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제105회 국회 개회식을 거행하겠읍니다. 먼저 국기에 대한 경례가 있겠읍니다. 단상의 국기를 향하여 기립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애국가를 제창하시겠읍니다. 다음은 순국선열 및 전몰호국용사를 위한 묵념을 올리겠읍니다. 자리에 앉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의장대리께서 개회사를 하시겠읍니다.

존경하는 대법원장 각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동지 의원 여러분! 비극적인 10․26 사태 이후 제103회 정기국회의 짧은 회기 동안 우리가 이 국정의 전당에서 국사를 논한 이래 실로 270여 일의 장구한 휴면 끝에 오늘 제105회 정기국회를 개회함에 있어서 의원 동지 여러분을 대하는 본인의 마음은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동일혈통의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는 듯한 재회의 기쁨과 감동으로 충만해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휴면에 잠겨 있던 지난 270여 일 동안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소용돌이쳤던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과 소요의 걷잡을 수 없는 파동들…… 이로 인하여 이 땅의 안보상황마저 크게 위태로웠던 위난의 순간들…… 여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취해진 5․17 계엄확대조치 그리고 이 나라 정치질서의 근본적인 변혁을 몰고 온 가지가지 숨 가쁜 격동의 여파와 사회정화의 신풍으로 인하여 저기 쓸쓸하게 비어 있는 많은 의석들을 바라보면서 이 자리에 서 있는 본인의 심경은 지난날에 대한 비감으로 어둡게 그늘져 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 의정사상 일찌기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변혁의 역사적 조명이 강렬하게 집중되는 순간에 자리를 함께하고 있읍니다. 오늘의 이 개원이 통상 회기의 개회식과는 전혀 다른 성격과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냉엄한 역사 앞에 숙연한 심정으로 사회석에 서 있는 본인은 국회의장직무대리로서 스스로의 기구한 처지를 침통한 마음으로 되돌아보면서 정치인이라는 같은 범주 속에서 저 빈 의원석의 주인공들과 본인 사이에 도덕적인 면에서나 혹은 윤리적인 차원에서나 과연 얼마만큼의 크기와 무게의 차이가 있겠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미 이 자리를 물러났어야 할 위인이 신성한 이 자리에 누를 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성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존경하는 의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께서도 이 자리에 서 있는 본인 못지않게 착잡하고 쓰라린 감회에 잠겨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국정에 책임을 지고 있던 의회인이기에 당면한 현실에 대하여 침통하기에 앞서 피동적으로 수용된 이 반성의 계기를 자율의지에 의한 각성의 전기로 삼을 줄도 아는 예지를 발휘해야 하겠읍니다. 의원 동지 여러분! 우리 의사당 바로 옆에는 태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민족의 영욕과 애환을 싣고 소리 없이 흐르는 한강이 지금 이 시간에도 굽이치고 있읍니다. 민족의 영기가 서린 저 태백의 유곡으로부터 발원하여 우여와 곡절의 무수한 변전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대하를 이루며 황해로 흘러가는 저 강물은 간난과 신고를 극복해 온 우리 민족의 강인한 투쟁사 바로 그것이었읍니다. 결국 역사는 기복과 명암으로 무한히 엇갈리면서도 결코 단절됨이 없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강하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여기서 잠시 본인의 결코 짧지 않은 정치역정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 볼까 합니다. 본인은 1954년 36세의 약관으로 제3대 국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건국한 지 일천하기에 여러모로 서투루기만 했던 자유당정부의 진통과 비리도 지켜보았읍니다. 또 4․19의 격동과 무위무책했던 민주당정권의 혼란기도 겪었읍니다. 그리고 5․16혁명 후의 공화당정권, 고도의 경제성장, 자주국방의 기반구축 등 화려한 치적과는 달리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없지도 않았던 공화당정부시대도 살았읍니다. 본인이 정계에 투신하여 오늘에 이르는 이 사반세기는 그야말로 환난과 파란으로 점철된 혼돈의 시대였읍니다. 이와 같이 어지러운 정치적 변천의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동안 본인이 한결같이 열망하여 마지않았던 한 가지 일념은 원내에서 집권당과 야당이 위국위민의 차원에서 균형과 조화로 접근하지 않고 이른바 다수의 위세와 소수의 극한저항이 팽팽히 맞서 평행선을 달리는 악순환의 불행을 어떻게 하든지 막아야 하겠다는 것이었읍니다. 이 땅에 민주정치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근본 까닭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제하에서 교육을 받고 철든 나이에 조국광복을 맞았으며 동란의 참화 속에서 휴전협정으로 뜻하지 않은 실향민이 되어 버린 본인으로서는 정치의 일역을 담당하는 것이 조국의 수호와 국리민복에 공헌하는 첩경으로 확신하여 정치인의 길로 뛰어들었읍니다만 실제로 애국애족의 참된 민주정치의 구현이 그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이 귀중한 체험에서 본인은 확고한 결론을 얻었으니 그것은 당리당략에만 얽매이지 않고 진실로 자기 일신보다는 당을 또 당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이와 같은 정치소신을 몸소 실천할 수 있는 사명감에 투철한 사람만이 정치에 나서야 하겠다는 것이었읍니다. 존경하는 의원 동지 여러분! 오늘 심신의 피로를 역력히 느끼는 조로한 한 ‘정치낙제생’이 장황하게 토로한 이 하찮은 독백을 아무쪼록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선배․동지 의원 여러분! 역사는 쉬지 않고 전진합니다. 저 유유히 굽이쳐 흐르는 한강의 도도한 흐름과도 같이 우리는 미구에 전개될 새 역사의 전진을 위하여 성심 분발해야 하겠읍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안정과 화합 그리고 번영과 영광 이것이 진실로 이 역사가 요청하고 우리 조국이 명령하고 온 겨레가 대망하는 일일진대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이 길로 매진해야 하겠읍니다.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이 나라 민족사에 새로운 서장이 펼쳐지는 분기점에서 청신한 의욕으로 출범한 새 정부의 최근의 여러 가지 행적을 눈여겨볼 때 우선 우리 민족의 씩씩한 기상을 읽을 수 있어 기쁩니다. 또 정의로운 민주복지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개혁의지를 생생하게 감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 든든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여기에 한껏 기대와 희망을 걸고 새 조국의 새로운 광영을 기구하십시다. 끝으로 지난날의 국정에 대하여 적막과 회한 속에서 그 연대책임 의식을 가슴 아프게 느끼고 있는 본인은 여러 면에서 매우 어려운 시기에 무엇보다 선배․동지 의원 여러분의 자중자애와 금후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성인은 고정한 마음이 없고 백성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한다. ’라고 갈파한 노자의 경구를 끝으로 개회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제105회 국회 개회식을 모두 마치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