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姜仁燮
한나라당 서울 은평구 갑 姜仁燮 의원입니다. 金大中 정권은 이제 5년 임기를 거의 마쳐가고 있습니다. 내년 2월까지 넉 달 가량의 기간을 남겨놓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임기 말에 접어든 金大中 정부는 꼭 매듭지어야 할 일과 손대서는 안 될 일을 엄격하게 분별해서 다음 정권에게 유산을 물려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金大中 정권 5년의 경제운용 전반을 냉철한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반추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결자해지의 입장에서 뒷마무리를 말끔히 하는 것이 마지막 남은 과업이라는 것입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은 임기 두어 달을 앞두고 그동안 미국이 숙제로 남겨 놓았던 베트남과의 관계정상화와 대북한 관계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두...
산업자원위원회 姜仁燮 의원입니다. 전력기술관리법중개정법률안, 상공회의소법개정법률안에 대한 심사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전력기술관리법중개정법률안에 대하여 심사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이 법안의 제안이유와 주요골자를 말씀드리면, 첫째 부실공사 방지를 위하여 설계업자, 감리업자의 등록증 대여를 금지하고 부실설계 및 감리를 행한 자에 대하여 벌칙을 강화하며, 둘째 건축법에 의한 공사감리를 한 경우 이 법에 의한 공사감리를 한 것으로 보도록 하여 전기공사의 감리방식을 건축법과 전력기술관리법중 임의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셋째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이 발주하는 전력시설물의 경우에는 사업수행능력을 평가하여 설계‧감리업자를 선정토록 하여 설계‧감리의 내실을 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 대하여는 건축법에 의한 ...
산업자원위원회 姜仁燮 의원입니다. 전자거래기본법개정법률안에 대한 산업자원위원회에서의 심사결과를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 법률안은 2001년 11월 22일 김방림 의원 등 10인으로부터 발의되어 2001년 11월 23일자로 우리 위원회에 회부되었습니다. 먼저 제안이유를 말씀드리면, 1999년 제정‧공포된 현행 전자거래기본법은 전자거래에 관한 기본법으로서 전자거래의 법률관계를 규율하고 전자거래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적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전자거래의 활성화와 기반조성에 기여하였으나 기업과 소비자 간 전자상거래는 물론 기업 간 전자상거래, 기업과 정부 간 전자상거래, 개인 간 전자상거래 등의 변화된 환경을 법률적으로 보완‧지원하고 전자거래의 법률관계를 변화된 현실에 맞게 개정하여 법적 논란을 해소하며 전자거래 ...
서울 은평갑 한나라당 姜仁燮 의원입니다. 1년전 제16대 총선거가 막바지로 치닫던 바로 이맘때 金大中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 평양을 방문한다는 극적인 발표가 있었습니다. 4‧13총선거를 사흘 앞둔 시점에 그것도 두 달 후에 열릴 남북회담을 서둘러 발표해서 온 국민을 놀라게 했던 것입니다. 골목에서 연설을 하다가 이 충격적인 뉴스에 접한 저는 어떻게 하면 그 파장을 줄일까 고심하면서 선거전을 마무리했습니다. 결국 이 발표는 집권당의 득표에 도움이 되었다고도 하고 오히려 손해를 가져왔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집권당이 선거에 득을 보려고 하필 그때 그 시기를 선택해서 발표를 서두른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지난날 용공조작과 색깔론 등으로 누구보다 시달려온 정치적 피해자입니...
먼저 국무총리께 묻겠습니다. 오늘아침 신문을 보니 신문고시 문제로 비판적인 보도를 한 동아일보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 공정거래위원회가 취재를 봉쇄한 사실이 크게 보도가 되었습니다. 총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 보고를 받으셨습니까?
이 사건은 얼마 전에 북한이 조선일보 기자 취재를 거부한 사건도 있었습니다마는 국내에서 그것도 정부기관이 특정사업 취재를 봉쇄한 일은 일찍이 없었던 중대사건입니다. 우리나라는 잘 아시다시피 언론자유가 보장된 나라인데 이와 같이 상식 밖의 행동을 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 다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총리가 특별한…….
총리가 그렇게 명쾌하게 다짐을 하시니까 더 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통일원장관께 보충질문을 하겠습니다. 먼저 일본 주간지의 보도에 대해서 전적으로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을 하셨습니다. 제가 본회의 질문 때 인민군 입대사실을 사피오지가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라고 했습니다마는 사실관계를 알아보니까 아사히신문에서 발행되는 것이 아니고 소학관이라고 하는 출판사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인 것이 판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속기록에서 이 점은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2년 전에도 林東源 장관께서 이 국회에 나와서 인민군 전력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답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또 한번 거른 것을 다시 묻느냐 이렇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통일원장관이 워낙 중요한 자리입니다. 우리나라의 남북관계, 통일정책을 총괄...
그러면 그 나이가 안 되었지요?
그러면 월남하실 때는 어떤, 그러니까 학생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고…….
그러면 국민방위군 제40교육대 이것이 군대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국민방위군이었다고 실토를 하셨는데 여기에서 복무하신 어떤 기록이나 증거나 증인이 있습니까?
이름을 대줄 수 있습니까?
사진 있습니까?
그러시고, 제40교육대의 대장 부대장 이름은 기억나십니까?
그래서 국민방위군이 해산된 직후에 미육군 제772 헌병대대에서 2년 동안 근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부대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었습니까?
이때 같이 복무한 분 있습니까?
이름을 다 대실 수가 있습니까?
전에 林東源 장관의 이력서에는 이 부분이 자세히 안 밝혀졌는데 이번 통일부에서 저한테 제시한 이력서에는 1950년12월에 국민방위군 제40교육대에 입대했고 1951년6월 미육군 제772 헌병대대에 근무했다는 그런 기록이 지금 처음으로 여기 올라와 있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많은 오해가 있었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이 되는데요. 제가 아는 유명한 소설가 이호철 씨는 얼마 전에 고희를 맞았는데요. 원산에서 인민군 신분으로 남하를 해가지고, 그래서 미군부대에 근무를 하고 아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좋은 소설을 많이 쓰고 얼마 전에는 북한에 가서 여동생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다 공개를 합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오히려 그분의 그런 참 뼈아픈 민족분단의 경험을 높이 사서 그분의...
그런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잡지를 보면 제가 아까 북한이 누이동생을 통해서 인질화를 시도하지 않았느냐고 여쭈었는데 그런 데서 오해가 나온 것이 아닌가 싶고 또 한 가지 그 잡지에는 林 장관의 양친께서 생존해 계신 것으로 되어 있는데 북한에 누이동생 말고 다른 가족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그 뒤로 누이동생을 다시 만나지 않으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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