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일정 제2항 의원 해외활동 보고를 상정하겠읍니다. 먼저 북구지역 4개국을 방문 활동한 의원단의 박명근 의원께서 나오셔서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의장님과 선배 의원님께 제가 북구 4개국 순방결과 보고를 올리게 된 것을 무한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희 이번 사절단 구성은 단장으로서 유정회 회장 백두진 의원님과 또 유정회 소속 현오봉 의원, 신민당 소속 박찬 의원, 무소속의 권오태 의원, 공화당의 소인까지 끼어서 5인으로 구성이 되었읍니다. 지난 6월 10일부터 6월 22일까지 13일간에 걸쳐서 덴마크, 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이런 순으로 북구 4개국을 순방하고 왔읍니다. 이번에 저희들이 북구라파 4개국을 돈 지역은 그 네 나라가 다 북괴대사관들이 설치되어 있는 지역입니다. 또한 북괴가 발버둥칠 정도로 상당히 집중적으로 공세를 펴고 있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어려운 지역에서 짧은 기간에 저희들은 사력을 다해서 활동을 하고 돌아와서 많은 성과를 얻고 왔다고 자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상세히 여러 의원님께 보고를 드려서 그것을 제대로 전달을 하느냐 못 하느냐는 또한 보고를 하기에 달리지 않았느냐 이렇게 생각할 적에 제가 요즈음 당과 정부 간의 예산심의 관계로 어저께까지도 새벽 4시까지 하는 관계 때문에 잠을 좀 못 자서 제대로 준비를 못 하고 나왔읍니다. 이래서 혹시 의원님들에게 그런 성과에 대해서 오히려 전달이 제대로 되지 못할까 걱정이 되며 또 저와 같이 갔다 온 단장님 이하 여러 의원님께까지도 누를 끼치는 이런 결과가 올까 봐 심히 걱정됩니다마는 이런 점 역시 의원님들께서 널리 양해를 해 주십사 하고 양해를 구합니다. 그래서 시간관계로 전체 내용은 의원님들 앞에 이미 유인물로 나누어 올렸읍니다. 그래서 주로 그 방문 대상국의 사정과 움직임 그리고 방문 결과에 대한 소감만을 중점적으로 간략하게 보고드리고자 합니다. 보고내용을 설명드리기에 앞서서 방문국의 공통적인 특징을 개괄적으로 말씀드리고 넘어갈까 합니다. 첫째로 북구 4개국은 남북한과 공히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과 북괴의 공관이 병존 대치하고 있는 전략적 외교영역에 속해 있는 국가들이고, 두 번째로서 북구 5개국은 이른바 북구이사회를 발판으로 북구지역 내의 상호협력체제를 구축하고 있으며 대외정책에 있어서도 행동통일을 기하고 있으며, 세 번째로서는 동 5개국은 이념 면에서 다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기는 하나 동서 문제와 특히 분단국 문제에 관하여는 중립정책을 견지하고 있읍니다. 또한 동 5개국의 정부형태는 공히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어 정당분포 면에서 다수정당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연립내각이 형성되어 있으며 최근 사회당 계열의 진출이 현저하여 사회주의적 중립색채를 띠어 가고 있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사실을 알려 올립니다. 다음으로 방문국별로 그 나라의 특징과 우리 사절단의 활동내용을 말씀드리면 제일 먼저 갔던 덴마크는 한국과는 1959년 3월에, 북괴와는 1973년 5월에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나 6․25 당시 외과병원선을 한국에 파견하였고 1959년 3월에 메디칼센터 설립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1400여 명의 한국고아를 입양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제26차, 27차 유엔총회에서 한국을 지지하는 등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은 나라이었읍니다. 서방진영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1949년에 NATO에 가입하였으며 1973년에 EEC에 가입하는 등 친서방정책을 쓰고 있읍니다. 이 나라에서의 우리의 일정을 말씀 올린다면은 하트링 수상과 외상을 예방하였고 정무담당 외무차관과는 정치회담을 가졌읍니다. 특히 의회방문 시에는 자민당을 비롯한 8개 정당을 대표하는 10여 명의 의회 지도자들과 면담을 가졌고 한편 우리나라 대사가 주최한 만찬회에는 국회의장은 노령으로서 참석치 못하고 국회부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외무부 고위관리 등 20여 명의 인사가 참석하여 주었읍니다. 다음은 두 번째로 간 핀랜드에 대해서 말씀 올리겠읍니니다. 첫 번째로 이 나라는 정치 사회 문화 면에서는 서방국가이나 소련과 800마일이나 되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엄정 중립정책을 표방하고 있으며 대소련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소위 피시키비 케코넨라인을 따르고 있으며 따라서 서방의 NATO나 동방의 와르샤와조약기구에도 가입치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분단국가 비승인정책으로부터 분단국가 동시승인정책으로 전환하여 한국과는 1973년 8월에, 북괴와는 1973년 6월에 각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런데 우리와는 영사협정이 이미 체결되어 있읍니다마는 북괴는 폐쇄사회이기 때문에 아직도 이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에 있읍니다. 두 번째로 핀랜드는 내각책임제이면서도 대통령의 권한이 상당히 강화된 특이한 체제를 채택하고 있어 대통령은 외교정책의 최종결정권 및 의회해산권을 가지는 등 특이한 정부형태를 갖고 있읍니다. 세 번째로 현 케코넨 대통령은 현재 임기가 아직도 4년이 남았읍니다마는 금년까지 19년간에 재임하고 있는 터입니다. 이러는 도중에 동서 양 진영의 중간에 서서 자국의 안정과 발전을 꾀함은 물론 구주안보회의 개최를 주도해 나가면서 구주의 전쟁 없는 평화를 갈구하고 있었읍니다. 따라서 이러한 특수한 측면에서 핀랜드의 케코넨 대통령은 한국의 평화통일 달성을 위한 노력에 깊은 이해와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으며 또한 남북한 간의 대화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여 주셨읍니다. 다음에는 IPU 핀랜드의원단 단장이며 중간당 당수인 피로라이낸 재무상도 오찬을 주최하는 자리에서 환영인사에서 한국의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에 대하여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경제적 기적이라고 표명하면서 남북 간의 대화가 성공되어 전쟁 없는 평화가 조속히 회복되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하여 주었읍니다. 그러나 이 재무상 등 일부 의원이 작년 8월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북괴의 대미평화협상 제의를 지지하는 결의문서에 서명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읍니다. 그러나 이 중에서도 갔다 온 그 의원 중에 일부 의원은 끝까지 이 서명을 김일성이가 그렇게 강하게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명을 끝까지 거부하였다는 사실은 또 우리로서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 우리 일행은 케코넨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회의장 및 무역상을 차례로 예방하였으며 재무상이 베푼 오찬회는 4개 정당의 중진의원 5명이 우리와 자리를 같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사가 베푼 리셉숀에는 국회의장, 재무상을 비롯하여 의회 및 정부인사, 언론인 등 50여 명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어 주었읍니다. 그다음 세 번째로 우리가 방문한 나라가 스웨덴을 방문했읍니다. 이 나라는 한국과는 1959년 3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한 바 있으며 6․25 동란 시에는 한국에 적십자야전병원단을 파견하였으며 1956년 메디칼센터 설립에 참여함으로써 오래전부터 한국과 관계를 맺어 오고 있으며 특히 스웨덴은 북구 5개국 중 중립국감시위원단으로 활약해 오고 있어 한국 실정을 깊이 파악하고 있었읍니다. 두 번째로서는 스웨덴의 외교정책은 서구적 전통과 소련과의 지리적 접근이라는 두 가지 기본요건에 제약을 받음으로써 평화적 중립외교정책을 펴고 있어 NATO, EEC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면서 소련, 중공은 물론 월맹, 쿠바, 동독과도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읍니다. 세 번째로 스웨덴은 북괴와도 1973년 4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됨으로써 북괴에 구라파 침투의 전초기지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사실상 북괴는 스웨덴에 총력적인 외교공세를 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네 번째로 특히 본 사절단이 스웨덴 방문 중 특기할 사실은 북괴의 그 무례막심한 행위를 이곳에서 볼 수 있었다는 것이 특이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읍니다. 즉 저희 사절단 일행이 스톡호름공항에 도착하자 보도원으로 가장한 북괴공작원들이 공항램프 안에까지 들어와 우리 일행에 바짝 다가서면서 사진을 찍어 댔읍니다. 대표들이 귀빈실에서 대기하는 동안 본 대표단을 수행했던 국회사무처의 박종흡 서기관과 동양통신에 소속되어 있는 민정기 기자가 짐을 찾으려고 하자 김일성 배지를 단 북괴공작원 10여 명이 포위하여 자기네들이 차를 대 주겠다, 차를 가지고 나왔다 하는 등의 야유와 더불어 ‘이번 단장이 백두진이라면서?’ 하고 질문을 하는 등 수작을 부린 바가 있으며 또한 이것뿐만이 아니라 스웨덴에 우리 사절단이 도착한 이틀 후인 6월 18일 우리나라 대사 주최 만찬이 있어 우리가 참석하러 가는 그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택해서 북괴의 조종으로 백인 10여 명이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앞에서 데모를 한 바 있읍니다. 이 내용을 알아보니까 이 데모자들은 소위 미국도망병위원회 선전위원회의 이름을 가짜로 내걸고 실에 있어서는 스웨덴 공산당…… 공산분자들로서 그들이 길에서 배포한 그 선전문서를 또 보면 ‘금번 스웨덴정부가 1953년 국무총리를 역임한 바 있는 백두진을 단장으로 하는 한국사절단을 받아들인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조소다. 그는 미 제국주의자의 명령을 집행하는 괴뢰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쓰여진 그 유인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돌리고 있었읍니다. 또 그들이 들고 있는 플래카드에는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하면 ‘미국은 한국에서 물러가라’라는 구 호가 쓰여져 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 앞에서 시위를 했읍니다. 다음으로 이 나라에 체류하는 동안의 일정을 말씀드리면 먼저 스웨덴 외무상을 예방한바 동 외무상은 국방상의 전력이 있는 인사로서 스웨덴이 중립국감시위원단의 일원이므로 한국 형편을 잘 알고 있었으며 우리 일행에게 한국 문제에 관하여 한국 사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까지 표명하면서 한국의 통일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무력이 행사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견해를 표명하여 주어 우리 사절단을 고무시켜 주었읍니다. 동 외무상과의 회담은 우리 정부가 스웨덴이 북괴를 승인한 데 대한 불만의 표시로서 채명신 대사를 소환하였다가 얼마 후에 장상문 대사를 신임대사로 파견한 관계로 양국 관계가 서먹서먹하던 터에 우리 공관과의 스웨덴 정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교량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의회 방문에서는 외무분과위원장을 비롯하여 3개 정당에 속해 있는 9명의 의원과 국회사무총장이 배석하여 우리 일행을 정중히 맞이하여 주었읍니다. 본 사절단의 스웨덴 방문시기가 스웨덴국회가 폐회된 지 한 달이 지난 때이었기 때문에 모든 의원들이 하기휴가 중이어서 의회인사를 만나기는 매우 어려운 때였었읍니다. 스웨덴 외무차관이 주최한 그 오찬회에서는 외무성 고위관리와 보스 사민당 의원 8명이 참석했으며 에릭손 IPU 스웨덴의원단 회장이 우리 일행을 위해서 베푼 오찬회는 우그라스 의원 외 8명이 참석했는데 이 오찬회에서 우그라스 의원의 말에 의하면 월맹대표가 스톡홀름을 방문 때 스웨덴의 팔매 수상은 월맹대표와 같이 가두행진을 할 정도까지로 좌경화되어 있는 스웨덴 실정을 술회한 바 있었읍니다. 또 우리나라 대사가 주최한 만찬회에는 스웨덴 측 인사로 사민당, 보수당 소속 국회의원과 전 한국주재대사, 중립국감시위원단 위원으로 파견되었던 브르제리우스 장군과 오드만 제독 등 각계 친한인사가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읍니다. 또 한편 우리나라 대사관에서 교포를 위한 만찬을 베풀었읍니다. 스톡홀름을 중심으로 하여 우리나라 교포들이 약 300여 명이 거주하고 있읍니다. 이 만찬회에는 수도권 내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의 거의 전원인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7시에 시작해서 밤 11시 반이 되도록 전 교포가 귀가할 줄을 모를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으며 사절단원의 소개에 이어 단장으로부터 본국의 제반 실정을 설명하는 보고가 있었고 이에 이어서 한국민요 아리랑 등을 부르면서 오락회를 가졌고 끝으로 애국가 봉창과 만세 삼창을 힘껏 외치고 그 감격적인 회합을 끝낸 적이 있읍니다. 북구지역국가들의 중립정책에 편승하여 이 지역에 발을 붙인 북괴가 현재 교포에 대한 포섭공작을 강화하면서 한편 이들을 이간시키는 데 혈안이 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동 모임은 우리 교포들과의 격의 없는 의견교환을 통하여 본국의 실정을 이해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다음에는 스웨덴의 광산기계회사인 아트라스 코프코라는 회사를 저희가 시찰했읍니다. 이 회사와는 우리나라가 전에 경부고속도로 건설 시에 많은 중장비를 구입한 실적이 있으며 괌도에 진출 중에 있는 우리나라 건설회사에 현재도 기술자문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근 북괴는 상당액에 달하는 광산기계를 수입하겠다고 제의해 와서 스웨덴 정부 측은 대단한 관심을 갖고 있으나 그 실현성에 대해서는…… 실현성 여부는 앞으로 우리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네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렇게 많은 기계를 사겠다고 하는지 우리는 두고 봐야 될 것입니다. 끝으로 저희가 방문한 지역은 노르웨이국이 되겠읍니다. 이 나라는 제2차 대전 중에 독일의 침략을 받은 경험에 비추어 전후에는 중립노선을 취하고 집단안전보장체제를 지지하여 1949년 NATO에 가입함으로써 비교적 서구진영과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북구국가 중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구주통합을 지지하여 EEC 가입협정에 서명한 바 있으나 72년 9월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바 있고 최근 동서 긴장완화 추세에 따라 전 구주안보회의 소집을 지지하여 동구국가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는 터입니다. 네 번째로서는 한국과는 1951년 3월에, 북괴와는 1973년 6월에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특히 한국과는 6․25 당시 외과병원단이 파한되었으며 1956년 3월에 메디칼센터 설립에 참가함으로써 우의가 더욱 깊어진 나라입니다. 참고로 사절단 일행이 북구에 체류하는 기간 중 노르웨이 공산지라고 부를 수 있는 신문에서 과거 북괴에 대한 찬양만을 해 오다가 북괴의 지나친 선전에 환멸을 느껴 최근에 와서는 북괴를 비난하기 시작한 재미나는 일이 있었읍니다. 동지에 6월 18일 자 ‘지상의 낙원’이라는 제목으로서 A 에레프스 기자가 쓴 북괴 김일성에 대한 야유기사 내용을 발췌해서 여러 의원님께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기사내용을 요약해서 요점만 말씀드리겠읍니다. ‘며칠 전 오슬로 주재 북한대사관이 친절하게도 우리 신문사에 보내 준 또 다른 유인물이 우리의 데스크에 배달된 일이 있었다. 그것은 평양 만수대 언덕 위에 친애하는 어버이 수령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세워진 동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팜플레트는 김일성이의 거대한 동상과 그의 밑에 서 있는 2개의 집단 동상을 담은 사진이 들어 있었으며 한 사진 밑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들어 있었다. ‘적의 흉탄을 맞아 심한 상처를 입고 나서도 나팔수는 먼저 수령님이 사령부에서 무사한가를 물었다. 그리고 나서 그 나팔수는 여성 동지의 품속에서 죽는다’ 또 다른 사진에는 ‘김일성의 어버이 같은 관심과 현명한 지도 아래 행복하게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 웃으면서 나팔을 불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끝없는 우상숭배는 잘 알고 있는 바이나 우리와 같은 국외자의 입장에서는 그와 같은 것이 가소롭게만 보인다. 좋은 일은 모두가 김일성이 때문이다. 사소한 일상사나 중요한 정치 문제나 모두가 다 김일성에게로 돌아간다. 이러한 것은 흡사 선전의 홍수와도 같다. 문제는 북한 사람들이 그들 지도자의 안녕에 관하여 이러한 유인물 공세를 통하여 실제로 무엇을 얻으려 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저급한 수준으로 그들이 외교적 이득을 기대한다는 것은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들은 국내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선전물을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영어로 번역해 놓고 있다. 따라서 그것은 무의식중에 북한사회의 재미있는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태양…… 여기에 태양은 김일성이를 지칭한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태양 맑스 레닌주의에 자기비판보다도 더욱 중요시되는 어떤 울타리 속에서 잡혀 있는 것 같다. 김일성이의 처와 동생이 당의 요직에 있다. 그러나 족벌 외부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기미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김일성이 족벌 이외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시간이 갈수록 김일성이의 우상화는 퇴색해 갈 것이 틀림없다’고 이 신문에 게재된 일이 있었읍니다. 북한 김일성이의 우상화 선전은 이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좋은 예라고 하겠읍니다. 끝으로 또한 노르웨이 체류 중 450만 인구 중에서 50만 부수가 나가는 최대 일간지인 에프튼 포프튼지에는 동지 기자가 본 사절단장 백두진 의원님과 회견내용을 게재하면서 저희 한국에 대해서 쓴 기사를 한 말씀 올리겠읍니다. ‘한국의 통일협상은 불행스럽게도 단 한 발자욱의 진전도 가져오지 못했으며 북한 측에 의해서 남북대화가 파괴된 지 10개월이 지난 지금 북한 측은 도대체 협상하고자 하는 새로운 징조를 보이지 않고 있다’라고 한국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국의 경제적 발전과 특히 최근의 급성장하고 있는 조선공업에 대한 소개를 상세히 실어 준 바 있읍니다. 이 나라에서는 브라텔리 수상과 외상 및 국회 외무위원장을 예방하고 외무차관과는 정치회담을 통하여 양국의 공동관심사에 관하여 진지한 의견 교환을 한 바 있읍니다. 우리나라 대사 주최 리셉션에는 브라텔리 수상을 비롯한 국회 외무위원장 또는 미국대사를 비롯한 각국의 그 상주대사들 또는 언론인들 50여 명의 주요 내외인사가 참석하였으며 특히 브라텔리 수상은 전례를 깨뜨리고 공식예방을 받기 전에 동 리셉션에 참석하였으며 또한 종전에는 북괴와의 관계 때문에 우리 측에서 주최하는 파티에 나온 적이 없던 애급대사가 나타나서 이채를 띄었읍니다. 다음은 북구 4개국의 주요 정부, 의회 지도자들과의 접촉 시 우리 사절단이 한국의 입장에 관하여 설명한 내용을 간단하게 말씀드린다면 우리 7․4 공동성명, 박 대통령 각하의 6․23 외교정책선언 등 주요정책 중심으로 체계 있게 설명하는 한편 이에 대한 북괴 김영주의 남북대화의 일방적인 중단선언, 한국어선 격침 등 무력도발 사건을 들어 북괴가 통일을 위한 노력에 얼마나 무성의하며 그 저의가 나변에 있는가를 상세히 알리는 데 온 주력을 다했읍니다. 특히 71년 10일 남북적십자회담 이후에도 한편으로 회담에 응하면서도 간첩의 남파를 지속시켰으며 앞에서 말한 끊임없는 무력도발을 감행한 사실에 대하여 주력해서 상대방에게 설명을 했읍니다. 이 설명과정에서 우리들에게 용기를 준 것은 북괴가 유엔 산하기구에 가입하면서도 우리가 제의한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에 대해서 반대하는 저의는 표리가 서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무력남침의 흉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설명에 각국 지도자들이 전적으로 공감한 것을 볼 때에 박 대통령 각하의 평화통일 성취에 대한 노력이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사실입니다. 다음은 방문 결과에 대하여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겠읍니다. 첫째로 북구 4개국은 모두가 외교정책 면에서 중립노선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과 동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한국 입장에 대하여 명백한 지지나 약속을 표명할 수 없는 실정에 있기는 하나 이념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 한국과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취하고 있는 국가들이므로 북괴보다는 우리의 입장을 보다 더 이해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순방한 평양의 오만석 사절단 일행의 방문목적은 유엔군으로서의 미군의 남한철수를 관철하기 위한 이 지역 국가들의 지지획득이 주목적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번 우리 사절단의 순방으로 우리 측 주장의 핵심인 남한의 유엔군 주둔은 전쟁의 위험성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되며 한국 내에서의 유엔군 철수는 현재보다 더 심각한 전쟁재발 가능성을 초래한다는 우리 측 견해에 대하여 북구 4개국들은 확신을 얻게 되었읍니다. 두 번째로서 각국의 정부, 의회 지도자들과 면담 시에 본 사절단의 한국 입장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볼 때에 통일 문제, 남북한 간의 대화 문제, 유엔에서의 한국 문제에 관한 한국 측 주장에 정당성과 실현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된 것은 우리의 큰 성과라고 보겠읍니다. 세 번째로서 이번 사절단의 활동은 우리의 입장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는 것 이외에 반대로 상대방이 한반도 정세를 여하히 보고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었던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보며 특히 이 나라의 이름은 밝힐 수가 없읍니다마는 그 어느 고위층이 한반도 사태에 대하여 말하기를 ‘김일성이 오판을 하여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킬 경우 소련과 중공은 불가불 김일성이를 경쟁적으로 도울 것 같다’는 이런 평은 핵을 찌르는 대한반도 정세관이라고도 우리는 생각할 수 있읍니다. 네 번째로서 이번 사절단의 방문시기가 북괴의 오만석이 인솔하는 북구사절단이 다녀간 바로 직후라는 점에서 적시일 뿐만이 아니라 최근 북괴가 유엔총회를 앞두고 북구에 대한 외교공세를 집중적으로 펴고 있는 점으로 보아 북괴의 구라파 침투를 봉쇄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섯 번째로서는 본 사절단의 방문으로 남북한 등거리외교를 표방하는 주재국 정부의 태도로 인하여 지금까지 우리나라 공관이 접촉키 어려웠던 주요 정부, 의회 인사와의 대화통로를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 대사관 직원들의 사기앙양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봅니다. 여섯 번째로 북구 4개국과의 의원협회 결성 문제에 관해서는 덴마크로부터 의원협회 결성을 약속받았고, 핀랜드로부터는 민간단체를 포함한 종합적인 친선협회를 결성하자는 제의가 있었으며 또한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읍니다. 이 문제는 현지 공관이 계속하여 주재국 의회 측과 교섭키로 하고 왔읍니다. 일곱 번째로서는 IPU 동경총회 참석대표 방한초청 문제는 덴마크와 스웨덴은 국회 사정으로 인해서 방한키 곤란하다고 하였으며 핀랜드와 노르웨이는 방한하겠다는 명백한 약속을 받고 왔읍니다. 끝으로 덴마크 주재 이규성 대사의 보고에 의하면 북괴는 그 대응조치로서 8월 하순에 다시 외교부 고문을 단장으로 3명의 사절단을 북구 5개국에 다시 파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말 아이스란드에서 개최된 북구 4개국 외상회의에서는 유엔 제28차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바 있는 한국 문제에 관한 결의와 관련하여 북구 외상들은 남북한이 남북대화를 계속하고 상호협력을 도모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통일 달성을 촉진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으며 동 공동성명의 내용은 작년 제28차 유엔총회 결의를 재확인한 것으로서 북괴 측이 주장하는 유엔군 철수 등이 북구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인바 이는 본 사절단이 북구 방문 후에 나타난 구체적인 성과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보고의 제일 마지막으로서 저희의 의견이라고 할까 저희가 가서 느끼고 그 결과에 따라서 일종의 건의사항을 몇 말씀 올리겠읍니다. 북구 4개국이 남북한의 공관이 대치하고 있는 사실로 인하여 북괴는 교포에 대한 분열책은 물론 정치 면에서도 막대한 물량을 투입하고 있어 정치외교 및 교포대책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이 긴급히 마련되어야 하는 현지 실정을 감안할 때에 우리나라 공관에 대한 예산증액과 공관원의 증원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그 이유는 남북한의 공관 규모를 비교해 보면 특히 스웨덴의 경우는 북괴 측은 건물도 크려니와 공관원도 20여 명이 파견되어 있으나 우리 한국 측은 건물도 왜소하다고 표현했읍니다마는 적을뿐더러 모든 면에서 참 떨어지고 있읍니다. 건물뿐만이 아니라 외무부의 외교관 파견도 이 4개국 중에서 스웨덴이 제일 많은 것이 4명이고 딴 나라는 심지어 2명, 3명에 불과한 실정이었읍니다. 두 번째로서 북괴가 최근 북구 제국에 대하여 총력적인 외교공세를 펴고 있음에 비추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초청 및 방문외교활동을 강화할 것이 절실히 요청되었읍니다. 세 번째로서 최근 북괴의 북구 제국에 대한 상품을 사 준다는 미명 아래에서 북구침투를 기도하고 있는바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북구 제국과 한국의 경제단체가 상호 협력하는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뒷받침이 요청되었읍니다. 이상으로써 북구지역 4개국 순방 국회사절단 보고를 마치겠읍니다. 너무 오래 시간을 갖고 보고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감사했읍니다. 북구지역 4개국 방문 의원단 보고서

다음은 서구지역 5개국을 방문한 의원단의 박철 의원께서 나오셔서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주공화당 소속 박철 의원입니다. 존경하는 의장님과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에게 이민우 전 신민당 원내총무를 단장으로 유정회 강문봉 의원, 신민당 황낙주 의원, 한영수 의원 그리고 본 의원 등이 1974년 6월 12일부터 7월 11일까지 서독, 오지리, 벨지움, 영국, 이태리 등 서구 5개 지역을 공식방문한 결과를 요약해서 보고드리겠읍니다. 방문성과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참고로 방문국에 있어서의 중요 접촉인사를 보고를 드리면 서독에서는 허먼 슈미트포겐하우젠 하원 부의장, 한스 캇쓰 기민 기사당 원내부총무, 한스 아펠 외무부 정무차관, 바그너 한독의원협회 회장과 회원 다수, 파울뉴만 하원 국방위원장 외 의원 다수 그리고 내독장관 후란케 의원, 하원 경제위원회장 나르에스 의원 등이었고 오지리에서는 안톤벤야 하원의장과 알프레드 멜타 부의장, 외무위원장 휘틀러 의원, 훼스트 철강회사 사장 콜라 씨, 여당인 사회당 원내부총무 훼인스페셔 의원, 한오협회장 핑크러 비엔나대학 총장, 상공장관 죠셉스 탈이베이커 의원, 외무장관서리 슈타이너 그리고 부르슈켄 의원을 비롯한 의원 다수를 접촉했으며 벨지움에서는 피엘 아멜 상원의장, 안드레듀퀘 하원의장, 파울 반덴보에난스 국방장관, 에밀 고베리에 IPU 벨지움그룹 단장, 하원의원이며 브룻셀 시내 6․25 참전 기념탑이 있는 구역의 구청장을 겸하고 있는 프랑소와스 페순 의원, 한독친선협회 회장 비바라오 장군 또한 부회장 데브데이트 스와르 신문편집국장 이러한 사람들을 접촉을 했고 영국에서는 보수당 원내총무 험프리 아트킨스 의원 또한 노동당 원내총무 로버트 메리슈 의원, 외무성 정무차관 크로니 로버트경, 한영의원협회장 알버트 로버트 의원, IPU 영국그룹 대표 틈 월리암스 의원과 한영의원협회 소속 의원 다수를 만났으며 이태리에서는 상원의장 스파그노리, 하원의장서리 자카그니니 또한 페디니 외무장관서리, 여당인 기사당 원내총무 바르도로메이 의원, 통상장관서리 오란도 의원, 한․이 협회장 조반니 브에노 상원의원, 그 밖에 한․이 협회 소속 의원 다수를 만났다고 하는 점을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다옴에 방문성과 내용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우리나라 의회 사상 처음으로 파견한 공식 의회사절단이라는 데서 이 지역 방문국에서는 정부, 의회를 막론하고 성심성의껏 우리 일행들을 맞아 주었으며 특히 본단은 야당 원내총무가 단장이고 여야 협동으로 국가안보 외교에 대처해 나가고 있다는 실증을 보여 중으로써 큰 설득력을 가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특히 정치․외교․경제․군사 분야는 물론 의원협회의 교류 확대 내지 새로운 결성 등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인하면서 의원외교사절단의 성적으로 미루어 보아서 우리들의 이번 방문이 단기적 성과보다는 장기적 국가이익에 보다 큰 역점을 두었다고 하는 것을 전제로 말씀드리면서 종합적인 성과를 먼저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참고로 방문국 각국의 정치사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의원님들께서 소상하게 파악을 하고 계실 것이므로 해서 이 자리에서는 생략을 하겠읍니다. 첫 번째, 7․4 남북공동성명, 6․23선언으로 비롯된 남북회담의 진행상황과 중단상태 그리고 현하의 한반도 사정의 설명, 북괴의 간단없는 도발상을 소상히 설명해 줌으로써 상호이해를 촉진시켰다고 보겠읍니다. 둘째, 방문 당사국이 북괴를 승인해서는 안 된다는 필연 당연성을 강조하고 적대하지 않는 공산권 제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명백히 천명했다고 보겠읍니다. 세 번째, 북괴집단의 호전성을 낱낱이 폭로함으로써 김일성 집단의 흉악성을 직시하도록 깊은 이해를 얻었읍니다. 네 번째, 서독, 벨지움 양국에 대해서는 군사적 협력 강화를 요청했고 특히 방위산업 발전을 중심으로 한 협력체제의 필요성을 역설했읍니다. 다섯 번째, 유엔 외교에 있어서의 방문국에 그동안의 협조에 대해서 깊은 사의를 표하고 금년 가을 유엔총회에 있어서의 한국정부 입장의 설명과 동조, 지지 획득에 주력을 함으로써 각국으로부터 많은 지지 노력을 약속받았읍니다. 여섯 번째, 경제협력 강화를 추진하는 방안으로 오지리정부에 투자사절단 파한을 요청했고 이태리와는 중화학 석유화학공업 발전에 기여하는 기술협력에 호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서독, 벨지움과는 상호 경제협력 교역증진을 확대해 나가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읍니다. 일곱 번째, 한국 의회정치의 건재성을 재인식시키는 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덟 번째, 서독, 영국 등 상호 의원협회가 구성되어 있는 나라와는 그 교류와 사업의 확대를 또한 오지리, 이태리, 벨지움과 같이 의원협회가 아직 구성되어 있지 않는 나라와는 연내 구성에 전폭적인 합의를 보았읍니다. 아홉 번째, 방문국 의회지도자들을 초청했고 의원 간의 개별적 우의를 두터이 함으로써 향후 계속 접촉 교류할 수 있는 기초를 닦았읍니다. 열 번째, 서독에서는 우리나라로부터 파독된 노무자, 간호원을 위로 격려하는 한편 서독정부에 대해서 우리 기술자들의 광범한 진출을 촉구해서 많은 의견의 접근을 보았읍니다. 열한 번째, 방문국 의회지도자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함으로써 우리 공관 업무를 측면 지원하는 성과도 컸을 뿐 아니라 공관대표와 방문국 의회지도자들과의 새로운 접촉 확대에도 크나큰 기여를 했다고 판단이 됩니다. 다음, 항목별로 활동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고를 드리겠읍니다. 첫째, 남북회담과 한반도 정세 설명 그리고 북괴의 호전성을 폭로하면서 각국 의회지도자들을 방문할 때마다 한국의 주도하에 열린 남북회담은 민족적 과업인 조국통일의 실현과 아시아의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북괴는 이것을 정치적으로 악이용하고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 하고 있음이 그동안의 남북회담 진전상황을 통해서 명백히 드러났음을 설명하고 깊은 이해를 얻는 데 성공했읍니다. 남북 간의 대화를 위해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감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입장과는 달리 북괴 측은 미군 철수의 되풀이, 터무니없는 대미 평화협정 체결의 제안, 간단없는 간첩 침투와 어선 격침, 납북 등으로 그들의 호전성을 여실히 노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인내와 설득으로 남북대화를 계속 추진해 나갈 결심이라고 설명을 하자 상대국들은 한결같이 우리의 남북회담 재개 노력을 앞으로 꾸준히 주시해 나가겠다고 말을 했읍니다. 다음 두 번째, 북괴승인의 부당성을 역설해서 깊은 동조를 얻었다고 확신합니다. 오지리가 중립국으로서 북괴를 제외한 모든 나라와는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는데 북괴와도 지난 1960년 12월 7일 오지리연방 상공회의소와 북괴 무역촉진위원회 간에 민간베이스로 무역협정을 체결하고 1964년 9월 11일 무역대표부를 비엔나에 설치를 했다가 동 대표부를 67년 7월 1일 첵코 푸라하로 자진 철수시키더니 마침내 1970년 3월 23일 통상대표부로 재개설하기에 이르러서 현재 5명에서 12명까지의 북괴통상요원들이 파견되어서 활동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읍니다. 또한 72년 1월 한․오 협회가 창설되자 곧 뒤이어서 조․오 협회라는 것을 만들어 100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현재 활동 중에 있는 실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에서 오지리와 북괴와의 관계는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북괴는 오지리로부터 수력발전용 시설재인 발전터빈 변압기 등 약 600만 불 상당을 수입해 간 바 있고 반대로 비료 등을 수출함으로써 대오지리 경제진출을 적극적으로 꾀하고 있는데 이러한 북괴의 침투정책은 72년 말부터 시작된 북구 제국의 북괴 승인에 뒤따라 우방 제국의 북괴 승인 움직임에 편승 승인을 획득하려고 갖은 시도를 다 하고 있다는 증좌인데 실질적으로 오지리 여당 내에는 일부 좌파세력의 이에 대한 압력이 증가되고 있는 실정임을 감안해서 우리 의원방문단은 오지리, 북괴의 접근 저지에 최대 중점을 두고 거듭거듭 굳건한 쐐기를 박아 두었다고 하는 점을 말씀을 드립니다. 의원방문단은 당시 외무부장관이 오지리 여당의 대통령후보로서 출마를 하고 있었던 까닭에 오지리 외상서리와 면담을 했읍니다. 그때 북괴 승인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한회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제28차 유엔총회의 결의대로 한반도의 문제는 남북한의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는 데 협조해 줄 것을 요청을 했고 한․오 양국 간의 경제협력 추진 추세에 비추어 북괴 승인은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했읍니다. 그리고 만약 북괴를 승인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동등한 입장에서의 승인이 아니라 남한을 기존 합법정부로 인정하는 범주 내에서 행할 것이고 특히 북괴 경제 진출에는 그들의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바꾸어 말해서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그러한 협력은 삼가해 주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를 했읍니다. 또한 한국의 동구 공산국가에 대한 정책을 이미 천명한 바 있는 6․23선언의 설명을 통해서 상기시키고 북괴 승인은 이를 공산권이 한국을 승인한 연후에 고려되어져야 할 문제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을 했읍니다. 이것은 벨지움에서도 동일하게 강조했었던 문제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오지리 측은 사회당이 근소한 의석 차로 집권하고 있으며 국민당, 자유당 등 야당의 압력이 증가되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최대한의 성의를 가지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을 다짐해 주었읍니다. 이태리에서는 페디니 외무부장관서리와의 면담을 통해서 우리 의원방문단은 현재까지 이태리의회 내의 공산당과 사회당에 의한 빈번한 남북한 등거리외교원칙에 입각한 관계개선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괴 불승인 정책을 밀고 나온 데 대해서 사의를 표명했읍니다. 그리고 통상과 문화교류 면에서 북괴와의 접근은 남북한의 대화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대공산권 문호개방을 선언하고 나선 우리 정부 정책에 입각해서 이태리로서도 동구권이 우리 한국을 승인하는 데 노력해 줄 것을 요청을 했읍니다. 다음 세 번째로 한반도 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음을 설명했읍니다. 각국 의회, 정부 지도자들과 면담할 때마다 세계의 해빙무드와는 달리 정반대로 한반도 내에서 긴장이 고조되어 가고 있음은 북괴의 무력도발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사실로서 증명되고 있다는 점을 누누이 구체적 실례를 들어서 설명을 했읍니다. 1974년 2월 15일 북괴 포함이 서해 공해상에서 어선을 격침 또한 납치해 간 사실을 무장게릴라와 간첩을 밀파해서 정부 전복 음모를 획책하고 있고 남북회담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키면서 전쟁준비에 광분하고 있으며 휴전선 일대에 무장재배치를 하면서 끊임없이 도발행위를 하고 있는 북괴의 실상을 낱낱이 설명했읍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우방의 도움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깊은 이해와 협력을 요청하여 많은 성과를 보았다고 하겠읍니다. 다음 네 번째로 서독과 벨지움에서는 군사 면의 협력 강화를 강조했읍니다. 의원방문단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하원 국방위원회 파울 뉴만 위원장 등 많은 국방위원들과 면담하는 기회를 가졌읍니다. 국방 문제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분단의 공통된 비극을 안고 있는 두 나라는 공산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명제에 대해서도 동일성을 갖고 있음을 강조했고 서독이 45만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해 한국은 60만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음을 상기시켜 이러한 대규모의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예산의 3분의 1을 투입해야 하는 우리의 부담은 실로 힘겨운 것임을 강조를 했읍니다. 이에 대해서 서독 측 국방위원들은 60만의 대병력 유지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표명했고 우리나라 예비군 운영에 대해서 질문을 했으며 서독은 일단 유사시에 75만 명의 예비군을 동원할 수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상호 군사상황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후 본 의원방문단은 매년 22명의 한국군 장교가 서독에 파견되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혜택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를 했읍니다. 1. 독일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한국군 장교의 대폭적인 증원. 2. 군사기술 면에 있어서는 지원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현재 가해지고 있는 군사무기 유통의 제한사항을 한국에 완화시켜 줄 것. 3. 아프리카 등의 군사원조 등을 서독이 실시하고 있는데 한국에도 이러한 혜택을 주도록 배려할 것이며 특히 방위무기에 대해서는 기술지원을 해 줄 것 등을 요구했더니 서독 국방위원회 측은 이상 3개 항에 대해서 자세한 보고서를 만들어 자국 국방부에 보내겠다고 하는 약속을 주었읍니다. 그리고 한국의 국방 사정이 서독과 다른 이유는 서독이 동방정책의 성공으로 안보위기가 감소된 데 반해서 한국은 호전적인 김일성 북괴집단과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안보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박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으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져 있는 우리는 국방상 여러 난점을 안고 있다고 하는 특수성을 설명했읍니다. 벨지움에서는 반덴 보에 난트 국방장관을 면담했을 때 6․25 당시 보병 1개 대대를 파견해서 한국전쟁에 참전시켰기 때문에 한․백 양국은 실질적으로 혈맹관계에 있다는 점을 한국 국민들은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전하고 첫째로 벨지움왕국은 옛날부터 우수한 무기를 생산할 수 있고 또 우수한 군수장비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이러한 우수한 기술을 한국 방위산업에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방안을 강구해 줄 것과 둘째, 반덴 보에난트 국방장관이 작년 국군의 날에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보았고 거기서 태권도시범 광경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본 의원방문단은 군기 확립과 체력 향상을 위해서 한국의 태권도를 국방장관이 동의만 한다면 벨지움에 보급하기 위해서 교관을 파견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고, 세 번째로 앞으로 양국의 우의 증진과 방위 협력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제의를 했더니 동 국방장관은 방위산업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 공관을 통해서 상호 협의해 나갈 것이고 태권도 교관 파견 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동은 하나 모든 실현방법 문제는 좀 더 검토해서 우리 공관을 통해 실현시켜 주도록 약속을 했었던 것입니다. 다음 다섯 번째로 유엔 외교대책에 대해서 강력한 주장을 펴서 많은 동조를 얻었다고 보고드립니다. 방문국의 모든 정부가 한국 입장을 적극 지지해 준 데에 대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금년 가을 유엔총회에 있어서도 계속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읍니다. 이에 대해서 서독, 오지리, 백이의 , 영국, 이태리는 우리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지해 줄 것을 다짐했읍니다. 본 의원방문단은 북괴가 유엔 동시가입에는 반대하면서도 다른 국제기구에의 가입과 우방국가로부터의 승인 획득에는 혈안이 되고 하는 것은 자체 모순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한국이 인내와 성의로써 이끌고 있는 남북회담을 통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내의 평화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남북한 동시가입이라고 하는 한국의 대유엔 정책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 상호 의견의 일치를 보았고 가능한 한 작년 28차 유엔총회 결의를 그대로 금년에도 밀고 차차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개진했던 것입니다. 여섯 번째로 경제협력과 지원 강화 문제에 대해서 역점을 두어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겠읍니다. 오지리 상공장관 조셉 스타리 베이커 씨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가 특혜관세 혜택을 받음으로써 대오지리 수출이 활발해지고 1973년 12월 훼스트사와 포항제철과의 연속 주조시설 그리고 제철 확장시설 1억 5000만 불 규모 플랜트계약이 체결된 데 대해서 깊은 사의를 표명했읍니다. 또한 우리 대표단은 양국의 외교는 경제적 협력을 통해서 그 결실을 더욱더 풍족히 할 수 있다고 하는 점을 강조를 하고 투자사절단을 파한해 줄 것을 요청하자 상공장관은 이에 흔쾌히 응하면서 오지리 경제인협회와 상의해서 이를 적극 주선하겠다고 약속을 했읍니다. 오지리 투자사절단이 파한되면 80년대 중화학공업 발전에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하고 또한 본 의원방문단은 섬유류 수입제한조처의 움직임은 한국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하는 우려를 표명했고 북괴의 서구라파 무역은 음흉한 정치적 침투목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하는 점을 경고했읍니다. 이태리에서는 대외통상장관서리인 오란도 상원의원과 면담했을 때 이태리의 대한 직접투자는 큰 진전을 보이고 있지 않다고 하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경제교류와 무역증진을 적극 강화해 나갈 것을 제의했었읍니다. 그랬더니 동 장관서리는 한․이 경제협력이라고 하는 것은 비종속적이어야 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양국 간에 평등한 이익을 가져올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고 하는 원칙하에 실현되어지기를 바란다고 하는 점을 천명하면서 한국과의 경제협력은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될 것이고 그런 뜻에서 양국 간의 산업계 접촉을 빈번히 하고 빠른 시일 내에 경제사절단의 파한을 구상하겠다고 말했읍니다. 특히 오란도 장관서리는 이태리가 석유화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선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기술 면에서 한국의 중화학공업 발전에 협조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으로 이탈콘설트 회사와 리드로카본 회사가 참여하도록 주선해 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했읍니다. 서독에서는 재정차관, 기술협력, 대한 민간투자를 더욱 강화해 줄 것을 당부해서 의회지도자들로부터 동조적인 반응을 얻었고 벨지움에서는 EC권 경제진출에 있어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해 주도록 의회지도자들을 설득시켰으며 영국에서는 오히려 강세에 있는 우리 수출현황을 감안해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가능한 한 회피를 했읍니다. 일곱 번째로 본 의원방문단은 한국 의회정치의 건재성을 인식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고 보겠읍니다. 야당의 원내총무를 단장으로 해서 여야가 공동으로 구성된 본 의원방문단에 대해서는 방문국들이 한결같이 깊은 관심을 나타냈으며 특히 영국과 서독에서는 야당 원내총무가 이끄는 친선의원방문단의 방문을 받게 된 것을 관심 있게 주시하고 그 의의에 대해 솔직한 질문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본 의원방문단은 한국 의회정치에 있어서 여당은 물론이지만 야당 또한 건재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며 민주적 선거와 국회운영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읍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의원방문단은 국회 안에서 국내 문제에 관해서는 여야가 정책적 차이를 들어내고 이 정책의 실현을 위해서 열띤 논쟁과 투쟁을 거듭하지마는 안보외교 문제에만은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입각해서 여야 협조로 대처해 나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하므로써 각국 의회지도자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었다고 하겠읍니다. 여덟 번째, 의원협회 구성과 교류 확대에 대해서 큰 성과를 얻었읍니다. 오지리국회를 방문했을 때에 때마침 목전에 닥쳐온 대통령선거 등 복잡한 국내 정치사정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원의장, 여야 원내총무, 외무위원장 등 의회지도자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공식회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동 회담에서 안톤벤야 의장은 한․오 의원협회 구성에 대해서 이미 각 정당 대표 간에 구성한다는 원칙에 합의를 보고 있으므로 하원에서 인선이 완료되면 우리 측에 통보해 주겠다고 하는 기쁜 약속을 해 주었읍니다. 이어서 본 의원방문단은 금년 가을 동경에서 개최되는 IPU 총회에 참석하는 오지리의원단의 방한을 요청했더니 희망자가 있는 경우 공관을 통해서 통보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읍니다마는 이들의 명단은 이미 국회에 도착되어 2, 3일 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벨지움을 방문했을 때 피엘 하멜 상원의장과 앙드레 두케 하원의장과 면담하고 한․백 의원협회 구성을 제의하자 즉각 동의를 얻었고 이번에 동경 IPU 총회에서 더욱 구체적인 토의를 가질 것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읍니다. 또한 이태리 방문 시에는 대외통상장관서리이며 상원의원인 오란도 의원이나 또 자카그니니 하원의장서리와 면담하고 한․이 의원협회 구성을 제의했으며 이의 실현에 적극 협력해 줄 것을 요청했더니 우리 측 제의에 전반적으로 호응할 것을 약속받았고 이어서 이태리에서 국가서열 제2위인 상원의장 스파놀리 의원과 면담했을 때도 이 문제를 제의하자 원칙적으로 찬동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앞으로 양국의 공관과 의회를 통해서 진행시키자고 합의를 보았읍니다. 서독과 영국에 있어서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의원협회 활동과 사업을 확대시켜 나가고 또한 상호교류 증진을 위해서 보다 더 적극적인 방안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았던 것입니다. 아홉 번째로 각국 의회지도자들을 초청을 했읍니다. 독일에서는 이미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포겐하우젠 부의장과 바그너 한독 의원협회 회장 외에도 기민당, 기사당 원내총무인 캇쓰 의원을 비롯한 한독 의원협회 소속 여러 의원들을 한국을 방문해 주도록 권유했읍니다. 오지리에서는 이미 방한이 예정되어 있는 안톤벤야 하원의장의 조속한 방한을 요청한 외에도 외무장관과 그 밖에 다수 친한의원들을 국회의장 명의로 초청을 했고 하원 부의장 알프레드 멜따또는 한․오 협회 이사인 미카멜 루프도위츠 의원 등이 적절한 시기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그러한 기회를 가져 주기를 전했읍니다. 또한 벨지움에 있어서는 피엘 하멜 상원의장 또한 앙드레 두퀘 하원의장을 초청을 했고 상원의원 에밀레 쿠벨리에 의원을 비롯한 IPU 그룹 의원들이 한국을 방문해 주기를 희망하고 파울 반덴 보이난트 국방장관과 프랑스와스 페순 의원이 재방한하도록 요청했읍니다. 영국에서는 알버트 로버트 한영 의원협회 회장, 톰 월리암스 부회장, IPU 영국지부 위원장 패트리크윌 의원 등이 한국을 방문해 주기를 희망하고 또 외무성 정무차관인 고로니 로버트 경, 보수당 원내총무 험프리아트 킨스, 노동당 원내총무 로버트 멜리취 의원 등이 방한해 줄 것을 초청했읍니다. 이들은 금년 10월 10일로 예정된 총선거 때문에 금년 중에 방한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빠른 시일 내에 방한하기로 약속을 했읍니다. 이태리에서는 상원의장 스파크놀리, 하원의장서리 자카그니니, 대외통상장관서리 오란도, 상원의원 페드니 외무부장관서리를 방한하도록 초청했읍니다. 다음 열 번째로 해외교포를 위로하고 노무자, 간호원을 격려했읍니다. 본 의원방문단은 서독의 수도 본에서 약 1만 494명이나 되는 서독에 있는 교포취업자들을 다 접촉할 수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의 대표 약 25명을 초청해서 만찬을 나누면서 그들을 위로 격려했읍니다마는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했음을 보고드리겠읍니다. 1. 광부와 간호원들이 휴가를 얻었을 때에 서구라파 여행을 할 수 있는 그러한 조건 또 1년에 한 번쯤이라도 자기 가족과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그러한 조건을 곁들인 취업조건의 개선을 추진해 줄 것을 요청을 했고 두 번째, 광부의 선발 파견에 있어서는 구체적 결함을 제거시키고 또한 현지 사정의 사전교육 등에 보다 더 주력해 줄 것 세 번째, 서독에 있는 우리 공관에서 보다 더 신속히 영사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공관직원을 증원해 줄 것과 네 번째, 간단없이 날아들어 오고 있는 북괴의 불온문서나 선전공세에 대처할 수 있도록 우리 측의 해외홍보활동을 강화시켜 줄 것 다섯 번째로 기술보급을 위해서 우리나라 교육법에 기술전문학교 또는 기술보급을 위한 단기학교 같은 것을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 의견을 개진하고 또한 건의를 받았읍니다. 본 의원방문단은 서독 의회지도자와 면담했을 때 우리나라 광부와 간호원에 대한 특별한 배려를 요청해서 협조 약속을 받았던 것입니다. 또 벨지움에서는 교포, 유학생과 다과회를 갖고 그들의 실태와 고충을 청취했읍니다마는 그들로부터 벨지움정부 당국이 장학금을 삭감해 나가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지적받고 정부레벨에서 접촉해서 지원해 줄 것을 요청받았읍니다. 다음 열한 번째로 공관업무의 측면지원 성과를 들 수 있겠읍니다. 본 의원방문단의 방문을 통해서 우리 공관과 방문국 정부와 의회지도자 간에 긴밀히 접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식회담 또는 만찬회 등을 통해서 현안문제에 대한 의견교환을 신속히 할 수 있었고 평소에 접촉할 기회가 적었던 그러한 의회지도자들 이런 분들을 우리 공관의 대표들이 손쉽게 만나고 또 앞으로 친교를 터 나갈 수 있는 그러한 기초를 닦았다고 하는 점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겠읍니다. 끝으로 본 의원방문단이 결론적으로 얻은 건의사항을 말씀을 드리자면 첫째, 이상의 성과에서도 적시한 바와 같이 금반의 방문국이 자유우방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괴의 침투공작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데 비해서 향후 지속적인 의원외교단의 파견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보아지는 것이고, 둘째로 의원방문단 파견 시에는 일시적 졸속적인 결정보다는 장기적 계획하에 방문국의 정치사정을 충분히 고려하고 방문국과의 사전접촉을 통해서 면담자를 엄선한 연후에 지속적인 접촉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세 번째로 해외교포기술자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계우방 제국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홍보활동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읍니다. 네 번째로 방문외교에 곁들여 한국의 현실 상황 등을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해 초청외교활동을 병행시키는 것도 또한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다섯 번째, 해외에 나가 있는 우리 국내실정 등에 대해서 소극적 대처보다는 능동적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견지하에서 특히 북괴의 초청외교에 대한 대응책으로 비록 비친한파라 할지라도 초청 실현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재인식했읍니다. 여섯 번째로 우리 해외공관의 활동 강화를 위해 인적, 물적 보강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보았읍니다. 특히 북괴와 대치되어 있는 공관의 경우는 인적, 물적 또한 기동력의 보강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보고드리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로 의원방문단의 방문성과를 더욱 확대시키고 구체화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우리 정부, 우리 국회의 행정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읍니다. 이상 간단히 보고를 드렸읍니다마는 각국별 구체적인 활동내용에 대해서는 유인물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보고드리는 것을 생략하겠읍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구지역 5개국 방문 의원단 보고서

서부 아프리카 5개국을 순방한 의원단의 이종식 의원께서 나오셔서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신정우회 이종식입니다. 단장인 김용태 의원을 대신해서 제가 서부 아프리카 5개국의 순방보고를 말씀드리겠읍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미 여러분 앞에 인쇄되어 배포한 대로입니다. 따라서 그 내용을 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주로 배포된 보고서를 보완하는 의미에서 간략하게 말씀드릴까 생각합니다. 우리 아프리카 A반은 김용태 의원을 단장으로 공화당의 이해원 의원, 신민당의 황명수 의원, 당시는 무소속이었읍니다마는 지금 신민당의 이용희 의원 그리고 저 다섯 사람이 지난 6월 19일에서부터 7월 6일까지 18일간 서부 아프리카의 세네갈, 니제르, 코트티브와르, 카메룬, 자이레 5개국을 순방했읍니다. 오승환 씨가 단장 보좌역으로 그리고 외무부의 이정수 아프리카과장이 통역 겸 실무자로 그리고 이상욱 문화방송 기자, 구박 동양방송 기자, 박종화 경향신문 기자가 우리와 함께 나쁜 기후조건을 견디면서 고생을 했읍니다. 방문목적과 활동은 우리 의원방문단의 김용태 단장이 대통령 특사의 자격을 함께 가졌기 때문에 주로 대통령의 친서 전달 비망록에 의거하여 한반도의 정세 설명과 우리 입장을 지지해 달라는 요망 그리고 양국 간의 현안문제 교섭 등이었읍니다. 이 중에서 주로 의원협회 구성 문제가 상당히 활발히 논의되었는데 의회가 없는 니제르를 제외하고는 모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읍니다. 특히 세네갈과는 상호 명단의 교환 단계까지 이르렀읍니다. 부대활동으로서는 북괴의 대아프리카 침투상황 파악과 장기적인 대아프리카 진출을 위한 정책자료를 수집하는 데 주력을 두었읍니다. 우선 종합적인 보고부터 말씀드리겠읍니다. 이 보고는 성과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아프리카 외교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말씀드릴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순방한 5개국은 모두 불어사용권이고 그중 벨지움 식민지였던 자이레를 제외한 4개국이 불란서 식민지였던 나라들입니다. 이들 나라는 대개 200년에서 300년의 식민지로써 통치를 받아 온 경험이 있고 많은 조상들이 상품으로 미국에 팔려 갔었읍니다. 또 이들 나라 중 세네갈과 니제르는 사하라 사막 남단에 위치하여 여러분 잘 아시다시피 금년으로 연 6년째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입니다. 또 자이레는 얼마 전만 해도 킨샤사콩고라고 불리워졌는데 여러분 아시다시피 분쟁 해결을 위해 유엔사무총장 하마슐드 씨가 현지로 가다가 비행기사고로 사망했던 나라입니다. 벨지움의 레오폴드 2세가 벨지움의 영구영토로 삼겠다 했을 만치 세계에서도 유수한 자원보유국입니다. 아프리카 제국이 탈이데오르기를 지향하고 있는 데 발맞추어서 중공과 북괴도 이 지역에 스스로 반식민지 제3세력이라는 간판으로 침투하고 있었읍니다마는 내용은 다분히 이데올르기적이었읍니다. 특히 중공이 이 지역에 집중적인 침투를 꾀하고 있었읍니다. 그 배경에는 소련이 기존 공산지역에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데 반해 중공은 이 지역의 신생 중립국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었읍니다. 적어도 중공은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공산세력에서 소련의 헤게모니에 경쟁하려는 것이 보였읍니다. 따라서 중공은 이 지역에 방대한 무상원조나 다름없는 원조와 농업기술 원조를 제공하고 있었읍니다. 이 지역에 대한 북괴외교는 그 자체를 떼어 놓고 보면 별것이 없다고 판단이 됩니다마는 항상 대외정책에서 중공의 등에 업혀 있는 입장에서 보면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어디를 가도 북괴대사관은 바로 우리 시골의 면사무소와 같은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읍니다. 단조한 2층집의 문에 그네들의 기를 달고 그 옆에 게시판 같은 것을 세워 두고 있었읍니다. 별로 보는 사람이 없는 선전사진 등을 붙혀 놓고 있었읍니다. 인원은 대개 6명 내지 7명으로 대사만이 부인을 데려오고 있고 그 밖의 사람은 모두 독신으로 합숙을 시킨다는 현지의 얘기입니다. 통역이 반드시 붙어 있어서 통역이 대사와 같이 기거한다는 것이 여러 가지 의미를 추측케 하는 것들이었읍니다. 우리가 가고 나올 때에 비행장에 멀리서 감시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읍니다마는 그 밖의 두들어진 활동은 눈치챌 수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이런 촌스러운 외교를 하는 북괴가 중공과 상호 보완적인 활동으로 이 지역에 침투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가벼이 넘길 수는 없는 일이 되겠읍니다. 다음, 자원 면에서 아프리카는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녔다고 보겠읍니다. 지금 당장 시장으로서의 아프리카는 대단한 것은 못 되지만 자원 문제와 관련하여 장차를 위한 장기적인 검토가 지금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했읍니다. 우리가 순방한 모든 나라에서 미국, 불란서, 서독 등 서구 공업국은 물론이고 일본의 상품진출이 현저한 것을 볼 수가 있었읍니다. 특히 도요다자동차, 쏘니․네쇼날 전자제품, 혼다이륜차 등을 시내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었으며 예를 들면 자이레의 모부투 대통령 관저의 쿨러나 라디오 등이 모두 네쇼날 상표가 붙어 있었읍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광목을 부분적으로 수출해 왔읍니다마는 우리 업계가 소량 주문에 무성의하여 안정된 시장 확보에 지장이 많다고 판단이 되었읍니다. 아프리카는 긴 식민지 역사에서 독립하여 지금도 2% 미만의 서구교육을 받은 지배층과 98% 이상의 문맹 피치자로 구성되어 있고 생활의식, 사회적 환경의 격차는 엄청난 것이었읍니다. 따라서 성장을 서두르는 지배층의 의욕에 비해 대중의 낮은 교육 정도 때문에 자립도의 진도는 크게 늦어지고 있읍니다. 이는 공업기술의 태무 내지 후진성의 장기화를 예측하는 것으로써 상당한 기간 완제품 내지 반제품의 수입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했읍니다. 아프리카 경제는 아직 원시 소비단계로서 국민의 기본적 생활을 충족시키는 데에도 장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되었읍니다. 따라서 수요 면에서 세계경제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프리카의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바로 이런 데에 있다고 판단되었읍니다. 아프리카는 오랜 피식민지 통치의 경험과 자립능력의 취약성 때문에 선진대국의 원조 내지는 경제적 진출에 매우 저항적이었읍니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끼리의 협력관계는 같은 조건하에서는 선진국보다는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가 있었읍니다. 이상과 같은 개황으로 미루어 보면은 우리나라의 대아프리카정책은 종래의 대유엔 단기정책에서 크게 전환하여 장기적이며 종합적인 정책이 되어야 하겠다고 느꼈읍니다. 단기적으로는 비록 유엔에서 불리한 입장에 선다 하더라도 유엔 대책은 이 종합적인 대책의 일환으로 해결이 되어야 안정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겠읍니다. 그러기 위한 전제로써는 대아프리카정책은 상업베이스가 아닌 투자로서 간주되어야 하겠으며 아프리카인의 오랜 식민지 경험을 감안하여 그들의 민족감정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보겠읍니다. 즉 지나친 상업주의는 이들에게 조건반사적인 저항심리를 불러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겠읍니다. 방법으로써는 여러 가지가 고려될 수 있겠읍니다마는 지금 아프리카지역에 파견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의사와 태권도사범이 큰 성과를 얻고 있다는 사실에 착안할 필요가 있겠읍니다. 또 현주민의 기술자립도를 높이기 위해서 직업학교 같은 것을 설립하여 운영하는 것도 필요하리라고 생각을 했읍니다. 세째로는 이미 정부가 결정을 본 문제입니다마는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여 철저한 조사를 하는 것과 한․아프리카 친선협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경제인을 포함하여 많은 각계 인사가 참여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꼈읍니다. 네째로는 현지에서 한국의 사정이 너무도 어둡다 하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읍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지를 찾아가는 외교도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겠지마는 우리의 현실을 가장 실감 있게 이해시키는 방법은 역시 초청외교가 아닌가 하는 판단을 내렸읍니다. 다음은 각국별 사정과 활동을 말씀드리겠읍니다. 이 부분도 구체적인 내용이 이미 배부된 보고서에다가 다 수록되어 있읍니다마는 나는 주로 경험을 토대로 한 낙수 를 중심으로 결론만을 간단히 말씀드릴까 생각합니다. 처음 방문한 나라는 세네갈이었읍니다. 우리가 공식방문한 4개국 중에서 유일하게 국가원수를 만나지 못한 나라가 되겠읍니다. 세네갈의 셍골 대통령은 우리가 방문한 한 달 전에 이미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읍니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디우프 수상을 만났읍니다.디우프 수상은 한국과 세네갈의 친선이 한반도의 평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말했으며 우리가 만난 유수프실라 외무성 섭외총국장도 남북한 동시가입이라는 한국 측 안이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현실적 안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말해 주었읍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절대권력자인 셍골 대통령의 평양방문 둥으로 금추 유엔에서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리라는 보장이 없었으며 오히려 북괴 동조적인 경향마저 보였읍니다. 이 나라도 한국에 대한 인식은 극히 미묘한 상태였읍니다. 디우프 수상이 우리 단장과의 대화에서 여러 차례 우리 개발도상국끼리라는 말을 했읍니다마는 면담이 끝나고 나올 때에 우리가 마련했던 전자계산기, 라디오 등을 선물로 주니까 매우 놀라면서 이것이 한국에서 생산된 것이냐라고 묻습니다. 그러더니 나 아까 개발도상국끼리라는 말을 취소하겠다, 한국은 훌륭한 선진국이다라고까지 말했읍니다. 세네갈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오랜 한발을 극복하기 위한 지하수개발 문제였읍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서해안에 깔려 있는 많은 어업자원의 일부를 가지고 있어서 이 방면의 적극적인 협력관계가 요망됩니다. 그 밖에 쎄시디아 국회의장과 쉐이크레이 대통령의전장 등을 만났읍니다. 다음은 니제입니다. 이곳에서는 쿤체 군사회의 의장, 사니 시도 부의장, 뭇사 살라 외상대리보건상을 만났읍니다. 혁명 후 이 나라를 방문한 최초 최대의 사절단이 되었고 혁명으로 실각한 디오리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일도 있어 친한인사라고 알려지고 있읍니다. 때문에 사실은 다소 불안을 안고 들어갔읍니다마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큰 환대를 받았읍니다. 전임 디오리 대통령은 6년간의 가뭄을 이겨 낼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해 결국 이것이 군사혁명의 직접 도화선이 되었다고 보겠읍니다. 혁명정부 지도자는 이 당면과제인 기아해결을 위해 전력투구를 하고 있는 눈물겨운 광경을 볼 수 있었읍니다. 이 나라는 아직 발견된 대단한 자원도 없읍니다. 석유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것도 아직은 희망이 있고 최근 우라니움광이 발견되었다고는 합니다마는 이것도 경제성을 논할 단계가 아닙니다. 혁명은 했읍니다마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도 산적해 있고 또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완전한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 사절단을 매우 고마워하는 눈치였읍니다. 특히 우리 김 단장이 같은 혁명주체로서 혁명 직후에 직면하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제시하면서 용기를 갖도록 격려한 데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 듯했읍니다. 혁명 후는 국민의 처지를 생각해서 정부가 파티 같은 것을 안 해 왔다고 합니다마는 우리 일행을 위해 영빈관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특히 쿤체 의장의 특별지시로 니아메에 있는 모든 각료가 참석해 주었읍니다. 이 파티에 참석했던 불란서대사의 이야기로는 디오리 대통령의 집권 시 뽕삐두 불란서 대통령 환영파티 이후로는 최대의 파티였다고 했읍니다. 이곳에서는 부부 의사를 포함해서 4명의 한국인 의사가 있었읍니다. 특히 부부 의사가 이곳 정부고관들의 특별한 총애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마음 든든히 생각했읍니다. 니제르는 유엔에서 계속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준 아프리카에서도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우리가 돌아오고 난 뒤 니제르는 북괴를 승인했읍니다마는 현지의 보고에 따르면은 이 나라의 중립정책에 따른 것뿐이고 유엔에서 우리 입장을 지지해 주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다음은 코트티브와르입니다. 아이보리 코스트라고 불리워지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비행기 연락 때문에 전후 두 번 들렀읍니다. 그래서 결국은 비공식 방문국이 되었읍니다. 수도 아비잔은 서부 아프리카의 교통의 중심지로서 현대적 면모를 갖춘 극히 아름다운 도시였읍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은 야세 국회의장, 모리스, 아네빌레, 꼬아시 등 세 사람의 부의장이었고 그쪽 국회의원 26명과 우리 대표단 5명이 참석하여 의원간담회를 갖기로 했읍니다. 특히 이 의원간담회에서는 신민당의 황명수 의원이 아주 신랄한 질문을 해서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읍니다. 야세 국회의장은 아프리카 독립운동가의 한 사람으로써 세네갈의 셍골 대통령과도 친분이 매우 두터워 가끔 셍골 대통령을 만나면은 셍골 대통령의 친좌경적 경향을 충고하기도 한다고 일러 줍디다. 의원간담회에서는 일당정치하의 아프리카의 정치 운영방법 등을 여러 가지로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코트티브와르는 서부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경제적으로 앞서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며 지난 14년 동안 우리의 입장을 계속 지지해 준 우방입니다. 다음은 카메룬입니다. 여기서는 아히죠 대통령과 무나 국회의장, 다우드 국무상, 에퐁 외상 그리고 대통령의전장 등을 만났읍니다. 카메룬은 동부의 영어사용 지역과 서부의 불어사용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지금 아히죠 대통령이 이것을 통일을 해 놓았읍니다. 국회의장 무나 씨가 영어사용 지역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따라서 아히죠 대통령 자신의 프라이드가 매우 컸으며 남북통일 문제에 관해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이 나라는 유엔에서 한국 문제에는 기계적인 중립을 취해 온 나라여서 이 방면에서 정책 전환을 기대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나 경제적인 유대는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했읍니다. 이곳에서도 우리 대표단은 환대를 받았읍니다. 우리 전에 이미 북괴의 부총리인 정준기가 다녀갔다고 들었읍니다마는 그는 아히죠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히죠 대통령은 우리 단장을 기꺼이 맞아 주었읍니다. 카메룬정부가 제공해 준 숙소인 호텔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6대의 모터바이시클이 모터 케이드를 하고 특사차를 호위했읍니다. 호텔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두 길이 있는데 모터 케이드는 반드시 북괴대사관 앞으로 안내를 합니다. 지나가면서 본 북괴대사관은 낮에도 두터운 커텐을 치고 애써 무관심하게 보이려는 듯했읍니다. 대통령 집무실에서도 도열한 고전적인 의장병의 환영을 받았읍니다. 모터 케이드의 호위를 받으며 태극기를 날리고 야운대 시내를 누비고 들어갈 때 가슴 뿌듯한 것을 느낀 것은 우리 대표단 모두의 감격이었읍니다. 마지막으로 자이레공화국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읍니다. 모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이레는 아프리카 최대의 면적과 최대의 자원보유국입니다. 여기서는 모부투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출장 중이어서 치세케디 부의장 그리고 움바 외상 및 국제협력상 등을 만났읍니다. 그리고 모부투농장을 방문했고 그 속에 이 나라 유일 정당인 혁명인민당 MPR이라고 해 가지고 그대로 번역을 하면은 혁명인민운동이 되겠읍니다마는 혁명인민당의 거대한 훈련장을 보았읍니다. 국회 본회의가 이 훈련장에서 열린다는 설명이었읍니다. 자이레는 그 경제적인 잠재력으로 해서 아프리카지역의 동서외교의 각축장 같은 느낌을 가졌읍니다. 패기에 넘치는 모부투 대통령은 우리 일행에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특별한 우정을 표시했읍니다. 아직은 한 번도 만난 일은 없으나 같은 군인 출신으로 조국을 근대화하겠다는 그 의욕을 크게 존경한다 이렇게 말했읍니다. 또 한국과 북괴 양쪽에서 초청을 받고 있는데 간다면은 한국을 먼저 가고 싶다고 했읍니다. 한국과 자이레는 지난 14년의 국교를 가지고 있읍니다마는 아직 구체적인 협력관계를 갖지 않고 있어 이 점 모부투 대통령은 몹시 아쉬워하고 있었읍니다. 이곳에서 일행은 서부 아프리카 최대의 면포 프린팅공장을 시찰했읍니다. 이 공장은 모부투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되었는데 면포 즉 광목에 아프리카인의 기호에 맞도록 여러 가지 모양을 프린팅하는 과정의 공장입니다. 이 공장의 사장인 카송고 의원의 안내로 그 공장 내부를 모두 시찰했읍니다. 이 공장에서는 월 14만 야드를 생산하는데 간접무역의 형식으로 한국산 광목이 상당히 많이 수입된다는 것입니다. 한국산 광목이 잉크가 잘 먹는다는 설명입니다. 카송고 의원은 한국산 광목을 직접 수입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읍니다. 물론 우리 단장이 카송고 의원을 초청하기로 했읍니다. 이 보고를 끝내면서 의원 여러분에게 한두어 가지 부탁 말씀을 드릴까 생각합니다. 첫째는 아프리카지역에 나가 있는 우리 외교관과 의사들은 어려운 여건과 뜻밖에 다가오는 무서운 풍토병과 싸우면서 그야말로 눈물겹도록 고생을 하고 있었읍니다. 기회가 있으면 이들을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는 이번 10월에 동경 IPU총회가 끝나면은 이 지역 국회의원들이 대거 서울을 찾아올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따뜻이 맞아 주시고 친구로서의 애정 어린 환대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으로 제 보고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서부 아프리카 5개국 방문 의원단 보고서

오늘 의사일정이 다 끝났으므로 산회를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