참고자료

다음은 박영록 의원께서 한일의원연맹총회 결과보고에 대한 간단한 발언이 있겠읍니다. 박영록 의원 나오셔서 발언하십시오.

우리 국회가 어제 오늘 이틀 동안 우리 의원들이 어려운 역경을 무릅쓰고 외국에 나가서 의원활동을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국제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돌아와서 그 내용에 대해서 소상하게 보고하는 말씀을 본 의원은 감명 깊게 들었읍니다. 세계가 지금 미소 양국으로 대립이 되어 가지고 싸우고 있고 또 거기에 덧붙여서 자원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모든 국가 간에 대립이 점차 치열화되어 가고 있는 이러한 때인 만큼 우리 한국은 국내외적으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할 중대한 시국에 처해 있다고 본 의원은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국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우리가 국내에 있어서는 각자 서로 소속이 다른 정당정치인으로서 서로 상반된 주장을 우리가 피력하면서 정치적인 투쟁을 계속하고 있읍니다마는 그러나 우리가 한 발자국 국내를 벗어나서 외국에 나갈 것 같으면 또 외국에 나가서 국제회의 같은 데에 참석을 할 것 같으면은 우리 여야 의원들은 언제 약속이나 한 것들처럼 우리들이 정치적인 어떤 정략을 떠나서 초당적인 입장에서 여야가 국가적 차원에서 우리 한민족의 명예를 세계에 떨치기 위해서 대승적 견지에서 서로 협조를 해 왔고 그로 말미암아 오늘날 우리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날로 높아 가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주역을 맡아 가지고 세계에서 일하시고 온 여러분들이 돌아와서 소상하게 성의 있는 보고를 할 때에 우리는 여야 의원 다 같이 감사한 마음으로서 여기에 대해서 제 나름대로의 주의 깊게 또한 감회 깊은 생각을 가지고 이틀 동안 임해 왔읍니다. 의원 여러분! 우리가 국내에서는 서로 이러쿵저러쿵 싸우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는 폐쇄사회가 아닌 개방사회에 살고 있는 자유민의 한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또 영예스러운 직위를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라고 나는 자부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반국민이 가질 수 없는 어떤 특권을 가지고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세계 모든 자유나라 백성들과 더불어 우리 의원들이 앞장서서 외교를 전개함으로써 양국 국민의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하고 그것을 긴밀히 해 가지고 이것을 국민적인 차원으로 승격시키면서 이것을 후세에 공고히 해 나가야 되겠다고 하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명감에 있어서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우리 국회의원들로서는 다 같이 마음을 같이하고 있는 우리들의 양심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에서 제가 말씀을 드리는데 우리는 여러 가지 의원들의 각종 외교활동을 통해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앞으로도 이것을 또 지속해 나가야 될 그러한 국가적인 민족적인 요청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좀 성과 있게 해 나가기 위해서 그러한 충정을 가지고 내가 여기에서 몇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국회에는 IPU를 비롯해 가지고 APU 또 그리고 어제 참전의원동맹 또 그 외에 한독연맹…… 한독협회지요. 또 한불협회 또 한영협회, 한토 그리고 한국과 인도네시아 이렇게 5개의 의원협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지금 제가 말씀한 이와 같은 의원연맹에 있어서는 그 처음부터 시초가 제대로 되어 있었어! 그야말로 국제적인 관례에 따라서 처음이 깨끗하게 시작이 되어 가지고 또 그 운영하는 절차에 있어서도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운영의 묘를 기해 왔기 때문에 우리 국회의원들로서는 여기에 대해서 여야 별 이론이 없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읍니다. 그런데 내가 여기에서 한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일연맹이올시다. 이 한일연맹은 국교정상화가 돼 가지고 우리 국회로서의 어떤 방침 밑에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한국 국회의원들 중에서 일본에 대해서 좀 잘 알고 있는 소위 지일의원 또 일본으로 볼 때에는 한국을 이해한다고 하는 모든 의원들 이런 분들이 사적으로 국회와는 관계가 없이 의원 상호 간의 어떤 모임을 통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한일 양국 간에 많은 공헌을 해 왔어! 그렇게 해 오다가 이것 이렇게만 해 가지고서는 안 되니 이것을 자연 발전시키면서 해체를 해 가지고 한일연맹으로서 이것을 발족시켜야 되겠다고 하는 여기까지 왔다 이 말이야. 그러면 여기까지 왔다고 할 것 같으면 대단히 좋은 일이야. 그러면 우리 국회가 이것을 어떻게 처리를 해 나가느냐? 우리가 물론 국회는 그동안에 개회가 안 되어 가지고…… 바빴어! 바빠서 비공개적인 우리는 의원회의를 할 수는 없었읍니다. 그러면 비공개적인 회의를 할 수는 없었으면 그러면 각 교섭단체별로서는 이것을 얘기가 되어야 돼! 그래 가지고 그간에 있었던 한일간친회에 대한 모든 문제를 우리가 경과보고를 하고 이제부터 한일연맹이 발족하는 것이다, 한일연맹이 되면 일본 측에서는 몇 명의 의원이 나오고 우리 한국에서는 몇 명의 의원이 나오는 것인데 이것은 각 교섭단체별로서 이러이렇게 인원을 짜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공화․유정․신민 대표들이 나와 가지고 그것을 의원총회를 열어서 의원총회에 맡겨 가지고 소정의 절차를 따라서 해야 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내용도 모른다 이것이에요. 신문을 통해 가지고 우리가 겨우 한일의원연맹이 발족되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가 알 정도다 이 말이야! 뭐요! 한일의원연맹…… 여기에서 국회에서 지금 한일의원연맹에 대해서 얘기를 하니까 한일연맹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있소? 내가 무슨 딴 얘기를 하는 것이오? 장 의원! 좀 조용히 들어요. 설사 의원이 그런 말 했다 하더라도 말이야 한일의원연맹 문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한일연맹이면 되었지 뭐 또 거기에다가…… 한일의원연맹도 되지를 않는 것이에요. 한국일본국회의원연맹이라야 되는 것이에요. 그렇게 덩치는 큰 양반이…… 쓸데없는 문제를 가지고……

박 의원 진행하세요. 계속하세요.

그래서 이런 절차를 밟아서 하는 것이 좋겠다 이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생각은 어떻게 하는지는 몰라도.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조그마한 문제 같지만 민족적인 입장에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을 하나 발견한 것은 무엇인고 하면 우리가 모든 국제회합에 있어서는 국제관례에 따라서 영어를 통용어로 하는 것이 우리들의 국제적인 상식입니다. 그런데 한일연맹에서 그 이유인즉은 여러 가지 시간이 없고 명분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실리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불가불 일본말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본말 쓴 그 이유를 들으면 개회식 같은 데서는 일본말을 안 썼지만 공개토론회에서 썼으니까 괜찮지 않느냐 이런 얘기도 나올 수 있읍니다. 하지만 본 의원은 생각하기로 일반 개회사 같은 문제보다도 토론에 있어서 한국말을 안 쓰고 일본말을 썼다는 데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읍니다. 왜 그런고 하면 토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오장육부로부터 우러나오는 우리들의 의사를 발표하는 것이오. 우리들의 이 민족의 의사발표를 우리 한국민의 말로 하지 않고 어느 딴 나라의 말로 한다 이것은 본 의원이 잘못 생각인지는 몰라도 이것은 우리가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이것입니다. 과거에 6대 때 이런 일이 있어요. 지금 아마 여야 의원들이 거기에 나가서 노력하신 분들 이름을 다 열거하지는 않겠읍니다마는 그 당시에도 일본에서 한일간친회를 여는데 본부를 갖다가 동경에다 두자, 말은 일본말로 하자 이런 얘기가 나왔을 적에 우리 여야 공동의원들이 하루 회의를 연기를 시켰어! 여기에 앉은 한건수 의원을 비롯해 가지고 여야 의원 모두가 이럴 수가 있느냐, 이 하루 회의를 연기를 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본회는 개최국가에다가 두는 것이다. 태국에서 하면 태국에다 두고 한국에서 하면 한국에다 두고 말은 그 나라의 말로 해! 아, 우리 대한민국 독립주권국가 영토 내에서 이루어지는 이 국제회의에…… 우리가 사석이나 이런 데에 가 가지고서야 일본말 하는 것까지 내 방해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의사를 토로하는 이 토론에 있어서 일본말을 썼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 가지고 그것이 시정이 되었어! 시정이 되었는데 이번에 이 문제가 다시 환원이 되어 가지고 일본말을 썼다 이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나는 한일간친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이 회의를 잘 발전시켜 가지고 우리가 한일 양국 간에 개재되어 있는 우리 민족감정을 해소시키면서 두 나라가 협심해 가지고 우리 아세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하나의 주역적인 역할을 해야 되겠다고 하는 이 근본정신에 있어서 여야 여러분이나 나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 결정할 것이 있읍니다. 앞으로 한일연맹은 계속된다 하더라도 우리 의회의 결의로서 한일회담에 임하는 모든 의원들은 국제관례에 따라서 일본말을 쓰지 않고 세계공통어인 영어나 우리말로 쓰게 한다고 하는 이 원칙적인 문제를 결정을 해야 돼! 이것을 결정하지 않고 그대로 나간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떤 결과가 오느냐? 우리는 주권 자주국민의 입장으로서 우리나라의 국위와 권위를 우리 스스로가 세계 내외에 떨어뜨리는 행위가 될 것이고 우리 한민족의 입장으로 볼 때에는 우리 민족으로서의 자존심과 긍지를 우리 스스로가 떨어뜨리는 행위가 되고 또 여기에 임하는 우리 국회의원들로서는 우리들의 품위와 자질을 우리 스스로가 짓밟는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 오늘 의원총회의 결의로서 한일회담에 임하는 이 문제…… 이것은 일본사람들도 우리에게 대해서 조금도 기분 나빠할 것이 아니야! 당연한 것이야! 이 문제의 결정을 의장은 하고 넘어가자 이것이에요. 만일에 의장이 이 명명백백한 이 사실을 결정을 해 주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은 대단히 불행한 얘기이지만 본인은 아까 얘기한 이 나라의 주권국가로서의 권위, 한민족으로서 긍지와 자존, 국회의원으로서의 자질 이런 것을 생각해서 나는 이 한일의원연맹에서 탈퇴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입장에 서 있다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 이것은 내가 탈퇴를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국회의장은 당연히 지금 국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 문제, 이것 옛날 우리가 한일합방 할 때에도 어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우리 강토 내에서 이루어지는 회의에 우리가 우리말을 쓰지 않고 딴 나라 말을 써! 이것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오늘 이 첫 국회에서 우리 한민족을 위한, 우리 국가이익이 되는 전당이 되어야 되고 나아가서는 남북통일을 해야 될 이 입장에 정부가 주체성을 주장하는 이런 근본정신에 입각해서라도 우리는 오늘 할 일을 떳떳이 하자 이것이에요. 이것 조그마한 일 같지마는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국회의사당에서 이 민족과 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새 출발 하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고 현명하신 여야 의원 여러분! 저의 발언은 조금도 정략적인 데가 없고 오로지 순수한 마음에서 이것을 드리는 것인 만큼 의장은 현명한 의사진행을 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내 여기에 대한 발언을 끝마치고자 합니다.

다음은 최영철 의원으로부터 보충설명에 의한 발언이 있겠읍니다.

최영철입니다. 지금 존경하는 박 선배 의원님께서 잠깐 착각하시고 있는 것 같아서 해명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해명할 것은 한일의원연맹이 박 의원님께서 생각하시고 있는 것처럼 일본국회와 한국국회가 정식으로 어떤 연맹을 맺은 것이 아닙니다. 한불협회나 한토협회 등은 양국 의원이 전원 가입해서 된 것입니다만 일본 쪽은 700여 의원 중 200여 명밖에 가입해 있지 않고 우리 쪽 입장도 있어 형식적으로는 현재로서는 의원 전원이 가입돼 있는 상태는 아님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과거에도 의원연맹의 대표를 선임할 때는 비록 비공식적이기는 했었지만 여야 교섭단체에 대해서 전부 다 협의를 하느라고는 했읍니다. 그것은 하나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용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그러니까 지금…… 조용히 해 주세요. 제가 말씀드리겠읍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두 번째로 해명할 것은 의원연맹에서 공개토론에서 일본말을 썼다고 그러셨는데 공개토론에서 일본말을 쓴 적 없읍니다. 그것은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읍니다. 다만 비공개회의에서 한국에는 아직도 동시통역을 즉석에서 정확하게 할 만한 통역사가 없어서 무척 어려운 점이 있으니 일본말을 아시는 분은 일본말을 쓰셔도 좋고 만일 모르시는 분은 한국말을 써도 좋다 그래서 비공개회의에서도 한국말로 말씀하신 분은 했고 일본말로 말씀하신 분은 할 수 없이 일본말로 말씀하신 분도 있읍니다. 그것을 양해해 주셔야 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