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일정 제1항 의원 해외활동 보고를 상정하겠읍니다. 먼저 서남아지역 3개국을 방문 활동한 의원단의 이진용 의원께서 나오셔서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진용올시다. 대통령특사 차지철 단장, 류승원 의원, 신기석 의원, 이도선 의원, 함명수 의원, 이진연 의원, 박병효 의원 그리고 본 의원 등 8명은 대통령특사사절과 의원외교친선사절단이라고 하는 두 개의 사명을 띠고 지난 6월 네팔왕국, 버어마연방사회주의공화국, 라오스왕국 등 서남아 3개국을 순방하고 돌아왔읍니다. 그 구체적인 활동내용에 대해서는 서면보고서로 유인물이 의원 여러분께 배포되어 있읍니다. 본 의원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여러 의원께 배포된 서면보고서 내용을 회의록에 게재해 줄 것을 의장께 요청을 하고 승낙해 주신다고 하면 이 자리에서 낭독하는 것을 생략을 하고 간략하게 활동개요와 결론만을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3개국은 아열대성 기후를 가진 섭씨 40도에 습도가 98%나 되는 무더운 나라들이었읍니다. 우리 일행은 제한된 시간에 각국의 원수를 비롯한 수많은 지도자들을 방문하고 또는 초청해서 만찬 리셉션 등을 베푸는 까닭으로 인해서 참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읍니다. 우리 일행은 차지철 단장을 중심으로 해서 혼연일체가 되어서 쉴 사이 없이 많은 사람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을 접촉하는 데 노력을 해 왔던 것입니다. 3개국에서 우리가 접촉한 인사는 각국의 지도자는 물론이지만 각국의 저명한 인사 그리고 그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외국 여러 나라의 공관장 또 언론인들 합해서 우리가 근 1000여 명에 가까운 혹은 1000여 명이 넘을 수 있는 정도의 그러한 많은 인사를 우리는 접촉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여기서 첨언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들이 방문한 3개국에서 우리 일행을 국빈으로서 대우해 주었다고 하는 사실…… 우리는 그 나라들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도 아니요 우리가 스스로 방문해 간 나라입니다. 또 뿐만 아니라 그 나라들은 비동맹 중립노선을 취하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전례 없는 국빈대우를 해 준 데 대해서 우리는 의외로 생각을 했고 그 파격적인 우대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각국 지도자들과 만났기 때문에 격의 없는 온화한 분위기 속에서 모든 대화는 이루어졌고 각 원수들의 따뜻한 환대는 우리들의 무더위를 덜어주는 그러한 느낌을 가졌읍니다. 여기서 제가 한 말씀 꼭 남기고 싶은 것은 버어마연방사회주의공화국 네윈 대통령을 방문했을 적에 네윈 대통령은 자기 방문까지 나와서 우리 사절단을 맞아 주었고 70분이라고 하는 긴 시간을 자기가 오히려 자청해 가면서 여러 가지 정세와 또한 우리 양국 간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를 했고 끝이 난 다음에 나올 적에 그 네윈 대통령은 문 바깥에 나와서 자동차에 타는 것을 보고 또 자동차가 떠나서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가면서 환영해 주었다고 하는 사실인 것입니다. 다음은 우리가 순방한 이 지역의 정치현상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한 3개국은 모두가 핵으로 무장이 되어 있는 중공에 의해서 그 평화와 독립과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읍니다. 더우기 네팔과 버어마는 중공 못지않게 인도로부터 또한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3개국은 지정학적인 이유로 볼 적에 외교노선이 비동맹 중립을 취하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왔읍니다. 따라서 중공의 세력과 위협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이들 3개국에서는 중공을 등에 업고 접근해 오는 북괴를 멀리할 수 없는 입장임을 또한 이해할 수도 있었읍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하기 얼마 전에 북괴 부주석 강양욱과 북괴 재무상 김경연 등 일행이 친선사절단의 명분을 가지고 방문하여 남북대화의 중단의 책임과 평화통일의 저해의 책임을 우리나라에게 전가시키고 돌아갔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각국 지도자들과 만나는 가운데에 충분히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박 대통령 각하의 6․23 평화통일정책 선언과 남북대화의 진행상황 그리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대화를 성공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각 지도자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전쟁 없는 평화공존정책이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길임을 역설해서 우리 측의 진실성과 정당성을 충분히 이해를 시키는 데 성공을 하였읍니다. 여기서 한 말씀 첨언할 것은 이들 3개국은 아까도 말한 것과 같이 지정학적으로 볼 적에 공산권의 세력으로 말미암아 생존과 독립이 위협을 받고 있어서 비동맹 중립노선을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와는 친근할 수 있는 나라들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는 이번에 의원친선사절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읍니다. 이번에 우리들의 방문이야말로 양국의 이해증진에 크게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음은 문화, 경제에 대해서 조금 소개를 하겠읍니다. 네팔왕국은 당년 31세에 하바드대학을 졸업을 한 출신인 비렌드라 국왕이 실권을 쥐고 영도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문맹률이 놀랍게도 문명률이 아니라 문맹률이 87%나 되고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왕자의 복권이 된 지 이제 10년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현재 국왕은 명년도에 대관식을 가져서 왕으로 즉위합니다. 그간 네팔은 라나 수상이라고 하는 그 수상이 약 100년 동안 세습적으로 집권을 해 왔읍니다. 그러는 가운데에 그들은 그 나라 국민을 문맹자로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비렌드라 국왕이 영도하는 현 정부는 경제개발과 번영을 위해서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을 했고 내일의 희망을 안고 국민 교육에 주력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왔읍니다. 종교는 힌두교로서 국교로 되어 있고 1200만 인구의 98%가 힌두교 교인이었읍니다. 따라서 소를…… 인도와 매한가지로 소를 우상을 하고 우리가 갔을 적에 카트만두 수도 시내에도 많은 소가 자유롭게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우리는 보았읍니다. 다음 버어마와 라오스는 불교국으로서 이 나라는 문맹률이 20%밖에 되지를 않습니다. 버어마는…… 버어마에 갔을 적에 수천 개의 파고다와 사찰을 자랑하고 있었고 라오스는 헌법 제8조에 보면은 불교신도가 아니면은 국왕이 될 수 없도록 헌법에까지 규정해 있는 나라입니다. 99%가 불교신도였다고 하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그 외에 여기서 여러 가지 말씀을 좀 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마는 시간관계상 생략을 하기로 하겠읍니다. 다음에는 경제 부문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네팔왕국은 미개발 후진국으로서 남으로 인도, 북으로 중공을 국경으로 하고 있으며 양국의 원조를 비롯해서 미국, 영국, 서독 등으로부터 약간의 원조를 받고 있는 나라입니다. 농업국가로서 많은 산림과 또한 농토를 가지고 있지만도 국민소득은 불과 76불에 지나지 않고 외화수입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히마라야산맥에서 흘러내리는 에베레스트산과 마나스루산 등 유명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에 오는 관광객에 의해서 떨어지는 약 300만 불의 외화 획득 또한 그 나라 국민이 근면하고 진실성이 있다고 하는 데에서 용병으로 외국에 파견이 되고 있읍니다. 인도에 2만, 영국에 1만 이렇게 해서 3만 명이 파견되어서 연 300만 불의 외화를 또한 획득하고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래서 합쳐서 약 600만 불을 외화로 가득을 하고 있읍니다. 현재 룸비니라고 하는 성지 석가모니가 탄생한 곳이 바로 네팔국 남단 인도와 국경되어 있는 곳에 있읍니다. 그 룸비니의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것을 보고 왔읍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원조 없이는 살 수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갔을 적에 우리에게도 많은 원조를 요청하고 있었읍니다. 그다음에 버어마연합사회주의공화국은 네윈 대통령이 영도하고 있고 역시 중공, 인도와 국경을 같이하고 있읍니다. 버어마는 미개발 후진국가로서 국민소득률이 불과 70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어마는 삼림, 석유, 광물 등 무진장의 자원을 가지고 있읍니다. 아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읍니다. 농업국가로서 또한 연 3억 불이라고 하는 쌀을 수출하고 있읍니다. 얼마든지 잘살 수 있는 나라임에도 미개발 상태에 놓여 있어서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았읍니다. 그 이유를 볼 적에 네윈 대통령은 선진국가들을 불신하고 있는 어느 강대국에도 또한 강대국의 원조도 받지를 않는 거부하는 이러한 실태에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왔읍니다. 그러한 데서 아직도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우리 사절단이 네윈 대통령을 비롯한 각 지도자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숙달된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풍부한 자원개발에 협력할 의사를 비쳤읍니다. 그분들은 크게 환영을 하고 또한 그러한 우리의 의사에 찬동하는 뜻을 밝혔다고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라오스왕국은 국경을 같이하고 있는 월맹과 중공으로부터 강력한 군사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로서 좌․우파로 양분이 되어서 20년간 전투를 계속해 왔읍니다. 그러다가 1974년 금년도 4월 5일에 현 위치에서 전투를 중지를 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채 연립정부를 수립하게 된 것입니다. 푸마 수상이 영도하는 이 나라는 삼림과 광업 그리고 원유의 매장량이 있다고 하는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년간 계속된 전투로 말미암아서 개발하지 못한 채 빈곤과 후진국가를 면치 못하고 있었읍니다. 국민소득은 불과 56불 정도이며 수출고는 300만 불에 지나지 않고 있었읍니다. 전후복구를 위해서 원조를 필요로 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또한 원조를 요청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여기서도 여러 가지 그 나라 정체 라든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읍니다마는 시간관계상 전부 생략을 하고 서면으로써…… 여러분들이 서면보고서를 한번 보시면 감사하겠읍니다. 다음은 우리 사절단이 각국 원수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에 수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까도 말한 거와 같이 많은 지도자들과 만나고 했지만 여기서 일일이 얘기할 수가 없고 오직 각국 원수와 만난 내용의 일부를 여기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또한 원수와 만난 가운데에서도 여러 가지 비 에 속하는 또 혹은 우리가 여기에서 발표함으로써 그 나라에게 입장이 곤란한 점도 있고 해서 그런 것도 생략을 하겠읍니다. 우리가 각국 원수를 만났을 적에 대체적으로 평화통일 구상 또는 남북대화 이러한 문제와 유엔 대책 등에 대한 것을 먼저 얘기를 하게 되었읍니다. 여기서 차지철 단장은 그 얘기하는 방향을 먼저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읍니다. 우리나라의 문제, 우리 한반도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다 해결을 하지 못한 채 주변 국가에 있는 여러분들에게 걱정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미안하다 하는 얘기부터 시작을 하고 그리고 이제 아까 말한 거와 같은 우리의 외교목적을 위한 그러한 얘기들을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비렌드라 네팔국왕은 남북대화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졌읍니다. 그리고 중단된 이유를 강조하면서 우리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차지철 단장은 솔직하고 진실된 설명을 해서 그 국왕은 새롭게 인식을 했다고 하는 것을 말해 주었고 또한 한국을 지지한다고 하는 그러한 말을 해 주었읍니다. 또 여기서 한 가지 소개말씀 드릴 것은 우리나라 고려개발이 지금 네팔에 가서 3개의 비행장과 관개수리사업 공사를 하고 있읍니다. 네팔 왕이 아침 7시에 그 공사 현장을 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가 보니까 네팔 사람은 하나도 일하는 사람이 없고 우리 한국 사람만이 일을 하고 있더라. 참으로 근면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그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오늘에 발전을 가져온 것이 아니냐 하는 얘기를 우리들에게 해 주었읍니다. 여기서 잠깐 소개를 합니다. 다음 버어마 네윈 대통령께서는 이런 말을 해 주었어요. 다른 사절단은…… 이 다른 사절단이라는 얘기는 북괴 강양욱이를 지칭해서 말하는 것으로 압니다. 나에게 언쟁을 하려고 하였는데 여러분을 만나니 다정한 친구를 대하는 것 같다고 이렇게 전제를 하고 얘기를 했읍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대해서 극구 찬양을 해 주었고 그 자리에서 선진 강대국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고 하는 불신하는 이러한 말씀도 계셨읍니다. 동시에 그 자리에서 말씀하는 가운데 북괴에 대해서 어떠한 선전을 하더라도 믿지 않는다고 하는 그러한 인상을 우리에게 풍겨 주었읍니다. 또 여기서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북괴가 그 사절단은 물론이지만 거기에 나와 있는 총영사관 이 사람들이 항상 선전하는 것이 김일성 선전 또 모든 프린트 이런 것 해서 하는 것이 전부 김일성이 자랑뿐입니다. 여기에서 네윈 대통령은 김일성이 자랑은 김일성이 있는 나라에 가서 할 일이지 왜 남의 나라에 와서 김일성이 자랑을 하느냐 해서 이것을 즉각 중지시켰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다음에 라오스에 가서 푸우마 수상을 만났을 적에 한국은 라오스와 같이 전쟁을 치른 나라로서 전후복구에서부터 개발국가로 크게 번영 발전을 하고 있다고 찬양을 하면서 그 쓰라림을 이해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우리의 쓰라림도 역시 한국은 이해해 줄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우리에게 모든 협력과 원조를 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는 이러한 말씀이 있었고 특히 얘기하는 도중에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외무부의 관계자라고 봅니다마는 그 외무부 분에게 지금 한국공관이 대사관이 어떻게 되었느냐 즉석에서 우리 앞에서 물었읍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사실은 북괴와 동시 개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북괴가 늦어져서 하지 못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다가 그 자리에 푸마 수상이 물으니까 ‘예! 다 되었읍니다. 2주일 안에 하겠읍니다’ 이렇게 답변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바로 저희가 돌아오면서 대사관 개설이 된 것을 여러분들 다 아실 것입니다. 그 외에 각 나라의 특유한 체질, 우리로서는 들어 보지도 못하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그 정치체제 혹은 의회체제 이러한 문제점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시간이 없고 여러분들 지루하실 것 같고 그래서 이상으로써 대체 마치면서 이제 끝으로 의원외교활동에서 얻은 결론과 문제점을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째, 외교활동에 나가서 중요한 것은 설득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번에 의원외교를 통해서 외국에 있는 우리 공관원들이 크게 그 활동을 하는 데 뒷받침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 반뿐만 아니라 다른 반에서도 보고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이번에 저희가 특별히 느낀 것은 의례적인 그 사절방문, 형식적인 사절방문 이러한 것은 별로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설득력을 가지고 솔직하고 근거 있는 그러한 설명을 해서 이해시켜서 공명을 얻는 것이 극히 필요하다고 하는 이러한 느낌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실례를 들어서 하나 말씀을 드리면 우리가 라오스의 국방부장관을 만났을 적에 차지철 단장은 옆에다가 종이 한 장을 좀 가지고 오라고 해서 같이 앉아서 종이에다가 한국의 지도를 그리고 북괴의 위협의 실태를 그 자리에서 직접 이렇게 설명을 했읍니다. 국방부장관은 즉시 납득이 가고 즉시 이해가 되면서 자기의 Ⅱ급 비밀에 속하는 전투현황을 제쳐서 우리에게 설명까지 해 주는 이러한 것을 보고 왔읍니다. 이러한 데서 이 외교도 항상 형식적인 것에 그치는 이러한 의례적인 사절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제 개선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느냐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씀을 드립니다. 둘째로 해외공보요원의 주요성이라고 하는 것을 느꼈읍니다. 해외에 나가 있는 공보요원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모든 올바른 한국관을 심어 주고 또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가 다녀오면서 각국에 나가 있는 그 언론인 출신 공보관들 그들의 활동이 참으로 국가에 공헌하는 바가 크다고 하는 것을 또한 그들의 활동이 눈부시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느끼고 왔읍니다. 그것은 역시 우리가 항상 말하는 끼리끼리 모인다는 얘기가 있읍니다. 언론인이기 때문에 각국에 어느 나라에 가서도 그 나라 언론인들과 접촉할 수가 있다. 따라서 그 언론인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대해서 올바르게 보도를 하고 올바르게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길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데서 우리 언론인 출신 그러한 그 공보관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발견을 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우리나라에서도 주력을 해서 우리는 언론인 출신 공보관을 각국에 많이 내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을 드립니다. 세째로는 초청외교에 개선점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많은 외국에서 지도자들을 초청해 왔읍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는 많이 초청해 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번에도 가 보니까 한국에 왔다 간 사람들은 각국에 다 있읍니다. 다 있는데 그 사람들은 일부러 우리를 찾아왔고 또 얘기를 들어 보니 그분들이야말로 입이 닳도록 우리 한국을 선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왔어요. 그런 것을 볼 적에 우리는 많은 사람을 초청을 해서 초청외교를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데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현직에 있는 그러한 지도자들만 초청하는 데 주력을 두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 나라에서 존경을 받는 신망이 있는 그러한 분들을 많이 초청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하는 것을 느꼈읍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 왔다 간 장관이 있어요. 그런데 그 나라에서 신망이 없어! 그 사람 아무리 떠들면 떠들수록 그거 보기 싫어서 한국 보기 싫다고 하는 결과가 오는 정도로 그렇게 좋지 않은 사람도 있었읍니다. 그 나라에서 싫어하는 사람 그러니까 이런 데서도 우리는 각국에 있는 공관을 통해서 사전에 이런 것을 전부 다 알아서 그래 가지고 초청하는 데 주력을 두었으면 좋겠다. 또 특히 이번에 우리가 가 보니까 각국의 언론인 초청을 한 것이 크게 성과를 거두고 있더라 하는 것을 발견했읍니다. 앞으로도 각국 언론인을 많이 초청하는 게 좋겠다. 특히 버어마에 가 보니까 버어마의 언론인들이 우리 한국에 초청받아서 많이 왔다 갔읍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가서 뭐 누가 써 달라고 쓴 것도 아니지요, 한국에 대한 소설을 다 쓰고 한국에 대해서 극구 찬양하는 글을 매일 써, 매일. 그 국민들에게 버어마 국민들에게 우리가 선전 안 해도 자동적으로 알려 주는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더라 하는 것을 보고 왔읍니다. 네째, 지속적인 접촉으로써 효과를 증대할 수 있도록 이 모든 외교활동이 끝난 다음에 그걸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외교활동을 하고 온 다음에는 계속적으로 유대를 가지고 그 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느꼈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돌아와서 서신의 연락을 한다든가 또 혹은 초청을 피차 한다든가 그 외에 우리가 허구한 비밀을 외무부의 직원들에게 주어서 그것을 알려 주어서 그분들이 계속적으로 접촉을 한다든가 이러한 여러 가지 방법을 해서 돈 들이고 갔다 와서 잘 만들어 놓고 온 것 그다음에 그걸로써 그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는 데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서남아단은 돌아오면서 즉시 차지철 단장이 저 원수에서부터 저 밑에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에게 전부 편지를 냈다고 알고 있읍니다. 그다음에는 다섯째, 외교 방향에 대해서 좀 아까도 말씀을 드렸읍니다마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는 항상 유엔총회가 앞에 오면 그때 이제 조급하게 전부 무슨 외교다 무슨 외교다 해서 다 내보내고 있읍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볼 적에도 아 이거 유엔 또 그것 때문에 왔구나 뭐 이렇게 알 걸로 보고 있어요. 이런 것은 우리가 형식 정도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실질적인 그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우리는 긴 안목을 두고 그리고 조급하게 급급하게 하는 외교가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의 실리를 거둘 수 있도록 항상 생각하는 그러한 외교 방향으로서 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느껴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는 자원외교의 적극화다 이렇게 봤읍니다. 이번에 우리가 아까도 잠깐 말씀을 드렸읍니다만도 버어마 같은 나라에 가 보니까 아주 자원이 무진장이올시다. 그런데 그 나라가 선진국가 소위 말하는 강대국…… 선진국가라는 것보다도 강대국가들과의 이렇게 기술협력이라든지 뭐 이런 걸 원치 않고 있어요. 또 그 사람들 불신하고 있읍니다. 이런 그 후진국가는 우리나라를 더 충분히 이해하고 오히려 우리나라 같은 데서 경제협력을 해 주고 서로 기술협력을 해 주고 서로 자원개발을 하고 했으면 하는 이러한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번에 보고 왔어요. 이러한 데에서 우리는 이 후진국가로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모든 나라들에 대해서 빨리 조사를 해 가지고 이런 데에 우리가 기술협력 등 그런 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끝으로 우리 사절단 일행이 이번에 다녀오면서 참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사실 70불밖에 되지 않는 그러한 국민소득을 가진 그런 나라들에 가서도 우리가 참 유엔에서 한 표를 가졌다고 해서 가서 찾아다니면서 이렇게 외교를 해야 하는 이러한 것을 느낄 적에, 생각할 적에 아주 가슴 아픈 것을 느꼈읍니다. 하루속히 우리는 유엔에 가입해서 유엔가입국이 되도록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생각을 하면서 외무부 당국에서도 아마 이 점에 그 대책이 강구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상으로써 보고의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장시간 경청해 주신 의원 여러분께 충심으로부터 감사를 드립니다. 동남아 3개국 방문 의원단 보고서

다음은 서부 아프리카 3개국을 방문 활동한 의원단의 이진희 의원께서 나오셔서 보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유정회 소속의 이진희올시다. 김세련 의원을 대통령특사로 하여 김윤덕 의원, 오유방 의원과 본 의원으로 구성된 특별사절단은 74년 7월 7일부터 7월 17일까지 서부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다호메, 토고 세 나라를 순방하였읍니다. 본 사절단은 당초 나이제리아연방공화국도 방문할 예정이었읍니다마는 나이제리아와 우리나라는 아직 외교관계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나이제리아는 분단국과의 수교는 물론 공식사절도 접수하지 않는다는 기본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사절단의 계속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국사증을 받지 못해 부득이 방문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본 사절단의 순방일정과 방문국에서의 활동상황 등 구체적인 사실은 여러 의원들 앞에 배포된 보고서에 상세히 담겨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는 개괄적인 순방성과와 앞으로의 과제 그리고 그 밖의 소감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 사절단의 임무는 다른 사절단과 별로 다를 것이 없읍니다. 대통령 각하의 친서를 전달하고 평화통일에 관한 정부의 기본입장과 남북대화의 상황을 설명하며 올해 유엔총회에서의 우리 정부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던 것입니다. 본 사절단의 순방외교활동이 소기의 성과를 만족할 만하게 달성하였다고는 자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 사절단이 순방국 정부의 이해를 촉구한 우리의 평화통일외교정책과 유엔에서의 우리의 기본입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었으며 우리의 이 같은 노력이 순방한 모든 나라의 대외정책기조를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킨 사실만은 어떤 이유로도 과소평가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직 개척단계에 있는 우리의 대아프리카 외교에 의원외교의 씨를 뿌린 것은 본 사절단의 순방외교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가장 큰 의미라고 감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본 사절단이 순방하고 돌아온 나라 가운데 하나인 토고공화국이 지난 18일 한국과의 외교관계의 단절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입니다. 토고는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겠읍니다마는 면적 5만 6000㎢에 인구 200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고 아프리카 민족 가운데에서는 머리가 좋은 국민이라는 자부를 갖고 있읍니다. 그래서 토고는 계산과 장삿속이 매우 밝습니다. 정치체제는 현 이야다마 대통령이 1967년 집권한 이래 헌법이 정지되고 의회가 해산된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72년 유엔총회 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를 지지했던 토고정부가 이 같은 뜻하지 않은 외교적 조치를 취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본 의원이 소상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마는 이번 단교조치는 토고정부의 이야다마 대통령이 중공의 북경을 방문한 데 이어서 지난 9월 7일부터 12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간 뒤에 취해진 조치라는 점에서 북괴와의 모종, 묵계에 의한 거조 가 아닌가 하는 추측은 결코 하기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72년까지만 해도 유엔에서 우리나라를 지지했던 토고가 73년 유엔총회와 올해 유엔총회에서 한국 문제에 관한 공산 측 공동제안국에 가담했는가 하면 급기야는 한국에 대해 단교까지 선언하게 된 배경은 본 사절단이 토고를 방문했을 때에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었던 것입니다. 토고정부의 대북괴 정도 와 대한외교 단절은 한마디로 중공의 압도적 콧김과 이에 편승한 북괴의 음모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는 것입니다. 비동맹 중립노선인 토고는 71년 10월 중공과 수교하고 중공으로부터 4400만 달러 상당의 원조약속을 받은 후부터 중공 쪽으로 점차 기울어졌던 것입니다. 특히 토고의 최대 자원인 인광석 회사의 국유화 분쟁과 대통령전용기 사고로 과거에 식민지국가였던 불란서에 대한 강한 불신이 노출되면서 토고의 대외정책은 좌경노선으로 굳어졌던 것입니다. 북괴는 이 같은 중공의 세력에 편승해서 73년 1월 수교에 합의하고는 그해 7월에 상주대사관을 개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북괴는 토고를 아프리카 침투전략 거점으로 삼아 활동을 강화해 갔던 것입니다. 본 사절단이 토고를 방문했을 때 현지 우리 공관으로부터 이야다마 토고 대통령이 9월경에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평양을 방문할 것이 확실시된다는 보고를 받았읍니다. 그래서 본 사절단은 의외로 외무부장관서리를 만난 자리에서 이야다마 대통령이 아세아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기회에 한국도 한번 방문토록 초청의사를 표명했읍니다마는 이야다마 대통령의 북경 및 평양 방문 이후의 결과에 대해 본 사절단은 매우 우려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 사절단은 외무부장관서리에게 토고가 유엔에 최소한도 중립만이라도 지켜서 작년처럼 한국 문제에 관한 공산 측 공동제안국은 되어 주지 말 것을 요망했고 외무부장관서리도 우리의 이 같은 간곡한 설명에 아주 긍정적 반응을 보였읍니다마는 만일 이야다마 대통령이 북경과 평양을 다녀온다고 하면 사정은 작년보다 결코 호전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렇게 본 사절단은 판단했던 것입니다. 본 사절단이 토고의 외무부장관서리를 만나 73년 유엔총회에서 토고가 한국 문제에 관한 공산 측 공동제안국에 가담한 사실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시하면서 올해 유엔총회에서는 최소한 중립을 지켜 줄 것을 요망했을 때에 외무부장관서리는 분명히 작년 유엔총회에서 공산 측 공동제안국이 된 것은 잘못으로 생각하며 남북한의 유엔 동시가입을 찬성한다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본 사절단은 토고에 대한 중공의 영향력과 이에 편승한 북괴의 예상되는 외교공작 그리고 이야다마 대통령의 북경 및 평양방문 예정 등 제반 정세에 비추어 외무부장관서리의 이 같은 언명을 액면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판단했던 것입니다. 특히 본 사절단은 당초에 예정되었던 토고 방문일정이 변경된 탓도 있겠읍니다마는 그때 대통령 이하 외무부장관 등 거의 전 각료가 머물고 있던 대통령의 고향인 라마카라로로 본 사절단이 직접 가서 이야다마 대통령을 면담할 것을 재삼 요청했읍니다마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사실도 이 같은 제반 정세와 관련지우지 않고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실입니다. 어찌 되었던 간에 이번 토고정부의 대한 단교사태는 우리의 대아프리카 외교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중공이 유엔에 가입하고 이른바 제3세력의 옹호자로 자처하고 나서면서 아프리카지역에서의 중공의 영향력은 비단 토고에 국한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본 사절단이 순방한 다호메공화국도 그랬고 심지어 서부 아프리카지역에서 가장 친서방적인 라이베리아공화국 정부마저 아프리카 단결기구와 중공의 콧김을 점차 인식하는 실정에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중공의 영향력 자체가 아니라 이에 편승한 북괴의 침투공작인 것입니다. 북괴는 중공의 국제무대 진출과 함께 외교공세를 본격화한 이후 대아프리카 침투공작에 무엇보다 주력하였던 것입니다. 북괴는 남북한 간의 외교적 대결의 무대를 유엔으로 작정하면서 무엇보다 유엔에서 표를 인식하게 되었고 유엔에서의 표를 인식하면서부터 중공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아프리카지역에 대한 침투공작을 한충 강화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고 정부의 단교조치는 우리의 대아프리카 외교에 있어서 하나의 중대한 교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북괴와 대치한 재외공관의 강화를 포함하여 대아프리카 외교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지 않고는 토고의 단교조치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보장은 도저히 없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외교에서 본질적으로 보다 중요한 것은 분단상태로 인한 유엔에서의 남북 간의 표 대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표를 얻어야 하는 그런 외교방식을 지양해 오고 청산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외교환경의 청산 없이 대아프리카 외교의 현상 유지는 우리 외교의 여건을 매우 어렵게 만들 따름인 것입니다. 설사 표를 얻는 외교를 청산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해진다 하더라도 긴 안목에서 대아프리카 외교는 새 국면을 열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거의가 제2차 대전 후의 신생국가들입니다. 본 사절단이 순방한 나라들도 라이베리아만 예외에 속합니다. 이들 여러 나라들은 비록 열대기후와 풍토병의 위험 속에서도 민족적 긍지와 경제적 발전을 위해 세찬 의욕이 불타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들 아프리카 제국은 지도층의 철저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를 급속하게 이룩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 여러 나라들의 투철한 반제, 반식민주의의 의식 속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경제발전을 급속히 이룩할 것인가 하는 것은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과제인 것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반제, 반식민주의의 기치와 경제건설이 논리적으로 서로 모순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읍니다마는 선진국 특히 과거 그들 식민국가였던 서구 제국의 자본에 대해서는 상당한 저항과 불신을 느끼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 아프리카 제국들 가운데에는 자원을 가진 나라도 있고 못 가진 나라도 있읍니다마는 설사 자원을 가진 나라들도 자본과 기술의 빈곤을 스스로 타개하는 길이란 결코 용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의 아프리카 제국의 서구자본에 대한 저항과 불신은 단순히 과거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정책에 대한 악몽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들 여러 나라들은 교육도 기술도 훈련된 노동력도 빈곤하기 때문에 외국자본의 도입은 결과적으로 수탈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중공은 이 같은 아프리카 제국의 일반사조에 편승하여 조건 없는 원조약속을 제공함으로써 아프리카지역에서의 세력을 부식해 나갔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제국에 현재 필요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 이상으로 기술과 교육 또는 의료사업을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읍니다. 본 사절단이 만난 다호메의 케레쿠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읍니다. 원조라는 이름 아래 자기 나라 이익만 추구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묵묵히 우리를 도와주는 한국의사와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다호메의 친구입니다. 사실 한국의 의료사업은 성공적인 사업으로 평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 의사들의 훌륭한 의술과 성실한 봉사정신은 정부 당국자들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들로부터 그야말로 위대한 존경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는 아직 미개발지역이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의 대륙입니다. 우리는 후일을 위해 지금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착실히 신뢰의 씨를 뿌려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 사절단은 아프리카 제국에 대한 기술교육 및 의료사업에 대한 협력과 지원을 끈기 있게 정비해야 할 필요성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또한 당장에 통상 등 경제협력 관계를 전개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아프리카 제국은 개척의 여지가 많은 곳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외교도 이제 당장의 실리에 못지않게 먼 장래를 내다본 장기적 안목의 투자와 포석의 중요성을 인식할 때가 왔다 이렇게 본 사절단은 믿는 것입니다. 끝으로 본 사절단의 순방외교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그 밖의 몇 가지 종합적인 판단과 평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본 사절단이 순방한 여러 나라의 정책방향에서 공통적인 현상을 찾는다면 대외적으로는 빈곤을 추방하기 위한 경제개발이었고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실리추구와 함께 반제, 반식민주의라는 강한 이념의 제기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대아프리카 외교에 있어서는 먼저 우리의 대외정책 면에서 이 같은 아프리카 제국의 당면한 지표에 공감과 지원을 표시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방향이 제시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의 외교적 입장을 강화하려면 무엇보다 외교정책 자체가 객관성 있고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정책카드의 쵸이스 자체가 좋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책만이 친구와 적을 갈라놓는 것은 아닙니다마는 정책 자체가 설득력이 없이는 다른 많은 대가를 지불치 않고는 같은 성과를 얻어 낼 수 없거나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우리의 외교정책은 국가안보를 확보하면서 현실적이고 국제정세에 적응한 객관성 있는 정책으로 부단히 연구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세째, 본 사절단이 방문한 여러 나라의 정책방향이 경제개발의 촉진과 실리외교의 추구라는 사실은 북괴와의 외교적 대결에 있어 종국에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국력은 가면 갈수록 북괴를 압도할 수 있을 것이고 이같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국력을 바탕으로 이들 아프리카 제국과 경제기술 및 의료 등 분야에서 협력관계를 증진해 나간다면 남북한 어느 쪽과 외교관계를 심화하는 것이 자기들에게 이로운가를 확실히 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본 사절단이 순방한 여러 나라의 정부요로 가운데에는 한국에 관해 자세히 모르는 이가 많았읍니다마는 한국의 유례를 볼 수 없는 비약적 경제발전상에 관해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한국이 그들 아프리카 제국과 같이 제2차 대전 후에 제국주의자들로부터 독립된 나라로서 6․25 전쟁의 비극적 참화까지 겪으면서 어떻게 시련을 딛고 비약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하나의 교훈으로 커다란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아직 아프리카지역에서는 중공의 영향력이 크고 북괴의 외교전략은 이 같은 중공의 영향력에 편승하는 것입니다마는 우리의 국력이 신장됨에 따라 우리의 외교적 입장이 아프리카지역에서도 갈수록 강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지역에서의 홍보활동의 강화 필요성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보고를 이만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서부 아프리카 3개국 방문 의원단 보고

다음은 동남아 제국의 조세제도 시찰단의 보고는 제5차 회의록에 보고서를 게재함으로써 보고된 것으로 간주하겠읍니다. 동남아 제국 조세제도 시찰 보고서 시찰단 재무위원회 위원장 신형식 의원 재무위원회 공화당 간사 최재구 의원 재무위원회 유정회 간사 지종걸 의원 재무위원회 신민당 간사 김현기 의원 재무위원회 무소속 간사 진의종 의원 재무위원회 전문위원 정인호 시찰기간 자 1974년 6월 7일지 1974년 6월 28일 시찰지역 가. 대만 나. 마레시아 다. 싱가폴 라. 인도네시아 마. 일본 동남아 제국의 조세제도 시찰에 대한 보고 재무위원회의 각 교섭단체 소속 간사를 중심으로 한 동남아 제국 세제 시찰단은 지난 장기 국회 휴회기간인 6월 7일부터 6월 28일까지 22일간 동남아 각국의 조세제도를 시찰할 기회를 가졌읍니다. 시찰의 당초의 주목적은 행정부로부터 금반 정기국회에 제출 예정인 세제 개정안 을 심의함에 있어서 동남아 제국 및 일본의 조세제도에 관하여 직접 견문하고 이를 우리의 제도와 비교 검토하여 입법의 참고에 자 하고자 하는 데 있었읍니다. 그러나 시찰 결과를 도리켜 보면 시찰단의 활동은 각국의 조세제도만을 시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국의 정치 경제 등 여러 부문에 대한 사정을 파악함과 동시에 한국의 실정을 상대국에 소개 인식시킴으로써 상호 간의 이해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공식사절과 비슷한 것이였다고 하겠읍니다. 이 보고는 22일간에 걸쳐 공화당 소속 신형식 위원장, 유정회 소속 지종걸 의원, 신민당 소속 김현기 의원, 당시의 무소속 진의종 의원, 정인호 전문위원 그리고 본인을 포함한 6인을 일행으로 한 시찰단이 대만, 마레시아, 싱가폴, 인도네시아 및 일본의 5개국에 대한 간단한 시찰내용이올시다. 먼저 6월 10일 대만 재정부를 방문 주세국장으로부터 대만의 조세제도에 관한 설명을 청취하고 이국정 재무부장으로부터 대만의 경제실정을 청취하는 동시에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현황과 새마을사업 등을 설명하여 양국 간의 상호 이해 증진을 도모하였읍니다. 대만은 현 국제정세에 비추어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다 하겠으나 예상외로 정치적 경제적 안정과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으며 최근 오일쇼크으로 인한 물가고의 안정을 회복하면서 앞으로 경제발전을 지속할 전망이 뚜렷한 것으로 보였읍니다. 72년도의 GNP는 2조 9200억 원 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로 480불 정도로 되어 있읍니다. 74년도 세수는 585억 원으로 담세율은 17.4%이 고 직․간세 비율은 26.8% 대 73.2%로 되어 있읍니다. 6월 13일 마레시아 재무부를 방문한바 당시 수상 겸 재무장관은 해외여행 중이였으므로 정무차관과 사무차관의 영접을 받고 사무차장으로부터 조세제도에 관한 브리핑을 청취하였읍니다. 그리고 Tan Sri Omor Yoke Lin Ong 상원의장과 Tan Sri Datuk C. M. Yusof 하원의장을 방문하였으며 하원 공공회계위원장 Hanasiah Hussein도 배석하여 양국의 공동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였읍니다. 상원의장은 중국계로서 우리나라 정일권 국회의장께서 주미 한국대사로 재임 시 본인도 주미 말레이지아대사로 있었기 때문에 대단히 친밀한 사이라고 하며 한국에 대한 호의를 보여 주었으며 하원의장은 우리나라 전 이효상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하며 당시 본인은 약간의 중풍기가 있어 건강이 좋지 못하였던 때인데 이것을 아신 이효상 의장은 인삼과 침으로 치료할 것을 권고하여 주었고 그분의 주선으로 한국의 한방치료를 받고 병이 완치되었다 하며 한국을 잊을 수 없는 개인 사정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하고 우리 일행을 반가워하였읍니다. 마레시아 국회 방문을 마치고 생고무연구소와 고무농장을 시찰했읍니다. 생고무농장은 대부분이 영국인 소유로 경영되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읍니다. 마레시아의 GNP는 미화 66억 2000만 불이며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 570불로 되어 있읍니다. 고무의 생산량은 전 세계의 생산량의 44%를 점하고 있으며 그 수출액은 13억 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마레시아 진출 기업체는 4개의 건설용역업체로서 주로 도로공사에 종사하고 있으며 계약고는 총액 6062만 불로 되어 있읍니다. 마레시아 74년도 경상세입은 42억 2900만 M불이며 조세부담률은 73년도가 18.6%로 되어 있으며 직․간세 비율은 34.5 대 65.5로 되어 있읍니다. 싱가폴 싱가폴은 우리나라 부산 정도의 면적과 인구는 230만 명으로 되어 있읍니다. 동남아에서 산업과 무역이 제일 발달된 곳으로서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 1200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마레시아의 수출입무역은 싱가폴의 중간상인을 통하는 중계무역이 특징으로 되어 있읍니다. 73년도의 내국세 수입은 6억 6900만S$로서 총세입에 대한 내국세 수입의 비율은 40.11%에 불과합니다. 인도네시아 6월 18일 인도네시아 국회의장 DR. K. H. IDAHAM, 부의장 J. NARO. S. H를 비롯 재무 예결위원장을 방문하고 양국 간의 공동관심사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고 인도네시아의 일반적 경제사정 특히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의한 경제성장 등에 관하여 논의하고 우리나라의 공업 분야의 양상과 중화공업의 개발상황을 설명하였든바 의장단은 이에 대한 관심이 퍽 크다는 인상을 받았읍니다. 그리고 재무부장관이 부재중이어서 재무부차관을 방문 인도네시아의 세제를 청취한 후 외무장관을 방문 한국을 소개 인식시키는 동시에 상호 간의 이해증진을 위한 제반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였읍니다. 외무장관은 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깊은 것으로 보였읍니다. 북괴는 2년 전부터 공식방문을 초청한 바 있으나 이를 보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하르트 대통령이 정권을 장악한 후 친공정책이 무너짐에 따라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이 새로이 고조되고 있으며 우리 공관진의 외교 홍보의 많은 활동과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체의 인도네시아 진출로 도로공사, 산림개발, 제조업 등 다방면으로 경제협력이 구현되고 있으므로 우리나라의 인식이 개선일로에 있는 감이 있으며 반대로 북괴공관은 완전 위축되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읍니다. GNP 는 4조 4000억 루파아로서 1인당 국민소득 미화 60불로 되어 있읍니다. 일반세입 1조 9680억 루파아 로서 그중 Oil법인세와 석유순익 부문이 전체 세입의 70%를 점하고 있읍니다. 원유의 생산량은 1973년도 489백만 바렐이고 원목은 2200만 입방미터로 되어 있읍니다. 우리나라의 경제협력 내용을 보면 건설용역 업이 6개 업체로서 계약고는 6634만 불이며 산림개발은 4개 업체로서 투자규모는 1330만 불, 제조공업은 3개 업체로서 투자규모는 1662만 불로 되어 있읍니다. 일본 6월 24일 일본 대장성의 상택영지 차관을 방문하고 일본의 일반적인 경제사정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고 고목 주세국장 의 일본 조세제도에 관하여 그리고 길내 은행국장으로부터 일본의 금융제도에 관한 브리핑을 청취하였읍니다. 6월 25일 일본은행을 방문 부총재의 인사말에 이어 도변 이사로부터 재정금융정책의 기본방향과 통화신용정책 수립 및 운용 면에서의 정부와 일은과의 협조관계 등 제반 금융 문제에 대한 브리핑을 청취하고 계속하여 안천 일본 국세청장관을 방문 조세행정 전반에 관한 토의가 있었읍니다. 일본의 내국세 세수는 73년도에 있어서 12조 5866억 원 이고 74년도 세수예산은 13조 7620억 원으로 되어 있읍니다. 소득세는 연간 종합소득세에 대하여 10%로부터 75%까지 19단계의 초과누진세율로서 과세하고 있으며 73년도 소득세 세수는 전 세수의 36%인 4조 8000억 원에 달하고 법인세 세수는 4조 2400억 원으로 전 세수의 30%를 점하고 있읍니다. 직․간세 세수 비율은 70 대 30으로 되어 있읍니다. 이상 말씀드린 5개국의 조세제도를 보면 각국마다 그 나라 나름의 실정에 의한 차도는 있으나 소득세는 전부가 종합소득세제를 실시하고 있읍니다. 소득공제제도에 있어서는 공통된 공제제도를 채택하고 있으며 기초공제, 부양가족공제 등의 인적공제와 근로공제가 실시되고 기타 사회보장공제 제도 등이 채택되고 있읍니다. 이상과 같이 간략하게 동남아 제국 조세제도 시찰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건의사항 1. 주인도네시아 한국회관 신축 문제 2. 대인도네시아 경제협력의 추진방향 3. 동남아 제국과의 식량계약재배의 건 4. 주인도네시아대사관 장성급 무관 배치의 건 5. 홍삼 수출에 관하여 1. 주인도네시아 한국회관 신축 문제 1.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 인도네시아에의 진출 기업이 현저하게 늘어 가고 이에 뒤따라 교민 수도 일익 증가하고 있으므로 교민회에서는 현지 북괴대사관의 상투적인 암약을 차단하고 교민 간의 친목과 결속을 강화하기 위하여 우리 대사관을 중심으로 한 교민회의 발기로 가칭 인도네시아 한국회관을 자카르타에 건립키로 하여 자카르타시 중심부에 부지 1500평을 물색 이를 매수키로 결의한 바 있고 동 부지에 우리 대사관 건물도 신축키로 하였다는 것임. 한국회관 건립자금은 우리 정부 출자 10만 불을 위시하여 무역협회와 진출 기업체에서 출자키로 되어 있으며 예산규모는 350만 불로 되어 있음. 2. 부지 구입자금은 우선 외환은행에서 100만 불 융자해 주도록 되어 있으나 아직 송금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지가는 일익 상승일로에 있으므로 조속히 대금 수도 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획된 예산이 초과될 염려가 짙다는 것임. 3. 현지 대사관에서는 이러한 실정을 참작하여 부지 매수자금 100만 불을 조속히 송금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음. 4. 심안 컨대 인도네시아는 동남아 제국에서도 국제적 지위가 날로 높아 가고 무한한 자원의 소유국으로서 친한적인 나라이기도 함. 현재 우리나라는 대인도네시아 자원개발, 도로정비사업, 제조업 등 13개 업체가 여러 분야에 걸쳐 경제협력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확대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는 바임. 현재 우리나라의 진출 기업 및 교민들의 활약상은 한국 대 인도네시아의 자원외교의 기반을 부식하는 데 전초적 역할을 하고 있다 하겠으며 그 장래가 고무적이라고 하겠음. 이러한 점 등을 감안할 때 한국회관의 건립은 절실히 요망되는 것으로 인정되므로 재무부는 조속한 시일 내에 이에 대한 편의를 제공할 것을 건의하는 바임. 진출 기업체 명단은 다음과 같음. 업 체 명 계 약 액 삼한기업 17,744 신한기공 145 대림산업 1,057 경남기업 7,226 현대건설 33,209 국제실업 66,344 가. 건설용역 진출현황 업 체 명 투자규모 남방개발 4,500 경남기업 2,300 동화기업 3,000 한니흥업 3,500 나. 산림개발 진출현황 업 체 명 투자규모 미 원 12,100 한일시멘트 1,810 극동엔지니어링 종 근 당 2,709 다. 제조공업 진출현황 2. 대인도네시아 경제협력의 추진방향 인도네시아에 진출기업체는 13개 업체로서 분야별로 보면 건설용역 6개 업체 , 산림개발 4개 업체 , 제조공업이 3개 업체 로 되어 있음. 도로공사는 인도네시아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중에 3억 불 정도로 책정될 것이라는 점으로 보아 그 전망이 밝다고 하겠음. 산림개발은 외국인의 산림합작개발 불허정책을 취하므로 직접개발은 불가능하나 하청개발 참여는 가능하다는 것임. 제조업에 있어서는 인도네시아 공업화정책에 비추어 유망한 분야이므로 제조 분야의 중점적 진출이 요망되는 것임. 이상과 같이 인도네시아 경제협력은 다변화되고 있으나 앞으로 자원외교의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는 장기적 안목으로 임해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하여는 다음의 몇 가지 추진방향을 견지해야 할 것으로 보는 바임. 1. 기본방향 가. 인도네시아의 내쇼나리즘 자극을 회피 나. 인도네시아화 정책에 대한 협력 다. 개발도상국으로서의 연대의식 라. 인도네시아의 유력인사의 방한초청으로 친한구룹 저변 확대 마. 민간레벨의 협력기구 설치 2. 분야별 가. 무역 장기적 안목에의 시장개발 인도네시아 제2차 5개년계획 수행에 필요한 전략물자 나. 기업 진출 진출 기업체의 사전 신용조사와 사업의 타당성을 사전 검토 제조공업 분야의 기업 진출을 중점적으로 장려 건설용역 분야의 과도진출로 국내업체 간의 경쟁 방지를 위한 조정 산림개발에 관한 인도네시아와 대비책 강구 3. 동남아 제국과의 식량계약재배의 건 정부는 장기적인 식량대책의 하나로 마레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각국에서 쌀, 옥수수, 대두 등을 계약재배하여 직수입하는 방향으로 교섭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 바임. 해마다 늘고 있는 인구에 반해 국내의 경작면적은 한정돼 있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식량대책의 하나로 이러한 방침을 세워서 당해 국과 교섭할 것을 건의함. 즉 계약재배는 당해 국과의 합작투자나 한국의 직접투자에 의한 단독개발의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이며 당해 국의 넓은 유휴지를 개간 기계화영농으로 운용한다면 천연적 호조건하에 연 삼모작에 의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외미 도입에 사용되는 막대한 외화를 절약할 뿐만 아니라 당해 국과의 실질적인 경제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이중효과를 얻을 수 있고 현재 동남아 개발도상국가들은 날로 심각해지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유휴지 개간을 절실히 요망하고 있는 바이므로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됨. 4. 주인도네시아 대사관 장성급 무관 배치의 건 인도네시아는 스하르트 대통령이 집권한 후 군부, 내각, 국회 간의 세력균형의 안배를 위하여 각 행정부서 요직에도 현역 장성급이 많이 진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자신이 장성 출신이고 그 고급보좌관도 현역 장성급에서 보직되고 있는 실정임. 그러나 우리나라 대사관이 설치된 후 아직 무관 배치가 없으며 앞으로 무관 배치에 있어서는 장성급으로 함이 외교임무 수행상 유리할 것이라는바 정부는 현지 실정을 참작하여 주인도네시아 무관은 장성급으로 배치함이 적절하다고 봄. 5. 향항 홍삼 시장현황 수출상사 롯데물산주식회사 총수출실적 140,000근US$7,265,000 향항 1. 수출실적 84,000근US$4,570,000 2. 홍삼시장 경쟁대상국 북한․중공․일본 1973년도 각국의 동남아 수출실적은 북한 3만 근, 중공 5만 근, 일본 12만 근으로 되어 있으나 북한은 현지 주재 판매책임자의 권한으로 주로 우리 홍삼시장을 교란하기 위하여 시장성에 따라 수시 가격을 덤핑하고 있으며, 중공산은 그 생산지가 만주 길림성이라는바 품질은 우리 홍삼에 비할 바 못 되나 저렴한 가격으로 다량공급하고 있으며, 일본은 홍삼으로서의 성가가 없으나 저가공급에 의하여 주로 위장 고려삼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임. 수출신장 정부 전매청의 시장성에 맞는 가격정책의 적정과 현지 판매상인들에게 마진 보장과 선전 광고의 강화로 1970년도 9만 근에서 1974년도 14만 근으로 시장 확장과 그 점유 폭을 늘리는 데 성공한 것은 전매청을 위시하여 수출대행업자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인정되나 가일층 개척에 노력 있기를 바라는 바임. 문제점 한국으로부터의 연간 1만 근~1만 5000근 정도의 홍삼류 사품 이 밀조 유출되어 현지에서 고려홍삼의 상표로 위장 거래되고 있으며, 동양삼 한 것) 수출품 을 현지에서 재가공 홍삼화하는 사례가 허다히 발생하여 원래의 고려홍삼의 성가 위치가 추락되는 동시에 홍삼시장의 정상화가 저해되고 있는 실정이라는바 당국은 이에 대한 방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