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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발언을 찾았습니다(페이지 1/1, 1-2번 표시)

순서: 1
오홍석 의원입니다. 우리 민주한국당을 대표해서 국정 전반에 관한 연설을 할 수 있도록 이 귀한 시간을 마련하여 주신 우리 하느님 앞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존경하는 의장 그리고 의원 동지 여러분! 또한 정부를 대표해서 나오신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여러분! 참으로 거센 충격이 주변을 휩쓸고 간 다음 우리는 이렇게 모였읍니다. 나는 먼저 우리 당을 대표하여 이국땅 버마에서 산화한 영령들의 영생을 다시금 빌고 그 유족을 위로하며 아울러 지금도 병상에 있는 애국동지들의 조속한 쾌유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참변이 생겼는지, 왜 맑고 푸른 우리의 가을 하늘 아래 연달아 조기가 올라가야 했는지, 그리고 이것이 누구의 책임인지! 우리 야당도 국가 속의 야당이기 때문에 이 사람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고뇌의 나날을 보냈읍니다. 그러나 인명은 유한하되 역사는 유구하며 정권은 유한하되 조국은 영원한 것이기에 우리는 슬픔과 분노를 딛고 다시 나가야 할 소명이 있읍니다. 의원 동지 여러분! 금세기 최고의 석학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라고 갈파한 바 있읍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든 도전을 받고 있다. 그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와 그 민족의 장래가 결정된다’, 토인비의 이 말은 바로 우리의 현실과 직결된다고 본 의원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지금 받고 있는 도전은 너무도 벅찬 것입니다. 안보적, 외교적 도전이 있는가 하면 민주 현실을 바라는 국민적 여망이 있고 안정기조 위에 발전을 지속해야 하는 경제적 시련도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금이 중대시국이라는 것을 우리는 판단합니다. 따라서 정부도 이 역사의 협곡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책을 쓰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개각의 내용이 향후 정국을 풀어 나갈 정부 의지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볼 때 우리 당은 실망하지 아니할 수가 없읍니다. 왜냐하면 이 진용으로는 국민적 여망을 담기도, 풀기도 미흡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더우기 정치력 회복이 시급한 이때 현 내각은 더욱 정...

순서: 9
지금 의장이 말씀하신 대로 15분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 의원은 문제의 요지만 간단간단히 정부에 질의하겠읍니다. 첫째로 국무총리에게 질문하겠읍니다. 작년 6월 3일 김 총리는 취임하면서 공약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고 작년 9월 4일 중앙청 기자회견에서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읍니다마는 첫째로 여야 협조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생산적 정치를 하겠다고 말하였는데 작년 6월 3일 국무총리로 취임한 이래 7월 28일 현재 419일째 되는 오늘날까지 여야 협조를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가 질문을 드립니다. 특히 3차에 걸친 우리 야당에 의하여 소집된 연이은 단독국회 당시에 또는 우리 당의 결정에 의한 우리 당수와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제기 시에 김 총리로서 여야 협조에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 구체적으로 답변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김 총리로 하여금 여야 협조라는 공약 이행을 그동안 못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아울러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이번에 7․4 공동성명과 관련하여 그 전후에 사정을 보면 먼저 공포상태 다음에 비밀행위와 일방적 결정 그리고 국민에게 공포를 담보로 한 지불강요라는 일련의 방식을 볼 수가 있다고 본 의원은 생각하고 있읍니다. 이렇게 나갈 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장래를 염려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와 같은 정치방식 정권공식을 계속할 것인가 묻는 것입니다. 현 정권이 사용한 이와 같은 정권공식은 도처에서 볼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현 제3공화국 헌법의 통과에 있어서도 1962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그리고 개헌발의 그다음에 통과로 강행하였던 것입니다. 이번에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7․4 성명 그리고 지지를 강요한 것입니다. 이번의 지지강요의 공식은 국가보안법 불법지역 왕래 반공법 공산집단의 찬양 동조 등 이적행위의 법률을 고치지 않음으로써 자유로운 언론을 봉쇄하는 태도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본 의원은 해방 후 반공 반탁의 전열에 학생시절에 참여한 일이 있으며 그때에 당시 남북협...