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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개의 발언을 찾았습니다(페이지 1/4, 1-20번 표시)

순서: 1
당국의 설명 듣고 나서 하겠읍니다.

순서: 38
불초 본 의원의 일시적인 과오로 인해서 양일에 긍해서 숭배하는 선배 여러분에게 지대한 괴로움과 걱정을 끼쳐 드리게 해서 실로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무엇이라고 표할 여지가 없읍니다. 지금 당국에서 여하한 증거가 어떤 각도로서 진전이 되었는지 불초는 전연 백지입니다. 그간 듣건데 김 장군의 저격사건의 주범으로 되어 있는 허 대령이 말하기를 김 장군 사건 후에 나를 만나 가지고 차를 어떻게 해 달라고 이런 말을 했다, 그래서 이것은 무슨 방조 비슷한 내가 위치에 놓여 있는 것같이 증언이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저께 여기에 테프를 가지고 와서 본인의 운전수의 진술이라고 해 가지고 여기에 증언되기는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김 장군이 피살당하던 당일 아침에 운전수가 한데에 나갔다 돌아오는 것을 바로 내가 불러 가지고 ‘한데가 소란하지 않더냐?’ ‘네, 오늘 굉장합디다.’ 그러니까 내가 ‘응’ 그래 하면서 미소를 띠었다 이런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 증언으로 보면 내가 사전 공모에 가담하게 된 것이고 오늘 제가 잘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허 대령의 진술이라고 해서 나온 증언은 제가 사후에 사건의 방조로 이렇게 아마 선배 여러분도 보리라고 봅니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이것을 조작해서 떡 만들 듯 만들자면 모순당착이 생기는 법입니다. 언제나 사물지사에 있어서 모든 것이 조리가 있고 질서가 정연해야 됩니다. 각본을 쓰면 똑바로 써야지 이것이 위우쳐저 가지고는 고도하게 관찰력을 가지고 계시는 선배들도 납득이 안 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변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타난 사실에 대해서 사실이 어떻게 나열되어 돌아가느냐 하는 것을 내가 여기에 입증을 하고 선배 여러분에게 이 기회를 틈타서 환기시키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읍니다. 그리고 그저께도 김 장군과 저와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다소 말씀을 선배들에게 올렸읍니다. 몇 가지 보충해서 이 기회에 또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김 장군의 부인이 바로 우리 도 가입니다. 도씨라는 것이 대단히 희성입니다. 그리고 금년 정월에도 나는 김 장군...

순서: 40
네! 특무대에서 차를 바꾸어 준 것은 그저 무상으로 받는 것이 아니고 인수 를 채워 줄 헌 차를 주기로 하고 이 차는 현재 특무부대에 보관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요번에 압수한 차와 차가 별도입니다. 제가 쓰던 것은 모로 헌 차입니다. 그래서 이 차를 주고 지나든 정리 로서 김 장군이 저에게 바꿔 주겠금 약속이 되었든 것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수표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수표는 박용준이 명의로서 발부된 개인 수표입니다. 수표로서 조흥은행 광화문지점에 그 증거물이 있을 겁니다. 그런 거니까 이것을 수표를 가지고 허 중위에게 제가 직접 차값이라고 해 가지고 수교했읍니다. 이상입니다.

순서: 42
그 전화를, 여기에 들어오니까 기자들이 와글와글하면서 도 의원 모르느냐 하면서 벅적어려요. 그 찰나에 저도 사실은 내가 참 잘 아는 장군이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마음이 복바치고 심경이 소란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특무대에 가장 가까운 장교가 누구냐 하면 병기과장이에요. 그래서 전화를 걸기를 ‘어떻게 된 노릇이냐?’ 그러니까 몰라요, 그때 대답이. ‘그러면 어떻게 되어서 그러냐?’ 그러니까 저쪽의 대답이 부대장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 가지고 저도 낙심을 하고 그럴 찰나 제가 무슨 말을 했느냐 하면 ‘자, 이렇게 되면 내가 차 탈 팔자가 안 되는구나’ 하는 이러한 말을 한 것같이 기억이 됩니다.

순서: 44
네! 차장실에서 걸었읍니다.

순서: 46
차를 그냥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헌 차를 그냥 주고 차를 받기로 약속한 날이 바로 그 김창룡 장군이 돌아가시든 날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밝혀 드리겠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순서: 5
불초 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선배 여러분들에게 뜻하지 아니한 여러 가지 걱정을 끼치게 해서 실로 죄송하고 송구스러운 마음 뭐라고 이 자리에 변명할 여지가 없읍니다. 지금 녹음, 국방차관의 보고 여러 가지 들으셔서 범죄수사에 대략 고도한 관찰력을 가지고 계시는 여러분이 대략 짐작하리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제가 이러한 사실에 정을 알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먼저 조건으로서 밝혀 두고 순차적으로 이 경위를 여러분에게 말씀 올리겠읍니다. 김창룡 중장과 저는 어떠한 사이에 있느냐 하는 것…… 이미 설명하지 않어도 선배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저는 이 양반 밑에서 자라나 가지고 학식이 있어서 국회의원이 된 것도 아니고 무슨 인물이 잘나서 된 것도 아니고 오늘날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오늘날의 선거라는 것은 당 싸움인데 여러 가지 힘이…… 이 특무부대에서 음으로 양으로 컸다는 것은 여러분도 아실 것이고 내가 솔직히 이것을 지적합니다. 저는 이 양반의 그늘 밑에서 커 나온 사람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세상을 떠나서 배 위에 뜸박을 맺기 전에는 저격을 당한 김창룡 중장의 이 거룩한 은혜 이것을 제가 잊지 못할 입장에 있는 것……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양반의 그늘 밑에서 제가 국회의원이 되어 가지고 격이 동격이 되었다고 보는 입장에 있는 내가 무어가 답답해서 누구를 죽이라 살리라 어째라 하는 여념이 있을 턱이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오관의 작용으로서 충분히 판단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이 자리에서 지적해 둡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이 해명서에도 밝혀 드렸읍니다마는 지금부터 일자가 자세치 않습니다마는 이 양반이 돌아가시기 약 한 10여 일인가 7, 8일 전에 현재 특무부대에 근무하고 있는 김봉기 소령이 찦차를 가지고 그날 12시경에 국회로 저를 찾어왔어요. 찾어와서 ‘지금 부대장이 좀 보자고 그러는데 갈 수 없는가?’ 하기에 저는 이 양반을 숭배하는 양반인 까닭에 서슴치 않고 그날 딸어갔읍니다...

순서: 7
저는 그런 것은 지금 기억도 없고 운전수한테 내가 물어본 바도 없고 그날 내가 10시경에 나가서 아연실색했읍니다. 10시경에 국회에 나와서 비로소 치안국 경찰관, 나 아는 사람이 가리켜 줍디다. 어깨를 탁 치면서 ‘아느냐?’ 이렇게 묻기에 ‘뭐냐?’ ‘김 장군이 오늘 아침 출근 도중에 피살당했소’, 내가 가지고 나왔던 거시기를 떨어트릴 정도로 실색을 했읍니다. 그래서 거시기했지. 이러한 미약한 이걸 가지고 말입니다 적어도 10만의 대표를 낚시질할려고 한 이것이 벌써 안 됩니다. 그런 뭐니까 현명하신 선배 여러분 어데까지나 고도하신 관찰력으로서 깊이 측량하셔서 제가 도망가거나 그러지 않고, 제가 태연자약합니다. 지금 내 가슴에 뭐든지 측량기라도 갖다 대세요. 내가 조곰이라도 두군거리는 마음이 없읍니다. 태연자약합니다. 절대로 내가 무슨 여기에 가담했다면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니까 현명하신 여러분께서 잘 거시기해서 잘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서: 12
지금 민영남 선배께서 물으신 보류증 문제와 차창문, 윈도우라고 그럽니까? 떨어진 문 고치는 데 두 가지에 대해서 제가 해명을 해 드리겠읍니다. 이 차가 불하증하고 보류증은 되어 있는데 서울시의 넘버만은 나오지 않은 차입니다. 서울시의 넘버가 나오지 않은 까닭에 앞에 넘버 표시 간판이 없었읍니다. 그리고 서류만은 이것은 지금 찾어도 알 것이지만 미인이 싸인한 불하증하고 또 육군에서 발부한 보류증하고 이것만은 구비된 차입니다. 그런 까닭에 넘버가 없이 움직일 수가 없는 까닭에 이것은 편의상 부득이 제 헌 차 못 쓰는 차에서 이것을 떼어다가 단 것이고 그리고 마도 를 수선했다는 것은 이것은 저는 지금 전연 기억이 없습니다. 제가 돈 내준 기억도 없고 어느 날 어떻게 고쳤는지 여기에 대한 것은 기억이 전연 없읍니다. 그런데 만일 고쳤다며는 운전수, 제가 어떻게 고쳤는지 이것은 운전수와 해명을 하지 않으면 제가 내용을 모르겠읍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만은 이렇게 밝혀 드리고 내려가겠읍니다.

순서: 18
지금 김상도 의원이 말씀하신 이 차를 산 날짜와 사 가지고 받은 장소 또 음력 정월에 어떻게 되었느냐, 이 세 가지 요점에 대해서 답변해 드리겠읍니다. 이것 이 제가 아까도 말씀했읍니다마는 허태영 대령 집에서 각 지구 파견특무대장 친구들이 모여 가지고 놀기 시작한 것이 아마 2월 4일 5일경, 6일 그 근처라고 봅니다. 계속해서 3, 4일 놀었는데 그 당시에 말이 되어 가지고 허 중위를 15CID로 가도록 보직 알선을 해 주고 그 연후에 이 차를 허 대령 차고에서 인수를 받었는데 그 날짜가 2월 7, 8일경이 되지 않나 그렇게 알고 있읍니다. 똑똑히는 모르겠읍니다마는…… 그리고 국방색 차에 표식은 어떻게 했느냐 하는 이것은, 국방색 차에 앞뒤 남버만 달고 그냥 사용했읍니다. 그리고 받은 장소도 역시 허태영 대령의 차고에서 인수받어 가지고 그대로 사용했읍니다. 그리고 아까 국방차관의 여기에 증언이 10여 일간 우리 집에다가 이것을 은닉해 두었다 이랬는데 이것은, 10여 일은 거짓말입니다. 제가 12일이, 아마 우리 설이 아닌가 이렇게 봅니다. 음력설에, 12일 그날 저녁에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내려가 가지고, 내려가는 날까지 1주일 꼭 걸려서 제가 서울로 돌아왔읍니다. 그래서 내려갈 때에는 운전수도 역시, 제가 없으니까 필요 없는 까닭에 같이 데리고 갔다가 운전수는 하로 늦어가서 오고 저는 1주일이 딱 되어 가지고 왔읍니다. 와서도 역시 그대로 내어 가지고 쓰다가 칠은 22일인지 3일경에 했다고 봅니다. 그것밖에는 이상 더 없읍니다. 이것을 밝혀 둡니다.

순서: 20
네, 두고 갔읍니다.

순서: 24
유옥우 의원께서 차의 말이 나오기를 ‘어디서부터인가’ 하는 것을 지금 한 데 대해서 말씀 올리겠읍니다. 사실은 각 파견대장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제가 팔자 한탄을 했읍니다. 내가 여기에 좋으나마 하꼬차 를 탈 팔자가 없는 모양이다, 딱 차 바꿀려고 약속한 날짜에 김 장군이 간다는 것은 이상야릇한 일이고 내가 복이 없는가 부다 하는 한탄을 각 파견대장한테 했어요. 하고 실은 그 대장도 일부 있었고 차 임자 차주인 허 중위도 거기에 있었고 모두 있는 회합한 석상에서 이 차에 대한 것을 많이 논의가 되었읍니다. 이것은 각 파견대장들한테 알어보아도 알 것입니다. 그렇게 알어 주십시요. 그리고 이것은 다 제 해명서에 그 이름이 나와 있읍니다. 알어보시면 알 것입니다.

순서: 28
김일 의원의 말씀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상사가 피살을 당한 중요한 찰나에 원수를 잡을려고 활동하지 않고 놀았다고 하는 이 모순…… 있을 수 있는 일…… 당연히 선배의 질문을 경청합니다. 미안하게 죄송하게 느끼고 무엇이라고 답변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렇게 진행되었던 까닭에 사실인 까닭에 사실을 말씀했던 것입니다. 김일 의원께서 지금 물으시는 그 말씀에 대해서는 뭐라고 제가 소신이라고 할까 답변할 여지가 없읍니다. 송구스럽기 짝이 없읍니다. 실은 사단 군단 산꼴짜기에서 참 수개월 신곤하던 각 대장들이 좋은 기회로 왔던 나쁜 기회로 왔던 일단 도시에 와서 집합이 되니깐 자연 섯다도 벌어지고 마짱도 벌어젔던 것입니다. 솔직한 고백을 이상으로써 말씀드리고 내려가겠읍니다.

순서: 10
송구스럽습니다. 본건 조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본 의원이 파악하고 있는 한도 범위 내에서 느낀바 몇 가지를 이 자리에서 선배 여러분에게 말씀 올리겠읍니다. 방금 위원장 또 본건 조사위원회위원장 두 분이 상세한 보고를 말씀드렸읍니다. 그런데 실제에 있어서 이 사건이 460여 페지로 나열되어 가지고 우리 조사위원도 상당히 여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세세한 조사를 한 결과 전체적인 것을 제가 일괄해서 볼 때에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 동서고금에 유례를 볼 수 없는 기현상이라는 것은 물동계획 수립에 있어서 일정한 자원 근거가 없는 것, 모든 사업의 추진에 있어서 일정한 근거가 희박하고 그때그때 잠정적으로 당국에서 사업에 부닥치면 그때 무슨 방안을 세워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잠정적으로 해 나가는 것을 본 건을 조사함에 있어서 내가 파악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건이 방금 하태환 의원으로부터 말씀드린 바와 같이 460여 페지에 긍해서 방대한 인과관계 대상자 여러 가지 관계자를 다각도로 보아서 보고를 지금 선배 여러분이 들으시고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지 이 사건을 뒤집어 볼 때 약간 여기에 대한 견해의 차이가 있읍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첫째, 이 사건이…… 말이 뒤죽박죽으로 순서가 없읍니다마는…… 색안경을 쓰고 보면 한이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실지 우리가 파악해 본 결과는 제가 7개월 간 조사위원을 최초부터 탓취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이 조사를 한 결과 본인의 의견으로서는 손 국방장관이나 그 밑에 있는 차관 또는 국장이 금품에 대한 수뢰 수수 이러한 근거는 전연 없습니다. 그리고 본건에 있어서 이미 항간의 여론으로 정치적으로 물의가 많이 자아내 가지고 하부에 있는 위관급 영관급, 행정을 담당한 이 사무집행관들이 몇 가지 5만 환, 10만 환 이 정도로 수뢰를 받은 사실이 탄로가 되어 가지고 본건에 있어서는 이미 사직 당국으로 하여금 군 사법으로 하여금 군법회의에 회부해서 엄단을 내리고 벌써 법의 처단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우리나라 실제 사정을 도리켜...

순서: 17
무슨 얘기를 하는 거요. 의사진행만 해요. 무슨 말을 떠드는 거요.

순서: 19
의사진행을 하시요.

순서: 25
발언권을 얻었읍니다. 말씀을 드려야 되겠어요. 여러분이 말씀을 들어보아야 될 것이 아니에요? 제가 아까 말하기를 본건의 수속절차에 있어서 졸렬하기 짝이 없고 유치하기 짝이 없다고 사전에 지적했읍니다. 그것은 그 말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보고하고 일치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인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을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어디까지나 현실에 입각해서 현실에 우리는 좇아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박영종 의원이 말씀하는 것을 듣건대는 정치인으로서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치인으로서 현실을 무시하고는 할 수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데, 그러나 내가 저런 사람을 상대로 해서 싸우고 싶지는 않어요. 무엇이냐 하면 피원조국가의 가장 수위가 되는 우리 한국에 있어서 특히 외국 원조물자를 우리가 얻는 국가로서 이 현실에 비추어 가지고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을 이 이상 더 확대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소견으로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것을 아까 김기철 의원은 국방위원회에서 의견이 양립되었다는 이런 의견을 말씀드렸고, 김홍식 의원과 그런 말씀을 드렸읍니다마는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보고를 하되 어디까지나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은 개인의 소견으로서 말씀드렸다는 것을 아까 밝혀드렸던 것이에요.

순서: 27
그런데 아까 김홍식 의원과는 약간 의견을 달리합니다. 우리 국방위원회 조사를 믿어 준다면 특히 누구를 불러서 물어보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우리 조사를 믿어 주신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즉각 처리위원회를 구성해 가지고 방안을 세워서 우리가 일할 것이지, 그 사람을 불러서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왔던 김에 말씀드리고, 어디까지나 아까 말씀드린 것은 국방위원회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개인의 소견을 말씀드렸으니까 이것을 특히 박영종 의원 각하에게 내가 명시해 둡니다.

순서: 0
경주에서 발생한 우리 공군전투기 추락사건 진상보고를 간략해서 말씀 올리겠읍니다. 실은 어제 그저께 류지원 국방위원장으로 하여금 기위 사전보고를 선배 여러분에게 올렸읍니다마는 실지로 답사한 그 진상을 간단히 간략해서 여러분에게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읍니다. 사고발생 일시는 금월 8일 상오 9시 30분경입니다. 사고발생 장소는 경주시 동북방 8키로 지점에 놓여 있는 내동국민학교 교사입니다. 발생원인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대구지구 주둔 전투비행단 소속인 항공사관후보생인 박창서 당 스물두 살 먹은 후보생이 실습비행을 동일 오전 9시경에 기지를 출발해 가지고 약 20분간에 긍해서 비행실습을 마치고 기지로 돌아가는 도중에 돌연 기체의 사고로 말미암아서 추락이 된 것입니다. 사고가 되었는데 그 국민학교는 서로부터 동을 향해서 7교실을 1동으로 하는 긴 청사입니다. 그 청사 맨 복판에 이 비행기가 추락되면서 결국 거기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피해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인적 피해로서 교사가 파괴되면서 그 가운데에서 압사된 사망자가 14명…… 이것은 생도입니다. 그리고 조종사 1명이 전투기의 추락과 동시에 비참한 주검을 했읍니다. 그리고 중상자가 18명, 경상자가 20명입니다. 물적 피해로서는 국민학교 교실 4개 교실이 완전히 전파되었읍니다. 그리고 3교실 동서로부터 있는 교실도 역시 사용 불가능 반파 정도에 이르렀읍니다. 그래서 동 교실 내에 시설된 교재, 책상, 의자들도 반파 우 는 전파로서 사용 불가능 지경에 이르렀읍니다. 그래서 이것을 전부 종합해서 시가로 피해액을 환산하면 약 520여만 환에 달한다는 당지 책임자의 말입니다. 그리고 F-51 무스탕크 1대가 전파되었읍니다. 이것이 시가 약 4만 5000불 정도랍니다. 사고발생 후 조치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사고가 발생한 약 30분 후에 당지 경주경찰서에서 대구지구 주둔 비행기지부대에 연락이 있자 대구비행단기지에서는 단장의 직접 인솔하에 의무중대가 동원이 되고 1개의 공병대대가 동원이 ...

순서: 2
송구스럽습니다. 잠깐 지금 민 단장으로 하여금 하와이에 대한 실정을 듣고 느낀 바 소신의 일단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겠읍니다. 방금 민 단장으로 하여금 하와이에 계시는 우리 교포 여러분의 고충 여러 가지를 들어서 알았읍니다. 국민 된 한 사람으로서 동족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수륙만리 먼 원정을 하셔서 바쁘신 때에 일정을 짜 가지고 이처럼 우리 국회를 방문해 주신 이 점 다시 한 번 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하와이는 우리 국부이신 이 대통령 각하가 40여 년간에 긍해서 지하에 묻혀서 우리 광복운동을 전개한 의의 깊은 곳입니다. 여러분이 다 같이 우리 국부를 많이 도와주신 이 점에 대해서 심심한 사의를 또 한 번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보다 선각자요 지각자요 연배이십니다. 앞으로 여러분에게 우리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여러분은 다만 하와이에 사신다는 이 기분만 가지시지 말고 하와이에 계시면서 우리 대한민국을 도웁는 외교관의 자격으로서 어떻게든지 물심양면 외교관에 대신해서 일해 주십소사 하는 것을 오늘 이 기회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쌍수를 들어서 비러 마지않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는 자세히 내용은 모릅니다만 평화신문사사장 홍찬 선생이 우리 대한민국에 있어서 또 경제계의 거성입니다만 이 홍찬 선생의 격별한 안내로서 여러분이 이 조국에 오셨다는 말씀을 들었읍니다. 그런 만치 여러 가지 할 말이 많이 있읍니다만 시간관계로서 생략하고 한 번 더 거듭해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대한민국의 존립은 미국의 원조 없이 나갈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여러분이 한 번 더 인식하시고 끝까지 여러분은 우리 대한민국의 대사관의 일원으로서 외교관의 일원으로서 음으로 양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도와서 우리나라의 발전․육성에 만전을 기해 주십소사 하는 것을 이 기회를 통해서 빌어 마지않는 바입니다. 대단히 감사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